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부강탈-95화 (9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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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입니다… 흔히 이런 경우를 영츠하이머라고도 하죠.”

지훈은 며칠을 혼수상태에 빠져 일어나지 못했다. 특별히 뇌 손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별다른 전조 증상도 없었다. 다만 구속된 후 조사 기간 내내 말이 거의 없고 멍하니 허공만 응시하는 등 현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모두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 같았다.

겨우 깨어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있었다. 늙어버린 아버지는 물론, 몇 년을 함께 일한 실장님들도 알아보지 못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말하고 드문드문 답했다. 설마 충격으로 기억 상실이라도 온 건가 했지만, MRI 결과를 본 담당의는 치매라고 진단했다.

“이렇게 아무 증상 없었다가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지만, 또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젊은 만큼 병의 진행도 빠를 수밖에 없고요. 기억·판단·언어능력 감퇴, 일상생활능력·인격·행동 양상의 장애, 우울증, 과격한 행동 등이 수반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판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지훈의 재판은 변호인이 대신 의사를 전달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드디어 첫 선고공판일, 집행부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꽤 엄중한 판결을 내렸다.

“살인죄에 있어서 범의는 반드시 살해의 목적이나 계획적인 살해의 의도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타인 사망의 결과를 발생시킬 만한 기능 또한 위험이 있음을 인식하거나 예견하면 족한 것이고 그 인식 또는 예견은 확정적인 것은 물론, 불확정적인 것이라도 소위 미필적 고의로 인정된다.”

판사의 선고가 시작되자 지겸은 물론 방청석에서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긴장했다.

“법원이 적법한 증거조사를 거쳐 채택한 증거들에 따르면, 피고인이 이 사건 시술이 불법적이며 위험성이 크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 피해자들을 선영원의 아이들로 특정하고 범행을 은폐하기에 용이하도록 지시한 점, 이 사건 시술 과정에서 투입된 약물 등이 피해자의 직접적인 사인으로 판단된 점, 피해자들에 가한 시술이 그들의 의사에 반한 것인지에 대한 피고인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판사의 선고가 이어질수록 구 회장의 낯빛이 처절하게 무너졌다.

“또한 피고인이 불법 시술을 행사한 횟수, 그 시술의 태양 및 정도, 피해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위의 행위로 인하여 피해자가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였다고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를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도 있었다고 할 수 있어, 피고인에게 적어도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고 판단된다.”

구 회장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받아 결국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공판 직후 구 회장 측에서 보석 신청을 했으나 기각됐다.

알파/오메가 검사나 우성 형질 강화 시술과 같은 불법적인 의료시술은 물론이고 선영원 아이들에 대한 임상 시험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지게 된 것이다.

임 재단장은 선영원 일과는 무관했으므로 불법 의료 시술 등에 대한 죄목만 인정받아 5년 형에, 구지훈은 심신 미약 등이 인정되어 보호감호소 2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치료감호소에서 먼저 치료를 받은 후 보호감호소로 이송될 예정이다.

베논 제약 한국법인은 신약 연구를 5년 제한하는 식약처의 처벌을 받았다. 말이 5년이지, 사실상 제약 회사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스테디셀러인 알파/오메가용 억제제가 있어 버티려면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겸은 원래 계획대로 자회사로 분리했던 국내법인을 완전히 정리했다. 또 베논 제약의 실질적인 오너 중 한 명으로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회적 책임을 지기 위해 별도의 공익재단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재림의료원은 경영진을 전면 교체하고 미래 의학연구소를 신설했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의료 혁신을 통해 한국의 보건의료 및 복지, 헬스케어 발전에 힘쓰겠다는 취지에서였다.

아직 대법원판결까지 지리멸렬한 싸움이 이어질 거라 예상했으나, 지훈의 일로 충격을 받은 탓이었는지 구 회장은 결국 모든 죄를 시인하고 자백했다. 선고 즉시 제기된 항소를 취하하면서 법적인 절차는 마무리됐다.

연일 난리였던 언론 보도와 여론도 첫 공판 이후로 사그라들었다. 대중의 관심은 늘 그렇듯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내년 초에 있을 대선이 그것이었다.

***

“응 그래요, 운동 잘하고 아침도 잘 챙겨 먹기!”

- 알겠어, 말 잘 들을게. 너야말로 빨리 자. 보고 싶다, 소희야.

