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부강탈-30화 (30/104)

-30-

“임소희, 엎드려.”

“아!”

홱 그녀의 왼 손목을 낚아챈 그가 그녀를 침대 위에 엎드렸다. 두 팔과 머리를 앞으로 기대게 하고, 링거 끈이 꼬이지 않도록 자세를 잡았다.

“엉덩이 더 높이 들어.”

찰싹. 질타하듯 내려앉은 그의 목소리에 소희가 엉덩이를 움찔댔다. 아프게 때린 건 아니었으나 하얀 살이 불긋해질 정도의 타격은 있었다.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무릎을 좀 더 세우며 엉덩이를 높였다. 지겸이 그녀의 둔부를 세게 쥐고는 좁은 구멍을 벌리며 제 좆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흡, 흐읏…, 흑.”

단번에 뱃속까지 짓이기듯 쳐들어오는 그의 남성이 버거웠다.

“아흑!”

망설이지 않고 한 번에 뿌리까지 퍽 박은 지겸은 그녀의 골반을 틀어쥐고 찰싹이는 살 소리가 울릴 만큼 세게 박아댔다.

“하아, 앙, 흐아, 아앙!”

그렇게 한참을, 둘은 서로에게 상처를 내기 위해 서로를 안았다. 가시가 빼곡한 장미꽃이 서로 얽힌 장미 덩굴처럼, 상대방의 몸과 마음에 가시를 박아 결국 살갗이 찢기고 뜯어져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퍽, 찌걱, 퍽. 이렇게 흔들리다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소희의 새하얀 등 여기저기에 지겸은 멈추지 않고 이를 박았다. 죄다 붉어지기를. 이 몸 위에 오직 그가 남긴 흔적만 남기를. 그렇게 저주 같은 기도를 퍼부으면서.

“으으, 응, 흐으, 으으.”

“임소희.”

소희야. 흐느낌인지 교성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신음을 뱉어내는 소희의 귓가에, 지겸의 뜨거운 숨결이 닿았다.

“오늘, 후우…. 잘 생각은, 하지 마.”

또다시 길고도 잔인한 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

타닥타닥. 창문을 다독이는 빗소리에 지겸은 설핏 잠에서 깼다. 이른 아침의 흐린 빛이 하얀 침대 위를 비추고 있었다. 싱가포르 특유의 축축하고 따스한 공기가 그의 주변을 감돌았다.

잠깐… 침대? 헉.

놀란 지겸이 번쩍 눈을 떴다.

[으… 아저씨?]

소희를 구하다 개에게 물렸을 때, 기절한 지겸이 다음 날 눈을 뜬 곳은 지방의 한 병원이었다. 큰 1인실 안은 온통 하얬다. 옆엔 아버지의 비서였던 박 실장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온몸이 욱신거리며 아팠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도 타는 것만 같이 따갑고 고통스러웠다. 박 실장 아저씨가 말하길 아마도 전신마취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병원입니다, 도련님.]

[엄마는요? 아빠는…?]

[지훈 도련님이 병원에 계셔서, 거기에 계십니다.]

형이 병원에? 개에 물린 건 자신인데, 왜 형이 병원에 있지? 지겸은 겨우 열 살의 나이였지만 그 상황이 뭔가 석연치 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더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박 실장 아저씨는 지겸에게 더는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옆에서 간호할 뿐이었다.

지겸이 그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일주일 동안 가족 중 누구도 그를 찾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지겸은 병원 침대에 혼자 누워 매일 밤 악몽을 꿨다. 목을 조르는 듯한 꿈에서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면 캄캄한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소독약 냄새. 어두침침하고 을씨년스러웠던 병원의 희미한 조명. 똑딱이던 시계 소리. 온 사방이 질식할 것 같이 하얗고 또 까맣기만 해서. 지겸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보통 곧 박 실장 아저씨가 뛰어 들어오긴 했지만. 매일 새벽, 겨우 그 몇 분간 지겸이 느꼈던 고요한 공포는 그 후로도 종종 지겸을 찾아와 그를 압박했다. 그날 이후 지겸은 침대에서는 잠들 수 없게 되었다. 잠에서 깼을 때 직사각형의 널찍한 침대에 누워 텅 빈 천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는 극심한 호흡곤란을 느끼고 공황장애 증상을 겪었다. 그래서 지겸의 집에는 늘 침대가 없다. 침대 대용으로 쓰는 넉넉한 크기의 소파베드뿐.

