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부강탈-93화 (9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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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윽!”

우두머리 놈이 휴대폰을 귀에 대려 하자 지겸이 다리를 돌려찼다. 퍽 소리가 나면서 남자가 전화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맞은 충격에 거구의 몸이 뒤로 확 밀려났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지겸에게 달려들며 주먹을 휘둘렀다. 뺨에 스치듯 맞은 지겸의 고개가 돌아갔다. 목과 얼굴이 살짝 뻐근하다. 소희의 방 문이 잘 잠겼나 확인하던 찰나였다. 한눈판 탓에 맞은 거다. 다행히 문은 잘 잠겨 있고 10분 뒤면 경찰이 온다. 그때까지는 혼자서도 충분하다.

“아이고 회장님 말씀이 맞나 보네. 구 전무가 아니라 그 동생이 오신갑네.”

남자가 입고 있던 재킷을 느릿하게 벗어 던졌다. 지겸은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던 라이터를 꺼내 함께 주먹을 꽉 쥐었다. 때렸을 때 타격감을 더하기 위해서.

“야! 다들 나와!”

“왜 그러십니까, 형님?”

옆 방에서 수하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젊은 남자 둘, 중년 하나. 대장 놈까지 합이 넷이다. 그래도 연배나 분위기를 봤을 때 열성 알파인 대장 놈을 제일 주의해야겠다. 이런 일에는 이력이 난 인물일 테니까.

“어떻게든 안에 여자 데리고 나와.”

대장의 말에 경계하며 지겸이 문 쪽으로 더 바짝 붙었다.

“예? 왜, 왜요?”

처음 지겸이 들어올 때 소희가 있는 방까지 안내해 줬던 덩치 큰 놈이 당황하며 물었다. 지겸을 여전히 지훈이라 생각하고 있으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잔말 말고 일단 하라면 해! 저 남자 치워!”

“네넵, 형님!”

놈들이 지겸의 앞쪽으로 빙 둘러 에워쌌다. 지겸은 함부로 먼저 공격하지 않고, 문을 가로막으며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4명 정도야 못 해 볼 것도 없었지만 그의 목표는 이놈들을 쓰러뜨리는 게 아니다. 소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거니까.

몇 초, 지겸과 놈들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오갔다. 아무리 저들이 관록의 깡패라지만, 키나 체격적인 부분은 물론, 풍기는 분위기에서도 지겸은 결코 만만해 보이는 상대가 아니었다.

가장 덩치 큰 젊은 놈이 먼저 덤볐다. 몸을 밀어붙이며 주먹을 날리자 지겸이 자세를 낮춰 피하고는 그의 명치를 가격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자가 뒤로 밀려나며 신음했다. 지겸이 한 대 더 치려는 순간 옆쪽에서 발길질이 날아왔다.

“윽.”

허리를 제대로 맞았지만 주춤할 새도 없었다. 지겸은 몸을 홱 돌려 방금 공격한 남자의 머리통을 발로 찼다. 곧이어 문의 손잡이를 가리고 서는데, 이번엔 뒤에서 누군가 등을 공격한다. 머리까지 울리는 충격이 이어졌지만 지겸의 발은 서 있던 곳에서 1센티도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입술을 꽉 깨무는 통에 찢어졌는지 피비린내가 났다.

“이 새끼 뭐야, 운동선수야? 왜 이렇게 꿈쩍도 안 해!”

좀 뒤에 서 있던 대장 놈이 어이가 없는지 고함을 질렀다.

“그러지 말고 한꺼번에 덤벼!”

동시에 네 명이 달려들었다. 주먹과 발이 연달아 뻗치자 몇 번은 제법 가볍게 피하고 막았던 지겸도 쉽지 않아졌다. 허벅지와 가슴, 배 등 보이는 곳은 전부 공격의 대상이 됐다.

“… 큭.”

연이은 구타가 폭격같이 계속됐다. 이젠 괜히 반격했다가 문에서 멀어질 수 있어 받아치기보단 버티는 쪽을 택했다. 주먹 한 번은 명치에 정확히 꽂혔는데도 지겸은 잠시 몸을 굽혔을 뿐 다시 벌떡 일어났다.

