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황금의 손을 지닌 남자. (1) 내용추가 +
하나님과 황금의 신은 동시에 섬길수 없는 법이다. (예수)
"응?"
오랜만에 찾아온 작은 '고택 (古宅)'...
의형이자 스승이기도 한 진경룡에게서 받은 열쇠를 사용하기 위해 꺼냈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으스스 떨리는 반가움이 와락 밀어닥쳤다.
왈칵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형님!"
나이는 비록 차이가 많이 났지만 인간으로서 가장 소년에게 의지가 되는 존재...
그러나, 고대하던 진경룡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누가 오셨습니까?..."
흠칫 히노기의 몸이 움츠러든다.
기척도 없이 나타난 사내...
조금 나즈막한듯 했지만 예의바른 목소리의 남자였다.
"......"
작은 체구에 차돌처럼 단단해 보이는 남자...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품이 넓은 조끼에 등산복
차림이었다.
얼굴에는 예의바른 표정과 잔잔한 미소를 띈 채로 손에 작은 술병 하나와 무언가 얼큰하게
끓고있는 알루미늄 제의 냄비가 들려 있었다.
"이런! 손님이셨군요...아! 이 느낌은...호오...! 상당히 짙은 음기...나이어린 소년인듯 한데...
그렇군요...당신이 히노기군 인가요? 진경룡 '의제'에게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처음 뵙습니다...난 윤성훈 이라고 합니다..."
한쪽에 놓인 평상 위에 손에 든 술병과 냄비를 내려놓은 그가 반가운 미소와 함께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이상한 느낌의 사내였다.
마치 자신의 모든것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네...네에...안녕하세요?"
조금 어색한 느낌이다.
그 남자는 약간은 힘없이 내민 소년의 손을 굳게 쥐고 슬쩍 흔든다.
뜨거운 체온이 느껴졌다.
다소 투박한 진경룡의 손과는 달리 이 남자의 손은 왠지 두터우면서도 살아있는듯한 감각을
느끼게 했다.
남자가 귄하는대로 자리에 앉자 이것저것 차려내서는 히노기에게도 권한다.
붉은빛이 짙게 감도는 수상쩍은 찌개요리에 고추가루 범벅이랄수 있는 야채무침, 오징어무침
같은것이다.
알맞은 크기로 썬 양파와 풋고추 등을 고추가 섞인 소스에 곁들였고, 작은 잔에 따라준 술을
엉겹결에 받아 마셔보자 캑 하고 불쾌할 정도로 톡 쏘는 느낌이었다.
한참 캑캑 거리는데 남자가 하하 밝게 웃었다.
"이런이런...입에 맞지 않은 모양이로군요...미안합니다...이거 '두루미의 초대' 가 되어버린
겁니까? 하하하..."
등을 탁탁 두드리며 남자가 말했다.
결국 남자는 재차 배낭을 뒤적거리더니 말린 과일과 견과를 꺼내 히노기 앞에 놓는다.
"자아...마실것은 이걸로 하면 되겠군요..."
작은 공기 정도 되는 그릇에 따라 놓은 갈색의 액체...화악 한약 냄새 같은것이 풍겼다.
머뭇거리자 그 남자가 웃음을 지으며 마셔보라는듯 손짓한다.
"그건 괜찮을 겁니다...한번 드셔보세요..."
조심스레 한모금 마셔보자 달작지근한게 의외로 먹을만 하다.
"곶감을 달인 것에 계피를 첨가한 음료입니다. 괜찮지요?"
"......"
남자의 말에 히노기는 왠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윤성훈...한국인으로 나이는 40근처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진경룡보다도 상당히 어려 보이는 얼굴이다.
겉으로 보기에 아직 20대 중후반 이랄까...듣기에 한국인들은 보통 과격하다는 것과는 달리
이 남자는 아무리봐도 신중한 타입 같아 보였다.
격의 없다는 점에선 진경룡과 비슷한 것 같았지만...
"실망한것 같군요...하하! 의제는 지금 중국 본토로 건너가 있습니다. 아마 상해에 있을
겁니다. 그 사람...세계가 좁다고 뛰어 다니는 사람이라...나도 그렇게 잘 보지는 못
합니다만...전화나 메일로 히노기군에 대해 상당히 칭찬하더군요...하하하..."
남자가 따라준 음료를 마시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맞장구를 쳤다.
"저어...형님께서는 언제나..."
작은 잔에 손수 술을 따라 카아! 과장된 표정으로 음미하던 남자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주섬주섬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받아보니 익숙한 필체로 된 편지 한통과 꼼꼼하게 정리가 된 권법 요결, 도식 등이다.
"이걸 전해달라더군요...하지만, 아무래도 내 생각에는 필요가 없는 물건인데...히노기군은
현재 생각 이상의 실력을 지닌것 같군요...권법에 입문한지 얼마 안된 것으로 아는데...
말입니다..."
숟가락으로 찌개의 국물을 후룩 떠 먹으며 그가 한 말이었다.
"......"
간단한 안부 편지와 히노기의 권법 수련을 위해 보낸 진음의 기운을 배양할 수 있는 연공
요결이었다.
살짝 눈 가가 젖어드는 기분이 든다.
"고맙습니다...소식을 전해 주셔서..."
인사를 하자 그 남자가 손을 휘휘 내 젖는다.
"아아! 그럴것 까지야...의제의 동생이면 나에게도 군은 동생이 됩니다. 절대 부담가질
필요는 없어요...그보다..."
남자가 싱긋 웃으며 손짓한다.
"어때요? 잠시 솜씨도 볼겸...하하! 나도 그 친구가 자랑스러워 하던 히노기군의 솜씨를
경험하고 싶은데..."
"......"
"자...오세요...어디 어떤가 볼까요?"
"......"
능글능글 할 정도로 여유있는 표정이다.
순간 울컥하는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적어도 진경룡은 '연권' 할때 만큼은 항상 진지했었다.
"그럼 가겠습니다!"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히며 손을 겨눴다.
후욱 숨을 고르며 전신의 기운을 모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 시위가 어느 순간 놓여지듯 소년의 몸이 전광처럼 쏘아져 나갔다.
"...대단하군요...정말..."
"......"
히노기의 권법은 우아한 원과 날카로운 선을 동시에 그렸다.
그러나, 그 한국인 남자에게 손끝하나 댈 수 조차 없었다.
양손을 뒷짐까지 진 채로 여유있게 움직이는 그 남자의 독특한 발놀림...툭툭 발을 뻗어
공격을 막아내거나 권법의 중간중간의 흐름을 이상하게 끊어놓기 일쑤였다.
"흐읍!"
결국 이 상태로는 안된다는 생각에 공격법을 변형 시켰다.
화동권법 위주에서 비영권법위주로...
비영권법은 벌과 나비...크고 작은 곤충들의 움직임을 따 만들어진 것이다.
곤충은 활동적이며 그 움직임 또한 치밀하다.
거기에 지금껏 연공한 진음의 기운이 더해지자 가공할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남자의 얼굴빛이 변했다.
"이런! 설마!"
"하아압!"
- 비영권법 (飛影拳法)...분신삼전수 (分身三電手)...
가공할 빠르기와 적의 치명적 급소만을 노리는 살수였다.
인중과 목 그리고, 눈...거기다가 힘을 너무 준 것일까...
앗차 하는 순간에 남자의 세 급소에 날아든 손...히노기는 어떻게든 손속을 늦춰야 한다고
생각 했었다.
그러나, 그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화동권과 비영권은 그 쓰임과 효과가 전혀 틀리다.
화동권은 입문공부 라는 것도 있었지만 꽃이 피고 지는 과정과 열매맺고 씨가 떨어져
싹이 터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권법이라 동작이 완만하고 우아했다.
그러나, 비영권은 곳곳에 살초가 숨어있는 실전무술이다.
더구나 음류의 무술답게 음험하고 치밀하며 독랄하기까지 하다.
파악 남자의 선글라스가 튕겨져 날아갔다.
하지만 그 순간 히노기 역시 둔중한 충격을 받으며 몸이 공중에 부웅 뜬것 같은 느낌을
갖게 했다.
곧 안온한 어둠이 장막처럼 내려와 시야를 가렸다.
"......"
무엇이 어떻게된 것일까...축축하면서 서늘한 느낌과 함께 점차 아스라히 의식이 꺼져 갔다.
"으응..."
온몸이 욱신거리고 쑤셨다.
희미한 시야...누군가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히노기상! 히노기상! 정신이...드는 건가요?"
"...누님..."
눈주위가 축축히 젖어든 아름다운 얼굴...
끄응 하고 일어나려는데 온 몸이 욱신거릴 정도로 아팟다.
"아! 아직 누워있도록 하세요...조금 더 쉬어야 합니다."
"......"
한국인 남자...그가 한약냄새가 나는 탕기를 들고 와 내밀었다.
"이걸 아주 천천히 먹여주세요..."
"네...네에..."
왠지 탐탁치 않은목소리였지만 이사미는 얼른 그 남자가 내미는 약사발을 받아 들었다.
남자는 가볍게 한숨을 내 쉬었다.
"대단 하더군요...비영권법이라...전에 진경룡 그사람이 쓰는것을 한번 경험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이처럼 날카롭고 무섭지는 않았는데...역시 임자는 따로 있는 것일까요? 허허헛..."
남자의 자조적인 씁쓸한듯 입맛을 다시는 목소리...그의 손에는 엉망이 된 선글래스가
들려 있었다.
"...!"
마악 이사미가 떠 주는 약을 받아 마시려던 히노기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한국인 남자의 눈...허옇게 변해 완전히 죽어 있었던 것이다.
"놀란듯 하군요...소년...헛헛...그렇습니다. 나는 현재 육체적인 시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행이 전에 수련했던 감각이 남아있어 일상 생활에는 지장이 없지만 말이지요..."
"......!"
대단한 일 이었다.
도저히 보지 않았다면 믿을 수 조차 없는 일이다.
