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부 다시학창(學窓)시절로… !! – 2
대장… !!
마침 전쟁 중이라… 핑계를 대기도 좋았어.
학교의 성적증명이나 졸업증명서 따위도 모두 불타버려서 없어졌다는 핑계를 대면되니까… 결국 할아버지께서는 내 고집에 꺾이셔서 내년 봄부터 중학교 2 학년 과정으로 입학이 아닌 복학(復學)의 형식으로 들어가도록 주선해 주셨어.
역시 내 할아버지의 능력은 대단하셨어.
그래서 앞으로 몇 달 남은 기간 동안 나는 독학(獨學)으로 국민학교 5 ~ 6 학년 과정과 중학교 1 학년 과정을 다 배워야 하기 때문에 정말 오래간만에 나는 또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에 전념을 하게 되었어.
그해 가을부터 나는 공주시내에다 아주 본거지를 차려놓고 본격적인 공부를 할 준비로 그 당시에는 드물게 보는 하숙(下宿)이라는 걸 하게 된 거야.
그리고 나는 공주고등학교 2 학년 학생 한 명을 정해놓고 개인지도를 받으며 우선 국민 학교 5 학년 과정부터 배우기 시작한 거야.
산수(算數)에 있어서는 구구단을 외우기도 하고 국어(國語)와 우리나라의 역사(歷史) 그리고 사회(社會)에 있어서는 중국(中國)과 일본(日本)은 물론 동남아시아(東南亞細亞) 일대와 유-럽 과 미국 등지에 대한 지리책(地理)까지도 외워가며 배우고 또 배웠던 거지.
그렇게 하는 동안 국민 학교 전 과정을 마치고 중학교과정까지 올라가서 영어의『알파-베트』문자를 익히기까지 불과 석 달도 걸리지 않았던 거야.
그리고 이듬해 봄 학기에 맞추어 나는 공주시내에 있는 종합중학교(綜合中學校) 제 2 학년에 편입하게 된 거야.
내가 종합중학교 에 편입학(編入學)을 하는 날에도 엄마는 대전(大田)양조장의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학교에까지 와주시질 않으셨어.
솔직히 나는 울고 싶도록 엄마가 원망스러웠어.
우리 집에서는 엄마대신 작은고모하고 할아버지께서 공주에 있는 학교까지 오셔서 이것저것 내 뒷정리들을 다 해주신 거야.
그런데 종합중학교(綜合中學校)라는 곳엘 가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하고는 전혀 달랐어.
모든 학생들이 피난(避難)와 있는 학생들이라 제대로 공부다운 공부를 했던 녀석은 거의 없고 전쟁 때문에 고아(孤兒)가 되어서 고아원에서 사는 학생…
또 거의 고등학교까지 다니다가 퇴학당한 학생…
심지어는 군에서 전쟁 중에 부상을 당하고 제대한 상이군인(傷痍軍人)들 까지 같은 교실에 몰아넣고 2 학년이나 3 학년들이 같이 공부를 하고 있는 거야.
또 대개는 전쟁 전에 자기가 다녔다는 학교별로 구분해서 자리도 마련해 주기 때문에 각 출신학교별로 서로 간에 주도권 싸움도 실로 대단했던 거야.
내가 편입한 중학교 2 학년과정의 같은 반 학생들 중에는 이미 장가를 가서 아이아버지가 된 녀석들도 대 여섯 명이나 되었어.
자연히 그들은 공부에는 취미가 없고 거리로 나가서 극장가(劇場街) 와 유흥가(遊興街)로 쏘다니며 싸움질이나 하고 옆 학교의 학생들을 때려 주고 좋은 옷이나 학용품 같은 것들을 빼앗아서 쓰는 불량학생들이 더 많았어.
일종의 조직 깡패들인 셈이지.
나라고 해서 별수가 있는 건 아니었어.
나도 그들과 어울리다 보니까 자연히 공부는 뒷전이고 그들을 따라서 극장 구경하는 데에만 재미를 붙이게 되고 또 이웃 여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과 만나고 어울리며 놀러 다니는 것이 취미가 되고 만 거야.
때로는 학생들 간에 패 싸움질하는 데에 끼다보니까 나도 모르게 남에게 주먹질하는 재미도 맛보게끔 되어버렸어…
또 나는 정구부(庭球部)라는 운동부에 가입을 하였어.
