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수라기(獸羅記) 제1부 적무환(赤無患) 2장 회상(回想) (1)~(4) 야 설
(1)
" 아환아! 이제 그만 자거라!"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다.
" 예. 잠시만요."
아환은 큰소리로 대답한후 지금까지의 동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반 민중이 살고 있는 초옥보다는 조금 큰 집안이 보인다. 마을 어귀에서 조금 들어선 자
리에 자리 잡고 있는 가옥. 대문옆 세워 있는 나무기둥엔 '적가의방(赤家醫房)'이란 글귀가
적혀 있다. 대성(大聲)은 이곳에서 터져 나왔다.
대문에서 훤히 들여다 보이는 마당, 한 일곱살 정도 되었슴직한 소동이 천천히 호흡을 가
다듬고 있다.
이 소동의 이름은 적무환.
이제 6살짜리 소동이다.
태어날때부터 체격이 작지 않아 큰 장수감이라는 예칭을 들었던 소동은 지금 또래의 동무
들보다 한 두살은 더 되어 보이는 몸태를 드러내고 있다. 머리는 아주 총명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냥 제법 이해력이 있고, 무엇보다 끈기와 인내가 강하다는 것, 그리고 가끔은 너무
심할 정도로 집중을 하는 아이였다. 흔히 볼 수 있는 또래의 동자들 정도의 얼굴..뛰어남은
없었다.
적가의방의 의원인 적무환의 아버지는 적의(赤醫)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아환의 조부께
서 의술에 정진하라고 이름을 그리 지었다한다. 무환 역시 적의가 평생 걱정거리 없이 건강
하게 살라고 '환(患)이 없다'라는 의미로 지었다.
태어나면서 틈틈히 아비의 의술을 보고 익혔고, 적의가 의원이 의서를 읽을려면 글귀도 조
금은 알아야 한다고 해서 서당에서 글월도 몇자 배우는 소동..적무환.
지금은 적의가 자식이 책이나 다른 잡일을 하다가 몸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적씨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고서에 적힌 '화타오금세'란 동작을 가르쳤다. 하나, 이것이 오히
려 적의를 근심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적무환은 처음에는 다소 지루함을 보이다 화타오금
세를 아버지의 강권에 의하여 익히던중 체력의 증가와 쉽사리 피로하지 않음을 알게 되어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일을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 여기어 집착이라 할 정도로 화타오
금세에 몰두하게 되었다.
제법 글귀를 알고 난 다음부터는 직접 고서를 읽고 연구, 아버지에게 문의하여 호흡이나
동작의 정형을 나름대로 체득하게 되었다.
무환의 나이 이제 6살이지만 어린 심성에 집착하게 되면 더욱 깊게 빠지듯 나날이 화타오
금세를 익숙하게 펼치게 되었다.
화타오금세!
옛날 조조와 유비, 손권이 자웅을 겨루던 전국 시기에 명의로서 이름을 떨친 인물로 관우
의 치료로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 화타가 환자들의 건강과 의원들이 전시에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것을 돕기 위하여 몇가지 동작을 만들었다. 그는 인체의 경락과 경혈에 통달하다
시피한 신의(神醫)로서 보다 인간에게 무리가 가지 않고 자연스러운 동작을 끊임없이 연구
한 걸과 꿈에 나타난 다섯가지 짐승의 동작이 가장 이상적임을 깨달았다. 노년에 그가 고심
끝에 쓰러져 잠을 자고 있을때 용, 호, 표, 웅, 학의 다섯 짐승이 나타나 춤을 추는 것을 보
고 깨달음을 얻어 이 화타오금세를 만들었다.
뿐만아니라 그는 호흡을 통하여 기를 체내에 축적시키는 원시무인들의 운기토납을 접목하
여 자연스럽게 운기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화타의 노력과는 별개로 후세인들은 처음
에는 관심을 가진듯하나 동작자체가 동물의 형상을 본 뜬 것이라 보기에 썩 훌륭하지 않고
또 엄청난 끈기와 집중을 요하는 것이기에 차츰 사람들의 뇌리속에서 잊혀져 갔다.
아환은 마무리를 하고 발을 옮겨 저녁 문안인사를 위하여 안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
어서자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녀가 앉아 있었다. 적의가 저녁인사를 위하여 방으로 들어
온 무환을 보고 한 소리 꾸짖는다.
" 너 이녀석, 정도가 있어야지. 정도가! 지금 벌써 늦은 밤아니냐?" 하지만 꾸짖는 음성과
내용과는 달리 얼굴엔 기특함과 자랑스러움이 엿보인다. 그걸 알고고 있는 아환의 어미 진
청청은 살풋 미소를 짓고 아환을 본다.
" 그래, 이제 자야지. 어서 씻고 자리에 들어라."
서민의 처자치곤 제법 얼굴이 반듯한 인상의 진청청은 아환에게 따뜻한 음성을 들려준다.
" 예. 어머니."
지금은 몰락한 가문이지만 과거 양반 첩실의 딸이었던 진청청으로 인하여 아환은 예의를
익혔고, 적씨가문은 어느 정도 기틀을 잡을 수 있었다.
" 건너가거라."
아버지께 공손히 인사를 드리고 아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안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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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환은 그 동안 화타오금세와 의술을 아버지에게 전수 받아 적가의방의 후계자로서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적가의방의 의술은 만만치 않아 제법 고을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었고, 적가
의방이 자리잡은 구문현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에도 솜씨가 알려져 있었다.
분주한 하루 하루가 지난지 몇번..
오늘도 변함없이 일과를 끝낸 아환은 마당에서 화타오금세를 펼치고 있었다.
기잇. 소성과 함께 방문이 열렸다.
적의가 행장을 꾸리고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 어디 가세요, 아버지?" 아환은 아버지의 행장에서 적의가 여장을 떠남을 알았다. 가까운
곳의 왕진이나 근처 친지의 방문이 아닌 여장을 만만치 않게 챙김을 보면 시일을 다소 소모
하는 여정을 떠날듯 싶었다.
" 그래, 아비는 성내에 볼일이 있어 좀 다녀와야겠구나. 그동안 어머니 잘 보살펴드리고."
적의는 아환에게 당부의 말을 하고 진청청과 아환의 배웅을 받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 어머니, 아버지 어디 가시지요?"
" 응, 아버지는 성내에 무슨 무림인들의 단체에 왕진을 가신단다."
" 무림인이요?"
" 그래, 성내에 있는 청룡보라는 단체와 혈도문이라는 단체가 싸움을 해서 부상자가 많이
발생하였단다. 그래서 금룡보에서 의원을 모집하여 아버지도 거기 가시는 중이야."
" 그래요?"
아환의 눈동자는 빛이 날듯 반짝거렸다.
무림!
얼마나 가슴이 설레는 말인가?
일설에는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손에서 바람이 나와 산을 무너뜨린다고 하는 사람들..
아리따운 여협들과 검객의 애정! 사마외도를 척살하는 정의의 영웅!
동무들과 나이 지긋하신 노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이들의 가슴 속에 막연한 동경을
심어놓기에 충분했다.