후다닥 몸을 일으켜 얼른 무릎을 꿇었다.
몸에 상당한 고통이 따랐으며, 이사미가 아앗 비명을 질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죄송합니다...저도 모르게..."
남자가 다가와 다독다독 어깨를 두드려주며 다시 침대에 바로 눕게 했다.
"괜찮아요 괜찮아...아까 어떻게든 수를 늦출려고 했었지요? 아차! 하는듯 했는데...게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부인이 있는 앞에서...남자란 체면을 중요시 해야 하는 법입니다...하하하..."
"......"
"......!"
히노기는 물론 이사미까지 사르르 얼굴을 붉혔다.
"역시 그랬군요...전화를 받는 목소리에서 흡사 하늘이 무너진듯 놀람과 비통을 느꼈
습니다...대단히 사랑을 많이 받은 여자가 지아비를 걱정하는 듯한...놀랬어요...히노기군...
나이도 아직 어린데 이렇듯...하하핫..."
남자는 기분 좋게 웃었다.
"나는 밖에 나가 명상을 할 것입니다. 시간이 꽤 늦고 했으니 여기는 둘이서 자도록 하세요...
단, 히노기군은 지금 몸이 아직 좋지 못합니다. 최소한 이 삼일은 쉬어야 하니까...그동안
힘들더래도 참도록 하세요...원래는 칠칠이 사십구...사십구일간 색욕을 삼가야 하지만
그 것은 두사람에게 지나치게 가혹할듯 하군요...핫핫핫!"
남자가 뒷짐을 지고 밖으로 나가며 한 말이었다.
히노기와 이사미는 한참을 말 없이 그렇게 얼굴을 붉히고 있어야만 했다.
다음날...히노기는 하루 학교를 쉬어야 했다.
이사미는 걱정을 담뿍 담은 눈으로 히노기에게 살짝 입맞춤하며 발갛게 변한 양 볼을 하고
뛰어 나가듯 집을 나섰다.
킥킥 기묘한 웃음을 지으며 윤성훈 그가 다가와 툭 어깨를 건드린다.
"대단해요 대단해...그러나저러나 시절이 많이 변했군요...더구나 솜씨가 좋아요...저렇듯
색기와 음기가 넘치는 여자를 저렇게나 히노기군만 바라보게 해 놓았다니...잘못되기라도
했다면 큰일날뻔 했어요...핫핫핫..."
"죄송합니다..."
윤성훈이 언뜻 놀리냐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 그게 무슨 말입니까? 죄송이라니! 지금 이 나이든 형을 놀리는거예요? 쯧쯧...먼저
여자를 꿰어 찻다고 자랑하는걸로밖에 안 들리는데..."
"......"
"허나...히노기군은 아직 미성년인데...저런 나이 다 찬 여성을 책임질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군요...더구나 선생님과 제자 사이라...어느 이상의 힘이 없다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거나 할 수도 있겠지요..."
그는나지막하게 혀를 끌끌 찻다.
히노기의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였다.
"저어...한가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
히노기가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그 동안 마음에만 담아 놓은 말이었다.
"말해 보도록 해요...어차피 군과 나는 남이랄 수도 없는 사이...오히려 반가운 일 입니다..."
이 말투는 60대 얼굴은 20대 행동은 40대의 묘한 남자에게 히노기는 현재 상당히 심각하게
생각하고있는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소년의 본질은 악마였다.
악마는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대한다.
그리고, 거침이 없다.
'악'이란 결국 선의 그림자와 같은 것...더구나 그는 현재 '히노기' 라는 한 소년의 인생을
대신 살아야 한다.
인간의 삶을 대신 산다는 것은 마족인 그에게 있어 하나의 탈출구이자 기회와 같은 것이다.
물론 히노기...원래의 그 소년은 자신의 생명을 함부로 한 댓가를 어디선가 치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계약의 내용은 진행되어져야 한다.
인간은 백지와도 같은것...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왔던 히노기의 삶과 정신의 영향...거기에
상위 마족으로서의 프라이드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대하는 성정 등에 의해 지금까지 진행
되어져 온 것이다.
히노기는 순수한 욕망...실질적인 힘을 추구하는 스스로의 욕망을 털어놓는다.
힘을 소유하고 싶다는...자신을 지키고 누구에게도 업신여김 당하지 않으며 현재의 이사미를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힘이라...힘이 필요하다...라..."
윤성훈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겠지요...스스로도 알고 있을 겁니다. 남자란 본디 자존심이 강한 존재입니다. 더구나
여자라는 존재는 가족이라는 것은 남자에게 있어서 굴레이기도 하고 짐이되기도 하지요...
그 것을 감당하려면...힘이 필요할 겁니다...힘이라..."
히노기는 긍정했다.
"네...전 어떻게든 지금의 생활을 지키고 싶습니다...아울러 그 삶을 감당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꾸려가고는 있지만...현재 제가 지내는 생활은 제 스스로의 힘이 아닌겁니다...
때문에..."
"......"
윤성훈은 팔짱을 낀 채로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알았습니다...뭐 도와주도록 하지요...단 방법을 나름대로 알려 주겠다는 겁니다...그 것을
하고 안 하고는 히노기군의 선택이요 노력이겠지요...헌데 한가지 불만이 있군요..."
"네에?"
히노기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해 보인다.
"왜 나에겐 형 이라는 칭호를 붙이지 않는 겁니까? 제가 미덥지 못한가요? 이런...아쉽
군요..."
"...죄송합니다...그만..."
히노기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윤성훈 그는 가볍게 웃으며 꽤 재미있는 아이다 라는 생각을 해 본다.
"힘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우선 가장 크게 권력, 황금, 지식 세가지 물질적 힘과 마음과
정신의 건강...거기에 무한한 사랑이라는 정신적인 영역이 있는 겁니다..."
"......네에..."
윤성훈은 자상한 어조로 말 문을 열었다.
"권력은 다른말로 무력과도 연관되며, 이 것은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황금은 물질과 연관되나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시키기도 하며...가장 변화 무쌍하지요...
지식은 그야말로 아는것...그러나, 아는것은 다시 말해 그 자체가 무기의 역활을합니다.
건강...그 것도 육체와 정신의 건강함은 큰 복이기도 하며...사랑...그 것은 사람을 그보다
위의 존재로 이끄는 성스러운 것입니다...그러나 내가 알려줄수 있는 길은 유감스럽게도
일단 급한 물질적인 영역부터 겠군요..."
윤성훈은 그렇게 말하며 히노기를 쳐다 보았다.
하얗게 변한 눈동자를 들어...그러나 히노기는 그 눈동자에서 알 수 없는 힘을 느껴야 했다.
"잠시 쉰 다음 나랑 어디 좀 가도록 하지요..."
"네...형...님..."
조금 어색한 느낌이다.
그는 존대를 하는데 형님으로 부르라니...그러나 이 것은 그 사람 나름의 원칙이기도 해서
어쩔수 없었다.
잠시 뒤, 가벼운 식사를 든 후 히노기와 그 남자는 집을 나섰다.
"저...형! 한참 왔는데 어디까지 가야 하나요?"
"조금만 더 가면됩니다..."
안경 가게에 들러 디자인이 다른 선글라스 몇개를 산 남자와 히노기는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한참을 더 걷자 이윽고 나타난 꽤 넓은 길...왁자지껄 사람들이 몰려 있었으며 무언가 흥정
하는 목소리도 드높은 곳 이었다.
"여긴..."
"다 왔군요...이 짜릿한 냄새...어디 사냥을 시작해 볼까요?"
남자는 상큼한 미소를입에 머금었다.
남자가 불쑥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받아보자 묵직한 현금 뭉치였다.
"자...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이 것은 히노기군이 얼마나 '감각'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테스트 이기도 합니다. 여기는 뒷골목 옥션 시장...잘 고른다면 대단한 보물을 건질 수 있는
곳이지만 만만한 곳은 아니죠...온갖 속임수와 술수가 난무하는 곳이니까..."
"......?"
"히노기군이 말하는 힘...내가 알고있는 바로는 현재 히노기군의 나이에는 일단 돈보다
공부와 미래를 향한 수양이 먼저 입니다. 현재 히노기군의 상태에서 돈을 먼저 알게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다만, 현재 히노기군이 처한 상황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닌
데다...어느정도 운과 재능이 있는가를 알아보려는 겁니다...잘 한다면 히노기군은 지금 그
나이에도 상당한 재력을 얻을수 있을 겁니다...그러나, 이 테스트에서 신통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솔직히 말해 현재가 아닌 미래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라고 권하고 싶군요..."
그는 잠시 심호흡을한 뒤 말을 이었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사냥!...즉, 가치가 있을듯한 물건을 사 모으면 되는 겁니다.
거기에 따른 사항은 스스로 판단하세요...난 따로 볼일이 있으니 일단 헤어집시다.
단, 히노기군에게 준 그 돈 만으로 모든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정확히 5시간 후...까지
입니다...그 안에는 절대 연락조차 하지 마세요..."
히노기를 떨군 후에 윤성훈은 빠르게 어디론가 사라졌다.
"......"
망연자실한 표정...도데체 무엇을 하란 말인가...
히노기는 잠시 그러고 있다가 고개를 내 젖는다.
"하는수 없지...일단 살펴보기나 해야 겠군..."
쓴웃음을 지으며 히노기는 걸음을 옮겼다.
"자! 사세요! 사세요!"
"......"
"여기 이것좀 봐 주세요! 이 물건으로..."
복잡한 통로에 늘어선 사람들...거리에는 좌판과 행상 심지어 온갖 가게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은근히 두리번 거리며 다가와 무언가 야릇한 물건들...작은병에 담긴 약과 수상쩍은 도구를
권하는 이들도 있었다.
얼핏 칼을 보이며 위협하는 치들도 보였지만 히노기가 뭔가 손을 쓰기도 전에 어디선지
튀어나온 깔끔한 제복 차림의 남자들에 의해 얻어맞으며 어디론지 끌려가서 보이지 않았다.
