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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봄은 8년 만이었다. 아버지는 지겸이 최대한 한국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랐다. 때문에 미국에서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던 지겸은 그 긴 여름 방학 기간에도 한국에는 겨우 2주 정도 다녀오는 게 전부였고, 나머지 시간엔 유럽의 캠프 같은 곳을 전전하곤 했다. 그 봄의 입국은, 그러니까 지겸에게는 최초의 일탈이었다.
바로 그 전해, 열일곱 살의 겨울. 지겸은 많이 아팠다. 알파로 발현되며 무서울 정도로 지독한 러트 사이클을 홀로 버텨냈다. 아버지가 보내주신 억제제야 종류별로 가지고 있었지만, 그 약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우성 알파가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래도록 지겸은 자신이 베타로 남기를 바랐었다. 아버지가 믿는 가치관을, 그 세상을 늘 깨뜨리고 싶었으므로.
온몸의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통증과 고열. 그리고 끝도 없이 발기하는 성기. 침대에 누워 끙끙대면서, 지겸은 결국 반짝이는 미소를 가진 한 소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매해 여름 그가 잠시 한국에 들르는 기간에, 지겸의 집에서는 친한 가족들을 초대해 바비큐 파티를 했다. 지훈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명목이었다. 사실 그 날은 지겸의 생일이기도 한데 말이다.
아버지는 사람들 앞에 지겸이 나서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항상 가장 구석진 자리에 조용히 있다가 자리를 뜨곤 했다. 사람들 앞에서 생일을 축하받고, 케이크의 촛불을 불고는 신나서 웃는 형을 멀리서 무표정하게 쳐다봤다. 그리고 늘 그의 가까이에 서 있는, 소희를 봤다.
등불이 저절로 켜지는 걸 요정의 마법이라고 믿던 어린 소녀는 해가 갈수록 어여뻐졌다. 매해 조금씩 키가 크고, 어린 소녀가 점점 숙녀가 되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에, 한국에서의 2주가 아무리 끔찍해도 지겸은 좋았다.
열일곱의 지겸은 형이 촛불 부는 것 따윈 보지 않았다. 그저 정원 구석 나무에 기대 눈을 감고 음악이나 듣고 있었다.
“오빠….”
처음엔 잘못 들었겠지 했다.
“구지겸… 오빠? 맞아요?”
눈을 떴더니 소희가 있었다. 어깨 조금 위로 올라오는 단발을 한 그녀는 무릎 위에서 찰랑이는 길이의 아이보리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가 당황해 올려다보니, 소녀는 동그란 눈을 부드럽게 접더니 미소를 지었다.
맴맴. 두 사람 주변에서 매미가 시끄럽게 울었다. 두근. 초저녁의 여름, 안쪽에서 들려오는 파티의 소음과 맴맴 윙윙 울려대는 벌레 소리 속에서도 지겸의 모든 감각은 소희에게만 집중됐다. 두근. 겨우 눈을 마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어. 맞아.”
올해 열넷. 작년에 우성 오메가로 발현한 그녀는 재림재단에서 운영하는 중/고등학교 통합과정에 입학했다고 했다.
“이거. 생일이니까….”
깜빡깜빡. 눈이 참 크기도 하다. 무슨 속눈썹이 저렇게 길까. 수줍어하는 건지, 대담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표정이다. 한여름이라 6시가 넘었는데도 사위가 밝았다. 저녁 무렵의 태양 빛이 어른거리는 그녀의 갈색 눈동자가 투명하게 빛났다.
“…응?”
자기도 모르게 한참을 멍하니 그녀 눈동자만 바라보던 지겸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소희가 내민 것을 확인한다.
케이크. 아버지가 지훈을 위해서 주문했을 케이크의 조각이다. 그리고 그 위에 분홍색 초 하나가 앙증맞게 꽂혀 있다.
“아.”
“불 켤 수 있는 건 없어서…. 그냥 초만 꽂았어요.”
