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단.
악마를 부르는 것은 정작 인간 스스로이다. (스피노자)
흐르는 물소리가 발 밑으로 들렸다.
주르르 얼마나 흘러내렸는지 모르는 눈물은 아직도 계속 흐르고 있었다.
죽고싶다...죽고만 싶다.
소년은 그렇게 생각하며 멍 하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처연한 표정을 하고 추욱 어깨를 늘어뜨렸다.
푹 수그린 고개...아래로 내려진 시야 너머로 흐르는 강물이 내려다 보이고 있었다.
덜컹 덜컹 전철 지나는 소리가 들렸다.
나카야마 히노기...일명 '바가 히노기상'...이 것이 소년의 이름과 별명이다.
소년은 슬쩍 손 안에 쥐어진 반쯤 찟어진 사진 한장이 들려 있었다.
길고 아름다운 머릿결을 지닌 소녀의 사진...그러나, 아까 보았던 천사같은 그 소녀 역시
소년을 외면 했었다.
물론 그랬을 수밖에 없었지만...
강제로 옷이 발가벗겨진채 아랫 도리에 달린 쪼그라든 페니스를 노끈에 칭칭 묶인 채로
엉금엉금 개 처럼 기어다녀야 했다.
오줌이 섞인 우유를 억지로 마시고 자위행위로 정액을 뿜는 모습을 연출해야 했다.
'오토리학원-鳳 學院'...명문에 속하는 남녀공학인 아름다운 학교의 전경이 강을 배경으로
멀리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소년에겐 지옥 같은곳일 뿐이다.
아직 역한 느낌이 입 안에 남아있었다.
질릴때까지 괴롭혀진 소년은 거의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이 되서야 풀려날수 있었다.
모멸감에 벌벌 떨며 거의 찟어지다 시피 한 옷가지...그 것도 오물에 뒤범벅이 된 것을
주섬주섬 걸쳐 입고 힘겹게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온 곳이 이곳이다.
더이상 견딜수 없었다.
눈 앞에 보이는 강물...소년은 천천히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눈 앞에 보이는 강물을 향해...
"아! 눈을 떳습니다!"
"이것봐! 정신이 드나?"
희미한 의식 너머로 무언가 포근한 것에 감싸인채 점차 부옇게 흐렸던 시야가 밝아져 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큭...커헉!"
몸을 약간 뒤척였다.
갑자기 온몸이 욱신 쑤셔온다.
놀란 누군가가 얼른 제지한다.
"이런...움직이면 안돼요!"
"여...여긴?"
몇차례 눈을 깜빡이자 비로서 시야가 바로 잡히며 주위의 상황이 파악되기 시작한다.
"구사일생 이로군...여긴 병원이네...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있어 허우적대던 자네를 발견하고
구해질 수 있었지...그나저나 어쩌다 그렇게 되었었나? 아무리 더워도 그렇지..."
"......"
중년 의사가 히노기를 진찰한 후에 편해진 얼굴로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자자...일단 안정하게 두고 나가자구...자네도 한숨 자도록 해 두게..."
"네...감사합니다..."
소년은 사람좋게 말을 건네는 중년 의사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곧 주변이 조용해 졌다.
잠시 후, 소년이 자리에서 스윽 상체를 일으켰다.
몇몇군데 타박상이 있는듯 욱신거렸지만 소년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했다.
처억 팔에 꽂힌 링거 주사를 뽑았다.
옷이 깨끗하게 병원 환자복으로 갈아입혀진 상태...소년은 벌떡 일어나 침대를내려왔다.
병실은 소년 혼자 쓰는 개인실...한쪽에 수면에 방해가 안되게끔 장치한 안전등이 있었다.
가습기에선 희미한 김이 솟아 오르고 있었고 아로마인듯한 상쾌한 향기가 감도는 병실...
벽 한쪽의 휘장을 걷어내자 개인 세면실이 드러났다.
소년의 입가에 픽 웃음이 지어졌다.
"대단하군...인간 세상도 많이 좋아졌는걸?"
거울 앞에 선 소년이 주섬주섬 환자복 상의의 단추를 끌러낸다.
윗도리를 모두 벗은 상태로 거울 앞에 선 소년...가만히 거울 속의 모습을 들여다 본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럭저럭 쓸만한걸? 뼈가 튼튼하면서 유연하고 무엇보다 필요없는 군살이 없어...관리만
잘 하면 이 몸을 가지고도 '이모탈 (Immortel)' 급에 오를수도 있겠군...바보같은 녀석...