이른바 번개시장...혹은 도깨비 시장으로 불리는 곳...거래되는 물건은 다양했다.
하찮은 잡동사니에서 골동품, 귀한 보석과 심지어 대량의 환전까지 이루어 지는 곳...
이런 곳에서 가치있는 것을 찻아라? 히노기는 고개가 절로 흔들렸다.
그때 히노기의 눈에 무언가 띄는 것이 있었다.
하얀 백발을 늘어뜨린 노인...그에게선 무서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키며 무언가 신중한 태도로 다듬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자 탄성이 흘러 나왔다.
쌀알...돋보기를 통해 바라보며 쌀알에다 글씨를 쓰는 노인...
확대경 너머 쌀알에는 미려한 필체로 반야심경이 새겨지고 있었다.
손수 깍아만든 투박한 철필로 새겨지는 작은 글씨들...
간혹 지나가던 사람들이 탄성을 자아내며 지켜보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지루한듯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만다.
고집스레기다리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영겁의 시간동안 그렇게 있는듯이 미세조각에 열중해 있었다.
"......"
한참 후에 노인이 팔을 멈추고 어깨의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노인에게 몰려 들었다.
잠시 두런두런 흥정이라도 하는 것일까?
작은 쌀알 몇개가 수정으로된 용기에 담겨져 건네졌다.
그리고, 오고가는 현금...노인은 무어라 가타부타 대꾸조차 않했지만 물건을 받아든 사람
들은 저마다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힐끗 노인의 눈이 소년을 향했다.
"...!"
번뜩이는 눈빛...집념과 고집...게다가 위협적인 정기가 감도는 눈이다.
"아까부터 묘한 눈길 하나가 지켜본다 했더니 네놈인게로구나...이리와서 어깨나 좀
주무르거라...설마 네놈이 이 늙은이의 쌀알이 탐나 온것 같지는 않고...구경을 했으니
그 값은 해야할게 아니냐!"
"...!"
이러니 저러니 말이 필요없다.
히노기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면서도 하는수 없다는 듯 다가가 노인의 어깨에 손을 대고
잠시 그 상태를 살펴 보았다.
상당히 경직된 근육...얼마나 공력을 들였는지 견갑골 부근이 돌처럼 굳어 있었다.
천천히 목덜미를 따라 만지며 목 뒤와 팔목까지 따라가 경혈의 상태를 살폈다.
"뭣하는 게냐...?"
히노기는 살며시 웃어 보인다.
"잠시만요...할아버지...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잠시 후, 히노기는 손가락 끝부터 어깨까지 굳어진 경혈을 따라 손을 놀렸다.
으음! 야릇한 표정으로 신음을 내는 노인...히노기의 손길은 집요하면서 능숙했다.
더구나 히노기의 그 손길은 석녀가 된 여자를 욕망의 화신으로 만든 그 마력의 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인의 표정은 놀람에서 경악으로 바뀌었다.
이건 일류 지압사나 침구사 이상이다.
팔끝에서 어깨까지 뻥 뚫린 기분이 든다.
허허...너털웃음 마저 나왔다.
"너 참...기가막힌 녀석이로구나...애 썻다..."
비로서 미소를 머금고 기꺼운 표정을 해 보이는 노인...그는 히노기의 어깨를 기분좋게
두드려 준다.
"이리 와 앉거라...그런데, 이상하구나...보아하니 평범한 녀석 같지는 않은데...어째서
이런 험한 곳에 기웃거리는 게야?"
노인이 권하는 종이컵의 차를 마시며 히노기가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그게..."
히노기는 간략히 대답했다.
이곳에서 귀한 물건을 찻아 보라는 가치가 있을듯한 물건을 구하라는 명령아닌 명령을
받았다는...노인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잠시 히노기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잠시 그러던 노인이 이번에는 히노기의 손과 팔을 잡아 주무르며 무언가 살피더니 알았
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구나...용이 용을 키운다...그렇지...어쩐지 범상한 녀석이 아니라 했다...더구나,
네 몸에는 독특한 '기문공력'까지 지니고 있는듯 하니...흐음...허나 뉘 있어 이런 아이를
감당할꼬...'도화흔'이 수 없이 얽히고 인당에는 '천살'의 기운이 보이는 구나...영웅의 명운...
다사다난한 운명...그 속에서 삼처 사첩을 거느리고 수많은 이들의 위에 올라설테니...
이른바 '제후'의 상이로다..."
"...예?"
히노기가 놀라 물었지만 노인은 고개를 저을 뿐이다.
"알바 없느니라...네놈은 나와는 그저 스치는 인연일 뿐...하기야 사람의 얼굴이나 읽고
쌀알에 글씨나 쓰는 나 같은 늙은이와 네놈과는 더한 인연이 있다해도 어려울 뿐이다..."
그러나, 노인은 왠지 아쉽다는듯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신다.
그러더니 노인은 주섬주섬 작은 수정 병에 쌀알 하나를 톡 넣어 건넨다.
"받거라...네놈의 품안에는족히 이것을 살 돈은 있겠다만, 내 오늘 네게서 병신이 다되가는
팔을 고친듯 하니...이 정도 수고비는 주어야 할터...거기에 더해 한가지 일러주마...너무
크고 값진것만 보지말고 사람들이 다 찻는것 또한 찻지마라 진실로 보물은 사람들이 모르면서
귀해야 하고 화려한 그림은 여백이 많은 법이다. 또한, 작은것이 때로 클 수가있으며...하찮은
것이 실제로는 귀한 법이다...자, 이제 가보거라...저쪽 내 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거라..."
노인은 천천히 팔을 들어 좁다란 골목의 한쪽을 가르켜준다.
그리고는 곧 소년을 외면하고 다시 쌀알 하나를 꺼내 다듬기 시작했다.
어안이 벙벙해진...그러나 히노기는 알았다는듯 공손히 노인을 향해 인사를 해 보인 후
노인이 가르쳐 준 그쪽으로 걷기시작한다.
곧 인파에 휩싸여 노인도 히노기도 보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
황금의 손을 지닌 남자 (2)
인간의 운명은 인간 그 그릇 크기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마의천)
노인이 가르쳐준 대로 한참을 걸었는데도 무언가 특별한 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도데체 무엇을 보라는 것인가...그때 사람들이 모여 구경을 하는 것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작은 인형...큐브릭 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자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닌 겁니다! 오늘! 아주 진귀한 물건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전문 수집가들도 탐내는 컬렉션들을 저렴한 가격에 구할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번 보세요! 그리고 도전하세요! 모든것은 스스로의 운과 감각에 따라 결정 됩니다!"
화통한 목소리로 설명을 하는 남자...그 앞에 잘 분류되어 쌓인 앙증맞은 인형들...큐브릭
이라는 것은 장난감의 일종으로 레고 완구 처럼 생긴 로봇이나 인형을 의미한다.
한시즌에도 수 없이 쏟아지는 이 것은 주로 인기있는 에니메나 영상물의 등장인물 혹은
인기있는 캐릭을 대상으로 하는데, 일반적으로 60mm정도의 작은 사이즈였고 가격도 발매
시에는 보통 몇백엔에서 천엔대였다.
하지만 이 것은 어디까지나 발매 당시를 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극악하게도 이런 큐브릭은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는 뽑기 형식으로 판매가
되는 데다가 그 종류도 극악하게 많아 어지간한 주머니 사정으로는 먼지만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큐브릭은 한정판 이라는 식으로 어느 수량 이상은 판매되지 않는데 이 때문에 기회를
놓치면 셋트를 맞추기가 어렵기 이를데 없을뿐 아니라 가격 또한 천정부지로 뛰게 된다.
속도, 눈썰미, 게다가 운이 없으면 안되는 것인 것이다.
히노기는 갑자기 흥미가 일었다.
"이건 어떻게 구입하는 거지요?"
얼핏 묻자 만엔 정도의 선금을 내고 번호표를 받으란다.
즉석 경매로 주인을 가린다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곳곳에서 침을 삼키며 팜플렛등을 살피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심지어 무선 인터넷 등으로 자료를 찻는 이들도 보였다.
만엔을 주고 번호표를 받아 기다렸다.
잠시 후, 즉석 경매가 시작되었다.
"아! 거기 33번손님!...2만8천엔! 2만 8천엔 나왔습니다...더 없습니까?"
"3만!"
"4만2천!"
"5만!"
악다구니도 이런 악다구니가 없다.
다행히 공간이 제법 되는 데다가 통제를 하는 이들이 솜씨가 좋아 소란은 일지 않았다.
경매는 계속되었다.
에반게리온, 디즈니, 마징가Z, 괴수대전...여러가지 큐브릭이 올라와 경매에 붙여졌고 곧
제 주인을 찻아갔다.
한참 구경하니 갑자기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저마다 경악에 찬 목소리...
"어라? 저게 이런데에?"
"젠장...미치겠네..."
"!..."
신기하게도 시계와 함께 포함된 메탈 큐브릭...고급 아날로그 팔목 시계와 같이 놓인 물건
이었다.
시계나 큐브릭 모두 반짝이는 표면에는 먼지 하나 없었고 큐브릭은 통나무 인형을 축소해
놓은듯 했지만 왠지 범상치 않은 물건인 듯 보였다.
"이게 무엇인지 아시는 분은 아실 겁니다! 오직 전 세계에 300개 만이 출시된 물건...급한
사정으로 이 곳에 나오게 된 물건! 자! 이 물건은 그 희소성 때문에 기본 100만엔 부터
시작합니다! "
당연히 히노기의 눈빛이 번뜩였다.
벌써부터 진을 뺀 이들에게 가만히 구경이나...하던 히노기가 상대 될리가 없다.
가볍게 낙찰받고 나니 사람들의 아우성이 쏟아진다.
그러나, 경매 주최자는 두말없이 고개를 젓는다.
