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부강탈-75화 (75/104)

-75-

그의 펜트하우스.

아일랜드 식탁 의자에 앉은 소희가 양손으로 턱을 괴고 요리하는 지겸의 뒷모습을 빤히 보고 있었다. 하얀색 주방과 흰 셔츠를 입은 남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 벌어진 어깨와 촘촘하게 자리 잡은 근육 때문인지 그가 프라이팬을 뒤집을 때마다 입고 있는 셔츠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나도 볶음밥 잘하는데.”

소희가 그동안 그가 해 줬던 요리들을 떠올리며 미간을 좁혔다. 누가 먹어봐도 이유식에 가깝다고 할 지나치게 건강… 아니 밍밍했던 맛을. 분명 그가 재료를 다듬거나 볶는 솜씨를 보면 퍽 능숙한 게 맛도 좋아야 할 것 같은데. 대체 뭐가 문제일까. 오늘은 확실히 그 비밀을 밝히겠다는 약간의 오기가 생겼다.

“옛말에 여자는 주방에 들어오는 거 아니랬어.”

풉. 소희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아버지가 들으면 질색할 소리다.

그러는 사이 볶음밥은 다 완성된 건지 지겸이 그릇에 달걀을 깨서 섞기 시작했다. 지단을 만들려나 보다.

“잠깐, 간은 그게 끝이에요?”

그가 요리하는 과정을 내내 지켜봤는데, 처음에 채소 볶을 때 소금과 후추 한두 번 넣었던 게 다였다. 보통은 중간에 간장이라든지 굴소스로 간을 맞추지 않나?

“응. 충분해. 너 먹을 거잖아.”

아니 그러니까 왜….

작게 한숨을 내쉰 소희가 까치발을 들고 살그머니 인덕션 앞으로 다가갔다. 지겸은 몸을 돌려 체 망에 달걀을 거르는 데 집중하느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소희가 슬쩍 주걱 끝에 붙은 볶음밥을 떼어 입 속에 넣어봤다. 으. 역시 싱거워. 다행히 프라이팬 옆에 소금 통이 있었다. 그렇게 소희가 신나게 밥 위로 소금을 뿌리고 있을 때.

“임소희, 너.”

“힉!”

어느덧 가까이 다가온 커다란 그림자가 그녀의 손에서 소금 통을 빼앗아 간다.

“이미 다 넣었다구요, 뭐.”

소희가 지겸을 향해 혀를 낼름, 하며 말했다. 그런 그녀를 내려 보던 남자의 눈썹 끝이 살짝 휘어졌다. 촉촉한 입술 새로 내밀어졌다 사라진 다홍색 혀에 그의 집요한 시선이 닿았다.

“흐음….”

지겸이 소희의 양옆으로 손을 뻗어 아일랜드 식탁을 짚었다. 대번에 그의 팔 사이, 아니 품에 갇혀버린 그녀가 뒷걸음질 쳐 봤지만, 어차피 막다른 곳. 순식간에 가까워진 그의 체향에 소희가 당황하며 고개를 내렸다. 요리한다고 자연스럽게 몇 개 풀어진 단추 사이로 그의 탄탄한 가슴이 엿보였다. 괜스레 뺨이 달아올랐다.

“어딜 봐?”

“흣.”

지겸이 그녀의 턱을 살짝 잡아 올렸다. 그의 새까만 눈동자가 빈틈없이 마주쳤다.

쪽.

눈을 감을 새도 없이 그가 소희의 입술을 훔쳤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그의 입술에 부드럽게 감싸지고 지그시 맞물렸다. 당황해 들이마셨던 숨을 채 내뱉지도 못하고 굳어버린 소희가 숨이 막힐 정도로 긴 입맞춤.

하. 가쁜 숨을 내쉬기 위해 그녀도 모르게 입술을 살짝 벌렸다. 순간 턱을 쥔 지겸의 엄지에 힘이 더 들어갔다. 너무 떨려서 소희의 배꼽 아래가 뭉근하게 찌르르했다. 그녀에게 화답하듯 그도 입술을 살짝 벌리는 게 느껴졌다. 소희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감겼다.

쪽.

으응?

가까웠던 온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좀 더 깊어질 줄 알았던 키스가 멈췄다. 정작 먼저 다가와 그녀를 달아오르게 만든 장본인은 제 코끝에 가볍게 뽀뽀하더니 담백하게 돌아선다. 휑하니 남겨진 소희가 허전한 기분에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가서 앉아. 달걀 올리고 케첩 뿌려 줄 테니까.”

지겸이 다시 인덕션을 켜더니 프라이팬에 풀어놓은 달걀 물을 붓기 시작했다. 너무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뒷모습이 야속했다.

이게… 끝이라고?

