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수라기 2부 습공(習功) 1장 등(登) (1) 창작야설
(1)
후욱! 후욱..
거친 숨결, 가쁜 듯한 숨소리가 적막속에서 휘돌고 있었다.
비스듬히 손을 들어 상반신을 막는 듯하였고 좌수는 허리춤에 정권을 감아 붙였다. 한발은
앞으로 가볍게 하여 언제든지 앞차기가 가능하게, 뒷다리는 상당부분의 체중을 실은 상태
에서 단단히 버티고 서있는 상명군. 날씨 탓인지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 후우..이 새끼, 무술 한다 깝작거리더니..제법 하는데. 감쪽같이 속았어, 감쪽같이..이 개같
은 놈이 그동안 봐줬더니 이 새끼가..후욱..후욱.."
꽤 지친 듯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아환을 노려보고 있는 상명군, 두 눈에 살기가 가득하였
다.
그 살기 어린 시선이 멈추는 곳, 일장 정도의 거리에 아환이 서 있었다.
아환 역시 상명군과 별 다르지 않았다.
한 팔을 굽히고 머리위로 올려 두부를 보호하고 오른쪽 발을 굽히고 위로 들어 올려 무릅
을 허리 부근에 올린 상태에서 비스듬히 옆으로 향한 자세. 비오듯 땀을 흘리고 있는 것은
아환도 마찬가지였다. 굳게 다문 입술과 부릅뜬 눈으로 상명군을 노려보며 코로 바쁘게 숨
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 헛, 과연 실전과 수련과의 차이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군. 그리 어렵지 않게 맞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그렇다고 내기를 쓰면 안되고..후..'
상명군이 천천히 좌측으로 몸을 움직였다. 횡보로서 자세를 유지한채로 아환의 측면으로
돌기 시작하였다. 번뜩이는 눈빛이 조금의 틈이라도 발견하려는지 예리하게 아환의 전신을
살폈다.
" 텃!"
아환이 들었던 발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왼발을 뒤차기 형식으로 쭉 뻗었다.
빠른 일격!
타탁!
상명군이 오른쪽 전박으로 아환을 발차기를 쳐낸 다음 정권을 내지르자 아환이 다시 상반
신을 숙이며 좌측 발을 내려 놓고 단영각(斷影脚)의 초식으로 상명군의 정강이 부분을 쓸어
갔다 상명군은 급히 손을 거둬들이고 신형을 띄운 상태에서 나한장의 기법으로 아환의 등
부위를 양손으로 내리치고 아환도 같은 나한장의 수법으로 마주쳐갔다.
" 우욱"
내기를 쓰지 않은 상태이고 상대는 약간의 발경을 첨가한 상태, 아환이 가볍게 신음을 흘
리며 뒤로 세걸음 물러섰다.
" 독사출동"
독초(毒招)! 손가락을 구수형태로 뾰족하게 만들어 독사가 굴속에서 빠져 나오듯 혈도를
가격하여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중수법. 비록 강호에 널리 알려져 있긴 하지만 그 초식의
살기 짙음에 생사를 건 싸움이 아니면 잘 쓰이지 않는 수법이었다.
" 헉!"
아환의 상반신을 급하게 뒤로 젖히며 두팔을 팔방풍우의 자세로 마구 휘둘러 방비를 하며
뒤로 물러섰다. 조금전의 격돌에서 약간의 내상을 입었는지 안색은 다소 창백해져 있었다.
" 선풍각(旋風脚)!"
승기를 잡은 듯 연달아 아환을 공격하는 상명군, 서있는 상태의 사람을 공격하는 선풍각의
형태를 몸을 옆으로 만들어 위에서 내려찍듯이 공세를 취하였다. 아환이 놀라서 두 팔로 안
면부위를 보호하였다.
퍼퍼퍼퍽!
연이은 네번의 가격이 아환의 두팔위로 떨어졌다.
" 크윽!"
아환이 두 팔을 움켜잡으며 뇌려타곤의 초식으로 데굴데굴 굴러 위기를 벗어났다. 그리곤
재빨리 일어나 자세를 가다듬었다. 방금의 공세로 두 팔이 얼얼한듯 슬슬 전박부를 매만지
며 아환은 다시금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 으하하하!! 비루먹은 개꼴이구나. 그따위 실력으로 이 어르신에게 대들려고 하다니..으하하
하.!"
방금전의 우세로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하는 상명군이 노골적으로 웃음을 터뜨리며 아환을
향해 조소를 보냈다.
" 이엽!"
풍진뢰(風振雷)! 풍도십사식의 가장 강맹한 위력을 가진 초식! 공세일변도! 아환이 상명군
에게 밀린다 생각하였는지 강공으로 맞선다.
휘~잉! 휙!
바람소리가 상명군의 귓가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 하하하! 이 정도 가지고.."
껄껄껄 웃는 상명군의 입과는 달리 상명군의 내심은 상당히 긴장되어 있는 상태였다. 권풍
이 스치고 나선 부위가 얼얼하게 쓰라림이 느껴지는 것을 보아 제대로 한방 걸리면 자신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싸움 역시 경험이 칠이고 실력이 삼이라 하였다. 상명군이 바짝 긴장
한 속마음과는 달리 입으로는 아환을 놀리면서 계속하여 아환의 신경을 거슬렸다. 평소에
무공이라면 오직 무이관에서 틀에 짜인 형(形)의 수련과 관내의 수련생들과의 어설픈 비무
그리고 스스로 하는 내기의 수련과 근력을 익히기 위한 몇가지의 동작을 열심히 익혔다고
하나 변수가 순간순간 존재하는 이러한 결전에서는 큰 도움을 받지 못하였다.
' 흐윽! 실전이 이렇게 중요하다니..'
내심 서둘러서 일을 그르치는 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아환, 하지만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나 과녁을 향하여 날아가고 있었다.
" 엽"
크게 정권을 내지른후 아환은 뒤로 물러섰다.
아환의 정권을 간단히 피하고 뒤이어 들어올 공격에 반격을 준비하였던 상명군, 아환이 갑
자기 뒤로 물러서자 일순 초식을 내치지 못하고 자세를 새로 잡았다.
" 이제 밑천이 다 떨어졌나? 이 쥐새끼 같은 놈!"
처음에 손속을 교환하였을때에는 아환의 수준을 잘 몰랐기에 당황하여 허둥지둥한 관계로
팽팽하던 결투는 이제 상명군에게 상당히 기울어져 있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 이 새끼가 이 정도 가지고 내게 덤볐단 말이지. 이 육시할 놈의 자식! 명년 오늘을 네 제
삿날로 만들어주마. 물론 그 제사는 네 조카가 해 주겠지..큭큭큭!"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아까 떨어진 노리개만 쓰다듬고 있는 아환의 누나를 힐끗 보면서
상명군이 이죽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환의 누나라는 여인이 어느새 상명군의 근처에 앉아
있었다. 처음 겨룰때에는 아환의 뒤에 있었으나 둘이 몇번의 손속을 나누고 몸을 수차례 교
환한 후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여인이 상명군과 불과 두자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 이 년 때문이지..이 쌍년!"
퍽!
자신에게 감히 대들지 못하는 존재가 쳐 오르는 것에 대한 심한 분노가 여자를 보니 다 저
년으로 인해 내가 지금 이 꼴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발로 여인의 등을 냅
다 걷어찼다.
" 아악!"
앞으로 푹 고꾸라지는 여인!
꿈틀! 아환의 눈썹이 일그러진다. 비록 자신의 계책에 의하여 이러한 상황을 만들기는 하
였으나 그래도 자신과 관계를 가졌었고 어찌되었든 아환이 보살펴준 여인. 그 여인에 대한
학대에 아환의 뇌리속에선 진청청의 모습이 겹쳐 올랐다.
사내들 속에서 희디흰 동체, 벌거 벗은 몸으로 온갖 희롱을 당하던 자신의 모친..
아환의 눈길이 붉게 물들었다.
" 쯧쯧쯧.."
" 저런.."
" 어허..어찌 저럴수가.."
주위에서 아무 말도 없이 빙 둘러서서 싸움을 구경하던 군중들도 상명군의 행동이 너무 했
다 싶은지 한마디씩 거들었다. 평소 상명군이 행패가 심하기는 하였어도 군소리 하지 않던
사람들이 아환에 대한 동정과 여인이 처한 불쌍한 처지가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 그래! 이 년이..헛!"
쓰러진 여인의 등을 밟고 기고만장하며 주위를 둘러보던 상명군, 갑자기 신음을 내뱉었다.
검집! 화려하진 않지만 담백한 모양의 검집이 지금 여인의 등을 향해 발을 뻗은 상명군의
발과 여인의 등에 멈추어져 있었다.
검집은 상명군의 발에 대어서 상명군의 발을 막고 있었으며, 상명군은 얼어붙은 듯이 꼼짝
도 하지 않고 자신의 발을 막은 검집을 따라 시선을 위로 올리자 그 검집을 잡고 있는 교
수, 그 검집주의 손과 팔을 거쳐 얼굴까지 상명군의 눈으로 들어 왔다.
단정히 틀어 올린 아름다운 검은 머릿결과 반듯하고 흰 이마, 가늘지만 곱게 그린 듯한 눈
썹 밑으론 반짝이는 눈빛에 어울리는 봉목, 오똑 솟은 코..붉은 입술사이로 살짝 내비치는
하얀 치아..갸름한 턱선이 목으로 이어지는...
" 항산선녀.."
신음처럼 새어나오는 검집의 주인..검후가 어느새 인지 검집채로 상명군의 발을 막고 있었
다.
