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수라기(獸羅記) 34번째 올림 창작야설
제가 미쳤습니다. 며칠간을 새벽에 일어나서 수라기를 잡고 앉아 있다니..항상 밖에서는 피
로해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8 장 우(友), 살(殺)
(1)
" 후우~"
아환은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운기조식을 마쳤다.
이제 독상과 옆구리의 외상은 완전히 회복되었다. 약간의 흔적이 남아있을뿐 활동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그 와중에 음양신단이 일부가 더 용해되어 약간의 내기가 더
충만해진 느낌이 들었다.
이른 아침,
막 해가 떠오르는 시각. 아환은 세면을 하다가 물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별 다른
것은 없었으나 덥수룩한 수염과 스스로 느끼기에 눈빛이 더 강렬해진 듯한 기분외엔 특별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칠척의 장신에 험상궂어 보이는 사내. 산적의 인상인가?
내심 실소를 흘리며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 일어나셨어요?"
밖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객을 깨우
지 않을려는 배려가 보였다.
" 음. 그래. 들어오너라."
" 예."
살며시 문을 열고 쪼르르 들어오는 작은 인영. 객잔의 소녀 점원이었다.
" 아침 식사 가져왔어요."
전날 미리 주문한 식사를 가지고 들어오는 갸날픈 체구의 어린 계집아이는 자기 체격의 반
만한 쟁반에 여러 음식과 식수등을 힘들게 이다시피 하여 방에 들어섰다.
" 수고했다. 홍홍이라 했나?"
" 아! 홍홍은 제 언니고요. 전 청청이라 부르시면 되요."
힐끔 쳐다봐서 그런지 잘 몰랐지만 그 말을 듣고는 자세히 계집아이를 쳐다 보았다. 과연
어딘가 다른 느낌이 풍겼다. 어제의 홍홍이라는 여아는 의젓하면서 침착한 면모가 보였지만
청청이라는 이 계집아이는 밝은 기운과 시원한 성품이 느껴졌다.
" 그렇구나. 어제 언니가 네가 몸이 아프다고 그러던데.."
" 예.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나았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아직 쾌차하지는 않았는지 파리한 안색이 병색이 완연했다.
" 아직 다 낫지 않은 것 같은데.."
" 다 나았어요. 언니가 그동안 혼자서 많이 힘들어서 빨리 일어서야죠."
두 자매의 의의가 상당히 좋은 듯 했다. 객잔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고 해도 어린 계집
애 둘이서 모든 것을 소화하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많았다. 게다가 한명이 몸져 누울 경우
그 여파는 다른 한쪽에 돌아갔다. 남은 한명은 그 경우 혹사라고 할 정도의 일을 해야만 하
리라.
" 그래. 건강해야지."
아환은 동전 두닢을 청청에게 주곤 수저를 들었다. 아환이 식사를 시작하자 청청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방안을 물러 나갔다.
아침을 먹은 후 아환은 저잣거리로 나섰다. 평소같으면 수련을 할 시간이지만 마땅한 수련
장소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곳에서 칼을 휘두를수도 없는 노릇, 아환은 마침 돈도 떨어지고
해서 근처의 전장으로 가서 환전을 한후 시장거리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여러 군상이 보였다. 수많은 점포가 자리를 잡고 각각의 물품을 팔면서 손님들과 흥정을
하고 호객행위를 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등 일상적인 시장의 광경이었다.
' 어렸을때에는 저 단고하나 사달라고 조르기도 했건만..'
아이들이 단고장수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단고를 침을 흘리며 쳐다 보는 모습이 보였다. 하
나 같이 비쩍 마른 체격에 낡은 천을 기운 옷가지를 입고선 혹시 땅에 떨어지는 것이라도
주워먹을까하는 모양새다.
' 정말 어려운 세상이구나..'
아환 역시 부모를 잃고 구문현을 떠나면서 수없이 겪은 생활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상가
진에서 정착한 후 잠시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러던 중 한 탁발승이 단고 장수에게로 가는 것이 보였다. 탁발승은 뒤에 맨 보퉁이를 끌
러 단고 장수에게 내밀고 무언가를 얘기하는 듯 했다. 단고 장수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드
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탁발승이 한참 보퉁이를 밀어대며 단고 장수에게 간절히 부탁을 하
던가 싶더니 단고 장수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단고 장수는 상자에서 단고를 대여섯개
꺼내어 탁발승에게 전해 주고는 탁발승이 내민 보퉁이를 받아 가지고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떴다.
탁발승은 단고를 여러 아이들에게 조금씩 떼주었다. 머리를 쓰다듬고 가급적 공평하게 나
누어 주고 있었다. 아이들은 난데없는 횡재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단고를 손에 쥐고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연신 머리를 숙이며 탁발승에게 절을 하곤 단고를 조금씩 떼어 먹었다.
아환은 과정을 별다른 감정없이 보았지만 탁발승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아환 자신도 그러
한 시절을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아환은 탁발승을 유심히 쳐다 보았다. 파르스름한 머리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부리부리한 호목에 두툼한 주먹코 건장한 체격을 가진 스물 안팎의 중
이었다. 탁발승이기는 하나 범상치 않아 보이는 눈빛과 영웅의 기개가 보임에 아환은 그 중
에 대한 관심이 더더욱 강해졌다.
아환은 탁발승이 단고를 아이들에게 떼어 주는 것을 바라보다 탁발승이 단고가 손에서 비
자 다시 걸음을 시장거리로 옮기는 것을 보고는 그 뒤를 따랐다. 탁발승은 여러 객점과 민
가를 돌면서 시주를 얻기위한 탁발을 하였다. 한집, 한집 반응이 달랐다. 스님이라고 환대하
는 집, 무시하며 대꾸도 안하는 집, 심지어는 욕을 하고 부지깽이를 들고 나와 재수없다고
쫓아내는 이들도 있었다. 허나 탁발승은 웃음을 잃지 않고 염불을 외우며 담담한 응대를 할
뿐 같이 화를 내거나 힘을 쓰는 것은 볼수가 없었다.
탁발승이 한 집에 가더니 무언가를 청하였다. 그러자 집의 아낙이 바가지에 물을 들고 나
와 탁발승에게 건네었고 탁발승은 단숨에 그 것을 들이켰다. 마신후 배를 쓸어내리는 것을
보면 식사대용으로 물을 마신것이리라 짐작이 되었다. 아침 나절의 시간, 얻은 탁발을 단고
와 맞바꾸고는 끼니를 거르게 되어 물로 배를 채우는 것이었다. 아환은 홀린듯이 그 광경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동쪽에서 뿌연 먼지구름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따가닥. 따가닥..
두필의 말이 먼지를 일으키며 탁발승이 막 물을 얻어마시고 몸을 돌이킨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 비켜라. 이 땡중놈!"
말과 중과의 거리는 얼마 남지 않아 금방이라고 탁발승을 칠 것만 같았다. 탁발승이 소리
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말이 돌진하는 것을 보고는 급히 몸을 피했다. 하지만 완
전히 피하지는 못하였고 말이 비껴 지나가면서 무언가가 탁발승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 우욱.."
탁발승이 어깨를 부여잡으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 밝던 인상이 눈살이 찌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적잖은 고통을 당한듯이 보였다.
히히힝..히힝..
말소리가 크게 들리고 말의 앞발이 들렸다가 내려왔다.
" 야! 이 빌어먹을 땡중놈아. 정신을 어디다 팔고 다니는 거냐?"
쫙!
어느새 마상의 사람이 말위에서 뛰어내리며 손에 들은 채찍으로 탁발승을 내리쳤다.
" 윽."
외마디 비명소리. 낡은 승복이 등부위가 길게 찢어졌다. 금새 붉은 피가 배어나왔다.
" 감히 네까짓 놈이 길 한복판에서 본인들이 가는 길을 막는단 말이냐?"
화가 잔뜩 치밀어 오르는 지 말이 거칠었다. 말위에서 내린 자는 일남 일녀였다. 둘다 스물
전후정도의 나이로 보였고 차림새가 꽤 번드르르 한 것을 보면 제법 행세하는 집안의 자식
들인것 같았다. 그리 썩 뛰어난 용모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잘먹고 치장을 잘하
여서 인지 괜찮아 보이는 외모였다. 단지 오만하고 독선적으로 보이는 게 흠이었다.
" 죄송하외다. 소승이 미처 보지를 못해서 그런 실수를 한 것 같소. 모쪼록 공자께서는 인자
하신 성품으로 소승을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탁발승은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을 하곤 사과를 하였다. 흔히 겪는 일인지 사과하는 동작이
자연스럽다.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띄고는 용서를 구하는 탁발승. 허나 이런 웃음짓는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옆의 여자가 한몫 거들었다.
" 저런 땡중놈은 나라를 좀먹는 쥐새끼같은 놈들이예요. 서공자, 저 눈초리를 보세요. 우리
를 비웃고 있잖아요. 잘못을 모르는 저런 썩은 중놈들은 아예 혼찌검을 내주어야 해요."
여자의 말에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서공자라 불리우는 사내가 손에 든 채찍을 사정없
이 휘둘렀다.
쫘악!..쫙..츠악!...
" 우욱..욱.."
몸을 잔뜩 웅크리고는 내리치는 채찍을 몸으로 견디어 내는 탁발승, 금방 승복이 걸레처럼
변하고 피투성이가 되었다. 여러번 이런 일을 당한 탁발승은 여기서 저항을 하다가는 더 험
한 꼴을 당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아 신음을 흘리며 채찍질을 견디었다.
어느새 사람들이 꽤 모여서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소란이 일자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시장거리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란을 고개를 빼들고 쳐다보았다. 하나 누구하
나 이 남녀를 말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환은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또야. 저 년놈들은 툭하면 스님들이나 도사님들을 괴롭히네. 전생에 부처님과 신선님들과
무슨 원한이라도 가졌는지 또 저 지랄이야.."
" 그러게. 또 스님하나가 골병이 들겠구만. 쯧쯧쯧.."
" 그래도 이 스님은 저번 스님처럼 반항을 하지 않아 다행이네. 그려..그 스님은 결국 의방
에서 죽었잖아?"
" 힘없는 게 죄지. 암, 힘없는 게 죄야.."
혹시 저 남녀들이 들을까봐 나지막한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이 남
녀들은 때때로 이런 짓거리를 벌이는 가 싶었다.
" 그만하시오."
나직하지만 힘이 있는 음성이 장내를 흔들었다. 서공자는 갑자기 채찍이 무언가에 잡힌듯
움직이지 않자 채찍을 따라 시선을 이동시켰다. 그러자 굵은 팔뚝이 눈에 들어왔다. 그 팔의
임자를 살펴보았다. 칠척 정도의 키에 딱 벌어진 어깨와 가슴의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는
사내하나가 채찍의 끝을 잡고 있었다.
서공자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 누군데 본공자의 일을 방해하는 거지?"
" 지나가는 떠돌이 무사요. 보아하니 이 스님이 크게 잘못한거 같지도 않고 또 그리 맞았으
면 되었다 생각하니 이만 채찍을 거두시오."
" 호오~영웅이 출현하였구만. 이봐! 떠돌이 무사면 그냥 떠돌아다녀. 쓰잘데 없이 나서지 말
고. 쓴맛을 보기 전에 냉큼 꺼지도록."
" 서공자님. 이 사내는 제법 무예를 좀 하는가 보죠? 저기 보세요. 저 큰칼을..칼이 크니까
무공도 아주 고강한 모양이네요. 호호호.."
죽이 잘맞는 건지 아니면 서공자의 부아를 돋구려는지 옆에서 이죽거리는 여인. 무림의 통
념상 큰칼이나 기병을 쓰는 자들 중에 무예의 고수는 없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더군다나 앞
에 보이는 체격의 사내는 내가무공이 아니고 외가무예 몇수를 배워선 큰칼을 들고 사람들을
위협하는 삼류무사라 생각되었나 보았다.
" 그렇지요. 은 소저가 보기에도 그리 보이지요. 이 무사는 대단히 높은 무공을 가져서 하찮
은 우리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 같군요. 제가 이 사내에게 한 수 배워보죠. 칼을 뽑아
라. 떠돌이 무사 나으리."
이죽거리며 사내가 채찍을 던져놓고는 허리춤에서 검을 빼들었다. 일견하기에도 보검으로
보이는 병기, 잘 정련된 검에 여러 보석으로 장식을 해놓았다. 돈으로 만든 병기.
아환은 뚫어지게 서공자를 노려보다가 채찍을 손에서 놓고는 한손으로 뒤의 칼을 뽑아들었
다.
츠으읏..
" 어디 한 수 잘 가르쳐 주겠지."
서공자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아환을 비꼬았다. 그말에 대꾸를 하지 않고 두손으로 칼을
든채 칼끝을 서공자를 향해 겨누었다. 서공자는 나름대로 믿는바가 있었다. 본디 서공자는
여기 장사의 서가장 이라는 부잣집의 독자로 어려서 부터 서가장의 재물을 들고 화산파에
들어가 화산파의 무공을 걷핥기로나마 배운 인간이었다. 본시 그리 재질이 나쁘지 않은 터
에 상승 절학을 몇수 전수받아 제법 검을 쓸줄 알았고 또 각종 영약을 구입하여 복용해서
내공도 어느 정도 닦았다. 따라서 외가의 무사들은 그에게 조금의 위협이 되지 않았고 여기
서 아환에게 조롱을 하는것도 다 그와 같은 것은 믿은 탓이었다.
" 들어오시오."
짧은 말. 아환이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은채 서공자에게 공격을 말하였다.
" 건방진 놈! 받아라!"
서공자가 보검을 휘두르며 아환에게 쳐들어왔다. 길게 사선을 그리며 아환의 어깨어림을
베어오는 서공자의 검을 아환의 슬쩍 도를 비틀어서 막아내었다.
캉!
서공자의 검이 튕겨나갔다. 서공자는 튕겨나온 검을 갈무리 하면서 다시금 수차례 칼질을
해대었다.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秀梅花劍法)의 초식, 그중 매화난분의 초식으로 서공자는
아환을 공격하였다. 몇송이 매화가 허공에 떠서 아환의 요혈을 노리며 쇄도해왔다. 아환은
슬쩍 손목만 비틀어 검의 공세를 일일이 도신으로 막아내었다.
창..카캉..츠캉..
서공자가 하나 간과한게 있었다. 일반적인 외가무사들은 크고 무거운 병기를 곧잘 사용하
기는 하지만 지금 아환이 들고 있는 것처럼 저런 초대형의 무기는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내공이 없이 체력만으로 저러한 거병을 쓴다는 것은 별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더군다나 무
림에는 일대일의 전투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수의 전투도 발생하는 경우하 비일비재하였다.
그런 경우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크고 무거운 병기는 없느니만 못하였다. 서공자는 단순
히 큰 병기라고만 생각을 하였지 여섯자에 가깝고 폭이 한자에 조금 못미치는 쇳덩이의 무
게를 계산하지 못하였다.
" 허! 칼이 커서 운좋게 막아내는군. 그럼 이것도 받아보아라. 매화도현!"
서공자의 검이 크게 원을 그리며 아환의 주위를 맴돌았다. 구궁보(九宮步)를 밟으며 아환의
주위를 돌면서 매화검중 쾌속한 검초로 아환의 등부위를 찔러들어갔다. 아환은 허리를 비틀
며 검을 피해내었다. 또 아환이 검을 도를 이용해 튕길것이라는 생각을 한 서공자는 찔러들
어가는 검을 미처 회수하지 못하고 상체가 아환의 바로 어깨 부근까지 다달았다.
퍽!
아환이 어깨로 서공자의 가슴을 밀듯이 쳐내었다.
" 크악!"
서공자가 한줄기 핏물을 허공에 뿌려대며 뒤로 튕겨나갔다. 아환도 자신의 펼친 수법에 자
신이 놀란듯 멍해져 있었다. 처음 시전해보는 건곤형이었다. 모든 병기와 권각법에 응용할
수 있는 건곤형. 외가무예의 절정이자 내가무예로도 사용이 가능한 상고의 절세 무예가 아
환에게서 펼쳐진 것이었다. 아환은 건곤형을 시전하면서 약간의 힘만 주었다 생각을 하였는
데 서공자는 멀찍이 밀려나와 가슴을 부여잡고 피를 토하고 있는 중이었다. 쉴새없이 선혈
이 흘러나왔다. 선홍빛이 분명한 것이 내상을 크게 입은 모양이었다.
" 공자!"
은소저라 불리운 여인이 서공자에게 다가가 서공자를 부축하였다.
" 괜찮으세요? 내상이 심하신가요? 이를 어째.?"
" 으으으..은 소저. 내 크게 상처를 입은 것 같소. 저놈이 무언가 비겁한 술수를 썼나보오.
저깟 놈에게 내가 당할리가 없는데..우웩!"
핏덩이를 토해내면서도 입은 살아있나 보았다.
" 이걸 어쩌지..이를 어쩌나?"
어쩔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는 은소저라 불리운 여인에게 서공자가 힘겨운 목소리를 뱉
었다.
" 일단 서가장으로 갑시다. 그후 다시 ..우욱.."
" 예? 아! 예.."
여인은 서공자를 부축하고는 말에 태우고 자신도 말에 올라탄후 왔던 길을 되돌아 돌아갔
다.
" 네 놈. 비열한 수법으로 서공자에게 부상을 입히다니..네놈이 사내라면 기다려라. 다시 돌
아올 것이다."
원독이 서린 눈빛으로 아환을 쏘아본후 여인은 힘겹게 서공자를 데리고 돌아섰다.
아환은 피식 웃으면서,
" 그러시오."
짤막한 대꾸로 여인의 말을 받아넘겼다.
사람들은 일남일녀가 떠나자 이제 상황이 종료된것을 알고는 아환에게 힐끔 힐끔 눈을 돌
리면서 각자의 행동을 계속하였다. 사람들이 장내에서 떠나가자 아환은 탁발승에게 다가갔
다.
" 이보시오. 스님. 괜찮으시오?"
" 으음. 소승은 괜찮소이다. 허,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소승으로 인하여 협사께서
어려운 일을 당하지는 않을 지 걱정이 되오이다."
" 어려운 일은 무슨..자, 이리로 오시오. 내가 상처를 한번 봐드리리다."
그래도 의가의 후손, 아환은 탁발승의 상세를 일일이 살펴보고는 품에서 금창약을 꺼내어
탁발승의 이곳 저곳에 발라주었다. 얼마전 의방에서 구입한 시중에서 흔히 파는 약품이었다.
아환이 손길이 상처에 닿을때마다 움찔거렸지만 탁발승은 작은 신음도 내지 않고 아환의 손
길을 받아들였다.
" 다 된것 같소이다."
아환이 손을 떼고 일어나자 그제서야 탁발승이 일어나서 합장을 하며 예를 하였다.
" 정말 감사하오이다. 큰 은혜를 입었소이다."
" 은혜는 무슨..스님, 아직 식전이시지요?"
그러고보니 점심때가 가까와 왔다.
" 소승은 아침을 늦게 들어서 생각이 없습니다."
" 그러지 말고 이리 오시오. 소생과 점심이나 합시다."
아환은 탁발승을 끌다시피하여 근처의 객잔으로 들어갔다. 탁발승은 한사코 마다했지만 아
환의 끌어당기는 힘에 못이겨 따라왔다. 아환은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가는 이 스님이 마음에
들었는지 평소같으면 별 참견을 하지 않은 일에 참견을 하고 또 이 탁발승과 식사를 같이
하려 하였다.
아환은 객잔에 들어서 간단한 만두와 소면, 그리고 소채를 주문을 하였다.
식사가 나오기전 아환은 탁발승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
" 스님은 법호가 어찌되시오."
" 소승은 땡중이라 법호도 없소이다. 얼마전까지 황각사(皇覺寺)라는 절에서 탁발을 하였는
데 절을 떠나서 이리저리 떠돌며 빌어먹고 사는 처지이지요."
" 허허. 그러시오? 소생은 주환이라고 하오이다."
" 주소협이셨군요. 이렇게 연이되어 소승이 협사를 뵙게 되었나 보오."
" 그럼 스님의 속명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 그냥 주각 이라고 불러주시오."
" 주각? 그게 스님의 속명이시오?"
" 본디 소승은 남경근처의 한 빈농의 자식으로 세상에 나왔지요. 어려서 부모를 잃고 각이
라고만 불리웠습니다. 그런 소승에게 무슨 성이 있겠습니까? 이제 소승을 구해준 협사를 만
나게 되어 감히 소승이 협사의 성을 빌은 것이오."
" 소생의? 하하하.."
" 아니. 어찌 웃으시오. 소승이 무슨 잘못이라도.."
" 아니오, 아니오. 솔직히 주환은 내 이름이 아니오. 내 본래의 성은 적(赤)가 오만 어떤 사
정이 있어 주가로 임시로 바꾸어 썼는데 스님이 그 성을 쓴다니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겠
소? 하하하."
" 허허. 적(赤)이나 주(朱)나 둘다 붉은 것은 마찬가지가 아니오. 그럼 소승이 주가의 성을
쓰겠소이다."
아환은 잠깐의 대화를 나누었지만 이 탁발승이 점점 자신의 마음에 들었다.
" 소생은 아까 아침 나절부터 스님을 쭈욱 살폈지요. 스님은 참 어린 아이들을 잘 대해주시
더군요."
" 음..그 부끄러운 일을 보셨습니까?"
" 예. 우연히 보게 되었소이다. 참으로 인자하신 스님이시더이다."
" 아니외다. 단지 빈농에서 태어나 유랑생활을 하던 시절이 생각이 나서 그리 한것이지 무
어 대단한 일이라고.."
" 그나저나 참 어려운 세상이외다."
" 그렇지요. 어렵지요. 빈승이 탁발을 다니다 보면 더욱 심하지요. 곳곳에 난민들이 끼니를
때우지 못하고 굶어 죽거나 도적질을 하다가 험한 일을 당하지요. 게다가 흉년이어서 그런
지 민심은 더욱 흉흉하기만 합디다. 어찌 되려는지..가진 자는 더욱 그 욕심을 더하고 강한
자는 자신의 그런 강함으로 세상을 위해 쓰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위하여 세상을 핍박하
려 하니 참 어떻게 이 나라가 되려는지..."
" 듣자하니 송나라의 왕족과 그 후손들이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들었소이다만.."
" 그게 무슨 소용이오. 서민들은 왕조가 누가 되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오. 한족이 나라
를 되찾든, 몽고족이 이 중원을 계속 다스리던지 저 오랑캐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던지 상관
이 없소. 다만 그들은 배불리 먹기를 원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원할 뿐이오. 송의 후예가 나
라를 되찾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들이 실정을 하여 나라를 잃어버렸잖소. 다시 송이
일어선다고 해도 민초들의 삶을 보살피리라고는 생각지 않소. 그들의 이익을 원할뿐이지..단
지 소승이 원하는 것은 이 나라가 어서 안정을 되찾기만을 바랄뿐이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면서 눈을 부릅뜨고는 힘있는 목소리로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탁발승의
모습에 은은한 기개가 묻어나왔다. 이에 더더욱 이 탁발승에 호감이 갔다.
그러던중 음식이 나오고 음식을 먹으면서 말이 이어졌다.
" 더이상 백성들이 참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오. 일어날 것이오. 틀림없이 그렇게 될것이오."
" 이미 각지에서 농민들이 봉기했지 않소?"
"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그들의 세력이 나타날 것이오."
아환은 정말 이 탁발승이 마음에 들었다.
" 스님은 올 연세가 어찌 되시오?"
뜬금없이 아환이 탁발승에게 질문을 던졌다.
" 기억하기론 스물 여섯이지요. 그러는 협사께서는?"
이 탁발승도 아환이 마음에 들었는지 대화가 점점 구체화 되어갔다.
" 소생보다 연배시군요. 소생은 이제 스물하나외다."
" 쓸모없이 나이만 먹었지요. 어쩌다 보니 그리 되었소이다."
" 그럼 같은 성을 쓰게 되었으니 형제가 되겠군요."
아환이 다짜고짜 형제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아환은 몇시진 안되는 동안 이 탁발승을
보면서 나름대로 푹 빠졌다.
" 어떠시오. 소생을 의제로 받아주시겠소?"