지금으로 말하면 테니-스 부 인 셈인데 어찌어찌 하다가 그 운동부에 들게 된 거야.
그때 당시에는 정구(庭球)라고 하면 왜 그런지는 몰라도 돈이 많이 드는 운동으로 알려져 있어서 집안형편이 좋은 학생들이 하는 운동으로 통했었기 때문에 외모나 복장이 깨끗하고 훤칠한 녀석들이 주로 많이 하는 일종의 귀족운동이라고들 했었어.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을 말했던 것처럼 마치 계집아이처럼 예쁘게 생긴데다가…
신도안(新都安)에 사시는 내 할아버지덕택으로 하숙비는 물론 용돈도 풍족하고 또 계절 따라 무슨 명목으로라도 작은 고모가 오셔서 좋은 옷과 신발은 물론 값비싼 정구채(라-켙)까지도 몇 개씩이나 사주시곤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종합중학교(綜合中學校) 삼 학년에 올라갔을 즈음에는 우리학교에서 제일 귀족적이고 멋있는 학생 중의 하나가 되어 있었어.
또 그 당시 공주시내(公州市內)에는 운동장사정이 별로 좋질 않아서 우리들이 정구연습을 하려면 언제나 다른 학교 정구 부 학생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되어 있었었어.
특히 공주여고(公州女高) 정구 부 학생들하고는 마침 코-치 선생님이 같은 분이시기 때문에 언제나 방과후(放課後)정구연습을 할 때면 같은 운동장에서 함께 하기가 일쑤였었어.
그래서 우리학교의 다른 운동부의 학생들이거나 기타 모든 학생들은 우리 정구부 학생들을 몹시 부러워하곤 하였었지.
그래서 우리들은 언제나 우리학교에서 주먹깨나 쓴다고 하는 어깨학생들이나 당수도(唐手道)나 유도(柔道) 또는 축구부(蹴球部)같은 거친 운동을 하는 녀석들의 표적이 되기도 해서 좋은 사냥 꺼리라는 생각이 들게끔 되어 있기도 했었어…
그러나 나는 그렇지가 않았어.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어렸을 적에 기묘한 인연으로 해서 내 어린 고추(?)가 거대(巨大)로 변하는 수술을 하고 치료를 하느라 천하에 없는 영약(靈藥)을 많이 먹었다는데다가 또 2 년 전에는 계룡산(鷄龍山) 줄기의 어느 암자(庵子)에서 빨치산 놈들에게 납치당했을 때에 그 유명한 팔로군(八路軍)의 유격술(遊擊術)을 몸에 익히고 있는 놈이 아닌가 … !
나는 그 동안에도 틈만 나거나 혼자 있을때는 아령(啞鈴)이라든가 역기(力器)등의 운동을 하면서 그 때 배운 유격술(遊擊術)을 계속해서 단련해 왔었기 때문에 지난 2 년 동안에 나도 모르게 무술의 실력이 상당한 경지(境地)까지 도달되어 있었던 모양이었어.
그 특유의 그 어려운 호흡법(呼吸法)을 연마하다보면…
나는 아주 무아(無我)의 경지(境地)에 이르러 언제나 최고의 희열을 맛보며 한 단계 한 단계 더 높은 기술을 습득하게 되어 가고 있는 걸 … !
게다가 나는 그 어린 나이에 엄마를 구하기 위해서 어이없게도 사람을 죽여 보았던 경험까지 있어서 싸움에 있어서는 이미 달인(達人)의 경지까지 도달한 놈이 되어 있는 거지.
그냥 단순한 운동장이나 도장(道場)에서 단련하는 당수도(唐手道)나 유도(柔道) 태권도(跆拳道) 선수들 따위와는 그 근본 자체가 다른 실전(實戰)에서 단련된 진짜 싸움꾼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던 거지.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나는 아주 얌전하게 생긴 …
아니 계집아이처럼 예쁘장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공주시내(公州市內)에 있는 여학생들한테서 많은 러브-레터를 받는 행복한 학생이기도 했었어.
특히 정구부(庭球部)학생들 간에는 그 인기가 더욱 많았었거든 … !
그 당시 나를 가장 좋아하며 따라다녔던 녀석들 중에「한재호(韓在鎬)」라고 하는 동급생 한 놈이 있었어 … !?