인간은 확실히 약한 존재란 말야...어쨋거나 오랜만의 인간세상 나들이 인가? 훗훗...즐겨
주지...한 백년 정도 말이야..."
소년의 입가에 감도는 웃음...그 것은 나약하고 소심한 소년의 그 것이 절대 아니었다.
소년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다시 옷을 입고 자리로 돌아갔다.
"일단 쉬어야 겠군...차원이동으로 몸이 말이 아니야...물론 본체는 괜찮지만, 상당히 힘을
소비한 것은 사실이니...거기다 계약때문에 절대 이 인간 자신의 힘 이외엔 사용할 수
없으니...앞으로 조금 피곤하겠군...쿡쿡..."
무엇이 즐거운지 소년은 살짝 콧노래까지 부르며 세심하게 아까와 같이 링거 주사를 팔뚝에
꽂고 뒤처리까지 마쳤다.
스윽 자리에 누운 소년의 눈이 감기고 곧 사방은 정적에 휩싸였다.
며칠이 지났다.
퇴원 수속을 스스로 마친 소년이 돌아온 곳...한눈에 보아도 상당한 고급 맨션이다.
신분 카드를 긋고 이중의 방범지역을 통과해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이곳
...가볍게 휘파람 소리가 나왔다.
"휘익! 대단한데?"
툭 가방을 던져놓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한눈에 보아도 고급스런 분위기...혼자 산다고 하지만 지나치게 호화롭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한쪽에 놓인 전화기의 메세지 란에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이 보였다.
가볍게 스위치를 누르자 흘러 나오는 목소리...
"엄마다...지금 뉴욕이야...정말 무어라 할 말이 없구나...일단 몸조리 잘하고...마침 방학
이라니 불행 중 다행이구나...돈은 추가로 넣어뒀단다...아무래도 이번 여름에도 못 갈것
같구나...어떻게든 시간을 내보려 했지만...아! 이런...끊어야 겟구나...몸 건강히 식사 매
끼니마다 잘 챙겨먹고...공부도 열심히 하렴...끊는다..."
"......"
소년은 왠지 황당한 얼굴이 되어 버렸다.
한참 후에야 털썩 소파에 주저 앉으며 고개를 갸웃 거린다.
"대체...아들이 다쳤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데다가...허 참...알 수 없는 일이로군...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고 싶어도 능력을 쓸 수 없으니...내가 알기로는 인간의 여성...특히
이 지역의 여성은 모성이 강하기로 유명하다던데...잘못 알고있나? 흐음...일단 좀 더
정보를 수집해야겠군..."
팔짱을 끼고 갸웃거리던 소년이 한참 만에야 팔을 풀고 자기방으로 왔다.
책상위에 놓인 컴퓨터를 켰다.
일기로 쓴듯한 문서 파일과 일목 요연하게 정리된 자료들...주로 공부에 관련된 것들과 역사,
무술에 관한 내용도 몇몇이 보이고 있었다.
제법 심도있게 연구한 듯 책상위엔 각국의 언어로 된 무술 교본이 있었고 컴퓨터 내에도
동영상 파일 역시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흥미를 끄는 것은 한 소녀의 자료들...간간이 애닲은 심정으로 읊은 사랑의
메세지와 몰래 찍은 듯한 동영상 거기에 사진 자료까지 보였다.
"쿡쿡...모를 일이군...난 이런 타입은 질색인데...무엇보다 겉으로 이렇게 순수하고 천사...
(우엑! 소름이 끼치는군)...타입같은 인간 여자야말로 속이 어떨지 모른단 말이지...지워!
지워! "
소년은 머뭇거리지도 않고 마우스를 딸깍 거렸다.
파일들이 삭제되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렸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녀석이야? 그 흔한 연애인이나 유희에 관한 내용은 하나도 없고...얼래?
이것좀 보게? 가계부? 요리?"
소년은 기가막혀 했다.
꼼꼼하게 정리된 가계부와 요리에 관한 파일들...가계부를 살펴보던 소년이 고개를 젓는다.
"내참...기가 막혀서...무슨 재미로 살았나 몰라? 한달에 들어오는 돈만 해도 엄청나군...
휴우...그런데 쓴다는것이...기껏 요리책이나 사보고...무술 교본이나 자료만 모으면 뭘하나
이 사람아...쯧쯧..."