아환이 눈을 반짝 빛내면서 탁발승, 주각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제안을 하였다. 그런 아환의
시선을 마주보는 주각. 한참을 아환의 눈을 보다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 그리는 못하겠소."
뜻밖의 거절에 아환은 실망감을 느꼈다. 허나 본인이 싫다는데야 어쩔 수 없는 노릇.
" 허어, 소생이 모자라서 그러는 모양이구려. 죄송하오. 무리한 부탁이었나 보오."
" 그게 아니오."
주각이 아환을 직시하면서 힘이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 나는 협사를 의제로 맞이하고 싶지는 않소. 우리 벗이 되는 것이 어떻소."
주각은 아환의 나이가 자신보다 다섯살이나 어린데도 불구하고 벗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
러한 주각의 진심이 아환에게 전달이 되었다.
" 어찌 소생이 감히 벗을 칭할 수 있겠소. 스님께서는 말씀을 거두시지요."
" 왜 안된다는 것이요. 소승이 부족하기 때문이오?"
" 그런 것은 아니오."
" 그럼 왜 안된다는 것이요?"
아환과 주각의 눈이 허공에서 강하게 충돌을 하였다. 얼마간 서로 눈싸움을 한다 싶더니
동시에 둘의 손이 내밀어졌다.
" 주각."
" 주환."
굳게 맞잡은 손.
" 하하하하."
" 핫하하.."
둘은 손을 맞잡은 채로 크게 대소를 터뜨렸다.
" 이보게, 주환."
" 내 이름은 적무환이네."
" 아니, 그냥 주환이라 부르겠네."
" 좋도록하게, 왜?"
" 나는 이 길로 안휘성으로 갈 예정이네."
" 안휘성?"
" 그래. 듣자하니 그 곳에 곽자흥(郭子興)이라는 사내가 거병을 했다고 들었네. 그 휘하에
들어갈 생각이야."
" 곽자흥?"
" 그래, 홍건도이기는 하지만 꽤 백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들었네. 그 사람을 한번 찾아
갈 예정이야."
" 오래전부터 계획하였던 일인가?"
" 그건 아니야. 방금 막 생각한 것일세."
" 방금?"
" 그렇다네. 자네와 말을 나누다보니 깨닫는 것이 있었네. 지금껏 자네에게 한 말이 내 스스
로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어리석은 땡중이다 보니 그리 되었지. 그래서 결정하게 된것이
야."
" 그런가?"
" 자네도 같이 가겠는가?"
" 아니, 나는 예정한 길이 있네. 아마 운남쪽으로 갈 걸세."
" 왜? 운남에는 무슨 일로?"
" 배울게 있어서 그러지. 시간이 좀 걸릴거야."
" 그렇구만. 할 수 없지. 혹 나중에라도 기회가 되면 호주로 한번 오게."
" 그러지. 주각, 자네 혹시 무예를 익히지 않았나?"
" 무예랄 것도 없네. 황각사에 있을때 노스님에게 호신술로 나한권과 몇가지 무예를 귀동냥
으로 배우긴 했지만.."
" 그렇구만. 어쩐지 아까 상처를 볼때 생각보다는 가볍더라니. 자네가 농민군에 들어가게 된
다면 그게 큰 도움이 될걸세."
" 그렇겠지. 땡중이 이제 세상을 어지럽히는 일에 나서게 되나 보이."
" 하하하. 그러니까 자네는 땡중이 맞네 그려."
" 그런가? 하하하.."
" 내 자네에게 별명을 하나 지어줌세."
" 별명이라..좋지. 무어라 지을건데?"
" 내 배운 것이 많지 않아 좋은 것은 짓지 못하지만..음, 자네는 으뜸가는(元) 땡중이니 반쪽
이라 볼수 있지(璋). 자네를 원장(元璋)이라 부르지."
" 원장? 원장이라..그럼 내가 자네도 하나 지어 주지. 자네는 무공을 목표로 하는 것 같으니
홍무(洪武)라 부르겠네. 큰 무예를 얻게."
" 홍무라..좋아! 아주 좋네. 핫핫하!"
둘이 몇가지 싼 음식을 시켜놓고는 큰소리로 웃어가며 소란을 피우는 것을 못마땅한 눈으
로 쳐다보는 주인의 시선을 무시한채 생전 처음 갖는 벗에 흥겨워 하였다.
" 이보게. 원장."
" 왜 그러나, 홍무?"
" 한가지 충고를 하겠네. 자네는 보아하니 너무 고지식한 것 같으이. 좀 더 유연하면서 독해
지게. 때로는 하기 싫은 것도 해야하네. 허~ 참.."
" 알겠네. 그런데 왜 그러나?"
" 아닐세. 나도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을 자네에게 말하고 있네 그려."
" 허, 사람도 참.."
(2)
아환은 이 곳 호남성에 와서 평생의 벗이 될만한 주각을 만난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아
환은 저녁이 다될때까지 주각과 이런 저런 말을 나누면서 서로의 공감대를 넓혔다.
곧 주각은 안휘성으로 간다고 길을 떠났고 아환 역시 자신의 길을 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일단 주점에 돌아가서 정리를 하고 길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묵었던 주점으로 발을
향했다.
주점이 가까와졌다. 아환은 주렴을 걷고 주점의 안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 끼아악! 나으리. 이러지 마세요."
찢어지는 어린 아이의 음성이 들렸다. 본능적으로 아환은 눈길을 돌려 소리가 들린 곳을
보았다. 아환이 눈길이 닿는 곳. 여러 사내가 앉아서 술을 마시는 자리였다. 저녁 무렵이어
서 그런지 두 무리의 사람들이 주점에 자리를 잡고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중 한자리에
서 조금전의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객점의 여점원, 홍홍과 청청 둘중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한 소녀는 탁자
위에서 옷자락을 부여잡고 주저 앉아 사내들의 손길을 피하고 있었으며 다른 한 소녀는 그
밑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사내들에게 애원을 하는 중이었다.
" 어허. 이 어르신께서 검사해 주겠다는데 왠 앙탈이냐?"
" 끼악. 이러시면 안되요. 꺅!"
" 카하하하. 좋아서 그러는 모양이네. 이봐, 왕칠. 나하고 내기하세. 이년의 거기가 잘 조이
는지 안 조이는지. 어디 한번 걸어보게."
" 장영, 그야 아직 아물지 않아 좁은데 구별이 되겠나?"
" 허어! 다 이 형님이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니까. 내 나중에 이년이 명기가 될지 아닐지 알
려주지."
세 사내가 탁자에 여러 술병이 어지럽힌 채 계집아이를 탁자에 올려 놓고는 옷을 벗길려고
하였다. 계집아이는 필사적인 저항을 하지만 성인의 사내의 손길에 그나마 천조가리같은 옷
가지가 찢겨져 나가 아직 여물 기미도 보이지 않는 속살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나마 간신히
손으로 가슴과 사타구니를 가릴뿐 오들 오들 떨면서 눈에 두려움이 가득한채 웅크리고 있었
다.
" 어허! 어르신이 하시는데. 이봐! 주인장!"
" 예..예..부르셨습니까요."
계산대의 주인이 달려와서 굽신거렸다.
" 내 오늘 매상은 잘 올려줄테니 이 계집애를 좀 잘 타이르시오. 결국엔 다 어떤 놈이 차지
할 텐데 뭐 어떻다고 이러는지.."
" 아! 예. 알겠습니다. 청청아! 네 이 쓸모 없는 계집! 어르신께서 잘 보아주신다는데 무슨
짓이냐? 썩 손을 치우거라."
" 주인님. 그렇지만.."
" 어허! 이 객점에서 쫓아낼까?"
계집애는 청청이었나보다. 쫓아낸다는 말에 청청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여기서 쫓겨나면
어찌될지..두해전만 해도 이름있는 명문가에서 곱게 성장했는데..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멸문
의 화를 당한 집안. 간신히 몸을 피한 두 자매는 어렵게 유랑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런 일
을 당하다니..
홍홍이 주인이 나서서 한수 거들자 그 침착하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러더니 뒤로
몸을 돌려 부엌으로 달려들어갔다.
청청은 사내가 손을 잡아서 치우자 힘없이 손을 떼어내었다. 앙상히 말라 뼈가 그대로 드
러나는 상반신, 젖가슴의 발육은 차치하고서도 살점도 없어보였다. 그래도 사내들은 어린 아
이라도 여자라 생각하는지 눈을 번들거리며 장영이라는 사내의 다음 동작을 기대하였다. 사
내는 손을 청청이 하초를 가린 손으로 가져가는 것을 흥미있게 쳐다보았다.
" 악!"
굵은 비명소리. 장영이라는 사내가 손을 움켜잡고 펄쩍 뛰어 올랐다. 그 손위, 팔뚝에 부엌
에서 쓰는 식칼이 반쯤 박혀 있었다. 그 앞에는 홍홍이 눈을 파랗게 뜨고서 사내를 노려보
고 있었다.
" 이 쌍년이!"
왕칠이가 손을 휘둘러 홍홍을 후려 갈겼다.
" 아악!"
연약한 몸체는 한방에 뒤로 훌쩍 날라가 굴렀다.
" 이 잡것들이 어르신에게 칼을 들이대?"
왕칠이 몸을 일으켰다. 다른 한 사내는 흥미있는지 그냥 바라보기만 할뿐, 장영이라는 사내
가 팔에서 칼을 뽑아내고는 눈에 살기를 일으키고는 왕칠에게 씹어 뱉듯 말을 한다.
" 앉아 있게. 내가 하지. 내 오늘 이 년들을 아예 기어다니게 만들어주마."
주인은 홍홍이 칼을 찔렀을때부터 몸을 사시나무떨듯 했다. 이 무리들은 이 장사에서 알아
주는 건달 패거리들로 그 성질이 매우 포악하여 분란을 수시로 일으켰다. 주인도 이들에게
몇차례 폭행을 당한 경력이 있어 그 불똥이 자신에게 튀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장영이라는 사내가 홍홍의 멱살을 잡고 위로 끌어 올렸다.
" 네 년이 이 어르신의 옥체에 칼을 대? 감히 네깟 잡년이 이 귀한 몸에 상처를 냈단 말이
지?"
홍홍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대자 세찬 바람에 날려대는 가랑잎처럼 홍홍의 몸이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 우읍..켁,.."
멱살이 잡혀 기도가 막혔는지 숨을 쉬지 못하고 갸날픈 손으로 장영의 손을 잡고는 새빨개
진 얼굴로 신음을 토해내는 홍홍의 모습이 애처롭다.
" 그만하지."
묵직한 저음이 주점안을 울렸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무슨 말인지 어떤 의도인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말. 장영은 고개를 돌려 말이 들려온 쪽을 쳐다 보았다. 거기엔 장대한 체구의
사내가 등에 시커먼 칼을 메고 형형한 눈빛으로 장영을 노려 보고 있었다.
아환은 조금전까지의 들떴던 기분, 주각을 만남으로서의 흥이 순식간에 싸늘히 식고 밑에
서 부터의 차가운 분노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이는 자신이 어려웠을때의 고난을 받았던
기억이 장영이라는 사내가 어린 계집아이를 건들자 되살아남에 심장이 차가와졌다. 만약 청
청이 어른 계집이라면 나서지 않았으리라. 허나 지금 이 자매의 나이가 아환이 부모를 잃었
을때의 나이와 비슷하여 어떤 교감을 미약하게 느끼고 있는 찰나 이같은 상황에 접하게 되
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장영은 장영대로 평소 자신에게 거스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계집애가 반항을 하지 않나 팔
에 칼을 맞지 않나 성질이 날대로 나있는 상태에서 아환의 말은 불에 기름을 분것이나 다름
이 없었다.
" 이건 또 뭐야! 오호라~ 이 어린 잡것의 기둥서방인가? 오호! 어린 줄만 알았는데 저런 사
내도 받아들이네? 그럼 이 어르신도 받아드릴수 있겠지."
쫘아악!
홍홍의 앞섬이 길게 찢겨져 나갔다. 장영이라는 사내가 한손으로 멱살을 잡은채 다른 손으
로 옷가지를 잡아 찢어낸 것이었다. 홍홍이라고 청청과 다를바 없이 비쩍 마른 앙상한 몸을
갖고 있었다.
" 이런 몸이라도 사내를 받아 들인단 말이지. 어디 밑도 한번 볼까?"
장영의 손이 홍홍의 바지로 다가갔다. 무방비의 홍홍은 작은 동체를 흔들어 대지만 사내의
손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볼수 밖에 없었다.
서걱.
마치 두부가 잘려나가듯 무언가 잘려나가는 소리.
" 우와악!"
장영이 다른 손으로 홍홍의 하체로 가져가던 팔을 움켜잡고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인가 아
환의 칼이 등뒤에서 앞으로 향해져 있고 그 칼의 끝은 홍홍의 바로 앞에 놓여져 있었다. 바
닥에는 장영의 팔뚝이 나뒹굴고 있었다. 아환이 장영의 팔뚝을 잘라낸 것이었다.
창..챙..
두번의 칼을 뽑는 소리가 들렸다. 왕칠과 다른 사내가 장영의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
고는 대경실색하여 칼을 치켜들었다.
" 네놈은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아환이 대답대신 칼을 수평으로 뻗어 왕칠을 가르켰다.
" 덤비지 않을거면 꺼져!"
이미 살(殺)을 행하여서일까? 아환의 눈은 붉은 열기로 번들거렸다. 야수의 눈빛같았다. 사
내들은 주춤거리며 감히 덤비지 못하였다. 아환의 기도에 질린 것이리라. 일개 저잣거리의
건달이 무림인을 상대로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왕칠은 다른 사내와 눈을 맞추고는 장영을 부축하여 객점을 빠져 나갔다.
" 기다려라. 이 놈! 우리 형제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명년의 오늘을 네 제삿날로 만들
어 주지. 거기서 꼼짝말고 기다려라!"
입은 살아 있었다.
아환은 진기를 거두고 도를 갈무리 하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도에 진기를 불러 넣어 도기
(刀氣)를 일으켜 장영의 손목을 잘랐다. 날이 세워져 있지 않는 아환의 병기이지만 아환이
도기가 어려있는 칼은 궤를 달리 하여 예리함과 쾌속함을 보였다. 아환의 좀전에 휘두른 칼
도 건곤형을 기초로 한 초식 아닌 초식 이었다. 무엇인가가 희미하게 잡힐 듯 했다. 아환은
칼을 휘두르며 낮에 어깨로 서공자를 받았을때와 같으면서도 다른 이질적인 그 어떤 것이
마음에 남아있는 것을 느꼈지만 그게 무언지는 알 수 없었다.
" 이봐."
아환이 바닥에 주저앉아 오들오들 떠는 홍홍의 뺨을 손가락으로 툭톡 건드려 보았다.
" 아앗! 예?...예."
아직 놀람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작은 손짓에도 기겁을 하는 어린 계집아이의 몸짓이 안스
러워 보였다. 길게 찢어진 천조각을 이리저리 가슴에 두르고 가릴려는 몸짓을 보였다.
"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사님."
청청이 옆에 다가와 아환에게 예를 올렸다. 청청 역시 찢어 발겨진 옷자락을 여기 저기 묶
고 간신히 몸을 가리고 있었다.
" 되었다. 옷이나 갈아 입어라."
아환은 말을 마치고는 시선을 돌려 주인을 바라보곤 간단한 주문을 하였다.
" 여기 술한병 주시오. 안주는 간단한 걸로 갖다 주고.."
" 예..예. 알겠습니다요. 청청아! 주문 들었지."
" 예. 주인님."
작은 발걸음으로 한걸음에 달려가는 청청,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였지만 밝은 표정을 얼굴
에 가득 담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마치고 아환은 객실로 들어가서 운기조식을 취한후 명상에 잠기었다.
간만에 가져보는 명상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명경지수같이 하여 다스려 보았다. 그러면
서 하나하나 자신의 무예에 대한 생각을 하였다. 건곤형의 구결이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랐
다. 비왕이 제령심안으로 뇌리에 심어준 덕분으로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한구절 한구절 되
새김을 하면서 오늘 자신이 두번에 걸쳐 펼친 건곤형과 대비를 시켜 보았다.
건곤형은 외가의 절세 무예이기도 하지만 알면 알수록 내가의 무예같기도 하였다. 과거 비
왕이 건곤형의 구결을 말해주면서 외가의 무예라 칭한 것은 아마도 건곤형의 초기 수련 과
정에서 외가계열의 수련을 많이 요구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 생각한 것일지도 몰랐다. 일반
내가 무공이 명상과 운기요상 등을 이용한 내기 운용에 그 중점을 두고 있는 것에 비해 건
곤형은 처음부터 신체의 체력을 기르기 위한 수련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달랐다. 아환이 산
서성 상가진에서 살때의 수련 과정이 다 이 건곤형의 구결에 나와있는 수련 방법을 나름대
로 해석하여 수련한 것이다. 다행히도 건곤형의 구결은 일반 비전절예가 암호같은 방법으로
쓰여져 있는 것과는 달리 쉽게 풀어져 있어 아환이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은 수련법을 익힐
수 있었다.
똑..똑..
나즈막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객실안의 고요를 깨뜨렸다.
" 누구시오?"
" 저 여기 점소이입니다."
소곤 소곤하게 계집아이의 음성이 들렸다.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아환은 의
아했지만 곧 허락을 하였다.
" 들어 오너라."
" 예."
문이 열리고 두 작은 인영이 들어섰다. 홍홍과 청청이었다. 아직도 옷을 갈아입지 못했는지
아까의 그 너덜해진 천쪼가리를 몸에 걸치고 있었다.
" 감사합니다. 협사님. 우리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명이 말하는 것처럼 둘이 똑 같이 말을 하였다.
" 되었다. 그런 인사를 받자고 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아직 옷을 못갈아 입었나?"
"... 예. 다른 옷이 없어서."
그럴만도 했다. 이리저리 떠도는 생활에 제대로 옷이야 갖추어 입을 수가 있었을까?
" 그래."
"..."
감사의 말을 전하러 온것만을 아닌듯 싶었다. 예를 올리고 말이 끊기자 두 쌍둥이 자매들
은 서로의 눈치만 보고 쉽사리 입을 열려고 하질 않았다. 왠지 어색한 기분이 느껴지자 아
환은 다시금 눈을 돌려 홍홍과 청청을 쳐다보았다.
" 내게 무슨 할 말이 있느냐?"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마침내 홍홍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 무사님께 청이 있습니다."
" 청? 청이라..무슨 부탁이 있는데?"
홍홍과 청청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더니 둘은 아환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 저희 자매를 제자로 맞이하여 주십시오."
" 헛! 제자? 허..하하하하."
난데없이 제자로 맞아달라는 말에 일순 헛바람을 들이켰지만 박장대소를 터뜨리는 아환.
" 뜬금없이 제자로 맞이하여 달라니 그 무슨 말이냐?"
" 오늘 저녁에 스승님께서 보여준 무위가 실로 대단하여 불한당들이 스승님의 한칼에 출행
랑을 쳤으니 대단하심을 알았습니다. 비록 저희들이 자질을 미천하지만 스승님이 거두어 주
신다면 열과 성을 다하여 스승님을 모시고 무예를 익히겠습니다."
아직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스승이라는 단어부터 썼다. 사전에 준비를 하였는지 또박또박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 게다가 이번 스승님께서 쫓아내신 그 무리들은 이 장사의 불량배들입니다. 이번 스승님께
앙심을 품고 물러갔지만 혹시 다시 스승님을 찾을때 스승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 핍박이 저
희 자매에게로 미치게 됩니다. 스승님께서는 일단 원인을 만드셨으니 그 이후도 책임을 지
셔야할 줄로 사려됩니다."
" 허허..협박하는 것이냐?"
당돌해 보았지만 밉게 보이지는 않았다. 어린 나이에 저렇게 또렷이 말하는 것이 가상스러
웠다. 협박 아닌 협박을 들으면서도 아환은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가져갔다. 오늘 강호에 나
와 주각을 만나서 크게 한바탕 웃고는 마음에 여유가 생긴듯 아환은 미소를 쉽게 지었다.
아환이 홍홍의 말에 반박하지 않은 것은 반박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
을 홍홍이 짚었기에 어린 아이의 깊은 생각에 나름대로 감탄을 하였다.
" 아닙니다. 소녀가 어찌 감히..스승님, 허락해 주십시오."
" 허락해 주십시오."
청청 역시 나서서 아환에게 졸라 대었다. 아환은 난감하였다. 자신의 무예가 남을 가르칠
수준이 된다 아니다는 나중 문제였다. 일단 아환은 목표로 하는 곳이 있었고 머지 않은 시
일 내에 그쪽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 곳은 여자와 어린 아이는 가서는 안되는 곳, 그런데
여자아이라..
" 안되겠구나. 난 지금 제자를 맞이할 수준도 되지 않지만 어딜 가야되기 때문에 너희들을
신경을 써줄수가 없겠구나."
아환의 거절에 둘의 안색이 창백히 변하였다. 하지만 이런 거절도 예상하였는지 순순히 자
리를 물러섰다.
" 예. 내일 아침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스승님."
스승이라는 말은 그래도 꼭 붙이고 물러나는 두 자매. 두자매가 물러간 후 아환은 마음이
다소 무거웠지만 크게 심호흡을 하여 떨치곤 조식에 들어갔다.
다음날 평상시와 같은 아침이 시작되었다.
아환은 아침 식사를 조금 늦게 하였다. 간밤에 건곤형에 대한 고찰을 좀 깊이 하여 아침까
지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문득 해가 뜨는 것을 보고는 식사를 위하여 객점으
로 내려갔다.
막 식사를 시키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을때 객점안으로 일단의 무리들이 들어왔
다. 하나같이 손에 검을 쥐고 객점안을 들어서는 사람들.
" 여기 떠돌이 무사가 누구인가? 앞으로 나서라!"
아직 식전의 아환이 있는 곳은 호남성의 성도 장사였다.
[ 창작] 수라기(獸羅記) 35번째 올림 창작야설
(3)
아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객점안에는 식사를 하는 사람이 자
신외에 한 탁자 더 있었지만 그들은 상인으로 보이는 인상이었다.
아환은 이들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 시선을 그 무리들에게 돌렸다.
" 나를 찾은 것이오?"
십여명 정도의 사람들로 구성된 무리들, 뒤에 있는 두명의 여인과 나머지는 검과 각종 병
기를 들고 흉흉한 기세로 아환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중 앞에선 사내가 아환의 말에 거친
음성으로 대꾸를 하였다.
" 네놈이 바로 그 떠돌이 무사인가?"
" 그 떠돌이 무사가 도대체 누구요?"
" 이런 괘씸한..소저, 이 놈이 그 놈입니까?"
" 예, 바로 저 인간이예요. 저 놈이 서공자에게 비겁한 술수를 부려 서공자에게 부상을 입혔
어요. 맞아요. 저놈이예요."
아환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 은소저라 불리운 여인이었다. 새파랗게 눈에 독기를
띄고 아환을 노려보며 앙칼진 음성으로, 가늘은 손가락을 부르르 떨면서 아환을 가리키고
있었다.
" 혹시 저 여자가 아는 그 떠돌이 무사라면 나라고 봐도 무방하오."
그제서야 아환은 이들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 서공자라는 오만한 청년
에게 부상을 입혔으니 그 집안에서 가만히 있지 않고 자신에게 복수를 하려 온것임을 알았
다.
" 그대들은 서공자의 복수를 하러 온 것이오?"
" 네놈이 서공자님을 상하게 하였으니 어서 서가장으로 가서 네놈의 죄를 밝히고 그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자! 우리와 함께 가자. 순순히 따르면 정상을 참작하여 중벌은 면하게 해주
마."
" 나는 아직 아침식사가 끝나지 않았소만.."
" 이런..감히 네 놈이 우리에게 반항을 하는 것이냐? 정말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모양이로
구나."
챙!
사내가 노기가 치솟은듯 이마에 내 천(川)자가 그려지며 허리춤에서 검을 빼어들었다.
" 어서 당장 일어나지 못할까. 네놈이 정녕 여기서 뼈를 묻고 싶은가 보구나."
