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 부 초 상 (初喪) 집 – 1
대장 … !
지금 이방에는 모두 여섯 사람이 자고 있어.
방이 비록 크다고는 하지만 바닥에 요를 두툼하게 다섯 개씩이나 깔고 …
이불도 커다란 것을 네다섯 채를 펴 놓은 그 위에서 사람들이 모두들 지칠 대로 지쳐서 이리 저리 쓸어져서 잠이 들어 있는 거야 …
온 방안을 꽉 채우도록 여러 사람들이 한방에서 함께 잠을 자게 되면 …
처음 잠자리에 누어서 잠이 들 때에는 서로들 간에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옆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며 눕게 되는 법이지만 … !?
일단 잠이 들고 난 뒤에는 …
몸이 피곤하면 할수록 깊이 잠이 들게 되는 것이고 …
그렇게 깊이 잠이 들수록 잠결에 본능적으로 서로가 자기 편 한대로 팔다리를 휘두르며 몸부림을 치다 보니까 … !?
방안의 공간이 한쪽은 텅 비도록 넓은 공간이 생기는가하면 … !?
또 한쪽 편은 서로가 몰려서 비좁게 얽혀서 잠을 자게 되는 법인거지 … !!
방안에는 조그마한 호롱불이 희미하게 한쪽 벽면 높은 곳에 걸려있는 선반 위에서 졸고 있어서 나름대로의 빛은 있었지만 … !?
그 위에 들창문의 창호지를 뚫고 들어오는 달빛 때문인지 꽤나 밝게 방안의 사물이 구분이 될 수 있도록 환한 편이었어.
마침 음력으로 2 월 보름을 하루 앞두고 있는 달빛이라 꽤나 밝은 편인데다 …
어둠에 눈이 익으면 그런 대로 사물의 형체나 누워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는 되었어 … !!
오늘은 아침부터 아궁이에 장작을 얼마나 많이 땠는지 …
방바닥이 타버릴 정도로 뜨거워서 요를 깔지 않으면 맨바닥에서는 도저히 누워서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였어 …
너무나 후덥지근하고 더워서 나는 피곤한데도 한 밤중쯤에 눈을 떴어.
아빠가 돌아가신 거야… !!
그리고 삼우제(三虞祭)라는 제사를 지내러 오늘 저 멀리 경상도의 통천이라는 곳까지 우리 집안의 전 식구가 갔다가 돌아들 온 거야.
삼우제는 엊그제였지만 … !?
그곳에서 며칠씩 묵으며 소위 양반님네 식 초상(初喪)과 삼우제(三虞祭)를 지내느라 며칠씩 잠도 못 잔데다가 …
오늘은 새벽부터 수 십리 길을 걷기도 하고 몇 백 리 길을 기차와 뻐-스를 타고 하루 종일을 걸려서 대전(大田)의 집으로 돌아 온 거지 … !!
그 뿐만 아니라 아빠가 돌아가신 뒤 …
거의 열흘이 넘도록 긴장된 상태에서 초상(初喪)을 치르느라 꼬박 밤샘을 해야 했었고 …
문상(問喪)오시는 손님들을 맞이하랴 또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랴 지금 이 방에 늘어져 잠이 들어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야 말로 기진맥진한 상태였었던 거야.
웬 손님들은 또 그리도 많은지 … !?
나는 아빠가 돌아가시자「신도안」의 내 할아버님의 지시대로 아빠를 5 일장으로 모시는 초상을 치르느라 거의 잠을 자지 못했었어 … !!
그런데다가 산소가 있는 장지(葬地)는 또 얼마나 먼지 … !?
장사를 치르고 난 뒤 다시 이틀 만에 삼우제라는 제사를 지내고 나니까 …
초상 치르는 의식은 거의 다 끝난 셈인 거야 … !!
앞으로 남은 일이라고 하면 매일 아침저녁으로 모시는 상식(上食)과 초하루 보름마다 드리는 삭망(朔望)이라는 제사의식(祭祀儀式)이 남았을 뿐인 거야 …
옛날처럼 산소 옆에 움막을 짓고 시묘사리를 하지는 않지만 … !?
아침저녁으로 상식상(上食床)만은 아빠가 살아 계실 때처럼 받들어 모셔야 하는 거지.
그래서 지금 여기 있는 원래의 우리 집 식구들만 남게 된 거야.
아니 아직도 저쪽 다른 여러개의 방에서들은 어디어디의 무슨무슨 친척이다…
일가(一家)다 하는 사람들이 아직 돌아가지 않고 자고 있기 때문에 …
우리 집 식구들은 엄마가 쓰시는 이 안방에서 모두가 모여서 자고 있는 거지 …
엄마하고 나 … 그리고 고모들 두 사람 또 여동생이 두 명 모두 합해서 여섯 사람들이 자고 있는 거야.