"지금! 이 자리에서 현금으로 결재 못하겠다면 물러나세요! 현재 모처에서 고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사람은 모종의 사건 때문에 신분을 드러낼수 없는 상태! 때문에 이
손님을 뛰어넘는 금액을 지불하지 못하겠다면 다음 기회로 하십시오! 그리고, 이후의 소란이
계속된다면 경매를 이것으로 중단합니다! 그래도 좋습니까?"
"......"
사람들의 소란이 확 가라 앉았다.
"그럼 경매를 계속 진행합니다. 자 낙찰된 손님께서는 현금으로 이 자리에서 가격을 치르고
물건을 가져 가시기 바랍니다. 단, 물건이 물건인 만큼 원하시는 경우 안전한 장소까지
배달해 드리는 서비스도 있다는 것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히노기는 앞에 나아가 가격을 치르고 배달 서비스 까지 사용하기로 했다.
배달 예정지의 주소를 말하고 사인을 하자 철저하게 포장되어 작은 금고에 봉인된 큐브릭이
제복을 입은 직원들에 의해 어디론가 옮겨진다.
"자! 이건 보험증명서 입니다...이번회에 한해서 가입된 보험증 입니다. 또한 이 건에 대한
내용은 우리 시장조합에서 절대보증 하므로 이후에도 이용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보증서와 감정평가서...게다가 물품증까지 잘 넣은 서류가 가방에 담겨 히노기에게 전달
되었다.
"계속 경매에 참가하시겠습니까?" 라며 직원 하나가 물었다.
"네...좀 구경좀 할까요?"
"좋습니다...자리에 앉으십시오...단 경매끝 까지 우리 경비원이 동석해 드릴 겁니다."
히노기가 바라보자 두 명의 제복입은 남자가 히노기의 양 옆에 바짝 다가서서 주위를 경계
했다.
히노기 외에도 몇몇 사람들은 경비원의 호위를 받으며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히노기는 그 자리에서 큐브릭을 추가로 구입했다.
모두가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결정한 것들로 게타로보 100개 한정 세트라고 한 물건과
'인랑'의 한정 기념 큐브릭 이었다.
이로 인해 윤성훈이 준 돈의 절반 정도가 빠져 나갔다.
히노기는 그제서야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매를 끝내시겠습니까? 좀더 돌아보시겠다구요? 그럼 경비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나갈때까지 절대 주의하도록 하십시오..."
다음으로 히노기의 눈에 띈 곳은 도검가게였다.
딸랑 문소리를 내며 들어가자 고색창연한 갑주와 도검들이 즐비했다.
그러나, 상당한 고가의 물건들 뿐 이었다.
저가의 물건이라면 모르겠지만 쓸만한 것은 현재 제법 이름있는 도검장의 손을 거친 것이
최소 1억엔 을 호가한다.
일본은 칼의 나라였다.
근래 중국 등지에서 값싼 복제품들이 나돌고는 있지만 재대로된 일본도와 비교할수 없는
형편이다.
이번에도 그냥 구경이나...하던 히노기의 눈길을 끄는 것들이 있었다.
"......!"
한쪽 벽면을 따라 전시된 도검 외에 작은 단검들과 특히 도검의 칼막쇠가 그것이다.
이른바 검 손잡이와 검날 사이를 가로지르는 것인 칼막쇠(코등이)가 이렇게 다양할 줄이야...
히노기는 탄성을 자아냈다.
칼막쇠도 가격대가 다양했고 상당히 저럼한 물건도 몇이 눈에 띄었다.
히노기의 눈길을 끄는 몇몇 물건들...그 중 한쪽 구석에 먼지가 쌓인 채 따로 분류되어 있는
국화문양이 들어간 물건과 기분나쁜 '귀면(鬼面)'이 양각된 물건...마지막으로 아자 문양이
새겨진 것...무언가 범상치 않은 기운이 감도는 것들 이었다.
보통사람이라면 잘 모를 야릇한 기운...흡사 아까의 쌀알에 반야심경 전문을 새기던 노인에게서
뿜어지던 그런 기운이 어려 있었다.
가볍게 전율이 일 정도로 몸이 떨려왔다.
세 개의 가격을 물어보니 간신히 맞출듯 하다.
왠지 젊은 종업원은 성의없는 태도를 보였다.
가격 흥정을 하자니 종업원이 손을 뻗어 '정찰제'라는 푯말을 가르킨다.
히노기는 어쨋든 그 세가지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삐리리 품 속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 히노기군! 어땟습니까? 지금 아까 만난곳에서 조금 떨어진 찻집에 와 있습니다."
"형님!"
위치를듣고 옆에서 따라붙어있는 경비원들에게 물었다.
두 경비원들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고풍스런 찻집 앞이었다.
경비원들은 경례를 붙여 보인 후, 돌아갔고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찻아가니 함뿍 웃음을
머금고있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흐흠...무언가 건진것이 있는듯 하군요...한번 결과를 볼까요?"
"네..."
히노기가 내민 가방 안의 서류를 살피고 세점의 칼막쇠를 자세히 손으로 더듬던 윤성훈 그는
좀처럼 얼굴에서 놀랍다는 기색을 떨칠수 없었다.
"...으음...대단하군요...이 정도면...엄청난 겁니다. 일단 가장 잘 산 것은 이 칼막쇠들...
제가 여러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이 정도 되는 물건은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 칼막쇠들은 보증서가 없고...조금 경로상 문제가 있을수도 있겠지만, 그 것은
공인 감정서를 발급받으면 될 문제고...무엇보다 영수증까지 첨부되어 있기 때문에 법적인 하자가
없을듯 합니다...그리고, 이 큐브릭 말인데..."
"......"
"일반적으로 이 물건들이 만약 어느 이상의 가치가 있다면 이것 역시 감정을 한 뒤, 역경매를
통해 처분하는 것이 좋을듯 하군요...일단 물건을 살펴보고 감정을 먼저 해 봅시다...거기에 이
골동 옥션시장 조합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신용이 철저한 곳입니다. 아마 의외의 결과를
얻을수 있을 듯 하군요..."
싱그러운 웃음을 머금은 윤성훈을 바라보며 히노기는 그제야 마음을 놓을수 있었다.
"허어...이런 물건이..."
깐깐하게 생긴 노인 하나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심히 확대경도 모자라 커다란 대물현미경에 칼막쇠를 놓고 관찰하던 노인의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이 흘렀다.
고대 도검류와 갑주 등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노인...그는 한참만에야 고개를 들었다.
"코등이는 별것 아닌듯 보이지만, 이름난 사무라이들이 종종 심신수양삼아...또는 소일삼아
제작하기도 한 물건입니다...이 세점의 물건...특히 이 '아자문양(亞字文樣)'이 들어간 것은
아무래도 1600년경 세키카하라 싸움 경의 물건인듯 합니다...또한 이것...이 귀면 모양의
코등이는 '오다니 요시쓰구 (小谷吉繼)'의 것인 듯 한데...그렇다면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오다니 요시쓰구'...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아꼈던 무사중 한 사람으로 훤칠한 용모에 무사의
자질도 최고였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후에 나병을 앓게되어 얼굴이 썩어들어가 언제나 얼굴에 천을 두르고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오직 '이시다 미쓰나리' 라는 사무라이만이 흉측해진 그의 용모와 몸에서 나는 악취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을 대해주자 감격하여 일생 변하지 않는 우정을 나누게 된다.
나중에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토요토미 가문을 배신하고 일본의 패자로 나서게 될 때 그에
맞서서 일어선 '이시다 미쓰나리'가 '오다니 요시쓰구'를 찾아가 같이 죽어줄 것을 원하자 흔쾌히
그와 운명을 같이 하기로 하고 일어서서 장렬히 최후를 마친다.
감정사는 손수건을 꺼내어 땀을 닦았다.
"이른바 전국시대 말기에 이르러 일본의 도검제조술은 가장 최고로 발전합니다...물론 좀 더
정밀한 검사를 해 봐야 하겠지만...코등이의 경우라도...더구나 그런 유명한 '무장 (武將)'의
것이라면 부르는게 값인 경우가 많습니다..."
윤성훈은 흥미로운듯 물었다.
"흐음...그렇습니까...그렇다면 대략적으로 얼마 정도나...?"
감정사는 이것저것 따져 보다가 한쪽에 놓여있는 도감을 넘겼다.
도감에는 각 일본도의 부분품과 특히 검막새의 도안과 그에 따른 설명과 감정가를 자세히
설명한 것이었다.
잠시 무언가 찻아보던 그가 한쪽을 펼친다.
"물론 정확하지는 않습니다...이 정도라면...보물급 물건인지라...그러나 얼마전 거의 같은시기
이것보다 품질이 좋지않은 칼막새가...약 십 이억 엔 정도에 모의 경매에서 낙찰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라면...실제 경매에는 아마 전국의 내노라하는 수집가들과 심지어 박물관 등에서
구입 요청이 올 수도 있을겁니다...그렇다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십억엔을 호가하지 않을지..."
"...!"
"허어..."
윤성훈은 히노기를 쳐다보며 무언가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짓는다.
"대단하군요...그렇지 않습니까? 하하하!"
"......"
그러나, 히노기는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져 오는 것을 느낀다.
무언가 잔잔히 가라않는 기분...무덤덤한 그 기분을 느끼며 히노기는 도감에 있는 귀면 문양이
양각된 칼막쇠를 바라 보았다.
쿠오오...귀면은 금방이라도 살아 울부짖을듯한 모습을 보였다.
"흔히 사람에겐 힘이 중요하다고 하지만...그러나, 그 힘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운' 입니다..."
찰랑찰랑 따뜻하게 데원진 '사케'가 잔에 부어진다.
윤성훈과 히노기는 천천히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잔을 단숨에 비웠다.
"어떤 이는 땡전 한 푼 없는 가난뱅이로 태어나 평생을 살기도 하고 어떤이는 부잣집에 태어나
일생을 호의 호식 하기도 합니다. 불공평 하지요...그렇지만, 자세히 그 안을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윤성훈은 넘칠 정도로 히노기의 잔에 술을 쳐 준다.