처음부터 검후가 이 싸움을 구경한 것은 아니었다. 평소 다른 이들의 일에 끼어드는 것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검후의 성품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는 것은 그리고 기합소
리와 격투소리등은 검후에게 있어서 큰 흥미를 끼치지 못하였다. 만약 상명군과 아환의 싸
움이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면 검후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아환의 의도
였는지 아환과 상명군이 맞붙은 장소는 포목점 앞, 바로 검후과 매월 고을로 들어와서 항상
들리는 곳이었다. 따라서 검후는 좋든 싫든 포목점에 오는 한 이들의 결투를 볼 수 밖에 없
었다. 게다가 무림인이라 간만에 보는 대전(對戰)에 얼핏 보아서 여인이 쓰러져 있었고 조그
맣게 사람들이 속삭이는 말을 들어보니 대충 두 사람이 싸우는 이유를 알게 되었고 급기야
상명군의 행동에 심중에 분노가 일어 출수를 하였던 것이다.
" 나는..소생은.."
입이 굳었는지 상명군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였다. 검후의 실력도 실력이었지만 지금 검
후의 눈가에 맺혀있는 싸늘한 감정이 그대로 상명군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 이게 무슨 짓인가요? 지난 번에도 한번 제가 교훈을 내린 적이 있었지요."
" 선녀..소생은 단지.."
" 사내라면 기개가 있어야 하고 자신보다 나약한 이들을 돌볼줄 알아야지 핍박하고 괴롭히
면 되겠어요? 더군다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당신은 꽤 오랫동안 이 남매에게 피해를 준
것 같은데.."
서릿발 같은 음성이 고혹적인 입술에서 흘러 나온다. 다분히 정석적인 말투 지만 그 말을
듣는 상명군으로서는 검후의 기세에 잔뜩 기가 눌린 상태였다.
" 오늘은 당신에게 교훈을 강도 있게 해야 될듯 싶네요."
그러면서 검후는 검을 거두는 가 싶더니 다시 이리 저리 흔든다.
" 흐윽! 욱!"
눈으로 식별되지는 않지만 무형의 기운이 상명군의 전신을 휘감는다 싶더니 상명군이 서있
던 자리에서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별다른 초식을 펼치지 않고 단순히 내기만으로 검기점
혈(劍氣點穴)을 쳐내어 상명군에게 금제를 가하는 검후였다.
" 이제 다시는 악행을 하지 못할거예요."
말이 끝나자마자 몸을 획돌려 뒤로 사라지는 검후! 그 뒷모습을 아환이 쏘아보고 있었다.
[ 창작]수라기 2부 습공(習功) 1장 등(登) 2,3 창작야설
죄송합니다. 제가 수요일에 눈을 좀 다쳤어요. 안과계열의 봉합이라 꽤 많이 꼬맸네요..그래
서 며칠간 못 올렸습니다. 넷이 또 말썽을 일으키기도 하였구요. 혹시라도 기다리시는 분들
께 죄송하다고..한쪽눈으로만 쓰니 오타도 많을 듯..
(2)
" 허어..그랬단 말인가? 하긴 그동안 억눌려 있었던 한이 크긴 했겠지.."
무이관의 내전, 상명선이 무거운 안색을 하고 앉아 있었다. 그 앞에서 있는 수련생하나가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상명선의 얼굴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었다.
"... 그래서 항산선녀가 나타나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사부님."
" 아환은?"
" 그 일이 있은 후로 칩거를 하고 있는 지라 저도 잘.."
" 그래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상명선, 옆에 서있는 상운진을 힐끗 쳐다보았다. 상운진 또한 창백한 얼굴
빛을 숨기지 않은채로 수련생이 상명선에게 보고하는 바를 옆에서 듣고 있었다. 상운진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 적무환의 안위 뿐이었다. 자신의 소중한 정랑이 어찌되었든 힘든 격전
을 치루었고 무사하다는 것에 안도의 숨을 내쉬지만 아환이 내상을 입었다는 것 하고 이제
아환의 입지에 관한 근심, 과정이야 그렇다 해도 아환은 상가진의 사람을 상하게 하는 데
일조를 하여 사람들이 앞으로는 아환에게 어떠한 형태이든지 관심을 보일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그 방식이 좋은 싫든간에..
" 그만 나가보거라."
" 예."
수련생이 공손히 읍을 하고 내전 밖을 나갔다.
" 허.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상명선과 상운진 부녀는 아환의 자질에 합당한 명사들을 알아보려고 상가진을 떠났었다.
한 보름 가까운 시일을 잡아 성도에 출행하여 지인들도 좀 만나고 여러 가지 무림 정세 및
친인들의 동향등을 알기위하여 성도에서 며칠 거한 시기에 아환과 상명군이 충돌을 일으킨
것이었다. 이 상황에 대하여서 상명선도 마음이 무거울 수 밖에 없는게 평소 나서길 싫어하
는 자신의 성품과 친척 동생이라하여 상명군의 행패를 알게 모르게 묵과하고 넘어간 점이
자책감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상명군의 상세는 다시는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범인
으로 돌아가 버려 그 흉폭한 성정에 여태 저지른 과오에 피해를 입은 상명군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로부터 그가 당할 위험과 앞으로의 삶의 험난함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더더
욱 마음이 눌려졌다.
" 허! 어찌한다..어찌한다.."
묵묵히 중얼거리는 상명선..
상운진은 그러한 상명선의 고뇌하는 모습을 일견한 후 발소리를 죽여서 내전을 빠져나왔
다.
' 그래도 아환이 무사한게 어디야. 또 아환의 무예가 벌써 이숙(二叔)과 팽팽한 접전을 벌일
정도라니 무공을 접한게 불과 일년여 밖에 되지 않았는데..정말 아환은 대단해..나의 낭군감
으로..어맛! 호호호..'
심각하다가 얼굴에 미소를 짓다가 그렇다가 다시 찡그림을 반복하던 상운진.
' 오늘 저녁에 동굴로 가봐야지. 보름이나 환랑을 못 봤잖아.'
발걸음을 가뿐히 주방 쪽으로 향하였다.
' 후~'
아환이 긴 한숨을 내쉬며 방안에서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단촐한 방안, 침
상에 걸터앉은 아환은 그저께의 결전을 나름대로 상상속으로 되풀이하여 그 당시의 초식하
나, 변식이나 임기응변, 그리고 자세 등을 골몰히 분석하는 중이었다.
' 과연..과연..'
초식을 되풀이 하며 형(形)을 익힘에 충실하였다 생각하였는데 실전은 전혀 그게 아니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상대,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들어오는 공격, 그리고 실전을 꽤 치른 자
만이 할 수 있는 초식의 변환, 즉 변초에 관해 아환은 개안을 하고 있었다.
비왕의 당부가 틀림이 없었다. 많은 실전을 겪어야 한다는 사부의 충고가 다시금 아환에게
절실히 와닿고 있었다. 경험이 그렇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지 아환이 미처 예기치 못하였
었고, 그러기에 이번 계획을 세울때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상명군이 무림에서 비록 삼류에
가까운 무사였을지라도 실전을 어느 정도 치루었었고 틀림없이 자신보다 밑이라 판단했지만
자신이 대전시 열세를 보였음이 그 결과로 나타났다.
' 더 정진해야겠다. 그리고 최소한의 밑바탕은 던져놓았구나. 명분..명분을 약간이나마 잡긴
잡았는데..흐음..'
아환이 검후에게의 접근 방식에 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때였다.
툭..
뭔가 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환의 귓가에 들렸다.
" 누구요?"
"...."
" 누구시오?"
대답이 없었다.
아환이 신형을 일으켜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 으응?"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였을까? 의구심에 주위를 살피던 아환은 문밖 마루에 조그마한
돌멩이가 흰 천조각을 매단채로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아환이 손을 뻗어 집어들고 천조
각을 펼쳤다.
[ 자시에 동굴에서 기다릴께요]
피식, 아환의 입가에 웃음이 흘러 나왔다. 상운진이 왔다간 모양이었다. 아마 그 간의 사정
은 어찌어찌 들었겠지. 사부님도 알고 계시리라. 상명선에게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환은 심중
에 돌덩이가 하나 자리를 잡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시는 은인
이기도 한 분을 속였다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을 느꼈다. 상운진을 이용하고, 동굴에서 만난
여인을 이용하면서도 별다른 죄책감이 느껴지질 않은 아환이었지만 사부를 속인다는 것에
다한 찜찜함은 늘 아환이 가지고 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상념을 떨어 버리려는 듯 아환은 세차게 도리질을 하다 다시 방안
으로 들어가 침상에 벌렁 누웠다. 그리곤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였다. 지금 옆방에서 어떤일
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르고..
아환의 방 옆의 다른 방. 지금 아환의 누나라는 여인이 자리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제의 일이 있은 후 여인은 침상에서 계속 잠만 자고 있었다.
여인은 자리에 누워 옷이 홍건히 젖을 정도로 땀을 흐리고 고운 아미는 잔뜩 찡그린 상태
로 입술을 조금 벌려 미약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 으으으으..아앗! 으으윽.."
자리에서 뒤척이며 몸부림을 치고 있는 여인은 무언가 상당히 괴로운 듯 힘들어하는 기색
이 역력하였다. 작고 고운 두손이 이불을 꽉 움켜쥔채로 잡아뜯을 듯 힘을 주고 있고 두 다
리를 비롯한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얼마나 땀이 흘러나오는지 지금 여인이 입고 있는 침의가 흠뻑 젖어 여인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봉긋한 두 가슴과 하체의 윤곽이 점차 모양을 더 잡아가고..
갑자기 여인이 눈을 번쩍 뜨면서 자리에서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 우웩!"
입에서 핏덩이가 튀어 나온다. 아마 맺혀있던 울혈이 솟구쳐나온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다
시 스르르 여인은 무너지듯 뒤로 쓰러졌다. 그리고는 다시 평안한 모습으로 수면에 빠져 들
었다.
여인의 안색이 화기가 돌듯 하더니 빛이 나는 듯 환해졌다. 어느새인가 여인의 전신에서는
기이한 향이 피어오르고 여인의 전신을 그 향기가 감싸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의, 그것도 남
자들의 욕망을 지극하는 기향이 스물스물 피어올라 그 강도를 더해갔다.