나중에 알았지만, 형은 예상대로 멀쩡했다. 다만 소희를 구한 게 지훈이어야 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지겸의 수술이 끝나자마자 몰래 가까운 지방 병원으로 옮긴 것이다. 아버지는 병원 의사에게 뒷돈을 주고 기록을 바꿔 지훈이 수술 받은 척 꾸몄다. 소희의 부모가 사위가 될 지훈을 생명의 은인으로 느낄 수 있도록. 그래서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재림 생명 공익 재단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런 그가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니. 거의 20여 년 만이었다.

지겸은 어제 밤새 소희를 안고 또 안았다. 결국 지쳐 기절하듯 잠든 그녀를 가볍게 닦아준 후 품에 끌어안고, 잠시 침대에 함께 누워 있었던 것까지 떠올랐다. 소희의 몸에서 나던 달큼한 꽃향기, 그 향에 어지럽던 맘까지 편안해져 더 꽉 끌어안고 그녀 정수리에 코를 묻었던 것도. 그러다 잠들었던 모양이었다. 아무런 의심도 불편함도 없이. 그렇게 그녀를 품에 끌어안은 채.

엎드린 채로 손을 뻗어 옆을 쓰다듬었다. 아무도 없었다. 그 날처럼 비어 있는 새하얀 침대, 홀로 남은 자신을 깨닫자 갑작스럽게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숨이 갑갑해져 온다.

“으음….”

순간, 뒤편에서 잠결에 보채는 듯한 작은 소리가 울렸다. 또다시 시작될 뻔한 악몽이 그녀의 작은 음성 덕분에 멈췄다.

후유. 안도의 깊은 한숨이 몰려나왔다.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온 지겸이 소파에 웅크리고 누운 소희에게 다가갔다. 새벽에 잠에서 깼을 때 혼자 여기로 온 모양이었다. 무슨 꿈을 꾸는지 붉은 입술이 조금 달싹인다. 어젯밤엔 약해빠진 몸으로 그렇게 고집을 부리더니, 잠든 모습은 꼭 어린애 같다.

“내 옆에서 자기 싫었구나.”

소파까지 도망치고.

그래도 너무 멀리 가지 않아줘서 고마워. 임소희.

다정한 말을 속삭이며 지겸이 그녀를 안아 올렸다. 침대에 조심스레 눕혀주고 이불을 끌어 올려 잘 덮어준다. 분명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잠옷도 그새 혼자 잘 찾아 입은 모양이었다. 귀엽기는. 한밤중에 나체로 잠에서 깨 당황하며 두리번거렸을 그녀를 떠올리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어느덧 비는 그친 모양인지 커튼 틈새로 햇살이 비췄다. 투명할 정도로 하얀 그녀의 목과 팔에 환한 빛이 부서져 내려서 그 속으로 소희가 곧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이런 여자 안에 어젯밤 몇 번이나 욱여넣고 사정하며 괴롭혔지.

“미안해….”

소희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지겸이 나지막이 말했다. 아프게 해서, 놀라게 해서. 힘들게 해서.

눈이 부신지, 소희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지겸이 일어나 커튼을 다시 꼼꼼하게 쳐 빛을 차단한 뒤 다시 그녀 옆에 앉는다. 파란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자신에 비해 턱없이 작은 손을 들어 쪽 손등에 입을 맞춰본다.

“소희야, 임소희. 사랑해….”

그가 그녀의 작은 손을 감싸 쥐고 가느다란 손가락 끝 하나하나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지겸은 이제 이 여자 하나면 충분하다. 필요한 건 오롯이 이 여자뿐인데, 그래서 더 두렵고 오히려 어찌할 바를 몰라 뒤죽박죽이었다. 처음이었다. 그에게 이토록 거센 소유욕을 일으키고, 마침내 품에 넣고 그렇게라도 지키고 싶어진 무언가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도, 그에게 지킬 사람이 생긴 것도. 이 모든 게 처음이라 그는 경험해본 적 없는 간절함에 더 질식할 것 같았다.