민망하다는 듯 또 소희가 미소를 짓는다. 지겸은 얼떨결에 접시를 받아들었다.
“고마워. 그런데 왜….”
“지난번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지훈 오빠와 오빠는 쌍둥이잖아요. 그럼 생일도 같지 않아요?”
“…그렇지.”
“그런데 매번 촛불은 지훈 오빠 혼자 부니까.”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었다고…? 애초에 지겸은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오로지 자신만 그녀를 신경 쓰고 있는 줄 알았는데.
“지겸 오빠, 생일 축하해요.”
소희가 지겸을 향해 웃었다.
아마 소희는 그날을 기억조차 못 할 것이다. 워낙 천성적으로 선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성격이라. 화려한 축하 자리에 쌍둥이인 지겸만 빠져있는 걸 내내 마음 걸려 했을 뿐이겠지.
하지만 그 여름날 소희의 축하와 불조차 붙이지 못한 채 건네준 분홍색 초는, 지겸의 마음속에 오래 타오를 촛불을 밝혔다.
그 날 지겸은 차라리 본인이 베타였으면 좋겠다던 생각을 버렸다. 그녀의, 임소희의 남자가 되려면 알파여야 할 테니까. 그리고 그해 겨울, 우성 알파로 발현했다.
그래서였다. 학교가 개교기념행사 때문에 일주일 동안 특별 방학을 했을 때, 지겸은 충동적으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저 소희가 보고 싶었다.
아버지 몰래 한 귀국이었기에 지겸은 아무 호텔이나 잡고, 소희의 학교가 있는 여의도 쪽을 매일 서성였다. 4월, 한국은 벚꽃이 한창이었다. 소희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마냥 하얗게 보이는 꽃잎이 가까이서 보면 가운데가 은근히 분홍빛인 것이. 웃으면 발그레해지는 그 아이의 뺨을 닮았다고. 벚꽃 잎이 바람에 흩날릴 때, 그 아래 소희가 서 있다면 정말로 예쁘겠다고.
그 순간 지겸의 뒤쪽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한 냄새가 났다. 벚꽃 향인가? 아니다. 그렇다기엔 지금까지 계속 벚꽃 나무 아래 서 있었는걸. 그럼… 복숭아 향인가? 멍청이. 길거리에 복숭아가 있을 리가. 그러나 그 냄새를 맡고 있자니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온몸이 간질거리며 기분이 좋아졌다. 몽글몽글하게 몸이 떠오르는 것 같은 기분.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아, 그 좋은 향이 점점 가까워진다고 느낀 순간.
교복을 입은 두 명의 여중생이 까르르 웃으며 지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중에 소희가 있었다. 임소희. 교복에 붙은 명찰에 적힌 이름. 지난겨울, 첫 러트 사이클을 겪으며 계속해서 떠올린 그 눈동자와 미소의 주인. 그를 스쳐 지나가는 그녀의 옆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붙잡고 싶었는지. 달려가서 품에 꼭 껴안고 싶었는지 모른다.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렇게 지겸은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정말 한참을 소희가 나오는 꿈만 꿨다.
어린 시절 첫눈에 반했던 것도 맞고, 그 후로도 계속 그의 눈에는 소희만 보였던 것도 맞다. 하지만 그의 진심이 한순간에 커져 버린 마음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마음은 어쩌면 커지는 게 아니라 켜켜이 쌓이는 것.
점점 두꺼워지다 결국 두터워지는 것.
소희에 대한 지겸의 마음같이.
그리고 그 날 그가 느낀 기묘한 충동이 자신의 짝을 찾은 알파로서의 본능이라는 것을 지겸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
찰방찰방. 귓가에 울리는 물소리가 편안하다. 온몸이 녹진녹진했다. 지나치게 따뜻하고, 또 나른해서. 아직 꿈속인 것 같기도 한데. 깰까, 깨지 말까. 소희는 몽롱한 정신 속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뒤에서 자신을 감싼 누군가의 품이 크고 따스하다. 그녀를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보드라운 무언가로 아주 조심스럽게. 으응 간지, 러워…. 흣.