소년은 고개를 흔들며 팔짱을 끼었다.
"뭐 어쨋거나 좋은 조건이군...어라라? 이건 또 뭐야? 호오! 괜찮은데? 눈초리에 색기가 똑똑
흐르는군..."
소년이 갑자기 탄성을 지르며 손을 내밀었다.
작은 액자에 들어있는 사진 한장...수줍게 웃고있는 나이어린 소년과 당당한 표정으로
소년의 양 어깨에 팔을 걸치고 있는 여인의 모습...소년은 연신 탄성을 질렀다.
"몸매도 육감적이고...꼭 내 타입이군...흐음...그렇군...이게 이 녀석의 모친인가?..."
감탄한듯 탄성을 자아내던 소년이 조금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나저나 지금 당장은 어쩔수 없고...일단 해야할 일 부터 해야하겠군...인간의 몸으로도
쓸수있는 능력부터 익혀야 할 테니...우선 지낼 장소는 여기면 될것같고...따로 몸을 단련
할수 있는 장소를 알아봐야 겠군...얼레? 메세지가 와 있네? 어디보자...성적표? 흐음...
흐음...중간 이상은 되는군...후훗..."
소년의 눈이 흐믓한 곡선을그렸다.
"나카야마 히노기...오늘부터 인간으로서의 유희의 나날인가? 쿳쿳...좋은 조건을 가지고도
스스로의 삶을 버린 어리석은 인간 꼬마 대신...즐겁게 살아주지...쯧쯧...불쌍한 녀석..."
왠지모를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 거리는 소년이 혀를 가볍게 차며 고개를 저었다.
천천히 소년의 손발이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그린듯 감미롭게 움직이는 손과 발...항상 원으로 혹은 타원으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몸짓은 흡사 학의 나래짓인 양 감미롭기 그지없다.
한참 몸을 움직이던 소년이 천천히 몸을 바로하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직은 청량한 기운이 감도는 아침녘...가까이에 성공의 신으로 유명한 '신사-神社'가
있는 이곳 공원은 한창 물이오른 신록으로 우거져 있었다.
잠시 고요히 눈을 감고 주위의 기운을 음미하며 조용히 '참장'을 행했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떳다.
송글송글 가볍게 땀이 맺히고 청량한 기운이 가득 감돌았다.
"후우우..."
처억 어깨에 걸쳐둔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그때였다.
"짝짝!"
가까운 나무둥치 뒤쪽에 기대어 소년을 바라보고 있던 장년인 한 명...지팡이를 겨드랑이에
끼고 이쪽을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얼굴을 해 보였다.
절뚝절뚝 지팡이를 짚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러다 소년이 있는 자리에 미처 못미쳐 몸을 비틀 거린다.
딸강 지팡이가 바닥에 굴렀다.
"조심하세요!"
얼른 히노기가 달려들어 몸을 부축했다.
욱! 묵직한 체중이 느껴진다.
"이런...고맙군...헛헛..."
털털한 느낌의 목소리다.
그러나 히노기는 몸이 오싹해져 옴을 느껴야 했다.
'이...인간 강하다!'
강함을 숨긴 남자...거기에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정도의 의도적 접근이다.
히노기는 남자를 부축해 한쪽에 있는 긴 의자에 앉히고 남자가 흘린 지팡이를 집어다
주려 했다.
"우...우욱!"
묵직하다...한 십 여일간 단련한다고 했지만 이것은 상상 이상의 무게다.
히노기는 짐짓 표정을 지우고 지팡이를 들어다 남자에게 내밀었다.
"여기..."
남자는 픽 웃으며 받아들었다.
"고맙네...신세를 졌군..."
히노기는 속으로 색각한다...신세는 무슨...일부러 그러셨으면서...라고.
남자도 그 눈치를 아는지 가볍게 멋적은 웃음을 지었다.
"허허...그런 얼굴로 보지 말게...그나저나 꽤 열심이던데...'간화 태극권' 이던가?
더구나 자세나 동작 뭐하나 반듯하지 않은게 없고...십여일 전부턴가? 아침마다 여기서
권법을 연무 하던데..."
그걸 어떻게...라며 가볍게 놀라자 남자는 고개를 슬쩍 비스듬히 한다.
