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부 마지막 이야기
문 앞에 다가선 동우는 강실장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문을 바라다 보며 들릴 듯 말 듯 애를 태우며 말을 꺼내었다.
동우의 그 말은 정말 강실장의 손 안에 SM을 쥐어 줄 것만 같은 묘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고 동우의 당당한 행동과 맞불려
정말 이루어 질 거 같은 신비로운 마법과 같은 힘마저 느낄 수 있었다.
강실장은 문을 열고 방을 빠져 나가려는 동우를 불려 세웠다.
“잠깐!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한번 들어나 볼까나?”
동우는 문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이제는 두 사람 사이에 주객이 전도된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오히려 동우보다 강실장이 더 다급해 보였다.
그 만큼 SM이라는 먹잇감은 강실장에게는 그 어떤 달콤한 초콜릿보다 더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동우는 뒤돌아서 천천히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동우의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이제서야 우리가 동등한 입장이 된 것 같군요.
이제 그럼 우리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볼까요?”
“우리가 동등하다라? 풋~
그래 그렇다고 쳐주지, 빨리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어떨까?
잡다한 서론은 다 집어 치우고 말이야”
동우의 눈에는 강실장의 조급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동우는 이미 키를 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고 느꼈고 동우는 최대한 뜸을 들이며 강실장의 애간장을 태웠다.
이미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것처럼 강실장의 눈빛은 동우에게 고정되어 있었고 동우는 한참 동안 그 시선을 즐기고 나서야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동우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강실장은 팔 받침대에 팔을 올려 놓고서는 몸을 뒤쪽으로 최대한 기댄 채
겉으로는 관심이 없는 척하였다. 하지만 내심 동우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귀를 쫑긋 세우며 경청하고 있었다.
동우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눈빛은 점점 진지해져 갔다.
방 안을 덮은 뿌연 담배 연기는 하얀 장막을 형성하듯 두 사람의 모습을 숨겨주고 있었고
그 어떠한 소리도 세어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것 같았다.
몇 분 후 동우의 이야기가 모두 끝이 났는지 두 사람은 천천히 소파에 기대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그 어떤 시간보다 길고 중요한 시간이었다.
동우의 이야기가 끝이 나자 강실장은 팔 받침대에 올려져 있던 팔을 올려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면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였다.
아마도 동우의 말에 대한 이해타산을 따지는 것 같았다.
“흠...그러니까 날보고 이사님을 배신하라는 건가?
이거 잘못하다가는 오히려 내 목이 날아가겠군.”
“배신이라고는 할 순 없죠.
이수만이 시키는 데로만 움직이던 꼭두각시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라는 소리죠.
능력도 없는 주인 뒤에서 일 하는 게 힘들지 않았습니까?
이제 그 주인을 집어 삼켜버리는 것은 어떨까요? ”
다시 한번 강실장은 생각에 잠겼다. 그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섣불리 승낙하다가는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전 알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지저분하고 꺼림칙한 일은 모두 강실장님이 처리하셨다는 것을요.
만약 그게 잘못된다면 그 오물을 그대로 다 뒤집어 쓰실 겁니까? 그 오만한 주인을 위해?”
“좋아. 만약 내가 자넬 돕는다고 치자 과연 성공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넉넉히 잡아 쳐드리죠. 제가 생각하기에는 성공확률은 20프로 정도입니다.
만약 강실장이 저의 계획에 최대한 협조를 해주신다면 30프로까지 잡아드리죠.”
강실장은 기가 막힌 지 동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30프로라?
30프로의 확률에 내 모든걸 다 걸어라 이 말인가?
이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군 크크크”
말은 그렇게 해도 머리 속에서는 이미 계산이 다 끝난 것 같았다.
“이미 실장님은 저의 말을 들었습니다.
이제 하기 싫으셔도 하셔야 합니다. 더 이상 빠져나갈 수도 없고요.
만약 거절하신다면 전 실장님을 그냥 놔둘 수가 없군요.”
“이제 내가 협박을 당하는 건가?
좋아! 좋아! 위험한 도박치고는 그 결과물이 너무나 땡기는군”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강실장은 천천히 책상 쪽으로 걸어가더니 잠겨진 서랍장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었다.
그리고는 서류뭉치를 동우가 바로 볼 수 있게 동우 앞 탁자위로 서류뭉치를 던졌다.
“그럼 이것까지 합치면 40프로가 넘는 건가? 크크크”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 동우는 궁금증에 천천히 서류를 검토하였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수록 동우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우는 강실장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무서운 인물이란 걸 느꼈다.
그 서류들은 이제까지 이수만이 어떻게 회사자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서 세금폭탄을 다 피할 수 있었는지 이수만이 지금까지 저질러온 검은 부분들이 모두 낱낱이 적혀있었다.
이미 강실장은 이수만이 자신을 버릴 경우를 대비해서 처절히 준비해 놓은 것들이었다.
서류를 다 훑어본 동우는 강실장을 올려다 보았다.
동우의 눈빛에 강실장은 '그 정도 가지고 놀라는 건가' 라고 시위라도 하듯이 여유만만한 표정이었다.