“자는 중에도 느끼는 거야…?”
야하네, 우리 소희.
“앗!”
번쩍 눈을 떴다. 소희 앞에 하얀 대리석 타일과 거울에 뿌옇게 서린 김이 보인다.
“일어났어…?”
귓가에 뜨거운 숨결이 와 닿는다. 상쾌하고 짙은 남자의 페로몬도. 아, 그러고 보니 지난밤 오빠와 하던 중에….
화르륵. 달아오른 소희의 볼을 지겸이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좀 괜찮아?”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차마 뒤돌아보지도 못한 채 소희가 물었다. 전부 세세하게 기억났다. 그와 밤새 몸을 섞었던 것, 서로 각인하고, 마지막엔 노팅까지….
“기절하듯 잠들었었어.”
으악, 그게 뭐야. 부끄럽게.
“얼마…나요?”
“3시간 정도?”
“그렇게나… 오래?”
노팅하는 거, 네가 너무 버거워하는 거 같아서. 그냥… 자는 대로 뒀어.
“뭐라고요? 어, 얼마나 했길…래?”
놀라 그제야 뒤돌아본 소희에게 지겸이 어깨를 가볍게 으쓱해 보였다.
1시간 좀 넘게…?
심드렁한 그의 답에 소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설마 그럼 매번 그래야 한다는 건가?
발정기, 즉 러트 사이틀을 맞이한 알파가 본능에 따라 오메가의 몸에 노팅을 한다는 건 소희도 알고 있던 상식이었다. 알파는 오메가의 질구에 제 성기를 삽입한 채 최대한 부풀려 음문을 막고, 사정한 정액이 자궁으로 완전히 흡수될 때까지 기다린다. 오메가는 오직 이 노팅으로만 임신할 수 있었다. 따라서 간혹 베타를 임신시키는 알파는 있을 수 있으나, 알파 이외의 사람에게 임신하는 오메가는 없었다.
쪽. 놀란 소희의 정수리에 지겸이 입을 맞췄다.
“처음만 그래. 처음이라. 차차 빨라진다더라.”
후유. 그 말에 소희가 눈에 띄게 안심하며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크큭. 그런 소희가 귀여운지 지겸이 소리 내 웃었다.
“나랑… 계속하긴 할 건가 봐. 그렇게 다행인가?”
“오빠! 정말!”
소희가 계속 웃으며 자신을 끌어안는 그의 팔을 찰싹 때리며 내쳤다.
“오빠가 이렇게 짓궂은 사람인지 몰랐어요….”
“내가?”
금시초문이라는 말투에 소희가 어이없다는 듯 그를 새초롬하게 노려봤다.
“나야말로…. 네가 내 걸 그렇게 꽉꽉 잘 받아먹을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조그마한 구멍으로.
어느덧 그녀 허벅지 틈새를 파고든 지겸의 손가락이 사타구니 근처를 은근히 배회했다.
“흐….”
보통 때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했다면 분명 음부가 퉁퉁 붓고도 남았을 텐데. 다행히 히트 사이클의 영향인지 생각보다 쓰라리거나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뜨거운 물에 몸이 잔뜩 풀어져서 그런가…. 물속에서 그의 손이 비부 가까이 지분거리니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뱉는 숨소리가 조금씩 빨라지는 걸 눈치챈 지겸이 물에 반쯤 잠긴 소희의 가슴을 움켜쥐고 천천히 주물렀다. 물기어린 하얗고 동그란 젖가슴이 그의 큰 손 안에 말캉대며 달라붙었다. 황홀한 감촉에 지겸이 달아오른 숨을 뭉근히 내뱉었다. 그러다 우연인 척 손가락 사이에 유두를 끼워 이리저리 비틀었다.