그 기향은 처음에 아환이 동굴속에서 이 여자를 처음 만났을때 여체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
왔던 기향으로 그 동안 여인이 주화입마에 들어있는 동안 배출되지 않던 향기가 아환이 진
기도인을 하지 않았슴에도 불구하고 여인의 전신에서 배출된다는 것은 현재 여인의 상태과
예전과 같지 않음을 의미하였다. 그 기향과 동시에 미미한 기운이 여자의 작은 교구에서 조
금씩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그 기세가 점점 강도를 더하여가고..
캄캄한 어둠이 상가진을 덮어 몇몇 가구에서 등잔을 켜 놓은 듯 희미한 빛점들만 남아 있
는 시간, 상운진은 슬그머니 무이관을 빠져 나왔다. 조그마한 보퉁이를 손에 들고 고운 옥빛
치마에 상아빛 저고리를 곱게 갖춰 입은 후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 뒤꿈치를 들고 조심조심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 에구..환랑이 기다리시겠네..늦었네..'
생각과는 달리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정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에 흥겨움의 정도는
능히 예측되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아직 주위의 눈에 주의를 해야
할 나이와 그들의 사이..그래도 안면에 퍼져나가는 미소는 감출 수 없었다.
' 서둘러야지..호홋!'
어두운 밤길도 문제가 되지 않는 듯 상운진은 익숙한 발놀림으로 산 중턱을 향하여 갔다.
숲을 지나고 길 아닌 길을 지나 아환과의 밀회의 장소에 도착하였다. 그런 후 주위를 한번
휘 돌아보더니 저고리의 고름에 손을 가져갔다. 저고리의 옷고름을 풀자,
딸랑! 방울 소리..
경쾌한 방울소리와 함께 물이 오른 하얀 젖가슴이 불룩 고개를 내밀었다. 내고를 입지 않
은 듯 상의의 옷만 벗었는데도 유방과 유두가 튀어나왔다. 잠시 가슴을 만지작 거리던 상운
진, 서둘러 치마끈을 풀어 내린다.
치마끈을 끌러 치마를 벗어내리는 상운진. 허리에서 치마가 천천히 내려온다.
오목한 허리에 걸려있던 치마의 주름이 풍만히 퍼진 엉덩이에서 잠시 걸려 있다 싶더니 곧
게 뻗은 두 다리를 드러내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 속에는 짙은 남색의 고의가 걸려 있
음이 눈에 확 들어왔다. 옥같이 희고 가늘어 보이는 다리를 치마에서 들어올려 치마를 벗은
다음 아까 벗은 저고리와 함께 단정히 개어 동굴의 입구,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깊숙히
숨겨둔다음 몸을 숙여서 안으로 기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딸랑..딸랑..딸랑..젖가슴이 흔들림에 따라서 그 끝에 매달린 방울이 요동을 치며 맑은 소리
를 좁은 동굴 속에 메아리치게 하였다. 박을 엎어 놓은 듯한 둥글고 희멀건 둔부가 위로 치
켜올라가 발의 움직임에 따라 실룩거리며 묘한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아마 뒤에 여느 남정
네가 이 모습을 지켜본다면 냉큼 바지춤을 풀고 달려드리라..
얼마를 구불구불한 길을 기어가자 빛이 보였다.
' 이미 와 계시는 구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기는 속도가 더더욱 더해졌다. 손과 발을 열심히 놀려 공간안으로
들어가자 탁자 옆의 의자에 아환이 앉아있는 모습이 두 눈에 들어왔다.
" 환랃!!"
담뿍 사랑이 담겨있는 부르짖음..
상운진은 두 팔을 벌리며 아환에게 한걸음에 다가갔다.
" 오셨어요? 제가 너무 늦었지요? 언제쯤 오셨나요? 저녁은 드셨어요? 그동안 건강하셨어
요? 저 보고 싶으셨어요? 혹시 다른 년들이 꼬리는 치지 않던가요?"
다다다다 터져나오는 상운진의 질문에 아환은 빙긋이 웃으며 상운진을 안아 들었다. 언제
까지라도 질문을 퍼부을듯하던 상운진은 아환이 자신을 안아올리자 눈을 살포시 감은채로
맨몸의 발가벗은 젖가슴을 아환에게 밀착시키며 안겨들었다.
" 잘 다녀왔어?"
" 예. 환랑...."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 그래. 재밌는 여행이었나?"
" 예..근데 와서 안 좋은 소식을.."
" 그 말은 그만 하자."
" 예......참! 환랑! 제가 보여드릴 것이 있어요"
아환의 안색이 굳어지는 듯하자 얼른 상운진은 말을 돌렸다. 아환이 냉랭해지면 누구보다
도 힘들어지는 것은 바로 자신..상운진은 자리에서 발딱 일어섰다.
딸랑..방울소리가 경쾌하다..
처음에 자신만만한 태도와는 달리 망설이는 상운진..이내 결심을 한듯 입을 꼭 다물고 고의
로 손을 가져갔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고의끈을 풀고 천천히 고의를 앞으로 걷어내었다.
딸랑..또다른 방울소리..젖가슴에 매달려 있는 방울과는 음감이 틀린 방울소리가 울렸다.
막 고의를 벗어내린 상운진의 비처 부위..얼마 많치는 않았지만 상운진을 가리고 있던 방초
숲이 사라지고 없었다. 매끈한 흰 아랫배에서 그냥 하얀 벌판이 계속되고 그 끝에는 붉은
빛이 도는 살이..그 것도 끝부분은 가늘게 갈라진 틍미 시작되고 그 틈이 시작되는 곳, 반짝
이는 금빛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상운진이 아랫 입술을 꼭 깨물고 다리를 슬쩍 벌려 아환이 그 사이를 잘 볼수 있도록 하였
다. 아환의 눈이 순간 빛을 보인다. 상운진의 갈라진 틈이 시작되는 비처, 상운진의 음핵이
있는 부분에 황금빛 고리에 매달려 있는 금빛 방울이 눈에 들어왔다. 고리의 크기는 성인남
자의 엄지가 들어갈 정도로 작지 않은 크기, 방울 역시 젖가슴에 매달려 있는 방울보다 배
정도 커보이는 크기로 무게가 상당히 나가보였다. 더군다나 빛과 매달린 하중으로 변환되어
있는 음핵을 보니 순금으로 만들어 진듯한 고리가 상운진의 다리사이에서 등불의 빛을 반사
하고 있었다.
아환이 손을 슬며시 뻗어 고리로 손을 가져갔다. 고리를 슬쩍 매만진다 싶더니 고리에 검
지를 끼워보았다. 무리없이 손가락이 들어가고, 아환은 손가락의 첫째마디에 고리를 끼워본
다. 고리의 움직임에 따라 상운진의 음핵도 미묘한 모양의 변화를 보였다. 아환이 손가락사
이에 끼운 고리를 천천히 자신쪽으로 당겨보자 상운진의 음핵역시 아환에게 조금 튀어나온
상태로 변하였고 상운진의 허리가 휠듯이 상체가 뒤로 젖혀지며 비부쪽을 아환에게 들이밀
었다.
" 아흑!"
" 당신이 좋아하실 듯 해서.. 하아.."
상운진은 아환이 이러한 것을 좋아한다 생각하여 스스로 음모를 밀어버리고 가느다란 꼬챙
이나 바늘을 이용하여 음핵을 꿰뚫은 후 황금고리와 방울을 준비하여 음핵에 끼운 모양이었
다.
" 후후후..그래. 좋아. 아주 좋아."
고리를 점점 세게 당기며 아환은 얼굴에 기소(奇笑)를 지었다. 방울과 고리가 당겨짐에 따
라 음핵은 더욱 당겨져 은은히 피가 맺히기 시작하였다. 아직 충분히 아물지 않았는지 아환
이 고리를 희롱함에 음핵은 비틀리고 무리하게 끌림에 핏방울을 내비치고 있었다.
" 으흑..아..하아하아.."
고통이 순간 전기가 오는 듯 전신을 훑어 내려갔지만 길들여진 여체는 이미 그 고통을 쾌
락으로 변신하는 법을 익혀버렸음을..
아환은 검지 손가락에 고리를 끼운채로 엄지를 두덩에 대고 나머지 세손가락으로 비부를
쓰다듬었다. 홍건한 애액이 손바닥으로 흘러내림은 상운진이 지금 얼마 만큼의 흥분을 느끼
는지 가르쳐주었다. 미묘한 손가락의 움직임을 통하여 자극되는 고리에 꿰뚫린 공알과 손가
락에 의해 변형되고 당겨지고 눌려지는 음순과 질벽..
" 아하아아..제발 그만...아니..더 더..아아하학.."
아환의 손바닥은 핏방울과 애액이 범벅으로 엉킨채 손가락으로 상운진의 음문을 희롱하고
있었다.
" 운진.."
" 하아하아...예..아흑.."
" 좋나?"
" 하윽..예...으으.."
" 후후후.."
아환이 손가락을 고리에서 빼내어 손가락을 교차하며 질구를 매만졌다. 그러다가 검지를
질구로 넣었고 몇번 왕복하는가 싶더니 중지를 집어넣는다. 아직까지는 무리가 없는 듯 그
러다 아환이 무명지와 약지를 질구 근처에 움찔거리듯 움직여본다. 이윽고 세손가락이 질구
로 들어가고 곧이어 무명지까지 네 손가락을 상운진의 질속으로 집어 넣었다.
" 악! ...아흠..'
짧은 비명이 나오는 가 싶더니 그 비명은 비음으로 바뀌었다. 아환은 네 손가락을 상운진
의 질속에 쑤셔 넣은 채로 수차례의 출입을 하였고, 찢어질 듯 조여대던 상운진의 질구가
어느 정도는 용납하는듯 아환의 손가락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 아하아..이제 그만..환랑..이젠 더 이상..하아아.."
아환은 그 말을 들은둥 마는 둥 엄지를 손바닥에 붙여보았다. 그리곤 네손가락이 들락거리
는 곳으로 천천히 밀어 보았다.
