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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4 리턴 더즌헬 (4/40)

00004  리턴 더즌헬  =========================================================================

 교관들은 오소소 닭살이 돋는 팔뚝을 매만지며 숨죽였다.

부길드장 김태수와 총관 메이첸.

둘의 악연은 유명했다.

셀리나를 도와 페어리문을 창립한 둘은 그 전까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듀오로 유명했다.

쌍검수 김태수와 더블 케스팅 메이첸.

페어리문을 대표하는 검수이며 마법사인 둘의 호흡은 레이드는 물론 길드 항쟁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하지만 둘의 관계가 악화된 것은, 페어리문이 대길드로 거듭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김태수는 유한 길드를 만들고자 했고, 메이첸은 다소 거친 길드를 만들고자 했다.

영원한 아군이 없는 더즌 헬, 특히 배신마을에서 유한 길드는 말이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길드원들이 고개를 저으며 메이첸에게 손을 들어줄 때, 김태수에게 손을 들어준 이가 있었다.

길드장 셀리나.

페어리문 내에서 그녀의 발언권은 절대적이었다.

사람을 끄는 말과, 그 속에 담긴 진실성.

초기의 페어리문은 그녀에게 이끌린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결국 페어리문의 부길드장은 김태수로 확정되고 메이첸은 총관으로서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민태수와 메이첸의 대립의 시작이었다.

"무례라…… 친구끼리 너무하는데?"

메이첸은 거의 끄트머리까지 타들어간 담배를 다시한번 쭉 들이켰다.

그의 입이 열리고 뿌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 이 일정을 짠게 누군지, 안 봐도 알겠군."

김태수는 서류를 툭 내던지며 메이첸을 쏘아봤다.

"아아, 물론 내가 짠 건 맞지만……. 여기 있는 교관들도 다 동의한 사안이야. 안 그러십니까들?"

메이첸의 말에 김태수는 교관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교관들 중 그 누구도 김태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태수, 아니. 부길드장님, 들어 보십시오. 왜 그런 일정이 필요한지."

메이첸은 비릿하게 웃으며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군주 토벌이 당장 몇년 앞으로 다가온 상황인데, 신규 슬레이어들을 감당하기엔 겨를이 없는 것 아닌가? 여태까지야 여유가 있었다지만…… 이번엔 낙오자들까지 끌어안을 정도의 여유는 없는 것 같은데?"

"낙오자들이라……. 네놈도 낙오자였지. 나와 셀리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웃고있던 메이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메이첸은 연기를 내쉬며 숨을 고르고는, 표정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셀리나의 이상향에 빠져 허우적대는 건 여전하군. 그것도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한 거다. 뭣같은 셀리나의 이상향 덕에 길드가 여기까지 클 수 있었다지만! 결국 쭉정이들 아니냐!"

담담하게 시작한 목소리는 점점 커져 점차 커지며 회의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길드간의 항쟁은 너와 내가! 레이드는 여기 이 중진들이! 창립 멤버를 제외한 길드원들은 결국 다아-!"

메이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손에 쥔 담배가 바삭하고 힘없이 꺾이며 담뱃잎을 흩날렸다.

메이첸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김태수를 노려봤다.

"우리 피 빨아먹는 거머리 새끼들 아니냐! 이 멍청한 새끼야!"

김태수는 굳은 얼굴로 메이첸을 마주봤다.

메이첸의 말이 맞았다.

페어리문의 길드 취지는 하나였다.

모두를 끌어안자.

셀리나로부터 시작한 이상향이었으며, 김태수가 지지했다.

애초에 대길드로 거듭날 당시 부길드장 자리는 김태수로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페어리문은 신규 슬레이어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친절했다.

따라오지 못하면 버리는 타 길드와는 달리, 페어리문은 그들조차 끌어 안았다.

인간사이의 믿음이 희박한 배신 마을에서 페어리문은 일종의 성역이었다.

