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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이래요? 밥 먹, 먹겠다고 했잖아요…! 먹을게요, 먹겠다고요!”
침대에 엎드려진 소희가 당황하며 몸을 바르작댔다.
“아니, 왜 이러는….”
지겸은 그저 소희가 어제 너무 무리한 것 같아서, 이곳저곳 주물러 주려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예민하게 구는 소희의 태도에 조금 의아해하다가, 곧 그녀에게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래서였군.
피식. 혹시나 또 그가 몸을 겹쳐올까 봐 잔뜩 긴장해 움츠러든 여체를 내려다보면서 지겸이 참았던 미소를 터뜨렸다. 뭐 이런 헛똑똑이 아가씨가 다 있어. 하긴 그가 오해할 만하게 행동하긴 했지만.
지겸은 대답하지 않고, 짐짓 더 골려주듯 딱딱하게 굳은 소희 몸 여기저기를 부드럽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어깨 뒤에 뭉친 부분부터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돌리자 소희가 놀라서 어깨를 더 움츠렸다.
“편하게 있어. 주물러 줄 테니까. 아파 보여서 그래.”
아. 몰려드는 민망함에 소희가 입을 꾹 다물었다. 뭐야, 그렇다면 그럴 거라고 미리 말해 주든가. 그녀는 확 엎드려지는 통에 다른 상상부터 들었던 스스로가 민망해졌다.
크고 따뜻한 손의 온기가 피로한 소희의 근육 이곳저곳을 세심하게 매만졌다. 척추뼈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내려온 두꺼운 손이 그녀의 허리, 골반, 허벅지와 종아리까지 꼼꼼하게 주물렀다. 뻐근했던 지점들이 조금씩 풀렸다. 다시 잠이 스르르 올 것만 같았다.
소희는 이 남자의 이런 부분이 싫었다. 미워하려고 해도 도저히 미워지지가 않는다. 게다가 손이든 입술이든 그의 몸 어디 한 곳이라도 그녀의 몸에 와 닿을 때면, 불편하거나 불쾌하기는커녕 조금 더 머물러주기를 바라게 된다. 어젯밤 그렇게 시달리고도, 그의 손길에 이렇게도 몸이 풀어졌다. 이러다가 그를 원망하려는 결심마저 풀어져 버리게 될까 봐 두려울 정도로.
“이, 이제 됐어요.”
속마음은 좀 더 그의 손 아래 제 몸을 맡기고 싶었지만, 소희는 부러 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정신 차려야지.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한 게 있었다. 물론 가장 궁금한 것은 부모님과 한국에서의 상황이지만 이것만큼은 우선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었다.
“더 안 해 줘도 괜찮겠어?”
고개를 몇 번 끄덕인 소희가 팔을 뻗었다. 그리곤 그가 입고 있는 티셔츠의 팔 부분을 어깨까지 걷어 올렸다. 예상하지 못했던 소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조금 놀란 지겸의 눈가에 힘이 들어갔다.
“그보다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소희가 지겸의 어깨와 그 바로 아래쪽 팔에 시선을 뒀다. 어젯밤에도 다시 확인했지만 확실히 똑같은 흉터다. 그녀 허벅지에 있는, 오래전 개에 물렸던 흉터와.
“그때, 그 정원에서…날 지켜준 거… 당신이었어요? 지훈 오빠가 아니라?”
그녀가 지겸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이번엔 속일 생각 따위는 하지 말라는 듯이.
그런 소희를 물끄러미 보던 지겸이 조금 망설이는 표정을 짓더니, 미세하게 떨리는 발그레한 뺨을 부드럽게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네가 그랬지. 내 덕분에 살아 있는 거라고. 틀렸어, 소희야.”
“…?”
이번엔 또 무슨 소리일까. 혼란스럽다.
“네가, 소희 네가 날 살린 거야.”
지겸이 파르르 떨리는 소희의 작고 하얀 손을 바라봤다.