동우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강실장의 치밀함에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다.
만약 저 사람을 적으로 삼는다면 이수만보다 더 무서운 상대가 될 거이라는 것을 직감 할 수 있었다.
동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실장을 선택한 것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런 인물은 내 편으로 끌어 들일 수 없다면 적어도 적으로 만들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럼 난 그것만 도와 주면 되는 건가?”
“네, 이걸 보니 걱정할 필요가 없겠군요. 잘 처리 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아~ 참 그리고 한가지 더 조건이 있습니다. 만약 SM의 주인이 된다면 소녀들에게 자유를 주십시오.”
“그거라면 약속하지. 이 회사가 내 것이 되는 순간 얘들한테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 일은 걱정하지 말게나”
동우가 강실장을 찾아온 진짜 목적은 아마 이거였을 것이다.
물론 이수만에 대한 응징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동우가 진정 바라는 것은 소녀들의 행복과 자유였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이제 한 배를 탄 공동 운명체가 되었다.
물론 강실장은 SM을 가지기 위해 그리고 동우는 소녀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각각의 목적이 있었지만 그 항해의 마지막 종착지인 이수만의 몰락을 위해 두 사람은 천천히 노를 젖기 시작했다.
며칠 후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강실장의 연락과 함께 동우는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동우의 두 번째 목표는 바로 김의원이었다. 김의원이 이수만의 뒤를 봐주고 있는 이상
이수만의 몰락은 꿈 같은 얘기일 수 밖에 없었다. 바뀌어 말하면 이수만의 몰락은 김의원의 손에 달려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김의원을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거물급 인사가 아무나 만나준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었다.
김의원의 사무실을 배회하던 동우는 할 수없이 김의원 집으로 찾아가 때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집으로 찾아간 동우는 그 웅장함에 다시 한번 혀를 내 둘렸다.
이건 집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 철옹성과 같은 모습이었다.
높은 담벼락과 집 주위를 서성이는 검은 양복의 남자들을 보면 누구라도 움츠려 들게 만들었다.
그 남자들 때문에라도 동우는 김의원 근처에 접근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동우는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만을 바라보며 자신만을 사랑해주는 소녀들이 곁이 있지 않은가
동우는 그 소녀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며칠 동안을 집 주위를 배회하며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동우는 한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쇳불도 단김에 빼라고 동우는 앞뒤 잴 것도 없이 그 생각을 바로 실행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다음 날 아침 동우는 민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동우는 김의원의 집에서 한참을 빠져 나와 큰길로 나가는
좁은 골목길을 주시했다. 다른 길들은 모두 넓었지만 유독 그 골목길만은 차 한대가 빠져나가기에 딱 맞았다.
그리고 그 길을 매일 아침 김의원이 지나가는 것을 동우는 알고 있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9시가 되자 수행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김의원이 집 밖을 나왔고 집 앞에는
김의원의 검정색 외제차가 세워져 있었다. 김의원이 출발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던 동우는 천천히 차를 몰아
김의원의 차를 쫓아 갔다.
그리고 자신이 눈 여겨 보았던 그 골목길로 들어서자 동우는 민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큰길 입구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민호는 동우의 전화가 오자 곧바로 그 좁은 골목길로 빠르게 들어섰다.
그러자 민호의 차와 김의원의 차가 그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보게 되었고 곧바로 김의원의 차에서는 요란한 경적소리가
울리고 시작했다. 하지만 민호는 그 자리에 서 꼼짝도 하지 않았고 답답했는지 김의원의 차에 타고 있던 경호원들이
짜증 섞인 얼굴로 차에서 내려 민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쉴 세 없이 움직이는 입술은 아마도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하는 듯이 보였다.
경호원들이 민호에게 시선이 잡혀있을 때 조용히 김의원을 뒤따라 오던 동우는 차에서 내려 김의원의 차로 달려갔다.
드디어 두 사람의 만남은 이루어졌고 동우는 차에 타고 있던 김의원을 향해 소리쳤다.
“이수만과 윤아에 대한 이야기로 김의원님과 단 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만약 제 이야기를 듣지 않으신다면 아마 크게 후회하실 겁니다.”
동우가 접근한 것을 눈치챈 경호원들이 다급하게 동우를 벽 쪽으로 밀치며 저지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민호는 동우를 도와주기 위해 차에서 내렸고 그와 비슷한 시간에 김의원의 차 안에서도
또 한 명의 사내가 천천히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김의원의 비서실장이었다.
김의원의 비서가 눈짓을 보내자 동우를 제압했던 경호원들은 동우를 풀어주었다.
동우를 도와주기 위해 달려가던 민호 역시 동우가 풀려나자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몇 분 후 동우만을 남겨 놓은 채 김의원은 그 곳을 떠나갔다.
김의원이 빠져나갈 수 있게 길을 비켜주고 오던 민호는 홀로 서 있는 동우를 향해 달려갔다.
“어떻게 됐어? 만나 준데?”
동우는 말 대신 한 장의 명함을 민호에게 보여주었다.