" 아악!!! 가가..제발 그만..아아학!"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 몹시 심한 고통이 느껴지는 듯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좌우로 미
친듯이 도리질 하는 상운진. 꽉 물은 입술에는 이에 눌려 피가 비쳐진다. 고통에 가득한 눈
으로 자신의 음부를 보던 상운진..어느새 아환의 손이 자신의 음부에 들어와 있음이 눈에 들
어왔다. 주먹까지 아환의 손이 상운진의 질 속으로 들어와 있던 것이다. 아랫쪽의 질입구가
파열되었는지 피가 흐르기 시작하였다.
" 제발..그만..이제 그만..환랑..흐흐흑.."
애원의 눈물을 보이며 아환에게 상운진은 호소하였다. 좀 심했다 싶은지 아환은 손을 상운
진의 질속에서 빼내었다.
" 악!"
아환이 손이 빠져나간 자리. 아직 질입구는 그 탄성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였는듯 퀭한
구멍이 뚫린 듯한 모양으로 얼마간 다둘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차츰차츰 근육이 수축을 하
자 점점 작아지다 아물어 버린다.
" 아흑.."
두 손을 아환의 어깨에서 떼어 자신의 음부로 손을 가져가는 상운진..매우 고통스러운 듯
음문에 손이 닿지도 않은 상태에서 비처를 가려본다.
똑..똑..
한방울 한방울 흘러내리는 붉은 액체..
아환이 너무 했다 싶어 상운진의 머리를 손을 뻗어 감싸 안고 품안으로 끌어 당겼다. 무너
지듯 아환의 품에 쓰러지는 상운진은 서러운지 어깨를 미미하게 들썩이며 오열을 흐느끼고
있었다.
" 미안해.."
아환이 따뜻한 어투로 말을 건네며 품에 안겨있는 상운진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자 상운진
은 조금전의 아환의 무리한 손놀림에 의한 고통으로 생긴 원망이 눈이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상운진은 손을 음문에서 떼어 아환의 허리를 살포시 감아갔다.
" 정말 아팠어요..정말..너무 했어요, 환랑.."
" 그래그래.."
" 환랑이 원하시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지만.."
"..."
부드럽게 아환이 사랑스러운듯 상운진의 머릿결을 손가락으로 빗어내리다가 고개를 들어올
리고 입맞춤을 해준다. 가볍게 입을 맞추다 입술을 얼굴로 옮겨 눈가를 핥아주듯이 입술로
눈주위의 눈물자욱을 훝어주고 콧날을 따라 입술을 내리다 다시 눈에 가벼운 입맞춤. 입술
을 내려 상운진의 입술을 끈끈하게 빨아 주었다.
아환의 입술의 움직임에 황홀한 듯 몽롱한 기분을 느끼는 상운진..
" 다음에 하실때에는 미리 말씀을 하시면 참아볼께요."
아환의 가학적인 욕망에 불을 붙이는 말을 하였다. 상당기간을 아환에게 길들여진 상운진..
자신의 정랑, 아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있어 보였다.
아환이 손을 내려 상운진의 음문을 쓰다듬자,
" 웃!"
아직 고통이 남아 있는 지 가늘게 뻗어있는 눈썹이 일그러졌다.
" 환랑..?"
" 응?"
" 저..뒤로 하시면 안되요?"
서슴없이 항문성교를 먼저 말하는 상운진. 이미 그녀에게 있어서 음문이나 항문은 똑같이
쾌감을 느끼는 성감대가 되어 있었고, 아까의 무리한 아환의 주먹이 들어오면서 질구가 파
열되어 아환이 손길이 닿아도 쓰라림이 느껴지자 아환에게 항문을 이용할 것을 권한다.
" 그러지."
" 예."
아환의 순순한 응답.
상운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환에게 등을 돌린 자세로 다리를 어깨정도의 넓이로 벌린
상태에서 곧게 펴고 상반신을 굽혀 두 손으로 발목을 잡았다. 둥들고 하얀 상운진의 둔부가
위로 치켜 올라 아환의 앉아 있는 얼굴 바로 밑에 위치하고 그녀의 얼굴은 다리 사이에서
아환을 거꾸로 올려보면서 아환의 다음 동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충분한 애액이 흘러나왔고
또 질구가 파열되면서 흘러나온 선혈로 인하여 항문근처는 물기가 흥건하였다.
아환은 의자에서 일어나서 바지춤을 풀어헤치고 우뚝 솟아 있는 자신의 양물을 상운진의
항문에 조준하였다.
한동안의 시간이 흘러, 인시(寅時)가 다가올무렵.
아환은 자신의 품에 상운진의 교구를 안은채로 앉아있었다.
" 운진."
" 예.."
눈을 지긋이 감은채로 평온한 쾌락의 여흥을 즐기고 있던 상운진 아환의 부름에 콧소리로
대답한다.
" 네게 할말이 있다."
" 뭔데요?"
아환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운진은 아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운진."
" 말씀하세요. 가가."
" 나 항산에 오르려고 한다."
"..."
일순 말을 잊은 상운진, 정신을 차려 아환에게 묻는다.
" 무슨 말씀을..?"
" 나 무공을 익히려 항산을 오를 생각이다."
" 무공이라면 지금 무이관에서도.."
" 그런 무공말고..사부님이 훌륭하신 분이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난 더 강해지고
싶다. 더 상위의 무공을 익히고 싶다. 그리하여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킬 수 있고, 내 원
하는 바를 성취하려 한다."
" 그런 거라면 이번에 저와 아버지가.."
" 알고 있다. 나를 위하여 사부님이 명사를 구하실려고 출타하신 것을..그렇지만 너도 생각
해보아라. 네 제가가 아닌 다른 사람을 아무리 친한 지인의 부탁이라고 하여도 과연 사부님
처럼 날 돌보아주실 수 있을까? 그것은 아닌다. 그리고 사부님께 이만큼 은혜를 입었으면
내게 과분하다. 여기서 어찌 염치 없이 사부님께 폐를 끼치겠느냐?"
" 가가..그렇지만.."
" 걱정말아라. 나를 믿지?"
" 예.. 그럼 저는.."
" 내가 일정 수준의 성취를 이룬 후 너를 맞이하마."
"..... 예."
" 너무 심려치 말아라. 그리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을 터이니.."
" 예. 환랑. 전 가가를 믿어요."
" 그래.."
힘주어 상운진을 안는 아환. 맨처음 상운진을 안았을때와는 달리 상운진을 안고 있는 두
팔에 감정이 실림을 아환도 미약하게나마 느끼는 것인지...
(3)
지금 아환이 무릅꿇고 앉아 있는 곳, 무이관의 연무장이었다. 의관을 단정하게 갖춘 상태에
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로 고개를 아래로 약간 숙이고 눈을 내려감은 채 죄를 청하듯
그러나 굳게 다문 입술과 당당해 보이는 자세에선 기개가 느껴졌다.
집무실안,
상명선은 좌수를 이마에 갖다 대고는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뜻과는
그 어떤 것이 벗어난지 이마에 주름이 몇개 잡혀있었다. 그 자리에서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채 거의 반시진가량을 상명선은 고뇌하고 있었다.
지금 그가 고민하는 것은 아환의 죄를 청함이 아닌 그의 앞의 행보를 걱정하기 위함이었
다. 아환을 무술도장에 받아들여서 그를 가르친것이 이제 일년 남짓, 상명선이 무이관을 연
후에 아환만큼 그이 심중에 흡족한 사람은 없었다. 원래 촌락의 무술도장이 그러하듯 사제
관계나 출입관이 여타 문파와는 달리 용이하기는 하였지만 아환의 자질에 내심 욕심이 이는
것도 있었고 자신과의 연구를 통한 비전 무예의 발전을 꾀하고 싶은 마음이 상명선의 바램
속에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환이 훌륭한 스승을 섬겨서 그의 자질에 걸맞는 위
상을 성취하는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한구석엔 자리잡고 있는 것도 상명선은 느꼈다.
' 휴우~'
긴 탄식이 상명선의 입술을 헤짚고 흘러나왔다.
' 그래야겠지. 내 욕심은 앞날이 창명한 한 인재를 썩히는 것이겠지. 그래! 놓아주자. 그리하
여 맘껏 커나갈 수 있게 아환이 원하는 대로 무한하게 뻗어나갈수 있게 하자. 그리곤...'
결정을 내린 듯 상명선이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아환은 듣거라."
" 예. 사부님."
" 내 너의 심중을 대략이나마 짐작하겠구나."
"..."
" 네가 가려하는 바는 있느냐?"
직설적으로 바로 말을 던지는 상명선, 아환이 일순 흠칫하더니 대답을 하였다.
" 사부님께 한마디 여쭙겠습니다."
" 그래, 말해보거라."
" 사부님은 항산선녀를 아시는 지요."
" 항산선녀? 아.."
" 미천한 저의 안목으로 보기엔 그 선녀가 무림의 기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하여 그 기
인을 찾아뵈올까 합니다."
" 그래, 그렇구나..아환아!"
" 예. 사부님."
" 내 비록 안목이 넓다 할순 없어도 나 역시 얼마간의 무림의 밥을 먹은 무사였다. 강호의
이슬을 맞은지 긴시간이 아니었지만 처음 항산선녀라는 기인이 이 고을에 나타나면서부터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을 지켜보았다. 그 결과 몇몇의 기인이 짐작되기는 하더구
나. 그 중에는 전대 고인도 있고..그래, 내 짐작을 말하지. 내 짐작으로서 그 여인이 전대의
기인인 검후나 얼마전 실종된 요후, 아니면 무림의 신비문파로 일부만 기억하는 천궁의 인
물이 아닌가 싶구나. 다 절세무공을 지녔다 여겨지는 자들이지. 천궁은 무림에 몇차례 모습
을 드러내진 않았어도 항상 여인들이 나타났기에..아마 이 세 명 중의 하나가 아닌가 추측된
다. 그 중 천궁의 인물인 듯 싶구나. 알려져 있는 요후의 특성과는 거리가 있고 주안(朱顔)
을 익혔고 화려한 복장을 한 것을 보아 요후라 하곤 싶지만 손속이 자비로운 것을 보면..그
렇다고 검후가 그리 젋어 보이는 것도 이상하고 또 화장과 비단 옷이면 전혀 그와 맞지 않
는 듯...그렇다면 천궁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신비한 기운이며 들은 바에 의하면 상당한 수준
의 고수인듯 싶고..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아직 천궁의 성격은 정파로 알려져 있다. 네가 그
들과 인연을 맺는 다면 상승 무학을 얻을 수도 있겠지. 다 너의 노력과 운이 얼마나 작용할
지.."
