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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곧이다. 이 여자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어차피, 어쩔 수 없이, 당연하게 처음부터 정해진 듯이 그의 것이 될 것이다. 지겸의 심장은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며 온몸에 거세게 피를 보내면서 뛰어댔지만, 그의 머리가 애써 각인의 유혹을 억눌렀다.
지겸이 가까스로 목덜미를 지나쳐 소희의 쇄골뼈 사이 오목하게 파인 골을 혀로 할짝댔다.
“으응….”
그녀에게서 갸르릉 대는 아기 고양이 같은 신음이 뱉어졌다. 그 반응이 만족스러운지 지겸이 쿠쿡, 부서지는 웃음을 그녀 쇄골 근처에 흩뿌렸다.
“소희야.”
나긋한 부름에 감겼던 눈이 스르르 떠졌다.
“나도… 하고 싶은데.”
“네…? 뭐….”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소희가 몸을 굳혔다.
“키스.”
투둑.
키스라니, 지금까지 한 건 키스가 아니란 얘긴가. 생각이 머리에 채 미치기도 전에 남자의 손이 소희의 블라우스 단추를 끌렀다.
“오, 오빠… 잠깐, 잠깐만요. 분명 키스라고 했잖….”
당황한 소희의 외침은 지겸의 입 속으로 삼켜졌다. 조금 전보다 더 깊이 제 혀를 밀어 넣고 그녀의 입 안을 훑으면서, 지겸이 천천히 블라우스의 단추를 끝까지 풀었다. 물론 소희가 그의 손 위에 제 손을 얹으며 저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단호하게 옷을 벗겨 내려가는 동작에 더 어쩌지 못하고 금세 굴복했다.
이게 다 페로몬 때문이야. 소희는 생각했다. 어쩌면 엄마의 말씀이 다 맞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꾸준히 함께 식사하고 대화를 나눠도 지훈이란 사람이 어색하고 불편했던 것 같은데, 그와 입을 맞추고 타액을 섞고, 바짝 몸을 붙인 지금은 다르다.
이 사람이 자신이 알던 약혼자, 그 구지훈이 정말 맞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소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을 마주한 듯, 모든 게 익숙한 듯 낯선 남자의 품 안에서 형언하기 힘든 아찔함을 느꼈다. 온몸의 감각이 짜릿하게 되살아나고 그가 조금 전 키스했던 복사뼈 근처가 간지럽다. 아아, 좋아. 좋은 것 같아. 어쩌지.
지겸이 진득하게 맞부딪혔던 입술을 떼니 두 사람 사이에 긴 은실이 이어졌다.
단추가 전부 풀어져 벌어진 블라우스 사이, 검은색 레이스 속옷이 감싼 소희의 하얀 윗가슴과 깊은 골이 살짝 드러났다.
씨…. 돌겠네.
지겸의 눈썹 끝이 움찔, 했다. 유독 짙은 그의 까만 눈동자가 정염으로 더 깊어졌다.
마른 몸 어디에 이렇게 봉긋하게 큰 살집이 숨겨져 있었지. 당장 손 안에 가득 쥐고 주무르고 싶은 욕심을 참기 위해서, 지겸은 대신 소희의 블라우스를 세게 움켜쥐었다.
“임소희.”
이상했다. 아까부터 이 남자가 제 이름을 부를 때면 소희의 아랫배가 단단해졌다. 아무래도… 조금 젖은 것 같아. 속옷이 점점 제 비부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키스할 때부터 그녀 아래에서 묵직하고 딱딱한 무언가 조금씩 비벼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의….
“이거… 벗길 거야.”
싫으면 말해. 네가 싫으면 절대 안 해.
조금 망설이다가 소희는 답하지 않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지겸이 그녀의 블라우스를 벗기며 동그란 어깨 여기저기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에 닿는 그녀의 모든 곳이 지나치게 부드러워 제 입술까지 녹아버릴 것 같았다.
“읏… 으응.”
쪽, 쪽 소리와 입술을 깨문 새로 비어져 나오는 소희의 신음이 공간을 메웠다. 그녀에겐 속옷만 입은 맨 등에 와닿는 차가운 공기마저 지나치게 야릇하게 느껴졌다.
