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하으, 응, 흑.”
왼손은 끈에 묶이고 오른손은 그의 손에 잡혀 거의 완전히 결박된 채로, 거칠게 쑤석이는 그의 좆을 견뎌내는 건 생각보다 더 힘겨웠다. 뜻대로 움직일 수 없어 두려운 마음과 더욱 흥분되며 젖어 드는 묘한 배덕감이 공존했다.
“너무, 으. 좀, 그만. 그만, 흐으.”
계속해서 도리질을 치며 입술을 깨물고, 종종 자신을 노려보는 소희를 봐도 지겸은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저 사냥감을 향해 달려가는 맹수처럼 날 것의 숨을 뱉어내며 허리짓을 반복할 뿐이었다. 눈빛을 만질 수 있다면 지금 그의 것은 깊은 물 속 돌멩이처럼 딱딱하고 차갑고 축축하지 않을까.
항상 전희에 오래도록 공을 들이는 남자였다. 일주일도 채 안 됐지만, 지겸과 수십 번도 더 몸을 섞으며 소희는 알 수 있었다. 그는 매번 정성스러운 애무를 퍼부어 소희가 수 없는 절정에 도달하고 나서야 삽입을 시작했다. 그녀의 음부가 그의 타액과 극도의 흥분으로 젖어 녹진녹진 풀어진 후에야 천천히, 부드럽게.
물론 페로몬 덕분도 있겠지만, 그렇게 끝도 없이 섹스하면서도 소희가 노팅할 때 외에는 거의 통증을 느끼지 못했던 건 그들의 정사가 오롯이 소희를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오직 소희가 원하는 속도와 타이밍에 맞춰서.
그래서 더더욱 지금 이 순간이 소희에겐 수치스러웠다. 지겸은 준비가 됐다싶은 순간 바로 그녀 안에 제 것을 박아 넣더니, 어느 때보다 더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지겸은 그저 제 정욕을 풀기 위해 여자 몸을 행위에 이용하는 것처럼 굴었다. 소희가 그에게 퍼부었던 악담 그대로, 섹스만을 위해 그녀를 데려온 사람처럼.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에 소희가 이를 더 악다물었다. 이런 남자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이따위 정사에 굴복하거나 상처받는 것처럼 보이기도 싫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착실히 반응하고 있는 그녀의 몸은 쾌락에 젖어 바들바들 떨렸다. 최악이야. 아무리 참아도 연신 터져 나오는 교성을 뱉어내며, 소희는 오메가로 태어난 제 몸을 저주했다.
“싫, 으흑, 어어…. 싫어. 하으, 아!”
지겸이 그녀의 다리를 올려 접어 아예 상체에 붙이게 한 채 더 벌어진 비부 틈을 지독하게 파고들었다.
철퍽, 퍽, 찌걱찌걱. 한계까지 처박았다가 질벽을 온통 긁으며 빠져나가는 성기의 자극이 쉴 틈 없이 소희를 몰아갔다. 지겸은 여전히 그녀의 가슴을 빨아주지도, 그녀에게 입술을 맞춰오지도 않았다. 그는 정말로 좆을 젖은 질구에 박아 넣는 피스톤 질에만 집중했다.
“후으….”
어느새 소희는 포기한 듯 눈을 감았다. 될 대로 되라지. 그저 그가 치받는 대로 흔들리다 보면 끝나겠지.
그녀의 촘촘한 속눈썹이 가늘게 떨린다. 힘겨워서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바들거리는 여체를 내려 보는 지겸의 가슴 한편이 차갑고 시렸다.
예쁘다. 그 모습조차. 아니, 언제나 너무 예뻐서 문제다. 당장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 키스하고 싶어서.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지겸은 화가 났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녀는 그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그렇게 만든 것은 그 자신이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그녀의 오해를 풀 수 있도록 노력하고 대화하는 것뿐이다. 그에게 내려질 그녀의 처분을 얌전히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두려웠다. 어제처럼 또 그녀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이렇게 꼼짝도 못 하게 묶고, 그로 속박하고 그의 흔적을 온몸에 새기지 않으면 잃어버릴 것만 같다.