그러한 무림인들의 전투가 벌어진 곳이라..아환도 그 곳에 가고 싶었다. 사람이 다치고 죽
는 것은 집이 의방인 관계로 충분할 정도로 보아온 아환은 무인들의 싸움도 그러하리라 생
각되었고, 또 잘하면 무사들의 결투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걸 짐작이라도 하듯,
" 아환! 자. 이제 저녁먹어야지."
" 예. 어머니"
방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아환과 부엌으로 들어가 저녁을 준비하는 어머니..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적어도 그 일이 벌어지기 전까진...
(2)
날벼락!
아버지가 떠난지 보름 남짓한 시간이 지난 어느날 청천벽력의 소식이 적가의방에 들어닥쳤
다.
다름아닌 아버지의 사망 소식이었다. 소식을 전해준 이는 평소 적가의방과 가깝게 이웃하
여 살고 있는 사람으로 봇짐을 지고 물품을 팔러 다니는 상인이었다. 급하게 뛰어 들어 그
가 전해준 소식은 다름아닌 아버지의 죽음!
" 헉!" 하는 외마디의 비명과 함께 진청청은 자리에서 무너졌다.
아환은 아직 무슨일인지 정리가 안되는 듯 멍하게 서있었다. 머릿속을 뒤흔드는 생각을 정
리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그저 혼돈상태에 빠져 있었다.
지금 앞에 있는 이웃집 아저씨가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아버지'와 '죽음'이라는 단
어만이 머릿속에서 무질서하게 회전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적가의방의 방안에선 진청청과 적무환, 그리고 이웃집 아저씨
가 앉아 그 소식의 정황을 말하고 있었다. 그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두 단체 청룡보와 혈도
문의 싸움에서 부상자를 도와줄려고 청룡보에 온 의원들이 야습을 한 혈도문 소속 무인들에
게 상당수 죽음을 당하였다고 하였다. 혈도문 소속의 무인들은 금룡보내의 인물들을 닥치는
대로 도살하다시피 처리했다고 한다. 그와중에 적의가 죽었다는 것이다.
" 그럼 청룡보의 무인들은 뭘했나요? 아버진 그들을 도우려 갔잖아요?"
아환이 울부짖듯 소리치자 아저씨는 그들이 의원을 보호하지 않았고 사전에 그 야습을 어
떤 경위를 통하여 알게 되어 고수급인물들과 중요한 사람들을 미리 옮기고 청룡보내에는 환
자들과 의원들, 그리고 몇몇 하급무사들만 남아 위장을 하였다 한다. 그리곤 역습을 하여 혈
도문의 본채를 멸망시키고 승리를 거두었다고 했다.
" 어찌 그럴수가?"
기가 막혀 할말을 잃은 아환과 진청청..
이어 들려온 상인의 말은 더더욱 그의 울화를 폭발시켰다.
" 청룡보가 정파계열이라 이번 승리는 사마외도를 척결하는데 큰공을 세웠다하여 정파 무림
인들 사이엔 명성이 자자한다더라."
" 헉!"
눈에 핏발이 올라선 아환. 막 무어라 큰 소리를 낼려는데 진청청이 손을 들어 만류를 한다.
시선을 이웃집 아저씨에게 향한후,
" 부군의 소식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창백한 안색, 떨려나오는 음성에도 불구하고 진청
청은 이웃집 아저씨에게 인사를 드린다.
" 휴~" 한숨소리가 아저씨에게서 나왔다.
" 이제 그만 가보겠습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모자를 바라보던 이웃집 사람은 몸을 일으켜 방밖을 향했다.
" 살펴 가십시오."
대문 밖까지 나가서 인사를 마치고 돌아온 진청청은 방문을 닫기 무섭게 쓰러져 혼절을 하
였다.
" 어머니!!!" 아환의 비명소리..
진청청은 갑작스러운 적의의 사망 소식을 듣고 며칠간을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동
안 잡일을 하며 아환이 집안 살림을 맡아 했다. 어린 나이에 겪은 참담한 날벼락! 하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을 없는 일, 아환은 소식을 들은지 하루 남짓 지나고 정신을 차렸다.
먼저 대문을 닫고 '휴업(休業)'이란 글귀를 매달았다.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며 자잘한 집안
일을 처리하며 며칠을 보냈다. 환자의 아픔도 제대로 보지 못하여 경증 환자의 뒷바라지만
하신 어머니에겐 너무도 큰 충격이었으리라. 진청청은 며칠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그
냥 눈을 뜬 상태로 누워 있기만 하였다.
그런 상태에서 며칠이 또 지났다.
이제 기운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어머니는 아버지의 시신을 뫼시러 가야 한다며 행장
을 꾸렸다.
그동안 의방이 번창하여 집안의 가산은 적지 않이 모였고 적가 소유의 땅과 집도 여러 채
가량 되었다. 진청청은 집과 땅문서, 그리고 패물들을 평소 잘아는 전장에 맡기고 보관증을
받아 성내로 갈 준비를 마쳤다.
" 아환, 아버지를 뫼시러 가자." 떨리는 음성, 그러나 힘이 느껴지는 음성..
조그마한 말 두마리가 끄는 수레를 구입하고 질 좋은 관짝을 구입하여 수레에 싣고 두 모
자는 길을 나섰다. 단지 둘만이 움직이기엔 길이 멀고 험하여 상인들의 수송행렬에 동참하
였다. 평소 적가의원이 고을 내에서 명망이 꽤 있었기에 사람들도 기꺼이 그들을 응대하고
맞아 주어 성도로 길을 향했다. 처자 하나와 아직 소동이지만 따뜻한 사람들의 환대로 인하
여 어렵지 않게 두 모자는 여정에 동참할 수 있었다.
며칠의 여정,
어느 이름모를 야산을 넘는 중 진청청과 적무환을 포함한 상인들의 일행은 한무리의 인마
들과 마주쳤다. 다섯 가량의 말에 탄 인물들과 수레하나, 그리고 질 좋은 말 둘이 이끄는 마
차하나였다.
" 안녕하시오!"
상인들의 우두머리가 약간의 긴장된 음성으로 인사를 건넸다. 마주친 인마들, 말위엔 칼과
기타 병기를 찬 청의를 입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고 하나같이 눈빛이 형형히 빛나보였다.
무인이리라.
혹시 산적은 아닌가?
긴장을 늦출순 없었다. 비록 이 근처에선 산적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하여도 설마하
는 게 있었다. 지금 이 행렬의 상인들은 영세한 서민들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지금 가진 상
품들을 잃어버리면 바로 길거리에 나 앉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선두에선 무사가 고개만 까닥거리며 반문을 해온다.
" 어디서 오는 길이오?"
" 저흰 구문현에서 오는 길입니다만.."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 적가의방을 아오?"
적가의방이란 말이 들리자 마자 진청청과 적무환은 눈을 빛내었다.
" 무슨 일로 적가의방을 찾으시는지..?"
여인의 몸으로 나서기가 꺼림직했지만 이는 다른 것도 아닌 부군의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
각에 앞뒤 가릴것 없이 진청청이 나섰다.
힐끗 마상의 무사는 시선을 돌려 여인을 쳐다 보았다. 왠 아녀자가 끼어 드는 것인가? 하
는 물음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전해져 온다.