김의원의 비서는 동우에게 명함을 주며 내일 다시 의원실로 찾아오라고
그리고 도착하면 이 번호로 연락을 하라고 이야기하고 떠난 것이었다.
“다행이네, 난 잘못되는지 알고 얼마나 마음 조렸는데.
그건 그렇고 돈 많은 인간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종이쪼가리에 금칠을 해났네”
집에 돌아온 동우는 내일 가져갈 서류들을 마지막으로 정리하였다.
꼼꼼하게 모든 것을 준비한 동우는 이제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감고 잠을 청하여도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불안감이라 해야 하나 후련함이라고 해야 하나 동우는 이런저런 감정에 휩싸여 잠이 오지 않았다.
아마 모든 것은 내일 김의원과의 만남으로 해결될 것이다.
일이 잘 풀리던 안 풀리던 내일이면 이 어둡고 길었던 터널의 끝이 보일 것이다.
그 터널의 끝에 따뜻한 햇빛이 자신을 밝혀줄 것인지 아니면 더 어둡고 깊은 어둠이 자신을 반겨줄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동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전은 받은 명함을 찾기 시작했다.
멍하니 명함을 바라보던 동우는 명함을 들고서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동우는 그 명함을 이리저리 둘려보며 내일 닥쳐 올 일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하며 김의원에게 맞설 이길 것인가를 머리 속으로 되뇌고 또 되뇌었다.
다음 날 아침 동우와 용준은 건물을 마주보며 서있었다.
높고 웅장한 건물에 비해 한 없이 작아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었지만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에 비해
두 사람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서로를 걱정해주는 따뜻함은 그 어떤 건물보다 더 커 보였다.
“너 정말 만나 볼 거야?”
“당연하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갈 수 밖에”
“내가 의사 생활을 하면서 저런 종류의 인간들을 많이 봐 왔는데
저런 인간들은 우리 같은 서민들은 인간취급도 안 한다고!”
용준은 혹시나 동우가 잘못될까 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말리고 싶었지만 동우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참 걱정도 팔자다 내가 뭐 죽으러 가니?
그리고 너 그거 모르지, 내 목숨은 네 개라는 거..
내가 만약 오늘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운명이었으면 3년 전 그때 그 사고로 이미 죽었을 거야
설사 내가 잘못되더라도 네가 복수해 주면 되잖아,
이렇게 든든한 후원군이 있는데 내가 무슨 걱정이 있겠어 안 그래? 히히”
“넌 이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오니?
김의원이 너의 말대로 움직여 줄 것 같아?
이건 마치 섶을 지고 불에 뛰어 드는 꼴이라고!!”
“나도 알아.. 하지만 날 믿어, 용준아”
동우 역시 자신이 생각한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 질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당장 도박을 봐도 항상 좋은 패를 쥐고 있을 수가 없지 않은가
비록 지금 자신이 쥐고 있는 패가 좋지 않더라도 동우는 반대로 지금 자신이 들고 있는 패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패를 쥐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 자신감이 오늘 자신을 승리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동우야...”
동우 역시도 용준이 왜 그런 말을 하는 지 알 수 있었다.
동우는 마지막까지 용준을 안심시키고서야 발길을 돌렸다.
“나 들어가 볼게”
그렇게 동우는 용준을 뒤로 한 채 이 세상과는 또 다른 작은 전쟁터로 자신을 던졌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용준, 두 사람은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용준은 승리의 여신이 동우와 함께 하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하였다.
김의원을 만나러 가는 동안 수많은 눈들이 동우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 따가운 시선들을 뚫고 간 것도 모자라 마지막으로 간단한 몸 수색까지 모두 마친 후에야 동우는 김의원을 볼 수 있었다.
문이 천천히 열리고 방에 들어선 동우를 압도하는 것은 바로 정면에 걸려져 있는 그림이었다.
그림 안에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넓은 평야를 달리고 있는 말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그 옆으로는 한눈에 보아도 값져 보이는 도자기들이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며 방문객들을 맞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는 고급 원목의 느낌이 물씬 풍겨지는 소파들이 놓여져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새겨져 있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양들은 전체적인 방 분위기와 어울려 같이 호흡을 하는 듯 고급스러움의 끝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급스러움의 정점에는 김의원이 있었고 김의원은 소파에 앉아 조용히 동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마저 흐르고 있었다.
“그래 날 보자고 한 이유가 무엇인가?”
김의원이 동우를 보자마자 건넨 첫마디였다.
동우는 왜 김의원이 여기까지 올라 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사람을 주눅들게 만드는 알 수 없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동우는 김의원의 기에 눌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앉아 있었지만 두 사람의 사이에 경계가 그어진 것처럼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너무나 달랐다.
동우는 김의원에 비해 한 없이 작아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 오듯이 흘려 내리는 땀방울들이 그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동우는 크게 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다잡았다.
숨을 크게 들이킬 때마다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점점 커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동우는 가방 속에서 어제 자신이 준비해온 서류들을 김의원 앞에 내놓았다.