그 동안 나는 지난해 12월 초순쯤 …
아빠는 저 멀리 경상도의 마산이라는 곳에 있는 국립요양원으로 결핵병치료 때문에 요양하러 가신 후 …
다시 공주시로 돌아가서 고집과 집념으로 파고들며 공부에 전념을 하고 있었지 … !!
그 결과 내가 갈망하던 대로 서울에 있는 명문 고등학교인『K』라는 고등학교에 시험을 보아서 당당히 합격을 했었어 … !!
그러니까 지난해 봄 …
그 당시 중학생이었던 내가 나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세 살씩 들을 더 먹은 선배들인 고등학교 2~3 학년 학생들
그것도 축구부 나 야구부의 운동선수들처럼 커다란 덩치들과 큰 싸움을 벌려서 공주 시내가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 이후 …
나는 엄마한테 아주 호된 꾸지람을 듣고 난 뒤 …
서울에 있는 명문『K』고등학교 에 입학하겠다고 약속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었던 대로 인 거야.
그 때부터 나는 나한테 잠재 되어있을지도 모르는 끈기와 근성을 공부 하는 데로 돌려서 몰두를 하고 있었지 … !!
그렇게 정신없이 공부에 파묻혀 지내던 지난해 11 월 말경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4 개 월 전이었지 … !!
평상시에 몸이 약하시던 아빠의 병환이 위독하시기 때문에 …
집안 어른들에 의해서 저 경상도의「마산」이라는 곳에 있다는 국립 요양원으로 치료 차 후송하시기로 결정이 나자 …
엄마는 공부에 몰두하고 있는 나를 공주에서 대전으로 부르셨 던 일이 있었어.
어쩌면 아빠가 다시 못 일어날지도 모르겠다고 판단하시고 …
우리 집안의 유일한 핏줄이고 다음세대를 이어갈 세자(世子)격인 …
나 … 「동훈」이와 현재의 주인이신 아빠와의 사이에 부자(父子)간의 정을 더욱 돈독히 쌓아보라는 엄마로써의 배려로 나를 부르셨던 것이었지 … !!
아무리 고교입시 준비로 바쁘더라도 한 열흘 동안의 시간을 내어서 이곳「대전」에 와서 아빠와 함께 지내다 가라는 엄마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었지만 …
나는 어려서부터 아빠와는 같이 살았던 기억이 별로 없었어 … !?
주로 엄마의 치마폭에만 휩싸여서 자라 왔었지 …
「만주」에서 유아시절을 보내던 때는 …
전혀 아빠와 함께 지내던 기억이 없었고 …
그 후 네다섯 살 먹을 무렵부터는 주로「신도안」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며 어린 시절을 보냈었기 때문에 …
더더욱 아빠와는 무관하게 살아 왔었던 거지 …
그리고 그 후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
아빠와 엄마가 사시는 대전에서 함께 살며 학교에 다니도록 되어 있었기도 했었어.
그래서 해방이후 6 : 25 사변이 일어날 때까지 한 5 년 가까이 이곳 대전의 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
공교롭게도 그 기간 동안 … 아빠는 주로 작은집(妻妾)에서 사셨거나 …
아니면「서울」과「부산」등지로 사업을 하시 네 어쩌네 하시면서 …
여행을 다니시느라 나와는 거의 몇 달에 한 번씩 밖에 만날 기회가 없었어 …
그리고 어쩌다가 나를 보시기만 하면 …
내가 너무나 사내답지 못하게 엄마의 치마폭에서만 맴돈다고 야단만 치시던 기억밖에는 별로 특별한 다른 사연이 있는 건 아닌 편이었어 …
아빠가 얼마나 많은 작은댁을 거느리고 있었는가를 별도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만 …
내가 알기로도 … 아빠는 아마도 아무런 원이 없으실 정도로 많은 여자들을 섭렵 하셨을 꺼 라고 수군대는 사람들의 말을 나는 그 동안 여러 번 들었던 적이 있었어.
그러니 그런 남편을 바라보고 살아야하는 엄마의 고충은 얼마나 심 하셨겠어 … !!??
하시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이 그저 인생의 멋을 아는 한량(閑良)이라는 소리나 들으시며 기생집이나 드나드시는 서방님의 비위를 맞추어 주시랴 …
사사건건 할아버님 눈밖에 나셔서 역정을 듣는 서방님을 감싸주시랴 …
엄마는 말 못할 고충이 많으셨던 거야.