그 녀석은 키가 나보다 훨씬 컸었고 나이도 두 살이나 많은데다가 우리가 다니는 종합중학교의 유도(柔道)부 주장선수로써 비록 중학교 학생이라고는 해도 유도계(柔道界)에서는 고등학생부나 대학부는 물론 일반부(一般部)의 유도선수들도 못 당할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는 녀석이었어.
그런 녀석이 어디가 좋은지는 몰라도 나를 너무나 좋아해서 틈만 나면 나한테 와서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내가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따라다니기도 했었지.
그 녀석과는 너무나 친하게 지냈었기 때문에 잊지 못할만한 추억담(追憶談)들이 많이 있었고 또 훗날 내가 성인(成人)이 되었을 때에 내게 많은 영향을 주기도 한 녀석이었어.
어쨌든 그놈과 내 덕택으로 정구(庭球) 부의 학생들은 학교생활을 할 때에나 운동장에 가서 운동을 할 때에도 다른 어떤 운동부의 학생들이거나 불량학생들로부터도 핍박을 받지 않고 활기를 펴고 다닐 수 있게 된 것이지.
차츰차츰 운동과 싸움질에 길이 들여지고 재미를 붙여가게 되자…
내가 종합중학교 3 학년이 될 무렵부터는 그 학교에서 나를 당할만한 놈은 없게끔 까지 되어버리고 말았어… !!
오히려 고등학교의 이름난 건달들까지도 내 휘하 (揮下)로 들어와서 다른 싸움패들과 대항을 하자고 제안할 정도로 나는 뛰어난 싸움꾼이 되었던 거야.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나보다 덩치가 크거나 나이가 많고 이름난 싸움꾼들과 싸움하는 것을 좋아하였고…
그것도 단둘이 일대일로 하는 대련(對鍊)같은 싸움이 아니라 나 혼자서 상대방은 최소한 세 명 이상과 맞붙는 싸움을 좋아했었어.
그럴 때가되면 나는 나도 모르게 그때 그 암자(庵子)의 조그만 방에서 『낫』을 휘두르며 살인(殺人)하던 장면이 머리에 떠오르며 본능적이고 무의식(無意識)중에 사람이 달라지고 어떤 알지 못하는 쾌감이 나를 지배하게 되는 거야.
- 척… !! – 하고 사람의 목 뒷 덜미에『낫』의 예리한 칼날이 꼽히며 피가 사방으로 튀던 때의 그 짜릿하던 감각이…
일종의 쌓인 스트레스 해소의 청량제인양 내 뇌리(腦裏)에 떠오르면…
내 몸은 어느새 하늘로 붕 하고 떠오르듯 상대방을 올려 차고 있는 거야.
그 느낌 그대로 떠오른 내 한방의 발길질에 아무리 덩치가 큰놈이라도 그 자리에서 나가떨어지지 않는 놈이 없었지.
간혹 단 한방에 안 떨어지는 놈도 두 번째의 허공을 가르는 나의 발길질인『옆차기』『다리차기』『메어 차기』『날라 차기』 등등…
어느 한가지의 일격이면 제아무리 강하다고 하던 놈도 그 자리에 넘어져서 한동안 일어나질 못하는 거지.
그날 살인하던 장면만 내 뇌리에 스치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양 펄펄 나르며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변하는 것이 참으로 이상했어.
다른 어느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의 이런 비밀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
혹시 대전의 내 엄마라면 모를까 … !??
한번은 공주고등학교 학생들과 공주여고 학생들을 놓고 시비를 벌였던 일이 있었어.
그날 나는 정구시합을 끝내고「재호」란 놈과 함께 금강(錦江)이라는 그 고장에서 제일 큰 강가에 있는 유원지(遊園地)를 어슬렁거리고 있었어.
그때 우리는 공주고등학교 남학생 두 명이 공주여고 여학생 두 명과 함께 데이트하고 있는 장면과 맞닥뜨린 거야.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여학생 중 한 명은 나도 잘 알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우리가 같이 운동하는 공주여고 정구 부 주장 역을 맡고 있는 여학생이었어.
특히 그 여학생은 평상시에 그 당시 학생들 간에 유행하는『S』동생이라는 인연을 나하고 맺어보자고 그녀 친구들하고 사이에서 한참 말이 나오고 있던 「권순영(權順影)」이라고 부르는 여학생이었어.