"히노기군...아까 군의 기색을 살펴보니 오히려 무덤덤해 지더군요...더구나 맥박도 가라앉고
심장 뛰는 소리도 느려졌습니다...어떤 기분이던가요?"
"......"
히노기는 잠시 고민에 빠진다.
뭐랄까...그 기분을 어떻게 설명한다는 말인가...
"잘 모르겠습니다...뭐랄까...오히려 마음이 가라앉고 무언가 냉정해진다고나 할까요?
여태까지 겪어보지 못한 기분이었습니다..."
살짝 얼굴을 붉히는 히노기였다.
"그렇습니다. 히노기군...일례를 들어 봅시다...평생 가난하게 살던 사람에게 어느날 갑자기
수천의 황금이 생긴다면 그 사람은 과연 행복해 질 까요?"
"......"
"아닙니다...오히려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지요...히노기군! ...'부유함'이나 '운'이란
준비하고 대비하는자에게...그리고, 그릇의 크기가 되는 자에게 찻아온 다는 것을...그 자질이
되지 못하는 자는 부유함...갑작스레 찻아온 그 부유함을 써 보지도 못하고 오히려 불행해지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경우까지 생깁니다...히노기군! 군은 그 점을 명심하세요...부유함이나
운이란 것은 실제 그 사람의 마음의 크기입니다. 설혹, 한때 부유한 사람도 마음의 크기가 작고
인색해지며 자기만 아는 이기적 인물이 될 경우 하늘은 그에게서 행복함이란 요소를 빼앗아가
버린 다는 것을...그럼 차라리 가난하지만 정겹게 사는 한 가족만 못한 법이죠...하하! 자자!
이런 이야긴 그만하고...쭉 드세요! 하하!..."
"형님..."
히노기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소년은 마족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이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남이지만 남 같지 않는 이 남자의 애정어린 충고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쪼르르 따뜻하고 맑은 액체가 잔을 채웠다.
황금의 손을 지닌 남자. (3)
지난 과거 내 마음은 정처없이 방황하며 좋은것을 따라 그 것을 즐겼었다.
이제 나는 조련사가 발정한 코끼리를 다스리듯이 지혜로서 마음을 다스릴 것이다.
(법구경 : 法句經)
"이...이런...히노기상! 어 어째!..."
"번번히 죄송합니다...또 안좋은 모습을 보이는구요...그보다 안에 자리 좀..."
축 늘어진 히노기를 부축하며 들어온 남자...윤성훈이 조금 머쓱한 모습을 보였다.
"이...이리로..."
어쩔수 없는 표정의...그러나, 단단히 않좋은 감정을 담고 있는 눈으로 사내를 노려본
이사미는 결국 둘을 안내했다.
히노기는 색색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기이하게 소년이 내뿜는 숨결엔 화사한 장미향기가 같이 배어나온다.
옷을 갈아입히고 소년을 자리에 눕힌 후에 서늘한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주었다.
"이거...폐 끼칩니다...제수씨...하하!"
싱긋 짓궂은 웃음을 지어 보이는 남자의 말에 이사미 선생은 자신도 모르게 화륵 얼굴을
붉혔다.
제수씨라...윤성훈을 쳐다보는 그녀는 그러나, 왠지 복잡한 표정이었다.
소중한 히노기를 부상을 입히고 이번에는 이렇게 만취한 상태에서 히노기를 들쳐 업고 온다.
하지만 다른 편으로는 고마움도 함께 느낀다.
히노기...어쨋든 그녀와 히노기는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힘든 관계인 것이다.
하지만 이 남자는 그런 둘 사이를 별 관계가 없다는듯 오히려 자신을 인정해 주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무엇보다 소탈한 태도와 꾸밈없는 태도가 좋았다.
"차라도...한 잔...드릴까요?"
윤성훈...그가 밝게 웃어 보인다.
"좋습니다...한 잔 주십시오...하하하!"
잠시 뒤, 윤성훈은 이사미가 손수 끓인 허브차를 한모금 입에 머금었다가 탄성을 지른다.
"참 훌륭하군요...맛과 향...블랜딩의 조화...훌륭합니다..."
다소 과장된 모습으로 칭찬을 하는 그에게 이사미는 몸둘바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별...말씀을...과찬이십니다..."
윤성훈은 딸깍 상큼한 표정으로 찻잔을 내려 놓았다.
"그러나 저러나...힘드시겠습니다...요즘은 일상 생활을 하기도 힘들지 않나요? 음기가 너무
지나치면 아무리 진음의 체질이라고 해도 힘들 터입니다...다시말해 모든 사물의 이치는 극단
으로 치달으면 오히려 해로운 법이지요...히노기의 경우 아시겠지만 일종의 선도무술로 그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지만...말입니다..."
퍼뜩 이사미의 얼굴이 놀라는 표정이 되었다.
그랬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요즈음엔 하루라도...아니 한시라도 히노기와 붙어있지 않은 경우엔 몸이
쑤셔서 미칠것 같았다.
오늘만 해도 혼자 몇번이고 자위행위를 했었다.
자꾸 소변이 마렵고 몸이 근질거렸다.
히노기의 경우 화동권법이나 비영권법의 수련...하루에 빠짐없이 하는 '참장'과 기공 수련 등
으로 인해 몸의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별 탈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윤성훈은 그럴줄 알았다는 듯 혀를 가볍게 찻다.
"아직 어린 신랑이라...그런 면에서 자기 색시를 배려하지는 못하는것 같군요...더구나, 몸에서
진한 장미향 냄새와 각종 귀한 향료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니...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는 알것
같습니다만...그런 정도면 가볍게라도 땀을 흘리는 일을 요 근래 전혀 하고 있지 않다고 해야
할 터인데...그렇다면 더더욱 몸 상태가 견딜수 없겠지요...대신에 성감이나 매력은 더욱 높아졌
겠지만 말입니다..."
"......네에..."
이사미는 긍정할수 밖에 없었다.
그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섹스 외에는 땀을 흘려본 적이 요새는 거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사미가 살이 찌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올데는 나오고 들어갈곳은 들어간...이전보다 허리 둘레가 더욱 가늘어진 대신 가슴과
엉덩이는 조금 치수가 늘었다.
키도 훨씬 늘씬한 느낌이었다.
히노기가 손수 고른 엄선한 정장을 입고 메이크업 까지 해 주고 나면 마치 한 송이 장미꽃을
바라보는듯 화사하면서 아름다운...거기에 가시를 드러낸 듯한 오연함이 섞인 매력이 짙게
풍겼다.
때문인지 요즈음 남녀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까지...심지어 자신을 바라보며 같은 여자들 까지
동경과 질투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것을 느꼇다.
더구나 그녀가 정색하고 마주 바라보면 같은 여자들조차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히노기의 앞에 서면 그녀는 한마리 발정난 애완 고양이가 되어 가르릉 거리며 소년의
품에 안겨 몸을 부벼댔다.
히노기는 그녀를 마치 공주님처럼 보살피고 있었다.
어울릴 만한 장신구와 옷을 사 주는 것은 물론 목욕과 화장, 심지어 대 소변 후의 일처리 까지
손수 해 준다.
때에 따라 맛있는 요리를 해 주었으며 심심할 때는 재미있는 이야기의 상대가 되거나 체스나
카드게임, 게임기의 오락을 즐기기도 했고,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가기도 했다.
나들이 갈 때에도 예의 아즈마 스우죠를 불러 BMW나 벤츠 류의 세단을 타고 돌아다녔다.
그야말로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는 호사스러운 생활이다.
그리고, 같이 붙어있을 때에는 무엇보다 즐거운 유희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매일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리는 즐거움...남녀관계...그 것도 하면 할수록 즐겁기만한....
쾌락 속에서 시작해서 쾌락 속에서 정신을 잃는...어느날 인가는 거의 반나절동안 끊임없는
쾌락속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호리호리 하고 마른듯 보이는 소년...그러나, 히노기는 마르지않는 힘과 기교를 가지고 있었다.
"아아..."
가볍게 한숨처럼 신음이 새어 나온다.
자신도 모르게 허벅지 부근이 저려오며 몽롱한 느낌이 되었다.
"이런...심각한 상태인듯 하군요...이것 참...내 나이 40이 되도록 무엇을 했나 모르겠군요...
왠지 슬퍼지는 데요..."
윤성훈의 짖궂은 목소리를 듣고서야 퍼뜩 다시 주위의 사물이 인식되며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이 또 딴 생각에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양 볼이 화끈거리며 달아 오른다.
"차...더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때 윤성훈의 손이 이사미의 손목을 턱 잡아챈다.
"잠깐 한가지 드릴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왠지 정중하면서도 진지한 표정이었다.
"네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나 잡힌 손목을 슬쩍 뺀다.
"네? 바...방금 뭐라고 하셨...지요?"
이사미의 얼굴이 볼만하게 변했다.
그러나, 윤성훈은 진지한 표정이다.
"다소 무례하게 들렸다면 사과 드립니다...아니 분명 무례할 것입니다...만, 이 것은 절대
제가 다른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 주십시오..."
"하! 하지만...그렇다 하더라도...몸을 보여 달라니...그런..."
윤성훈은 흡사 골이난 여동생을 다독이는 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강요는 하지 않겠습니다...하지만 재삼 재사 생각해 보아도 일단 한번 살펴야 되겠기에 드리는
말씀 입니다...더구나, 저 역시 '수업자 (修業者)' 입니다. 더구나 맺어진지 얼마 안되는 귀여운
어린 형제의 여자를 넘볼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은 아니지요..."
윤성훈은 그렇게 말하며 손 안에 든 찻잔을 쭉 들이키고 손 바닥에 슬쩍 올려 놓았다.
그리고...
"핫!"
가볍게 번뜩이는 손...그와 동시에 손바닥 위의 본차이나 찻잔이 윗 부분이 도려내어 지며
바닥에 댕굴 굴러내렸다.