또 배다른 시누이들을 낳으신 …
엄마와 나이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젊은 시어머님을 모시랴 … !?
게다가 할아버님 성품은 오죽이나 격렬하신 분이던가 … 말이야 … !?
엄마가 언제나 애간장을 태우시며 살아 오셨었다는 이야기는 내가 이미 여러 번 설명했었던 대로였었어 … !!
내 아빠는 너무나 여자를 밝히며 살아왔었기 때문에 …
불과 서른 살을 조금 넘은 젊은 나이로 요절을 하셨다고 모든 사람들이 수군대던 말을 나도 또한 들은 적이 여러 번 있었어.
그토록 아빠와 나는 같이 살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었고 …
또 만나더라도 여느 집의 다른 아빠들하고 처럼 부자간의 정다운 대화(對話)조차 하지 않던 사이였던 것이었지.
그래서「신도안」의 할아버지께서도 항상 그 점을 걱정 하셨던 거지 …
사실은 그때 벌써 할아버지와 엄마는 아빠가 살아나지 못할 불치의 병이라는 걸아시고 계시면서 이것저것 준비를 하시고 계셨던 모양이야.
또 그 병이 나라에서도 정한 전염병(傳染病)이었기 때문에 강제로라도 격리치료를 해야 했었던 형편이기도 했었나 봐.
그래서 국립요양원이라는 곳에 한번 가시게 되면 … !?
살아 나오기 어렵다는 걸아시고도 …
마지막으로 나를 불러다가 부자지간(父子之間)의 정을 쌓도록 배려를 해 주셨던 거야 …
그랬었는데 … !!??
엄마의 그런 배려를 알지 못하는 나는 그 열흘 동안에 ...
세상에서 다시 있을 수 없는 엉뚱한 악마(惡魔)같은 패륜(悖倫)을 저지르며 엄마를 괴롭혔던 거야 … !!
나는 그때 대전 집에서 지내던 열흘 동안 …
낮에는 엄마의 말씀대로 … 아빠의 병간호도 잘 해드리는 착한 아들이 되었다가도 …
밤만 되면 낮과는 또 완전히 다른 나로 변해서 엄마에게 달려드는 색마(色魔)로 변했었던 것이었지 … !!!
엄마도 … !!??
그때 한도 끝도 없는 젊은 에너지를 펼쳐 보이며 밤마다 달려드는 아들을...
달래기도 하고 위협도 해 보았지만 … !?
결국은 당신 자신의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
철없는 어린 아들 녀석과 함께 불륜(不倫)의 도가니 속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짐승 같은 짓을 하는 …
이중생활을 했었던 것이었지 … !!!
그것이 벌써 근 5 개월 전의 이야기였어 … !!!
다시 학교로 돌아온 나는 … !!??
엄마의 사랑을 재확인했다는 개운함과 장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됨으로써 그 이전의 나보다도 열 배는 더 열심히 공부하는 나로 변했었던 거지 … !!
어찌되었건 나는 그 후 엄마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
엄마가 열망하던 서울에 있는『K』라고 하는 고등학교에 합격을 해서 의기양양하게 서울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었어.
물론 서울에서는 하숙을 하게 되었었고 …
내 하숙을 정할 때도 큰 고모가 직접 서울에 오셔서 며칠씩 묵으면서 이것저것 준비를 해 주시기도 하고 …
시골의 부자 집 도련님이 누려야할 각종 호사나 사치는 다 부리고 있었던 것이지 …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의 입학식이 끝난 뒤 새로 맞춘 산뜻한 교복과 교모를 쓰고 …
엄마를 따라서 …
거의 이틀 동안이나 기차를 타고 아빠가 계신 경상남도 마산(馬山)이라는 곳까지 가서 아빠를 만났었던 적이 있었어 …
그것이 내가 아빠와의 마지막 만남이었었어.
그리고 4 월초순경 나는 고등학교 학생이 되어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지 불과 한 달 남짓 가량 되었을까 했을 때 … !!??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부음(訃音)을 받은 거야 …
아빠는 내가 문병 차 다녀 온지 얼마 안 되어서 도저히 회복불능이라는 판정을 받으시고 대전(大田) 집으로 다시 오셔서 보름 만에 돌아가셨다는 거지.
초상을 치르는 지난 며칠 동안 …
나는 내내 엄마의 모습만을 찾느라고 어떻게 손님들을 맞이했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 였었어.