" 사부님.."
" 네가 원하는 대로 하여도 좋다. 나와 사제지연을 끊는다 해도 별 상관하지 않겠다. 다만
네가 앞으로 강호행을 할 시에 혹은 그 이후라도 풍도무를 발전시킨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
족하겠다. 앞으로 네가 어떤 길을 가던지 나는 상관않겠다. 그리고..아니다."
무슨 말을 덧붙이려는 듯 망설이던 상명선, 신형을 돌려 내전 안으로 들어간다.
".. 사부님.."
발걸음이 무겁다.
상명선은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 무너지듯 주저 앉았다.
' 허허허..끝내 진아에 관하서 말을 못 꺼내었구나. 저녀석이 의지가 굳으니 나의 심중을 알
테지. 오늘은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 해볼까?'
한참을 그 자세로 더 꿇어 앉아 있다 아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절을 한다. 입을 굳게
다듬고 무거운 안색으로 몸을 굽혀 예를 올린후 아환은 연무장에서 걸어나왔다.
' 두가지만 약속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제가 무이관의 제자였던것을 감사하는 마음을 평생
갖는 것..그리고 운진은 제가 책임을 끝까지 진다는 것..이게 제가 사부님께 반드시 약속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감사하였습니다.'
아환이 비록 자신이 계략을 꾸며 지금까지 이루었다 하여도 인성에서는 상명선과 상운진에
관한 고마움이 항상 남아 있었다.
' 자! 이제 새로운 시작이구나. 후~ '
아환은 바삐 걸음을 옮겨 집으로 향하였다.
집 근처에 와서 아환은 무언가 집이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하였다. 평소의 집과는 다른 듯
한 기분..
아환은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마당에 나무와 풀 쪼가리 같은 것들이 어지럽혀
져 있었다. 시선을 돌리니 아환의 누나라는 여인이 거하던 방문이 어떤 강력한 힘에 의하여
터져 나가듯 찢기어져 있었다. 급히 방에 다가선 아환, 방안의 정경이 눈에 들어 왔다. 방안
은 온통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특히 희고 붉은 빛을 내는 조각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에는 기이한 물체가 눈에 띄었고..아환은 다가가 그 물체가 무엇인지 자
세히 살펴보다가 흠칫 놀람을 금치 못하였다. 그 기이하게 생긴 물체는 다름아닌 사람의 허
리 아래 부분이 구겨져 있는 듯 뭉쳐 있었다. 사방에 널린 흰조각은 이불이나 옷감, 천이 갈
기갈기 찢어진 것이었고 붉은 조각은 피와 사람의 살점이 조각조각 난 상태로 방 온전체를
장식한 것이었다. 아환이 급히 하반신만 남은 유해를 살피자 남자인 듯 남성의 양물이 드러
났다. 그렇다면 여인은 아니었던듯..
' 이 사내는 누구일까? 그 여인은 어디로 간 것이지? 방안의 정경으로 보아 무언가의 폭발
이 일어난듯 한데 그렇다면..'
아환은 잠시 생각에 빠진 듯하다가 어느 정도 추리의 윤곽이 잡혔다.
' 그렇지..그 여인은 무공을 익히던 중이었었지..그러다 주화입마가 들은 것이었고..그러면 그
여인이 기억을 되찾은 것인가? 그럼 이 사내는 무언가? 구석에 놓여 있는 철조각과 손잡이
는 단검이었던 같은데 이 여인을 암습하다가 이렇게 되었던 것일까? 으흠..'
얼마간을 곰곰히 생각하던 아환은 이내 생각을 정리한 후 수습을 하기위하여 마을의 다른
사람들을 부르러 나갔다.
얼마후 상가진의 의원이 오고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방안의 정경을 보고 많은 이들이 대
경실색을 하였으며 일부는 헛구역질을, 기절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결과 판명된 것은
이 하반신만 남은 사내가 얼마전까지 상명군의 패거리였던 사내들 중 하나였고 그 놈이 여
인을 해할려다 천벌을 받아 육신도 제대로 남지 못하고 죽었음으로 사건의 결말이 추리가
되었다. 그런 쪽으로 결정이 난 이유에는 사람들이 아환을 아끼는 마음과 이 사내들의 행패,
그리고 얼마전에 나타난 검후, 즉 항산선녀의 출현이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절대적인 힘, 하
늘의 힘이 내려온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였다. 이후 이는 상가진 사람들에게 천벌을 나타
내는 일화로 내려오게 된다..각설하고..
아환은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오던 객점의 아칠이 이것저것 도
와주었고 포목점의 주인이 노자에 보태라고 몇푼을 가져다 주었다. 밤에는 상운진이 이별전
의 밀회를..
얼마 되지 않는 살림을 정리한 후 아환이 자리를 떨친 것은 검후가 내려 온지 일주일이 된
시간이었다.
[ 창작]수라기 2부 습공(習功) 1장 등(登) 4-5 창작야설
(4)
오악(五岳)의 하나. 항산!
수려함과 빼어난 절경으로 중원의 명산으로 손꼽히는 항산..일반적으로 그 산세가 수려하고
빼어나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산세의 규모, 험준함과 복잡함을 반증하기도 하였다. 하물며 오
악이라고 불리우는 항산이야 두말할 것도 없으리라..
아환은 지금 그 험한 산길을 뛰다시피 오르고 있었다. 손에는 작은 손칼을 들고 나뭇가지
를 쳐내며 항산 중의 어느 봉우리를 열심히 등반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눈은 계속 좌우를
살피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는 듯 하였다. 아마 검후의 흔적을 찾는 것이리라. 아환은 항산
에 오르기전에 주위의 사람들과 나뭇꾼, 사냥쭌, 약초꾼들에게 탐문을 적잖이 하였다. 다름
아닌 검후, 즉 항산선녀를 보았다는 사람들을 수소문하여 만나고 혹시 산중에서 검후를 만
난 적이 있는 인물들에 대한 집중적인 탐문을 하였다. 항산선녀 자체가 상가진 마을 사람들
에게 워낙 신비한 존재였기에 그녀를 만나는 사람들은 곧 마을에 내려와서 자랑을 하였고
완전치는 않지만 항산선녀, 즉 검후의 거처지 혹은 은거지를 나름대로 추측할 수 있었다. 그
렇다 하여도 그 근처 몇개의 봉우리를 전부 뒤져야 하고 또 그런 기인일수록 은밀한 곳에
있을 가능성이 많아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검후의 예상 거처지를 알아낸 아환.
몇몇 이들이 보았다고 말한 봉우리는 둘로 좁혀졌다. 화연봉(花淵峰)과 장절봉(腸絶峰)이라
불리우는 낙성봉(落星峰) 이었다. 사람들이 그녀를 보았다고 하는 곳이 이 두 봉우리 근처가
거의여서 이 두 봉우리에 검후가 거할 확률은 많았다. 그렇지만 그녀가 이 두 산에 거처하
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었지만 일단 행동으로 나서지 않고 계속 수소문만 할수는 없
는 노릇이었기에 아환은 어느 정도 정보가 수집되었다 싶자 바로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지금 아환이 오르는 봉우리는 둘중 하나인 낙성봉이었다. 말그대로 별이 떨어지고, 장이 끊
길 정도로 험한 산세여서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은 봉우리임이 검후가 은거하기에 적합하다
고 보였기에 아환은 먼저 낙성봉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 후우후우.."
거친 숨을 내뿜으며 산을 타고 있는 아환의 모습. 매우 지친 듯이 보였다. 일반 성읍보다는
기온이 높지 않다 하더라도 현 계절이 이미 여름에 접어들었고 쉬지 않고 뜀으로 산을 올랐
기에 아환의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어 벌써 몸에 달라붙어 아환의 행동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땀으로 아환의 의복이 몸에 붙자 아환의 다리와 팔에 울룩울룩한 굴곡이 눈에 띄었
다. 그것은 다름아닌 아환이 자체 제작한 모래주머니 였다. 아환은 산에 오름 역시 수련의
일환으로 근력을 키우기 위하여 모래주머니를 착용한 상태에서 뜀박질을 한 것이었다. 그것
도 험한 산세에서..
한동안을 뛰던 아환..몸을 멈추고 서서히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리곤 화타오금세..다시금 몸
을 재 정비하는 의도이리라. 얼마간의 체력이 회복되자 아환은 등산을 재개하였다. 아까와
같이 시선은 상하좌우로 계속 움직이고 손에 들려있는 단도로 앞에 가로막혀 있는 잔가지와
기타 장애물을 헤침을 반복하고 또 멈추어서 호흡을 가다듬고 체력을 회복하고..그러다 날이
저물면 아환은 등에 맨 봇짐에서 간단한 침구를 꺼내곤 휴식을 취하였다.
간단한 조식과 권세를 펼려서 근육의 과로를 풀어준후 수면에 들었다. 과거에 복용한 음양
신단의 효과인지 하룻밤을 지새면 몸에 활력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며칠을 계속한 아환이지만 원하는 검후의 은거지는 아직 찾지 못하였다. 아
직 몇몇의 계곡과 그에 맞붙은 절벽등은 뒤지질 못하였고 그리 쉽게 발견되리라 생각은 하
지 않았으나 내심 초조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후~ 그래. 아직 시간은 많다. 지금부터라고 생각하자. 검후같은 고인이 이러한 사람눈에
쉬이 뜨이는 곳에 은거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좋아! 반드시 찾고야 말테다.'