딸랑! 소리와 함께 고리 형태로 잘려진 찻잔 윗 부분이 바닥을 데굴 굴렀다.
"......!"
실로 무서운 솜씨였다.
"이 정도의 능력이 있으려면 일반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단련을 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인간의 욕망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지만..."
"......"
잠시 갈등하던 그녀였다.
"알겠습니다..."
천천히 이사미가 몸을 일으켰다.
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가 여성이 옷을 벗는 소리라 했다.
물론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눈이 보이는 사람보다 훨씬 더 사물의 통찰력이
뛰어나고 사람의 심장박동과 호흡으로 그 사람의 감정마저 읽는 그런 존재였다.
천천히 겉어입은 가벼운 옷이 흘러내리고 브래지어가 끌러 내려졌다.
태앵...또 한 치수 늘어나 이제는 맞춤 브래지어를 해야 할 정도가 된 아름답고 풍만한 젖가슴이
그 숨막히는 자태를 드러냈다.
그리고...몸에 걸친 마지막 속옷까지...스윽 발목에 끌어내려 벗었다.
처억 세련된 디자인의 팬티가 한쪽에 던져졌다.
"됐습니다...자...이쪽으로..."
"......"
왠지 몽롱해진 머리 속이다.
흡사 몽유병에 걸린것 처럼 걸어가 자신의 침대에 털썩 몸을 던졌다.
자포자기의 느낌이 든다.
왠지 이대로 이 남자에게 범해져도 좋을것 같다는 느낌이다.
윤성훈...그는 아찔한 느낌에 머리를 절레절레 저어야 했다.
'후우...정말 지독한 음기다...게다가 아주 순수하며 응축된...아마도 어지간한 남자라면 아니
나 였어도 눈이 보였다면 못 견뎠을 지도 모르지...'
"하아아..."
남자의 손이 가볍게 몸에 와 닿았다.
양 젖꼭지에서 중심 부분...전중혈에서 몸 중앙으로 내려가 배꼽 아래 기해혈...발목의 족삼리,
두정의 천돌, 백회...심지어 살짝 그녀의 다리를 벌리게 한 후 회음 부위까지 손을 짚어 나갔다.
"흐응...아아...하아아..."
섬칫 섬칫 짜릿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훅훅 달콤한 단내가 느껴진다.
윤성훈은 곡혹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후끈 달아오른 그녀의 음기와 접하자 아직까지 동정을 지키고 있는 그의 양기가 발동을 한
것이다.
더구나 그의 공력은 철저히 순양지기를 바탕으로 한 양강지공이었던 때문에 이처럼 순수한
음기를 지닌 이사미에게 자신도 모르게 끌렸기 때문이다.
불끈 아랫도리에 힘이들어 간다.
'허어...이것 참...이토록 순수한 음기를 지닌 여자라니...더구나 이 정도면 아마도 옛날이었다면
나라 한 둘쯤은 그냥 말아먹었겠군...정말...'
자신도 모르게 땀 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한다.
퍼드득 여체가 경련을 일으킨다.
윤성훈은 이사미의 경혈을 짚어나가며 세밀히 장부의 이상이나 몸의 허실...그리고, 진기의
흐름을 살폈다.
점차 시간이 갈수록 그의 얼굴은 놀람으로 가득찻다.
"대단...하군...! 이런 여자가 실제 존재하다니...진음의 기운을 지닌데다가 그야말로 극상의 몸을
가졌다...어딘지 불안정한 흐름도 보이기는 하지만, 이 여자의 몸에 흐르는 기운은 순수한 음기...
그 양 또한 어지간한 일반 여성들의 몇배는 될 듯 하군...이러고도 견뎠다니...허어...일반적으로
이런 타입은 신계의 여자가 아니면 그야말로 끊임없이 '양기'를 갈구하는 요괴나 음녀가 되기
십상인데..."
"흐윽! 더 이상은...저좀...제발!"
"!..."
윤성훈...그는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나긋나긋 부드러운 여체가 그를 휘감아 왔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양기는 음기에 동화하고 음기는 양기를 갈구한다.
더구나 사십평생 진양의 기운만을 수련해온 동정의 수업자라면 그 얼마나 순수하고 맑은
양기를 지녔겠는가...
"이...이런! 정신! 차리십시오! 으흡!"
하아아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촉촉히 젖어든 여자의 입술이 부딛쳐 왔다.
터헙! 입술을 다물었기 망정이지 그야말로 큰일날뻔 했다.
아니...윤성훈의 고난은 그 것이 시작이다.
"흐응...저좀...제발...하아아..."
"...!" 머리털나고 이런 곤혹감은 처음이다.
누군들 여자가 싫은 남자가 있을까...더구나 이렇게 육감적이고 요염한 그러면서 아름다운
여자를...
출렁출렁 스스로의 가슴을 쥐어짜며 부벼왔다.
간질간질 입술 부근에 이사미의 혀가 스친다.
스르르 그녀의 손이 뱀처럼 스며들어 사내의 탄탄한 맨살을 매만져 왔다.
'흐윽!...이...이건!'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야 겠지만 이건 정말 대단했다.
훅훅 부어지는 입김에는 무서운 매혹의 향기와 간질거리는 혀의 현란한 움직임이 꿈틀 거린다.
게다가 어느새 한 손이 허리 부근으로 내려와 허리띠와 지퍼를 능숙하게 끄르고 반쯤 발기한
남성을 교묘하게 희롱한다.
"하아아...제발...저좀...마음껏...하아아..."
몽롱히 풀어진 눈...그 눈망울 속엔 애절하면서 순수한 매혹의 기운이 어려 있었다.
극치의 유혹...천천히 윤성훈의 일부가 꿈틀꿈틀 반응을 보이며 곤두서기 시작한다.
'허억! 더 이상은...안돼!'
서늘하면서 감미로운 여성의 손아귀에 쥐어진 일부가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다.
'이...이러다간 정말 큰일난다...젠장...젠장...내 평생에 이런...흐윽!'
"하아앙...좋아요...하아..."
가르릉 발전난 고양이가 되어 윤 성훈을 덮친 그녀는 이제 막 한 사내를 교묘히 요리하며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남자의 함락은 이제 순식간이다.
황금의 손을 지닌 남자. (4) 내용추가 + 오타수정 Ver 1.0
'어짊(仁)'은 세상을 밝히며 '참음 (忍)'은 세상을 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人)'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법이다. (홍인선사)
"하아아...차압! 처업...흐응...하아앙..."
푸르르 사내의 몸이 떨린다.
69의 체위...여성에게 위에서 깔린 채로 전율하듯 부르르 떨리는 남자의 몸...거의 일어선
남근이 여자에 의해 교묘하게 희롱당하고 있었다.
더구나 정확히 남자의 얼굴 위쪽에 활짝 열려진 허벅지가 벌려져 그 은밀한 고간을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었다.
방울 방울 이슬을 머금은 꽃잎이 활짝 열려져 하늘거린다.
"하아앙...처업!"
남자는 꼼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몸을 추스리며 무언가 중얼중얼 외우고 있었을 뿐 별달리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으응...맛있어...하아앙...좀 더..."
사내의 음경은 이제 완전히 발기되어 심지어 남액 마저도 또르르 흘리고 있었다.
사르르 긴 속눈썹이 내려왔다 올라갈 때마다 요염한 느낌이 감도는 촉촉한 눈망울이 이글
거린다.
싸아아 혀가 사내의 밑둥부터 차근차근 휘어감고 꿈틀 거린다.
흡사 뱀이 나무를 휘감아 올라가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아아..."
양 뺨으로 남자의 음경을 부비던 그녀가 작정한듯 아예 입술을 가만히 벌려 천천히 남근을 베어
물어간다.
남자의 귀두 부분이 삼켜져 쭈우우 빨려졌다.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프라 바를타야 훔!"
"아아악!"
이사미의 입에서 거센 교성이 터져 나온다.
어디선가 황홀한 금빛 광채가 솟아 올랐다.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프라 바를타야 훔!"
광명진언...(光明眞言)...진언이란 불가에서 말하는 순수의 그리고, 진리 본체의 언어를 말함
이다.
일반적인 주문과 달리 진언은 불 보살의 가피가 어려 있으며 진리 본체의 법신불...비로자나의
본신언령이 깃든 언어다.
때문에 사기를 물리치고 요기를 잠재우며 '항마초복 (降魔招福)'...이른바 마를 물리치고 복과
공덕을 비는 인간의 염원이 들어 있었다.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프라 바를타야 훔!"
이제는 기운을 얻은 윤성훈의 목소리가 쩌렁 울린다.
"꺄...꺄아!...그만...머...머리가...흐윽!"
음기는 이른바 귀신을 부르는 기운이다.
당연히 정기에 눌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송글송글 땀에 뒤덮인 관능적 여체가 어느 순간 파르르 떨다가 축 늘어졌다.
"휴우...나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원만보신 노사나불...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스윽 쳐들린 사내의 손은 황금빛으로 황홀하게 빛나고 있었다.
흡사 황금으로 이루어진 '황금수 (黃金手)'인듯...그의 손이 허공에서 황홀하게 움직이며 각종의
수인을 지어 보인다.
'수인 (手印)'이란 불보살의 가지와 위신력을 형상화 시킨 손의 모양인 것이다.
양 손을 활짝 벌려 엉지와 검지를 맞댄 형상에서 손가락을 엇갈리게 합장하고 다시 왼손 검지를
펴서 다른 손으로 감싼다.
이른바 광명인, 연화합장 그리고, 지권인...윤성훈은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인간이 타락하는것은 순식간이다.
아무리 공든탑을 쌓아 올렸어도 무너트리는 것 역시 순간이다.
그는 진심으로 불보살의 가피와 그에게 '밀교법술'과 무예를 전해준 그의 스승에게 감사를
드린다.
"하마터면..."