그리고 속으로는「재호」란 놈도 은근히 좋아하는 여학생이기도 했었던 거지.
하필이면 이런 장소에서 이렇게 만날 줄이야 서로가 꿈에도 몰랐었어.
「재호」란 놈이 그 공주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시비를 걸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手順)이었고...
또 그 학생들도 자기들은 고등학교 학생들이라는 자존심이 있는데 감히 중학생주제에 시비를 건다고 하다 보니까 싸움이 벌어진 것도 당연했던 거지.
불행하게도 그 고등학교 학생들은 우리들을 잘못보고 덤볐던 거야.
말할 것도 없이 그 고등학교 학생들이 창피를 당하고 쫓겨 간 것까지는 좋았었는데 … !?
물론「순영」이 누나와 그 친구는 그 자리에 남아서 우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던 중이었었지 …
사실 나는 그 당시 여학생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편이었어.
내 또래의 여학생들이란 정말 젖비린내 나는 아주 어린 계집아이들 쯤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걸 어떻게 해 … ?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내 엄마에 비교해보다 보면…
그 당시의 여학생들은 물론 다른 어떤 여인들조차도 내 눈에는 한낱 여자일 뿐이지 내 마음을 성적(性的)으로 두근거리게 하는 이성(異性)적인 여자로써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
지금「재호」가 좋아하고 또 나에게 『S』동생을 맺자고 제의 해왔다는 그 문제의「권순영(權順影)」이라는 여학생은 사실은 우리들 보다 두 학년이나 높은 공주여고 2 학년 학생이라 꽤는 성숙한 여인 티가 나는 여학생인 편이었어.
또 그 여학생은 그 당시 정구 코-트에서 운동하는 남학생들은 물론 대학부나 일반부에 속하는 어른선수들까지도 탐을 낼 정도로 아주 세련되고 성숙한 글-래머 타입의 미인이기도 했었지만... 나는 전혀 그 여학생한테 무관심했던 거지.
내 눈에는 그 여학생도 아주 어리고 젖비린내 나는 계집아이쯤으로밖에 안 보이는걸… !
그러나 어쨌든지 그녀가 나보다 두 학년이나 상급생이기 때문에 나는 누나라고 부르며 가끔 그녀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몰려다니며 데이트라고 하는 것을 즐기기는 했었지…
물론 그 공주고등학교 남학생들과 본의 아니게 우연히 데이트를 하던「순영(順影)」이 누나는 나를 보자 무척이나 당황해 하고 있었겠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어.
우리가 그 공주고등학교학생들을 간단히 물리치고 의기양양(意氣揚揚)하게 걸어오면서도 나는 또 한편 시무룩하게 풀이 죽어있는「순영이」누나를 위로하는 걸 잊지 않았었지.
물론「재호」란 놈도 옆에서「순영이」누나에게 어리 선을 치기도 하고 되지도 않는 우스갯소리를 겸하여 지껄이며 따라오고 있었어.
한참 유원지입구쯤까지 우리가 나왔을 때 먼 앞 길 쪽에서 십 오륙 명에 가까운 공주고등학교의 야구부학생들과 축구부 학생들이 종합해서 몰려오고 있는 패들과 마주치게 된 거야.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었으나 그들이 조금 전에 우리들한테 창피를 당하고 쫓겨 갔었던 그 고등학생들이 데리고 온 응원부대라는 걸 알게 되자 잠시 우리들은 긴장을 했었지.
그러나「재호」란 놈이 또 누구인가 …
그리고 나 또한 그들이 전혀 두렵지가 않았었어.
가뜩이나 몸이 근질근질 하고 찌뿌듯하던 참에 무언가 청량제가 될 것만 같았어.
맨 앞에서 우쭐대며 걸어오는 놈은 아까 우리들한테 쫓겨 간 바로 그놈들이었어.
〈 못난 놈 … ! 제 놈이 우리들한테 쫓겨 갔으면 그만인 법이지 … ? 〉
나는 문득 또 예의 그 살인하던 장면과 – 척… !! – 하고 사람의 뒷덜미에『낫』끝이 꼽히던 때의 느낌이 내 손끝에 느껴지는 거야… !!??
놈들 중 맨 앞의 무리들 대 여섯 명이 거의 2 ~ 3 메-타 앞까지 다가왔을 때 내가 어떻게 날랐는지 기억도 없었어.