아환은 사내가 검을 뽑던 말던 신경을 쓰지 않고 앞 탁자에 있는 음식을 마저 드는데 열중
을 하였다. 하지만 신경을 앞의 사내가 들은 검에 온통 빼앗겨 있었다. 태연한 척은 하였지
만 이 무리들과의 결과를 예견할 수가 없는게 그 이유였다. 아환이 이 무리들이 들어왔을때
그리고 이 무리가 자신을 불렀을때 그 무리를 쳐다보다가 내심 긴장을 하였다. 무리들중 몇
몇의 기도가 범상치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앞에 서서 아환을 윽박지르는 이 사내는 별로
신경을 쓸 것이 없다하지만 그 뒤의 고수의 품격이 느껴지는 두어명은 경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내는 검을 아환에게 막 휘두르려 하였다. 그 순간,
" 잠시 참으시게."
사내의 뒤에서 하얀 선이 뻗어나와 사내의 검을 멈추게 하였다. 그 하얀 선은 다름아닌 한
남자의 손이었다. 손을 뻗쳐 사내를 멈추게 한 사람은 훤칠한 외모를 가진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일견해도 절세의 준미한 용모의 사내, 여성의 눈매와 흡사한 고운 눈썹과
눈꼬리에 코는 뭉툭하기보다는 오똑하면서도 일자로 솟아올랐고 입술은 두툼하여 굳건한 기
상을 보여주었다. 딱벌어진 어깨에 육척이 넘는 일반 사람들보다는 조금 큰 신장에 매화가
수놓아진 하얀 비단 장삼을 두르고 있었다.
" 식사를 마칠때까지 기다리지."
하얀 옷을 사내가 말을 꺼내자 감히 그 말에 대꾸할 생각도 못하고 처음 아환에게 말을 건
넸던 사내는 검을 갈무리하며 머리를 숙이고 뒤로 물러섰다.
아환은 새로 앞에 서있는 사내가 자신으로 하여금 긴장을 불러일으키게 한 사람들중 하나
임을 알았다. 아환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식사시간이 더욱 길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
연한 일, 그럼에도 무리들은 누구하나 그런 아환을 제지하질 않고 앞에 서있는 잘생긴 사내
의 다음 동작만 기다렸다.
이윽고 아환이 식사를 다 마치고 차를 한잔 들고 입가를 가시자,
" 식사를 마쳤소?"
잘생긴 사내가 아환에게 묻는다. 별로 분노하거나 기타 다른 감정이 실려 있지 않으나 듣
기에 따라선 오히려 공포를 느낄 수도 있는 기묘한 음색이었다. 게다가 사내는 꽤 기세를
그 말에 담으려 했는지 한 마디 문장에서 느껴지는 뜻외에 귓가에 울릴때 심기를 자극하는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었다.
" 그렇소."
" 그럼 이제 우리를 따라 서가장으로 가시겠소?"
" 내가 서가장에 왜 가야하오?"
" 그대가 서충을 부상 입혔잖소."
" 내가 서공자라는 사람을 부상입힌 것때문에 그러오?"
" 네놈이 비겁한 수법으로 서공자님을 해했잖아! 이 천한 놈! 출신이 비천하니 하는 짓이
다 그모양이지."
앙칼진 음성이 잘생긴 매화 옷의 사내와 대화하는 중에 터져나왔다. 은소저라는 여인, 아환
의 행태가 영 맘에 들지 않는 듯 쌍심지를 켠 두 눈에 독기가 서려 있었다. 이 은소저라는
여인은 서공자, 서충의 정혼자로서 혼례의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차에 서충이 부상을 입어
거동을 하지 못하게 되자 마침 서가장에 들린 서충이 속한 문파인 화산파의 사람들을 대동
하여 수소문한후 아환의 소재를 파악하고 이리고 곧장 온것이었다.
" 그대도 그렇게 생각하오?"
아환이 잘생긴 사내를 보고 물어보았다.
" 그렇지 않소. 비겁한 수법은 아니라고 보오. 상당히 고강한 수법인듯 사료되오. 얼핏봐서
는 내가중수법같기도 한데..내가 궁금한 것은 왜 당신같은 고수가 서충같은 자에게 손을 과
하게 썼는가 하는 거이오."
" 나도 과하게 쓸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소. 단지 그 무예를 강호에 나와 처음펼치는 것이기
에 그런 결과를 가져온 것 같소. 허나, 그 서공자라는 인간이 오만방자하고 내 절친한 벗을
상하게 해서 나섰던 것이오. 그대들 역시 비슷한 이유로 나를 찾은 것이 아니오?"
" 그렇소."
" 그러면 해결 방법 역시 칼이 말해줄것 같지 않소?"
" 그렇다고 보오."
" 잠시 기다리시오 내 칼을 갖고 오겠소."
" 그러시오. 기다리고 있겠소."
아환이 내실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보고 은소저가 초조한 기색으로 잘생긴 사
내에게 한 마디 물어보았다.
" 저 놈이 도망가면 어쩌죠?"
" 그러지는 않을게요."
" 아주 혼내주셔야 해요. 감히 저놈이 서공자를 부상을 입혔어요. 아예 다시는 이런 일이 발
생하지 않도록.."
" 은소저!"
백의사내가 중간에서 말을 끊는다. 힘이 실린 어조에 은소저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 화산의 일이요."
화산(華山), 서악이라 불리우는 중원의 오악중의 하나인 명산. 하지만 이 사내가 말하는 화
산은 중원의 구패 중의 하나인 화산파를 일컬음이다. 혹자는 화산검파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심오막측한 각종 신공절예에 정명한 문파의 기세로 인하여 오파일방의 위세를 능가할 정도
의 세력을 갖춘것으로 평가되었다. 근래에 와서 오파에 구패중의 사정(四鼎)을 더해 구대문
파라고도 한다.
은소저는 사내의 말에 말그대로 찍 소리도 하지 못했다. 서가장이 강서성에서 제법 이름을
떨치고 자신의 부친이 장문을 맡은 은검문이 장사에서 꽤 이름을 떨친다고 하나 어찌 화산
에 범접할 수 있으리요. 또한 준수한 외모에 훌륭한 배경을 지녔고, 가진 무예의 성취도가
높은 무림의 선두격인 후지기수인 사내의 정체를 알고 나면서부터 서공자보다는 이 백의의
사내에게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곧 아환이 등에 자신의 거도를 메고 주점으로 다시 나섰다.
" 앞장 서시오."
백의의 사내가 몸을 돌려 객점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그와 함께 객점에 온 여러 사람들
이 뒤따랐다. 아환은 묵묵히 그 뒤를 따르다 문득 기이한 향기가 코를 간지럽히는 것을 알
았다. 상쾌하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정신이 몽롱하고 가슴이 울렁거리다고 말해야 할까? 뭐
라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인세에 맡기 힘든 천상의 향기라 할 기향이 주위에 퍼져있음에
아환은 그 향기의 발산지로 고개를 돌렸다.
그 쪽에 한 여인이 아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었다. 비록 면사로 얼굴의 눈밑을 가리
고 있어서 그 용모는 제대로 볼수 없었지만 그 눈을 바라보는 순간 아환은 가슴이 떨려옴을
느꼈다. 가히 절세적인 아름다움이었다. 투명하다 못해 눈이 시릴정도의 눈빛을 발하고 있는
그림같은 아니 그림이라도 저리 표현할 수 없는 극치의 미가 숨막힐 듯이 뿜어져 나왔다.
단지 눈만을 보여도 저 정도인데 얼굴을 전부 내비치면 가히 경국(驚國)의 색(色)을 나타내
리라.
가까스로 아환은 그 여자에게서 시선을 돌리곤 백의 사내의 뒤를 쫓아서 나갔다. 아환이
밖으로 나서자 잠시 눈을 빛낸 면사 여인은 하늘빛의 비단 옷을 흩날리며 미끄러지듯 아환
의 뒤를 따랐다. 백의 사내와 같이 온 일행이었다.
넓은 공터.
아환은 백의 사내가 걸음을 멈추자 그와 이장여의 거리를 두고 신형을 멈춰 세웠다.
장사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외곽으로 벗어나자 금방 눈에 띈 장소였다. 그리 외지지 않
은 장소여서 그런지 드문드문 농부며 나뭇꾼들의 왕래가 보였다.
" 이 쯤이 어떠시오?"
" 괜찮소."
" 나는 화산의 목영근 이라 하오. 이른 시간이지만 무례를 범한 것에 사과를 드리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서충은 화산의 제자, 그의 윗사람으로서 그 진상을 파악하지 않을 수 없소."
" 이해하오. 화산의 고명은 많이 들어왔소. 허나, 그 영예로운 이름에 먹칠하는 이들에 대해
서는 지나치게 관대하구려."
" 무슨 말인지는 알겠소만 이는 화산이 처리할 일, 무사는 더이상 화산을 욕되게 하지 마시
오."
기실 서가장은 금전적으로 화산에 적지않은 도움을 주고 있는지라 화산파는 서가장의 요구
를 묵살할 수 없어 이리 나서게 된것이다. 우연한 일로 화산의 정예라 할 수 있는 몇몇이
이 곳 호남성에 마침 오게 되었고 그 시점에 서충이 아환에게 부상을 입어 서가장주인 서충
의 아버지의 부탁으로 나서게 되었지만 목영근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화산에서 서충의 사
람이 경솔하고 오만하며 포악한 성격을 들어서 알고 있어 별로 가깝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어 안면이 한두차례 있긴 하지만 서충과 친교를 나누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은 무림 칠룡중의 일인. 손꼽히는 후지기수로서 이름을 떨치는 그가 삼류에 가까운 이
들과 사귀고 싶은 마음은 눈꼽만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나선것은 서충의 부
상에서 아환의 무예를 어느 정도 볼수 있었고 꽤 고강한 무예라 추측되어 호승심에 나선것
도 없지 않았다. 또하나 그의 뒤에는 그가 절실히 사모하는 여인이 지켜보고 있음도 한몫을
하였다. 각설하고..
" 칼을 드시오."
스르릉.
아환이 시커먼 거도를 등에서 빼어 비스듬히 자신의 앞에 세웠다. 목영근은 그 거도가 일
반 칼이 아님은 감각적으로 알수 있었다.
창.
맑은 금속성과 함께 목영근도 검을 빼내었다. 붉은 기운이 은은히 검을 휘감고 그 예기가
예사의 병기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목영근은 검을 빼내어 곧추세우곤 검끝을 아환에게로 향
하였다. 아환은 기세가 자신에게 밀려옴에도 그 자세를 풀지 않았다.
한동안의 대치 상태가 지속되었다. 목영근은 무형의 검세를 아환에게 흘려 보냈음에도 아
환이 미동도 없이 그것을 받아넘기자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다시금 확인하고는 검신을 슬쩍
돌려 자신의 옆으로 보낸다 싶더니 검을 뻗어내었다.
" 헛!"
주위에서 그 광경을 보던 화산의 무리들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목영근이 선공을 펼치다니..
근래에 들어 한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목영근은 화산내에서도 비무나 대련을 할때 좀처럼 선공을 펼치는 경우가 드물었다. 목영
근의 무위도 무위이지만 그의 배분이 왠만한 문파의 장로급에 버금가는 것도 이유가 되었
다. 그러한 목영근이 먼저 검을 떨쳤다. 이는 그가 그만큼 긴장을 한다는 의미일까?
붉은 빛이 일직선으로 아환을 향해 날아갔다. 첫 출수여서인지 별다른 초식이 없이 내력을
운기하여 검을 내뻗은 형상, 허나 그 위력은 만만치 않았다.
캉.
아환이 조금 옆으로 칼을 움직여 붉은 빛을 튕겨냈다. 붉은 빛은 검은 칼에 막혀 뒤로 물
러서는 듯 하다가 재차 아환을 향해 짓쳐들었다. 이번에는 화려한 붉은 빛이 허공에 흩어지
며 아환을 향해 다가섰다.
아환은 이 초식이 눈에 익은 초식이었지만 서충과의 손속을 나눌때와는 천양지차임에 방심
치 않고 상체를 옆으로 틀며 도를 옆으로 크게 베었다. 목영근은 자신의 이십사수매화검의
매화도현의 초식이 한번의 칼의 휘두름에 위력을 잃고 스러지는 것을 보고는 어지러히 검을
흔들며 칼의 기세를 막았다.
" 과연.."
짤막한 감탄사가 잘생긴 남자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목영근은 서충의 상세를 보고 고강한 무위를 가진 상대임을 예측하였으나 상대는 생각보다
더 상승의 경지에 있는 것 같았다. 목영근은 자신의 홍예검(紅銳劍)을 곧추잡고 내력을 끌어
올렸다. 홍예검의 붉은 빛이 한층 강화되자 목영근은 서서히 자신의 검을 아환에게 밀어내
었다.
칠절매화검, 이십사수매화검의 상위무예로 화산의 진산절학이 홍예검의 붉은 빛에 묻혀 펼
쳐졌다.
" 매화현현(梅花現現)"
점점히 허공에 매화가 그려졌다. 검기를 뿜어내어 허공에 유형의 기세를 펼쳐내며 목영근
은 아환에게 접근하였다. 상당한 내력을 담아내는지 신중한 표정으로 검을 펼치는 목영근.
아환은 호천검을 자신의 도에 맞추어 변화시킨 수법으로 허공의 매화를 찍어내었다. 하나
하나의 매화의 잔영이 허공에서 스러졌다.
" 매화수운"
물결치듯 붉은 검기가 밀려왔다. 아환은 역공을 취하지 않고 검의 기운을 도로 흘려보내었
다.
카카카캉.
몇번의 금속성이 아환의 도신에서 울려퍼졌다. 홍예검이 천하의 보검이라면 아환의 칼 역
시 명칭은 없지만 그에 못지 않은, 오히려 더욱 뛰어난 기물임에 조금의 흠집도 나지 않고
홍예검을 막아내었다.
목영근의 허리아래가 뿌옇게 변한다 싶더니 목영근은 소요보를 펼치며 물흐르듯 아환의 주
위로 다가들어 연속하여 검을 펼쳤다. 아환은 그 검 하나하나를 칼을 미묘하게 틀어 방어해
내었다.
캉..창..카강..
수차례의 선공에도 목영근은 자신이 기선을 잡지 못하자 홍예검을 크게 휘둘러 아환을 밀
어내고는 자신도 뒤로 훌쩍 물러섰다.
" 대단하시오. 무사의 존함을 여쭈어도 되겠소?"
" 주환이라 하오."
" 혹시 무림의 별호는 없으시오?"
" 무림에 갓 나온 삼류무인이 무슨 별호가 있겠소? 그냥 주환이라 부르시구려."
" 주소협. 내 잠깐이지만 소협과 검을 나누어 보고는 소협의 무위가 예사가 아님을 충분히
알았소. 허나, 처음부터 화산의 이름을 걸고 나선 일, 예서 멈출 수는 없는 일이오."
" 화산의 명예, 내 잘 알지는 못하겠소만 이해는 되는 구려."
" 자! 그럼 다시 가겠소."
목영근이 검을 굳건히 움켜잡고는 천추부동의 자세로 신형을 바로 세웠다. 아환을 잠시 응
시하던 목형근, 쾌속하게 홍예검을 뻗어내었다.
" 매화사견"
여태와는 차원이 다른 검초가 펼쳐졌다. 불그스름한 빛을 내던 것이 이제는 선명하다 못해
핏빛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짙은 광채를 뿌려내었다. 핏빛의 광채가 아환에게 날아들자 아
환은 칼을 들어 그 광채의 끝을 마주쳐 갔다. 건곤형의 세(勢). 무형의 웅장한 기운이 도세
로 펼쳐졌다.
목영근은 홍예검을 휘두르며 아환에게 근접하다 거대한 힘이 몰려드는 것을 감지하고 검을
휘둘러 검기를 일으켰다.
휘휘휘휘잇..
붉은 기운이 목영근의 주위를 맴돈다 싶더니 이내 붉은 막이 목영근의 주위에 둘러졌다.
" 아! 검막."
청아한 음성이 들려왔다.
검기로서 마치 막을 두르듯 검객을 보호하는 환검의 극고한 경지가 목영근의 검에서 펼쳐
졌다.
아환의 도세가 목영근의 검막에 부딪혔다.
츠츠츠츠..
쇠가 갈리는 듯한 괴성이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아환은 몸을 빙글 돌리며 도를 재차 휘둘
렀다. 한겹의 기운이 건곤형의 세에 더해졌다.
카카카카..
괴성이 더욱 커지며 날카롭게 변하였다. 목영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검막으로서 도세를
막고 있지만 상당부분의 검막이 찢기고 무너졌다. 상당한 내력을 쏟아부었음에도 도세를 막
지 못하고 위험에 처한 목영근.
" 매화선."
상쾌하고 청아한 음성이 다시 한번 장내에 들리는 가 싶더니 옆에서 푸른 기운이 아환의
도세를 막아갔다.
츠파파팟!
아환의 도세가 사라졌다.
목영근은 뒤로 세걸음 물러나서 발목까지 땅에 박힌채로 입가에 핏줄기를 보이고 있으며
그 목영근의 앞에 하늘색 비단 옷이 보였다.
주점에서 아환의 마음을 울렁이게 한 기향(奇香)의 여인이 어느새인지 푸른 빛이 감도는
중검을 빼들고는 목영근의 앞에 서있었다. 아직 도의 여파때문이지 하늘색의 옷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의 모습을 방불케 했다.
" 사매..우욱!"
목영근은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여인을 부르려다 핏덩이를 토해내었다.
" 조식을 취하세요. 사형."
나즈막한 목소리. 아환은 기분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영롱하거나 구슬이 굴러가는 듯
한 음성은 아니지만 사람의 귓가를 파고 들면서 차분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목소
리였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목영근은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고 뒤
로 물러서서 가부좌를 틀고는 자리에 앉아 운기요상을 하였다.
" 대단한 무위시군요."
" 소저야말로."
" 왜 아직까지 그대같은 무사가 이름이 나있지 않은건가요?"
" 내 초행이라 말했잖소. 그건 그렇고 이제 소저가 나오는 차례요?"
" 그러시길 바라나요?"
" 허참! 아침부터 찾아와 윽박지르지 않나 칼을 나누자 다른 사람이 나와서 딴 얘기를 하지
않나 나보고 어쩌라는 거요? 그대와 손을 나누자는 거요? 그리고 소저가 물러서면 저 뒤의
다른 사람이 또 나와서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요? 그게 화산이요?"
" 언행에 주의를 해주시기를 바래요. 소녀는 동문의 형제가 위기에 처하자 잠시 나선것 뿐
이예요."
" 그럼 왜 저 친구는 저기 앉아 있소?"
" 그것은 내상을 입어 더이상 대전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지요."
" 그렇다면 저 친구가 내상을 완치할때까지 난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거요?"
" 그것은.."
아환의 무뚝뚝한 말에 여인은 대꾸를 하지 못하였다.
" 좋소. 그럼 그대와 한번 겨뤄 봅시다. 허나 내가 그대와 싸워서 얻는 것이 무어요?"
" 무얼 원하시나요?"
여인의 눈이 빛났다.
" 그 말은 무엇이든지 원해도 된다는 말이오?"
" 그건 아니예요."
" 그럼 왜 그리 대답한 거요."
" 그것은.."
여인, 악서령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말을 할수록 이 아환이라는 자에게 말려들어간
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화 중의 일인인 자신에게 여태까지 이렇게 대한 이는 없었다. 더군다
나 남자라면 더욱 그러했다. 그 누구라도 자신의 앞에서는 공손하였고 자신에게 잘 보일려
고 하였다. 그러나 이 사내는 틀렸다.
낯선 충격에 악서령은 검을 든채 아무말도 않고 서있었다.
" 저 친구가 상처가 다 나으면 다시 찾아오라 하시오."
아환은 칼을 거두곤 몸을 뒤로 돌렸다.
" 멈춰요."
여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커지고 날카로워졌다. 무시당한 느낌이 들었다. 악서령은 아환이
뒤를 돌아 돌아가려 하자 분(憤)기가 치솟아 오름에 다짜고짜 아환의 발걸음을 잡았다.
" 또 뭐요?"
" 그대는 나와 대련할 용기가 있나요?"
" 대련할 용기?"
아환이 고개만 돌려 악서령을 빤히 쳐다 보았다. 악서령의 눈에 은은한 노기가 보였다. 무
엇인가 자신의 뜻과 맞지 않음에 화가 치밀은 모양이었다.
" 아니, 난 그런 거 없소."
아환이 고개를 다시 돌리고 몇발자국 떼었다.
" 멈추라고 했어요."
음성이 뽀족해졌다. 악서령의 교영이 스르르 미끄러지듯 다가와 아환의 앞을 막아섰다.
" 왜 그러는 거요. 난 그런 용기 없다고 했잖소."
" 그대가 사내라면 나와 검을 나누어 봐요."
아환이 앞을 막아선 악서령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무심한 시선인 듯하지만 그 앞을 막아
선 악서령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사내의 눈길이 자신의 전신을, 속마음을 낱
낱히 훑어 보는 것같았다.
" 그럼 여기의 남자는 다 그대와 싸워야 하는 것이오? 저기 저 친구들도?"
" 그런 뜻이 아니란 것쯤은 잘 알텐데요? 나는 그대가 나와 대련을 회피하지 말기를 바래
요."
" 조금전에 저 목가 사내와 싸우고 그대와 또 싸우는 것은 옳다고 생각하시오?"
" 그것은 아니지만..그대는 부상을 입지 않았잖아요."
" 그것을 어찌 장담하시오? 내가 금방 피를 토하고 죽을지도 모르잖소?"
" 그것은.."
도통 말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 그대와 싸운다면 내게 어떤 이득이 있소."
" 그대는 무얼 원하는가요?"
" 이런..이런..또 아까와 같잖아. 난 그만 가봐야겠소."
아환이 고개를 흔들며 악서령을 비켜갈려고 하였다. 그러자 무의식적으로 악서령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될 말이 튀어나왔다.
" 좋아요. 그대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주겠어요."
" 사저!"
" 사고님"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경악성.
말을 해놓고도 아차 싶은지 교수를 들어 자신의 입을 가리는 악서령. 아환은 옆으로 머리
를 돌려 악서령을 정시하였다.
" 그말에 책임을 지겠소?"
이왕 뱉은 말. 자신의 강호에서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줏어담을 수도 없는 실언이었다. 하지
만 자신의 무예에 자신이 있는 악서령은 잡념을 접고는 아환의 말에 순순한 응대를 하였다.
" 예. 책임지지요. 그러니 그대는 칼을 뽑아요. 그대신 그대가 진다면 화산으로 가서 그대의
죄를 청하는 것을 반대의 조건으로 하죠."
아환은 몸을 돌려 악서령을 정면으로 응시하였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쳐 불꽃이 튀
길 정도.
" 좋소."
크르르릉..
아환의 칼이 울음을 터뜨리며 아환의 등뒤에서 빼어졌다.
얼마간의 대치 상태가 펼쳐졌다.
짙은 검은 색으로 주위를 어둡게 흐리는 아환의 패도와 악서령의 푸른 빛이 영롱한 청하검
(靑霞劍)이 서로를 겨눈채 팽팽한 긴장감을 뿌려내었다.
' 일초. 순식간에 결판을 내야한다.'
아환은 내심 마음을 정하였다. 화산의 검은 서충과 목영근의 검초에서 보았듯이 쾌검보다
는 환검을 위주로 하고 있다. 아환의 무예는 쾌(快)와 패(覇)를 위주로 하고 있어 환과는 거
리가 있어 오래 끌수록 자신이 불리할지도 몰랐다.
아환은 한걸음 앞으로 전진했다. 악서령이 흠칫하며 한걸음 물러섰다. 아환이 몇발자국 앞
으로 나서면 악서령은 그만큼 뒤로 후진을 하였다. 그러길 몇차례 결국은 공터의 끝쪽에 악
서령의 발뒤꿈치가 닿았다. 악서령은 더이상 뒤로 물러설틈이 없자 검예를 펼치기 위한 기
수식으로 자세를 바꾸었다.
그순간, 아환의 눈이 빛나는가 싶더니 재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왔다.
" 앗!"