지겸이 소희의 쇄골과 팔뚝, 속옷 위로 드러난 뽀얀 윗가슴에까지 차례로 입을 맞췄다. 조심스럽고 은근했던 애무가 가슴으로 내려갈수록 짙어지고 입술의 압력도 조금씩 세졌다. 자신의 몸을 훑는 젖은 입술의 감촉이 아찔해서, 소희는 흠칫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그가 가슴 언저리에 놀리듯 짧은 키스를 퍼붓자 그녀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읏, 오, 오빠….”
“쉬….”
속옷에 채 담기지 못해 말랑하게 튀어나온 가슴의 윗부분이 소희가 숨을 쉴 때마다 천천히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지겸의 혀끝에 침이 고여들었다. 그가 이번엔 혀를 세워 봉긋 부푼 가슴 사이, 은밀한 골짜기를 훑어 내렸다. 중간중간 입술로 누르며 부드럽게 자극했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색, 색. 점점 밭아지는 소희의 숨소리가 깜찍한데, 어쩐지 더 꼴렸다.
“…예뻐.”
너무. 그가 속옷 위로 드러난 소희의 가슴골 사이를 입술 모아 조금 세게 빨아들였다. 뽀얗고 여린 살 위에 붉은 꽃이 피었다.
지겸이 처음, 그녀의 몸에 남긴 흔적이었다.
하아. 지겸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10년을 넘게 바라봤던 여자가 그의 품에 안겨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브래지어는 물론이고, 거추장스럽게도 자꾸 말려 올라가는 치마까지 전부 벗겨버리고 그녀 허벅지 안쪽으로 어서 파고들고 싶었다. 게다가 그의 공들인 애무에 반응하는지 얇은 레이스 속옷 위로 유두가 단단하게 서 있는 티가 났다. 아, 빨고 싶었다. 입에 넣어 혀로 핥고 굴리고 샅샅이 맛보고 싶은데…. 지독히도 달콤한 오메가의 살 내음이 그의 이성을 뒤흔든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이걸 벗기고, 보드라운 그녀의 가슴을 손에 쥐고, 입 안에 머금는 순간. 아마 지겸은 결코 멈출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만둘 수 있다면 그건 오직 지금뿐이었다.
“임소희….”
지겸이 콩, 제 이마를 그녀의 이마에 맞부딪혔다.
“오늘은… 여기까지.”
말은 그녀에게 했지만, 실은 제 본능을 억누르려는 다짐이었다.
아. 마치 마법에 걸렸다가 주문 한 마디에 깨어난 사람처럼, 초점을 잃고 나른한 신음을 뱉어내던 소희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화르륵.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야 부끄러움이 몰려왔는지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바로 눈앞에서 그런 그녀의 표정 변화를 보고 나니 지겸은 제 앞의 여자가 지나치게 사랑스러워 가슴이 간질거렸다.
쪽. 볼록 튀어나온 이마에, 사르르 감겼다 떠지는 눈꺼풀에, 달아오른 양 볼에, 마지막으로 깨물면 과즙이 새어 나올 것 같은 붉은 입술에. 지겸은 차례로 입을 맞췄다.
“조금만, 아니 며칠만 기다리자….”
그때는 내가 먼저 멈추는 일은 없을 거야. 혹시 네가 제발 멈춰달라고 애원해도 아마… 못 그럴지도 모르고.
지겸이 소희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역시 따뜻하구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흥분으로 거칠어졌던 그녀의 숨소리도, 지겸의 넓은 가슴에 기대어 제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다정한 손길에 의지하니 편안하게 잦아들었다.
의례적인 다정함이라고 말했던 거, 취소. 그의 약혼자는 정말로 그녀를 아끼는 남자인 게 분명하다고. 순식간에 긴장이 풀리며 깜빡, 깜빡 잠이 들락 말락 한 상황에서 소희는 생각했다.
***
“그래서, 돌아오는 토요일에 자네는 같이 안 간다고?”
다음 날 저녁. 한남동에 있는 소희의 본가에는 네 남녀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녀의 부모님과 곧 사위가 될 지훈이 오랜만에 함께하는 식사자리였다.
“아이, 여보.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구 서방이 그 날 중요한 약….”
어험. 큼.
“당신은 좀 가만히 좀 있지.”