동우가 준비한 서류들은 이수만에 대한 자료들이었다. 물론 주된 내용은 경민의 살인 사건에 관한 자료였다.
강실장은 동우의 부탁을 받아 이수만이 경민을 죽이도록 청부했다고 서류를 꾸몄다.
물론 그 중간역할을 했던 강실장은 자신의 이름만 속 빼놓고서는 이수만이 직접 사람을 사 경민에 대한 살인청구를 했다는
자료들을 만들었다. 그에 더해져 미리 강실장이 준비해둔 탈세와 횡령에 대한 자료들, 그리고 김의원과의 관계들까지
모든 것이 낱낱이 적혀있었다.
동우는 이수만과 김의원이 경민에 대한 사건을 덮고 싶어한다는 걸 역이용했다.
물론 동우 역시 경민에 대한 사건이 그냥 없던 일로 되는 것을 바랬지만 여전히 그 키를 검찰이 쥐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모든 것을 이수만과 엮어 그 사건을 완전히 종결시키고 싶었다.
동우는 특히 김의원이 자신의 명성에 털끝만치라도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횡령과 탈세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른 이수만의 뒤를 봐주는 사람이 김의원이란 사실이 밖으로 세어 나갈 경우
곧 있을 대선에 치명적이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이고 그러니 그런 인물과 엮여 일이 커지기 전에 스스로 이수만과 이어진 끈을
잘라버리라고 협박을 할 생각이었다.
만약 그런 이수만을 계속 비호해준다면 이 자료들을 전부 언론에 밝혀버리겠다고 언론이 어렵다면
모든 커뮤니티 사이트에 자료들을 다 퍼트리겠다고 협박했다.
“의원님과 같은 위대하신 분이 탈세와 횡령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른 인물의 뒤를 봐준다고 언론에 나오면
국민들은 그걸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그렇게 되면 의원님이 그렸던 원대한 꿈이 한낱 먼지처럼 날아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신중히 서류를 검토하던 김의원은 서류를 내려놓고서는 코웃음 쳤다.
“고작 날 만나보고 싶다는 일이 이건가? 내가 시간낭비를 했군.
그깟 일로 내가 아끼는 사람을 없애라? 웃기는군.
이 세상은 말이지 보이지 않은 전쟁터라고 어느 누가 전쟁 중에 자신이 아끼는 부하를 죽이겠는가?
정치활동을 하다 보면 이 정도 정치공세는 얼마던지 있다네
이 정도는 얼마든지 덮어 버릴 수 있어. 같은 진실이라도 어떻게 기사를 쓰느냐에 따라 결과는 180도 달라지지.
멍청한 대중들은 눈에 보여지는 것만 믿기 때문이지”
동우는 한마디라도 지지않으려고 노력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깟 일이 아닌 거 같은데요. 의원님은 어떻게 그렇게 장담을 하시죠?
의원님이 그토록 아끼는 부하가 이 전쟁의 승패를 바꿀 정도로 큰 잘못을 했다면 그래도 계속 봐 줄 건가요?”
“자네 참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군. 내 말은 곧 법이라네. 내가 그렇게 바라면 그대로 이루어 져야 한다는 말이지.
그리고 자네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고서도 저 문을 쉽게 걸어나갈 수 있을 것 같나?
난 자네가 이곳에 온 것도 날 만난 것도 다 없던 일로 만들 수 있어.
물론 자네의 흔적 또한 깨끗이 지워 버릴 수 있는 것은 말 할 필요도 없겠지
그리고 그 정도 일을 덮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라네.”
“그래서 절 죽이기라도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제가 그 정도의 대비도 안하고 호랑이 굴로 왔겠습니까?
그렇게 해 보시죠. 어떠한 결과가 생길지 저도 궁금하군요.”
물론 아무런 대비도 없었지만 동우는 당당하게 눈썹 하나 끄덕 안하고 거짓말을 했다.
“크크크 어떤 대비를 했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이제 자네와 놀아주는 것도 재미가 없군.
이제 우리 진실을 이야기해 볼까? 내가 보고 받은 바로는 경민을 죽인 사람은 이수만이 아니던데, 안 그런가?
그 일에 제시카와 자네도 관련되어있다고 난 알고 있는데
내가 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냥 놔둔 것인지 아나?
그냥 일이 커지는 것이 귀찮아서랄까, 하지만 자네가 그렇게 언론에 밝히기 원한다면
정말 그렇게 원한다면 굳이 말리지 않겠네. 지금 당장 가서 이수만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모두에게 밝히게.
그럼 내가 발벗고 나서서 이수만이 아니라 자네와 제시카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진짜 진실을 밝혀주지.
그럼 난 거짓된 정보로 인해 위기에 처한 이수만을 도와준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고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면 내가 그렇게라도 만들 것이라네.