" 제가 적의원의 안사람입니다만..."
진청청은 그 낌새를 눈치채고 말끝을 흐리며 대답을 한다.
" 오! 그렇소이까?"
지금까지 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중년의 사내하나가 나섰다. 눈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
고 입술이 얄팍히 보이는게 사내의 얼굴을 여태까지 그가 겪어왔던 수많은 경륜을 대변하는
듯 했다.
" 바깥양반이 적의란 의원이오?"
" 예."
혹시 하는 기대가 있어 반문을 하는 진청청, 남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아닐까? 큰
부상을 입어 가족을 찾아 나선 것은 아닐까? 남편이 무사하다는 것을 달려 주려 찾아오는
사람들은 아닌가? 내심 기대를 하지만 표현하지 않고 대답을 하는 진청청이었다.
마상위의 중년의 사내는 말에서 내려와 진청청에게 다가섰다. 이은 포권..
" 삼가 적가의방의 안주인을 뵈오."
진중해 보이는 인사.
" 혹시 그 분의 소식을.."
"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적의원은 악도 혈도문의 잔인한 손속아래 그만.." 말끝을 흐리는
중년의 사내, 그 얼굴에 저혀 송구한 기색이 없었다.
" 아!" 휘청거리는 진청청의 교구.
떨리는 신형을 바로 잡고 진청청은 다시 말을 한다.
" 그럼, 그의 ..." 말을 끝맺기가 두려운듯 진청청이 말을 흐리자,
" 부군의 주검입니다."
중년의 손길이 수레를 가르키고 그 손길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하얀 포목으로 둘러 쌓인
여섯자 남짓한 물체가 보인다.
떨리는 발걸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발을 옮겨 하얀 포대기 사이로 걸음을 옮기는 진청청,
그리고 지금까지 이 상황을 보고 있던 적무환도 수레에 다가 섰다.
확인하고 싶지 않은 마음. 진실이라고 해도 거짓이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 이 상황이 꿈
이었으면..
작은 손이 잔떨림을 보이며 천천히 하이얀 포대기로 다가간다. 얼굴이라 짐작되는 부위를
향하여 손길이 다가갔다.
싸늘함!
찬 기운이 포대기에서 흘러 나온다. 마치 일상의 정물처럼, 움직이지 않은 생명이 없는 물
체처럼..
힘겹게 천근의 무게가 느껴지는 포대기를 젖혀 나갔다. 조금씩 포목속의 물체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마침내 얼굴이라 짐작되는 부분이 드러날 순간,
" 악!"
외마디 비명소리..
(3)
그랬다.
포대기 속의 형체는 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것도 아무리 짙은 어둠속이라도 구별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가까운 사람의 얼굴, 바
로 적의의 얼굴이었다.
사선으로 머리가 통째로 베어진 건가?
적의의 머리는 길게 사선으로 갈라진 상태에서 둘을 붙여 놓은 형태였다. 사선으로 두쪽이
난 사람의 머리를 그냥 붙여논 형태..그나마 지금까지 흔들리는 수레에서 운반되었기 때문일
까? 부조합을 이룬 알굴이 보였다.
그렇다고 어찌 지금까지 살을 맞댄 정인의 얼굴을 잊을손가?
틀림없는 적의의 얼굴이었다.
비명소리와 함께 무너지는 진청청..그리고 그 옆에서서 멍하게 촛점을 흩뜨리는 아환..
시간이 얼마 흐른 듯 부패하기 시작한 적의의 희끄무레한 얼굴..죽은 자의 얼굴이었다.
상인들의 일부가 그 얼굴을 보고 헛숨을 들이마셨다. 또한 일부는 구석으로 가서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일반 백성이 보기엔 너무나 처참한 모습을 보고 비위가 상해 견딜수가 없었
던 모양이다.
" 고인은 정의를 수호하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의례적인 인사가 중년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정말 애도의 몸짓인가? 정말 정의를 위
해 죽은 사람을 기리는 것일까? 진정으로 이 사내는 적의의 명복을 빌어주는 몸짓을 보이
나?
" 당신들이 죽였잖아! 당신들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잖아!!"
진청청의 뒤에서 아환의 처절한 울음섞인 음성이 터져나왔다. 아환은 단숨에 달려가 중년
사내의 허리춤을 붙잡고 울면서 부르짖었다.
" 당신들이 그랬잖아! 당신들이 그랬잖아! 당신들이..."
되풀이되는 울부짖음..
중년사내는 눈길을 선두에선 무사에게 돌려 뭐라 눈짓을 한다.
이내 알아 들은 듯,
" 자자.. 가시던 길을 가시오. 자자.."
무사는 서둘러 상인들의 행렬을 재촉한다.
집단 자체가 웅성거리자 이래선 안되겠다 싶은지 이 상황을 정리하고자 하는 태다.
선두에선 상인이 더이상 끼어들다간 좋은 꼴 보지 않겠다 싶어,
" 서두릅시다."
한마디를 툭 던져놓고 발을 든다. 무사들의 눈매가 날카롭와 더이상은 끼어들기가 무엇했
고, 또 적가사람들도 뜻한 바를 이루었으니 되었다 싶은 것이라라.
하나 둘 상인들이 그 뒤를 따르고 점차 상인들의 무리는 적씨 모자와 청룡보의 무사들과
멀어졌다.
" 당신들이..당신들이...당신들이.."
계속되는 아환의 악다구니에 묵묵히 무사들은 서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에선 한점 안타까움이나 미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 자! 어서 시신을 옮겨야죠."
중년의 사내는 서둘러 자리를 정리해 나갔다.
수레 옆에서 멍하니 갈라진 적의의 머리를 쳐다 보고 있는 진청청을 옆에 두고 악을 바락
바락 쓰며 울고 있는 아환에게 붙잡혀 있는 중년의 사내.
어떻게 한 것일까?
손끝을 아환에게 뻗는 듯했는데 갑자기 아환이 축 늘어져 버린다.
수혈을 집은 모양이다.
점혈공부를 할 정도면 꽤나 이름이 있을법한 인물인데..
그는 금룡보의 총관 혈권호(血卷狐) 역어상이었다.
역어상은 수하들로 하여금 서둘러 자리를 정돈케 하고 이 자릴 피하고 싶었다.
" 본인이 구문현까지 모셔드리겠소."
일방적 통보..
역어상은 멍하니 자리에 주저 앉은 진청청을 눈짓으로 수레에 태운 후 다른 수하들을 닦달
하여 장내를 정돈하였다. 이어서 구문현으로 행보를 옮겼다.
차츰 해가 저물고..
날이 어두워지자 금룡보 소속의 무사들은 야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밤새 말을 달려 가면 내일 저녁 때쯔음은 구문현에 도착할 수도 있겠지마 마차에 존귀한
분이 타고 계신 관계로 그럴 수가 없었다.
덜컹!
마차 문이 열리고 조그마한 화금화(花錦靴)가 보인다. 그 위로는 화사한 분홍빛의 경장의에
감싸여진 다리가 보이고...
이윽고 신형을 모두 마차 밖으로 빼어낸 인형.
귀엽다고 할까? 예쁘다고 할까?
마치 예쁜 보석같은 미모의 소녀가 마차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뒤이어 내리는 또다른 사람..