물론 군데군데 썩은 부위가 있을지 모르지만, 길드원끼리 등에 칼을 꽂는 타 길드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었다.

그런 면에 매료된 이들이 모여들었다.

빠르게 몸집을 불리고, 힘을 키웠다.

타 길드에는 없는 '결속력'이라는 무기로 길드간의 항쟁을 뚫고 살아남았다.

이제는 배신 마을의 삼대길드에 이름을 걸치고 있는, 명실상부 대길드였다.

하지만 그뿐.

어느 순간부터 신규 슬레이어들은 발전하기를 포기했고, 대부분 현실에 안주했다.

지금 페어리문 길드의 주력이라 하면, 창립 멤버들과 초기에 모여들었던 이들을 뜻했다.

다른 이들은 애초에 전부…….

쭉정이었다.

김태수 역시 그러한 문제점을 인지하고는 있었다.

다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뿐.

그는 메이첸의 눈을 한동안 노려보다가, 교관들을 쭉 훑어봤다.

길게는 십여 년, 짧게는 몇 년을 함께 해온 이들이었지만, 누구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김태수는 건조한 눈으로 장내를 훑어보고는, 서류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메이첸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어갔다.

"이제부터라도, 내실을 다져야 한다. 신규 슬레이어 하나에게 들어가는 지원을 예전처럼 할 수가 없어. 앞으로 계속해서 충원되는 신규 슬레이어들에게 신경 쓰다간,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고."

김태수는 메이첸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래, 그러지. 그렇게 해보지."

그는 몸을 돌려 회의실을 나섰다.

메이첸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다시 담배를 한 개비 꺼내고 불을 붙였다.

*

진한은 눈을 뜨자마자 바로 상태창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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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9) 근력(11) 민첩(9) 마법력(5) 지력(5) 내구력(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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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진한의 내구력 수치는 19를 기록하고 있었다.

신규 슬레이어 육성 커리큘럼도 어느새 내구력 생성의 끝을 알렸다.

오늘은 다음 단계인 적성검사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더즌 헬의 길드들이 시행하는 적성검사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클래스 적성을 알아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슬레이어로서의 적성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적성을 알아보는 것은 간단했다.

특정한 상황에서의 생존.

길드가 신규 슬레이어의 성장을 도와준다지만 교육기관은 아니었다.

도움을 주는 이유는 바로 길드의 전력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으니, 역량이 되지 않는 이들은 안고 가봐야 발목을 잡을 뿐이었다.

대부분의 길드는 난이도가 높지 않은 유적을 정해놓고 신규 슬레이어들을 몰아넣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

유적 끝에 둔 증표를 찾아 입구까지 돌아오는 것.

적성검사 전이나 진행 중에 검사를 포기하는 것도 가능했으나, 그렇게 되면 잡부 슬레이어로 남을 뿐이었다.

잡일을 처리하며 능력치 상승이나 아이템 획득의 기회를 상실한 최하층 슬레이어.

그게 싫으면 길드 가입을 철회하고 떠돌이로 살아가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간혹 그러지 않는 길드들도 있었다.

그런 곳은 훈련소처럼 교관을 붙여 클래스 적성을 확인하고, 충분히 성장시킨 후 길드원으로서 일인분을 할 때까지 돌봐줬는데, 그런 길드의 끝은 대다수 좋지 않았다.

자본을 투자한 것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백의 자본을 열 명에게 동일하게 투자하는 것보다, 백의 자본을 재능 있는 몇몇에게 투자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과연……'

페어리문의 중진들은 수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일반 길드원들의 수준은 기대 이하였다.

이러한 현상으로 미루어 봤을 때, 페어리문의 적성검사 방식은 명백히 후자였다.

진한은 옷을 갈아입고 소집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 쪽이든 진한에겐 지루하기만 한 방식이었다.

진한이 소집장소에 도착하자, 마침 교관이 앞으로 나섰다.