"원래 이곳은 내가 아침마다 산책나오는 길이지...얼마 전부터 자네가 연무하는 모습이
보이더군 처음에는 대단히 서툴렀었네...헌데 말이야...불과 일주일도 안되어서 자세가
잡히더라 이걸세...말해보게 자네...가르치는 사람도 없이 어떻게 그럴수 있는지..."
"...!"
히노기의 가슴에서 쿵쾅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남자를 바라 보았다.
남자는 귀엽다는듯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역시 그렇구만...비교적 노선을 따라가고 있는 완벽한 동작...하지만, 그뿐이지...중요한
속기술 없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체조나 마찬가지지...물론 호흡, 동작, 힘을 주고 빼는
모든게 완벽하지만...말일세...허헛..."
히노기는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전...'나카야마 히노기'라고 합니다...사정이 있어서 호신술을 익혀야 되겠기에 자료를 찻아
보고 나름대로 연구해 봤지만 현재 몸이 별로 좋지 않아서 일단 이 정도로 시작하려고 연습
하고 있는 중입니다..."
"흐음...믿을수 없는 일 이로군...하지만 믿지 않을수 없는게...자네...전에 다쳤던지
해서 아직 몸이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인데다가...그 몸으로는 이 이상 힘든 몸동작이나
체력 단련은 무리지..."
히노기는 놀랐지만 이내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달리기나 웨이트 트레이닝이 힘들더군요...그래도 어느 정도 몸에 맞춰 해 주고는
있습니다만..."
"그런가..."
남자는 멀리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그렇게 있던 남자가 뜬금없이 불쑥 말을 꺼낸다.
"잠시...나랑 어디 가보겠나?"
"네에?"
히노기는 에의 동그랗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남자는 쿡쿡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기분 좋게 탁탁 어깨를 두드리는 남자의 크고 투박한 손...왠지 범상치는 않은 인연이었다.
남자의 이름은 진경룡...독신이며 대만사람으로 나이는 갓 30세 라고 했다.
무역업에 종사하며 일본에는 일년중 절반 정도를 머문다고 했으며 히바라공원 아래 작은
집을 가지고 있었다.
작다고 해도 정원과 별채까지 있는규모라서 전혀 작은게 아니다.
거기에 아무리 보아도 평범한 무역업자로는 보이지 않은 인물이다.
히노기는 찻잔을 앞에두고 솔직하게 자신의 사정을 털러 놓았다.
진경룡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다가 알았다는듯 말했다.
"알았네...일종의 복수...로구만...핫핫...뭐 좋아...하지만 자네의 현재 상태와 지금까지 하던
방식으로는 어렵다고 해야하네...더구나 방학이 이제 20여일 남았다고 했었나? 그럼 더
어렵지..."
"알고 있습니다...하지만 하는데까지는 해볼 참입니다..."
남자는 잔잔한 웃음을 지었다.
"좋은 태도야...상당히 분할터인데도 복수라기보다 초연한 눈을 하고있어...좋아, 좋아...
마음에 들어..."
진경룡은 다기를 들어 재스민차를 한모금 입에 머금었다.
"자네...내가 조금 도움을 줘도 되겠나? 아아! 뭐 그런 얼굴은 하지말게...그저 자네가 마음에
들어서야...비록 본 것은 얼마 안되지만, 내 어릴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고...노력하는 자에게
당연히 도움을 줘야 하겠기에 그렇지..."
히노기는 침을 꿀꺽 삼켰다.
"도움...이라시면..."
진경룡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는 수 많은 무술이 존재하네...모두 약한자가 강해져서 능히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 있는것들이지...그러나 불과 얼마 안되는 기간안에 강해질수 있는 기법은 없다고 해야
하네...있다면 조금 상궤에서 벗어난 방법을 써야 하지..."
그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중국 권법중에서 강맹하기로는 소림이나 북파의 팔극권을 들 수 있겠지...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무술도 있다네..."
천천히 손이 움직였다.
양 손이 쳐들려 위까지 올라갔다가 어느 순간 바람을 짜르듯 내려지며 팔 다리가 번뜩였다.
"흐아아!"
"꽈릉!"
엄청난 '진각 : 발 디딤'이었다.
푸스스 천정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며 진경룡의 내디딘 발 주위의 바닥이
저저적 금이 간 것이 보였다.
"......"
엄청난 위력이었다.
"구룡방-九龍幇이란 문파의 권법중 하나일세...이름은 '진천팔격뇌-辰天八擊雷' 라고
하지..."