어때? 아주 재미난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데 안 그런가? 크크크”
당당해 하던 동우의 얼굴은 조금씩 굳어지기 시작했다. 상황이 완전히 역전이 된 것이었다.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란 걸 동우는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냥 철없는 젊은 친구의 애교로 넘어가 주지
다시 한번 경고 하는데 허튼 짓 하면 바로 살인죄로 집어 쳐 넣어 줄 테니까 알아서 하게
그럼 자넨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이 제시카와 함께 평생을 감옥에서 썩을 테니까”
동우는 알고 있었다. 여기서 물러서게 된다면 모든 것이 끝이 난다는 것을...
조용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처럼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으니 모든 일들이 이수만의 귀로 흘려 들어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강실장과의 일도 틀어질 테고 이미 내성이 생긴 이수만을 상대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욱 어렵게 될 것이었다.
“제시카와 함께 평생을 감옥에서 지난다라 생각만 해도 행복하군요.”
동우는 다시한번 마음을 다 잡은 채 용기를 내며 주눅들지 않고 다시 김의원의 말을 받아 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동우 역시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동우는 결국 마지막 카드를 쓸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랬지만 더 이상 물려날 수가 없었다.
동우는 힘을 꽉 쥔 손으로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어떤 사진 한장을 만지작거렸다.
그것만은 결코 꺼내기가 싫은지 동우는 계속하여 사진을 쥔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며칠 전...
제시카가 사라져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던 그 날 윤아는 조용히 동우를 찾아왔다.
자신의 일과 제시카의 일 때문에 이리저리 발버둥치는 동우를 보며 윤아는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동우에게 윤아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단 둘만의 함께하는 공간에서 윤아는 무슨 일이 있는지 동우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채
동우에게 어떤 한 장의 사진을 건네었다.
“이게 어떤 도움이 될지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조금이라도 오빠의 짐을 들어주고 싶어.”
그 사진은 바로 윤아와 김의원이 함께 침대에 누워 있는 사진이었다.
김의원이 잠든 사이 혹시나 싶어 윤아가 몰래 찍은 놓은 것이었다.
걸그룹의 한 멤버로서 일뿐만 아니라 사랑에 빠진 한 여자로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다른 남자와 함께 찍은 그런 사진을
보여준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아마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 윤아의 상태는 말 그대로 정말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사랑과 일을 택하라고 강요한다면 윤아는 이제 주저 하지 않고 사랑을 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비록 이것 때문에 가수를 그만 두더라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윤아는 그 고통을 감수하고 동우에게 그 사진을 건넨 것이었다.
동우는 말 없이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사진 안에는 윤아의 얼굴뿐 만이 아니라 윤아가 겪었을 아픔까지 찍혀져 있었다.
동우는 그 사진에 남겨져 있는 윤아의 아픔들이 사진을 들고 있는 손을 타고 온 몸으로 흐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말 없이 사진을 바라다보는 동우의 얼굴을 보던 윤아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날 윤아가 흘렸던 눈물을 생각하면 동우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지만 동우는 꾹꾹 참았다.
순간의 화를 누르지 못한다면 더 큰 일을 그르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동우에게 있어 과거보다 소녀들과 함께할 미래가 더 소중했다.
다시는 그런 일들이 소녀들에게 일어나지 않는 것이 과거보다 더 중요했다.
동우는 손톱으로 인해 깊은 상처가 생길 정도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이가 부셔질 정도로 꽉 깨물면 겨우 분을 삭이고 있었다.
결국 동우는 눈을 한번 찔끔 감고서는 품 안에서 사진을 꺼내었다.
“의원님은 절 벼랑 끝으로 내미시는 군요. 설마 이것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으시겠죠?”
김의원은 그 사진을 보자 천천히 얼굴이 굳어갔다.
김의원도 알고 있었다 이수만의 일은 어떻게 덮을 수 있겠지만 윤아의 일은 자신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이미 소녀시대는 자신이 섣불리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국민그룹으로 성장해버렸고 아무리 자신이 언론을 잡고 있다지만
만약 윤아가 직접 나서서 눈물로 호소한다면 자신이 어떻게 손을 쓰던 여론은 급속도로 윤아를 향한 동정론으로 향할 것이고
자신은 치명적인 도덕적 상처를 입어 이번 대선에서 필패를 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대선에서의 실패.. 김의원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이 모든 것이 어린 소녀에 대한 탐욕이 나은 끔찍한 결과였다. 동우는 김의원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발견하였다.
“당신이 아무리 그걸 은폐하려고 해도 과연 누구의 말을 믿어 줄까요?
아직 대중들은 어리고 한없이 약한 이 소녀의 편을 들어 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그걸 밝히면 윤아도 나 못지않게 타격을 받을 텐데, 정말 괜찮다는 건가?”
물론 그 사실이 밝혀지며 윤아는 더 이상 소녀시대라는 걸그룹으로서 활동을 못 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윤아에게는 사랑 하지 않는 사랑에게 자신을 내던지는 일은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었고
동우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 고통을 이겨내는 시간은 점점 더 길어져 갔다.
그리고 그 고통의 시간들은 가수로서 누리는 그 어떤 영화보다 더 끔찍한 것이었다.
동우는 며칠 전 윤아와 함께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였다.
그 중에는 이번 일로 만약 최악의 상황까지 가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도 들어가 있었다.