하얀 고급 명주 천으로 만든 치마저고리의 소복(素服)을 깨끗하게 날아가실 듯이 차려입으시고 …
엄마도 나와 함께 상주노릇을 하셨는데 … !!
그러한 엄마의 자태는 평상시의 아름다움에 비하여 또 전혀 색다른 아름다움을 나타내주시고 있어서 …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너무너무 애처로움을 주는 미인 중의 미인이셨어 … !!
너무나 슬픔에 젖어서 비탄해 하시면서도 틈틈이 문상(問喪)오시는 일가친척들이나 손님들을 접대하시느라 …
엄마는 닷새 동안 한잠도 못 주무시다시피 지치실 대로 지쳐 있었던 거지 …
나중에는 너무나 지치신 나머지 금방이라도 쓰러지실 듯이 보였고 …
그런 엄마의 얼굴은 오히려 화장을 전혀 안 하셨는데도 …
하얗게 창백한 것이 그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어 … !!!
특히 눈덩이와 눈 아래쪽 볼때기 근처에 피곤하셔서 그런지 … !?
까만 기미 같은 것이 생겨서 그 빛깔까지 검게 변하시는 바람에 …
원래 커다란 눈이 더욱더 커져 보이고 …
그로 인해서 오뚝한 콧날이 더욱 뚜렷하게 윤곽을 잡고 있어서 … !?
평상시에도 아름다우셨던 얼굴이 너무나도 이국적(異國的)이며 선정적(煽情的)인 여인으로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던 거야 … !!
하얀 소복(素服)을 하늘하늘하게 입고 있어서 …
그렇지 않아도 늘씬한 몸매가 더욱 요염하도록 애잔해 보이기까지 해서 …
문상오시는 손님들마다 엄마의 미모에 새삼스럽게 감탄들을 하시는 소리들을 연발하고 있을 정도인 거야 … !!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더욱 우쭐해 하고 있었던 거지.
우리 집안의 모든 여인들은 누구라 말할 것 없이 훤칠하게 키가 크고 아름다운 미모를 소유하고 있지만 …
그 중에서도 엄마의 미모는 가장 으뜸가는 봉황(鳳凰)이셨어 … !!
이번 내 아버님에 대한 초상(初喪)을 치르는 기간 동안 나를 더욱 들뜨게 만든 것은 엄마의 나에 대한 관심과 배려(配慮)였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
요 며칠간처럼 엄마가 나한테 상냥하게 대해준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어 …
사실 지난번에 아빠의 병간호를 위하여 입시준비에 정신이 없던 나를 오라고 해서 대전(大田)에 왔었던 5 개월 여전에도 …
나는 엄마에게 얼마나 기 막히는 몹쓸 짓(?)을 했었었는데 … !
다시 공주(公州)에 돌아가서도 내내 나는 내가 저질렀던 몹쓸 행동 때문에 …
엄마가 나를 아주 못된 아이라고 생각하시고 앞으로도 영원히 나를 다시는 안 볼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밤잠도 못 자고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었는지 몰라 … !!??
나는 그 고민을 잊기 위해 오히려 더더욱 공부에 몰두하기도 했었지.
물론 내가 『K』고등학교에 합격했을 때에도 …
이 세상에서 제일 기뻐해 주셨던 사람도 엄마였었고 …
또 산뜻하게 새로 맞추어 입은 『K』고등학교의 교복과 교모를 …
병환 중에 있으신 내 아빠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
「마산(馬山)」까지 갔다 오는 동안도 나를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겨주셨던 분도 엄마였긴 했지만 … !!??
그래도 … 나는 서울에 가서 유학하고 있는 동안에도 내내 그 걱정뿐이었었어.
그랬었는데 뜻밖에도 이번에 초상을 치르는 동안 엄마는 나를 무척이나 상냥하고 다정하
게 대해 주시는 거야 … !!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 !?
곡(哭)을 하고 있을 때나 손님을 맞이하다가 피곤해서 잠깐씩 쉬는 동안에도 엄마는 내 몸을 걱정해주시고 옆에 오셔서 이것저것 보살펴주시곤 하셨어 …
물론 우리 집안의 모든 식구들은 나한테 잘 대해 주었지 만 …
이 못된 놈의 악마 같은 놈은 또 이런 엄마의 친절을 엉뚱하고 이상한 방향으로 생각을 돌리고 있는 거지 … !!??
엄마가 옆에 오셔서 가까이 몸을 맞대다시피 할 때마다 나는 엄마한테서 풍겨 나오는 『암컷』(?)의 냄새를 맡으려고 코를 벌름거리고 있었으니 … !!??
정말 더 이상 다른 말은 해서 어쩌겠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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