노파가 내리고 있다.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 어휴~" 크게 기지개를 펴는 소녀..
그 소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노파..
이 들은..
(4)
" 여기가 어디예요? 파파"
두리번 거리며 주변을 살피다 뒤를 돌아 보고 노파에게 질문을 던지는 귀여운 소녀.
십사오세 가량에 분홍빛 경장의가 소녀의 모습을 돋보이게 한다.
갸름하다기 보다는 둥근 얼굴, 오밀조밀하게 조화를 이룬 눈이며 오똑한 코, 붉은 입술은
소녀가 여인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듯 보였다.
" 나도 잘 모르겠구나. 어딘지.."
정이 가득한 두눈을 들어 소녀를 쳐다 보는 노파,
" 여기가 어딘지 아느냐?"
역어상은 공손히 대답한다.
" 예. 지금 저희 목적지인 구문현전의 매산이라 합니다."
" 매산?"
" 예"
소녀는 신기한듯 낯선 풍경에 이리저리 눈을 돌리다 한 귀퉁이에 쓰러져 있는 소동의 모
습을 발견했다.
" 어! 쟤는 누구야?"
" 예. 이번에 저희들이 가겨가는 시신의 자식놈이라 합니다."
" 그래?"
소녀는 아환에게 다가섰다.
툭.
발로 아환을 건드려 본다. 반응이 없다.
툭툭툭.
계속 발로서 아환을 건드린다. 강도가 조금씩 세진 탓일까?
아환이 움찔거렸다.
" 으음.."
마침내 눈을 뜨는 적무환.
천천히 주변을 살피다 번쩍 일어난다.
" 당신들.."
미쳐 말을 잇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기만 하는 아환..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것일까? 진청청이 다가온다.
묵묵히 목례를 드리고..
" 제 부군을 이렇게 옮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 정도 상황 정리가 된 듯, 진청청이 침착한 어투로 인사를 한다.
" 네가 의원의 처자냐?"
노파가 진청청을 바라보며 물음을 던진다.
" 예"
" 의원은 정의를 위해 사명을 다하였다."
별 감정이 섞이지 않은 의례적인 말.
" 예"
진청청 역시 아무 감정이 없이 대답을 했다.
" 우리 청룡보는 우릴 도와준 의원들에게 약간의 사례를 하기로 하였다. 받아라."
조그마한 패물갑을 진청처에게 건넨다.
" 당신들!!!! 우리 아버지를 지켜줄 수 있었잖아요?"
" 우리 아버지를 안죽게 할 수 있었잖아요?"
아환이 악다구니를 쓴다.
" 당신들만 도망가고 왜 아버지만 죽게 했어요?"
" 왜 그랬어요?"
계속 되풀이되는 울부짖음..
" 흥."
갑자기 한 구석에서 코웃음이 터져나왔다.
" 이렇게 사례를 하면 받을 것이지 어디 대들어?"
분홍경장의 소녀가 아환의 부르짖음이 듣기 싫었는지 한마디 툭 던진다.
남유란, 청"렉망聆?영애인 소녀는 조그마한 녀석이 감히 청룡보 인물들에게 대드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것도 일개 의원의 자식 나부랭이 주제에..
평소 청룡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데다 최근에 혈도문이란 단체를 완파하고 성도의 세력을
거머쥔 최소한 이 성에서는 독보적인 속가 문파인지라 당연할 수 도 있다. 물론 아환이나
진청청이 불쌍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대를 위해 희생된 소인데 별 죄의식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사례나 빨리 받고 떠나지..
남유란이 이렇게 짜증을 내는데는 이유가 있다.
몇년간 혈도문과의 싸움을 하느라 보밖에는 감히 나가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이제 혈도문이
쓰러져 마음놓고 활보할 수 있으니 아비인 청룡보주를 졸라 외유를 나가게 된 것이었다.
" 넌 워야!"
아환의 입에서 고운 소리가 나올리 만무.
" 네까짓게 뭔데 끼어들어!"
계속되는 험한 말.
퍽!
아환의 고개가 옆으로 돌고 여파가 컸는지 비틀, 휘청거린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청의무사중 하나가 손을 들어 아환의 뺨을 후려쳤다.
" 감히 이 새끼가 뉘시라고.."
연이어 발을 들어 아환을 걷어찼다. 비록 공력은 실리지 않은 발길질이라 하지만 이제 아
홉살 짜리 소동에게 있어서 매우 큰 충격이었다.
" 악!" 외마디 비명소리를 내며 아환이 바닥에 뒹굴었다.
" 아환!"
진청청이 뛰어와 아환을 붙잡아 일으킨다.
아까 맞은 뺨은 퉁퉁 부어 오르고 입술을 터져 피가 흘러 나오고, 걷어 차인 옆구리가 무
척이나 고통스러운지 말도 못하고 숨만 가쁘게 내쉬는 아환.
"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제 열살도 채 안되는 소동에게 어른이 매를 들다니요? 당신들이
무사입니까? 듣기로는 청룡보는 정의를 수호하는 문파로 들었습니다. 당신들은 청룡보 소속
이 아닌가 보지요? 아이에게 함부로 손을 휘두름은 사파나 사악한 무뢰배들이나 하는 행위
로 알고 있습니다만.."
조리있고 신랄한 말투.
방금 손을 쓴 무사는 얼굴이 시뻘개져,
" 이..이.." 말을 채 있지 못하는데,
" 당돌한 계집이구나."
노파가 나섰다.
" 애가 버르장머리가 없어 훈계를 하는 것이지 그렇다고 청룡보를 모욕하다니.."
" 그게 훈계였습니까? 아직 어린 아이한테 발길질을 해서 나뒹굴게 한 것이 훈계입니까?"
" 이게...안되겠구나. 청룡보를 욕한 것도 모자라 이젠 사마외도 처럼 행동하다니."
" 사마외도?"
" 에잇!"
갑자기 역어상이 뒤에서 손을 뻗어 진청청의 머리칼을 움켜쥔다.
" 악!"
" 잔소리 말고 이 패갑이나 갖고 꺼져."
역어상의 입에서 거친 말투가 나왔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여염집 처자의 머리카락을 움
켜잡다니..
휙! 퍽!
손에 들린 패물갑이 날아서 역어상의 코에 정통으로 부딪혔다.
" 윽!"
뾰족한 부분이 맞은 탓일까?
콧잔등에서 송글송글 피가 배어나온다.
전혀 무공을 모르는 처자라 방심했고 가까운 거리라 미처 피할 새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챙! 챙!
몇몇 무사가 칼을 빼어 들었다.
두눈에 노기를 가득 담고,
" 감히 이 년이 어딜.."
손을 들어 제지를 하던 역어상, 눈을 돌려 노파를 쳐다 본다.
무언의 허락을 받으려 함일까?
노파가 눈살을 찌뿌리지만 이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의 격전에 피로가 계속되는 무사들을 이해하는 듯...
다섯 명의 사내가 진청청과 적무환을 끌고 숲속 으슥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역어상은 아직까지 진청청의 머릿채를 잡고 질질 끌다시피 가고 있었다.
문득, 두려움이 치솟아오른 진청청.