실로 눈 깜짝할 순간이었어.
놈들도 미처 아무 것도 보지 못한 거지.
… 휘 – ㄱ … ! 휙 … ! 따 – 따 따 – 딱 … !
어이쿠 … ! 아 – 악 … ! 에 – 쿠 … ! 엄 – 메 … ! 히 – 익 … ?
세찬 바람소리와 무엇엔 가 정통으로 얻어맞는 소리에 이어서 너 댓 사람들의 비명 소리 만 들릴 뿐 벌써 일회전(一回戰)의 대련(對鍊)은 끝난 것이었어.
앞줄에서 우쭐대며 당당하게 걸어오던 다섯 명의 덩치 커다란 야구부학생들은 그들이 입은 유니-폼도 무색하게 모래바닥에 널브러져서 뻗어버리고 만 거야.
그 길로 뒤미쳐서 후미(後尾)에 몰려오던 여러 명의 무리들 한가운데로 내가 신고있던 『징』이 박힌 구둣발이 또 날아간 거야.
그제서 야 「재호」란 놈의 업어치기 기술이 발휘되며 서너 명의 덩치들이 또 나가떨어지는 것도 당연한 순서로 전개되고 있었든 거지.
놈들은 어느 누구도 나나「재호」의 몸놀림을 본 놈들이 없었어.
또다시 칠 팔 명의 축구 부(蹴球 部) 학생들이 모래바닥에 넘어진 채 일어나질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 다니고 있는 거야.
다행이 몇 차례나 날아다니는 내 발길질과「재호」란 놈의 업어치기에 걸리지 않았던 십 여명의 야구부(野球部)학생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도망을 친 거고 … !!??
시간도 불과 30 분도 채 걸리지 않았어.
그 당시에는 학생들이 신고 다니는 구두밑창에다 커다란 쇠 발굽 같은『징』이라는 것을 박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었었어.
원래는 구두가 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쇠(鐵)로 된 『징』이라는 것을 구두밑창에다 덧댐으로써 구두의 수명을 연장시키려고 했었는데…
그 당시학생들은 그 구두밑창의 쇠 부치를 싸움질 할 때도 써먹고 평상시 그『징』이 길을 걸을 때 유난히 크게 들리는 저벅거리는 소리로…
상대방을 위압시키는데도 써먹었던 거지… !!
주로 나같이 건달노릇을 하려고 하는 학생들에게는 더없이 멋이 있어 보였어…
「재호」란 놈도 대단한 전과(戰果)를 올리고 있었어.
정말 놀라운 사건이 발생했던 거야.
중학교 학생 두 명이 고등학교 2~3 학년생들로 구성된 야구부(野球部) 와 축구부(蹴球部)선수들 이십 여명들을 불과 몇 차례의 격돌 끝에 완패시켰다는 것은 공주시(公州市)가 생긴 이래 처음 보는 사건이었던 거지… !!
그런데 그날 나한테 구둣발로 얼굴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중상을 입은 녀석들 중에서 한 녀석이 그 당시 공주경찰서(公州警察署) 서장의 아들이 끼어 있었는가봐… ??
턱뼈가 어떻게 부서졌는지 그 길로 병원으로 실려 갔었던 모양인가 봐.
그 뒷일의 이야기는 더 말할 것도 없었어.
나는 그 다음날로 경찰서에 불려가서 치도곤을 맞아야 했었어.
하기는 나를 취조하던 경찰서의 수사관아저씨도 이렇게 도련님이거나 아가씨 같이 생긴 학생이 자기 몸의 두 배나 되게 몸집이 큰 고등학생들 …
그것도 축구나 야구부등 운동부의 학생들이라면 알아주는 싸움꾼들인데 거의 이십 여명을 단 두 명이서 해 치웠다니 … ?
믿을 수가 없었나봐 … 거짓말 같은 사실이었던 거지.
〈다소 과장이 심했나 … !!?? 어쨌거나 내 평생에 남들하고 싸움이라고 해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고 마지막이었어 … 그 후로 나는 이상하게 성격이 여성스러워지며(페미니스트) 모든일에 있어서 소극적인 성격으로 뒤 바뀌게 되었어… !!〉
즉각 신도안(新都安)에서 내 할아버지가 오시고 또 대전(大田)에서 작은 고모가 뛰어오고 우리 집안에서도 한동안 난리가 났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었지.
