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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지겸은 문부터 잠갔다. 소희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를 자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혹시나 발정 난 자신이 욕구를 참지 못해 뛰쳐나갈까 봐 두려워서. 그래도 스스로 잠근 문고리를 보면 충동적인 행동이 나오려다가도 조금이나마 제정신을 차릴 수 있겠지.
“큭….”
다시금 전신에 퍼지는 뭉근한 통증에 지겸이 무릎을 꿇고 몸을 웅크렸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갑자기 러트 사이클이라니.
매일 먹는 억제제를 거른 적도 없고, 처음 알파로 발현했던 10대 이후론 이 정도로 전조 없이 사이클이 시작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동안 심장의 통증도 느끼지 못했는데….
역시 각인이 문제일까. 홀로 지키고 있었던 각인의 부작용이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건가.
계단 아래, 1층에 있을 게 분명한 소희의 페로몬이 그의 코끝까지 와 맴돌며 본능을 유혹한다. 이미 제 옷과 몸에 그녀의 체향이 가득했다. 쿠퍼액을 얼마나 흘려댄 것인지 속옷이 축축해진 지는 오래다.
지겸이 힘겹게 걸친 옷을 벗었다. 부드러운 면이 맨살을 스칠 때마다 아랫배가 더 묵직해진다. 나신이 드러나자 소희의 체향이 폐부에 더욱 진득하게 달라붙는 느낌이다. 온몸의 핏줄이 불끈대며 달궈진 피를 빠르게 퍼 날랐다. 거칠어진 호흡을 조금이라도 가다듬으려 노력하면서 거의 기듯이 욕실로 향했다. 차가운 물이라도 뒤집어쓰지 않으면 당장 죽을 것만 같다.
소희를 안고 싶다. 그녀의 보드라운 살결을 입안에 머금고 마음껏 빨때, 마치 하얀 설산에 핀 꽃처럼 붉게 피어오르는 모습이 눈앞에 어른댄다. 수줍게 벌어지는 속살을 억지로 벌려 한계까지 자신을 파묻고 미친놈처럼 박고 싶다. 단순한 애정과 욕정이라고 치부하기엔 다분히 가학적이고 뒤틀린 소유욕이 저변에 꿈틀댄다.
그러니까 피해야 한다. 이런 상태에서 소희를 안는다면 그녀가 상처받을 수도 있다. 어차피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사이클과 다르니 하루 이틀 고통스럽다 말지 않을까.
알파의 러트 사이클이나 오메가의 히트 사이클은 억제제를 통해 미리 예방할 수는 있었지만 이미 시작된 다음부터는 파트너와의 섹스가 아니면 가라앉힐 방법이 없었다.
각인 때문에 죽을 만큼 힘들었던 걸 견뎌낸 게 겨우 몇 달 전 일이다. 이 정도야, 소희를 생각하며 버티면 된다.
화마에 휩싸인 몸이 타오를 듯 화끈거렸다. 머릿속이 허물어지고, 눈앞이 뿌예진다.
당장 달려가 제 오메가를 끌어안고 싶은 날 것의 정욕이 자신을 찌른다. 하지만 절대로 안 돼. 소희를 다시 자신의 이기심이라는 덫으로 몰고 가 상처를 줄 수는 없다. 그러니 부디 자신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사랑하는 여자를 자신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기를.
***
소희는 벽난로 앞 의자에 그대로 멀뚱히 앉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 퍼부어진 자극과 끌어올려진 흥분으로 빠르게 뛰는 가슴을 애써 억누르며 생각했다. 무슨 일인 걸까. 제아무리 급한 일이 있다 해도 이런 식으로 자신을 혼자 두고 들어갈 사람이 아닌데.
지겸의 붉게 충혈되어 있던 눈가, 평소보다 좀 더 거칠었던 호흡 등이 떠올랐다. 혹시 어디가 아픈 건 아닐까? 자신이 걱정할까 봐 미리 피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충분히 그럴 사람이니까. 혹시 심장의 통증이 재발한 건… 제발 그런 것만은 아니어야 할 텐데.
그때 소희의 휴대폰이 울렸다. 김 실장님이었다.
“실장님…? 무슨 일이세요?”
- 아가씨, 지금 제가 산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아마 서너 시간 정도는 걸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네? 그게 무슨….”
지겸과 단둘이 2박 3일 일정으로 온 여행이었다. 그런데 산장에 도착한 당일, 김 실장님이 자신을 데리러 온다는 건 무슨 뜻인가.
- 도련님께 급한 일이 생겨서 바로 회사로 가셔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대신 모시러 가기로 했습니다. 짐은 천천히 챙겨 두시지요.
“지겸 씨가… 직접 부탁한 건가요?”
- 네, 그렇습니다.
소희는 의아함을 하나도 풀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 김 실장님께 전화할 정신은 있고, 그녀에겐 직접 설명할 새는 없다고? 지겸이 그럴 사람이 아닌 건 소희가 가장 잘 알았다. 어떻게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지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확실하다.