"구룡방...!"
당연히 히노기는 남자에게 매달렸다.
어느정도 사람의 심리 상태를 읽을수 있는 히노기 였기에 진경룡의 마음에 거짓이나 가식
같은것은 없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진경룡은 의외로 순순히 승락하며 함부로 권법을 쓰지 말것을 맹세하게 하고는 사제관계를
맺지 않고 가르쳐 주겠다는 말을 했다.
의아했지만 진경룡은 어디까지나 의례적인 친구 관계 정도에서는 가능한 일이라고 했으며,
히노기를 보니 무언가 다른 인연의 끈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은 스승이 될 수 없다는
말도 했다.
물론 남자가 가르쳐줄 기술은 어디까지나 일부이며 히노기의 사정에 맞춰서 구성될 터였다.
"아무래도 너는 체질상 나의 권법을 배우기는 어려울 것 같구나...역시 본 대로다..."
진경룡은 히노기의 옷을 벗게 하고는 몸 이곳 저곳을 살피며 각 골격을 세심히 관찰한 뒤
역시 그렇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대신에 내가 우연히 익히게 된 권법 한가지가 있다...원래 이 권법은 꽃과 나비 그리고,
새의 움직임을 관찰해서 만들어 졌다고 하더구나...이름은 '봉영화동-鳳影花動'이라고
한다...'음류-陰流'의 무술이며 동작이 간결하고 상대방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더구나, '면리장침'이라는 요결에 따라 상대가 주는 만큼의 힘으로 반격하기 때문에 안전하고
어느 정도의 속성이 가능하다. 아마 10여일정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익힌다면 네가 원하는
수준까지는 이를 것이다."
"네에..."
히노기는 내심 실망한듯 약간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실망한게냐? 하하...그렇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아마 알게 되겠지만 '봉영화동'은 내가
익히고 있는 어떤 무술보다 뛰어난 것 중 하나다...잘만 익힌다면 아마 세상에 둘도 없는
것일게야...특히 '봉영화동'을 익히면 몸매가 반듯해지고 아름다워진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이성을 매료시키는 힘 역시 얻게 된다고 하니 잘익혀 보거라..."
진경룡은 킥킥 웃으며 한쪽에 놓여있는 시렁에서 붉은 천에 잘 싸여진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받아 보거라..."
"...?"
천을 풀러보니 겉 표지가 상당히 훼손된 얇은 고서 한권이 굴러나왔다.
세필로 가득 써진 미려한 글과 도형들이 보였다.
"한문을 아느냐?"
히노기는 고개를 끄덕인다.
원래 히노기는 고전과 한문에 상당히 조예가 있던 터였다.
"네...읽을수 있을것 같습니다."
진경룡의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진다.
"훗...역시 그렇구나...왠지 네게 주고 싶더라니...다행이다...오늘부터 그 것은 네 것이다...
열심히 익혀서 언젠가 우리 쪽에 돌려주기 바란다...'진음-眞陰'의 체질을 타고난 너만이
그 것을 재대로 익힐 수 있을테니..."
'진음의 체질?'
얼핏 지나가는듯한 진경룡의 말이었다.
곧이어 가벼운 식사를 하고 잠시 쉬며 기본적인 '참장'과 몇가지 무술 동작을 연구한 뒤
본격적인 수련이 시작되었다.
"봉영화동은 남파권법에 속하며 '매화도고' 라는 분이 전한 것이라고 한다...전체 세가지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우선 너는 기본권법중 하나인 '화동권-花動拳'부터 수련해야 할
것이다."
화동권은 총 32식으로 된 단순한 권법이었다.
그러나, 그 단순한 동작의 권법도 자세를 낮추고 숨을 길게 들이쉬는 '음양 연기법' 이라는
호흡법을 곁들여 하려니 죽을 지경이다.
게다가 외공에 속하는 '수포장-水包掌'과 내공법인 '흡월화-吸月和', '일흡정-日吸精'까지
행해야 하는 데다가 하루 24시간을 거의 매달려서 하는 강행군이라 힘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포장'은 두가지로 먼저 커다란 항아리에 특수한 한약을 타서 손을 넣고 오므렸다 닫았다
하며 장을 단련하는 방법과 가슴까지 오는 물에 들어가 손으로 수면을 이리저리 내려치는
단련법이다.