동우와 윤아는 그 다음 일을 함께 꿈꾸었다.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동우는 윤아와 함께 한국을 떠나 조용한 곳으로 가
평생 윤아의 곁에서 함께 해 줄 것이라고 모든 것을 시간이 해결해줄 때까지 지켜줄 것이라고 윤아에게 이야기 해주었고
두 사람이 함께 꿈 꾸었던 상상을 김의원에게도 그대로 이야기 해주었다.
동우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해 보였고 눈빛에는 진심이 들어가 있었다
“이제 보니 자네가 아니라 내가 무리한 배팅을 하고 있었군.
이래서 세상이 재미있다는 건가. 난 풀하우스를 쥐고 있다고 자신만만 했는데 이제 보니 자넨 포카드를 쥐고 있었군.
풀하우스로 포카드를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지. 좋아 내가 졌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나?
“간단합니다. 이수만을 그만 의원님의 손에서 놓아주는 동시에 이수만이 그 동안 저질러온 죄값을 치를 수 있게
검찰 쪽에 약간의 입김을 불어넣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다시는 윤아뿐 아니라 다른 소녀들을 건드리지 말아주십시오.
그것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우린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을 겁니다.”
동우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 근데 말이지 난 이미 이수만이라는 패를 버렸는데
자넨 아직 그 포카패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언제 다시 와서 날 협박할지 어떻게 알지?”
“그건 제 목숨을 걸고 약속을 하죠.
저희를 건드리지 않는 이상 저도 이 패를 다시 꺼내는 일이 없을 거라고 말이죠.”
“자네 목이 그 정도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당연하죠. 누군가에 있어서는 당신보다 더 가치 있는 목숨이니까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한 목숨 소중한 걸 아니까요”
동우는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소녀들이 워낙 유명해 건드리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소녀들이 인기가 떨어지고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날 경우 김의원은 자신과 소녀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란 걸 말이다.
저런 종류의 인간들은 자신의 치부를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을 절대 살려둘 사람들이 아니었다.
동우는 그것을 알기에 그 패를 절대 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가기 전에 한가지만 더 말씀 드리죠.
만약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신다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그렇게 더럽고 추잡스런 짓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지금 날 훈계하는 건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그리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로서 훈계가 아니라 부탁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수많은 눈이 의원님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요.”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는데 자네가 처음이군.
왠지 자네의 그 배짱이 마음에 드는군. 어떤가 나와 같이 일 해 볼 생각이 없는가?”
“정중히 거절 하겠습니다.
비록 지금은 소녀들의 매니저가 아니지만 제 마음 속에서는 영원히 소녀들의 매니저 일뿐이니까요.”
동우는 마지막 그 말만을 남긴 채 의원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김의원은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 전화는 바로 이수만을 잡기 전에 마지막으로 김의원의 의중을 물어보는 강철중검사의 전화였다.
“뒤끝이 남지 않도록 깔끔하게 처리 하도록 해.
이수만이 기자들과 만나 나에 대해서 허튼 소리 못하도록 철저히 격리시켜. 알아들었지?”
김의원은 어떻게 보면 정말 냉정한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을 시는 그게 어떤 사람이라든지 버릴 때는 아무런 미련 없이 바로 내치는 그런 인물이었다.
아마 그런 냉철한 판단력이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게 만든 수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김의원은 다시 한번 강철중검사에게 주의를 주었다.
혹시 나마 이수만이 자신에게 버려진 것을 눈치채고 물귀신 작전으로 자신을 대해 이상한 소리가 할까 봐 걱정인 것이었다.
전화를 마친 강철중 검사는 자신의 수하들을 이끌고서는 SM으로 들어갔다.
이사실에 도착한 강철중검사는 굳게 닫힌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강실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이수만은 강철중검사의 갑작스런 등장에 자신들의 이야기가 끊겨 기분을 잡쳤는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강철중검사를 기분 나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강철중 검사는 천천히 이수만에게 다가가 명찰로 보여주며 형식적인 절차를 밞았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형사 7부를 맡고 있는 강철중 부장검사입니다.
당신을 살인, 공금횡령, 탈세 등의 혐의로 구속하겠습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당신이 증언을 함으로써,
그 내용이 법정에서 당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이수만은 어이가 없다는 듯 얼굴이 뻘겋게 변할 정도로 격분한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강철중검사의 말을 끊으며
강철중검사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그런 이수만의 행동에 강철중검사는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이미 김의원에게 내쳐진 이수만이었지만 진작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른 채 김의원의 이름을 거론하며
목에 힘을 잔뜩 주며 자신에게 소리치는 이수만의 모습이 얼마나 웃기겠는가
강철중은 이수만의 말들을 가볍게 무시한 채 바로 끌고 나갔다.
이수만이 그렇게 사람들 손에 이끌려 이사실을 빠져 나간 후 강실장은 김의원에게 결과를 보고하였다.
“네, 김의원님. 방금 잘 끝났습니다.
그 다음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무리는 제가 짓겠습니다.