정확히 뭘 더 바랐다고 말하기는 모호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싱가포르에서 조금이라도 더 그녀를 탐하지 못해 안달 내던 남자는 대체 어디로 간 건지. 그녀의 고백까지 듣고, 마지막으로 기회를 달라고 간절히 말할 땐 언제고 뭔가 거리를 두는 것 같아서 서운했다.

소희가 몇 걸음 나아가 여전히 지단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는 커다란 등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의 곧은 등 가운데, 단단하게 벌어진 등 근육 사이 움푹 팬 척추골을 손끝으로 천천히 쓰다듬으며 내려왔다. 예기치 못한 접촉에 흠칫 놀란 지겸이 동작을 멈췄다. 그녀가 그대로 그 등에 제 이마를 슥 기댔다. 지겸이 낮은 한숨을 내쉬더니 불을 껐다. 소희의 숨결이 닿아서인지 그의 몸이 희미하게 떨렸다.

그 떨림에 용기를 얻은 소희가 속삭였다.

“왜 키스 더 안 해 줘요…?”

그런 뽀뽀 말고.

지겸이 홱 몸을 돌려 소희의 손목을 붙잡았다. 마주한 눈빛에 얼마 전 그와 봤던 것 같은 밤의 파도가 일렁인다.

“정말 하고 싶어?”

아.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마치 소희가 어떤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정염에 휩싸여 낮게 으르렁대는 남자의 까만 눈동자가 심장에 파고든다. 하지만 소희도 장난으로 꺼낸 말은 아니었다. 그녀를 잡아먹을 듯 응시하는 지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떡하지, 소희야. 난 너랑 키스만 할 자신이 없는데.”

내가 널 볼 때마다 어떤 생각까지 하는지 알면 놀랄 텐데.

제 욕심대로 하다가 그녀가 또 도망갈까 봐, 놓칠까 두려워서 내내 참고 또 참았을 뿐이었다.

그에게 잡힌 손목이 너무 뜨거웠다. 소희가 당황해 아무 말도 잇지 못하자, 지겸이 피식, 웃으며 그녀를 놓았다.

“거봐. 밥 먹자. 괜히 마음에도 없는 자극하지 말고. 놀리면 못써.”

그가 가볍게 소희의 이마에 딱밤을 놓는다. 아프지는 않지만, 뭔가 찌릿했다. 명치께가 조이듯 뻐근해졌다.

“아니.”

머리보다 몸이 먼저 나갔다. 소희가 자기도 모르게 다시 뒤돌던 지겸을 붙잡았다.

“나 괜찮아요.”

그리고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봤다.

나도 같은 것을 원하는 걸, 당신과.

“진심…이야?”

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가라앉은 듯 들렸다. 끄덕끄덕. 혹시나 지겸이 또 뒤돌아 제게서 멀어질까 봐, 소희가 거듭 위아래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겸의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어진다.

“뭐가.”

“으응?”

뭐가냐니…. 의도를 모르겠는 질문에 소희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키스? 아니면 섹스?”

낯설지 않은 질문. 그녀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정해진 답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바로 내뱉어지지 않아 소희의 입술이 달싹였다.

“둘, 다….”

그때는 아니었지만, 이번엔 진심이다.

지겸의 눈에 미묘한 이채가 타오르는 게 보였다.

“분명, 네가 시작했어.”

“핫!”

그가 한쪽 팔로 그녀의 엉덩이를 감싸 번쩍 안아 올린 뒤 가느다란 두 다리를 제 허리에 감았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버둥대던 소희가 그의 목 뒤로 두 팔을 둘러 꽉 껴안았다.

그런 그녀가 귀엽다는 듯 미소를 머금더니 지겸이 그녀의 코에 제 코를 부드럽게 살살 비비며 묻는다.

“밥은.”

“별로 안 고픈데….”

사실 이천을 다녀오는 길 그를 졸라 휴게소에서 이것저것 먹은 터라.

“아.”

지겸이 소희의 코끝을 놀리듯 혀로 할짝대더니 꽉 깨물었다.

“그래서 졸랐나. 배는 부르고, 밥 말고 다른 게 생각나서. 응?”

“아흣.”

소희가 대답도 하기 전에 이번엔 지겸이 그녀의 뺨을 아프지 않게 물더니 세게 빨아들였다. 양쪽 다 그러고 나니 얼굴이 금세 빨개진다.

“소희야.”

방심하는 사이 이번엔 턱 끝이 깨물리고 빨린다. 그의 허리에 걸쳐진 발등이 움찔댔다.

“하으. 잠, 깐.”

그러다 귓불까지. 그가 봐주지 않고 강한 압력으로 빨아 당기는 통에 목덜미를 타고 전기가 오르는 것 같다.

“소희야, 입.”

벌려야지, 빨아주지.

당연하다는 듯 나긋하게 와닿는 남자의 요구에 소희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벌렸다. 지겸이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지켜보며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그의 발이 계단을 하나씩 디딜 때마다 소희의 몸도 함께 들썩인다. 겨우 그 정도에,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그녀의 심장이 따라 흔들린다. 어디론가 추락할 것만 같은 아찔함에 소희가 그에게 두른 제 팔에 힘을 줬다.