단순히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동작의 반복과 수면을 내려치는 것이 전부였지만 하고 나면
손아귀가 욱신거리고 아릴 정도였다.
더구나 수면을 내려치는 동작 역시 상당한 체력을 소모시켰으며 손바닥 전체가 저릴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 인체의 70% 이상은 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수면을 진동시키는 타법을 계속
연마하다 보면 그 진경에 이르러 인체의 내면을 공격하는 수법을 얻게 되는데 이를
수포장 이라 한다.-
흡월화 일흡정은 달이 뜰때와 해가 뜨고 질때 한밤중과 한낮에 행하는 방법으로 달과 태양의
기운을 흡수하는 일종의 '기공법' 이었다.
거기에 한밤중에 일어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화동권의 형을 느릿하게 연무해야 했고
남는 시간에 학교 공부와 한자공부를 하고 특히 '화동권보'의 구결을 암기해야 했다.
진경룡은 세심하게 지도하면서 절대 틈을 주지 않았다.
스스로 처방한 한약을 주며 매일 세번 식후에 복용 하도록 했다.
진경룡은 히노기를 살피며 몇번이나 놀라마지 않았다.
역시 보면 볼수록 놀라게 하는 꼬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체질에 맞아도 불과 20일 정도 되는 기간에 익힐 권법은 아니다.
그런데, 히노기는 그 것을 해냈다.
상당히 힘든 강행군 이었지만 잘 따라오는 데다가 어느덧 봉영화동의 기본권법인 '화동권'을
능숙하게 연무해 가고 있었다.
그에게 봉영화동의 비급을 맡긴 원로 권법가가 자네만이 이 것을 전할 인재를 찻을것 이라고
했었다.
마침내 개학이 얼마 남지않은 어느 날 히노기는 봉영화동의 기본권법인 화동권을 진경룡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익혀 내는데 성공했다.
간간히 하던 추수와는 다른 어느정도 실전적인 대련을 해 보자 그런 면은 더더욱 두드러
졌다.
"흐압!"
강하게 내 뻗어진 손과 발은 무시무시한 위력을 담고 히노기에게 날아 들었다.
인정사정같은것은 없었다.
그런 위태로운 속에서 히노기는 아슬아슬하게 진경룡의 손발을 막아내던지 피하고 있었다.
심지어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마치 유술을 걸듯 다가들어 진경룡에게 기술을 걸어 자칫
몇번이고 내던져지거나 중심을 잃을뻔 했다.
"흐읍!"
더구나 어떻게 된 것인지 기술이 재대로 걸리지 않고 빗나가거나 몸의 빈틈으로 파고든
히노기에게 공격을 허용 하기도 했다.
자신도 모르게 진경룡의 손속이 격해졌다.
"아차!"
"퍽!"
히노기의 갸냘픈 몸이 투다당 내팽겨쳐 지듯 날아가 나둥굴었다.
컥컥 배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히노기에게 다가선 진경룡이 화급히 물었다.
"괜찮으냐? 이런...미안하구나..."
"윽...괘...괜찮은것 같아요...하지만 좀 아프네요..."
"그...그래...어디보자..."
잠시 히노기를 살피던 진 경룡이 길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내가 손속을 늦춘데다가 너 역시 내 공격을 몸으로 흘렸구나...자칫 잘못했으면
어디 크게 다칠뻔 했는데...정말 다행이다..."
"네에...후우우..."
히노기 역시 조금 편해진 얼굴을 해 보였다.
"아뭍은 잠시 쉬도록 하자꾸나..."
진경룡은 따뜻한 말과함께 히노기를 부축해 주었다.
잠시 휴식하며 차와 만두를 즐기던중 진 경룡이 불쑥 말을 꺼냈다.
"이제 어지간히 익힌 모양 이더구나...아주 빠른 속도요...대단한 성취다...대견해..."
"......"
살짝 양 볼을 붉히는 히노기를 바라보며 진 경룡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네게 해야할 말이 있구나...아무래도 일 때문에 일본을 조만간 떠야할 듯
하구나..."
"...!"
컥 목에 막 씹고있던 만두가 걸렸다.
한참 캑캑거리다 진경룡이 따라 건네주는 차를 마시고야 어느정도 진정 되었다.
진경룡이 허허 웃으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이런이런...괜찮느냐? 헛헛...전에 말하지 않았느냐...난 무역상인이다...비록 번듯한
사무실이나 회사를 가지고 있는것이 아닌 보따리 무역상이긴 하지만 말이지..."
