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수라기(獸羅記) 제1부 적무환(赤無患) 1장 적무환 (2) 9 야 설
(2)
좁은 부엌.
아환은 솥단지 둘을 불위에 올려 놓고 묵묵히 손을 놀려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아마 저녁 끼니 이리라.
감자와 무를 비롯하 몇몇 채소, 그리고 이름모를 버섯과 산채 몇가지..
투박한 손으로 식도를 들고 끼니를 준비하는 손길엔 제법 익숙함이 묻어나온다.
서서서석..서서석..
기이한일이다..
틀림없이 도마에 여러 제반 재료를 올려 놓고 칼을 움직이는데 칼이 도마에 부딪히는 소리
가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규격으로 잘려나가는 식재료들..
자그마한 소리가 날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지금 아환의 눈빛을 보면 무언가
있으리라 짐작될 뿐이다.
두 솥 에서 김이 조금씩 흘러 나오고 있다.
아환은 손을 움직여 솥하나를 양손으로 들어올린다..
맨손.
아무 행주나 장갑을 끼지 않은채로 솥을 들어 올려 불위에서 바닥으로 내려 놓는다.
방금 물이 끓고 있는듯이 보이는 솥이었는데..
얼핏 손에서 붉은 기운이 보인듯도 하다.
아환은 개수대에서 손을 씻고 부엌을 나와 잠시 시선을 허공에 고정 시켰다.
그리곤 다시 눈을 돌려 초옥을 바라보았다.
일반 서민이 살고 있는 그저 그런 평범한 집..
방 두칸에 부엌 하나..
별 장식도 없고 특징도 없는 그런 집, 지은지 3~4년 정도 되어 보이는 마을 끝에 서있는
초옥..
아환이 이 마을에 들어와서 지은 집이리라..
아환은 발걸음을 옮겨 방 쪽으로 향했다.
얼마 전까지 사내들로 소란스러웠던 마당은 이제 적막만이 남아 있고..
아환은 두 칸의 방중 좌측에 있는 방문을 열고 들어 갔다.
간단한 가재도구가 두눈에 들어온다.
옷을 넣을 수 있는 나무로 짠 옷장, 그리고 나무로 만든 침상..그 위엔 여러 가죽을 꿰메어
만든 자리가 보이고 얇은 천이 깔려 있다.
침상위엔 나신의 여인이 멍한 눈을 하고 몸을 추스리지도 않고 사지를 아무렇게나 한채로
널부러져 있다. 얼마전까지 사내에게 시달림을 당한 듯 전신 곳곳에 치흔과 체액들..그리고
약간의 멍자국..
칠흑같이 까만 머릿결은 침상위에서 흐트러져 있고 갸름한 미인형의 얼굴엔 별 감정이 보
이지 않았다. 붉은 입술, 마치 금방이라도 피가 뿜어져 나올듯하 입술은 약간 벌려져 있고,
탁한 우윳빛의 액체가 입가에서 침상으로 흘려나와 여인의 입술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누워있어도 그 모양을 잃지 않은 봉긋이 솟은 가슴위론 조금 검어짐 듯한 유실이 있고..유
륜을 경계로 하여 물기와 빨간 자국들이 눈에 들어온다..적당히 살이 오른 아랫배를 지나 거
뭇한 비림이 보이고 '張'자와 숲에 가린 붉은 속살이 보였다. 그곳에서도 역시 우윳빛정액이
가랑비내릴때의 처마에서 빗물이 떨어지듯 조금씩 흘러내린다.
아환은 침상위로 다가가 손을 여인의 등뒤로 옮겨 여인을 안아 올린다. 이것 역시 아환에
게는 익숙한듯 자연스러운 동작. 아환은 여인을 안고 방을 나섰다. 여인은 마치 움직이지 않
는 인형인듯 아무 움직임도 없이 아환에게 몸을 맡겼다.
부엌에 들어서서 아환은 여인을 미리 준비한 의자에 앉히고 아까 끓인 물과 따로 준비한
흙을 구워만든 세숫대야 비슷한 용기에 담아 있는 물로 여인을 씻기기 시작했다.
먼저 얼굴을 씻기고, 머리를 감기고, 몸을 물로 쓸어내린다. 이 일 역시 반복되는 일상인듯
자연스럽기 그지 없다. 제법 정성스러워보인다. 거칠어 보이는 손마디지만 차분히 여인의 전
신을 쓸어가는 아환의 손길은 여인들이 아끼는 그릇을 닦듯 신중하면서 조심스럽다.
아환의 손길이 어디를 지났을까?
아무 동작도 없는 여인의 몸이 움찔거린다. 살짝 벌어진 입술사이론 한숨이 배어나오고 아
미가 약간 찡그려진다. 갸날퍼 보이는 손끝이 움직일듯 하다 멈춰서고.
아환은 손길을 여인의 젖가슴을 지나 아랫배로 움직였다. 그러다간 멈칫 '張'이라 써있는
화인(火印)에 손길을 잠시 고정시킨다. 그리곤 곧바로 손을 옮겨 비림으로 손을 옮겨 음부를
씻겨냈다.
" 하아" 여인의 입에선 단숨이 배어나온다. 어느새 눈이 감겨져 있고 한 손을 들어 자신의
젖가슴을 천천히 쓰다듬는다. 잔떨림이 몸에서 차츰 번져나가고 무언가 고조되는듯 여인의
몸짓과 신음소리는 차츰차츰 강도를 더해갔다. 여인은 눈을 뜨고 열기가 담뿍 담긴 동공으
로 아환을 응시한다. 단숨과 여인의 열기어린 눈..강한 유혹이 느껴졌다.