소희가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다급한 마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지겸의 방문 앞에 섰을 때, 안쪽에서부터 미세하고 묵직한 남자의 신음이 들려왔다. 분명 고통스럽게 끙끙 앓는 소리.
쾅쾅. 지체 없이 문을 두드렸다.
“지겸 씨! 지겸 씨? 괜찮아요? 무슨 일이에요!”
안에선 아무런 답이 없다. 몇 번 더 세게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어서 손잡이를 돌려보니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안에서 잠근 게 분명하다.
“당신 아파서 이래요? 심장이 안 좋은 거야? 피하지만 말고 얘기 좀 해 줘요. 응?”
그가 답이 없으니 소희의 마음이 점점 더 불안해졌다. 자신의 부름에도 답이 없을 정도면 심각한 것 같은데. 방 열쇠가 어디 있지.
소희는 김 실장님께 전화해 비상열쇠를 찾아왔다. 문 앞에 서 크게 심호흡을 하고 방문을 열었다.
“구지겸! 당신…!”
아. 방문을 열자마자 압도적인 지겸의 알파 페로몬이 폭발하듯 소희를 휘감았다. 너무 놀라 다리가 후들거린다. 자신을 그렇게 두고 간 것에 대해 뭐라고 한마디 쏘아주려는 마음이었는데 지겸의 상태를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방금 전 상황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남자에게, 러트 사이클이 왔다. 싱가포르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같은데. 아니, 비슷했으려나. 다만 그때는 그녀도 히트 사이클이 왔던 상태라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도.
숨이 막힐 듯한 페로몬에 꿋꿋하려고 노력하며 소희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지겸은 침대 아래 기대 앉아 끙끙대고 있었다. 샤워했는지 머리카락은 젖어 있고 목욕가운을 입은 채였다. 눈을 감고 미간을 찌푸린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다. 가운 사이 드러난 몸은 물인지 땀인지 알 수 없는 액체로 잔뜩 젖어 있었다. 그가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어깨를 들썩일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점도 높은 페로몬이 쏟아졌다.
“임소…희… 오…….”
목을 긁는 듯한 낮은 음성이 작게 흘러나왔다.
“뭐, 뭐라고요?”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소희가 한 걸음 더 다가가자, 그의 몸이 흠칫 떨렸다.
“오지…마….”
“지겸씨.”
그가 힘겹게 눈을 떠 그녀를 바라봤다.
“제발 가…. 더는 가, 까이 오지, 마….”
조금 전보다 분명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 속에 간절한 울림이 담겨 있다. 소희는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그 진심을 이제 모를 수 없다. 러트 사이클을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파트너 오메가와의 성관계인데도, 지겸은 혼자 버티려고 하고 있다. 히트도 오지 않은 자신이 혹여나 발정기의 자신 때문에 다칠까 봐 두려워서.
“괜찮아, 괜찮아요.”
하아. 지겸의 눈빛이 소희를 향한다. 마치 아득한 우주 같은 새카만 동공에 미묘한 이채가 번뜩이며 깃든다. 최선을 다해 들끓는 욕망과 싸우고 있는 남자가 안쓰럽다. 그런 그를 보는 소희의 가슴이 저민다.
하지만 그가 놓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그가 지닌 각인의 주인이 다른 누구도 아닌 소희라는 것. 그를 향한 소희의 마음이 결코 작지도 적지도 않다는 것. 무엇보다 사랑하는 알파의 페로몬에 굴복당하고 싶은 게 오메가의 심장에 새겨진 본능이라는 사실을.
소희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자신의 페로몬을 풀어놓는다.
지겸이 흠칫 놀랐다. 그녀가 다가올수록 분명 제 심장이 더 거세게 뛴다. 하지만 혼자 발정해 괴롭던 조금 전과는 다르다. 그녀의 체향은 날뛰는 알파의 페로몬을 다독이고 보듬어준다. 은근하고 감미로운 페로몬이 황홀하다.
완전히 다가온 소희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지겸씨, 나 좀 봐봐요. 응?”
그녀가 남자의 두 뺨을 잡아 불꽃 같은 정염이 넘실대는 눈동자를 제게 맞췄다. 마치 불구덩이에 손을 집어넣은 것 같다.
“소, 희야….”
“응, 나잖아. 임소희. 당신 여자잖아요.”
소희의 떨리는 입술이 지겸의 이마에 닿았다.
“큿.”
그에게서 억눌린 신음이 작게 뱉어졌다. 그녀의 호흡이 전해진 곳이 녹아내릴 것만 같다.
아무리 소희라도 이런 그가 하나도 겁나지 않는 건 아니다. 눈앞에서 헐떡이는 남자의 생생한 욕정이 자신을 한입에 삼킨대도 이상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기꺼이, 그러고 싶었다. 이렇게 혼자 괴로워하는 걸 보느니 제 몸의 살을 낱낱이 발라 그의 입 속에 넣어주는 게 낫겠다면. 그 어느 때보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면. 아무래도 미친 이 남자에게 꼭 걸맞은, 미친 오메가가 된 거겠지.