그 날도 그랬었지. 지겸은 기억한다. 큰 개에 깔려 자신이 사정없이 뭉개지던 순간,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옆에서 고개를 애써 들고, 작은 손을 불끈 쥐던 여자아이를. 안 된다고, 살려달라고. 우는 건지, 소리를 지르는 것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운 목소리로 울먹이며 소희는 손에 잡히는 건 돌멩이든 흙이든 전부 정원을 장식한 등불을 향해 마구 던지기 시작했었다
퍽. 마침내 하나의 돌이 나무에 달린 등 하나를 깨뜨렸다. 펑, 소리와 함께 전구가 터지며 연달아 꺼진 등불로 정원이 완전히 암전됐다.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던 주택 내부에선 여전히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정원 관리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관리인 아저씨가 놀라 뛰어나오는 바람에 지겸은 기적적으로 구출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늦었거나 소희가 던진 돌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죽었을 사람은 지겸이었다.
그러니까 실은 그녀가 지겸을 구했던 거라고. 아니, 서로가 서로를 구했던 거라고. 그저 스쳐 지나가기엔 훨씬 단단한 인연으로 묶여 있는 사이라고. 지겸은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내가, 그랬다고요…?”
소희로서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였다. 하긴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인지 그 날의 장면은 온통 뒤죽박죽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지겸이 좀 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니까 내 상처에 대해서, 그 날 일에 대해서 네가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소희야.”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려던 그의 손길을, 소희가 손으로 쳐냈다. 그녀는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그럼 왜 다들 지훈 오빠가 그랬다고. 절 구했다고 했던 건가요? 이렇게 다친 사람은 당신이었는데.”
“그건…. 곧 말해 줄게. 조금만 기다리면….”
아직은 그의 아버지, 구 회장이 태도를 명확하게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뜻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사람이다. 소희에게 당장 모든 사정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자신의 섣부른 판단으로 그녀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감정의 골이 깊어만 진다면 그것 역시 문제가 되리라는 것을 지겸은 애써 외면했다.
하아. 소희가 토해내는 한숨에 고민을 거듭하던 지겸이 미세하게 흠칫했다.
“또 그 얘기네요. 기다리면 해 주겠다고. 전부 말해 주겠다고.”
소희는 실망한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의 생명을 구해준 사람이 지훈이 아닌 지겸이었고, 심지어 둘은 서로를 구한 것이었다는. 그 동화 같은 이야기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평소의 소희였다면 많이 놀랐을 것이다.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겨우 며칠 새, 상상하지도 못했던 큰 폭풍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나뒹구는 모래나 먼지 같은 소모된 감정의 잔재뿐이었다. 오히려 그조차도 속았다는 생각에 화가 날 정도였다.
“이 이야기조차 믿어지지 않아요. 그럴 수가 없어. 당신 팔과 다리에 뚜렷한 그 상처를 보면서도 나는….”
구지겸, 당신을 믿을 수가 없어.
거짓말의 거짓말. 온통 진심만을 말하는 것 같은 다정한 눈을 하고, 그녀를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 대하듯 안으면서, 입으로는 거듭 거짓만 내뱉는다. 어떻게든 손을 뻗어 그녀를 매만지고 싶어 하고, 틈만 나면 입을 맞추려고 하는 남자에게 소희도 몸은 자꾸만 동한다. 그러나 마음은 꼭 천 길 낭떠러지 아래를 구르는 것만 같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이토록 괴로운 경험은 평생 처음이었다. 소희가 차마 감당할 수 있는 종류의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입 안의 여린 살을 꾹꾹 깨무는 소희를, 지겸은 안타까운 심경으로 바라봤다. 잘못 끼운 첫 단추가 이토록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 줄은 몰랐다. 그녀를 빼앗길까 조급했던 마음이 오히려 정말 그녀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왜 모든 선택은 후회를 남길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자신은 과연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
“그럼 제 결혼식은 어떻게 되는 거죠? 우리 가족들은요? 우선 내 휴대폰부터 주세요.”