급히 몸을 뒤틀며 악서령은 청하검을 비스듬히 아환의 어깨쪽으로 베어내었다. 충분한 내
력을 싣지 못한 청하검을 아환은 도를 치켜들면서 쳐내고는 손바닥으로 빠르면서도 중하지
않게 악서령의 복부를 쳐내었다.
퍽!
" 우웃!"
강호의 행보는 악서령이 비록 월등히 많았을지 몰라도 실제의 생사의 결투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악서령이었다. 무위는 목영근보다 훨씬 높을지 모르나 아환 보다더 심한 초짜 무
림인인 악서령은 순간적으로 복부를 얻어맞자 앞이 노래지며 뜨거운 핏물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악서령은 앞뒤 가리지 않고 검을 어지러히 뿌려내었다.
아환은 한 초 한 초 최소한의 동작으로 흘리면서 더 악서령의 가까이 다가가서 몸을 숙이
고는 풍도십사식 중의 풍영섬의 권격으로 악서령의 정강이 부분을 후려쳤다.
파박!
" 꺄악!"
악서령의 발이 중심을 잃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아환은 허공에 뜬 악서령의 허리춤을 잡고
는 건곤형의 화(化)의 기법으로 밑으로 내 던졌다.
퍽..
갸날픈 하늘 빛의 인영이 개구리가 땅에 펼쳐지는 것처럼 땅에 쭉 펴졌다. 그 위에 아환의
커다란 발이 더해졌다.
" 저저.."
" 저..저런 무지몽매한 놈! 네 이놈. 그 발을 치우지 못하겠느냐?"
장내의 광경. 아환이 우뚝 칼을 앞에 세운채 꼿꼿이 서있었다. 그런 그의 발밑, 악서령이
등이 아환의 커다란 밟에 밟힌채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아직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는
지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였는지 버둥거리고 있었다.
" 당장 비켜서거라. 이 놈!"
" 내 저놈을 당장.."
챙..챙..챙..
여기저기서 칼을 뽑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에 서있던 화산의 무인들이 하나같이 검을 빼들고는 시퍼런 사슬로 아환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떤 이는 금방이라도 달려들것 같이 검을 휘둘러대는 자도 있었다.
" 물러서시오."
아환이 칼을 빼어서는 자신의 몸쪽으로 끌어당겨서 땅에 다시 내려꽂았다.
" 헛!"
" 네..네 놈이..
" 이런..천하에!!"
아환이 칼을 꼽은 장소는 다름아닌 땅에 엎어져 있는 악서령의 목덜미에서 두치가량 떨어
진 곳이었다. 화산의 무인들 중 일부는 아환이 악서령의 목에 칼을 꽂는 줄 알고는 거의 심
장마비 직전까지 간 인물들도 있었다. 그만큼 지금 아환이 취하고 있는 자세는 화산의 무인
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아니 꿈을 꾸는것 자체도 불경스럽게 여기는 그러한 자세였다.
고귀한 화산의 자랑이자 뭍 남성들의 이상형. 악서령을 짧게 형용하자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런 악서령이 알지도 못하는 삼류무사의 발아래에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이 화산의
무인들로 하여금 극도의 치욕스러움과 분노를 야기시켰다.
" 꺄악!"
아환의 발에 조금 힘을 주자 악서령의 작고 붉은 입술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 물러서라 했다."
나즈막한 목소리를 깔아 흘리는 아환. 그에 화산의 무사들은 저마다 아환에게 욕을 해대지
만 어쩔 수 없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아환은 허리를 굽히고 손을 뻗쳐 악서령의 삼단결의 곱디 고운 머릿결을 거친 손마디로 움
켜잡고는 위로 치켜들었다.
" 꺄아아악!"
찢어지는 비영이 들렸다. 악서령은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릿결을 움켜쥐고 들어올리는 아환
의 손을 잡고는 두발이 땅에서 들려 바둥거리는 채로 고통스러운 비명을 흘렸다. 머릿가죽
이 벗겨나같 것같은 극심한 아픔이 번져나갔다. 고통이라고는 태어나 거의 경험해보지 않은
악서령에게 너무나 갑작스러운 강한 고통이 밀려들어왔다.
퍽!
아환은 손바닥을 세워 악서령의 머리뒤쪽 부분을 슬쩍 가격하였다.
" 윽!"
외마디 비명과 함께 정신을 놓는 악서령.
화산의 무사들이 욕을 해대거나 칼을 휘두르는 것은 전혀 아환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 따라오면 이 계집을 죽일테다."
냉랭히 내뱉고는 아환은 뒤로 몸을 돌리더니 땅을 박차고는 뛰어 올랐다.
" 멈춰라! 우욱...웩!"
운기요상을 하면서 상세를 치료하던 목영근이 급기야 아환이 악서령을 데리고 자리를 뜨자
진기를 억누를 새도 없이 입을 벌리고 말을 하다가 내기가 역류를 하여 입에서 분수처럼 피
를 토하였다.
" 사형!"
" 사숙님!"
화산의 사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외치며 급히 목영근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4)
촤악!
뼈가 시리도록 맑고도 차가운 물이 끼얹어졌다.
" 으음.."
나즈막한 신음성. 작은 동체의 뒤척임.
반짝.
샛별을 박아놓은 듯이 반짝이는 눈망울이 살그머니 드러났다. 하나 티없이 맑은 눈망울. 커
다란 눈이 뜨여진다 싶더니 또르르 움직였다. 왠지 주위가 낯설다는 것을 알고는 눈을 이리
저리 굴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더니 상체가 바닥에서 튕겨지듯이 솟아올랐다.
" 엇! 여기는.."
오똑한 콧날은 깍아지른듯 얼굴의 가운데에서 솟아올라 있었고 자그마하면서도 빠알간 입
술의 살은 금방이라도 붉은 물이 조르르 흘러내릴것 같았다. 갸늘은 목선에 물기에 젖어 하
늘빛의 비단 옷이 몸에 달라붙어 여체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봉긋이 튀어 나온 젖가슴이며 잘록한 허리..그리고 다리가 갈라지는 자욱까지 은근하게 비
추고 있었다.
여인, 악서령은 고개를 돌리다가 어두운 곳 한쪽에 앉아있는 커다란 물체를 보았다.
" 누구..세요?"
떨리는 음성.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 깨어났나?"
그제서야 어둠이 익숙해지고 그 인영의 용모가 악서령의 눈에 차츰 차츰 선명하게 들어왔
다.
" 헛! 당신은.."
아환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고 그의 얼굴이 익숙하다고 느끼면서 머리에서 느껴지는 아픔,
이어서 악서령의 머릿속에 얼마전의 비무가 떠올랐다. 그리고는 자신이 아환에게 맞아서 정
신을 잃은 것도..
" 그대가 날 이리로 데려 왔나요?"
" 그래."
" 제 얼굴의 면사를 벗긴 것도 그대인가요?"
좀 침착해졌는지 음성이 차분해졌다.
" 그래."
" 왜 이리로 날 데려왔죠?"
" 약속을 기억하나?"
" 약속?"
아환의 대답이 아닌 반문에 무슨 말이냐는지 의아한 기색을 보이는 악서령.
" 무엇이든지 한다고 했다."
" 무엇이든지...아!"
그때야 기억을 하는 악서령이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떠올리고 지금의 상황을 깨닫자 안색이 창백해졌다.
" 설마 당신은 .."
" 약속을 지킬 것인가?"
" 내 몸을 요구할 것인가요?"
악서령이 고운 얼굴에 표정을 굳힌채로 아환을 직시하며 되물었다. 고혹적인 자태가 악서
령에게서 배어나왔다. 물기에 젖어 검은 머릿결이 여기저기 뭉쳐져 있었고, 옷자락이 흐트러
져 있지만 숨막힐 정도로 매혹적인 아름다움은 감추질 못했다.
" 다시 한번 묻겠다. 약속을 지킬 것인가?"
아환의 음성이 차가와졌다. 악서령은 잘 세워진 칼날이 다가드는 기분을 느꼈다. 금방이라
도 자신의 몸을 두쪽 낼 것 같았다. 무서웠다.
" 약속은...지키겠어요. 하지만 제 몸말고 다른 것을 요구하면 안되나요? 돈이 필요하다면 돈
을 드릴께요. 만약 여자가 필요하다면......"입술을 꼭 깨물고, 말을 잇는다.
" 다른 여자들을 취하게 할 수도 있어요. 제발 절 이대로 놔주세요. 충분한 보상을 할께요."
다른 여자를 취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아환의 심기가 뒤틀렸다.
" 내 요구는.."
아환이 잠시 말을 끊었다.
" 네가 내 시비가 되는 것이다."
시비! 아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악서령의 안색이 밀납처럼 창백해졌다. 시비라니! 한
번의 육체를 취하는 것도 아닌 영원히 귀속되는 시비라니! 감히 자신을 시녀로 취하겠다니!
악서령은 자신이 잘못들었나 싶었다. 그러나 아환의 얼굴에서 그 말이 잘못들은 것도 아니
고, 농담으로 한 말도 아닌 사실이고 현실이었다.
" 말..말도 안돼! 말도 안돼! 그건 말이 안돼요!"
정신없이 머리를 흔들면서 주저앉은 상태에서 뒤로 물러서는 악서령. 머릿속은 텅비어 '시
비'라는 단어만이 맴돌고 있었다. 무림사화중의 일인인 자신에게 시비라니!
" 왜 말이 되지 않는가? 그렇게 네가 특별한가?"
"..."
" 너는 소중하고 다른 사람은 발가락의 때만도 못한 존재인가? 네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
그깟 육체를 보존하기 위해서 희생할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그토록 잘났는가? 그래! 그 고
귀한 육체를 한번 뽐내보아라."
쫘아악!
아환이 성큼 다가오더니 비단 옷을 잡고는 좌우로 길게 찢어내었다.
" 끼악!"
악서령이 찢어지는 옷을 움켜잡고는 왼손으로 일장을 쳐내었다. 허나 조금의 내공도 실려
있지 않은 헛손질에 불과할뿐 탄탄한 아환의 육체에게 조금의 타격도 되지 않았다.
아환은 악서령이 반항을 하던 말던 악서령의 옷을 찢는 것외엔 다른 것을 신경쓰지 않았
다. 물에 젖어 잘 찢어지지 않았지만 외가무공을 단련하기위해 외적인 근력을 기른 아환은
금새 내고만을 남긴채 악서령의 옷을 다 치울 수 있었다.
아환의 눈에 분노의 기색이 번들거리는 열기로 변한다 싶더니 욕정으로 그 색을 달리 한
다. 악서령은 오들오들 떨면서 두손으로 앞가슴을 가린채 쪼그리고 앉아 아환을 애원하는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 제발..제발..그냥 절 놔주세요.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이대로 놔주시면 다른 어떤 일이
라도 할께요. 제발..제발..끼아악!"
아환이 가차없이 내고를 벗겨내어 기어이 악서령을 알몸으로 만들었다.
무림사화 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악서령의 나신이 야산의 한 동굴 속에 그 고운 자태를
환하게 드러내었다. 두 팔이 아환에게 잡혀 위로 치켜든채 아름다운 미안은 온통 눈물로 뒤
덮여있었고 반듯한 콧대는 얼굴의 균형을 잘 잡아 주었다. 오물거리는 울음이 빨간 입술사
이로 새어나오고 있었고 하얗고 가느다란 목덜미를 지나 어깨선의 완만하고도 부드러운 곡
선에 외모와는 달리 풍만한 가슴이 눈에 띈다. 아환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누구보다도 커
다란 가슴, 그 위의 유실은 귀여운 크기의 짙은 분홍색을 띄고 있었고 매끄러운 배를 지나
면 잘록한 허리에 급격히 넓어지는 둔부가 있었다. 거기에는 소담스럽게 자라있는 방초의
숲이 갈라진 비열을 숨기고 있었고 언뜻 보일까 말까하는 붉은 속살이 조금 삐져나와 아환
의 눈을 간지럽혔다. 그 비처를 사이에 두고 곧게 아래로 뻗어있는 옥기둥의 선의 미는 또
어떤가? 조금의 근육도 없이 울퉁불퉁한 상처나 티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
아환은 한손으로 악서령의 손을 잡은채 거칠게 입을 악서령의 입에 부딪혀갔다.
" 우웁!"
팔이 잡히고 진기가 유통이 되지않아 가녀린 몸을 뒤흔들며 저항을 해보지만 사내의 숨결
이 자신의 입에 와닿았다. 난생처음의 경험, 그것도 강제로 당하여지는 체험. 격렬한 악서령
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입술을 탐하던 아환이 입은 계속 악서령의 고운 입술을 빨아
들이는 채로 다른 손을 움직여 악서령의 풍만한 젖가슴을 움켜잡았다.
" 웁!"
입이 막혀 소리를 지르지 못하지만 눈이 크게 뜨여지고 절망의 빛이 묻어나왔다. 아환은
손에 들어온 하얀 살덩이를 슬며시 매만지다 강하게 꽉 쥐었다.
" 업!"
눈살이 찌푸려지고 이내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아픈 모양이었다. 몸을 뒤틀며 저항을 해보
지만 사내의 손길에서 벗어날길은 없었다. 허나 그렇게라도 해야지 고통이 줄어드는 지 악
서령의 몸이 계속 움직였다.
아환이 젖가슴을 쥔 손에 힘을 더 가하였다.
" 아웁.."
무슨 말인가가 계속 희미하게 아환과 마주친 입에서 새어나왔다. 도리질을 칠려고 해도 아
환의 입술을 벗어날수 없었다. 발로 아환을 걷어차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아환의 손아귀
에 쥐여진 가슴에서의 통증만 더할뿐이었다.
아환의 손이 아랫배를 쓸며 밑으로 내려갔다. 잠시 아랫배를 어루만지다 싶더니 가차 없이
사타구니사이를 거칠고 큰 손으로 뒤덮고 잡아보았다.
" 웁.."
악서령의 전신이 여태까지 중 가장 거세게 반응을 하였다. 뒤틀고 발길질을 하며 고개를
도리질을 하고 손을 빼어낼려고 하고 여하튼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반항을 방법을 다 취해서
아환에게 벗어날려고 하였다.
아환은 그러한 악서령의 반응에 일일히 반응하지 않고 미묘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여기저기
를 만져보았다. 아직 메마른 느낌. 아까 끼얹은 물기와 여인의 비처에서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습기외에는 다른 물기가 배어나오지 않았다.
아환은 자신의 허리춤을 풀렀다. 어딘가에 걸리다가 아환이 허리를 흔들자 스르르 밑으로
내려가는 바지. 거대한 아환의 양물이 그 위용을 드러내었다. 위로 솟구쳐있는 검붉은 살덩
이는 마치 그 속에 뼈가 들어있는 듯 단단하고 곧게 보였다.
아환이 드디어 악서령의 입에서 자신의 입을 떼내었다.
" 허헉..헉...헉.."
작은 입을 벌리고 가쁘게 숨을 내쉬는 악서령. 몸이 아래로 내려간다 싶더니 그 입에 낯선
이물이 들어왔다.
" 웁.."
아환이 바닥에 악서령을 내려놓고 머리를 움켜잡은 후 육봉을 그 벌린 입에 쑤셔넣은 것이
었다.
악서령은 입안 가득히 무언가가 들어오자 처음에는 그 것이 무언지도 몰랐다. 하나 곧 그
것이 사내의 남근임을 깨닫고 도리질을 치며 뒤로 머리를 빼려고 하였으나 아환의 손에 잡
힌 머리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악서령의 머리는 작은 움직임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그 작은
움직임과 말을 하려고 혀를 씀으로 인하여 아환의 육봉은 기묘한 자극을 받고 쾌감이 느껴
졌다.
몇번의 왕복으로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아환은 자신의 육봉을 꺼낸다 싶더니 손으로 악서령
의 머리채를 움켜잡고는 위로 쳐들었다.
" 아악! 놔요. 이거 놔! 제발..악!"
버둥거리며 머릿가죽이 찢겨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호소하는 악서령. 아환은 한손으로 머
릿채롤 쳐든 다음 다른 손으로 악서령의 한쪽 다리를 잡고는 옆으로 벌렸다. 그때까지도 악
서령은 머리에서 오는 아픔에 다른 것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아환의 육봉이 악서령의 가무스름한 음모가 덮고 있는 비처에 닿을때에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지만 아환의 살의 일부가 악서령의 생살을 강제로 벌리며 조금 진입을 하자 그제서야
자신의 비처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인지가 되었다.
" 끄아악!"
한치 정도의 양물이 악서령의 질속으로 들어갔다. 금새 악서령의 비부에서 반응이 일어났
다. 물가에 갓 잡아올린 잉어처럼 퍼득이는 악서령의 교구, 살이 갈라진 곳에서 핏줄기가 흘
러나왔다. 아직 처녀의 증거가 파괴되지 않았음에도 피가 배어나오는 것은 비처가 파열된
것이리라.
강렬한 기향이 여체의 몸에서 풍겨나왔다. 얼마전에 객점에서 맡았고 계속해서 이 여인의
몸에서 풍겨 나오던 체향이라고 하기엔 상쾌하고 현세의 향기가 아닌듯한 기이한 향기가 더
욱 짙게 여체에게서 배어나왔다. 청량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기분좋은 냄새가 흘러나왔다.
그 향기는 아환의 성욕을 더더욱 자극하였다.
아환은 그에 그치지 않고 단번에 자신의 육봉을 악서령의 깊은 곳까지 단번에 밀어넣었다.
장대한 살덩이가 허리 놀림 한번에 거진 끝까지 악서령의 체내에 잠겼다.
" 끄..으.."
악서령의 눈자위가 허옇게 돌아간다 싶더니 악서령은 정신을 놓아버리고는 혼절을 하였다.
이에 아랑곳 하지 않는 아환은 머리채를 잡은 손을 놓고 양손으로 악서령의 허리를 잡은 다
음 선채로 악서령을 들어올렸다 놓았다 했다.
아환의 양물이 악서령의 비처를 헤집고 들어갔다 나왔다 할때마다 악서령의 희뿌연 동체는
퍼득이면서 비부에서 선혈을 토해내었다. 풍만한 가슴이 출렁거렸다. 아환은 한입 가슴을 베
어물고 입속에서 잘근 잘근 씹어대면서 악서령의 허리를 잡고 있는 손을 위아래로 움직였
다.
아환의 검붉은 육봉이 새빨갛게 물들었고 바닥은 홍건히 피가 고여 있었다. 악서령의 비처
에서 흘러나오는 핏줄기는 하얀 허벅지를 타고 흐르며 바닥에 선을 이으며 떨어졌다. 악서
령의 상체가 힘을 잃고 아환의 허리를 잡은 하반신만 고정이 되어 뒤로 활처럼 젖혀졌다.
한참을 그렇게 손을 움직이며 악서령과의 합의된 정사가 아닌 단순히 여체를 이용한 자위
를 즐기더니 아환은 마침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사정의 순간. 아환은 남근의 뿌리까지 최대
한 악서령의 음부에 밀어넣은 다음 자신의 체액을 악서령의 깊숙한 곳에 쑤셔넣었다.
털퍼덕..
아환이 내팽기치듯 여체를 놓았다. 바닥에 널부러진 악서령의 갸녀린 육체. 조금전의 처참
한 몰골을 말해주듯 전신 곳곳에 멍과 치흔, 교접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벌려진 다리사이에
서는 아직도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으며 동그랗게 벌어진 음부의 구멍에서는 희뿌연 액체가
선홍빛의 피와 어울려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환은 그런 악서령을 쳐다보지도 않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악서령의 찢겨진 옷가지로 양
물을 닦은다음 한쪽에 앉아 조식을 취하였다.
무림사화 중의 하나, 천향매화(天香梅花) 악서령이 순결을 잃어버린 호남성의 장사부근의
야산에는 무얼아는지 갖가지 산짐승들의 울음소리가 산 중에 울려퍼졌다.
[ 창작] 수라기(獸羅記) 36번째 올림 창작야설
(5)
널부러져 있는 여체, 밟혀진 몸..
빛이 벽면에 반사되어 어두운 동굴을 미약하나마 구별이 되게 하고 있었다. 벽이 종유석이
여기 저기 튀어 나와 있고 때로는 기둥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었다. 번들거리는 희뿌
연 표면이 밖의 햇빛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 으으으.."
나즈막한 신음성이 들려왔다. 음색이 갸녀린 것을 보면 여자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
다.
악서령은 한참동안의 혼절에서 이제 막 깨어날려고 하고 있었다. 뒤척이는 하얀 여체.
아환은 악서령의 신음을 듣고는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아름다운 얼굴이다.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던 얼굴은 이제 물기는 말랐지만 눈물이 흐른 자국은 눈주위에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오똑 솟은 콧날 밑의 붉은 입술이 살짝 벌어진채 숨이 배어나오고 있었고 가느다란
목덜미 밑의 가슴의 융기가 악서령이 숨쉴때마다 위아래로 움직이며 풍만하지만 흐트러지지
않은 가슴을 보여주고 있었다. 곳곳에 붉고 푸른 멍들..손자국과 치흔이 남아 있는 하얀 젖
가슴은 지난번의 격렬한 방사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미끈한 배를 지나면 많지않은 방
초가 어우러져 있었다. 그 곳은 피와 허연 아환의 체액이 꽤 엉겨붙어 있어 짓밟힌 여체의
처참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허옇고 붉은 액체가 섞여 분홍의 빛을 띄면서 비부의 질에
서 밖으로 흘러나와 굳어져 있어 특이한 감흥을 주고 있었다.
아환은 앉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발을 옮겨 악서령의 옆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툭.
아환이 손등으로 가볍게 악서령의 비부를 툭쳤다.
" 끼악!"
악서령의 고운 눈이 부릅뜨여지며 여체는 튕겨지듯 상체를 일으켰다. 흔들리는 붉고 푸른
자국이 새겨진 젖가슴. 충혈된 눈이 크게 벌어졌고 본능적으로 손을 하체로 가져가는 악서
령은 그 부분이 갈갈이 짓이겨지는 아픔에 찢어지는 비명을 터쳤다. 손만 갖다대어도 고통
이 말도 못할 정도로 파열되고 부어오른 음부를 거친 사내의 손으로 쳤으니 그 통증이야 오
죽할까?
" 이제 정신이 들었나?"
냉정한 아환의 음성이 악서령의 귓가에 들어왔다. 조금 전 자신이 거기를 건드려 지독한
아픔을 제공한 것쯤은 기억도 없는듯 악서령이 몸을 일으키자 차가운 음조로 말을 하였다.
악서령은 물기가 그렁그렁한 눈을 들어 아환을 쳐다보았다. 악마. 그외에 다른 어떤 말이
더 적합할까? 곱디 곱게 자란 자신을 이런 외진 구석에 끌고 와서 인정사정 없이 강간한 저
사내. 장대한 체구만큼이나 커다란 물건으로 산산히 자신을 짓이긴 극악한 인간.
" 악마! 이 미친 색마! 천벌을 받을 마두. 어찌 인간으로써 이런 잔악무도한 짓을 저리를 수
있느냐? 지옥에 떨어질 광마!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눈가에 물기가 흘러내리며 피를 토하듯 목이 터져라 악을 쓰며 외쳐대는 악서령의 모습은
그 아름다운 모습만큼 처절해보였다. 항상 부드러운 절제된 말만 나오는 작고 예쁜 입에서
거칠고 저주가 담긴 외침이 쏟아져 나온 것은 그만큼 심신에 닥친 충격이 크기때문 일 것이
다.
아환은 악서령이 원독의 시선으로 자기를 비난하고 저주를 퍼부음에도 표정을 변하지 않고
묵묵히 듣기만 하였다. 단지 날카로운 눈빛만 악서령을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었다.
" 차라리 나를 죽여라! 더이상 치욕을 받게 하지 말고 나의 목을 베어라. 이 정도 수치를 주
고 네놈이 그만큼 즐겼으면 되었지 않느냐! 더이상은..더이상은..으흑.."
악을 쓰다가 급기야는 머리를 숙이고 울음을 터뜨리는 악서령의 모습, 허나 그러한 자태까
지 매혹적인 것은 악서령의 미색이 뛰어남을 말했다.