그는 합장을 하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지장보살 멸정업진언...옴 바라 마리 다니 사바하...옴 바라 마리 다니 사바하...옴 바라 마리
다니 사바하..."
지장보살...지옥 중생을 구원한다는 성인의 가피로 업장을 소멸하게 해 달라는 진언...그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있었다.
"금광수(金光手)의 힘과 그 동안 틈틈히 닦은 '밀법 (密法)'이 아니었던들...오늘 진짜 큰일날
뻔 했구나...아니, 만일 내 눈만 정상이었다 해도 오늘은 정말..."
왠지 정명한 빛을 뿌리는 윤성훈의 얼굴이다.
그는 흐트러진 옷차림을 정돈하고 한숨을 길게 내 쉬었다.
"때때로 눈이 안보이게 된 것을 원망하며 하늘을 저주하기도 했지만 역시 이유가 있었구나...
휴우!...정말 큰일날 뻔 했다..."
사실이 그러했다.
아마 조금만 더 그의 마음이 흐트러 졌던들 이렇게 기적적으로 파국을 벗어날길 없었을 것이다.
특히 남자는 여자와는 달리 시각으로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남자의 성욕은 불과 같고 여자는 물과 같다고 했던가...
"그나저나...분명 아까 제수씨의 그 몸동작...거기에 내 몸을 부벼오던 그 요사스런 술법...그래...
그 것은 분명 일종의 '요법(妖法)' 이었다...설마...제수씨가 그 것을 스스로 터득였을리는 없고..."
윤성훈의 머리가 팽팽 회전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히노기군...내 새로운 의제가 무언가 단서를 쥐고 있을터...흐음!...그 것은 천천히
알아 보기로 하고..."
무언가 단단히 꼬인 듯한 음성이다.
손목의 단추를 채우고 축 널부러진 이사미에게 다가간 그는 다시 허공에서 몇번인가 수인을
맺어 정신을 집중한 후 무언가 중얼중얼 진언을 외우기 시작한다.
천천히 다시 그의 양 손이 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금광수 (金光手)' - 항마결계인 (降魔結契印)...
윤성훈은 금빛 손가락을 뻗어 사방을 가르키며 정신을 집중하여 쳐내며 진언을 외웠다.
'금광수'는 무술이기도 했지만 일종의 법술이었으며 무엇보다 신귀와 '마 (魔)'를 물리치는 데에
탁월한 효용이 있었다.
윤성훈의 몸에서 기이하게 단향 내음이 풍기며 양 손의 광채는 더욱 그 빛을 더해갔다.
단향목은 불가에서 신성시하며 악귀를 쫒고 복을 비는 의식을 행할때 꼭 필요한 것이다.
잠시 정신을 집중한 윤성훈의 얼굴에는 무언가 장엄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는 천천히 황금빛이 빛나는 손으로 다시 이사미의 축 늘어진 몸을 짚으며 살펴 나갔다.
"으음...큰일이다...내 '금광수'와 '광명진언'에 의해 진음의 기운이 역류해 기혈이 뒤틀렸다...
의제는 과음을 한데다...이 상태에서 진음의 기운으로 요상법을 펼쳤다간 제수씨의 음기가 더욱
강성해 져서 결국엔 해로울 수 밖에 없을테니...허어, 이것 참...!"
윤성훈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야 했다.
"휴우...이 것도 인연이런가...하는수 없구만..."
윤성훈은 하는수 없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 결심을 굳혔다.
"우...우욱! 머리가..."
피잉...흔들리는 머리를 억지로 부여잡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히노기...소년은 잠시 피잉 도는 앞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갸웃 거렸다.
아직 운기법에 서투른데다 '주독 (酒毒)'을 해소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 탓일까...
목이 타는 것을 느낀 히노기가 물을 찻았다.
머리맡...꿀과 레몬즙을 가미한 따뜻한 물이 보온 주전자에 담겨 있었다.
한 그릇 따라 마시자 비로서 흔들리던 머리가 가라 앉은 기분이다.
한국인들은 흔히 술을 권하는 데에 익숙하며 일본인들은 사양하는 것에 서툴다.
주는대로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들이킨 '사케 (酒)' 때문이었는지 히노기는 그 후유증을 단단히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여긴...?"
이리저리 살펴보니 바로 히노기와 이사미가 살고있는 펜트 하우스...골든캐슬 이었다.
"그럼...형님이? 그런데 형님하고 누님은?"
무언가 불안했다.
왜 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거지?
이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히노기는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하아...하아아..."
"......"
요염하면서도 풍만한 여체는 미끈한 땀에 절은 채 확 확 달콤한 향기를 풍겨내고 있었다.
바라 보기만 해도 민망할 지경이다.
기부좌를 틀고 앉은 남자의 무릎 위에 뒤쪽으로 안겨진 채로 이사미는 쾌락에 몸을 떨고 있었다.
지긋이 감은 사내의 눈...금빛으로 빛나는 손은 뒤쪽에서부터 휘 둘러져 이사미의 미끈한 아랫
배에 대어지고 젖무덤을 움켜쥐고 있었다.
간혹 사내의 손이 매끈거리는 아랫배에서 일렁이고 젖무덤을 가볍게 밀착해서 주물거릴 때마다
자지러지는 교성을 토해내고 있었다.
"흐응...하아앙...더...더...나...나좀...하아아..."
황홀한듯 쾌락에 떠는 여체는 눈 가에 눈물마저 글썽이고 있었다.
"저...저건! 형님이...저럴 수가..."
콰락! 손아귀가 불끈 쥐어진다.
서늘한 느낌이 뒤꼭지로 화륵 치켜오르며 소년의 눈빛에 차가운 빛이 일렁였다.
'살기 (殺氣)'...증오...배신감...
얼굴이 사나워지며 자신도 모르게 일어난 야릇한 기운이 전신에 감싸였다.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여자...그리고, 존경하고 가르침 받을만 한 사내...그러나, 이런 모습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까드득 이빨이 갈리며 왈칵 슬픔마저 솟이 올랐다.
"하아아앙! 좋아...거기...더...더..."
"......!"
활짝 열려진 허벅지...농밀한 꿀물을 토해내는 꽃잎에 사내의 금빛 손이 가려지며 자지러질 듯
교성을 터뜨리는 여인의 모습...
그러나...소년은 결국 고개를 툭 떨군다.
억지로 입술을 깨물며 분을 삼키려 한다.
조용히 반쯤 열려진 문을 닫고 나서려던 그때였다.
"옴! 아! 훔! 마하 바라밀...마하 바라밀..."
나지막하게 들리는 진언소리...히노기는 살짝 고개를 외로 꼬았다.
"......?"
그제서야 히노기는 찬찬히 두 사람을 살펴 보았다.
특히 윤성훈의 모습을...
얼굴 가득 땀을 흘리고 있었으며 왠지 장엄한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그제서야 히노기는 두 남녀들의 기운의 흐름을 읽을수 있었다.
"요상 대법 (療傷 大法)?"
자신과는 다른 맑은 진양의 기운...그 것도 마를 물리치고 사기를 제어하는 그런 정명한 기운이
가득 흘러 넘치고 있었다.
짜릿짜릿 하다...왠지 꿀꺽 침이 넘어간다.
몸이 간질거려 오며 자신도 모르게 저 기운을 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신선한 양기...순양지기...그 것이 이사미의 몸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군...저건...자신의 진기를 사용한 요상대법의 일종...그러고보니 누님이 무언가 문제를
일으키신듯 하군..."
휴우...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온다.
머쓱! 그의 의형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제서야 히노기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요 근래 음기가 넘쳐나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했던 그녀였다.
필시 저 의형의 순양지기에 자신도 모르게 반응했을 테고...그 와중에 무언가의 이유로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 상처란 것도 외상이 아니라 내부장기나 특히 경혈의 뒤틀림 등으로 인한 상처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때문에 어쩔수 없이 저런 모습을...하지만 민망한 것은 사실이다.
팔뚝까지 걷어붚인 황금빛 손에 이리저리 주물려지는 여체의 모습...그 것만 해도 아찔한 판에
활짝 온 몸을 열어젖히고 야릇한 신음까지 토해낸다.
더구나 활짝 열린 허벅지에선 끊임없이 애액이 흘러 넘치고 있었다.
"하으응...하아앙..."
음양지기가 서로 치익 치익 교류하는 모습...그 것은 실로 장관이었다.
다소 발그레해진 양 볼과 활짝 살아나고 있는 여체...하지만 윤성훈의 양 팔의 금빛은 눈에 띄게
흐려지고 있었다.
더구나 얼굴 가득 땀을 줄줄 흘리며 힘들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
퍼뜩 나서려다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 역시 남자의 몸이었지만 진음의 기운을 주로 가지고 있는 터...자칫하다간 오히려 윤성훈
형님에게 해로울 수도 있다.
"흐응...좋아...으으응..."
마지막 단말마처럼 몸을 활처럼 세우며 절정감을 맛본 그녀는 이내 추욱 늘어지며 어느 틈에
새근새근 포만감 넘치는 얼굴을 하며 널브러졌다.
"후우우...정말...여태까지 이렇게 힘든 적은 없었군...후우우..."
통통 어깨를 두드리며 일어선 윤성훈...양 팔만 걷어 붙였지 흐트러짐 없이 옷을 입고 있는
상태였다.
"허허허...그나저나 진기의 상당 부분을 소모했으니...이거야 원...미치겠군..."
"......!"
무언가 가득 감정이 담긴 목소리다.
오싹한 느낌에 천천히 몸을 돌려 조용히 빠져나가려는데 윤성훈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이보게...어디 가나? 잠깐 나 좀 봐야겠는데...히노기군...! 여기 뒷정리도 해야 되겠고...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감히 이 형에게 살기를 흘려? 그렇게 안 봤는데...각오 좀
해야 되겠네...자네..."
"...혀...형님..."
오싹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였다.
히노기는 망연한채 몸을 떨어야 했다.