“나 봐요, 지겸 씨. 우리의 처음, 기억해?”
지겸의 짙은 눈썹이 조금 일그러진다. 여전히 아픈 기억이다. 소희를 상처 주고 결국 자신에게도 큰 흉터로 남은 일.
“그땐 당신이 도와줬잖아. 이번엔 내가… 돕게 해 줘.”
“뭐…? 흐.”
무슨 소리냐고, 그러지 말라고 더 말해야 하는데 지겸의 목에서는 앓는 숨소리만 겨우 흘러나올 뿐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가 소희의 어깨에 제 고개를 툭 기울였다.
달다. 목덜미에서 흐르는 그녀의 페로몬에 미칠 것만 같다. 그 여린 살을 베어 물고 잘근잘근 씹어먹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분명 정상이 아니다. 밀어내야 하는데,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소희를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다.
순간 소희의 작은 손이 거침없이 남자의 가운을 헤치고 들어갔다. 가운 안은 속옷 한 자락 없이 맨몸이었다. 한두 번 만져본 것도 아닌데, 어떤 때보다 흉흉하게 발기한 성기에 놀라 제 입술을 깨물었다. 할 수 있을까. 조금 전까지 그에게 받았던 애무와 알파 페로몬에 그녀도 젖을 만큼 젖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 크기를.
“해… 줘요?”
그의 것을 손에 쥐고 천천히 움직이면서, 제게 기댄 남자의 귓가에 소희가 은근히 속삭였다.
“아니면… 그만할까?”
자신이 뭘 말하는지도 모르고 지겸이 미약하게나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언젠가 히트 사이클에 괴로워하는 소희를 놀렸듯이, 이번엔 그가 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와는 모든 게 달라졌다.
소희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번진다. 그녀의 손 위에 연신 흐르는 끈적한 남자의 쿠퍼액이 기껍다. 자신에게만 발정하는 거친 짐승을 이토록 완전히 손안에 쥐었다. 이 사람은 오롯이 제 것이다. 자신이 그에게 그렇듯.
“하아. 소, 희야….”
소희가 다리를 벌리고 제 속옷을 직접 끌어 내렸다. 이젠 도저히 참지 못하겠는지 목덜미에 지분대는 지겸의 입술이 느껴진다. 그녀의 체향을 깊숙이 들이마시고 킁킁대는 움직임이 꼭 무리 속에서 제 짝을 확인하려는 한 마리 맹수 같다.
그녀가 그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성기를 꽉 쥐고 엉덩이 사이에 조금 비벼본다. 음부의 날개를 가르고 축축이 젖은 붉은 속살에 두툼한 귀두가 천천히 문질러진다.
“흐읏….”
찌릿한 감각에 소희의 허벅지가 달달 떨린다. 주룩 흘러내린 애액의 느낌이 선연하다. 한계까지 흥분한 건 자신도 마찬가진데, 이런 자세로 직접 넣으려니 쉽지가 않다. 작은 음문을 제대로 꿰뚫지 못하는 남자의 큰 물건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젖은 살끼리 아쉽게 부딪는 소리가 질척이며 방 안에 퍼진다.
그때 지겸이 고개를 들어 소희를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 속에 담긴 욕망이, 오직 자신만을 향한 간절한 진심이 느껴져 온몸에 소름이 번진다. 순간 소희의 심장이 뭉클해졌다.
사랑받고 있다. 이 남자는, 그녀를 사랑한다.
지겸의 입술이 조심스레 소희의 입술을 덮었다. 스르륵 눈이 감긴다. 부드럽고 따스한 감촉에 등허리가 간지럽다. 그의 혀가 차분히 소희의 아랫입술을 핥는다. 발정기의 짐승치고는 너무도 섬세한 움직임이다.
지겸이 뭉근히 허리를 돌리며 성기를 제 자리에 끼워 맞췄다. 소희가 아무리 해 봐도 자꾸만 어긋나더니, 그의 움직임 한 번에 단단한 살덩이가 벌어진 여성의 질구를 제대로 파고든다. 그에 맞춰 소희가 엉덩이를 천천히 내려 지겸의 것을 점점 더 깊이 받아들였다.
젖은 길목이 남자로 가득 찬다. 배 안쪽부터 목 끝까지 스멀스멀 차오르는 압박감에 소희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당치도 않는 크기를 제 안에 힘주어 밀어 넣으려니 너무 버거워 허벅지가 절로 달달 떨린다.
그런 소희를 알아차린 지겸이 그녀의 양 엉덩이를 손으로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곧 제 골반을 튕겨 올리며 동시에 소희를 세게 내려 앉힌다.
“흣!”
하아.
위로도, 아래도. 드디어 완전한 삽입으로 완연히 한 몸이 된 남녀가 서로를 당겨 가득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