" 계집! 정녕 죽고 싶으면 자살해라. 시끄럽게 굴지 말고 머리를 저기 바위에 부딪히든지 혀
를 깨물어 목숨을 끊어라. 죽을 용기가 있으면 남의 손을 빌지 말고 스스로 처리해라."
차가운 음성. 악서령은 머리를 바싹 치켜들고 아환을 노려보았다. 독기가 서려있는 눈빛으
로 아환을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더니,
" 오냐. 그러마. 내 죽어서도 원귀가 되어 너에게 복수를 할것이다. 아악!"
악서령은 아환을 노려보다 일어나려고 하였다. 그순간 아래에서 퍼져나가는 통증. 몸을 일
으키자마자 비처에 작열되는 아픔에 비명을 질렀다. 아환을 향해 저주를 퍼부면서 잠시 잊
었던 아픔이 되살아났다.
공포..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악서령의 전신을 엄습해왔다. 몸이 떨렸다. 세포 하나하나가 고
통에 대한 무서움을 호소하였다. 자라오면서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극심한 아픔이었다. 애지
중지하게 성장한 화산의 금지옥엽이었다. 최소한 이 사내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미래를 아스라히 기대하는 소녀의 마음을 가진 여인이었다. 산산히 부서진
자신과 앞날..
악서령은 죽음을 각오하고 몸을 일으켰다. 아니 스스로 벽에 머리를 부딪혀가지고 죽을 작
정이었다. 그순간 아래에서 퍼져나가는 아픔은 악서령으로 하여금 고통에 대한 공포를 각인
시켰다. 벽에 머리를 갖다 박아 머리가 터져서 죽는 것도 무서웠다. 얼마나 아플까? 혀를 깨
물어 피를 토하며 죽는 것도 두려웠다. 그 고통은 또 얼마나 무서울까?
엉거주춤 일어서려는 자세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떨고 있는 악서령은 두려운 눈초
리로 아환을 슬며시 응시하였다. 추웠다. 추워도 이리 추울수 없을 정도로 추웠다. 오들오들
떨리는 자신을 쳐다보는 저 사내의 눈빛은 왜 이리 차가운 것일까? 무서웠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때리고 학대할 것 같았다. 또 치가 떨리는 아픔이 몰려올까?
발가벗은 몸을 가릴 생각도 못하던 악서령은 울음을 터뜨렸다.
" 흐윽...흑..흑.."
" 왜 죽지 않는 거지? 저기 저 벽에 부딪혀서 네년의 머리를 산산히 터뜨리면 간단해. 허연
뇌수가 바닥에 흩어지고 계집 네 년의 눈알이 튀어나와 굴러 다니겠지. 그 육체야 얼마 있
지 않으면 썩어 없어질테고. 오! 그전에 여러 벌레들이 네년의 몸을 맛있게 파먹겠지. 자!
어서 죽으라고.."
" 흐흑..흑...아앙..."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울음을 더욱 크게 터뜨리는 악서령.
" 그쳐라."
" 앙..흑...흑.."
" 그치라고 했다."
" 흑..흑.."
" 한번만 더 말하마. 그쳐라."
" 흑..흐..읍..."
아환이 점점 큰 목소리로 힘을 주어 말을 하자 악서령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처음의 말에
는 전혀 반응을 하지 않다가 아환의 음성이 크고 거세지자 소리를 죽여 어깨만 들썩이고 있
었다.
" 네 이름이 뭐냐?"
" 읍..흐..으.."
쿵!
" 악..서령.."
아환이 발을 한번 땅에 크게 구르자 기겁을 하며 고개를 쳐들고 대답을 하는 물기어린 여
인.
" 나이는?"
" 스물 둘..."
" 별호는?"
" 천향매화(天香梅花).."
" 화산에서 네 지위는?"
" 장문 방장이 아버지.."
잔뜩 겁에 질려서 아환이 물어 보는 대로 하나하나 대답을 다 하였다. 원독이 서린 눈을
언제 그랬냐는듯이 겁에 질려 있기만 했다.
" 화산 장문? 오호라. 아주 곱게 잘 자랐겠구만.."
"..."
" 호남성에는 무슨 일로 왔나?"
" 사화지연(四花之宴)때문에.."
" 사화지연? 그게 뭔데?"
" 사화지연이란 무림 사화들이 주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친목을 다지는 자리로서.."
악서령의 말을 간추리면 사화지연이란 한마디로 무림사화들이 간간히 한자리에 모이는 것
을 의미하였다.
무림사화(武林四花)
정파무림에서 그 미색이 뛰어난 네 여인을 사화라 칭하였다. 한결같이 미모와 무예가 발군
이어서 뭍 남성 후지기수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여인들을 의미하였다. 대비되는 흑도에도
삼미(三美)라 불리우는 여자들이 있다.
난화성녀(蘭花聖女) 유가형
성의전(聖醫殿)이라는 의가계열의 문파의 장문을 맡고 있는 유가형은 사화 중 제일 연장자
로서 그 의예가 뛰어나 화타의 재림이라고 칭함을 받는 절색의 여인이다. 의가계열의 무예
를 극성까지 터득하여 점혈에 있어 일절이라 일컬어진다.
혈장미(血薔美) 석영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 차가운 성품을 가진 여검사로서
사화중의 으뜸의 무예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천외삼기라는 전대 고인에게 심오막측한 무예
를 전수받아 어느 세력에 속해있지 않고 사마외도를 찾아다니며 처단하기에 독서시라 불리
우기도 한다.
천향매화 악서령
천향신맥 이라는 기이한 체질을 타고난 여인으로서 항상 풍겨나오는 체향이 주위의 사람에
게 상쾌함과 즐거움을 준다고 하여 여인의 체질로서는 최고로 여겨진다. 화산의 제자.
다지현봉(多智泫鳳) 제갈수란
오대세가 중 제갈세가의 금지옥엽. 지혜가 뛰어나 만서를 담고 있다 여기어진다. 사화중 나
이가 가장 어리다. 기환이술에 뛰어난 조예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현나이 십구세.
" 그러니까 사화지연이 수려한 각지에서 벌어지는데 이번에는 형산이기에 호남성으로 왔다
는 것이군."
악서령은 이제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 네 몸에서 나는 향기가 네 년의 특이한 체질때문이고?"
" 예."
모기소리만 한 대답.
" 어떤 효용이 있는 향기인가?"
"..."
" 앞으로 두번 말하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아환의 서슬퍼런 협박에 악서령은 급히 대답을 하였다.
" 그 향을 맡는 사람은 심신이 안정되고..또 남자를.."
고개를 푹숙이고 대답을 하지 못하는 악서령, 차마 그 다음은 입에 담지 못하겠다는 듯 말
끝을 흐렸다.
" 남자를..뭐야! 빨리 말해."
" 남자를...기쁘게 한다고.."
실제로 그랬다. 천향신맥의 여인은 태어나면서부터 기향이 항시 주위에 맴돌았다. 그 향기
가 그윽하고 상쾌하여 주변의 인물들에게 평온함을 준다고 하였다. 그러나 남자와의 관계시
에는 그 향이 변화를 일으키고 강렬해지며 그 향을 맡는 사내는 쾌감의 극치를 얻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예로부터 왕실의 후궁이나 지위있는 자들의 여인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또하나
이 맥을 타고 난 여인은 천성적으로 유약하고 쉽게 의지가 꺾여 순종적인 면을 많이 보인다
한다. 단지 무림에 알려진 특성은 그 기향에 관한 것일뿐 천성은 세간에 알려져 있지 않았
다.
이해가 되었다. 악서령과 교접할때에 아환이 느낀 쾌감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강
했다. 그 이유가 강렬하게 풍겨나온 그 향기때문이었다니..
" 그래? 그렇군. 사화라..무림사화라..형산에서 모임을 갖는단 말이지..그게 언제지?"
기이한 미소가 아환의 얼굴에 맺혀졌다.
" 앞으로 보름후..설마..설마.."
아환은 눈을 들어 악서령을 쳐다보았다. 두려움이 가득찬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얼굴, 검후에 이어 두번째로 보는 절색의 미모를 가진 여인인 악서령을 보자 다시금 욕정이
되살아났다.
" 이리 와라."
악서령이 하초부위가 아픈지라 곱게 눈살을 찌푸리며 아환에게 다가왔다. 이미 의지가 꺾
인지라 순순히 아환의 옆으로 왔다.
" 말한 대로 넌 내 시비가 되는 것이다."
" 저..그냥 절 보내주시면 안되요? 충분히 보상을 할께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께요. 맹세
할께요. 다른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드릴테니까 이만 놔주세요. 제발..제발 부탁이예요.
더이상은 너무 아프고 힘들어요..흑..흑.."
아환의 옆에 무릎을 끓고는 애원을 하는 악서령. 일반 사내라면 그 모습이 가련하고 애처
로워 당장이라도 악서령을 풀어주리라. 허나 아환은 조금의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아환은
앞에 무릎을 꿇은 악서령의 가련한 자태를 힐끗 보더니 몸을 일으켜 성큼성큼 동굴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멍하니 바라보는 악서령, 안색이 조금 밝아진다. 혹시나 하는 기대가 생겼기 때문
일 것이다. 내심 자신을 이대로 풀어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가버린 것일지도 몰
랐다.
악서령은 힘겹게 다리를 벌리고 가부좌를 틀었다. 찢어지는 통증이 밀려왔다. 선천적인 성
격상 아픔을 잘 참지 못하는 악서령은 급히 자세를 풀었다. 비부가 욱씬거리며 벌겋게 달아
올랐다. 맥박이 뛸때마다 음부에 작열감이 느껴졌다.
악서령은 가부좌를 포기하고 천천히 진기를 모아보았다. 미약하지만 진기가 모이는 것 같
았다. 악서령은 그 진기를 찬찬히 혈맥으로 유도해보았다. 그러자 이내 스러지는 내기, 아마
아환이 혈맥을 막아 진기의 유통을 흐트러 트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악서령이 진기를 모으려고 안간힘을 쓸때 아환이 동굴안으로 들어왔다. 악서령은
동굴입구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니까 자연스레 그 쪽으로 눈을 돌리다 안색이 창백해졌다.
두눈은 크게 떠졌고 그 눈속에는 공포가 자리잡았다.
아환은 동굴밖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짤라 다듬어 가느다란 회초리 같은 것을 여러개 만들
어왔다. 과연 악서령의 청하검은 보검이었다. 별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나무들이 잘려나가고
매끈하게 깎여졌다. 아환은 몇차례 회초리를 흔들다 동굴속으로 들어갔다. 눈에 들어오는 악
서령의 질린 모습.
아환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 웃음을 바라보는 악서령은 싸늘하게 피가 식는 느낌이
들었다. 이 사내가 이 회초리로 어쩌려는 것이지? 설마 나를..그건 아닐꺼야. 그건 절대로 아
닐꺼야..
" 이리 가까이 와라."
냉정한 음성. 악서령은 주춤주춤 아환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환의 손짓에 따라 아환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발가벗은 몸을 손으로 간신히 가리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한 악서
령의 정면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살덩이. 울퉁불퉁하고 검붉은 살덩이가 위로 선채 그 위용
을 드러내고 있었다. 악서령은 질겁을 하고는 눈을 감았다. 눈살에 주름이 갈정도로 꽉 감았
다.
" 눈을 떠라."
악서령은 눈을 살며시 뜨다가 앞에 아환의 양물이 보이자 재차 눈을 꼭 감고 회피를 하였
다.
휙! 촥!
" 꺄악!"
비단이 찢어지듯 날카로운 악서령의 비명이 동굴안에 울려 퍼졌다. 아환이 손에 들고 있는
회초리로 악서령의 어깨에서 젖가슴쪽을 후려 갈겼다. 빨간 선이 그어지고 곧 붉은 핏자국
이 배어나왔다.
" 눈을 떠라."
" 예! 예!"
악서령은 다급히 대답을 하면서 눈을 반짝 뜨고 아환을 쳐다보았다. 아픔은 더이상 참기
힘들었다. 아래에서 번지는 아픔도 참기 어려운 마당에 새로운 고통이 찾아오자 악서령은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눈을 뜨며 대답을 하였다.
" 입을 벌려."
" 예? 예."
악서령이 붉은 입술을 움직여 자그마한 입을 열었다. 그러한 악서령의 머리채를 아환은 한
손으로 움켜쥐고는 자기쪽으로 악서령을 끌어당겼다. 악서령의 얼굴이 아환의 양물 근처에
가까이 왔다. 벌린 입이 아환의 육봉에 닿았다. 악서령은 기겁을 하고 입을 다문다. 그러자,
짜악!
" 아악! 할께요. 할께요. 때리지 말아요. 시키는 대로 할께요."
아환의 남근이 악서령의 입속에 끝부분이 들어갔다. 그 굵기가 상당히 굵은지라 간신히 입
을 벌려서 끝을 머금었다. 아환이 그러한 악서령의 머리를 끌어당겨 양물을 깊게 집어넣었
다. 의지가 없는 물건처럼 악서령은 아환이 이끄는대로 입속 깊숙이 아환의 물건을 삼켰다.
거의 목젖에 닿을 정도로 깊이 들어간 사내의 육봉에 악서령은 욕지기가 나왔지만 억지로
억누르고 아환의 손에 자신의 머리를 맡겼다.
아환은 악서령의 머리채를 움켜잡고는 앞뒤로 움직였다. 몇번을 그렇게 하더니 손을 떼고
는 명령을 하였다.
" 네가 해봐."
악서령은 아환이 손을 놓자 느릿하게 아환의 물건을 입에 머금은채로 머리의 왕복운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타액이 묻어 번들거리는 검은 살덩이가 악서령의 작은 입에 사라졌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기계적인 동작으로 단순한 머리운동만을 반복하는 것을 보던 아환,
" 단고를 먹듯 해봐!"
악서령이 눈을 뜨고는 무슨 말이냐는 듯이 아환을 올려다 보다 아환과 눈이 마주치고 그
눈속에 담겨진 냉소를 보고는 급히 머리를 숙이고 혀를 이용하여 아환의 남근을 핥았다. 무
서움에 질려 바들바들 떨면서 혓바닥을 아환의 남근에 붙이고 위아래로 움직였다. 따뜻한
설육의 감촉이 양물에서 전해져왔다.
악서령의 행위는 서툴기 짝이 없었다. 언제 이런것을 보았으며 생각을 한적이라도 있었을
까? 악서령의 긴장된 하얀 여체는 빨간 선이 어깨에서 가슴까지 그어진채 아환의 앞에 쭈그
리고 물건을 빨간 입술로 물고 있었다.
털썩..
아환이 발로 악서령을 밀어내자 뒤로 철푸덕 주저 앉는 악서령, 의아한 눈빛으로 아환을
쳐다보았다. 아환은 아무 말없이 일어나서 손에 들고 있는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휘잇, 휙, 휘익..촤악! 짝..츠앗! 쫘앗!
" 끼악! 꺅..아악..흐윽..제발..아악..때리지 말아요..아악..꺄악..제발..끄아..아흑..제발..악.."
인정사정없이 회초리가 악서령의 전신에 작렬하였다. 악서령은 잔뜩 웅크린채 회초리가 등
과 어깨와 가슴과 다리 여러 곳에 내려칠 때마다 비명과 애원을 번갈아 질러댔다. 반항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 단지 어떡하면 이 고통을 더 줄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오직 희망일뿐
다른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아환은 회초리를 멈추고 악서령을 내려보았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있는 고운 얼굴.
아환이 얼굴은 때리지 않아 그 미안에는 희디흰 피부를 유지하고 있지만 전신은 온통 붉은
거미줄이 그어진듯 빨간 줄이 여기저기 그려져 있었다.
" 성의를 기울이도록."
아환을 말을 마치고는 회초리를 거두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악서령은 어깨를 들석이며 그
자리에서 울음을 토해내었다. 여체, 한때는 그 순백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몸이 이제는 하
얀 피부와 붉은 줄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휘잇!
아환의 회초리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 계속해."
나즈막한 아환의 목소리. 악서령은 다급히 몸을 일으키고는 아환의 앞에 다가앉았다. 그리
곤 황급히 입을 크게 벌리곤 아환의 남근을 입에 물고는 혀로 핥았다. 입속에 들어있는 아
환의 물건을 달디 단 과자를 먹듯이 빨아대었다. 머리를 앞뒤로 계속 왕복을 하며 계속 아
환의 양물에 대한 봉사를 하였다. 아환은 눈을 지긋이 감고 짙은 악서령의 체향을 맡으며
쾌락을 즐겼다.
서툴러도 정성이 어린 탓일까? 아환은 정점에 도달하는 자신을 느끼고는 손을 뻗어 악서령
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움찔.
또 고통이 찾아올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더더욱 정성을 쏟는 악서령은 구토가 나올정도로
아환의 남근을 입속 깊게 집어 넣고는 빨아대기를 반복하였다. 또 입속의 설육 역시 아환의
육봉을 휘감으며 일조를 하고 있었다.
" 으음.."
아환의 악서령의 머리를 움켜잡고는 신음성을 흘러내었다. 악서령은 갑자기 뜨거운 액체가
입속에 들어오자 깜짝 놀랐지만 머리가 잡혀있는 지라 어쩔수 없이 그 액체를 마실수 밖에
없었다.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에 토하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눈물이 핑돌았다. 이게 무언지
깨달은 순간 악서령의 이성의 끈이 끊어지고 머릿속이 텅비어갔다. 그런 악서령의 목젖은
끊임없이 움직여 입속에 들어있는 이질적인 액체를 위속으로 내려보내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후 아환은 악서령의 머리를 들어올렸다. 벌린 입으로 미처 삼키지 못한
체액과 타액이 섞여서 길다란 줄을 만들며 바닥으로 흘러내려갔다. 아환은 악서령의 머리를
뒤로 밀었다. 힘없이 뒤로 넘어가는 악서령의 육체가 비틀어지며 엎어졌다. 차가운 바닥의
기운이 올라오자 약간의 정신이 돌아왔다. 그제서야 욕지기가 치밀어올랐다.
" 우욱..웩..우웁.."
정신없이 토해내는 악서령. 나오지는 않고 애매한 타액만이 근근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래도 속이 울렁거리고 비릿한 향이 아직 입가에 남아있는 기분에 악서령은 계속해서 헛구역
질을 했다. 그런 악서령의 귓가에 들려오는 아환의 한마디 말.
" 앞으론 자주 마시게 될거야."
촛점잃은 눈이 아환을 향해 돌아갔다. 멍하니 아환을 쳐다보는 악서령. 이제 더이상 나신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가릴 생각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아환만 쳐다보는 악서령. 냉막한
아환의 눈동자에 무림사화 중의 하나 악서령의 빛을 잃은 눈동자가 맺혀있었다.
[ 창작] 수라기(獸羅記) 37번째 올림 창작야설
(6)
희미한 빛이 반사되어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여러가지 크기와 모양의 기
암괴석들로 이루어진 천연의 장소, 동굴안에 희끄무레한 물체가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 하윽..하아..하아.."
악서령은 침침한 동굴속에서 위아래로 그 갸녀리지만 풍만한 여체를 흔들고 있었다. 느릿
한 동작으로 위로 아래로 움직이면서 커다란 유방이 춤을 추었다. 붉은 선들이 그물처럼 하
얀 피부에 그어져 있어 새하얀 살결에 어우러져 있었다.
짙은 체향이 악서령의 몸에서 끊임없이 배어나왔다. 욕정을 일으키는 쾌락적인, 그러면서도
맡는 이로 하여금 강렬한 기분을 선사하는 기향이 출렁이는 여인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봉목이 곱게 일그러지고 눈가에 주름이 잡혀있어 악서령의 행위가 결코 그녀에게 편안한
것이 아님을 짐작케했다. 하이얀 이빨에 물린 붉은 입술은 금방이라도 피가 흐를것처럼 눌
리고 짓이겨져있었다. 갸날픈 손은 꽉 움켜쥐어 아래에 있는 검은 빛을 내는 어떤 것에 올
려져 있었다.
툭툭..
거무튀튀한 거친 손이 악서령의 붉은 선들이 장식한 악서령의 둔부를 가볍게 쳤다.
" 좀 더 빨리.."
아환은 자신의 위에 있는 악서령의 동작을 재촉하였다. 그말이 나오자 악서령의 눈살이 더
욱 찌푸려지면서 허리의 놀림이 빨라졌다. 악서령과 아환을 잇고 있는 것은 시커먼 기둥, 아
환의 육봉이었다. 질퍽한 액체로 빛을 반사하는 아환의 육봉이 악서령의 체내에 잠겼다가
그 위용을 드러내곤 하였다. 악서령은 아환이 시키는 대로 아환위에 올라가서 아환의 육봉
을 입으로 애무하여 발기시킨후 음부에 아환의 남근을 집어 넣고 엉덩이를 흔드는 중이었
다.
아직 아물지도 않은 악서령의 비처, 욱씬거리는 통증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남근을 받아
들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아환이 회초리를 한두번 허공에 휘두르자 바삐 몸을 놀려
아환의 위에 올라타고는 억지로 비처를 열러 아환의 양물을 받아들였다. 몸이 반으로 갈라
지는 느낌. 채 낫지않은 비처에서 점점히 핏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확실히 경험의 탓인지 아니면 강압적이지만 조절을 해서인지 악서령은 처음보다 고통이 훨
씬 덜하다는 것을 알았고 장대한 아환의 살덩이를 질속으로 집어넣은 것이었다. 자세의 탓
인지 삽입된 아환의 육봉이 자궁속까지 밀고 들어와 악서령은 자신의 밑이 가득차있는 기분
이 들었다.
역시 명문대파의 약재들이었다. 어제 강압적인 강간으로 인하여 온통 파열된 비처와 나뭇
가지에 시달린 살갖이 악서령이 갖고 있는 금창약과 몇가지 환약을 이용하자 금새 약효를
보였고 가벼운 곳은 벌써 아물어가는 중이었다.
화산, 무림의 절정의 세력을 가지고 있는 문파의 장문방장의 금지옥엽이면서 사화중의 일
인이고 무예의 뛰어난 재질을 보인 여협답게 소지품은 여러 가지를 갖고 있었다. 재물이며
장신구며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것이 없었다.
피때문일까? 아니면 타의에 의한 강제적인 정사인데도 흥분을 하기 때문일까? 버거운 크
기를 가진 아환의 육봉이었지만 두번째의 결합에 있어서는 악서령의 비부에 상처의 재발만
줄뿐 더 상처가 커지거나 심해지진 않았다. 특이한 육체의 성질일지도 몰랐다. 예로부터 애
첩으로서 성(性)의 상대로서 극치라 평가받는 천향신맥의 특성일수도 있었다. 여하튼 악서령
은 차츰 차츰 아환의 양물을 자신의 음문속에 담그고는 허리를 요동치고 있었다.
츠읍..츠읏..
수분과 피부가 마찰되는 소리가 미약하게 동굴안에 울렸다. 다리를 벌리고 아환의 하체위
에 앉은다음 무릎을 굽혔다 폈다하면서 아환의 성기를 감추었다 내보내었다하는 악서령. 눈
주위의 주름은 그대로 남아있어 아직 고통스러운 악서령의 마음을 대변해주었다.
" 그만 일어나."
짧은 말, 악서령은 아환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매에 대한 공포와 이
아픔을 벗어나는 명령이기에 재빨리 그 말에 따랐다.
아환이 눈을 뜨자 악서령의 나신이 아래부터 보였다. 다른 곳과 같이 붉은 줄이 그어진 옥
주(玉柱)가 반듯이 서 있었고 그 옥주가 만나는 곳, 약간의 수풀에 바알간 속살이 숨어 있었
다. 조금전까지 아환의 남근을 담고 있었기에 아직 여물지 못하고 벌어진 모습이 일순간 유
지되고 있어 피와 다른 액체로 인하여 홍건히 젖어 질퍽거리고 있었다.
희고 편편한 아랫배와 그 위에 보이는 큰 젖가슴..작은 돌기가 악서령의 숨결에 따라 미미
하게 움직였다. 길고 가는 목선을 지나면 보이는 아름다운 미안. 괜히 무림사화라 평가를 받
는 것이 아닌 절세의 용모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한 악서령의 얼굴에 동그랗고 커다란 눈
망울이 두려움에 가득찬채 아환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환의 눈을, 그리고 손에 들리 나뭇가
지를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 입으로."