한쪽 눈이 화상으로 일그러진 교관은 담배를 꼬나물고 뻑뻑 피워대며 신규 슬레이어들을 훑어봤다.

"반갑다, 적성검사의 총책임을 맡게 된 메이첸이라고 한다."

그 말을 끝으로, 메이첸은 담배를 다 필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고요한 침묵이 슬레이어들 사이를 맴돌았다.

메이첸은 불씨를 튀기며 담뱃불을 끄고는 입을 열었다.

"기존 길드원들과 친해진 놈들이 있으면 알겠지만, 페어리문의 적성검사는 훈련소식이었다."

그는 재차 담배를 물고는, 질겅질겅 씹으며 말을 이어갔다.

"헌데 이번 기수부터는……."

메이첸의 눈빛이 복잡하게 일렁이며 신규 슬레이어들을 훑어봤다.

본래 총교관은 김태수였으며, 자신의 방식대로 적성검사를 진행한다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었다.

그 어떤 경우도 총교관이 바뀌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김태수가 중간에 총교관에서 물러나고, 자신이 모든 결정권을 물려받게 되었다.

길드장의 명이었다.

"생존력을 검사한다."

메이첸의 말에 신규 슬레이어들이 크게 술렁였다.

"물론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안 해도 좋고, 중간에 포기해도 좋다. 대신 통과한 사람에겐 포기한 사람에게 돌아갈 지원들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메이첸은 그 말을 끝으로 길드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진한이 김태수와 술잔을 기울일 때면, 이따금 페어리문 시절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곤 했다.

그때마다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둘 있었다.

셀리나와 메이첸.

셀리나를 이야기할 때의 김태수는 항상 먼 곳 어딘가를 바라보곤 했다.

진한은 그때 확신했다.

김태수는 셀리나를 존경하며, 진정으로 따랐고…… 사랑했다고.

젊음이 영원히 유지되는 더즌 헬이라고는 하지만, 마음까지 불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김태수는 수십 년을 셀리나를 그리며 살아왔다.

반면 메이첸의 이야기를 할 때의 그는 한겨울의 삭풍보다도 시린 살기를 내뿜고는 했다.

진한은 앞서가는 메이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마법사 클래스로 추정되지만, 흔히들 들고 다니는 지팡이는 들고 있지 않았다.

진한은 메이첸의 의복과 장신구, 걸음 폭이며 걸을 때 팔이 흔들리는 궤도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관찰했다.

그 결과 진한은 하나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메이첸은 노련한 전투 마법사였다.

후방에서 지원만 하는 그저 그런 마법사가 아닌, 개개인의 대인전에서도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마법사였다.

더즌 헬에 전투 마법사는 흔치 않았다.

진한은 메이첸의 존재를 머리에 새겨 넣었다.

신규 슬레이어들은 배신 마을에서 멀지 않은 유적지에 도착했다.

메이첸은 유적을 보며 턱 끝을 매만졌다.

다른 길드들은 적성검사를 위한 유적지를 보유하고 있다지만, 페어리문 길드는 아니었다.

해서 메이첸은 미리 근처의 적당한 유적지를 물색하고, 탐사를 마쳐놓은 상황이었다.

헌데 길드장인 셀리나가 직접 유적지를 구해 주었다.

탐사 보고서까지 정확하게 작성된 터라 거절할 명분도 없었으며, 자신이 조사한 유적지와 비교했을 때 적성검사에 더 적합했다.

그는 유적지 앞에 서서 담배를 꼬나물었다.

담배를 질겅거리며 한참을 씹던 그는 불을 붙이고는 깊이 들이마셨다.

“…….”

불안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지만 애써 무시했다.

메이첸은 뒤돌아서서 도열한 신규 슬레이어들을 돌아 봤다.

설명 뭔가 일이 있다 해도, 이곳에 따라온 교관만 일곱.

충분한 전력이었다.

하지만…….

‘불안한데.’