이름조차 모르는 단애가 눈앞에 가파르게 깎아져 있었다. 다가가서 밑을 보자 뿌연 운무인
지 바닥은 물론 중턱까지도 시야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이태껏 이 봉우리를 올라
오면서 최대의 고비를 맞은 것일듯 싶었다. 아환은 봉우리의 거의 끝부분쯤에 도달하여 있
었다. 여기저기 계속뛰면서도 중복되지 않게 방향을 잡아서인지 아환은 이제 낙성봉의 정상
까지 얼마 남지 않은 곳에 다달았다. 그동안 꽤 되는 숫자의 절벽을 오르내르기도 하였고,
계곡속의 험난한 지형에서 방황하기도 수차례..그렇지만 아환의 끊임없는 노력에 이제 낙성
봉의 정상부근까지 올라서게 되었다.
" 흐음. 이 단애는 지금까지 보아온 그 어느 절벽보다도 거칠고 가파르구나. 이쯤이면.."
아환은 일단 준비한 말뚝을 절벽 부위에 박았다. 그리고 그 말뚝에 칡덩쿨등을 이용하여
만든 줄을 늘어뜨렸다. 잠시 심호흡을 한 후 희끄무레한 구름과 안개가 뒤덮여 있는 절벽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어느 정도 내려 왔다 싶으면 준비한 아환의 팔뚝만한 굵기와 길이의
작은 말뚝을 하나씩 박았다. 그리고 또 내려가고 말뚝을 박고..십여차례를 반복하자 준비한
말뚝은 다 떨어지고 줄도 얼마 남지 않은데다 아직 운무속에 갇힌 아환은 시야가 확보되지
않자 다시 힘을 주어 올라가야 했다. 힘들게 절벽위를 올라서자 아환은 긴 숨을 내쉬었다.
' 제길, 얼마나 깊은거야..'
발걸음을 숲으로 옮겨 아환은 작은 말뚝을 더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칡넝쿨과 기타
덩쿨들 역시 잘라내어 긴 줄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어느 덧 날이 저물어 하룻밤을 노숙한
후 아환은 재도전을 시작하였다.
어제의 거리를 훨씬 빠르게 내려온 아환, 이제 줄이 끊길때쯤 되자 준비한 말뚝을 두개 정
도 박은 후 절벽에 튀어나와 있는 돌출물과 함께 덩쿨을 묶기 시작하였다. 새로 맨 줄을 이
용하여 아환은 어제의 행위를 반복, 급기야 절벽의 바닥이 눈에 띄는 곳까지 내려왔다. 아환
은 절벽의 아래가 충분히 눈에 들어오는 위치에 몸을 고정시킨후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무릉도원...
말그대로 꿈의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금까지의 절벽의 험준한 산세를 보상이라하듯 화려한 공간..
상당히 넓어 보이는 평평한 대지에 온갖 기화이초와 수려한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각양각
색의 기이한 바위들과 가늘게 흘러내리는 시냇물..투명하다 못해 그 속이 알알히 들여다 보
이는 물빛이라..아름다운 꽃들이 주변을 온통 장식하고 있고 시냇물 속엔 크지 않은 물고기
들이 자유롭게 헤엄치며 작은 동물들, 사슴과 다람쥐등이 평화롭게 물을 마시는 곳..
한 이십여장의 거리가 남았을까?
아환은 덩쿨을 쓰지 않고 조심스레 벽틈에 손과 발을 끼어 넣고 바닥으로 내려섰다.
바닥에 내려서자 아까의 감동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감탄을 자아냄은 지금 아환
이 선 곳이 어떠한 곳인지 말해주었다.
아환은 원래의 목적도 잊은채 천천히 거닐기 시작하였다.
물가에 다가서자 아환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는 사슴들..그리고 기타 노루며 다람쥐며 하다
못해 개구리 같은 미물들까지 아환의 다가감에 별로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정말 이상(理想)의 장소로구나.'
한동안의 감탄을 하던 아환, 곧 자신의 목표를 깨닫고 주위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아환은 흠칫하며 놀라운 기색을 보였다. 검후의 흔적을 찾은게 아니었다. 아환이 놀란 이유
는 아환이 의방 출신이라 곁눈질로 보아온 수많은 약초들이 이 곳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일정 요건하에서만 자랄 수 있고 발견할 수 있는 그런 희귀한
영초들이 적지 않게 발견되었다. 절대로 아환의 상식하에서는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그러
한 조건을 필요로 하는 풀들이 공생을 함에 아환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곧장 하나
의 절지로 생각이 귀결되고,
" 음양조화역(陰陽造化域).."
신음처럼 아환의 입에서 새오나오는 단어.
음양조화역!
대체로 천지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이나 지역, 기운은 음과 양이 일정하게 조화를 이룬
다. 하지만 그 비중이 음에 더 있는가 양에 치우치는가에 따라 음성과 양성으로 결정이 된
다. 하지만 이 음양조화역은 음과 양의 조화가 그야말로 절묘한 균형을 이루어 그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은 기운이 충만한 상태에서 성장하고 그 기운을 받아들여 영성을 갖
출 수 있다한다. 그외에도 많은 공능이 있지만 무림인들이 이곳에서 음양(陰陽)에 관계되어
있는 내공을 익힌다면 그 효과가 배가가 된다하여 무인들이 연공장소로 꿈에 그리는 곳이
다.
" 말로만 듣던 음양조화역이 실재하다니.."
아환은 바삐 발을 옮겨 음양조화역을 증명할 두 곳, 음빙천(陰氷泉)과 열양천(熱陽泉)을 확
인한 후 멍하니 말을 잊었다. 한참을 넋을 잃고 있던 아환, 정신을 차렸다.
" 이런 곳을 검후가 알았다면 아마 이 곳을 주거지로 삼았겠지. 하지만 검후도 이 곳은 알
지 못하지 싶다. 전혀 인간의 기척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보면.."
못내 아쉬운 듯 주위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아환은 입술을 굳게 문다.
" 이 곳은 이대로 일단 남겨두자. 이 곳에 널려 있는 영초 역시 지금 내가 복용하여도 별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 지금 내게 최우선된 목표는 검후를 찾는 것..시간이 많다
하여도 빨리 검후를 만날수록 내게는 좋다."
결심을 한 듯 아환은 음양조화역을 뒤로 하고 절벽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아환이 기어이 낙성봉의 정상까지 올랐지만 검후가 살고 있었던 흔적은 찾지 못하였다. 반
쯤은 실망하여 내려오던 중 아환은 한 귀퉁이에 작은 초옥이 자리잡고 있는게 보였다. 내심
치솟아 오르는 희열을 억누르고 바삐 달려갔다.
초옥 앞에 이르러 아환은 몸을 바로 하고 단정히 옷을 매만진후 입을 열었다.
" 안에 누구 계십니까?"
묵묵부답. 아무런 대답이 없다.
" 안에 계십니까?"
목소리를 높여 본다. 그래도 안에서는 아무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아환은 초옥
에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은지 꽤 시간이 지난 듯 군데 군데 먼지와 낡고 뚫어진 문짝 등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조심 발을 초옥안으로 하여 방을 열자 사람이 떠난지 꽤 시간이 지난 듯한 방안이 보
였다.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방안에는 거미줄과 다른 동물들의 흔적으로 온통 뒤덮여 있음
이 느껴졌다. 방을 휘둘러보자 검후의 성품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었다. 별 장식이 붙어 있
는 자리도 없었고 침구나 옷장의 자취등을 살펴볼때 멋을 잘 알지 못하는 그녀의 성품을 쉬
이 알 수 있었다. 밖을 나서 부엌으로 가까이 가자 그 심중은 더욱 굳어졌다. 단촐하여 보이
는 부엌..
" 참 재미없는 여자였군..검후는.."
중얼거리는 아환.
아환이 이 곳이 검후의 거처였다고 단언하는 이유는 곳곳에 남아 있는 상승무공의 흔적때
문이었다.
예를 들어 문틀을 보아도 그랬다. 수수하여 보이지만 좌우의 균형이 뚜렷하였고 그 단면
단면이 다른 공구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끈함이 검후가 떠난지 한참이 지났음
에도 그 일정함과 정교함은 남아 이 곳이 기인이 거취함을 말해주었던 것이다.
" 그러나 검후가 이 곳을 떠났다는 게 중요하다. 검후가 은거에 들어간지 오십여년의 세월
이 흘렀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머무른 이 곳을 떠났다는 것은 아마 심경의 큰 변화를 의
미하는 터. 검후는 옆의 화연봉(花淵峰)에 있을 것이다. 소박하고 수수한 이 봉우리보다 화
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 화연봉이지. 심경의 큰변화는 검후가 여자로서의 자각(自覺)을
나타내는 것이라 본다. 현녀심이리라."
그림이 아환의 머릿속에서 서서히 완성되어갔다. 이제 확실하다. 검후는 화연봉에 있다!
(5)
말그대로 꽃과 시내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형산의 봉우리 화연봉.
아환은 마찬가지로 손과 발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한순간도 수련을 멈
추어서는 안되는지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시작한 체력의 단련을 지금까지도 지속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화연봉의 이름에 걸맞은 화려한 자태가 끊임 없이 아환의 시야를 유혹하지
만 아환의 마음속에는 화연봉의 경치를 감상할 틈 따위는 전혀 없었다. 원래 꽃이나 기타
풍경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은 탓도 있지만 얼마전에 아환이 발견한 음양조화역의 그 신
비로운 광경에 비하면 화연봉의 자태는 별로 였던 것도 한 몫을 했다. 어찌 되었든...