“나도요.”

- 흐음, 왜 이렇게 작게 속삭일까.

방학이라 연구실에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순간 온도를 달리하는 남자의 투정에 소희가 피식, 웃어버렸다. 이럴 때면 가느다랗게 눈매를 좁히고 그녀의 뺨을 쓰다듬는 지겸의 손길이 떠올랐다. 그에 대한 소희의 마음도 시간이 흐를수록 커져만 갔다. 그렇다 해도 시도 때도 없이 애정표현을 해 오는 남자에게 따라가기란 여전히 어렵다.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됐다. 지겸은 베논 제약 국내 법인을 완전히 정리하자마자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제 본사가 된 시애틀 법인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1~2주를 예상했던 출장은 생각보다 길어졌고 애틋한 연인의 생이별도 함께 이어졌다.

다행히 소희는 요즘 엄마를 챙기느라 분주해 제대로 외로울 겨를도 없었다. 구치소에 계신 아버지 접견도 함께 다녀오고, 힘들어하는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가 저질러 온 범죄 사실에 엄마는 많은 충격을 받았지만, 지겸과 소희의 선택을 지지해 주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두 모녀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 시간이었다.

완전히 공중분해 된 베논 제약에 비해서 재림재단이나 의료원은 그리 큰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재판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임 재단장이 후임 재단장 선출을 비롯해 여러 가지를 정리해 둬서 더 그랬다. 이 모든 과정에 지겸의 배려가 있었다는 걸 소희는 나중에야 알았다.

애매한 시차에도 불구하고 둘은 최대한 자주 연락하고 통화했다. 특히 지금처럼 소희가 잠들기 전과 지겸이 일어난 이른 아침 시간은 두 사람이 가장 여유 있게 오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지 말고, 더 제대로 말해 봐.

“으응? 뭘?”

- 보고 싶어요, 지겸 씨. 하고?

“그게 뭐야, 꼭 말 안 해도 알잖아요.”

소희의 간지러운 웃음이 흩어졌다.

- 하아. 미치겠네….

“…응?”

낮게 뱉어진 그의 한숨에 소희가 흠칫 놀랐다. 그녀도 보고 싶다고 제대로 답해 주지 않은 게 많이 속상했던 걸까.

- 정말 말 안 해도 알아?

“음, 그럼요. 난 그런걸.”

- 내가 지금, 어떤지도?

“아….”

소희가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때였다. 어딘지 모르게 조금 더 은근해진 호흡이 그녀의 귓가에 와 닿았다.

- 오늘도 습관대로야?

“뭐가요?”

그와 통화를 끝내고 바로 자려고 편안하게 누워 있던 소희가 몸을 뒤척이며 나른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 안에, 아무것도 안 입었냐고.

당황한 소희가 손에서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아닌 걸 알면서도 괜스레 방 안을 둘러봤다. 설마 자기 없는 동안 걱정된다고 어디 CCTV라도 설치한 건 아니겠지.

“아, 아니야. 입었어요.”

- 정말?

“정말….”

자신의 말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는 것 같은 지겸의 정적에 소희도 숨을 죽였다.

- 알겠어, 그럼.

휴. 다행이다. 이상하게 긴장이 되어서 소희가 이불을 더 꽉 끌어안았다. 이젠 끊어도 되겠지. 소희가 다시 좋은 하루 보내라고 인사를 건네려 할 때였다.

- 그럼, 한 번 만져봐.

“네?”

-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헷갈린 걸 수도 있잖아.

“그런 걸 누가 헷갈려요….”

소희가 말끝을 흐렸다. 실제론 실크 슬립 아래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다는 걸 그에게 전부 들킨 것만 같았다.

- 다리 조금만 벌려 봐, 소희야.

뭘 입고 있든, 아니든 별로 상관없어.

나른한 지겸의 중저음에 복사뼈 근처가 움찔했다. 발끝에서 간질이며 올라온 흥분이 배꼽 아래로 조심스레 고여 들고 있었다.

- 한 번도, 한 적 없어?

“뭐, 뭘요.”

- 나 생각하면서 혼자.

뺨이 온통 붉어진 소희가 소리를 지르듯 답했다.

“없어요!”

- 음, 실망이네…. 난 매일 하는데.