그의 예감이 무언가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메이첸은 대기 신호를 보내고 유적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한은 유적지로 들어가는 메이첸을 보며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다.

어차피 죽든 살든 알아서 하라고 들여보내는 유적지였지만, 의외로 선정 기준이 엄격했다.

우선 함정이 없어야 할 것, 몬스터는 신규 슬레이어와 큰 차이가 없어야 할 것.

설령 차이가 있다 해도, 신규 슬레이어들의 힘으로 처리 가능한 수준이어야 했다.

그렇게 엄정히 선정되는 것이 적성검사 유적지였다.

당연히 교관은 유적지에 대한 모든 사실을 알고 있어야 했고, 사전 조사 역시 마쳐놔야 했다.

헌데 교관이 적성검사 직전에 유적이 안으로 들어간 다는 것은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약 삼십분이나 흘렀을까.

메이첸이 유적지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몸에 흙먼지를 묻힌 채 신규 슬레이어들 앞에 섰다.

“빠질 사람은 뒤쪽으로, 지원할 사람은 앞쪽으로.”

메이첸의 말에 진한을 비롯한 이십여 명의 슬레이어들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고, 남은 이들은 뒤로 물러섰다.

지원자와 포기자가 갈리자, 교관들은 미리 챙겨온 무기를 하나씩 넘겨주었다.

검과 창.

누군가는 검을, 누군가는 창을 받아들었다.

진한은 검을 쥐었다.

어떤 옵션도 붙어있지 않은 평범한 철검이었다.

“자, 그럼 입장하도록. 포기할 사람은 언제든 포기해도 좋다.”

메이첸의 말에 신규 슬레이어들은 긴장된 발걸음을 내딛었다.

*

이십여 명의 신규 슬레이어들이 유적에 들어서자, 자연스레 무리가 갈렸다.

총 세 무리로 갈라졌는데, 대략 일곱에서 여덟씩 무리가 나뉘어 졌다.

그간 친분이 생긴 것인지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앞으로 나섰다.

진한은 그들과 떨어져 뒤따랐다.

“이봐, 혼자 있지 말고 이리 오지?”

한 무리에서 백인 남성이 진한에게 손짓했다.

탐앤스라는 남성으로, 내구력 능력치 단계부터 두각을 보인 슬레이어였다.

신규 슬레이어들 사이에선 은연중에 리더역할을 하고 있었다.

진한은 그의 제안에 손을 가볍게 흔들어 거부 의사를 표현했다.

탐앤스는 어깨를 한번 으쓱 하고는 앞길로 걸음을 옮겼다.

다른 두 무리는 이미 앞쪽으로 걸음을 옮겨 어둠속으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진한은 멀어지는 그들을 응시하고는 유적지를 탐색했다.

입구에서 메이첸이 보인 행동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교관으로서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다는 것이고, 그 말인즉슨 이 유적지의 난이도도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진한은 슬레이어의 예상을 뛰어넘는 유적지를 아주 많이 봐왔다.

우선 바닥을 살폈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손끝의 감촉만으로 탐색했다.

유적지는 터널과 같았는데, 벽돌이 사용되어 아귀가 잘 맞았다.

손끝으로 벽돌의 틈새를 문지르고는, 검지와 엄지를 마주 비볐다.

진한은 다시 검지로 벽돌의 틈새를 문지르고는 검지와 엄지를 마주 비볐다.

자리를 옮기고 같은 행동을 하기를 몇 차례.

진한은 검지에 침을 살짝 묻히고는 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재밌게 돌아가는군.’

돌과 돌 사이에는 먼지 한 톨 없었고, 침 묻은 손가락으로 벽돌을 쓸어봐도 돌가루 하나 묻지 않았다. 메이첸이 유적지에서 나올 때 흙먼지를 묻히고 나왔었다.

이 유적지는…….

적성검사 유적지가 아니었다.

진한은 유적지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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