불쑥 아환이 일어섰다. 여인을 안아 올린다. 그리고는 옆에 놓여 있는 수건으로 여인의 전
신을 닦기 시작했다. 머릿결부터 얼굴 가슴을 지나 아랫배로 그리고 방초에 둘러 쌓인 음부
까지..다리를 지나 발끝까지 여인을 닦인다음 아환은 여인을 방으로 옮겨 놓았다. 체념의 표
정을 담고 있는 여인의 얼굴과는 다르게 아환의 얼굴에는 별 감정이 나타나 있지 않았다.
곧바로 다시 방을 나와서 부엌으로 들어간 아환은 아까 준비한 끼니거리를 마무리 하고 나
무 탁자에 담아서 방으로 향하였다.
자그마한 호롱불이 밝히기엔 그다지 어렵지 않은 크기의 방안,
다소 침침하지만 글을 일고 사물을 구별하기엔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명도 속에 아환이 서
있다.
아까와는 방의 구성물이 틀린 것을 보면 두칸방 중의 다른 방이리다.
이방 역시 침상과 옷장이 있고 옆방과는 틀리게 책 몇권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또 한
구석에 서있는 일장가량의 나무 봉이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할까?
아환은 어쩌면 숨이 막힐 정도의 느린 몸짓으로 전신을 움직이고 있었다.
화타오금세.
손끝 마디하나, 보결의 위치하나, 시선마저도 일정하게 유지하고 화타오금세를 펼치고 있는
아환.
점차 속도가 붙는다. 처음엔 정말 움직이나 싶을 정도의 느린 형식이 속도가 붙어 이젠
눈으로 형(形)을 식별하기 어려운 정도로 움직이고 있다. 그럼에도 속도는 줄지 않고 오히려
가속화되어가는데 지금은 아환의 신형이 하나가 아는듯 여러개로 보인다. 발은 언뜻보기에
몇걸음 움직이는 것같이 보이지도 않는데 아환의 신형은 방안을 점차 메우고 있다.
순간, 아환의 신형이 방안을 가득히 덮고 방이 온통 아환들로 가득찼다고 느낀 순간 거짓
말처럼 방안에 꽉 찼던 아환들이 없어졌다.
방가운데에 아환이 홀로 서있다.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아환.
일견하기에 내식을 조절하는 듯 싶다. 조식과 지식을 반복하고 체내의 기를 일주천하여 마
무리를 한다. 아환은 무공이라는 것을 아는 것일까?
아환은 손을 움직여 옆에 서있는 봉을 들었다.
오른손은 봉의 끝에서 세치가량 위를 잡고 왼손은 오른손에서 한자반 가량 떨어진 곳을 손
으로 잡았다. 천천히 봉끝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반 초옥의 방이라면 그지 크지 않은 공간, 아환은 그 공간의 부피를 무시하고 봉을 움직
이기 시작했다. 후려치고 찌르고 베어내고 거둬들이고 ..다시 뻗어내고..
기이하게도 봉을 뉘이면 방에서 양쪽으로 한자 정도 밖에 남지 않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봉은 방의 벽을 치지 않는다. 방끝을 스칠듯 스치지 않고 지나가며 봉영을 만들어낸다. 발은
아까의 화타오금세를 펼칠 때의 보결을 그대로 밟아 내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환은 하던 동작을 멈추고 구석에서 보퉁이 몇개를 들어올렸다.
보퉁이들을 풀자 그 속에는 나뭇잎이 가득하였다. 아환은 보퉁이에서 나온 나뭇잎들을 방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무작위적으로 방안에는 금방 나뭇잎이 뿌려져 있다. 그다지 적다 할수
없는 않은 양..다시 아환은 봉을 들어 아까의 초식을 재현해 나가고 있었다. 봉에서 이는 바
람이 나뭇잎을 들어 올린다. 점점 봉풍이 세어지며 바닥에 남아있는 나뭇잎은 방안을 혼돈
상태로 만들고 있었다.
봉끝이나 봉 대에 걸릴 법도 한데 나뭇잎은 봉에 하나도 스치지 않는다. 그 많은 나뭇잎이
방안을 혼재하고 있지만 봉대에는 스치지도 않고 있었다. 나뭇잎사이를 교묘하게 움직이는
봉. 결코 속도가 느려서 봉이 나뭇잎에 닿지 않는것은 아니다. 눈으로 제대로 식별할 수 없
는 속도로 움직이며 방안을 가득 봉영으로 채우는데 어찌 속도가 느리다 할수 있을까?
약 반시진 가량을 아환은 봉무를 추고 있었다. 나뭇잎은 땅에 닿기가 무섭게 다시 솟아오
르고를 반복했다. 끊임없는 봉의 움직임이 일순 봉이 잠시 멈춘듯 하다가 아환의 눈빛이 잠
시 반짝이는 순간,순식간에 방안을 봉영으로 가득히 뒤덮었다.
정적이 잠시 흐르고 방안에 가득하던 나뭇잎이 다시 중력을 이기지 못하여 방바닥으로 내
려 앉는다. 나뭇잎..아니 이제는 나뭇잎이라 말할 수 없는 잔재가 방바닥에 흩어져 있다. 잘
게 다지면 저런 형태일까? 아예 나뭇잎은 고기가 다져지듯 작은 조각으로 변해 방안을 어지
럽히고 있다.
방안에는 봉을 세우고 눈을 감은채 호흡을 조절하고 있는 아환이 서있고, 그 와중에도 신
기하게 꺼지지 않는 호롱불만이 방안을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