진짜 그런 말을 어떻게 저렇게 한치의 거리낌도 없이 말할 수 있지. 덕분에 이 모든 부끄러움은 결국 오롯이 소희의 몫이다.

- 목소리가 피곤한 것 같아서 재워 주려고 했는데. 그렇게 웃으면 어떻게 해.

“내가요?”

- 응, 네가요. 그러니까 더 들려줘 소희야, 네 소리.

소희가 제 입술 한쪽을 세게 깨물었다. 언제 들어도 부드럽지만, 낮고 밀도 높은 울림. 그 때문인지 그녀는 그의 말을 뭐든 거부하기 힘들다. 솔직히 조금 궁금하기도 하고. 잠들기 전에, 그와의 밤을 떠올린 적이 그녀에게도 있었다. 그렇지만….

“하지만 잘, 몰라요… 나.”

자그맣게 대답하자 피식, 귓가에 그의 웃음이 서린다. 두근, 분명 제게는 남은 각인도 없는데 심장은 마음대로 쿵쿵 세게 뛰기 시작한다.

- 그럴 리가. 잘만 알던데.

충분히 그렇게 만들고 왔으니까.

“당신, 정말!”

- 다리 벌리고, 사이로 손 가져가 봐.

주춤하던 소희가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제 허벅지를 따라 손을 천천히 쓰다듬어 내렸다.

- 손가락 끝으로 겉에서부터 살살 매만져 줘.

내가 너에게 하듯이.

눈을 감고 나니 어쩐지 바로 옆에 지겸이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아직 말라 있는 통통한 음순 사이를 슬쩍슬쩍 아래위로 문질렀다. 처음엔 뻑뻑했던 틈새가 손끝으로 여러 번 만져주자 조금씩 갈라지며 부드러워지는 게 느껴졌다. 귓가에 닿는 지겸의 호흡이 진짜처럼 느껴졌다. 정성껏 자신을 애무하던 그를 떠올린 순간, 찔끔하고 애액이 비어져 나왔다. 움직이는 손가락 끝에 뭔가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아.”

화들짝 놀란 소희에게서 여리고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몸이 착실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젖었구나.

“아, 니….”

- 숨소리만 들어도 알아, 소희야.

손끝이 닿는 곳마다 간질거리고 좋았다.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제 아예 음순 새를 파고든 손가락으로 조금 더 세게 음부를 훑다가 조금 위쪽을 건드렸을 때.

“흣….”

미처 삼킬 수도 없었던 신음이 새어 나왔다.

하아. 벌써 그렇게 야한 소리 내서 어쩌려고.

전화기를 타고 나오는 그의 호흡이 퍽 거칠어져 있었다. 설마, 지금….

“당신은… 뭐, 하는데요?”

- 너랑 같은 짓.

“응?”

- 왜, 더 자세히 설명해 줘?

“아니, 하으, 괜찮아, 요….”

- 지금 거기 더 만져줘. 내가 해 준다고 생각하고. 굴리듯이.

“으응.”

자신을 안을 때 지겸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소희의 감각이 그녀를 더 축축하게 휘감았다. 손끝에서 도톰하게 튀어나온 클리토리스가 선명히 느껴졌다.

- …젖었어?

“몰라….”

- 그럼 직접 들려줘.

내가 알아서 들을 테니.

“어, 어떻게요?”

소희가 당황하며 되묻자 크큭, 말랑한 웃음이 되돌아온다.

- 싫다고는 안 하네, 폰 아래로 내려 봐.

“네? …전화기를?”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주문하는 그에게 놀라면서도 소희는 손을 멈출 수 없었다. 손끝에서 음핵이 부풀어 오르는 동안 음부에서도 계속 물이 나왔다. 문지를 때마다 찌걱이는 소리가 조금씩 새어 나왔다. 심장을 짜르르 울리는 쾌감에 허리가 들썩였다.

- 휴대폰 아래에 두고 보지 더 만져, 어서.

전화기를 쥔 손을 다리 사이로 천천히 내리는데, 마치 지겸의 숨결이 실제로 제 몸을 훑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의 호흡도 그녀만큼이나 점차 흐트러졌다.

그가 보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보이고 싶었다. 자신의 선연한 욕망을 전부 들키길 바랐다. 그렇게 제대로 만져지고, 또 만지다가 마침내 그의 품 안에서 제대로, 산산이 녹아내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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