아환의 말이 떨어졌다.
움찔, 악서령의 몸이 떨리고 악서령의 눈빛이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 아환의 눈을 바라보다
그 눈속에 담긴 무정함에 고개를 떨구고는 아환의 하초밑에 주저앉았다. 미세하게 떨리는
교수를 차츰 차츰 아환의 남근에 가져가서 장대한 육봉을 움켜잡았다.
뜨거웠다.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크고 두꺼웠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어색하고 낯
선 부위였다. 입에 집어넣기가 싫었다. 그 냄새가 역겨웠다. 토할것만 같았다. 이 자리를 떨
치고 도망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는, 정말 다시는 맞고 싶지 않았다. 아환이 무섭고 또
거대해 보였다. 저 나뭇가지가 여린 자신의 몸에 떨어져 내릴때 전신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
한 느낌에 고통과 공포에 싸늘한 전율이 느껴졌다. 저 냉정한 사내는 언제든지 자신의 육체
를 산산조각 낼수 있는 인간이었다.
악서령은 붉은 입을 벌리고 깊숙히 아환의 양물을 물었다. 혀를 이용하여 정성스레 핥았다.
성의를 다해 사내의 성기를 빨아댔다. 욕지기가 나와도 입가가 찢어질 것 같아도 악서령은
작은 입을 최대한 열어 입에 머금었다. 열심히 머리를 아래위로 움직여 사내를 즐겁게 하였
다. 이래야만 그 고통이 찾아오지 않으리라. 악서령은 돈을 받은 매춘부보다, 사랑하는 이에
게 하는 애무보다 더 정성을 들였다.
노력 덕분인지 아환은 얼마 안 있어 절정에 도달하였다. 더 단단해지고 커진 양물이 악서
령의 입을 찢을듯 파고 들었지만 악서령은 입을 떼지 않고 쪼그려 앉아 열심히 빨아대고 있
었다.
이윽고 잔떨림이 찾아왔다. 사정의 순간이었다. 아환은 부르르 몸을 떨며 악서령의 입에 정
액을 토해내었다. 항시 그렇듯 많은 양의 비릿한 체액이 악서령의 입속에 가득 들어왔다. 악
서령은 역겨운 향기를 내는 뜨거운 액체가 입속에 들어왔지만 입을 떼지 않고 목구멍으로
그 액체를 넘겼다.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삼켰다. 꿀꺽 꿀꺽 목젖이 움직이고 무언가가 식도
로 내려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환의 토정이 끝나고도 악서령은 아환의 성기에서 입을 떼지 못하고 계속하여 입속에 담
은채 혀와 입술을 놀렸다. 아환의 그만두라는 말이 없었기에 입에서 육봉을 뱉을 수도 없었
기에 사정을 했는데도 악서령은 계속해서 아환의 하체 밑에 주저앉아 있었다.
" 되었다."
아환의 말이 떨어지자 악서령은 슬그머니 아환의 하체에서 몸을 일으켰다. 꽤 노력을 기울
였는지 하얀 여체에 땀방울이 송글 송글 맺혀 있었다. 악서령은 조심스레 발을 옮겨 한구석
으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무릎을 세우고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다리를 손으로 감싸 안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아환의 귓가에 조그마한 소리가 들렸다.
" 저.."
아환은 감았던 눈을 뜨고 누운 자세 그 상태에서 고개만 돌려 악서령을 바라보았다. 그곳
에는 악서령이 가슴과 비처를 작은 손으로 가리고 엉거주춤하게 서있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또다른 매혹적인 감흥을 준다. 안절부절 못하고 그 자리에서 무언가를 말하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계속 망설이고 있는 악서령.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고 다시 벌리기를
반복하지만 말은 새어나오지 않았다.
" 왜?"
" 저...있잖아요. 잠시 저 나갔다 오면 안돼요?"
힘들게 말을 꺼내는 악서령, 혹시 말을 잘못했다가 또 맞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에 어
렵사리 말을 꺼낸다. 다리를 바싹 붙이고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악서령의 자세.
" 왜?"
" 그게요..저..그게요.."
아환은 악서령의 자세에서 악서령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여
자는 지금 용변이 급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고보니 여기와서 한번의 생리대사를 한적이
없었다. 물론 무인은 나름대로 진기를 이용하여 생체의 주기를 어느 정도 변화시킬 수 있지
만 악서령은 혈이 짚힌 채라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참을 수 있을 만큼 버텼지만 이제 한계
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허나 어찌 여인의 몸으로 사내에게 용변이 급하다는 말을 할수가 있
겠는가?
악서령은 아환에게 힘겹게 말을 붙였지만 말을 계속 이을 수가 없었다.
" 말해."
" 그게..저..그게.."
휘이잇!
허공에 회초리가 한번 휘둘려졌다.
" 측간에 다녀올라구요."
울상이 되서 악서령이 급히 내뱉었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저 회초리에 한번이라도 맞으면
그만 소변을 놓칠것 같았다. 여인으로서는 말하기 어려운 단어가 악서령의 입에서 황급히
튀어나온 것을 보면 악서령의 지금 심정을 어느 정도 설명을 해주었다.
" 이리와."
악서령이 주춤 주춤 아환의 앞에 다가갔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간신히 뇨의를 참으며 아
환의 발치에 가까이 갔다. 아환이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고개를 슬쩍 들어 악서령의 아름다
운 얼굴을 쳐다보았다. 다급함이 엿보이는 악서령.
" 앉아."
악서령이 머뭇거리더니 자리에 다리를 포개고 비스듬히 주저 앉았다. 최대한 비부가 드러
내지 앉게 옆으로 다리를 겹쳐 앉아 아환의 시선에서 비처를 보호했다. 그순간 들려오는 아
환의 충격적인 말.
" 그렇게 오줌을 눌거야?"
악서령은 무슨 뜻인지 일순 알아듣지 못한채 어안이 벙벙한 기색으로 아환을 쳐다보았다.
동그랗게 뜨여진 두 눈이 무슨뜻 이냐는듯 아환을 향해 있었다. 그러다가 악서령은 그 말뜻
이 이해가 되자 얼굴이 새빨갛게 상기가 되고 부끄러움과 당혹스러움이 얼굴에 번져갔다.
아환의 말뜻은 자신의 앞에서 용변을 보라는 것! 상상하지도 못한 말이었고 명령이었다.
여인으로서 수치스럽기 그지 없는 행위를 사내가 버젓이 보는 가운데 바로 그 앞에서 행하
라니..사내의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아 소변을 쏟아낸다는 것은 자세도 자세지만 악서령의
마지막 남아있는 한가닥의 저항선 마저 흔드는 것으로 악서령은 결코 그말에 따를 수 없다
생각했다. 그리곤 아환을 향해 반박을 하려고 아환의 눈을 재차 마주쳤을때 그 속에 담겨있
는 싸늘함에 치가 떨리고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그래도..그래도..
휘잇..차악!
회초리가 대기를 가르며 날카로운 소성을 갈라내었다. 아환이 눈을 악서령에게서 떼지 않
은채 손에 들은 회초리를 휘두르는 것이었다. 회초리가 바닥에 부딪히며 파열음을 내자 악
서령의 망설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할께요. 할께요. 제발 때리지 말아요."
악서령은 아환의 앞에 다리를 벌리고 쪼그리고 앉았다. 부끄럽고 창피한 것은 나중 문제였
다. 적나라하게 비처를 아환의 눈앞에 펼치고 주저앉은 악서령은 그래도 수치스러운지 눈을
꽉 감고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앉았다.
두 다리에 눌려 솟은 젖가슴이 일그러졌다. 양옆으로 눌려 삐져나온 유방의 살들..허연 허
벅지가 그 사이의 기묘한 모양의 여체의 비부를 경계로 하여 반듯이 서있었고 가운데의 음
부는 소담스럽게 나있는 수풀을 헤치고 벌려져 붉은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준비
는 다되었지만 남정네의 앞이라서 그런지 그토록 심했던 요의임에도 용변이 흘러나오지 않
았다.
아환이 회초리를 들었다. 그 끝을 악서령의 비부에 가져가대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린지라
회초리가 다가오는 것을 보지 못한 악서령이 마침내 회초리가 비부의 한가운데를 찔러대자
깜짝 놀라며 손을 떼었다.
그순간,
쏴아아...
짙은 노란색을 띄고 있는 물줄기가 거세게 터져나왔다. 더이상 참을수도 없거니와 갑작스
러운 이물질의 침입에 놀라 오줌을 쏟아낸 것이었다. 오랫동안 참아있던 탓인지 뿜어져나오
는 황금빛 액체는 진하고 강렬하게 바닥의 흙을 파헤지며 뿜어져 나왔다.
악서령의 두눈이 빛을 잃었다. 포기와 체념의 단계를 넘어서는 수용이랄까? 덤덤하게 그자
리에 쪼그져 앉아 밑에서 새어나오는 물줄기에는 신경을 쓰지도 않고 멍한 눈으로 아환을
쳐다보았다. 그 눈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아환을 쳐다보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먼곳을
쳐다보는 것인지 모를 촛점잃은 눈동자가 아환쪽을 향해 있었다.
비처를 적시고 수풀에 자취를 남기며 세차게 흐르던 물줄기가 차츰 힘을 잃더니 조르르 가
느다란 줄기로 남아 졸졸졸 흘러 바닥에 고였다. 그러다가 똑..똑..방울이 떨어지고 이내 더
이상의 흐름이 없었다. 악서령은 아래에서 더이상의 배설이 없는데도 그 자세를 풀지 않았
다. 앉아있는 그 모습으로 몸이 굳어져 있는지 꼼짝도 하지 않고 배설을 하던 자세로 그자
리에 있었다.
아환은 처음보는 기괴한 광경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는 못하였다. 악서령의 의지를 꺾을
려는 명령이 성과를 거둔 것을 확인하고는 희미한 웃음을 입가에 지었다. 만족스러웠다. 고
고한 한 여자가 절대적으로 아환에게만 복종하는 노예화되는 순간이었다.
아환의 얼굴에서 웃음이 더욱 크게 번져나가더니 대소를 터뜨렸다.
" 크핫핫하.."
악서령은 빛을 잃은 눈으로 그저 먼곳을 응시할 뿐이었다.
(7)
" 하아..하...으흥.."
교태스러운 신음성이 악서령의 붉은 입술에서 배어나왔다. 발갛게 홍조가 피어오른 두뺨과
반개(半開)한 봉목에 열기가 느껴졌다. 가볍게 열린 입에서 연신 흘러나오는 달뜬 숨결..
악서령은 한 손으로는 자신의 가슴에 다른 한 손은 자신의 비부에 갖다대고는 부드럽게 매
만지는 중이었다. 홀로 자위하는 모습이었다. 허나 보통의 수음과 틀린 점은 바로 은밀한 장
소에서 혼자 벌이는 것이 보통인 자위를 다른 사람 앞에서 하는 것이 틀렸다. 악서령의 나
이 스물 둘. 천성적인 체질이 아니더라도 성(性)에 관심이 있을 나이를 지나 어느 정도 성에
대해 알 그런 연령이었고 혼자 있을때 가벼운 손놀림으로 약간의 만족을 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한 모습이, 악서령이 과거라면 치태중의 치태라 여겼을 행위가 자연스럽게 아환의 앞에
서 펼쳐지는 것은 악서령의 정신이 아환에게 완벽히 굴복된 것을 의미하였다.
악서령은 아환의 앞에서 수치스러운 배설을 한 이후 아환의 말에 조금의 머뭇거림이 없이
순순히 복종을 하였다. 아환에게 강압적으로 납치를 당하고 강간을 당한지 벌써 나흘이 지
났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악서령은 아환의 말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고 철저
히 그 말에 따랐다. 위에 홀라가서 허리를 흔들라고 하면 아환의 위에 올라가 자신의 입으
로 아환의 양물을 세운다음 침을 비처에 발라 물기를 젖게하고는 아환의 남근을 집어넣고는
허리를 움직였다. 아환이 그만 하라고 할때까지 열심히 허리를 흔들었다. 입에 넣고 빨아 보
라고 하면 크게 입을 벌리고 조이듯 입술을 물고 아환의 양물을 핥고 빨았다. 혀를 놀려 이
곳저곳을 자극하고 시키지도 않은 아환의 고환주위까지 혓바닥으로 핥았다.
다리를 벌리라고 하면 아환의 눈앞에서 최대한 다리를 벌려 비처를 아환의 코앞에 내밀었
다. 속살의 하나하나까지 훤히 보일정도로 아환의 눈에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더이상 망설
임은 없었다. 인형처럼, 의지가 없는 생물처럼 아환의 말에 철저한 복종을 하였다.
지금도 그랬다. 아환이 눈앞에서 혼자 즐길것을 말하자 다리를 벌리고는 스스로의 성감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유방을 쥐었다 놓고 유두를 꼬집었다. 아랫쪽의 입술
을 매만지다가 음핵을 슬슬 어루만져 홀로 쾌락을 즐기는 것이었다. 물론 그 동안 아환이
악서령에게 단순히 입으로 명령만 한것은 아니었다. 악서령의 등과 가슴 전신 곳곳에 나있
는 붉은 선들이 그것을 보여주었다. 아환은 악서령과의 교접을 하면서 수시로 손에 들고 있
는 나무회초리로 악서령의 여기저기를 후려쳤다. 처음에는 고통에 못이겨 꿈틀거리던 악서
령이 계속된 쾌락과 흥분의 시기에 작열되는 매에 길들여지는지 고통스러운 신음이 색깔이
변해 흥분된듯한 교성이 묻어나왔다.
휘잇!
쫘악!
" 아악..하윽..아아.."
한차례의 회초리가 악서령의 가슴에 떨어졌다. 붉은 선이 새로 하나 생겼다. 일순 고통스러
운듯 아미를 찡그리던 악서령의 눈매가 스르르 풀어지며 계속 자위를 이어가며 비성을 흘려
대었다. 아래는 물기가 홍건히 젖어 악서령이 손을 빨리하자 물기어린 소리를 내고 있었다.
틀림없이 악서령은 강압적이지만 일정 부분을 스스로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환은 내심 웃음이 흘러나왔다. 지난번 대결을 펼쳤던 목영근의 눈치를 보아하니 이 화산
의 여제자를 무척 흠모하는 듯 보였다. 악서령을 볼때 몽롱한 빛이 나는 목영근의 눈이 기
억에 되살아 났다. 그러면서 발가벗은 채 사내의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가슴을 드러내고 비
처를 어루만지는 악서령의 행태와 기억이 겹치자 웃음이 연이어졌다.
" 푸하하하.."
악서령이 그런 아환을 약간의 의아한 기색이 실린 눈으로 쳐다보다 자위를 계속하며 홀로
의 열락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화르르..탁...탁..
동굴속의 구석에서 아환이 나뭇가지에 불을 붙혀 모닥불을 만들고 있었다. 주위에 야생의
토끼가 하나 놓여있었다. 아마 식사를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아환이 불가에 앉아 뒤적거리며
불씨를 키우고 있었고, 그의 옆에서는 악서령이 발가벗은 상태로 엎드린 상태에서 얼굴을
아환이 하반신에 묻고 무언가를 입에 머금고 있었다.
쯔으읍...
빨아대는 기성..기묘한 소리가 불씨가 튀어대는 소리와 어울려 작은 공간에 울려퍼졌다.
" 쓸모 없는 계집. 한번도 음식을 해보지 않았다니.."
씹어 뱉듯 아환의 입에서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환은 산토끼를 하나 잡아와서 악서령에게 요리를 하라고 던져놓았다. 그러나 고이 자란
명문가의 금지옥엽인 악서령이 부엌일을 하였을리 없었다. 시녀나 아랫것들이 알아서 다 먹
음직스러운 식사를 차려올리지 직접 나서서 주방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게다가 살아있는
동물을 잡아서 요리를 해본적은 더더욱 있을리가 없었다. 그에 반해 아환은 어려서부터 떠
돌아다니며 각종 희안한 것들까지 먹어본 경험이 있었고, 혹시 작은 다람쥐하나라도 잡게되
면 포식을 하는 날이어서 눈에 불을 키고 산을 뒤진 경험이 있었다. 아환 뿐만 아니라 어지
러운 세상의 힘없는 대다수의 서민들이 그러하리라.
아환은 직접 자신이 토끼의 가죽을 벗기며 속의 내장의 빼어낸다음 구울 생각을 하고 악서
령에게는 늘 하던일, 입으로 아환을 즐겁게 하는일을 시켰다. 어느정도 모닥불의 화력이 오
르자 아환은 나무에다 토끼를 꿰고 불위에 올려 놓았다.
육질이 익어가는 냄새가 노릇하게 동굴안에 퍼졌다. 근근히 배어있는 지방이 화기에 녹아
흐르며 지글지글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를 내었다. 며칠간 제대로 식사다운 식사를 하지 못
한 악서령은 입가에 군침이 도는 것을 느꼈다. 불위의 토끼가 붉은 색에서 점차 퇴색되어가
며 향긋한 향을 흘려대었다.
아환은 어느 정도 고기가 익자 이곳 저곳에 칼집을 넣은 다음 속까지 골고루 익혔다. 아환
역시 군침이 도는 것을 느꼈다. 악서령을 길들이느라고 며칠간 나무열매와 물로만 끼니를
이어갔다. 비록 어릴때부터 초근목피의 생활을 했던탓에 익숙한 아환이었지만 막상 토끼를
잡고 불위에 고기를 올려놓아 그 익어가는 소리와 모습, 냄새를 맡고 나니 절로 회가 동했
다.
불위에서 토끼고기를 걷어내고는 아환은 길게 토끼를 찢었다. 악서령의 머리를 툭툭 쳐서
하체에서 입을 떼게 한다음 고기를 건네었다. 악서령은 뜨거워 고기를 이손 저손으로 옮겨
잡으며 바람을 불어 화기를 식혔다. 좀 식었다 싶자 악서령은 한 조각을 떼어내어 입에 넣
고는 잘근 잘근 씹었다.
싱거웠다. 질기고 맛이 없었다. 산해진미만 먹어오던 악서령의 입맛에는 도저히 먹기가 힘
들 정도였다. 질긴 가죽을 씹은 듯 고기는 냄새만 좋았지 먹을게 못되었다. 악서령은 입안의
고기를 뱉을려고 하다가 아환을 쳐다보니 맛있게 잘근 잘근 씹어 먹는 아환의 모습에 감히
입안의 음식을 토해낼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입안의 고기만 계속 우물거렸
다. 그러더니 간신히 한조각을 억지로 목에 넘기고는 손에 들은 고기조각을 슬며시 아환에
게 밀어내었다.
" 별로 배가 고프지 않은가 보군."
아환은 무뚝뚝하게 내뱉으며 계속 자신의 먹는 일에만 열중을 하였다. 악서령은 고기를 내
려놓고 한쪽 구석에 가서 고개를 머리사이에 파묻고 조용하게 앉았다. 그런 악서령을 보지
않아도 아환은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떤 심정인지 대략 짐작이 갔다.
' 좀 더 고분고분 하게 할 필요가 있어..'
아환은 몇 조각의 토끼를 더 찢어내어 입안에 넣고 씹어 목구멍으로 넘긴후 식사를 마무리
했다. 일어나서 구석에 가서 나무로 만든 물통에 담긴 물로 손을 살짝 씻은후 그 옆에 있는
자신의 칼을 집는다.
아환은 칼을 가지고 불쪽으로 되돌아와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칼을 거꾸로 하여 손잡이
부분을 모닥불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 센 불은 아니지만 쇠를 일정의 온도로 달구는데는 충
분한 열기가 남아있는 화력이었다. 아환은 한참을 칼을 그 상태로 불에 달구었다. 원래 묵철
이나 묵현금 자체가 워낙 견고한 금속이기에 새빨갛게 가열을 할려면 규모있는 대장간의 화
로를 이용하여야 하나 지금 아환이 필요로 하는 것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아환은 되었다 싶은지 도신을 잡은 손을 들어올리곤 고개를 돌렸다.
" 이리와."
악서령이 고개를 들고 아환을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환의 곁으로 왔다.
" 여기 누워."
악서령은 아환이 칼을 들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였지만 그 말에 거역할수 없어 앞에 반듯이
누웠다. 손 역시 아환이 싫어해서인지 비부를 가리지 않고 옆구리쪽에 붙였다.
" 내가 증표를 남겨주지. 네가 내 소유라는 것을.."
악서령의 의아한 눈길이 아환에게 돌아서는 순간,
치이이...타르르..
무언가 타는 소리와 고기가 익는 냄새가 동굴안을 갈기갈기 찢는 비명과 함께 터져 나왔
다.
" 끄아악.."
아환은 도신을 잡고 손잡이의 밑부분을 악서령의 비부 바로 위 음핵에서 반뼘 정도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갖다대었다. 시뻘겋게 달구어지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재질상의 문제이
지 일반 쇠붙이라면 충분히 달아올랐을 화기가 담긴 아환의 칼의 손잡이가 악서령의 여린
피부에 와닿자 매캐한 살이 타는 냄새가 피어나왔다.
허옇게 눈자위가 돌아간 악서령은 혼절을 하였고, 하반신에서는 노란 물줄기가 바닥에 흥
건해졌다. 극도의 고통에 배뇨를 한 모양이었다.
아환은 칼을 비부에서 떼고 구석으로 던져 놓은 다음 칼이 닿았던 악서령의 비처 부위를
쳐다보았다.
' 용(用)'
악철옹은 기이한 취향이 있었는지 손잡이에 쓸 '용'자를 새겨 놓았다. 악철옹에게 칼을 받
은 이후 아직 그 의미가 무슨 의미인지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만 악철옹이 부탁의
나머지 하나를 의미한다는 어림 짐작을 할뿐이었다.
악서령의 하이얀 피부, 수없이 붉은 선이 희미한 자국을 남겨있지만 그 위에 붉은 글씨로
직경 두치가 넘는 원에 '용(用)'이라는 화인(火印)을 새기게 되었다. 털이 타서 오그러 들고
살이 화상을 입어 금방 부풀어 오르자 아환은 그 위에 물통의 물을 끼얹어 화기를 빼내었고
악서령의 금창약을 그 위에 발라 간단한 치료를 해주었다.
차가운 물기가 와닿자 나즈막한 신음과 함께 악서령이 눈을 떴다. 아환의 손길이 자신의
비부근처에 닿아있는 것을 느꼈고 화끈거리는 통증이 아래에서 번져오자 악서령은 조심조심
몸을 일으켜서 아래, 자신의 비처를 바라 보았다.
" 끼아아.."
눈의 화등잔만하게 커지고 멍하니 자신의 아랫배 비처 부근의 화인을 뚫어질듯 쳐다보았
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은 텅빈 뇌리의 악서령.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벌린 입에서 한줄기
침이 흘러나오는 것도 모를 정도로 충격을 받은 악서령은 전신을 오들오들 떨면서 촛점 잃
은 눈으로 평생을 함께할 '용'을 지켜보았다.
붉은 낙인이 찍힌 악서령, 그녀가 납치된지 나흘이 지났고 그녀는 아환에게 완전히 귀속되
어버렸다.
[ 창작] 수라기(獸羅記) 38번째 올림 창작야설
(8)
장사의 대표적인 두 집단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히고 난리가 났다.
서가장과 은검문, 가히 장사의 세력을 좌지우지하던 문파들은 자신들의 손님이던 화산의
문도들이 납치, 실종되고 큰 부상을 입자 그 원인에 일조를 한만큼 서둘러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에 전 힘을 기울였다.
화산의 꽃이자 무림사화중의 일인인 악서령을 찾기위하여 수색대가 조직되어 근교를 샅샅
이 뒤지는 가 하면 화산의 대표격인 목영근의 상세를 치유하고자 근처의 이름난 의원들을
초빙하여 목영근을 치료하고자 하였다. 심혈을 기울인 노력을 보여서 목영근은 어느 정도
회복의 기미가 보였지만 정작 중요한 천향매화는 오리무중이었다. 실종이 된지 벌써 오일
사단이 났어도 벌써 났을 기간이었다.