“으응.”
“벌써 이래도 돼? 응…?”
“내가 뭘….”
연분홍 젖꼭지가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금세 딱딱해져 발딱 일어섰다.
지겸이 희롱하듯 손끝으로 유두를 튕기고 꼬집으며 소희의 뒷덜미와 등에 입 맞추기 시작했다. 척추뼈를 따라 혀를 할짝대며 내려오는 입술의 감촉에 소희가 몸을 움찔거릴 때마다 수면에 잔잔한 파동이 일었다.
“흣!”
지겸이 그녀를 번쩍 들어 욕조 위에 앉혔다. 쪽쪽. 소희의 허벅지 여기저기가 그의 입술 끝에서 좀 더 울긋불긋해졌다.
“소희야.”
지겸이 소희의 오른 허벅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위쪽 흉터 자국을 혀로 부드럽게 핥았다.
“많이 아팠지, 그때….”
아…. 7살 때 개에게 물렸던 곳. 꿰매고 남은 흉터는 소희의 성장과 함께 벌어지고 터서 탁구공 정도 크기로 남았다. 가끔 수영장에 갈 때면 남들 눈에 띄는 게 불편해 일부러 치마가 달린 수영복을 입는 그녀였다.
“하지만 오빠 몸엔 더 많은걸.”
간밤에는 그와 몸을 섞느라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의 몸에 불긋하게 남았던 주름진 흉터들이 잔상처럼 떠올랐다. 양쪽 어깨와 위팔 군데군데, 그의 양쪽 허벅지에도. 자신의 것보다 더 크고 선명한 흉터가 열댓 개는 되어 보였다.
제 앞에 무릎 꿇은 남자를 향해 소희가 팔을 뻗었다. 손이 닿는 곳만 더듬었음에도 왼쪽 팔 위에는 상처가 세 개나 있다. 그 흉터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소희가 제 입술을 지그시 씹었다.
정말 무서웠을 텐데. 많이 아팠을 텐데. 그런데도.
“고마워요, 오빠. 그런 말로는 부족하겠지만. 사실 내가 지금 이렇게 오빠 앞에 있을 수 있는 것도 다….”
쪽. 소희의 말을 막으며 그가 입술을 부딪쳐왔다.
“안 그랬으면 평생 후회했겠지.”
“음….”
내 신부로 맞을 수도 없었을 테고.
“이렇게 잡아먹지도 못했을 거고.”
괜히 마음이 쓰라려서 지겸의 뺨을 쓰다듬고 있던 소희가 그의 마지막 말에 흠칫, 손길을 멈췄다.
“이이…! 진짜… 벼, 변태!”
푸하하. 그 한마디가 뭐 그리 어렵다고. 한 손으로 주먹 꽉 쥐고 소리 지르는 소희가 너무 예뻐서. 크게 터져버린 그의 웃음이 뜨거운 수증기로 가득 찬 욕실을 울렸다.
못 말려 정말.
투덜대면서 소희도 지겸을 따라 조금 웃었다. 그 웃음에 그녀의 한쪽 볼에 앙증맞은 볼우물이 패었다. 쪽. 지겸이 그 자리에 입을 맞췄다.
소희야 실은, 그 날…. 순간, 지겸은 모든 걸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녀에게 지금 다 말해 버릴까. 곧 고백해야 할 사실들이다. 전부. 하지만 아직은… 아직은 참아야겠지. 제 앞에서 까르르 행복하게 웃는 소희. 그녀와의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뭔가를 더 말하는 대신 웃으며 그녀의 손을 감싸 쥔 그가 작은 소희의 손바닥에 입을 맞추며 간지럽혔다. 어쩐지 심장까지 간질거렸다.
그렇게 달달한 행복의 기운이 비눗방울처럼 두 사람 사이를 몽글몽글 떠돌아다녔다.
무지갯빛을 내며 날아오르다 손끝으로 톡 터뜨리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바로 그 비눗방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