오늘은 아마도 수요일. 원래대로라면 내일 오전, 소희는 지훈과 함께 몰디브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물론 이 상태로 결혼식이 진행될 수 있을 리 만무하고, 그녀도 이런 꼴로 지훈과 결혼식을 강행할 생각 같은 건 일절 없었다. 다만 넋 놓고 지낸 며칠 동안 부모님께 연락도 드리지 못했다. 지훈은 물론이고 한국의 가족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녀는 알 필요가 있었다. 거기다 유정에게도 연락해야 했다. 만약 지금 이 일을 알고 있다면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결혼식?”
지겸은 소희가 그런 질문을 할 줄 몰랐다는 듯 당황한 목소리였다. 조금 불쾌한 듯도 했다.
“설마 결혼식이… 그대로 진행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게 아니….”
“나와 자고, 각인까지 하고서 결혼은 구지훈이랑?”
그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참아보려고 해도 소희가 결혼식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뒤틀렸다.
풀썩. 순식간에 소희의 등이 침대에 눕혀졌다. 그녀 위로 지겸의 그늘이 덮쳤다. 큰 몸이 그녀를 완전히 제 몸 사이에 가뒀다.
“하지 마요.”
“내가 뭘 하는데…?”
“그게 뭐든. 싫어요.”
“거짓말.”
지겸의 손이 소희의 잠옷 바지 속으로 쑥 들어왔다. 핫. 그는 놀란 소희가 저지할 틈도 주지 않았다.
“자꾸 내게 거짓말한다고 하지만, 소희야. 너도 그러잖아.”
“흣….”
지겸이 이제는 익숙하게도 소희의 속옷 위를 더듬는다. 긴 손가락이 은밀한 지점을 둥글게 쓰다듬었다.
“네 몸은 생각이 다른 것 같던데.”
그가 손가락은 계속 지분대며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달큼한 살 내음을 음미하며 깊게 들이마셨다가 뱉어낸 숨에, 배어 나온 지겸의 페로몬에 소희의 몸이 우습게도 즉각 반응했다.
“그, 그만해요. 으흐….”
소희가 허벅지와 무릎을 붙여 비틀며 저지해 보았지만, 한 손으로도 손쉽게 허벅지 사이를 벌린 그가 속옷을 비키며 그녀의 여린 속살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음순 새를 파고드는 손끝에 여태 부어 있던 빨간 점막이 바르르 떨렸다. 지겸이 겨우 몇 번 위아래로 만져줬을 뿐인데, 척척하게 흘러나온 애액으로 벌써 습한 소리가 번져 나왔다.
“임소희. 네 이 몸이… 이제 나 없이 정말 괜찮을까.”
“하으, 응… 흑.”
지겸이 느긋하게 손가락으로 애액을 퍼 날라 소희의 클리토리스에 묻히며 찌걱댔다. 며칠 내내 연이어 괴롭힌 당한 음핵은 벌써 딱딱하게 발기한 채 귀엽게도 부풀어 올라 있었다. 꾸욱. 지겸이 짓궂게도 손끝으로 음핵을 짓누르며 뭉갰다.
“진짜, 흐으, 최악, 으, 이야.”
소희가 양손으로 제 얼굴을 가려버렸다. 이제는 이 몸뚱이가 자신의 것 같지도 않다. 어쩜 이렇게 제멋대로 굴 수가 있을까. 지겸이 만지면 젖고, 그의 목소리가 닿으면 떨린다.
“그러니까….”
쪽. 쪽. 예쁜 눈을 가려버린 그녀의 손등 위에 그가 키스했다. 부드러운 감촉에 소희가 입술을 깨물었다. 쪽. 그 위에도 지겸은 머뭇거리지 않고 살짝 제 입술을 부딪친다.
어느덧 애무가 멈췄다.
“당분간 다른 생각은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