특히 서가장의 장주인 서회각과 은검문의 문주인 은검객(銀劍客) 은불학은 화산의 노기를
건들이지 않기 위하여 전력을 기울였다. 화산의 세력을 등에 업고 지금까지의 위세가 생긴
만큼 화산이 자신들에게서 등을 돌리면 다른 세력과 연계를 맺지 않은 이상 호시탐탐 노려
온 지방의 다른 세력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전 문도와 금력을 동원
하여 동분서주하고 있는 참이었다.
객잔,
아환이 묵고 있었던 객잔에 여러 사람이 안색을 굳힌채로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하나같
이 눈빛이 흉흉하고 서슬이 퍼런 것이 중대한 일이 벌어진 것을 언뜻 봐도 짐작케 했다.
" 허!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천향매화는 무사한지.."
사십대의 중년의 사내가 입을 뗀다. 등에는 고색창연한 검을 멘 단단해 보이는 체격을 가
진 사내,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 것이 독선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태양혈이 불쑥 올
라와 있는 것이 꽤 무공을 정심하에 익힌 듯이 보였다.
" 은 문주. 그러게 말이오. 이것 참. 제발 무사해야 할텐데.."
얼굴에 기름기가 반드르르 흐르는 금의 중년사내가 그 말을 받았다. 꽤 돈이 있어 보이는
집안의 사람으로 보이는 금의의 사내, 서가장주 서회각은 은검문주의 침중한 말에 동조를
하였다.
" 벌써 닷새요. 닷새. 무슨 일이 벌어졌어도 벌써 벌어졌을 시간이요. 게다가 무림의 일절로
꼽히는 미모를 가진 여인이 아니오. 만일 큰일이 벌어졌다면..정말 큰일이 벌어질꺼요."
" 낸들 그걸 모르겠소. 화산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한일, 이를 어쩌면 좋겠소?"
" 일단 화산에 파발을 띄우는 것은 만류를 했지만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아
니겠소. 제발 화산에서 알기전에 우리가 천향매화를 찾아야 할 것이오. 우리가 먼저 그를 찾
는다면 화산에서도 천향매화의 명예때문이라도 일을 더이상 확대시키지는 않을 것이오. 그
렇지만.."
" 그렇지만 뭐요?"
" 우리들이 이 일을 알고 있지 않소? 화산에서 그런 우리를 가만두겠소?"
" 가만두지 않는다면..?"
" 나도 그 이후는 어찌될지 모르겠소. 다만..아니오. 그것은 그렇고 목 소협은 어찌 되었소?"
" 쉽진 않았지만 몇달후면 완쾌될 것으로 보이오. 허나 심중의 충격이 워낙 큰 상태라.."
" 그것도 그렇겠지. 듣자하니 목소협이 천향매화를 사모하고 있었다던데 눈앞에서 천향매화
가 납치되는 것을 보고 자신은 또 그런 그 놈에게 패했으니.."
" 쉬! 말조심하시오. 혹시라도 화산의 귀에 그 말이 들어가면 우리도 좋은 꼴로만 남지는 않
을 것이오."
두 장사의 거두(巨頭)가 이런 저런 근심을 하면서 객잔의 자리를 지키며 앉아 있을때였다.
" 말씀도중에 죄송하지만 저..주문하시겠어요?"
두 사내의 주위에서 기웃기웃하던 작은 계집아이, 청청인지 홍홍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계
집애가 우물쭈물하면서 의향을 물어보았다. 이 두 사람이 장사에서의 영향력을 잘 아는지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물어보았다.
자연스레 두사람의 시선이 꼬마 계집아이에게 향했다. 퉁퉁 부어올라 눈이 제대로 뜨여지
지 않은 계집아이의 작은 얼굴이 보였다. 아환이 떠나고 난후 꽤 고초를 겪은 가 보다. 여기
저기 상처가 얼굴과 몸에 가득하고 단벌의 옷은 거의 다 찢어져 동정심을 자극하기에 충분
하였다.
" 네 년이 그 마두하고 관련이 있다는 그 점소이 계집년이냐?"
차가운 말투가 은검문주 은불학에게서 흘러나왔다.
" 예! 바로 이 년입니다."
그 옆에 서있던 칼을 찬 사내가 은불학의 말에 응답을 하였다.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 다
름아닌 왕칠이었다. 은검문의 위세를 업고 장사의 뒷골목을 행세하다 동료인 장영이 아환에
게 팔을 잃자 은검문에 거짓 보고를 하여 청청과 홍홍에게 심한 고초를 겪게 한 장본인이었
다.
아환의 실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그는 은검문과 서가장, 그리고 화산의 문도가 나서면
모든 일이 잘 해결될 줄만 알았다. 미처 화산문도가 아환을 찾은 것을 모른 상태에서 객점
에 들이닥쳐 아환이 없자 청청과 홍홍에게 그 분풀이를 하였다. 그결과 청청은 몸이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 다시금 앓아 누웠고 홍홍만이 객점에서 수발을 들고 있는 중이었
다.
" 네 이년!"
은불학이 손을 뻗쳐 홍홍의 멱살을 잡아 틀어 위로 쳐들었다. 마르고 앙상한 어린 계집아
이는 은불학의 힘에 끌려 올라가 위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 켁...켁..나으리..왜 이런..큭..끄르륵.."
새빨개진 얼굴을 해가지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은불학의 두툼한 손을 부여잡고 고통을 호
소하는 홍홍이 안스럽다. 하나 일말의 인정도 없는지 은불학은 손을 흔들며 홍홍을 다그쳤
다.
" 이 발칙한 년. 어서 실토를 하지 못하겠는가? 그 흉악무도한 마두가 어디있는지 바른대로
불란 말이다. 어서 불어라!"
" 케켁..전..모르..켁.."
홍홍이 결사적으로 고개를 흔들며 부인을 하였지만 은불학의 귓가엔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
었다. 이제 열살도 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가 무림인의 거친 손길에 핍박을 받고 있지만
그 누구하나 은불학을 말리는 이가 없었다. 주인조차 계산대에서 오들오들 떨며 애써 눈길
을 다른데로 돌리며 외면을 하고 있었다.
' 저 년들을 당장 내보내야지. 저 애물단지들..저 빌어처먹을 잡년들..아유..'
핑!
" 크윽."
갑자기 은불학이 홍홍을 잡고 있던 손을 움켜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은불학은 팔을 주무르
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 곳에는 자그마한 자갈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문밖에서 날
아온 자갈은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와 은불학의 팔꿈치에 적중이 되었고 그 충격으로 은불
학은 손에 잡고 있던 홍홍을 놓쳤다.
자갈에 진기가 실려있지 않았고 외가무예로 단련된 육체이니만큼 외상은 입지 않았으나 상
당한 통증이 팔에 느껴졌다. 은불학은 눈을 부라리며 돌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 왠 놈이냐?"
은불학의 눈길이 시커먼 그림자가 막 들어오는 객점의 정문을 향해 고정이 되었다. 거대한
체구를 가진 한 사람이 막 객잔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환이었다.
은불학은 객점 안으로 들어선 아환을 노려보았다. 차츰 그 눈가에 증폭되는 살기가 어렸다.
칠척장신의 짙은 구릿빛 피부를 가진 외가 무사로 보이는 사내가 객잔의 정문을 막고 서있
자 빛살의 음영때문에 그 용모를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하여도 이 놈이 바로 그 마두란 것을
알기엔 충분했다.
" 네 이놈! 네놈이 그 흉악무도한 마두냐? 비열한 수법으로 화산의 문도를 부상입히고 천향
매화를 납치한 놈이 네 놈이더냐?"
" 비열한 수법?"
" 이놈! 그렇지 않다면 네놈따위가 어찌 고명한 화산의 제자를 감당할수 있겠느냐? 어서 이
리 와서 목을 길게 빼내어 어르신의 처분을 기다려라."
" 왜 명문대파의 사람이 지는 경우는 비겁한 암수에 당했다 생각하는 지 모르겠군."
" 이 놈이? 에잇!"
창!
은불학은 검을 빼어들었다. 찬연한 은빛이 감도는 보검이었다. 화산의 문도가 당했다기에
내심 긴장을 많이 하였던 은불학은 아환의 모습을 보자 그러한 생각이 별 쓸모 없었다고 여
겼다. 그도 그럴것이 아환의 지금 차림이나 외양이 외가계열의 무사나 다름 없었기에 강호
의 밥을 어느 정도 먹었다 자부하는 은불학으로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
종종 무림에서는 자신보다 무예가 터무니 없이 낮은 이들에게 패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
도 내가고수가 외가의 하류무사에게 어이없이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경륜의 차이일
수도 있었고 내기의 순환이나 기타 다른 이유로 인하여 낭패를 보기도 하였다. 은불학 역시
강호에서 나름대로 행보를 했기에 목영근이 비록 화산의 영재이며 무림의 후지기수중 손꼽
힌다고 하나 아환을 얕보고 패배를 하였다고 생각했다. 관자놀이가 불룩 솟아있는 모습을
보면 그런 심중이 더욱 굳혀졌다. 하지만 은불학은 방심을 하지는 않고 은검을 뽑은채 아환
을 노려보았다.
그런 은불학을 별다른 감정이 실리지 않은 듯 덤덤하게 노려보는 아환, 그의 내심은 어린
홍홍에게 무력을 행사한 이들에게 대한 분노가 서려있었지만 표출되지는 않았다. 단지 등의
검은 칼을 빼내어 앞으로 돌려 비스듬히 세울뿐.
거대한 칼의 위용에 잠시 움찔하던 은불학은 병기가 크다고 하여 고수가 아니라는 것은 강
호의 삼척동자도 아는지라 심기를 가다듬고 검을 곧추세웠다.
" 천향매화는 어찌 했는가? 이실직고 하거라. 이놈!"
" 천향매화? 그게 누구지?"
" 네 이 패악한 마귀같은 놈아. 네가 납치해간 여협말이다. 당장 솔직히 고하지 않을테냐?"
" 아! 그 여자? 모르겠는데..그때 납치할려다 그 계집이 도망을 가는 바람에 나도 그년을 찾
을려고 여기저기를 뒤지던 참이었소. 혹시 그대는 그 계집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오?"
" 이놈! 거짓말 말아라. 네 놈이 틀림없이 천향매화를 어찌 했지 않느냐?"
" 아니라고 했지 않소. 혹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오?"
천연스럽게 거짓을 말하는 아환에 더더욱 화가나는 은불학은 마침내 급기야 노기가 충천하
여 잡아먹을듯 아환을 노려보았다.
" 이런 이 미친 악마같은..네 이놈! 정말 쓴맛을 봐야겠구나."
" 쓴맛이라..어떤 것이 쓴맛이지?"
" 여기서 무릎을 꿇을테냐? 아니면 순순히 따라와 은검문에서 죄를 받을테냐?"
아환이 대답없이 도신을 눕혀 도면을 은불학의 정면에 보이게 하였다. 은검문의 다른 사람
들이나 서회각을 비롯한 기타 사람들은 주위에 물러서서 이어질 한바탕의 결전을 기다렸다.
" 내 검을 받아라! 이 마두야!"
은색선이 길게 호선을 그리며 아환을 향해 날아왔다.
캉!
도신을 살짝 비틀어 그 검을 튕겨낸 아환, 은불학이 튕겨진 은검을 회수하고 신형을 돌려
재차 검을 뻗치려고 할때.
' 건곤의 쾌!'
아환의 칼이 일순 시야에서 사라졌다.
투두둑..쿵.
땅에 무언가가 연이어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끄아악!"
내장을 후벼파내는 듯한 비명이 장내를 뒤흔들고 은불학의 몸이 객잔의 바닥에 거세세 떨
어져 내렸다. 은불학의 무릎 밑부분이 잘려져 나가 시뻘건 핏줄기가 사방으로 비산하였다.
떨어진 양쪽 다리는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은불학은 피를 뒤집어 쓴채로 눈을 허옇게 까뒤
집고 바닥에서 바둥거리고 있었다. 단 일식. 초식을 전개한 것도 아닌 빠른 도의 놀림에 수
십년을 강호에서 행보한 한 무사의 삶이 끝났다.
아환은 칼을 거두고 바닥에 내려 세운다음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은검문과 서가장의 사람
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대경실색한 표정이었다. 곧 그 표정은 두려움과 질린 기색으
로 변하였고 동요가 일어났다.
" 네...네...네놈...네놈이 감히 문주님을.."
" 아앗! 문주님!"
" 어엇. 은문주.."
은검문도들의 호들갑스러움에 비해 서가장의 인물들은 놀라고 두려워하기는 하였지만 서가
장에는 피해가 오지 않았기에 가공할 무위를 드러낸 아환과 적대시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
다.
" 데리고 꺼져라."
짧은 말이 아환의 입에서 뱉어졌다.
원독의 시선으로 아환을 노려보던 은검문도들이 이를 바드득 갈면서 일부는 은검문주를 부
축하고 객잔을 빠져나갔으며 일부는 그런 문도를 보호하려는지 칼을 빼어들고 경계를 하였
다.
" 잠깐."
아환의 칼이 수평으로 들려 한 문도의 목근처에 와닿았다. 막 물러서려던 왕칠은 거대한
검은빛을 내는 칼이 자신의 목어림에 와닿자 기겁을 하고는 그 자리에 멈추어섰다.
" 왜..왜 이러시는 게요. 금..금방 떠나라 하지 않았소?"
" 네 놈이 저 어린 계집아이를 저렇게 만들었나?"
아환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리던 왕칠은 그 시선의 끝에 있는 홍홍을 보자 안색이 흙빛으
로 물들었다. 지난번에도 왕칠의 패거리들이 어린 계집아이를 희롱하다가 험한 꼴을 당했는
데 이번에도 또 저 계집년때문에 어렵게 되었다 싶었다.
" 저 꼬마 계집하고 무슨 상관이오? 무슨 상관이 있길래 이리 하는 거요?"
두려움에 가득한 음성.
아환 또한 자신이 왜 이리 분노하는 지 잘 몰랐으나 다만 어렸을때의 자신이 겪었던 설움
이 저 어린 계집을 통하여 비추어지는 듯하여 화가 났을거라 생각이 되었다. 만일 곱게 자
란 명문세가의 자식이라면 이토록 화내지 않았으리라. 허나 힘없는 약자인 홍홍이 강한 자
에게 밟히는 것을 보니 분노가 치밀었다. 게다가 시선을 홍홍에게 향하자 당장 눈에 띄는
처참한 몰골이 더더욱 화를 부채질하였다.
" 상관? 없지. 그럼 너희들은 왜 저 계집아이를 괴롭히는 거지?"
" 그야..그것은..그러니까.."
" 재미로 그랬나? 약한 자가 밟혀 꿈틀거리는것이 그리 재미있고 흥미로왔던가? 좋아. 나도
그런 재미를 한번 알아보지."
퍽!
칼을 거두면서 주먹을 말아쥐고 왕칠의 아랫배를 후려쳤다.
" 쿠웍!"
눈이 튀어나올듯 부릅뜨여지고 상체가 굽혀졌다.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이 되었고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다가 이어서 극심한 아픔이 찾아왔다.
" 으어억!"
쓰러질려는 왕칠의 뒷춤을 잡아드는 아환의 커다란 손.
" 아직..아직..재미가 막 생길려는데.."
퍼억!
" 끄어어억.."
똑같은 부위에 주먹이 다시 날라갔다. 왕칠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고통이 밀려
오자 신음소리도 뱉지 못하고 입만 딱 벌린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약간의 피가 속에서
올라와 입가로 흘러내렸다. 내장에 상처를 입은 모양이었다.
" 호오..재미있는데."
퍽!
" 우어어.."
분수같이 핏줄기가 입에서 뿜어져 나와 바닥에 퍼졌다. 속을 뒤흔들어 갖가지 오물과 함께
왕칠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선연한 피뭉치가 울컥울컥 흘러나왔다. 왕칠의 눈이 빛을 잃었다.
아환은 그런 왕칠을 잡고 있던 손을 떨치듯 놓고 던져버렸다.
" 어이쿠.."
은검문도들이 왕칠이 날아오자 무의식적인 반사로 받은후 뒤로 넘어졌다. 재빨리 일어난
은검문도들이 왕칠을 안고 객잔 밖으로 사라졌다.
아환은 은검문도들이 떠나자 눈을 돌려 객잔안을 둘러보았다. 파리하게 질린 안색을 한 몇
몇의 사람들이 발이 얼어붙은듯 객잔 안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아환의 눈치만을 볼뿐이었다.
그 중 서가장주인 서회각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진바 금력은 대단하여서 호남성의 상권을
뒤흔들만큼 재력은 가지고 있었지만 무공에 관한한 백지나 다름이 없었다. 그에 한이 맺혀
화산에 거금을 투자하고 자식을 입문시켰는데 앞의 이 덩치 큰 놈에게 당해 앓아 눕고 있으
니 속에서 천불이 났다. 더구나 믿었던 은검문주 마저 제대로 붙어 보지도 못하고 저렇게
병신이 되어 나갔다. 두려움과 원한이 교차하였다.
아환의 눈빛이 와닿자 움찔, 몸이 떨렸다.
' 왠 놈의 눈매가 저리..'
" 내게 볼일이 있소?"
절로 고개가 좌우로 세차게 흔들렸다.
" 아니오. 절대 없소. 그런것 절대 없소."
" 계속 이 객잔에 있을거요?"
" 이만 나가봐도 되겠소?"
아환이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살았다는 기분이 들은 나머지 사람들
은 안도감에 속을 쓸어내리고 객잔밖으로 하나 둘 나갔다. 아환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 구석
의 자리에 앉았다.
" 이보시오. 주인장."
아환이 시장기를 느끼는지 배를 쓰다듬으며 객점 주인을 불렀다. 객점 주인이 계산대 뒤에
떨고 있다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 부르셨습니까요. 무사님."
" 간단하게 안주와 술 좀 주시게."
" 예 예, 알았습니다요. 예 홍..아니지, 얘야. 주문이 나왔으니 어서 주방에 들어가 준비하여
라."
홍홍을 괴롭히던 왕칠이 치도곤이 났던 것이 생각나자 식은 땀을 흘리며 홍홍에게 주문을
하였다. 홍홍은 영문도 모르고 주인이 부드러워 지자 고개를 갸웃하였지만 머리를 까닥이고
절을 한후 주방으로 뛰다시피 들어갔다.
" 아니, 주인장. 최고급 술상으로 한번 봐주게."
아직까지 문앞에서 서성이던 서가장주 서회각이 입술을 꼭 깨물며 무언가를 생각하다 계산
대의 주인에게 새로 주문을 하였다. 객점주인은 아직 서회각이 가지 않았냐는 듯 힐끗 쳐다
보다 그 말뜻이 무언가 잘 접수가 되지 않은 듯 했다.
" 저 무사님의 술상 말일세. 내가 부담함세."
서회각은 주인에게 주문을 마친후 천천히 발을 옮겨 아환의 탁자 옆에 다가갔다. 아환은
서회각이 옆에 다가왔으나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서회
각은 안색을 가다듬고 금새 빙긋이 웃는 낯으로 아환에게 말을 건네었다.
" 무사님. 같이 앉아도 되겠소?"
" 앉으시오."
" 어이구..참 날씨가 변덕스럽소이다. 얼마전까지 후덥하더니 이젠 제법 싸늘한 기운이 돌지
요."
막 가을로 접어들려는 시기이기에 아침 저녁으로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아들이 다치고 정
혼한 집안이 풍지박산이 났고 든든한 배경인 화산 까지도 사단이 났지만 천성이 상인이라서
그럴까? 웃음기도는 얼굴로 부드럽게 말을 꺼내었다.
" 무사님은 고향이 어디시오? 어투를 들어 보아하니 남쪽 인것두 같구 북쪽인것두 같구..허!
종잡을 수 없구려.."
아환이 부모를 잃고 떠돌면서 여러 지방을 전전한지라 어투 역시 혼합된 어투가 흘러나왔
다.
" 용건을 말하시오."
아환이 서회각의 눈을 직시하고 또박 또박 한자 한자 내뱉었다. 그런 아환의 시선이 눈에
들어오자 흠칫 하던 서회각 이내 얼굴 빛을 정색하며 진지하게 말을 꺼내었다.
" 무사님은 혹시 소속이 있으시오? 만약 속해 있는 곳이 없으면 서가장에 한번 몸담아 보시
는 게 어떻소. 내 섭섭치 않게 대우를 해드리리다."
"...."
아무 말 없이 아환의 눈이 서회각의 눈에 맞추어진 상태 그대로 아환은 서회각의 말을 듣
기만 하였다.
" 황금을 원하면 원하는 대로 밀어주겠소. 여자를 원한다면 절색의 처녀를 붙여주겠소. 무공
비급을 원한다면 그것도 사주겠소. 서가장에 소속되어 있다고 해도 내 명령을 따르거나 할
필요는 없소. 단지 서가장에 그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가장은 이 곳 장사에서 우위를 차
지할 수 있을거요. 어떻소. 내 제안이?"
" 무엇이든지 해준다...무엇이든지..이보시오. 내가 그쪽의 식구들을 다치게 하였는데도 개의
치 않고 나와 손을 잡겠다는 거요?"
" 나는 상인이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어든 할 수 있소. 내 아들놈이 당신에게 큰 부상을
입어 몸져 누웠지만 그것보다는 돈이, 내 사업이 우선이오. 어떻소.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
소?"
" 받아들일 생각없소. 그만 가보시오."
아환이 차갑게 말을 끊었다. 그래도 뭔가 할말이 남아 있는지 서회각이 미적미적거린다.
음식이 나왔다. 한상 푸짐하게 차려 왔다고 해봤자 제육을 볶은 거와 오리고기, 송화단 등
과 몇가지 생선요리가 나왔다. 하기야 이런 작은 객잔에서 잘 차려봤자 뭐 그리 대단한게
있을리 없다.
" 드시오. 어이구, 이거 끼니를 걸렀더니 배가 고프구만.."
서회각은 아환에게 저를 권한다음 자시도 수저를 들고 음식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더니 게
걸스럽게 여러 음식을 입에 가져가 맛있게 먹었다. 아환은 음식이 나왔지만 손을 대지 않고
묵묵히 음식을 쳐다 보고 있었다.
조금 혼란스러웠다. 분명 자신과 원한이 있다면 있을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앞 자리에
앉아 저렇게 태연스럽게 식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인의 삶이라
는 것 자체가 아환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았고 서충을 비롯한 서가장의 사람들과 마찰이 있
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더군다나 이 앞의 인물은 은불학을 벨때 파랗게 질려 한구석에서
오들오들 떨지 않았던가?
" 내게 원하는 것이 뭐요?"
일단 부딪히자.
서회각이 음식을 가져가던 손을 멈추곤 아환을 바라 보았다.
" 날 지켜줄 사람이 필요하오. 그대 덕분에 내가 기대했던 방패가 날아갔소. 명문정파라고
으시대는 화산을 잡기 위해 내가 얼만큼 돈을 투자를 하였는지 모를거요. 그대가 원했든 원
치 않았든 간에 그로 인하여 내가 입은 피해가 막심하오. 그렇다고 그 피해를 보상해달라는
말은 아니오. 또 내가 그대를 구속하겠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오. 단지 내가 원하는 것은 그
대가 차후에 나를 도와줄수 있을때 도와달라는 것이오. 이래뵈도 내가 사람을 약간을 볼줄
아오. 그대에게선 내가 여태까지 겪지 못하였던 기세가 풍기오. 나는 무림인이 아니라 그게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대가 거성(巨星)이 될 거라는 추측, 아니 확신이 있소. 게다가
현 그대의 무위가 현 무림의 후지기수 중 으뜸이라 칭하는 사화와 칠룡을 제압한 것으로 보
아 이미 경지에 들어섰다 여겨지오. 언뜻 보기에도 그대는 약관 정도의 나이,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보오."
" 거성? 거성이라.."
" 그렇소. 비록 내가 아직 강호에서 별볼일 없는 삼류급의 상인이지만 세력을 넓히기엔 무
력이 필요하오. 그것도 절실하게..혹시 그대는 황금벌이라고 아시오?"
" 황금벌?"
" 못들어본 모양이구료. 황금벌은 강북의 상인들의 연합단체요. 아직 표면화되있지는 않지만
강북의 상권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있는 장막속의 세력이오. 그 힘이 강남상권에 포착된
것이 불과 몇개월전인데 이미 강남의 상권을 상당부분 잠식한 상태요."