임소희. 그의 여자. 각인의 기억과 노팅의 포만감이 지겸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이토록 갖고 싶었던, 놓치기 싫었던 무언가가 그의 평생에 또 있었던가.
사랑받지 못해 잔뜩 겁이 난 미숙한 자아의 그늘진 한 구석이 그를 끝까지 몰고 간다. 오로지 이 여자뿐이야. 다른 건 필요 없다. 그러니까 가지고 싶어. 가져야만 해. 갖고,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야.
어긋난 애정의 그림자가 한 몸으로 얽혀 마구 흔들리는 두 사람의 위로 드리워졌다.
***
아주 어렸을 때야 지겸도 다른 아이와 똑같았다. 내 장난감, 내 옷, 내 신발. 물건에 대한 적당한 애착도 있었고, 자꾸만 지겸의 것을 탐내하고 빼앗는 형과 치고받고 다툼도 종종 했었다. 평범한 형제들처럼.
하지만 그럴 때마다 지겸은 아버지에게 호되게 혼나야만 했다.
네 형이니까. 형 거야. 형에게 양보해.
아버지는 지겸에게 귀가 닳도록 말씀하셨다. 나중에 설명해 주면, 너도 다 이해할 거야. 지금은 양보해. 하지만 지겸은 서른이 되는 지금까지도 아버지에게서 어떠한 설명조차 듣지 못했다.
아버지의 눈치를 보면서도 지겸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어머니가 유일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홀로 미국에서 공부하다 잠시 돌아왔던 첫 여름 방학. 너무도 그리웠던 집에 돌아와 그가 본 것은 지훈의 것이 되어 있던 자신의 방이었다. 지겸의 집이기도 한 공간인데도 그의 것이 하나도 없었다. 혹여 처음엔 지겸의 것이었다 하더라도 형이 관심을 보이면 내어줘야 했다.
하지만 이 여자만은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안다. 소희는 아버지가 정한 형의 약혼녀였다. 지겸은 절대 욕심 부리면 안 될 사람이라고 다들 생각하겠지.
하지만 이 세상 모든 게 그의 것이 아니어도 좋다. 다 빼앗아가도, 아니 처음부터 지겸의 것이 아니라도 전혀 상관없다.
유일하게 하나, 오롯이 임소희 이 여자 한 명만. 신이 그에게 허락하시기를.
그렇게 된다면 다른 건 그 무엇도 평생 탐내지 않고 살아갈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소희의 음부를 헤집는 지겸은 갈급하다. 자신이 남긴 정사의 흔적을 제 손으로 빼내는 그녀를 봤을 때, 그의 마음속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그녀가 지훈의 이름을 말하고, 그들의 관계를 짐승의 것에 불과하다 조롱했을 때. 지겸이 느낀 분노는 결국 그녀를 잃을까 두려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그래서 아직 채 자라지 못해 어리석고 두려움에 떠는 아이가 그 마음에 산다.
그는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소희를 확인한다. 지겸을 거부하며 입술을 깨물어도 뜨거운 그녀의 안은 그를 빠듯하게 조여오며 붙든다. 깊이, 더 깊이 파고들수록 쾌락에 절어 잇새로 신음을 흘린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이렇게. 소희가 그의 것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푹, 푹.
“흑…. 으흑….”
소희 스스로도 박아오는 그의 남성을 내벽이 꽉 쥐고 놓지 않으려 수축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심하고 괴로웠다. 소희는 결국 애써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지금… 우는 거야…?”
격하던 추삽질을 멈추고, 지겸이 물었다.