소희가 있는 방문 앞에 버티고 선 지겸의 두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앓았다. 타격감이 큰 공격은 견디고 자잘한 공격은 팔뚝으로도 가볍게 쳐내며 버티자, 감시하던 놈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한 명이 옆 방으로 들어가더니 긴 쇠몽둥이를 들고 나왔다.

방 안에 있던 소희는 침대 쪽으로 더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바로 앞에 기대앉아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제 입술을 짓씹으며 밖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투득이며 살끼리 거세게 부딪히는 소리 사이 간간이 울리는 신음과 거친 호흡. 누가 때리고 누가 맞는지 모르는 그녀는 그저 괴로워서 눈을 질끈 감았다.

이따금 누군가의 몸이 쿵, 문을 치며 부딪혔다. 소희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는 타격감에 심장이 덜컥 가라앉는다. 설마 지겸인가. 소희가 눈을 질끈 감았다. 지겸에 대한 걱정으로 눈물 흘리며 제발 경찰이 빨리 오기를 빌었다. 지겸이 자신을 방으로 밀어 넣자마자 바로 시계의 경찰 호출 버튼을 눌렀는데, 왜 아직 오지 않는 걸까.

퍽!

그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더 무겁고 센 타격음 울렸다. 연이어 쇠몽둥이 같은 게 허공을 가르며 쉑, 쉑 하는 소리까지.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설마, 그 사람이.

순간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소희가 방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았다. 그 남자가, 지겸이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었다. 덜컥. 손잡이를 돌리려던 움직임을 멈췄다. 어쩔 수 없이 손을 문에서 뗐다. 괜히 자신이 잘못 움직였다가 그가 더 위험해질 수도 있을 테니까. 소희는 바들바들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잡아 눌렀다. 그녀도 모르는 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퍽.

한 차례 더 같은 소음이 누군가를 내리쳤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다르게 신음이 가까이서 들리지 않는다. 혹시 이번 건 지겸이 공격한 걸까. 숨죽여 문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탕. 타다닥. 밖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한꺼번에 울렸다.

“전원, 손 머리 위로 올려!”

누군가의 고함과 함께 밖이 순식간에 혼잡해진다.

아, 경찰이다. 드디어 온 거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소희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문이 열렸다. 누구인지 확인할 새도 없이 커다란 손이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는다. 소희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았다. 제게 와 닿는 촉감과 체향만으로도 지겸임을 느꼈다. 어느 때보다 높은 체온, 거칠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 귓가를 가득 메우는 심장 소리. 소희가 그에게 얼굴을 묻었다. 울음은 잦아들었지만, 아직 멈추지 않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소희야, 괜찮아? …응?”

제대로 목소리가 나오진 않아도 고개만은 힘차게 주억거렸다. 지겸의 손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감싼다.

“얼굴 보면 아주 많이 혼내주려고 했는데. 미리 알고 우는 거야?”

마음 약해지게.

그가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적신 눈물을 쓰다듬어 닦아준다. 제 정수리에 가만히 내려앉은 남자의 입술이 너무 뜨거웠다.

“보고, 보고 싶었어요, 너무….”

마구 떨리는 소희의 목소리조차, 지겸에겐 사랑스럽고 감사하다.

“응, 나도.”

그래서 왔잖아. 약속대로, 밤에.

“근데 많이 다친 거 아니에요? 응? 나보다 당신이 더….”

소희가 지겸을 슥 훑어보더니 몸 여기저기를 더듬어 본다. 입가도 살짝 찢어졌고 옷도 엉망이다. 등 쪽으로 손을 뻗어 쓰다듬는데 손끝에 셔츠 위로 축축하게 번져 나온 뭔가가 만져진다. 설마… 이거! 놀란 소희가 제 손에 묻은 게 뭔지 확인하려는 순간, 그 행동을 눈치챈 지겸이 그녀의 손을 낚아채 잡았다.

“피 난 거예요? 좀 봐봐, 숨기지 말고!”

소희가 손을 빼내려 하는데 놓아주지 않는다. 올려다본 그의 새까만 눈에 부드러운 이채가 서린다. 곧 소희의 입술에 그의 입술이 겹쳐졌다. 뭐라고 더 말하려던 소희의 말은 지겸의 달뜬 호흡 속으로 깊이 삼켜졌다.