당장이라도 침범할 것 같던 남자는 조용히 계단만 오를 뿐. 소희는 벌린 입술 안의 혀를 어찌할 줄 몰라 안쪽으로 살짝 말며 떨었다. 그런 제 모습을 꿰뚫을 듯 응시하는 남자의 눈빛에 숨이 점점 가빠진다.

그때였다. 지겸이 고개 각도를 기울이더니 단번에 제 혀를 벌어진 소희의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흣… 으읍.”

놀란 소희의 신음이 그의 입 안으로 삼켜지고 도망가려던 혀가 붙잡힌다. 뿌리까지 뽑을 듯 깊숙이 빨아대고 나서야 겨우 놓아준다. 숨 쉴 틈도 없이 다시 들어온 혀가 그녀 입 안의 점막을 샅샅이 훑으며 간지럽혔다. 갑작스레 깊어진 키스에 채 삼키지도, 뱉어내지도 못한 침까지 모조리 빨렸다. 입술과 입술 사이 경계가 무너질 때마다 질척이는 습한 소리가 더해졌다.

그가 계단을 오를 때마다 맞물린 입술의 각도가 조금씩 바뀌며 키스도 점점 더 깊어지고 난잡해졌다. 서로의 혀가 부드럽게 얽히는가 싶으면 그가 금세 혀끝으로 예민한 속살을 꾹꾹 누르고 차오른 숨마저 앗아갔다. 그 틈새로 자연스레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흐으, 응, 음….”

지겸이 조금 부어오른 아랫입술을 살살 빨더니 잘근 씹어버렸다. 놀란 소희의 상체가 뒤로 휘자 지겸이 그녀의 허리를 더 단단히 붙잡으며 목덜미에 이를 박아넣었다. 그가 손끝으로 지분대는 몸의 마디마디마다 불로 지진 듯 홧홧해진다. 그가 직접 목에 낸 붉은 잇자국 위를 혀로 핥아 올렸다. 그게 견디기 어려워 소희가 지겸의 허리를 감은 다리에 힘을 꽉 더 줬다.

크큭. 그녀의 쇄골 사이에 그의 만족스러운 웃음이 낮게 부서진다. 쪽, 쪽. 다시 그녀의 얇은 목선을 따라 그의 키스가 퍼부어진다. 지겸은 계단 중간에서 몸을 살짝 틀더니 소희를 벽까지 천천히 밀어붙였다. 마치 맹수가 막 태어난 제 새끼를 핥아주듯 그녀의 입술과 그 주변을 빠짐없이 할짝댄다. 인중, 윗입술, 아랫입술, 턱 끝…. 혀를 넓게 펴 여기저기 핥아대는 통에 정말이지 먹잇감이 된 기분이었다.

“하읏.”

벽에 등이 닿는 게 느껴지던 순간, 그가 영역을 표시하듯 잔뜩 제 타액을 묻혀놓은 소희의 입술 안으로 다시 파고들기 시작했다.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부드러우면서도 동시에 거칠었다. 서로 빈틈없이 맞붙어 혀를 비벼대며 마찰하는 힘에 그녀의 몸이 조금씩 조금씩 위로 밀려 올라갔다.

사실 아까부터 지겸에게 안겨 계단을 오르는 반동에 그다지 짧지 않았던 치마인데도 허벅지를 아슬아슬하게 가리며 점점 말려 올라가 곤욕스러웠다. 게다가 바지 위로도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내며 딱딱하게 부딪쳐 오는 남자의 부푼 성기가 은근슬쩍 제 음부를 자극하고 있었다. 축축해진 입술만큼 척척하게 젖어 드는 아래가 선연해서 소희는 그를 껴안은 손끝에 힘을 더 세게 줬다.

“왜.”

여전히 그녀의 아랫입술을 빨며 남자가 묻는다.

“다, 당신은요?”

기분이 너무 이상해요, 라고 솔직히 말하지 못한 소희가 괜스레 다른 걸 물었다.

“응?”

“배… 흣, 안 고파요?”

아까 휴게소에서도 지겸은 그녀가 먹는 걸 흐뭇하게 구경만 했었다. 정작 배고픈 건 이 남자일 텐데.

“아아.”

별 쓸데없는 걸 다 물어본다는 듯, 나른한 눈매가 그녀를 향해 좁혀든다. 두근. 자신을 한참 물고 빨아서인지 더 빨개진 입술에 절로 눈이 갔다. 촉촉하게 젖어 든 걸 보자니 묘하게 가슴이, 정확히는… 유두 부근이 간질거린다.

“난, 너 있잖아.”

“흐읍.”

그 말을 충실하게 이행하려는 듯, 지겸의 입술이 다시 소희를 잡아먹을 듯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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