소희가 눈을 뜨니, 늦은 밤 고요한 강물을 닮은 그의 검은 눈동자가 동요하며 일렁이는 게 보였다. 그를 더 흔들리게 하고 싶었다. 이런 짓을 하면서도 한없이 다정한 저 눈을 흐트러뜨리고 싶었다.
“맞아. 울어요. 당신이 묶어놓고 이러는데도 젖는 내가 웃겨서 울어요. 끔찍해서, 눈물이 나요.”
“뭐…?”
정작 상처받은 건 소희인데 왜 그가 더 상처받는 표정을 짓는 걸까. 이런 것까지 연기하는 게 가능한가. 대체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읏….”
찌걱. 지겸이 그녀 음부에 박혀 있던 그의 성기를 빼냈다. 박힐 때마다 질퍽대며 습한 소리를 내던 애액이 고여 있다가 주룩 딸려 흘러나왔다.
“그만, 그만할게. 제발… 울지 마.”
그와 관계하며 소희가 울었던 게 한두 번은 아니다. 지겸의 밑에 깔려 앙앙 신음하며 흘리던 그 눈물이 얼마나 기꺼웠는지. 그게 그를 더 발정나게 해서 자신이 얼마나 더 깊숙이 좆을 묻고 몇 번이고 박아 넣었는지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물은 전혀 다른 의미다. 체념과 증오, 그리고 자기학대. 낯이 익다. 어린 시절 방에 앉아 혼자 울던 어머니가 떠오르는, 그런 눈물.
그런 그녀에게 이런 식의 정사를 더 강요할 수는 없었다. 지겸에게 그런 가학적인 취미는 없다.
스륵. 지겸이 묶여 있던 실크 끈을 풀어 소희의 팔을 빼줬다. 닦을 것 가져다줄게. 낮게 깔린 한숨과 함께 일어나려는 그를, 그녀가 다시 붙잡았다.
“그냥, 해요.”
놀란 눈의 지겸이 그녀를 돌아봤다.
“너 지금, 뭐라….”
“계속하라고요. 자꾸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말고.”
부드러운 끈으로 묶어 거의 자국이 남지 않았음에도 묶였던 소희의 왼 손목을 연신 쓰다듬으며 지겸이 말했다.
“소희야. 미안해…. 네게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니었어. 힘들 테니 일단 좀 쉬고, 차차 우리 얘기 좀 할 수 있을….”
“그냥 하자고요! 제발!”
그의 손을 쳐내며 발끈하는 울음 섞인 목소리에 지겸의 시선이 내려앉는다.
“임소희….”
“이제 와서 나 생각하는 척하지 말아요. 어디, 하고 싶은 만큼 실컷 해 봐요. 짐승처럼 하자며. 자, 계속해요. 얼마든지 벌려줄게요.”
소희가 말하며 다리를 정말로 더 벌렸다. 허벅지를 부들부들 떨면서 젖은 꽃잎을 그의 앞에 낱낱이 드러냈다.
소희는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지겸과 몸을 섞는 편이, 억지로 자신을 탐하는 남자를 마음껏 증오할 수 있는 게 훨씬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그가 이런 얼굴을 하고 멈추면, 그녀는 더 괴로워질 게 분명했다. 그에게 진심이 있다고, 착각할 것 같았다. 기회를 주고 싶어질지도 몰랐다.
지겸의 얼굴이 충격으로 굳었다.
“진심이야?”
소희가 끄덕이며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성기를 쥐었다. 작은 손이 파르르 떨며 귀두 부분을 겨우 감쌌다.
“잠깐. 너….”
소희가 그대로 그의 귀두 끝을 제 음문에 가져다 비볐다.
큿…. 그의 입술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부드러운 손이 그를 감싸는 느낌이 소름 돋게 좋았다.
억지스러운 유혹의 동작에도 달큼한 오메가의 페로몬은 충실하게 피어올랐다. 지겸의 눈에 다시금 복잡하게 얽힌 정염이 깃들었다.
“임소희. 엎드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