" 어디 가시는 길이예요?"
"...."
대답이 없다.
" 저흴 어디로 데려가시는 거죠?"
떨리는 목소리가 커진다. 뭔가를 짐작하기 때문일까?
갑자기
" 사람살려요!!"
진청청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 사라...ㅂ"
역어상이 손을 들어 진청청의 입을 막았다.
왠만큼 온 것일까?
수풀속에 작은 평지가 보인다.
직경이 일장 남짓. 잡초 몇 뿌리만 나 있는 공간.
풀썩.
진청청은 그 공간에 던져졌다.
고개를 휙 돌려 사내들을 쳐다 본다.
잔뜩 기대에 찬 눈들..욕구가 가득찬 눈빛들이 진청청을 향하기 시작했다.
역어상의 눈짓에 두 사내가 나섰다.
그들은 진청청에게 다가와서 주위를 둘러쌌다.
한명이 손을 들어 진청청을 뒤에서 껴안았다. 진청청은 필사적으로 저항을 하지만 어찌 연
약한 처자의 몸으로 무공을 익힌 사내를 당할 수 있을까?
다른 한명이 손을 들었다.
쫘악!
진청청의 앞섬이 길게 찢겨져 나간다.
" 악"
외마디 비명!
쫘악,쫙, 찌익!...파열음.
사내는 진청청의 앞부분의 옷을 상하의 가릴 것없이 갈기 갈기 찢어 낸다.
" 이 악적들!! 놔라! 놔라!"
퍽!
앞에서 옷을 찢던 사내가 정권으로 진청청의 명치를 가격했다.
" 읍!"
잡힌 상태에서 몸을 구부리지도 못하고 그냥 헛 숨을 들이키는 진청청, 엄청나게 고통스러
운듯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얼굴이 파랗게 질려간다.
구석에 처박혀 있는 아환은 정신을 잃어 미동도 하지 않고 널부러져 있었다.
치익! 칙, 툭!
어스름한 밤 숲속에 하얀 나신이 드러난다. 한창 여인이 물이 올랐다고 할 30대 중후반의
육체.
무질서하게 하늘을 덮고 있는 나뭇가지, 잎파리 사이로 새어 나오는 달 빛에 반사되어 그
흰 빛을 더했다.
적가집안에서 그리 고생을 하지 않은 탓인지, 살결이 햇빛에 그을리지도 않았고 몸에 근육
이 잡히지도 않았다. 뒤로 단정히 쪽진 머리, 단아한 눈썹, 콧날은 반듯하고 연한 붉은 입
술..갸날픈 목덜미를 지나 조금 빈약한 듯 하지만 처지지 않고 소담스러운 유방, 그위에 파
르르 떨고 있는 검붉은 젖꼭지, 적당히 살이 오른 아랫배를 지나면 음부가 나온다.
그리고 갈라진 틈..여인의 숲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깍은 자국이 있는 것도 아닌 것을
보면 선천적이 무모일 것이다. 그 밑으로 곧게 뻗은 다리..
어둠 속이지만 달빛과 무인들의 시선이기에 진청청의 나신을 감상하는데에는 별 지장을 느
끼지 않았다.
조금전의 명치의 충격때문일까?
발가벗은 몸에 잔경련만 퍼져 나가고 가쁜 숨만 내쉬는 여체가 사내의 억센 두 팔에 잡혀
있었다.
앞에서 옷을 찢던 사내가 잘기 잘기 흩어진 옷 뭉치를 들고 나신에 다가 간다.
옷조각을 꾸깆 뭉치더니 왼손으로 진청청의 턱을 움켜잡는다. 사내의 완력에 입을 벌리는
진청청.
사내는 주저 없이 작은 입에 옷가지를 꾸겨 놓는다.
" 네년이 소리치는 것도 귀찮고 정절입네 하고 혀 깨무는 것도 귀찮아. 뭐 이따가는 상관없
겠지만..흐흐흐"
괴소를 흘리며 시선을 아래위로 진청청의 나신을 관음한다.
뒤에서 진청청을 잡고 있던 사내가 천천히 몸을 낮춰 진청청을 바닥에 눕혔다. 두손이 꽉
쥐임을 당한채라 진청청은 옷가지 사이로 기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자신에
게 무슨 일이 닥치는 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진청청 양팔이 사내의 허리를 자신의 머리위에서 안은 채로 사내의 허리에서 고정되었다.
사내가 자신의 배위에 진청청의 머리를 뉘이고 손을 돌려 진청청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뒤이어 사내 둘이 다가와 진청청의 다리 하나씩을 잡고 벌리기 시작하였다.
꿀꺽!
침이 넘어가는 소리.
사내들은 간만에 보는 여인의 나신에 다들 욕망을 감추지 않았다.
혈도문과의 싸움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정비가 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긴장이
늦추어지자 욕망이 살아 났다.
평소같으면 여자들을 강간함을 물론 아까 같은 상황에서 아녀자와 어린 아이를 폭행하는
것조차 상상을 할 수 없었던 사내들..그러한 사내의 생리를 알기에 아까 그 노파도 이러한
상황을 묵인한 것이리라. 일개 의방 나부랭이들이 대 청룡보 사람들을 업신여기다니..
두려움과 긴장이 계속되다가 극도의 상황에서 그것이 풀어질때 심리적 공황이 생기고 그것
의 희생자가 된 진청청과 아환이 불쌍하기만 하였다.
별려진 다리.
달빛에 반사되는 허벅지 그 사이로 보이는 갈라진 틈..진청청의 비부가 적나라하게 들어났
다.
한 가닥의 터럭도 보이지 않아 어린 소녀의 음부 같지만 이미 사내를 꽤 알고 있는 듯 짙
은 색깔과 대대음순사이로 삐져나온 작은 입술이 어른의 그것임을 말하고 있었다.
역어상이 손을 뻗어 그 틈을 쓸어 간다.
이제 여름이 가까와 오는 듯 땀으로 인한 약간의 습기가 느껴졌다.
심하게 도리질을 치는 진청청.
필사적인 몸짓에 호소를 잔뜩 담은 눈빛으로 사내들에게 호소를 한다.
허나, 이미 욕망 분출 밖에 없는 사내들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푸욱!
손가락을 여인의 비부, 질로 찔러 보는 역어상의 손가락. 진청청의 크게 치켜뜬 눈은 아랑
곳 없이 소가락 몇개를 움직여 비부의 여기저기를 만져 본다.
또 다른 손을 옮겨 여인의 가슴을 주물러 본다.
특유의 부드러움을 잠시 손 마디마디로 감상하던 역어상은 점점 손에 힘을 주었다.
크지 않은 젖가슴이 움켜진 사내의 손가락 사이로 삐져 나온다.
" 정말 쓸만한 계집이군."
역어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수통이었다.
역어상은 마개를 열고 한 모금 마시더니 주둥이를 아래로 기울였다.
주르륵!
무언가 액체가 아래로 흘러 진청청의 사타구니를 적셨다. 연한 주향이 풍겨 난다.
여정에 목을 축일려고 준비한 죽엽청이 진청청의 아랫배위로, 음부위로 뿌려 졌다.
죽엽청은 골을 따라 흐르기 시작하였다.