그런 일까지 의원님께서 손을 쓰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가 이미 교도소로 믿을 만한 사람 보냈습니다.”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 김의원과 강실장 사이에 통화는 계속되었다.
“네? SM을 저에게 맡기시겠다고요?
고맙습니다. 의원님! 이 한 몸 바쳐 의원님을 모시겠습니다.“
김의원은 동우와의 약속대로 강실장에게 SM을 가질 수 있도록 힘을 써주었다.
강실장과 김의원이 통화를 하는 사이 회사 앞에서는 사원들과 일반인들이 모여 이수만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수만은 그렇게 검은 차에 태워져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고 그런 모습을 먼 곳에서 동우와 써니가 지켜보고 있었다.
동우는 끌려가는 이수만을 보며 예전에 이수만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세상은 강자만이 살아남는다고 그러니 억울해 하지 마라' 는 그 말...
동우는 분명 그 때 이수만을 향해 그 말을 꼭 기억하게 해주겠다고 이야기 했었다.
결국 이수만은 김의원에 비하면 한없이 약한 존재였고 이수만의 말대로라면 자신보다 강자인 김의원에게 당한 거였으니
억울해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 한 일인가.
모든 것이 마무리 될 때쯤 민호와 미연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있는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고 결혼식이 끝난 다음
평화롭던 동우의 집은 난데없이 소녀들로 인해 북적이기 시작했다. 동우는 태연에게 무슨 일이 생겼냐고 질문을 하였다.
“무슨 일이 생기기는 우리 같이 여행 갈 거잖아”
“우리라니? 그리고 갑자기 왠 여행?”
동우는 갑작스러운 여행이야기에 당황하였지만 태연은 이미 약속을 했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민호의 신혼여행에 따라갈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뭐? 남 신혼여행에 왜 따라가냐”
“머 일종의 예비 신혼여행답사라 할까”
동우는 태연의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에 멍하니 태연을 바라다 보고 있던 사이 이번에는 윤아와 서현이가 동우의 방에 들어왔다.
두 소녀는 동우를 보자마자 동우의 팔을 붙잡고서는 밖으로 끌고 나갔다.
어떨 결에 서현이의 손에 이끌려 차에 탄 동우는 그제서야 수영이와 효연이가 보이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근데 시카야, 효연이랑 수영이는 안 가는 거야? 안보이네.”
“응, 효연이는 용준이 오빠랑 단둘이 여행 간다고 그랬고
음..수영이는 강실장님 아니지 강이사님이랑 데이트 하러 갔어.”
“강이사가 수영이와 데이트를?”
“엉. 뭐 자기는 능력 있고 키 크고 잘생긴 사람이 좋다나
그리고 강이사님은 자신한테 맡겨달래 자기가 잘 길들이겠다고 이야기 하던데”
예전에 잠시나마 강실장과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 배를 탔었지만
그 이후로도 여전히 날이 선채로 자신을 대하던 강실장이 요즘 들어 예전과 달리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부드러워진 것을 느낀 동우는 그게 바로 수영이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실장 같이 차가운 인물이라도 사랑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동우는 다시 한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세상을 움직이고 지배하는 사람은 바로 남자지만 그 남자를 움직이는 사람은 여자라는 속설이
정말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말이지 난 오빠처럼 능력 없고 키 작고 못생긴 사람이 좋던데 히히”
“야~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그걸 이제 알았어. 히히~메롱”
시도 때도 없이 틈만 나면 동우를 놀릴 기회만 찾고 있던 제시카는 소정의 목표를 달성했는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좀 전 까지만 해도 동우는 그 속설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정도였지만 지금 제시카에게 꼼짝없이 당하는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정말 그 말이 맞을 수 있다는 확신까지 들었다.
'하지만 어때.. 지는 것이 이기는 거라고 저렇게 사랑스러운 여자와 사랑에 빠질 수 있다면 그 정도쯤이야’
그렇게 동우와 소녀들은 웃으며 또 다른 추억을 만들기 위해 출발을 하였고
1년 동안 겪었던 아픈 기억들은 모두 남겨 놓은 채 발리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동우와 소녀들이 모두 떠난 뒤 아무도 없는 동우의 집 안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흘려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가 TV를 켜놓고 나온 것이었다. 비록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소식이 있는 듯
그 소리는 집안을 맴돌며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TV에서 울려 퍼지는 안타까운 소식은 바로 갑작스런 이수만의 죽음에 대한 뉴스였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이수만이 교도소 안에서 목을 메어 자살을 했다는 믿지 못할 뉴스였다.
그게 과연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언론에서는 연일 자살로 몰아가는 기사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푸른 하늘과 맞닿아 있는 듯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에메랄드 빛의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섬 발리의 한 리조트 안에서는 두 사람만의 은밀한 대화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아~윽~ 동우야 아파 살살해 줘~”
방 안에서는 한 소녀의 절규에 가까운 신음 소리와 함께 한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닫힌 문틈세로 세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문 밖에서는 그 소리를 놓치지 않고 염탐을 하듯이 세 명의 소녀들이 문 앞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서는 서 있었다.