꽉 차오른 달은 새벽인데도 밤하늘 한가운데 떠 있다.

다시 고요해진 봄밤이 서로를 깊이 껴안은 연인 위로 감싸듯 내려앉았다.

***

다음 날 아침, 소희를 감시했던 놈들의 증언과 녹음 내용으로 지훈은 긴급체포됐다.

지훈을 옆에서 감시했던 유현의 말로는 밤새 잠들지도 않고 계속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다가 혼자 중얼거리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지훈을 어떻게든 하고 싶은 분노가 문득문득 치솟았지만, 제정신을 차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그런 의지조차 꺾였다고.

지겸의 특별 요청으로 구 회장이나 회사에는 어떠한 연락도 가지 않았다. 또 구 회장에게 전화가 올 경우 그의 수하들이 자연스럽게 전화를 받도록 꾸몄다. 이날 저녁, 정 의원과의 식사가 문제없이 성사되어야만 했으니까.

그래서 구 회장이 식사 자리 오는 길에 건 전화를 우두머리 놈은 아무렇지 않게 받았던 거다.

“어서 앉으시죠, 아버지.”

상상하지도 못한 지겸의 등장에 그의 온몸이 굳었다.

어떤 일에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던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지겸은 무감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딸 둘 키우며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아들이 있는 게 부러워진 건 처음입니다. 구 회장님.”

그의 잔에 술을 따르며 정 의원이 말했다.

“네, 네. 아이고 감사합니다.”

술잔을 단숨에 비운 구 회장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평소 술을 잘하는 편인데도 순간 독한 술에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은 통증을 느낀 탓이다.

“그나저나 그리 긴밀히 보자고 여러 번 청하시고 안사람을 통해서까지 물어보니 내 거부하기 어려워 나왔습니다만. 무슨 일이십니까, 구 회장님.”

정 의원은 워낙 파고들 구석이 없었던 사람이라, 구 회장은 주변 사람과 그의 아내를 공략했었다.

“아버지께서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의원님.”

구 회장이 뭐라고 답하기도 전에 지겸이 먼저 말을 꺼냈다. 당황한 아버지가 자신을 노려보자, 지겸의 차가운 시선이 느른하게 그를 거쳤다가 다시 정 의원을 향했다.

그러고 보니 들어올 때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지겸의 입술 끝이 조금 터져 있는 게 보였다. 구 회장의 눈썹이 꿈틀했다.

“혈액 검사만으로 알파/오메가 여부를 99%의 정확도로 판별해 낼 수 있는 걸 아실 겁니다.”

“잘 알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베논 제약만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현재 국가에서 특정한 의료상의 목적을 제외하고서는 알파/오메가 판별 검사를 금지하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제약회사가 관련 항체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개발을 다른 제약회사에서도 시도하고 있고,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른 곳이 있다는 걸 저희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구 회장은 어쩔 수 없이 대화를 주도하고 있는 지겸을 살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섣불리 끼어들 수는 없었다. 오늘 자리가 무르익었을 때쯤 조심스럽게 시작하려던 이야기를 저렇게 대놓고 하는 지겸을 무척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봤다.

“흐음 그렇군요.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그러니까 저희 베논 제약은 관련 법안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술이 섣불리 통용되거나 오용되지 않도록요.”

정 의원을 향해 말했지만 지겸의 눈은 구 회장을 똑바로 응시했다.

“뭐, 뭐?”

당황한 구 회장이 눈앞의 정 의원을 채 의식하지도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잉. 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회사 비서실이었다.

구 회장은 전화를 받지 않고 끊으려 하는데 지겸이 선수를 쳤다.

“아, 아버지. 회사에서 급한 일이 있는 것 같던데 받아 보세요. 의원님, 결례 죄송합니다.”

“응? 허허, 아닐세. 구 회장님, 전 신경 쓰지 말고 받고 오시죠.”

어쩔 수 없이 방 밖으로 나온 그가 울림이 끊기지 않는 전화를 신경질적으로 받았다.

“내가 오늘 연락하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지금 정신이 있는….”

-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검찰이….

“뭐…?”

- 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서 압수수색 나왔습니다. 어, 어떻게 하죠?

놀란 구 회장이 비틀거리다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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