"그나저나 좋게 말로할때 나좀 보세나...우리 조금 심도있는 대화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것 같군...
안그런가...?"
"......!"
소년은 왠지 주눅이 들었다.
싱긋 웃음을 지으며 이리오라고 손짓하는 그의 의형이었지만...히노기는 그의 온 몸에 어리는
야릇한 분노의 기운을 느낄수 있었던 것이다.
양 발을 어깨넓이로 벌리되 무릎을 기점으로 역팔자로 튼다.
양 손바닥을 펼쳐 위 아래로 나눠 얼굴 앞에 둔다.
양 팔과 발목, 무릎 관절을 이 자세로 틀고 마보로 낮게 앉되 엉덩이를 지나치게 빼지
않는다.
이 자세로 최소 반시각을 버티며 길게 호흡을 한다.
'기천 역근 태양 내가신장. (氣天 易筋 太陽 內家神掌).'
일명 죽음의 고통을 체험하는 방법...
일반적인 '마보참장'만 해도 낮은 자세로 서게 되면 몇분도 지나지 않아 다리가 후들거리고
매우 고통스럽다.
그런데, 한국의 전승 유파인 '기천문 (氣天門)'의 내가신장의 경우 한술 더 떠 지옥을 경험
하는...아니, 죽음을 미리 경험하는 방법 이라는 악명이 붙을 정도였다.
여기 이 죽음을 경험한다는 자세를 취하고 온 몸을 부들부들 떠는 한 불행한 소년이 있었다.
나카야마 히노기...
소년은 그야말로 순한 사람이 뚜껑이 열리면 얼마나 무서운지를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중
이었다.
그리고, 사람을 말려죽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또한 체험 중이다.
"똑바로 못하겠습니까? 팔 더 올리세요! 다리 내리고요! 어허! 어딜 슬금슬금 자세가
높아 집니다!"
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대나무를 쪼개 만든 짧은 죽비가 허벅지와 어깨, 등에 부딛친다.
죽비란 것은 경책 등을 위해 대나무를 쪼개 만든 일종의 지시도구를 말한다.
소년은 현재 지옥의 고통을 실감하는 중이다.
"흐음...이사미상! 무릎이 떨리는 군요...천천히 일어서서 잠시 무릎을 푼 다음 다시 자세를
높여 '참장' 하도록 하세요...일단 무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 합니다..."
"네!..."
이사미는 지시대로 천천히 일어서서 무릎과 다리 등을 주무르고 풀어준 다음 다시 자리를
잡는다.
히노기와는 달리 자연스러운 높은 마보참장 자세였다.
"이사미상! 양 손과 발끝은 자연스레 자세를 취하시고...호흡 역시 자연스럽게 하세요...
송, 정, 자연(送, 靜, 自然 : 편하게, 고요하게, 자유롭게) 이 구결을 명심하세요..."
"따악!"
"누가 그렇게 숨을 짧게 끊어 쉬라고 했습니까! 최대한 길게! 그리고, 고요하게! 입식면면!
출식미미! (入息綿綿 出息微微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숨 모두 가늘고 길며 유장하게) 명심
하세요! 어허! 기식이 불안정 합니다! 지금 장난하자는 겁니까!"
"형님~! 왜 저만..."
"따악!"
"우는소리 나옵니다! 아직 멀었어요! 한 시간도 안됐는데 그게 뭡니까! 아! 이사미상...
30분 했으면 10분 쉬도록 하세요...그리고, 가볍게 팔단금과 오금희를 한 후에 수련을
마치세요...그리고,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히노기는 전날 밤 그야말로 소낙비같은 잔소리와 경책을 들어야 했다.
상당히 여자에대해 신사적이고 까탈스런 태도를 취하는 윤성훈이 그런 황당한 경험을 한
후에 호기심 반 흥미 반으로 벌인 자신의 잘못역시 인정했지만 이번 사단이 일어나게 된
근본원인으로 히노기를 지명 해서 밤새 달달 볶아댔던 것이다.
무엇보다 쌍수법과 같은 좌도 선도술을 이사미에게 전수하면서 왜 다른 부분에는 허술했냐
하는 것이었다.
"진음의 체질을 지닌 여자의 경우...그 같은 '음기선도 (陰氣仙道)'를 수련하게 되면 자칫
몸이 '요기 (妖氣)'를 띄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천단법 (天丹法)'과 '지단법
(地丹法)' 흔히 말하는 호흡수련과 식이요법을 병행 해 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거기에 더해 기공법을 반드시 가미해 줘야 뒤탈이 없는 거예요! 왜, 제멋대로 하는 겁니까!"
도데체 왜 무슨 사도를 수련하였길래 이사미가 저 상태인지 이실직고 하라는 잔소리와
협박에 봉영화동 권법서에서 나온 '인피(人皮 : 사람가죽)'로 된 도해를 보여주자 터져나온
윤성훈의 목소리 였다.
인피의 표면을 손으로 더듬어 본 뒤에 그 내용에 감탄하면서도 위험성을 간과한 히노기의
안일함에 버럭 노성을 질렀던 것이다.
윤성훈은 일부 초능력자들이 사용한다는 손 끝의 감각으로 책을 읽거나 사물을 판별하는
능력과 이른바 마음의 눈 이라는 '심안 (心眼)'역시 가지고 있었다.
"좌도방문(左道方門)이 왜 위험한지 아십니까! 자칫 잘못될 경우 사람하나 망치는데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 전체에 까지 폐해를 끼치기 때문인 겁니다!"
방방 날뛰던 윤성훈이 어느정도 가라앉은 것은 동이 터올 무렵이 되어서 였다.
상큼한 표정으로 일어난 이사미가 생긋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왠지 더욱 아름다워진 그녀였다.
윤성훈이 여태까지 수련한 진기를 상당히 소모시킨 결과였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던 이사미상 께는 제가 큰 폐를 끼쳤습니다...무어라 죄송하단 말씀을 드려야
할지..."
"아닙니다...제가..."
한참 그런식으로 사과하고 받기 바빳던 둘이 어느정도 타협점을 찻아낸 것은 한참 뒤였다.
어쨋든 그런 정도까지 갔으므로 최소한 윤성훈이 이사미의 뒷 배경이라도 되어 주어야
겠다는 말과 함께 이사미에게 자신에게 절을 네 번 하라고 말했다.
이른바 '사도연 (師徒連)'을 맺자는 것이다.
잠시 생각하던 이사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을 표했다.
이제 이십대 중반인 이사미에게는 현재 의지할 곳이라고는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 큰 이유
였을 것이다.
거기에 윤성훈이 히노기의 의형이 되는 관계라는 점 또한 작용했다.
더구나 어제의 경험으로 윤성훈을 신뢰하게 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세상에 어떤 남자가 그 지경 까지 갔는데 제 정신을 차리고 그렇게 빠져나올 수 있겠는가...
날아갈 듯 절을 네번 한 이사미를 바라보며 윤 성훈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곧장 이사미에게 기본적인 참장법과 팔단금, 특히 화타가 창시했다는 '오금희
(五禽戱)'를 전수했다.
팔단금은 여덟가지 기공 도인법으로 몸을 바르게 하고 기혈의 순환을 촉진시키는 방법
이었으며 오금희는 곰, 호랑이, 원숭이, 사슴, 새의 다섯 동물의 동작을 본떠 만든 기공법으로
내공을 증진시키고 특히 기혈의 조화를 이루며 음양 오행의 균형을 잡아주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히노기에게 돌아온 것은 무참할 정도의 잔소리와 극악한 변형 참장공인 내가신장의
수련이었다.
기천역근 태양내가신장...히노기가 괴로워하자 이사미역시 말렸지만 윤성훈이 웃으며 말한
한 마디에 살짝 얼굴을 붉히며 물러난 것이다.
"이 것은 남자의 정력을 강화시키는 데 탁월한 방법입니다...이사미상...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지요?"
물론 그 말은 거짓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올바른 내가신장 자세만 취해도 깊은 단전호흡이 이루어지고 하반신을 단련
시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것 또한 사실이다.
부들부들 떨면서 히노기는 여전히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다.
잠시 후, 윤성훈은 응접실에서 이사미가 공을 들인 허브티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히노기는 한 두 여자와 인연이 있는 것이 아닐 겁니다...아직 어린 나이인 데다가...
역사적으로 저런 진음의 체질인 경우 여러 부인을 거느린 것이 보통입니다.
아마도 이사미상 또한 그 것을 느꼈을 겁니다. 제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
이사미는 말이 없었다.
약간은 어두운 표정...그러나, 이사미는 고개를 쳐들었다.
또르르 이슬이 듬뿍 맺힌 눈망울이었다.
"후우...히노기는 진음의 체질인 데다가 저렇게 음기선도의 비전과 인연이 닿아버렸습니다.
더구나 온 몸에서 풍기는 기운 또한 예사롭지 않더군요...그만큼의 자질과 운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섯가지 복을 타고난...한마디로 영웅이나 귀인의 명운인듯 싶군요...목소리가 윤기가 있고
둥글며 잔잔하게 깔리며 유혹의 기운 까지 어려 있고 몸에서 향기가 나고 태도가 단아합니다.
더구나 한번 목표를 세운 것은 어떻게든 이루어 내며, 몸에 지닌 살기 또한 보통이 아닌듯
싶습니다...이사미상...그런데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저 아이를요..."
그녀는 각오했다는듯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히노기 군 것이예요...몸도 마음도...설령 그가 절 버린다 해도..."
윤성훈은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그러나 다행히 히노기는 이사미상을 버리지는 않을 겁니다...아니 절대
그런일이 없게 뼛속 깊이 가르쳐야 겠지요..."
낮게 깔리는 윤성훈의 음성이었다.
수련실로 쓰는 다용도실에서 잠시 자세를 풀고 쉬던 히노기가 왠지모를 오한에 퍼뜩
제 자세를 취하며 다시 내가신장의 오묘함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히노기의 고통은 이제 시작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