와락 아련함이 밀려왔다.
인간으로서 히노기로서 산 삶중 처음으로 만난 존재...더구나 진심으로 자신을 대해주는
존재다.
"언제 떠나시나요?"
"글쎄...한 내일이라도 나가 봐야 하겠구나..."
"......"
그는 약간은 슬픈듯한 얼굴로 처연한 표정을 한 히노기를 바라보다 슥슥 머리를 쓰다듬었다.
"녀석...아주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연락처도 남길 것이고...내 메일 주소와 전화번호도
알쟎느냐..."
"......네에"
"우리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계속 이어질 것이야...그러니 너도 그렇게 알도록
하고...내가 없다고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하거라...그리고..."
"......"
"난 히노기 널 내 동생처럼 생각하고 있다...나를 괜찮다면 형 이라고 불러줄 수 있겠느냐?
나 또한 어렸을 때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많이 당했었다...때문에 네 사정이 남 같지가
않더구나...하지만, 따돌리고 따돌림 당하는 것을 단순히 무력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는 말도록
해라...다른 어른들과도 이야기 해 보도록 하고...친구들과도 어떻게든 마음을 터놓도록 해
보거라...알겠느냐?"
잔잔한 그의 말에 히노기는 와락 울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히노기는 고개를 숙였다.
"네...형...님"
"그래, 그래..."
다시 기분좋은 커다란 손이 소년의 머리를 쓰다 듬었다.
그 따스함을 몸으로 느끼며 히노기는 천천히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히노기는 그날밤 진경룡의 집에서 잠을 잤다.
뭐 집에 돌아가 봐야 누가 있는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 편이 좋은 것이다.
다음날 일찍 아침을 들고 진경룡과 둘이서 커다란 짐을 들고 나섰다.
역까지 마중을 나가 서로 헤어진 후 받아든 진경룡의 집 열쇠와 품 안에 소중히 간직한
봉영화동의 권법서...히노기는 조금은 썰렁한 기운이 도는 자신의 집에 돌아왔다.
턱 방의 의자에 깊이 몸을 묻고 앉은 히노기는 길게 숨을 내 쉬었다.
"인간이란 대단하군...마족...그 것도 상급 마족인 이 내가 아직 인간의 감정에 휩쓸리다니
...하지만 그 사람...진 경룡이란 인간은 능히 나로 하여금 형님이라는 말을 들을 만 해...
쿡쿡...어쨋든 큰 도움을 받은것은 사실이니까..."
히노기는 천천히 손을 쳐들었다.
한쪽에 놓인 손수건 하나를 허공에 툭 던졌다.
쉬익 전광처럼 손날이 움직였다.
팔랑 손수건이 두조각이 되어 떨어진다.
아마도 진경룡이 보았다면 믿을수 없다고 소리라도 질렀을 게다.
"대단한 전투술이군...치밀하고 효율적이야...이걸 좀더 익힌다면 아마 인간의 몸으로 그
이상의 존재와 맞겨룰수 있게 될것 같군...쿡쿡...어쨋든 형님께는 큰 신세를 졌어..."
이미 히노기의 무술 경지는 진경룡과 어느정도 대결할 수 있는 정도였다.
물론 히노기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힐끗 히노기의 눈길이
봉영화동의 비급으로 향했다.
"그런데...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야...무언가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져..."
히노기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특히...음류의 권법이라...거기다 형님이 나를 보고 말했었지...진음의 체질...그 것은 음기
...양기가 아닌 음기가 충만한 체질을 의미한다...음기는 곧 달의 기운...다시말해 인간이나
동물이 가진 생기가 아니라 귀기, 요기, 마기를 의미하기도 한다...그렇다면..."
히노기의 눈빛이 번뜩임과 동시에 어느새 소년은 책을 집어들고 첫장부터 꼼꼼히 훝고
있었다.
사가락 사각 책장 넘기는 소리는 계속 되었다.
그동안 어지간히 암기하고 공부했던 터라 봉영화동의 권법서는 이미 빠삭할 정도였다.
점타법, 권경, 권법요지, 연공비결...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가결 이라는 일종의 시 형식으로
되어있는 공식 같은 부분까지 샅샅이 훝었다.
하지만 별달리 특별한 부분은 없었다.