아환은 지난번 낙성봉과 마찬가지로 며칠을 노숙을 하면서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팔과
다리의 모래주머닌 그래도 한채로 좌우를 끊임없이 살피며 산을 탔다. 산세가 지난 낙성봉
과는 달리 그리 험하지 않아 큰 어려움은 겪지 않았지만 그래도 몇몇의 절벽을 오르내리고
계곡을 뒤지며 산을 올랐다. 거의 한달이 다 되는 시간을 산을 타면서 아환은 시간을 보내
었다. 아환이 산을 뒤지느라 미처 시간을 계산할 겨를이 없어 오늘이 몇날 몇일인지 잘 모
른 상태였다. 오늘은 유월 초사흘이 되어가는 시간..검후가 상가진을 내려가는 날이 이틀 남
은 날이었다.
아환이 어느 덧 산 중턱에 올라 주위를 살필 즈음엔 날이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차츰차츰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워지자 아환은 오르는 것을 멈추었다. 자세를 가다듬으며 호흡을 천천
히 가다듬은 아환, 그에게서 강한 무형의 기파가 느껴졌다. 이는 무림인들이 추구하는 무공
의 강기나 기타 공부로 인한 내기와는 달리 아환이 산에 오르면서 끊임없이 되뇌인 황제의
(皇帝意)로 인하여 갖추어진 내공이 아닌 기개의 일종의 힘이었다. 타인에게 위엄과 위압감
과 영웅의 기개를 보여주는 심결을 아환은 낙성봉에서부터 계속하여 되풀이하며 자신의 몸
에 익숙하도록 숙련하여갔다. 그 결과 현재 아환의 기도는 능히 소년영웅으로서의 강인한
기력이 은연 중에 발산되어 주변을 압도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환이 산에 오르면서 험난
한 산세에 있어 수 많은 맹수들이 살고 있음에도 짐승들과 충돌이 없었던 이유 역시 아환이
황제의를 익히며 주위에 무형의 기파가 형성되어 맹수들을 압도한 결과였다.
" 오늘은 여기에서 하룻밤을 자야겠구나."
중얼거리며 침구를 정리하던 아환은 문득 자신의 몸에서 심한 냄새가 발생함을 깨달았다.
" 이런이런..그러고보니 목욕이라곤 낙성봉을 내려오면서 물에 한번 담근게 전부로군..."
얼마나 바쁜 시간을 보내었는지 혹은 경황이 없었는지 아환은 펼치던 침구를 거두고 물가
를 찾아 나섰다.
얼마를 헤매이자 귓가에 물소리와 '쿠쿠쿠..'하는 물이 거세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흐음..폭포로군..저기에서 좀 씻어야 겠군.'
아환은 서둘러 폭포쪽으로 향했다.
폭이 일곱장 정도가 될까? 높이는 사십여장이 됨직한 큰 폭포였다. 그 규모에 걸맞게 물이
떨어지는 소리는 주위에서 거의 굉음에 가깝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 이야! 정말 대단하구나."
잠시 폭포의 규모에 자연의 위대함을 보고 감탄을 하던 아환은 입고 있던 옷을 훌훌 벗어
던지더니 폭포앞의 소로 뛰어들었다. 여름의 초입이지만 물은 한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음양
신단을 복용하고 그동안 쭈욱 단련을 해왔던 아환이 한기를 이렇게 느낄 정도면 일반인은
감히 들어올 생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아환은 처음에 추위에 바들바들 떨듯하다가 한번 운
기를 하고 음양신단의 약효가 조금 용해된듯 몸이 훈훈하여 지자 몸을 씻기 시작하였다.
' 정말 춥구나. 이런이런..'
어느 정도 몸을 씻었다 싶자 아환은 물속에 자맥질을 하며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었다. 주
원인은 식사로할 물고기를 잡는 것이었지만..
아환은 몇번의 자맥질로 투명해보이는 몇몇 작은 물고기를 어렵지 않게 잡은 후 물가로 올
라 갔다.
그리고 폭포 근처에 놓아둔 옷가지와 수건등으로 몸을 닦은 후 아환은 입에 물고기를 산채
로 넣고 차근차근 씹기 시작하였다. 미리 준비한 소금을 조금 묻힌게 전부, 생생한 물고기를
입에 넣고 마치 즐거운 식사를 하는 양 꼭꼭 씹고 또 씹었다. 경험상 그리고 의방에서 들은
대로 최소한의 식사로 최대한의 효과을 얻기위하여 아환은 음식을 먹을때 항상 적은 양을
오랫동안 씹었다. 배가 부르면 게을러짐을 알고 있었기에 맛나고 배부른 것을 먹기 보다 아
환은 영양이 많고 해가 적은 음식을 가능하면 섭취하였다. 이 물고기 역시 아환은 그렇게
먹었다.
아환은 요기를 마치자 잘자리를 찾기 시작하였다. 이제 휴식을 취하고 몸을 씻었고 어느
정도 배가차자 마음이 편하여진 아환은 문득 머리에 흔한 고사나 설화대로 혹시 폭포뒤에
안락한 동굴을 없나하고 폭포뒤를 살폈다.
" 풋!"
아환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다.
' 이런 세상 어느 폭포를 가도 이렇게 폭포뒤에는 항상 공간이 있는 건가?'
폭포에 휘말리면 아환 스스로도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몸을 벽에 바싹 붙여서 아환은 폭포
뒤편으로 이동하였다. 지금 아환이 발견한 곳은 아환처럼 미리 있겠거니 생각하지 않고는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곳으로 폭포를 통하여서는 전혀 폭포뒤가 보이질 않는 그러한 곳이었
다.
" 이런.."
생각과는 달리 폭포뒤편의 공간은 크지 않았다. 내심 신비한 동굴쯤을 기대한 아환이었기
에 직경이 채 반장도 되지 않은 둥그런 장소 게다가 폭포로 인하여 습한 장소는 아환이 수
면을 취할 장소로 적당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큰 폭포가 떨어지면서 나는 굉음은 아예 아
환의 귀를 멍하게 할 정도..
그래도 호기심에 잠시 둘러보던 아환은 시선을 폭포 밖으로 돌리다 그 자리에서 동작을 딱
멈추었다.
하얀 그림자가 어느 덧 폭포 앞의 물웅덩이, 소에 나타난 것이었다.
' 무언가?'
폭포 근처에 나타난 흰 그림자, 무언가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환의 눈에 들어왔다. 세차게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창의 역활을 하여 지금 밖의 인형의 윤곽을 보여주고 있었다. 날씨가
청명한 시절이어서인지 달빛도 환하였고 물에 반사되어 빛을 더하였다.
' 헛!"
지금 폭포밖의 물체는 그 윤곽으로 보아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행하는
동작은 다름아닌 탈의, 옷을 벗고 있음에 아환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여인이었다.
' 누구지?'
아환은 시선을 집중하여 밖의 인형을 살펴보았다. 자신의 기척은 최대한 감추고 안력을 돋
구워 폭포 밖에서 옷을 벗고 있는 인물을 찬찬히 훑었다.
하나하나 옷을 벗던 여인의 신형이 마침내 전라가 되었다. 언제 머리를 풀어헤쳤는지 머릿
결이 길게 늘어뜨려져 여인을 감싸갔다. 거의 여인의 다리에까지 내려오는 길다란 머릿결..
여인은 머릿결을 한번 뒤로 쓸더니 가볍게 발을 들어서 물가에 다가섰다.
"..."
입을 벌리고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은데 아환의 귓가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지금 눈앞의
폭포의 내리치는 큰 소리에 고함을 질러도 들리지 않을 판인데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릴리 만무하였다.
멍하니 여인을 바라보기만 하는 아환..
여인은 소에서 천천히 교구를 움직였다. 처음에는 몸을 담근채로 가만히 있더니 서서히 물
가를 헤엄쳤고 물속으로 교구를 집어넣었다가 다시 솟구치곤 하면서 유영을 즐겼다. 폭포근
처에 왔을때 아환은 하마터면 소리를 칠뻔 하였다.
' 검후!'
그랬다. 폭포에 출현하여 나신으로 수욕을 하는 여인은 다름아닌 검후였다.
세찬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고 어스름한 달빛을 받아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으나 밖에서 물
에 교구를 맡기고 있는 여인은 틀림없는 검후였다. 검후는 폭포 근처까지 왔다간 다시 신체
를 돌려 물가로 갔다가 자맥질을 하곤 하였다. 그때마다 드러나는 거뭇거뭇한 암영이 아환
의 눈을 간지럽혔다. 젖가슴은 계속 물속에 있는지라 아환이 보기 힘들었지만 그녀가 물속
으로 들어갈때 다리를 위로 곧게 솟구치며 자맥질을 하자 검후의 다리가 갈라지는 곳에 거
뭇한 음영이 아환에게 보였다.
얼마간의 물속에서 헤엄을 즐기던 검후는 이제 신형을 멈추고 천천히 손으로 몸을 씻어내
리기 시작하였다.
물을 얼굴에 끼얹고 목덜미를 닦으며 두 팔을 서로 교차하며 닦는 듯 싶더니 손을 아래로
내려 물속에서 어느 부위를 씻는가 싶었다. 그렇게 얼마간을 수욕하던 검후..희미한 윤곽만
이 보이지만 검후가 입을 살포시 벌리고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손은 물속에서 어떻게 움직
이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몸을 문지르고 있을 듯 싶다.
"..."
무언가 소리를 내뱉는 것 같은데..아환은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
렇다고 여기서 나갈 수는 없는 노릇, 두 손을 꽉 쥔채로 아환은 계속 눈을 검후에게로 고정
시켰다.
희끄무레한 동체가 느릿느릿 물가로 움직여갔다.
검후는 물가에 있는 편편한 바위에 걸터 앉았다. 탱탱한 탄력있는 유방이 가볍게 흔들렸다.
검후는 앉은 상태로 다리를 슬그머니 벌리곤 교수를 그 사이로 가져갔다. 다른 손으로 젖가
슴을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 헉! 검후가 자위를..'