아환은 서회각의 말에 관심을 기울였다. 다름아닌 상계의 판도는 곧 무림의 판도와도 직결
되는 문제이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차후 아환이 무림을 행보할때 반드시
얻어야할 힘 역시 재력이었기에 아환은 서회각의 설명을 묵묵히 경청하였다.
" 그대는 강남의 상인들은 왜 그런 결집을 하지 않는가 하고 물을 지도 모르오. 바로 거기
에 무력이 개입된 흔적이 보이오. 얼마전부터 강남의 상권을 잡고 있는 몇몇 거상들이 하나
둘 제거 되었소. 명목상으로는 지병이나 급사로 되어있지만 암살을 당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이오."
아환은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서회각이 말하는 것 자체가 기밀일 수 있었고 외부에 알려
져서는 안될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지 않소?"
" 그대는 내가 괜히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시오?"
"...?"
" 이게 연결고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시오? 난 이미 내 속을 그대에게 보였소이다. 하나더
패를 보여 드리지. 내 재산을 원하는 만큼 쓰도록 해드리겠소. 내가 세력은 미약하지만 가진
재산은 적지 않소. 현 중원의 상인 중 나보다 금력이 많은 인물이나 세력은 그리 많지 않을
거요."
아환이 서회각을 빤히 쳐다보았다. 서회각의 심중을 읽고 싶었다.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이길
래 이런 솔깃한 조건을 저렇게 쉽게 내뱉는 것일까? 그러나 아환은 아무 것도 읽어낼 수 없
었다. 연륜이나 경험상 아환은 남을 판단하기에 미욱한 점이 많았다. 그렇게 서로를 뚫어지
게 쳐다보기를 꽤 오랫동안 하던 두사람, 마침내 아환이 먼저 입을 열었다.
" 난..당장 그리 할 수 없소. 내가 배울 것이 있어서요. 앞으로 내가 무림에서 활동을 할려면
장주의 힘이 필요로 할지도 모르오. 허나 여기서 장주를 도우며 멈출 수는 없소. 장주가 말
한 것은 뇌리 속에서 지워버리도록 하겠소."
" 그럴 필요 없소."
"..?"
" 오년을 기다리겠소. 내 나이 마흔 여섯, 아직 젊은 나이오. 비록 그대가 내 숙질뻘 밖에
되지는 않지만 동업자로서 말을 하겠소. 앞으로 오년 후 나를 도와주시오. 물론 내가 말한
조건은 지금부터 적용될 것이오."
서회각은 품에 손을 넣더니 전표다발을 꺼내들고는 아환에게 건네었다.
" 더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시오."
일견 보아도 꽤 거액이 내밀어졌다. 아환은 그 돈을 물끄러미 쳐다 보다가 입을 떼었다.
" 내가 원하는 사람에게 이 전표를 줄수 있겠소?"
" 그 전표는 이미 그대의 것이오. 그대가 어찌 처리하든 이미 그것은 그대의 소관, 내게 허
락을 구할 필요 없소."
" 내 것이라..이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장주와의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이겠군."
아환은 전표를 묵묵히 쳐다보다가 품에 전표를 집어 넣었다. 그것을 보는 서회각의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계약이 이루어진 것이다.
" 그대가 배울 것은 무언지 말해줄수 있겠소?"
" 글쎄..나도 그게 무언지는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의 나의 독보(獨步)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 정도 밖엔 뭐라 말하기가 그렇소."
" 독보? 독보라 하시었소? 지금."
아환이 특유의 감정이 실리지 않는 시선으로 서회각을 바라보았다. 서회각은 그 눈에 실린
아환의 내심을 파악하려 집중을 하였지만 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내가 과욕을 한것은 아닌지.."
뜻모를 말이 뱉어졌다. 그러면서 서회각은 앞에 있는 저를 다시 들고 차디차게 식어버린
음식에 가져가서 음식을 집어 올렸다. 아환 역시 식어 맛이 없는 식사지만 아무 말없이 배
에 음식을 채워넣었다.
밤이 깊어졌다.
이경쯤 되었을까? 주위사방이 모두 깜깜한 어둠으로 덮여있고 간간히 새어나오는 호롱불빛
이 그 주위만 미약하게 비추고 있는 밤이었다.
아환은 무상심결의 대주천 운기를 마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눈을 뜨니 뇌전이 뻗어나갔
다. 화경의 단계에 접어들어서도 매일매일 운기를 거르지 않았다. 근래에는 외가의 수련을
가끔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을 하였다. 그랬을 경우에는 반드시 내기를 일주천하고 명상
에 들어 무아지경에 접어들었다. 체내의 음양신단은 상당 부분이 용해되어 내기의 증진에
커다란 일조를 하고 있었다. 아직 많은 부분이 남아 있긴 하지만 아환 스스로의 예상이나
사부인 비왕의 일러준 말과는 달리 진도가 꽤 빠른 듯했다.
아환은 근래에 들어 건곤형에 대한 심도 있는 사고를 많이 하였다. 이제 육성가량의 성취
를 하였을까? 아환은 건곤형의 무공 특성상 타무공과 융화되는 건곤형의 무리를 자신이 여
태까지 익혀온 무예와 병합하여 세가지의 기세를 중점적으로 익혀나갔다.
쾌(快)! 붕(崩)! 그리고 화(化)의 세가지 기본의 원리에 충실한 기세로 닦아나갔다. 빠르고
강렬하고 어울리는 세를 정립화 시킬려고 노력하였다. 허나, 아환이 화경에 진입하면서 깨달
은 '나(我)'라는 각성은 아환으로 하여금 얽매이지 않토록 아환을 자유롭게 하였다. 아환은
문득 문득 수련을 하다가 틀에 갇히는 자신을 돌아보고 되돌리다가 혹은 그냥 그 틀에 자신
을 맡기곤 하였다. 검후 역시 진경에 도달해서야 '나'라는 것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
다고 아환이 진경의 단계에 접어든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서 아환은 혼란이 꼬리를 물고 일
어났고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하나가 머리를 들었다. 그렇게 하나하나의 실타래를 풀었다.
똑똑..
창가에서 창문을 살살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들어와."
조용히 창문이 열리고 하얀 그림자 하나가 객실로 들어왔다. 여인, 얼굴을 면사로 가리고
머리는 우아하게 틀어 올려 기품이 있어 보였다. 흰빛의 비단 궁장에 가려 여인의 다른 부
위는 볼수 없었으나 갸녀리고 아름다룬 교수가 궁장의 밖에 나와 있어 이 여인의 피부빛과
살갖의 부드러움 그리고 이 여자의 다른 부위의 미색을 약간이나마 추측하게 하였다.
" 벗어."
여인은 아환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면사로 손을 가져갔다.
" 면사는 놔두고."
손을 얼굴에서 떼더니 여인은 외의를 벗고 저고리로 손을 가져가 옷고름을 풀어 저고리를
고운 몸에서 벗어내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하얀 살덩이..여인은 원래 내고를 입지 않았는지
상류층의 의복중의 저고리만 벗었는데도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풍만한 두 젖가슴위의 유
실이 여체의 움직임에 따라 위아래로 흔들렸다.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싶더니 스르르 치마가 아래로 내려갔다. 곧게 내려 뻗은 절색의
우윳빛 기둥이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 시선을 위로 올리니 무릎이, 알맞게 살집이 오른 허벅
지가, 그리고 두 다리가 만나는 곳에서의 갈라짐..연한 수풀에 덮여있는 붉은 아랫 입술이
삐져나올듯 다리사이에서 고개를 살짝 내밀고 있었다. 그 수풀위로....붉은 글씨, '용(用)'
" 이리와!"
여인, 악서령은 면사를 쓴채로 아환의 가까이 다가갔다. 자연스레 손은 늘어뜨린채 발가벗
은 알몸이 아환의 눈앞에 훤한데도 가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 아래로."
악서령은 아환의 말이 떨어지자 아환의 바지춤을 끌러 내렸다. 언제나 그렇듯 위풍당당한
검붉은 살덩이가 우뚝 솟아있다. 악서령은 면사를 살짝 들고는 아환의 육봉을 입에 넣었다.
그리곤 핥고 빨고...한 손으로는 아환의 남근을 잡고 있고 다른 한손은 어느새 자신의 비처
사이에서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한참 아환의 아랫도리를 입으로 즐겁게 해주던 악서령이 아환의 양물에서 입을 떼고는 몸
을 일으켜 하체를 아환의 남근근처에 가져가 대었다. 홍건한 물기에 젖어 호롱불빛에 번들
거리는 악서령의 비부..그 위의 '용'
장사의 또 하루가 지났다.
[ 창작] 수라기(獸羅記) 39번째 올림 미지정
이번도 길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정을 좀..
(9)
퇴색된 빛깔의 작은 공간, 객잔의 작은 객실안에 허연 동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밝지 않
은 호롱불빛에 반사되어 연노란색의 인체는 여인인양 그 선이 곱고 아름다웠다. 그 하얀 동
체는 깨끗한 백색만 띄고 있는 것이 아닌 붉은 선으로 전신을 장식하였기에 침침한 빛에서
그 적과 백이 어울려 그 꿈틀거림의 미묘함이 더 자극적인 몸짓으로 다가섰다.
악서령은 아환의 하체에서 얼굴을 파묻고 벌거벗은 교구를 작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매
질을 당한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아 악서령의 전신 곳곳에 피멍의 줄이 성긴 그물처럼 악서령
의 온몸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일부는 선의 흔적만 남았지만 갓 새로 생겨 보이는 선명한
핏빛의 붉은 선도 곳곳에 널려 있었고 여기저기 멍이 번져 순백의 살결을 피학적으로 꾸미
고 있었다.
"하아.."
작은 입술이 벌려지고 단숨이 새어나왔다. 연한 붉은 빛을 발하는 설육이 그 입을 열고 나
와 타액에 젖어 칙칙한 검은 빛을 뿌리는 아환의 남근을 휘감고 핥아내리고 있었다. 눈을
반쯤 내리감은 악서령의 눈가에는 회음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는지 홍조가 남아있어 열락
의 기운이 남아있음을 짐작케했다. 엎드린 상태여서 풍만한 악서령의 젖가슴은 침상에 눌려
일그러진 형태로 옆으로 삐져나와있었고 등선을 따라 내려가면 잘록하게 아물어진 허리의
굴곡에 유연하게 아물려졌다가 급격히 퍼져나가 탐스러운 둔부를 형성하였다. 반으로 쪼개
져있는 엉덩이의 갈래에 언뜻 보이는 배설의 공혈(空穴), 근육이 아물려져 있어 흔히 불결한
장소로 여기는 곳 조차 연한 분홍의 색을 띈채 조그마한 무늬를 그려내고 있다. 그 밑, 여체
의 비부는 짙은 붉은 색을 보이는 속살들이 오밀조밀하게 주름이 잡힌 상태에서 틈속에 부
끄러운듯 숨어있었다. 그 비처에서 허연 액체가 약간씩 배어나오고 있었다. 아환의 체액이리
라. 관계를 가진지 얼마되지 않았는지 벌어진 질은 악서령의 움직임과 호흡에 따라 미미한
꿈틀임과 함께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객실 안은 악서령의 진한 체향이 맴돌고 있었다. 천향신맥 특유의 체향이 이성과의 관계를
맺고 성적인 감흥이 더해지며 밀도가 더해져 쾌락적인 향기를 방안 곳곳에 적시고 있었다.
"네가 할일이 있다."
악서령은 아환의 남근을 입에 문채 부드러이 입술로 아환의 육봉을 머금으며 눈을 치켜뜨
고 아환을 올려다 보았다. 그런 눈속에는 의문이나 궁금함 보다는 복종과 기대감이 서려있
다고 보는 것은 무리일까? 악서령은 아환의 입에서 나올말을 기다렸다.
"먼저 화산의 다른 사람들을 네가 알아서 돌려보내라."
악서령의 동체가 움찔하였지만 이내 아환의 양물을 입에 문채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화산
의 사람들을 돌려 보낸다는 것은 사화지연에 자신 혼자, 아니면 아환이 같이 간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악서령은 그것을 거부할 마음도 의지도 없었다.
"또 하나, 두 아이를 가르치라는 것이다. 이 객잔에서 험한 일을 당하고 있는 두 계집아이가
있다. 네 년이 그 아이들을 거두어 무예와 학문을 전수하여라."
악서령이 다시 한번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악서령의 자태가 흡족한지 아환은 입
가에 미소를 띄고는 악서령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대고는 슬며시 쓰다듬었다.
거친 손이지만 부드러운 손길로 아환이 자신의 머리칼을 매만지자 악서령은 지긋이 눈을
감고 아환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신체의 특성인지 아니면 아환이 며칠간 악서령을 길들이며
과거 비왕에게서 구전으로 전수받은 기환이술 중의 방중비법을 사용한 까닭인지 악서령은
성행위에 눈을 떠가고 있었다. 악서령은 얼마전까지 자신의 육체가 이토록 음란할지 생각도
못하였다. 남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혼례를 지내고 그 이후에 교접을 하는 것인줄로만 알았
다. 명가의 여식으로서 남녀상열지사는 불경스러운 일로만 생각했기에 악서령은 남녀관계를
가짐으로서 쾌감을 얻는 것 자체를 부인한 적도 있었다. 단지 이세를 생산하고 남자의 쾌락
을 받아주는 것이 여자의 육체의 존재가치 인줄로만 알았다. 그 생각은 아환에게 무자비한
첫 강간을 당할때까지만 하여도 유지되었지만 아주 미세한 균열로 시작된 사고의 붕괴는 아
환의 매와 강요된 성적의 자극에 상반된 혼란에서 오는 이상한 감정이 급기야 성적인 쾌락
으로 전환되자 그 무너짐의 가속도가 붙어 어느 정도 악서령은 자신의 육체가 쾌감을 즐긴
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그러한 것을 인지하였을때에는 혼란이 가중되었으나 이제는 그것마
저 익숙하여졌는지 옷을 벗으면서, 아환의 양물을 입에 물면서, 나중에는 아환의 손매나 회
초리가 휘둘러질때도 두려움과 함께 은근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아환이 서가장에 돌려보내준 것이 그저께, 오늘이 삼일째. 삼일 동안 무공을 회복한 악서령
은 매일 밤 아환을 다른 이가 알지 못하게 조심스레 찾아왔고 아환의 명령에 따라 몸을 움
직였다. 삼일동안 하루도 맞지 않은 날이 없었고 회초리가 흰 육체에 내려 꽂힐때에 찾아드
는 극심한 고통에 이불을 입에 문채 수차례 비명을 질러대기도 하였다. 회초리가 들릴때마
다 절망과 공포에 떨어 갸녀린 여체가 파르르 떨렸지만 악서령은 아환의 가학을 한번도 회
피하지 않았다. 무공을 회복하였기에 아환에게 대항하거나 도망갈 수도 있었다. 몰래, 아환
이 눈치채지 않도록 야음을 틈타 화산으로 되돌아갈수도 있었다. 허나 그러기엔 악서령이
아환에게 느끼는 무서움과 종속감이 너무나 컸다. 아랫배에 새겨진 화인(火印)도 그런 악서
령의 복종심에 일조를 하였다.
아환이 눈을 스르르 내려감았다. 눈주위에 주름이 잡혔다. 한차례의 교접이 끝나고 악서령
의 입속에서 다시금 발기한 아환의 육봉이 또한번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아환은 손을
늘어뜨린채 전신을 악서령이 하는대로 맡기고 있었다.
"우웁..꿀꺽..꿀꺽.."
악서령의 식도로 아환의 정액이 넘어갔다. 아예 아환의 남근을 입속에 뿌리부근까지 집어
넣은채 악서령은 아환의 사정을 입으로 고스란히 받아내고 삼켰다. 마치 맛있는 음료를 마
시듯 한방울도 새어나가지 못하게 입술을 오므리고 아환의 토정(吐精)을 받아들였다.
악서령은 아환의 사정이 완전히 끝나고 아환의 성기주위에 남아있는 체액의 잔처리까지 다
하고서는 아환의 하체에서 입을 떼었다. 그리곤 상체를 세우고 아환의 앞에 곳곳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침어낙안이니, 폐월수화니 하는 각종 미사여구로 형용하기엔 모자랄 정도로 아름다운 악서
령의 미안. 터질듯 풍만하면서도 곧게 솟아 모양을 잃지 않은 젖가슴. 미끄럽게 내려간 군살
없는 전신 육체의 선. 그리고 둔부와 비처. '용'까지...악서령의 극미의 육체가 아환의 눈앞에
반듯이 펼쳐졌다.
아환은 그런 악서령의 여체를 슬쩍 한번 보다 은근한 욕정이 다시금 생겨남에 내심 쓴웃음
을 지었다.
'집착인가? 욕망인가?'
아환은 고개를 흔들고는 나즈막하게 명령을 내렸다.
"물러가라."
악서령은 일어서더니 주섬 주섬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를 집어들었다. 희멀건 허벅지를 타
고 내려온 아환의 체액이 말라붙은 자국이 선명하였다. 현재까지 자라오면서 청결함을 경서
와 같이 지켜왔을터인데 사내의 정액과 자신의 애액이 비처에서 아래까지 흘러내린 흔적을
전혀 개의치 않은듯 치마를 두르곤 저고리를 끼어 입었다. 애초부터 속곳은 전혀 입지 않은
모양인지 치마와 저고리를 걸치니 남아있는 옷가지가 없다.
"사화지연까지 일주일 정도 남았군. 내일 출발하자."
"예."
악서령이 흠칫 고개를 숙인상태로 가늘게 몸을 떨다가 공손히 대답을 하고 올때와 마찬가
지로 창문을 소리없이 열고는 경신술을 발휘하여 창을 박차고 신형을 솟구쳐 서가장쪽으로
사라졌다.
아환은 악서령이 사라진쪽을 힐끔 한번 쳐다보다 시선을 돌려 눈을 감고는 생각에 잠겨들
었다.
'사화..사화라..악서령의 말에 의하면 사화 중 악서령과 가장 친분이 있는 여자는 혈장미 석
영이고 악서령을 제일 따르는 게 제갈수란이라고 했다. 난화성녀는 범접기 어려운 위엄이
있어 항시 어렵다고 했지. 난화성녀는 무림과의 별개인 성의전의 인물이고..성의전이 중원의
사람 모두에게 신망이 두텁다는 것을 감안한다면..오대세가라..제갈수란이 제갈세가의 독녀라
고 했겠다. 제갈세가가 사내가 없어 차기 가주로 올라설 가능성이 있다 하였지.. 혈장미는
홀로 행동하고 세력이 없어 잠시 종적을 감추어도 그리 무림에 알려질 가능성은 적고..난화
성녀는 지극히 여인적이라고 평을 하였지만 어느 정도인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유가형이라..
석영, 제갈수란..사화..무림의 세력의 판도로 따져보면..으음..'
아환의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갔다.
'혈장미 석영이 무예가 제일 높고 제갈수란이 그 무위가 가장 낮다고 했지만 유가형의 무위
는 잘 모른다고 했다. 다만 고절할 거라는 예측을 할뿐이라고..제갈수란은 무공은 대단하지
않으나 지혜와 학문이 뛰어나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고..계교를 쓸려고 해도 나머지 삼화
는 악서령처럼 쉽지는 않으리라. 게다가 칠룡 중의 몇 명과 그녀들을 흠모하는 자들이 항상
그녀의 근처에 맴돈다고 했으니 자칫하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을 터..무광(武狂)이라고
하는 혈장미의 무예는 나를 능가할수도 있다. 과연 사화를 다 손아귀에 쥘 수 있을까? 사화
를 한 손에 쥔다면 그에 따르는 세력들만 해도 꽤 될텐데..칠룡, 칠룡이 문제로구나. 제갈수
란과 유서형은 칠룡 중의 인물과 정혼을 맺었다 하니 더더군다나 쉽게 넘어뜨리지 못할텐
데..칠룡..칠룡이라..'
무림칠룡.
무림사화와 함께 현 백도무림을 대표하는 청년 무인들이다. 무림의 대표적인 세력들의 제
자나 후손들로 각 문파들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자들이다.
만검창룡(萬劍蒼龍) 남궁비
오대세가 중 남궁세가의 적자. 가전무예인 환검계열의 무공을 거의 극성까지 연마한 것으
로 알려진 칠룡의 수좌. 칠왕 중의 일인인 진천도왕에 눌린 남궁세가의 위상을 다시 높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천왕신맥이라는 제왕지맥을 선천적으로 지니고 출생하여 재질이 뛰
어나고 타인을 압도하는 기도 또한 일절이라 불리운다. 난화성녀 유가형과 정혼한 상태.
우성(牛誠)
소림의 제자. 현 장문의 사제로 전대의 칠왕 중 쌍제로 평함받는 공료의 절예를 이어받은
촉망받는 오파의 후지기수. 무림의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사부와는 달리 적극적인 세간
의 무림사에 관여를 하며 보여준 무공이 가히 절세라 여기어져 칠룡 중 하나로 손꼽힌다.
내공은 일파의 장로급 이상 수위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궁비와 칠룡 중 가장 강한
이인으로 꼽힌다.
패왕권(覇王拳) 황보두균
황보세가의 차남. 장대한 신체를 바탕으로 한 가전무예인 천왕권의 전수자. 산동성의 패주
로 군림하는 황보세가 출생으로 장자인 철혈사자 황보경균을 비무로 꺾고 황보세가의 가업
을 잇기로 결정되었다. 원래 칠룡은 형 황보경균의 몫이었으나 패왕권이 황보경균을 꺾은
후 황보경균이 돌연 자취를 감추어 자연스레 칠룡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매화서생(梅花君子) 목영근
사정 중의 화산의 일대제자. 화산 장문의 수제자로 매화검에 조예가 깊어 차기 장문감으로
지목받고 있다. 화산의 동배인 사화 중의 천향매화 악서령과 교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
다.(이는 악서령이 말한 부분이 아님. 차후에 아환이 알게 됨.)
일도단혼(一刀斷魂) 팽무
역시 오가 중 하북 팽가의 적자. 칠왕 중 진천도왕의 손자로 진천도왕의 의발을 이었다 알
려졌다. 항시 도를 어깨에 메고 다니는 특이한 버릇으로 유명하다. 남궁비에 견주어 볼 때
반수가량 아래로 여겨진다. 사천당가의 여식과 혼례를 올렸다.
곤륜제일룡(崑崙第一龍) 수가위
오파 중 곤륜파의 제자. 곤륜파 자체가 무림에 별 활동을 하지 않은 관계로 세인들이 잘
알지는 못하나 사년전 강북에서 혼란을 일으키던 혼세이흉을 단신으로 제압하여 무인들의
입가에 오르내렸다. 정확한 무위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남궁비나 우성에 버금간다는 평을 받
는다.
천수독룡(千手毒龍) 당철의
사천당가의 장손. 당가의 암기 수법과 독술에 일가를 이루었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높은
명성을 날리는 인물. 가문의 특성상 사람들이 꺼려하는 당가의 출신이라 독보적인 행동을
많이 하고 있다. 혈장미 석영과 혼담이 오고 간다.
아환은 칠룡에 관한 말을 하나 하나 되새기며 차후의 행보를 고민하고 있었다.
'제갈수란이 방계의 후손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지. 그도 그럴 것이 아무래도 계집이니
원로들이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게다가 타고난 미모 때문에 많은 사람들
이 제갈수란의 미모만 생각하지 그 뛰어난 지혜나 학문은 논외로 생각한다 하였겠다....'
아환의 눈썹이 슬쩍 가운데로 몰렸다. 곰곰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양. 그러더니 눈살이 서
서히 펴지고 눈빛이 빛난다. 어떤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내일 형산으로 출발이다. 가능하면 가는 도중에 사화 중의 아무나 하나를 만나야 수월할터
인데..'
약간의 상념을 끝으로 아화은 모든 생각을 접고는 휴식을 취하려 눈을 감았다. 곧 아환은
수면에 빠져들었고 이제 본능화된 무상심결이 자연적으로 아환의 체내의 기를 운용하며 전
신을 휘감아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