세 사람은 오늘 제시카가 여자로서의 처음으로 남자를 받아 들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잠시나마 동우와 함께하고 싶다는 제시카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고 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켜주었지만
괜히 제시카가 부럽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세 명의 소녀들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지도 몰랐다.
세 사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더욱더 소녀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고
문 밖에서 몰래 엿듣던 세 사람은 자연스레 방 안에 모습들이 머리 속으로 그려졌다.
동우에게 매달려 아양을 떨고 있을 제시카의 모습과 그런 제시카를 한 마리의 사나운 짐승이 된 것처럼 짓누르고 있을
동우의 모습이 머리 속으로 그려지자 세 사람의 심장은 묘한 흥분으로 마구 뛰기 시작했고
콩닥콩닥 귓가로 들리는 심장박동 소리는 그 요상한 기분을 온 몸으로 펴 나르고 있었다.
머리 속 작은 상상으로 시작된 묘한 기분은 심장으로 전달됐고 곧바로 끓어오르는 피와 함께 다시 뇌로 전달되어
소녀들은 더한 상상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것이 반복되고 반복돼 세 명의 소녀들은 극도의 흥분에 휩싸였다.
소녀들은 그 야릇한 기분에 이끌려 지금 당장이라도 저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야~ 너희들 여기서 뭐해?”
온 몸이 적셔버릴 정도로 흥분에 휩싸였던 소녀들은 미처 티파니가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했고
티파니의 말에 겨우 상상 속에서 빠져 나온 소녀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세 명의 얼굴을 보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티파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인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대충 짐작 할 수 있었다.
“너희들 뭐야~ 문 밖에 서서 그렇게 마음 졸이고 있었던 거야? 어이구.
사랑은 말이지 쟁취하는 거야!! 뭐해? 안 들어가고?
지기 싫으면 들어가서 오빠의 마음을 사로 잡아 보라구!!”
그러더니 티파니는 문을 열어 세 사람을 방 안으로 떠미는 것이었다.
세 소녀의 뜻밖에 등장에 놀란 제시카와 동우는 멍하니 소녀들을 쳐다보고 있었고
티파니는 동우와 네 명의 소녀들만 남겨놓고서는 문을 닫아버렸다.
“제시카에 태연에 윤아에 서현에 오늘 동우오빠가 죽어나겠구나
흠...그나저나 왜이리 부끄럽지 나도 다시 들어가 말아?”
세 명의 소녀들을 밀어놓고 가던 길을 가려던 티파니는 닫혀진 문을 바라보며 야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1 년 후...
모든 것이 평화롭게 흘려가던 시간은 대선이라는 빅카드로 인해 급박하게 흘려갔다.
온 국민의 관심 속에서 대선이 시작되었고 자신이 당선 될 것이라고 자신만만하던 김의원은
40대의 젊은 바람을 이끌어낸 다른 대선후보에 참패하여 결국 낙선을 하고 말았다.
경제적으로는 성공한 인물이었지만 정치적으론 기본적인 지원세력이 없었던 김의원은 그 정치적 빈 공백을
지금까지 벌어 둔 돈으로 사람들을 사 들어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참패를 하면서 자신에게 비위를 맞추며
떠받치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떠나가기 시작했고 무리하게 자금을 끌어 들었던 김의원은 결국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비수가 되어 돌아왔고 김의원 측은 점점 심한 자금압박을 받게 되었다.
자금동원력이 약한 작은 계열사들이 하나 둘씩 쓰려지기 시작했지만 시대 흐름에 뒤쳐진 옛날의 경영방식을 고집하던 김의원은
썩은 살을 짤라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곪아 터져버리도록 방치해 두었다. 결국 건실한 다른 계열사에서 자금을 빼와 썩은 부분을
치료하던 김의원은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고 이젠 더 이상 길이 없는 벼랑 끝에 서게 되었다.
결국 끝도 없이 추락하던 김의원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올라 가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지라도 내려가는 것은 정말 눈 깜짝 할 사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절대자는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점점 사라져갔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가십거리가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술렁이게 만들고 있었다.
집이나 식당에서나 심지어 길을 가다가도 TV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었다.
서너 명씩 무리를 지어 뉴스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네모난 상자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으며 작은 탄식과 함께
반신반의하며 서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단독보도] “소녀시대를 훔쳐간 사람은 누구인가?”
소녀시대의 마음을 훔쳐간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지금 인터넷에서는 한 장의 사진 때문에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고 있습니다.
그 사진의 코멘트에서는 지난 3월 9일, 국내 최고의 걸그룹 중에 하나인 소녀시대의 한 멤버가
몰디브에 위치한 한 아름다운 산호 섬에서 조촐하게 가족들과 멤버들만 모아놓고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소녀시대 중 한 멤버로 알려진 A양과 결혼식을 올린 그 남자는 소녀시대의 전 매니저로 알려진 김모씨로 알려져 있으며
A양과 김모씨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작은 리조트에서 둘만의 언약식을....
TV에서 나오는 소리는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멀리 저 멀리 사방으로 펴져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