터럭 한올 없는 여인의 음부사이의 길로 죽엽청이 흐르고 있었다.
달빛에 반사된 물기 어린 여인의 음부.
사내들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린다.
언제 벗었는지 역어상은 바지를 벗고 있었다. 우뚝 솟은 남근이 월광아래 기묘한 풍경을
자아낸다.
진청청의 도리질치던 머리, 눈길이 잠시 남근에 고정 되었다가, 눈이 더더욱 치켜 뜨여지고
머리는 마구 좌우로 도리질쳤다. 두 팔과 두 다리가 잡혀 있음에도 사내들이 들썩거릴 정도
로 필사적인 몸짓이 보였다.
역어상의 두 손이 진청청의 둔부를 양쪽으로 붙잡는다 싶더니,
푹.
역어상의 하체가 진청청과 밀착되었다.
심하게 몸부림 치던 진청청의 두 눈의 부릅뜨여지고 필사적인 몸짓이 일순 정지되었다.
물기가 어린다 싶더니 눈가를 타고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린다.
역어상은 두 손을 진청청의 가슴위에 올려 놓고 주물럭거리며 허리의 진퇴운동을 하고 있
었다.
" 허억, 허어"
상당한 쾌감이 느껴지는지 신음성을 내며 남근을 진청청의 비부에 밀어 놓고 있었다.
잠시전에 뿌린 술로 인하여 애액이 충분하진 않았지만 사내를 이미 알아버린 음부이기에
큰 무리없이 삽입이 되고 왕복이 되었다.
결사적으로 저항하던 진청청, 사내의 남근이 체내에 들어오면서 갑자기 일체의 반항을 하
지 않고 전신을 늘어뜨렸다. 옆으로 돌려진 얼굴을 따라 흘러나오는 눈물만이 진청청이 지
금 유일하게 반응하는 정도. 역어상의 허리가 움직임에 따라 사물처럼 같이 움직일 뿐 일체
의 움직임이 없었다.
슈욱.숙.수욱.
남근이 비부의 질속에서 움직일때마다 기묘한 소성이 흘러나왔다.
남자의 허리가 진청청의 하체를 때릴 때마다 여인의 몸은 출렁거렸다.
이윽고, 사내의 경련..진저리..
역어상은 젖가슴을 한번 힘껏 움켜지며 최대한 밀착시켰던 허리를 들어올린 후 일어났다.
주위에 떨어져 있는 천조각을 쥐어 가볍게 뒤처리를 한후 수통을 들어 죽엽청을 한모금 마
셨다.
역어상이 옷을 추스리고 일어서서 자리를 비키자 지금까지 주위에서 진청청의 팔 다리를
잡고 있던 사내들과 나머지 한명의 사내가 한꺼번에 늘어져 있는 여체에게로 달려 들었다.
[ 창작] 수라기(獸羅記) 제1부 적무환(赤無患) 2장 회상 (5) 창작야설
별루 시덥잖은 글이지만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댓글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목을 의아해 하시는 분이 있어 한말씀드립니다.
' 수라기(獸羅記)' 에서 수라는 '아수라(阿修羅)'에서 딴 말이 아닙니다. 아수라의 한자어 자
체가 '불(佛)-BUDDA' 같이 어의가 아닌 음을 빌려 딴 것이기에 한자어의 의미를 찾는 것
자체도 무의미 했고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은 '짐승들의 광행(狂行)'이라는 의미로 쓴 것입니
다. 물론 짐승이란 글에서 나온, 혹은 나올 여러 군상들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원래 제목을 '수유기(獸遊記)로 하려다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게 생각나서 제목을 바꾼
것입니다.
또 초반에 아환이 너무 많은 수난을 겪었다고 지적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현 아환의 나이가
9세 가량입니다. 모친의 '능욕'이 무언지 제대로 구별하기엔 어린 나이라 생각됩니다. 단지
아환의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진청청의 치욕의 상태가 차후에 아환의 인성에 어떠한 형
태이든 영향을 줄 것임을 말씀드릴 정도..구상은 되어 있다고 하지만 표현함에 있어 얼마나
그려낼지도..
허접하게 몇자 적었습니다. 그럼 또 시작해야죠..
(5)
아무 촛점이 없는 동공, 무얼 쳐다보는 걸까?
얼굴이 땅에 붙은 채로 진청청은 멍하니 한 곳을 보고 있었다.
시선의 끝, 널부러져 있는 아환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오지만 아무 감각도 없는 듯 진청청은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 괜찬은 년이야..크크크"
막 진청청의 몸에서 신형을 일으키는 사내, 괴소를 흘리며 잎가에는 욕망을 어느정도 배출
한 듯 만족감이 느껴진다. 아까 수통이 놓여있는 자리고 가서 의례 그래야 하는 듯 다른 사
내들과 마찬가지로 수통을 입에 댄다.
방금 사내가 일어선 자리, 진청청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누워있었다.
가슴의 기복이 약간씩 상하로 움직이는 것, 미미하게 떨리는 다리외엔 마치 생명이 없는
인형처럼..
전신에 남아 있는 난행의 흔적이 한밤의 달빛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지가 활짝 벌려신 상태에서 숲속에 누워있는 진청청.
얼마나 많은 사내들이 주물르고 빨고 핥았는지 젖가슴에 남아 있는 수많은 치흔과 손자국
들..그것들은 땀인지 모를 물기와 함께 진청청의 교구를 장식하고 있었다. 붉고 푸른 자국
들..여기저기에 맺힌 피멍울, 일부의 상처에선 핏자국마저 보였다.
아랫배를 거쳐 하복부로 내려가보면 터럭하나 보이지 않는 진청청의 비처가 방금의 난행의
흔적을 보여준다. 진청청의 가슴의 기복을 따라 조금씩 새어나오는 탁한 분홍빛의 체액이
끊임없이 비부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당량의 체액이 흘러나왔는지 진청청의 음부가 위
치한 부분의 초지는 조그마한 체액이 고여 있었다. 단지 체액뿐이 아닌 몇번에 걸친 성관계
로 인한 열상으로 음순이 찢어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인 체액의 빛깔은 연한 적색의
핏덩이를 언뜻 보이고 있었다.
더이상 흘러나올 눈물이 없는 것일까?
진청청의 눈에선 더이상의 눈물이 흘러나오질 않았다. 다만 촛점없는 두 눈은 이미 이지를
상실한듯 고정되어 아환의 동체의 널부러짐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 색다른 것을 즐겨볼까?"
사내들중 하나가 키들거리며 진청청에게로 다가왔다.
주섬주섬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유지에 쌓인 조그만 덩어리..
사내는 주섬주섬 유지를 벗겨내었다.
손톱만한 검은 환약 하나..
" 그게 뭔가?" 이 상황을 옆에서 보던 사내 하나가 궁금한지 한마디 던진다.
" 이게 끝내주는 거지, 이거 하나면 석녀도 가랭이를 벌리고 달려든다는 춘락환(春樂丸)이라
는 것인데 얼마전 혈도문의 녀석의 품을 뒤지다 발견한거지."
" 그래?"
" 이렇게 널부러져 있는 계집이 무슨 흥미가 있나? 이걸루 다시 한번 즐기세."