소희의 엄마가 뭔가 더 말을 꺼내려다 멈췄다. 이 집에서 아버지의 말은 곧 법이었다. 그는 누가 중간에 끼어들거나 말꼬리가 잘리는 걸 가장 싫어했다. 아버지는 엄마와 거리가 조금만 떨어져도 고통을 호소할 정도로 애정을 과시하는 알파였지만, 본인의 권위와 사회적 명예를 가장 중시하는 외골수 가장이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수십 년을 맞춰 살았으면서도 사위 앞에서는 조금 민망했던지 볼이 살짝 붉어진 그녀의 엄마가 괜히 눈앞의 국을 몇 입 떠먹었다.
“안 그래도 그 일로 상의드리고 싶었습니다, 장인어른. 그 날 서 장관님과 골프 약속이라….”
“아. 보건복지부 서 장관 말인가?”
싱가포르에 소희와 처만 먼저 가 있으라고 했다는 얘기가 내심 불편했던 아버지의 표정이 눈에 띄게 풀어졌다.
“그러고 보니 그 집 딸이 벌써…?”
“네, 열여섯입니다.”
“그랬군. 그런 일이라면 뭐… 어쩔 수 없지. 밥 먹고 서재에서 좀 이야기함세.”
“예, 아버님.”
어딘가 상기된 아버지와 지훈의 표정을 살피던 소희가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 습관적으로 움찔, 당황했다.
“너는 먹는 게 그게 뭐냐. 좀 팍팍 떠먹어. 늘 그런 식이니 몸도 삐쩍 마르고 원 여자애가 뻣뻣해서. 그래서 어디 구 서방 맘이 동하겠어? 쯧.”
“여보….”
엄마가 슬쩍 아버지의 무릎 위에 손을 얹었다. 딸에게 이런 식인 남편이 하루 이틀은 아니었지만, 이제 곧 사위가 될 지훈 앞에선 그만했으면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행동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렀다.
“내가 뭐 틀린 말 해? 우리 집에 알파 아들 하나 없는데. 소희가 구 서방이랑 결혼해서 어서 아들을 낳아야 나중에 재림재단도 물려주든 말든 하지. 오메가로 태어나서 그거 빼고 뭐 할 게 있다고.”
그림 끄적대고 음악이나 문학 한다고 나불대는 거 말고 말이지. 아버지가 혼잣말처럼 덧붙인 말에 소희 엄마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동양화를 전공하신 엄마나 영문과 교수인 소희를 겨냥한 말이 분명했다.
뼈대 있는 로열 알파 가문에서 태어난 소희의 아버지는 알파 특유의 선민의식이 강했다. 오메가를 알파의 종속적인 대상으로만 보는 뿌리 깊은 차별의식과 유교 사상이 뒤섞여 아내와 소희를 과보호하면서도 티가 나게 무시하곤 했다.
“아버님, 제가 잘하겠습니다. 대한민국에 소희만 한 미모를 가진 로열 오메가가 어디 또 있습니까.”
지훈이 어울리지도 않게 부러 큰 소리로 웃는 통에 식사자리엔 더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그를 흡족해하는 아버지가 따라 웃은 덕분에 대충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듯했다.
오메가니까. 오메가라서. 오메가답게. 자라면서 들은 아버지의 훈육 대부분은 오메가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었다. 소희가 오메가로 발현되기 훨씬 이전부터, 아버지는 그녀가 오메가가 될 것을 기정사실인 듯 말했다. 재단은 예술적 감각과 감수성이 풍부한 오메가가 아닌, 지적능력이 월등한 알파에게 맡기고 싶으시다면서. 그녀에겐 알파의 부족함이 없는 파트너로서 여러 방면에서 우수할 것을 종용했다.
미모가 빼어난 오메가라. 지훈의 입에 발린 소리가 칭찬의 뜻일 텐데도 이상하게 소희는 입 안이 썼다. 성격도 취향도 다르지만, 그녀의 아버지와 지훈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그 때문일까. 아버지와 식사한 후엔 꼭 소화제를 먹어야 하듯이 그녀는 지훈과의 식사 후에도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더뎠다.
“그러고 보니 구 서방 쌍둥이 동생, 지겸 씨였던가. 미국에서 전문의 따고 아예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쨍그랑.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소희의 엄마가 지겸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지 않아도 어제 유정이 일 때문에 오늘까지도 머릿속이 복잡하던 소희는 그의 이름을 듣고는 놀라서 들고 있던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순간 식탁 위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