곁에 있어 줘, 소희야. 제발… 어머니처럼,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사라지지만 말아줘.

고이 잠든 여자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지겸은 절실하게 속삭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녀를 좀 더 옥죌 필요가 있겠다고. 차마 그에게서 도망갈 생각 따위, 하지 못하도록.

***

소희는 정오가 가까워진 시간이 돼서야 겨우 눈을 떴다.

분명 새벽에 깼을 때 소파에서 잠들었던 것 같은데. 그녀는 다시 침대로 옮겨져 있고, 곁에는 지겸이 앉아 있었다.

“…잘 잤어?”

아. 몸을 일으키려던 소희가 입술을 깨물었다. 일부러 지겸이 있는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엄청난 둔통이 몰려왔다. 특히 아래가 얼얼해서 쑥 빠질 것만 같았다. 허리도 골반도 뻐근하고 하체가 다 무거워.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던 데다가, 어젯밤엔 히트 사이클도 지나간 후여서 더 몸에 무리가 갔던 것 같다.

그녀의 상태를 눈치챈 지겸이 괜찮냐고 물으려다 참았다. 어차피 그런 말 따위 지금 소희에게 인사치레로도 느껴지지 않겠지. 잠든 그녀 옆에서 했던 결심을 그가 다시 곱씹었다. 아무리 지겸이 지금 그의 진심을 내보인들 소희가 받아들이긴 어려울 거다. 그렇다면 감정에 호소하기보다, 우선은 상황으로 잡아두어야겠다고.

지겸은 조용히 물컵을 건넸다.

“아침, 먹어야지.”

“전 정말 생각 없어요.”

소희는 지겸이 주는 물컵을 외면한 채 불편한 걸음으로 천천히 나아가 직접 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후. 지겸이 내뱉는 한숨이 소희의 귀에 거슬렸다. 밥을 먹어라 말아라. 그가 챙겨주는 척 하는 것도 소희는 불편하고 짜증이 났다.

달칵. 지겸이 전화기를 드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필요 없으니까, 시키려면 혼자 먹어요.”

“임소희.”

단호한 그의 시선과 마주치자 움찔, 그녀가 조금 놀랐다.

따르릉. 따르릉. 수화기 너머 계속 신호가 가고 있었다.

“먹으라고 할 때 먹어. 안 그럼 그 입에 음식 말고 다른 걸 물리는 수가 있으니.”

화르륵. 말의 진의를 눈치챈 소희의 얼굴이 걷잡을 수 없이 빨개졌다. 그녀도 더는 그를 막지 못했다.

지겸이 그런 그녀를 지긋이 응시하며 룸서비스를 시켰다. 커피는 따뜻한 카푸치노, 설탕 두 개 곁들여서. 우유를 넣은 커피만 마시는 소희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다. 거기에 자신이 마실 샷을 추가한 아메리카노, 빵은 식빵 대신 크루아상과 팽 오 쇼콜라로. 디저트는 과일과 바닐라 요거트. 특히 라즈베리를 듬뿍 넣은. 놀라울 정도로 소희가 좋아하는 것뿐이었다.

우연일까. 아니면 모르는 사이, 이 남자는 벌써 그녀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던 걸까.

정말로. 정말로 이상한 남자다.

추가로 컨시어지에 전화해서 핫팩을 가져다 달라 부탁하면서, 지겸이 그녀를 보며 침대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톡톡 쳤다. 와서 앉으라는 뜻인가. 소희는 망설이다가 그의 옆으로 가 앉았다. 조금 전 다분히 음습한 협박을 들은 터라, 우습게도 행동이 조금 다소곳해졌다.

“어어….”

탈칵. 전화를 끊은 그가 어정쩡하게 옆에 앉아 있던 소희를 침대에 엎드리게 했다.

베개에 고개를 파묻힌 채, 소희가 다리를 버둥거렸다. 뒤쪽에서부터 지겸의 페로몬까지 훅 기세를 끼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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