사내가 진청청에게 다가가서 진청청의 입에 물려 있는 옷가지를 제거하고 환약을 밀어 넣
었다. 금새 환약은 타액과 용해되어 사내가 턱을 다물게 하니 식도로 넘어갔다.
잠시 후, 아무런 생각도 없어 보이는 진청청의 교구가 반응을 보였다. 조금전까지의 움직임
이 전혀 없는 그런 상태가 아니라 은은하게 붉은 기운이 도는 육체, 어느 새인가 진청청은
적신노체(赤身露體)가 되어 있었다. 잔경련이 점차 퍼져나가고 두눈에 열기가 보였다. 살짝
벌어진 입술사이론 달뜬 한숨이 배어 나오고, 사내를 유혹하는 치태가 연출이 되고 있었다.
이때, 사내들이 시선을 진청청에게서 떼지 못할 사이 아환이 꿈틀거림을 보였다. 이제 정신
이 드는 것인지 힘겹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손을 들어 바닥을 짚고 고개를 들어 시선을
전방으로 향하는 순간, 아환의 두눈에 가득 들어오는 장내.
여러 사내 사이에서 진창거리고 있는 진청청의 치태가 동공에 맺혔다.
막 입을 열어 무어라 말을 할려고 하는 찰나,
휫!
미약한 소리를 내며 조그마한 돌조각이 날라와서 아환의 아혈에 적중이 되었다. 일어날려
고 하는 그 자리에서 정지된 상태로 시선을 장내에 고정하고 아환은 조금도 움직일수 없었
다. 그저 장내의 음행을 지켜볼뿐...
진청청과 사내들의 광란이 점점 그 강도를 더해갔다.
몇 사내가 그 몸을 몇번을 거쳐갔는지 셀수가 없을 정도로 진청청의 교구에 실렸다. 입에,
음부에, 항문에 수없이 사내들이 드나들었다. 한번에 세명의 남근이 진청청의 곳곳에 담겨있
기도 하였다.
사정, 다시 사정, 사정, 사정...
우유로 목욕을 한듯 온통 사내들의 체액이 진청청을 덮고 있었다. 약효의 영향으로 이미
이지를 잃은 진청청은 시간이 갈수록 음심의 동요로 인하여 사내를 탐하였으나 이제 원기가
고갈되어 가는듯 점차 행위가 느려지고 있었다.
그 순간,
장내에 흰 빛을 띈 인형이 나타났다.
" 무슨 짓인가? 이 무슨 천인공노할 짓인가?"
장내에 드러난 인형의 모습이 반사된 달빛에 군중들의 시선에 그 형상이 드러났다.
천상의 선녀가 나타났나?
칠흙같이 검은 삼단 머릿결을 뒤로 휘날리며, 담백하지만 빛나는 순백의 능라의를 입은 여
인. 초롱초롱 빛나는 봉목을 가진 30대 초반의 아름답고 기품이 있어보이는 한 여인이 손에
2척팔촌가량의 검을 든채로 허공에서 신형을 뽑아 장내에 내려 앉았다.
서릿발같이 냉정한 얼굴, 긴 목덜미를 타고 내리는 능선, 옷으로 감추었다 하지만 얼핏 보
이는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가히 절세미인이라 할 수 있는 여검사의 출현이었다.
" 그대들은 누구인가? 누구길래 이런 험한 짓을 하는가?"
매우 노한 듯 보이나 어투 자체로는 그리 과격한 표현이 나오지 않는 걸 보니...
멍한 사내들이 아직 상황이 정리되지 않는 듯 그저 쳐다보기만 하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무어라 말을 하기전,
" 저는 청룡보의 역어상이라 합니다. 어인 일로 검후께서..?"
강호의 삼푼은 실력이고 칠푼은 경륜이라 했던가? 청룡보의 총관 역어상은 명호에 어울리
는 눈치를 갖고 있었다. 갑자기 드러난 여인, 이 산중에서 저리 당당히 자신을 드러낸 태도,
어투, 그리고 연령대 및 차림새 등이 순간 그의 뇌리에 경각심을 불어 일으키고, 잠시의 생
각을 정리한 역어상은 나타난 여무사가 그가 알고 있는 가장 강한 무인임을 짐작하게 하였
다.
검후(劍后)!
일명 호천사(護天師)라 불리우는 당금 무림의 절대 여고수!
오십년전 20대 후반의 나이로 강호에 출도하여 기라성 같은 고수들을 비무로 제압하고 그
명성을 사해에 떨쳐 작금 무림의 칠왕(七王) 중 일후 쌍제 사군의 으뜸이라 칭함을 받는 검
신. 가진 바 무공의 근원은 알려진 바 없으나 장검하나로 구주 팔황을 군림하는 무인이라
평한다.
" 본후의 물음에 대한 답을 아직 듣지 못했다."
냉기가 느껴졌다.
혈권호(血卷狐), 그 명호가 괜히 얻어진 것은 아닐것이다. 역어상은 침착한 어투로 검후의
물음에 답하였다.
" 저는 청룡보 소속의 역어상이라 합니다. 저희 청룡보는 그간 민초들에 많이 악랄한 짓을
한 혈도문과 얼마전 대접전을 하여 가까스로 승리를 하여 이제 그 악도들을 처분하고 이제
잔당들을 소탕하려하다가 혈도문의 잔당으로 보이는 인물들을 발견하여 응징을 가하려던중
저 요녀가 간악한 음약을 이용하여 저희 보내의 무사들을 홀려 잠시 혼망 중 이었습니다."
검후가 눈길을 돌려 진청청을 힐끗 쳐다보니, 과연 진청청이 붉게 흥분된 몸짓으로 사내들
을 유혹하고 있는 치태를 보임을 언뜻 보았다.
" 그렇다고 해도.." 말끝을 흐리는 검후, 비록 가진 바 무공이 고강하더라 하더라도 무림 경
험이 그다지 많다고 할 수 없는 검후, 무림인들과의 대전이라야 비무행으로 몇번한것일 뿐
또 많은 무림인들이 추앙하는바 암습이나 기타 방문좌도의 수법을 별로 알지 못하고 그러한
외도의 수법을 경멸하기만 하였던 검후는 역어상의 말이 그럴듯 하였고, 들려오는 청룡보와
혈도문의 싸움의 정황을 귀동냥으로 알았으며 방문좌도를 극히 싫어했기에, 또 지금 자신에
게 할일이 있기에 별다른 판단 없이 지나칠려 하였다.
" 본후는 지금 한 노인을 쫓고 있다. 혹시 부상을 입은 노인을 보지 못하였는가?"
" 저흰 일체 다른 사람들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혹시 어떤..?"
" 혈교의 장문 사제이다. 혈의를 입고 있고..정말 못보았나?"
" 예. 이 곳엔 어느 누구도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 그런가?..."
잠시 침묵하며 무언가를 생각하던 검후,
" 이제 그만하게. 그만하면 되었다 보이네. 정의의 명성에 욕보이는 짓은 그만하게."
역어상의 말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상황을 안 것일까? 검후는 점잖게 한마디를 던졌다.
" 예. 제가 진작 만류했어야 하는데..불초의 과실입니다. 너그러이 용서하십시오."