역시 내 할아버지의 수완과 영향력은 알아줄 만 했어…
나는 단 일 주일 만에 학교로 돌아왔어.
그리고 얻은 별명이 나르는『 제비(飛燕)』이었어.
제비처럼 잽싸게 날아다니며 해치우고 또 제비처럼 날씬하고 예쁘게 생겼다는 뜻의 별명인 거지.
완전히 공주(公州)시내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영웅이 되었던 거야.
학생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공주시내에서 한다하는 건달들이거나 깡패들 사이에서도 날라 다니는『제비』라고 하면 완전히 큰 형님대우를 받는 존재가 된 것이지.
또 그 이후 내가 자주 나가는 정구장에서는 더더욱 유명한 존재가 되었어.
그 날 싸움의 발단이 되었던「순영」이 누나의 호들갑스러운 설명뿐만 아니라…
나를 조사하러 운동장에까지 나왔던 경찰서의 수사관에 의해 나의 영웅적인 행동이 더욱 자세하게 설명이 되었던 거야.
앞에서도 몇 번을 말했지만 나는 언제나 공주(公州)시내의 중학교(中學校)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멋쟁이고 옷을 잘 입는 축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번 사건(事件)으로 인해서 더더욱 인기 있는 놈이 된 거야.
워낙 계집애처럼 예쁘게 생긴데다가 할아버지께서 풍족하게 보내주시는 생활비와 때에 맞추어서 보내주시는 엄마의 사랑이 담뿍 담긴 세련 된 새 옷들 …
그리고 또 때와 계절을 잘 맞추어서 시의(時宜) 적 절(適切)하게 작은 고모가 오셔서 구색을 맞춘 고급 『횃-숀』의 옷을 사주시니까 나는 그야말로 공주시내에 있는 전 여학생들간에 스-타가 되어있는 거지.
나보다 선배(先輩)뻘 되는 공주여고(公州女高)의 소문난 미인 클-럽 여학생들은 직접 자기들과 소위『S』누나-동생이라는 관계를 맺자고 노골적으로 유혹 해오기도 했었지만…
그런 여학생들 전부가 내 눈에는 아주 어린 계집애들로밖에 안 보이는 걸 어떡해 …?
말하자면 젖비린내 나는 계집아이들이라 그녀들에게서는 전혀『쎅스-아필』하는 느낌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야.
그 때나 지금이나 내 머리 속에는 오직 여신(女神)같으신 내 엄마「조규정」여사님의 생각 밖에는 차지하지 않고 있는 거야…
주위에 있는 많은 여학생들은 사실 내가 2 년여 전부터 세상의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여자 킬-러』였으며 나한테 한번 걸리면 어느 여인도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정력(精力)이 절륜(絶倫)하다는 걸 아무도 모르고 있는 거지…
그런 엄청난 싸움사건이 일단 수습(收拾)된 뒤에도 나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공부보다는 싸움질이나 하고 공주(公州)시내(市內) 번화가나 극장주변을 서성거리며 부하 같은 친구들과 노는 데에 더욱 흥미를 느낄 뿐이었어.
그렇게 하고 있는 동안에도「한재호(韓在鎬)」란 놈은 끊임없이 내 주변을 맴돌면서 제 딴에는「권순영(權淳影)」이라는 여학생과 은밀히 사귀고 싶어서 애를 쓰는 모양이었어.
하지만 그 것이 마음대로 잘 안 되는지 항상 시무룩한 표정인 것이지.
그러나 오히려 그 여학생은 사실 나한테 더욱 마음이 있어서 몇 번씩이나 『푸로포-즈』를 하고 있는 참이기 때문에「재호(在鎬)」란 놈에게 기울어지지를 않는 모양인 거야.
내가 그런 생활에 푹 빠져서 헤어나질 못 하고 있는 동안에…
엄마는 줄곧 대전(大田)에서 계셨어… !!
처음에는 몸이 편찮으셔서 그나마 대전 시내에 있는 도립병원(道立病院)에 입원까지 하시며 치료를 받을 정도로 고통이 심하셨었지만… !!??
그러나 대전(大田)에 있는 아빠나 다른 식구들의 정성어린 간호와 보살핌 등으로 간신히 몸을 추스르게끔 되시기도 한 것이었고… !!