뚜렷한 광경은 아니지만 틀림없이 검후는 자위를 하고 있었다.
검후와 자위!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단어의 대비가 아닌가? 이는 비록 아환 뿐만 아니라 검후를 알고
있는 무림인 누구나 공감할 말이었다. 무공일도에 정진하여 자신의 성이 여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검사! 절대고수라 평가 받는 칠왕중의 으뜸! 그러한 인물과의 수음(手淫)은 어울릴수
없었다.
' 저것도 현녀심의 결과인가?'
아환이 반신반의 한채로 물가에서 스스로를 애무하며 쾌락을 즐기고 있는 여인, 검후를 지
켜보았다. 아직 서투른 듯 유방과 사타구니 사이를 매만지는 손길은 어색하게 보였다. 그렇
지만 검후 나름대로 그것에 쾌감을 얻는 듯 점차 동작이 빨라짐이 보였다.
"...."
입을 벌리고 무어라 신음을 내는 듯 작은 입은 가볍게 벌어져 있고 두눈은 살며시 감은 채
로 밀려오는 감흥을 즐기고 있는 여인..점차 몸이 뒤로 젖혀져 간다.
이윽고, 크게 몸을 펼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검후는 평평한 바위에 늘어지듯 드러 눕는다.
한식경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검후는 서서히 몸을 일으킨 후 물가로 들어가 몸의 열기를
식혔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자 검후의 얼굴이 붉은 홍조를 띄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
다. 몸을 어느 정도 식혔다 싶은지 검후는 물가로 느릿하게 헤엄을 친 후 물가로 나섰다.
츠읏!
미약한 소리와 함께 검후의 몸에서 하얀 수증기가 발생하였다.
' 삼매진화!'
물기를 다 말린 교구에 검후는 아까 개어둔 옷가지를 걸쳤다. 머리에 손을 가져가서 기나
긴 머리칼을 질끈 뒤로 묶더니 가볍게 발로 땅을 찼다. 그러자 느릿하게 허공으로 떠오르는
신형..산보하듯 몇번 허공을 밟더니만 이내 아환의 시야에서 검후가 사라져 갔다.
콰콰콰콰..
굉음의 폭포소리에도 아환은 멍하니 검후가 사라져간 방향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밤만
깊어져 갔다.
[ 창작] 수라기(獸羅記) 18번째 올림. 미지정
이번 회에도 야한 장면이 없습니다. 제가 솜씨가 없어서인지 야한 장면을 넣기가 쉽지 않
아요. 야설이라 해놓고 소설로 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현대물이였다면 검후의 자위하는 장면을 캠코더나 사진기로 찍어서 협박이라도 할
텐데요. ㅜ.ㅜ
(6)
바삐 달려가는 아환의 모습이 보였다. 화연봉의 거의 정상에 가까운 곳까지 아환은 쉴새없
이 달려 산을 올랐다. 지금 아환이 향하는 방향은 바로 검후가 사라져 간 곳, 그 가상의 지
점을 목표로 아환은 해가 뜨자마자 휴식을 멈추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계속 시선을 좌우로 두리번거리며 검후의 거처지를 찾아가는 아환의 눈
에 쉽사리 가옥이나 그 비슷한 구조물이 보이지 않았다. 벌써 해가 정오를 넘은지도 꽤 지
났지만 아환의 눈에는 검후의 은거지가 들어오지 않았다.
' 분명 이 방향이었는데...'
아환은 거의 산끝에까지 올랐음데도 초옥을 발견하지 못함에 내심 초조해 하였다. 만약의
경우, 정말 만약의 경우 검후가 이 곳, 화연봉에 없다면 그 이후는 생각하기도 싫은 이 항산
전체를 뒤져야만 하는 일이 발생한다면..그 시간이며 또 거기에 쏟아부어야할 정력, 그리고
심기의 소모가 아무리 아환이 이 등산을 자신의 수련의 일환으로 손과 발에 모래주머니를
맨채로 체력단련에 도움이 된다고 하나 오히려 아환에게 독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환은 행보를 정상에서 다시 돌려 찬찬히 훑으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흔적도 놓
치지 않으려고 뛰는 것을 멈추고 세밀한 걸음으로 하산하였다. 그래도 검후가 이 봉우리에
살 확률이 가장 많았으므로 이 봉우리를 집중적으로 탐사할려 마음먹었다.
날이 저물어 또 하루가 지났다. 아환은 모포를 깔고 누워 휴식을 청하였다. 물론 그 전에
매일 반복하는 일상의 수련은 빼놓지 않았다. 수련을 마친후 자리에 누운 아환의 머릿속은
지친 심신이었지만 바쁘게 움직였다.
' 검후라..검후라..현녀심..화연봉..수음..비단 옷..'
단편적인 언어의 나열에 그 연관성을 생각하던 아환, 이내 생각을 접고 잠을 청하였다.
날이 밝자 아환은 서둘러 침구를 정돈하였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곳을 더 세밀하게 찾아
야 했다. 아환은 각오를 재차 다진다음 다시금 탐색에 나섰다. 어제와 같은, 아니 근 한달간
의 탐색과 같이 아환은 봉우리를 뒤지면서 산을 내려왔다.
정상에서 내려온지 두시진 가량 지난 어느 순간, 아환의 눈이 반짝였다. 멀리 절벽의 밑에
초옥 비슷한 구조물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아환은 그것을 발견한 순간 전력질주를 하기 시
작하였다. 가슴 역시 두근대며 아환의 달리기에 힘을 실어주었다.
아환이 발을 멈춘 곳, 조그마한 초옥이 눈에 들어왔다. 절벽의 구조가 특이하여 산을 오를
때에는 발견하기 어려운 움푹 파인 곳에 자그마한 집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헐떡거리며 발
을 멈춘 아환,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다듬고 긴장된 눈길로 천천히 집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 아!"
아환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 가히 극도의 미학이 눈안으
로 들어왔다. 네 꼭지 부분은 부드럽게 아물려진 사각 형태의 초옥, 어디 한 쪽도 치우침이
없는 균형을 이룬 전체의 구조가 처음 아환을 감탄하게 만들었고 그 다음에 초옥의 각도 역
시 태양이 비춤에 있어 직사광선이 내리쬐지 않는 비스듬하게 절벽의 결을 따라 지어져 있
었고, 색은 무엇으로 물을 들였는지 중천에 떠 있는 햇살을 받아 연한 하늘 빛을 반사하고
상아빛이 나는 지붕을 엮은 풀잎은 무엇인지, 또 창을 냄에 있어 그 향하는 각도가 일정한
방위를 점하고 있는 듯 하였다. 울타리를 만든 나무는 잘 다듬어진 화강암으로 만든듯 은회
색이 빛나고 있고 그 높이와 넓이가 일정하게 배열되어 있어 초옥과 조화를 창출해내고 있
었다.
" 과연..."
아환은 상념에 빠져 있던 정신을 되찾고 초옥밖에서 조심스레 검후를 불렀다.
" 안에 계십니까?"
"..."
" 안에 누구 계십니까?"
"..."
아무도 없는 모양이었다.
혹시, 이 곳도 검후가 이미 거쳐간 자취이면 어떡하지? 아환은 감히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하지 못하고 밖에서 기웃기웃 안을 살폈다. 다행히도 누군가 이 곳에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것도 검후일 가능성이 컸다. 단적으로 저 울타리를 다듬은 것만 봐도 상승내력을 가진
무림인이 아니 고서는 만들기 어려운 화강암의 벽을, 저렇게 매끈한 단면을 가진 일정 규격
의 담을 쌓는 다는 것이 명인급의 장인이 아니고서는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명인이 이
러한 험한 산세까지 돌을 날른 후 깎는 다는 것이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웠고, 검후외에
다른 무림기인은 이 항산, 화연봉 근처에 검후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같은 곳에
은거지를 만들 이유가 적었다. 항산의 규모가 얼마인데..
" 으흠. 아무도 없나 본데.."
어딜 갔을까? 고민하던 아환은 몇가지 생각을 하더니 곧 검후가 없는 이유를 알았다.
" 그렇군. 벌써 한달이 흘렀네..오늘이 그럼 초 닷새인가?"
그랬다. 오늘이 유월 초닷새 검후가 상가진에 물품을 구입하려 내려가는 시기였다. 반년이
넘게 꾸준하게 이 날에 검후는 상가진에 내려가서 생필품과 기타 장신구 및 다른 포목등을
샀다. 오늘 역시 아환이 미처 날짜 계산을 하지 못하였지만 초닷새가 되는 날이었다.
" 그렇다면 기다려야 하겠군."
아환은 자리에 풀썩 주저 앉는다. 결가부좌를 하고 눈을 지긋이 감고 손을 단전부위에 댄
채로 몸의 정면을 초옥을 향한 채로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하였다. 무상심결은 그 구결이 난
해하고 진보에 있어서 큰 깨달음을 필요로 하였기에 나한심법을 암송하며 점차 아환은 몰아
지경으로 접어들었다.
시간이 꽤 지나갔다. 해가 뉘엇뉘엇 산을 넘어가 붉은 기운만이 산세를 물들고 있었다. 아
환은 크게 숨을 한번 내쉰 다음 호흡을 가다듬고 조식을 마쳤다. 그리곤 눈을 서서히 떳다.
' 헛!'
붉은 저녁 노을이 비스듬히 그 빛을 물들이고 있는 초옥, 그 앞에 붉은 빛으로 온몸을 휘
감은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비단 옷이 노을 빛으로 물들어 핏빛과 흰빛, 은빛을 나
타내며 머릿결을 일부만 묶어 얼마간의 머릿결이 바람에 휘날리고 주홍빛으로 빛나는 얼굴
이 아환의 시선에 잡혔다. 그 인형은 도도하게 꼿꼿히 서서 아환을 향해 있었다.
' 검후..'
검후가 드디어 아환의 앞에 서 있었다. 이 항산 화연봉에 검후는 거처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