" 되었네."
검후가 다시 검을 추스리고 무언가를 생각한다.
" 저, 밑에 사갈검파파가 계신데.."
" 나중에 들리도록 하지."
검후는 중간에 말을 끊고 신형을 돌려 순식간에 중인들의 시선에서 사라져 갔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눈에 가득 담고 있는 눈들이 있었다.
아환의 눈, 또 한쌍의 눈 중인들이 웅성거리는 곳에서 대여섯장 떨어져 있는 나무위에 잔
뜩 웅크리고 있는...
[ 창작] 수라기(獸羅記) 제1부 적무환(赤無患) 2장 회상(回想) 마지막 창작야설
(6)
갑작스러운 검후의 출현에 장내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사내들 역시 어느 정도 욕망을
충족시켰고, 흥분기도 식어갔다.
" 검후라.."
홀연히 나타난 무림 최강고수, 그 존재가 쫓고 있다는 노인..
역어상은 골몰히 무언가를 생각하였다.
" 저 총관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난 역어상, 이제 정리해야할 시간. 시선을 돌려 교태
스런 몸짓을 아직까지 보이고 있는 진청청에게로 눈을 돌린다.
붉게 흥분되어 염기를 뿌리고 있는 진청청, 전혀 자신에게 다가올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어상은 한 사내에게 눈길을 돌린다. 그리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정리하고 내려오거라."
말을 마치곤 몸을 돌려 내려가는 역어상과 세명의 사내들, 많은 시간을 지체한 듯 싶어 서
둘러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한 사내만 남고 나머지 사내들이 장내를 벗어났다.
남은 사내는 진청청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 흐흐흐..네년의 몸뚱아리는 아깝지만 이만 가줘야 겠다."
괴소를 흘리며 허리춤에서 칼을 빼어 든다.
' 갈' 진청청의 귓가로 한줄기 굉음이 들렸다.
촉촉히 젖어 욕망을 뿌리던 두 눈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약간의 빛을 낸다.
' 듣기만 해라. 지금 내 능력으론 내 자식밖에 구할 수 없다. 그러나 네 자식놈이 자의적으
로 협조를 해야 그것도 가능할 것, 네 도움이 필요하다. 네 자식에게 도망가라고 외쳐라. 너
도 네 자식이 죽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지금 네 곁에 있는 자들은 틀림없이 살인멸구를
할려고 할 것이다. 네 자식을 살리고 싶으면 내 말을 따라라. 반드시 네 자식을 구하고 너희
들이 복수하는 것을 도와주겠다."
귓가에 들린 음성으로 어느 정도 신지를 되찾은 진청청, 현실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나마
한 듯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체내에 다시 약효가 돌기 시작했다. 이 약효가 또 자신을
지배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었다.
" 아환! 도망쳐라!" 절규!
" 아환! 여기에 있으면 우린 다 죽는다. 너만이라도 살아야 한다. 내 자식이라면 적가의 핏
줄이라면 도망쳐라! 꼭 살아야 한다."
피를 토하듯 절절한 외침. 진청청은 자신과 아환은 어차피 이들 손에 죽을 것임을 알았다.
그 와중에 귓가에 들려온 구명의 줄. 가장 소중한 존재를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진청청의 뇌
리에는 아환이 차후에 복수나 기타 다른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아
환은 지금 이 자리를 벗어나 살아야 했다.
사내가 미쳐 손쓸 틈도 없이 터져나온 절절한 외침!
서둘러 사내가 칼을 휘두른다.
" 이 년이! 에잇"
파앗!
허공을 가르는 푸른 빛.
하늘로 퍼져 나가는 선홍빛 핏줄기.
사내의 칼이 길게 진청청의 우측 어깨에서 좌측 허리까지 길게 베고 지나갔다.
부릅뜬 눈들이 마주친다.
칼에 의해 생기를 잃어가는 진청청의 눈,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아환의 눈.
' 뛰어라! 네 어미의 죽음을 헛되게 할 셈이냐!'
' 어서 뛰어라! 어서! 이 멍청한 녀석아!!'
머리를 뒤흔드는 음성, 기이한 마력이 담겨있는듯 아환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자
리에서 일어나 무작정 뒤로 뛰기 시작했다. 어느새 혈도가 풀려있는 듯 아환은 멍한 상태로
전력을 다하여 뜀박질을 하였다.
" 헛, 저놈이!"
전혀 그 상황을 짐작하지 못하였는 듯 일순 당황하여 대처 동작을 찾지 못하는 사내, 곧
칼을 움켜쥐고 아환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 섰거라. 이 놈!"
밤중의 숲속의 길은 왠만큼 뛰어난 무사라 할지라도 분별이 어렵다.
무작정 뒤를 쫓는 사내의 모습에서도 그 사실은 역력히 드러난다. 아환의 작은 몸은 눈에
잘 띄지 않고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의지하여 뒤를 쫓을 뿐이었다. 경공도 이런 울창한
숲속에서는 펼치기 쉽지 않았다.
" 서라. 이 새끼야"
거친 욕설과 함께 뒤를 좇는 무사. 하지만 아환은 귓가에 들려오는 기이한 힘이 담긴 음성
이 제시해주는 방향으로 달음박질을 계속할뿐 뒤에서 누가 쫓는지도 모르고 아무 생각없이
발만 바쁘게 재촉했다.
얼마나 뛰었을까?
결코 스스로의 힘만이었다면 이동하지 못할 거리..아환이 뜀박질을 계속하여 도달한 곳은
한 절벽이었다. 뜀박질을 멈추고 천천히 뒷걸음질로 절벽쪽으로 다가가는 아환, 십여장 떨어
진 곳에는 지금껏 뒤를 쫓아온 사내가 괴소를 흘리며 다가 온다.
" 흐흐흐..어디 더 도망가보지.."
한걸음 한걸음 뒤로 향하는 아환..이제 절벽까지 이장가량 남았다. 어느덧 사내는 칠팔장
앞에 서있고..갑자기 몸을 획 돌려 절벽을 향해 달리는 아환, 몸을 날려 절벽에서 뛰어내린
다.
" 저저..저런 새끼.."
한달음에 절벽끝까지 다가와서 밑을 내려다보는 사내, 시커먼 어둠이 입을 벌린 끝이 안보
이는 어둠..귀를 기울이는 사내, 잠시후 툭! 하는 희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독한 놈의 새끼로구나. 허 참!"
틀림없는 죽음을 확인한 듯 사내는 바로 몸을 돌려 지금까지 온길을 되돌려 가기 시작했
다.
아환은 정말 절벽에서 뛰어내린 것일까?
기이한 힘이 담긴 음성은 아환을 어떻게 한 것일까?
[ 창작] 수라기(獸羅記) 제1부 적무환(赤無患) 3장 연(緣) 창작야설
많은 분들이 1장 처음에 나온 '누나'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시네요.
이 여자에 관한 내용은 3장 연(緣)에서 다뤄집니다.
기대하시는 내용이 어떤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이 여자는 아환에게 있어 소모품아닌 소모
품의 역활을 할 예정입니다. 그 역할은 4장에서 나오겠지만요. 미리 알려드리고 싶지 않았지
만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