그리고 그토록 엄청나게 받았던 정신적인 충격과 스트레스도 세월이라고 하는 약효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가라앉게 되시고 건강도 회복하시게 되셨나봐.
육체적 정신적인 건강이 회복되시며 엄마는 옛날의 그 온화하고 이지적(理智的)인 지성미(知性美)를 갖추신 양반 댁 별당마님의 품위도 되찾으시게 되셨던 거지.
그러면서 엄마는「대전(大田)」에서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양조장(釀造場)의 안주인으로써 하나하나 실무에 젖어 들어가기 시작하셨던 모양이야.
처음에는 양조장(釀造場)이라고 하는 사업은 남정네들만 해야 하는 줄 아시고 전혀 관심조차 갖지 않으셨었지만 아빠가 출타중이시거나 병환으로 잠시 잠깐 동안 자리를 비우실 때마다 양조장(釀造場)에 대한 일을 아빠가 시키시는 대로 심부름 겸 간섭(干涉)을 하시게 된지도 벌써 오래 전부터의 일이셨대.
그것이 벌써「만주(滿洲)」에서 귀국 하셨을 때부터의 일이니까… 어느새 칠팔년이나 되셨다는 거래 …
워낙 영리하시고 학식이 많으신 분이고 활달하신 성품이시라 비록 여자의 몸이긴 하지만 아주 획기적인 의견을 내놓으시기도 하고 양조장(釀造場)에서 일하는 일꾼들이거나 직원들의 서툰 점이나 잘못된 점을 본인이 언짢아하지 않도록 우회적으로 지적을 해주시며 양조장의 운영을 개선시켜 나가는 동안 엄마는 차츰차츰 깊게 간여하시게끔 되신 거지…
사실은 이 무렵부터 내 아버님께서는 별로 달갑지 않는 병환을 앓고 계셨다는 거래 … !!!
「신도안」에 계시는 내 할아버님과 내 엄마만 아시는 병 … ??
그 당시 제일 무섭다는 병인 결핵(結核)이라는 병을 앓고 계신 거지… !!
이 병은 전염성이 아주 강해서 왜정시대(倭政時代) 때 에도 국가적인 법정(法定) 전염병(傳染病)으로 정해 놓고 있었다는 거야 …
그래서 이 병에 한번 걸리면 반드시 나라에 신고를 해야 하고 …
또 국가에서 경영하는 요양소(療養所)로 강제 입원시켜야 한다는 거야…
나도 그 후 한참이 지나서야 안 사실이었지만 …
나와 엄마가 저 지옥 같은 암자에서 갇힌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지난 6 개월 여 동안 아버지께서는 또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당신의 아내와 소중한 아들을 잃었다는 낙담 속에서 아주 무절제한 생활을 하시고 있었대...
거의 매일같이 술독 속에 빠져서 지내셨고 한두 명 남아있는『작은부인』인 첩(妾)들만 가지고도 모자라 다는 듯이 기생집만 들락거리시며 타락한 생활을 하시다 보니까 젊었을 때부터 한두 번 앓으셨던 그 몹쓸 병이 다시 도지게 되셨다는 거래...
처음에는 엄마도 아버지께서 그런 병에 걸리신 줄 모르시고 엄마자신의 몸조리만 해오시다가 차츰 내 아버지의 그런 생활습관과 그로 인해서 몹쓸 병환에 걸리셨다는 걸 아시게 된 후…
엄마는 마음을 모질게 먹고 아버님의 병환을 고치기에 팔을 벗고 나섰다는 거래.
그때부터 엄마는 또 양조장(釀造場)경영에도 본격적으로 참여하시게 된 거래… !!
엄마는 지나간 날의 잘못을 속죄(贖罪)한다는 마음속의 짐도 있고 해서 …
거의 자기 자신을 던져 놓다 시피하며 우리 집안의 사업과 아버님의 병간호에 혼신(渾身)의 힘을 다 쏟아가며 노력을 하셨다는 거야…
그렇게 되자 아버님 곁에서 아첨이나 하며 돈푼이나 뜯어 쓰던 못된 아버님의 친구들이나 뚜쟁이 짓을 하던 여인들은 차차 아버님 곁을 떠나게 되었고 …
자연히 아버님의 생활도 제자리로 돌아오시게 된 거래.