다만 봉영화동의 다른 권법...그러니까 꽃의 형상을 살핀 화동, 벌레와 나비류의 움직임을 딴
비영, 마지막으로 새의 움직임을 본뜬 봉황무 세가지 스타일의 권법이 유기적으로 연환하며
짜여진 권법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뿐이다.
"흐음...이것 참...이럴리가 없는데...분명 다른 부분이 있을텐데..."
히노기는 살짝 고개를 갸웃 거렸다.
툭툭 책상위에 놓인 권법서를 두들기며 생각에 잠기던 히노기는 그러나 무언가 특별한 것을
찻아낸듯 눈에 이채를 띄었다.
"그러고보니..."
히노기는화다닥 권법서를 들고 자세히 살펴 보았다.
찬찬히 살펴보던 히노기의 얼굴에 알았다는 듯 미소가 어렸다.
"역시...그랬었군..."
찬찬히 살펴본 권법서의 겉 표지...특히 뒷부분이 유달리 두껍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세히 보자 역시 종이를 여러겹 바른것 치고는 왠지 모르게 묵직하면서 눌러보면 무언가가
들어있는듯 하다.
책상에 꽂혀있는 커터칼을 사용해 조심스레 뜯어내었다.
"후후...이것봐라..."
무언지 알수 없는 얇은 천이나 가죽 같은 야릇한 질감의 얇은 무엇엔가 깨알같은 글씨와
도형이 어지러웠다.
"이런 이런...확대경 같은것을 이용해야 할 정도쟎아? 다행히 난 상관없지만...후후 그나저나
굉장한걸? 인간의 가죽이라...그 것도 이렇게 정교하게 다듬는 다는 것은 마계에서도 힘든
판국인데...역시 인간 세상의 물건이 아닌듯 하군...이건 말이지..."
인간의 가죽...꽤나 신축성 있고 질겼지만 자칫 훼손될것 같아 찬찬히 펼쳐야 했다.
다 펼치자 어지간한 식탁보 만한 크기다.
게다가 속이 비칠듯 투명하고 얇았으며 그러면서도 겉의 글씨나 도형은 또렷이 드러나
보였다.
"역시...인간의 가죽을 무두질해서 다듬었군...거기에 '요호-妖狐'의 체액과 '사룡-蛇龍'의
피를 섞어 쓴 글씨로군...그렇다면 역시 이 것은 요계나 마계의 물건 이라는 이야기야...
더구나 '요계'나 '마계'의 문자가 일부 보이는군...쿡쿡...어디보자...'남파 선도수련 요결'이라
...거기에 흑마술의 수련 체계도 기록되어져 있군...얼래? 이건 또 뭐야...'환희밀법' , '천종
인단요결'...'음융록'...'포박자외편'...'외단지결'...쿡쿡쿡...과연! 과연!..."
히노기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인간세상에 유희를 온 선배 마족께서 남긴 물건인듯 하군...이쪽 아래에 찍힌 부호...이건
마족들의 문장 같은것이니까...인간들로선 알 턱이 없겠지...어디보자...카슈린 지오 아스테...
핏빛 마궁의 문장이로군...쿡쿡쿡...재미있게 되었는걸?"
히노기는 힐끗 벽위의 달력을 보았다.
갈끔하게 정리된 방 안...원래 그렇지는 않았지만 히노기 본래의 성정이 어느정도 반영되어
정리정돈을 잘 하게 된 터였다.
어쨋거나 히노기로서 인생을 살아야 하는것이 이 마족의 의무이자 계약 내용 이었으니까...
달력위엔 사일 후 월요일이 개학날로서 표시되어 있었다.
"이거...좋지 않은걸? 쯧...그나마 진경룡 형님께 전수받은 내용을 수련하는 데만 해도 벅찬
판국에...이것까지 파악 하려면 머리깨나 아프겠는걸? 그래도 하는 수 없지......"
히노기는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좋은 것을 가만 놔둘수는 없지...크큭..."
히노기는 어둑해져가는 방 안에서 남모르는 미소를 지었다.
"마족으로서의 힘은 쓰면 안되지만 현재 이 인간의 능력...수련을 쌓아서 사용하는 것은
괜찮으니까 말이야...자아...어디 다소 힘들더라도 오늘의 고생은 내일의 환희가 되는 것
이니까...즐겨 보도록 하지..."
히노기는 천천히 바닥에 펼쳐진 인피로 된 문서를 집어들었다.
방 안은 점차 어스름히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