그러시면서 아버님께서는 양조장 일이나 집안 일 따위에서는 손을 떼시고 별채로 옮기셔서 몸조리에만 전념하시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 대신 엄마가 집안일이나 사업에 대한 모든 대소사(大小事)를 관장(管掌)하시게끔 되셨던 거래.
그런 일을 하시느라 정신없이 바쁘신 중에도 엄마는 당신의 목숨보다도 더 귀중한 『나』라는 아들을 위해서 철철이 옷도 사서 보내주시고 또 나한테 도움이 되는 귀중한 책들도 마련해서 보내주시곤 했었던 거지.
오로지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만이 엄마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듯이 성황님이나 부처님께 빌고 또 빌며 애를 태우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신 거지.
그런 엄마의 귀에 내가 공주(公州)에서 학교공부는 뒷전이고 노는 짓이라든가 싸움질이나 하고 다닌다는 빗나간 생활내용이 들어가게 된 거야.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시누이(내 작은 고모)의 얘기만 듣고 별로 걱정을 안 했었지만 한번은 엄마가 직접 공주(公州)까지 오셔서 내 성적표(成績表)라든가 주위사람들의 말을 들으시고는 아주 낙담을 하시며 나를 크게 꾸중하신 거야.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토록 엄한 꾸중을 들었던 거야.
처음 나는 거의 삼 년 가까운 세월 만에 엄마가 오신다고 해서 얼마나 가슴을 조이며 기다렸는지 몰랐어.
그러나 내가 기대 했던 엄마는 어디로 가시고 아주 엄하고 엄하신 엄마가 내 하숙방에 오시는 바람에 나는 밤새도록 잠도 못 자고 무릎을 꿇은 채 엄한 꾸중을 들어야 했었어.
지금 공부를 하지 않으면 장래에 어찌어찌 잘못되는 경우를 예를 들어가며 밤이 새도록 호통과 호소를 섞어가며 꾸중을 하시고 계셨었어.
내가 하숙하는 안집 사람들이 밤에 자다가 몇 번씩이나 놀라서 나올 정도로 엄마의 목소리는 카랑카랑 하고 크기까지 했었어.
나중에는 …
- 내가 우리「군-짱」을 어떻게 다시 이 세상에 살려냈는데… !!?? –
라는 말씀까지 하시며 하소연을 하시는 데는 나도 두 손을 들고 말았어…
그날 밤 밤새도록 꾸중을 들으며 나는 결국 엄마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해야만 했었어.
불과 여섯 달 도 남지 않은 중학교 3 학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서울에 있는『K고등학교』에 입학하겠다는 약속을 하고만 거야.
『K고등학교』라고 하면 전국적으로 가장 훌륭한 명문 고등학교이고 …
그 선배들이 거의 모두가 훌륭하게 성공한 사람들뿐이기 때문에 전국에 있는 모든 중학교학생들은 대부분이 이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좀처럼 그 학교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명문 고등학교 중의 명문 고등학교인 거야…
이곳 공주(公州)시에서는 아직까지 단 한 명도 들어간 사람이 없다는 학교인 거야.
그 당시 나의 성적으로 보아 그『K고등학교』는커녕 이곳에서 그래도 명문고등학교에 속한다는 공주에 있는 고등학교나 대전에 있는 고등학교에 조차 진학할 수 있을지 어떨지 알 수 없는 정도의 학생이었던 거지.
내가 다니는 중학교의 어느 선생님도 감히 내가 그 고등학교에 지망하리라고는 아무도 몰랐었고 또 절대로 안 된다고 극구 말리시는 분들도 계셨었어.
어쨌거나 나는 한번 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어떤 짓을 하던지 해 내고야 마는 근성(根性)이 언제부터인가 생겨서 부잣집아들 답지 않은 면이 또 한편 있기는 있었던 거야.
또 한편 사실 행운(幸運)인지는 몰라도 나는 엄마를 닮아서 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은 편이었나 봐… !!??
그래서 나는 한번 결심을 한 이상 또 새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어.
또 누가 보아도 놀랄 정도로 무섭게 파고들고 있는 거야.
벌써 삼 년이나 지난 일이었지만 … !?
그 때 그 암자(庵子)에서 살인(殺人)하던 때의 짜릿한 느낌을 새삼스럽게 내 손바닥에 느끼면서 나는『콘사이스』를 펴들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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