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부
문 앞에는 동우가 걱정이 되었는지 아침 일찍부터 나와있는 제시카의 모습이 보였다.
싸늘한 아침시간, 제시카는 오랜 시간 동안 문 밖에서 기다렸지만 별탈 없이 돌아온 동우와 윤아의 모습을 보자 안심이 놓였다.
하지만 지난번 일로 여전히 동우에게 삐져 있던 제시카이기에 일부러 동우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런 제시카의 모습에 서운하기도 했지만 동우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밖에서 들려오는 제시카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얼마 있지 않아 태연이와 서현이도 뒤늦게 뛰쳐나왔다.
모두들 걱정스런 눈빛으로 동우와 윤아를 바라보고 있었고 동우는 그런 소녀들을 모두 안심시킨 후에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바로 쉬지 않고 먼 길을 운전 해서인지 아님 어젯밤 윤아와의 불 같았던 사랑 때문인지
몹시 피곤해하던 동우는 집으로 돌아가자 마자 침대에 누워 바로 잠이 들었다.
하지만 동우는 소녀들이 걱정 되어서 특히나 윤아에 대한 걱정으로 깊은 잠에 빠질 수가 없었다.
동우는 한 두 시간 남짓 동안 눈을 부친 후 바로 일어났다.
동우는 대충 식사를 마치고서 바로 민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나 이수만이 어젯밤일로 소녀들에게 해코지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되기도 하였고
윤아나 제시카의 문제로 민호에게 상의도 할 겸 여러 가지 이유에서였다.
한참 바쁜지 민호와의 통화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전화를 끝마친 동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도 아무 일이 없는지 평상시로 다름없는 하루라고 민호는 동우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하긴 소녀들이 이수만의 돈줄인데 섣불리 소녀들에게 이상한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순간 들었다.
동우는 이왕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거 소녀들을 보려 집을 나섰다.
소녀들이 촬영을 하고 있는 한적한 야외촬영지에 도착한 동우는 소녀들과 민호를 찾기 위하여 주위를 서성였다.
때마침 사람들로 북적이는 한 곳이 보였고 동우는 사람들에게로 다가갔다.
그곳에 도착한 동우는 사람들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고 그 안에는 어떤 쇼 프로그램을 촬영하고 있는지
촬영장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역시나 소녀들도 다른 게스트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 환한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미소는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동우는 그런 소녀들이 대견스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윤아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동우는 괜히 미안하고 마음이 괴로웠다.
카메라 앞에서 애써 웃고 있고 있지만 동우는 알고 있었다.
저 카메라 앞에서 웃고 있는 윤아의 모습 안에는 저 웃음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가슴이 저려왔다.
동우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동안
반대편에서 소녀들을 바라보고 있던 민호는 반대편 쪽에 서 있는 동우를 발견하고서는 동우에게로 다가갔다.
“언제 왔어? 뭔 생각을 그렇게 해? ”
민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동우는 민호와 같이 조용한 곳으로 이동하였다.
하지만 동우의 모습을 본 사람은 민호뿐만이 아니었다.
요즘 동우와의 유치한 사랑싸움에 기분이 많이 가라앉아 있던 제시카는 아침에 동우를 그렇게 대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좀처럼 촬영에 몰입하지 못하고 있었고 틈만 나면 딴짓을 하며 이리저리 주변을 바라보다 제시카 역시 동우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었다.
힐끗힐끗 주위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동우를 바라보던 제시카는 민호와 동우가 시야속에서 사라지자 괜히 서운해 하였다.
드디어 길고 긴 촬영이 끝마쳤고 제시카는 촬영이 끝남과 동시에 동우와 민호가 사라진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제시카의 행동이 이상한지 태연은 제시카에게로 다가갔다.
“왜 그래 시카야? 누구 찾아? ”
태연의 질문에 놀란 제시카는 정색을 하며 대답하였다.
“어... 아니 그냥 민호 오빠에게 볼일이 있어서 민호 오빠는 어디 갔지?”
제시카는 민호를 찾는 척 하면 촬영장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동우가 보고 싶어서 찾는 게 아니라고 난 그냥 민호 오빠에게 다음 스케줄을 물어보기 위해서라고 암 그렇지 그렇고 말고’
제시카는 스스로에게 쓸데 없는 변명을 하며 민호를 찾기 시작했고
코디들에게나 스텝들에게까지 민호의 위치를 물어보며 민호를 찾고 있었다.
촬영장을 거의 한 바퀴 다 돌아보고서야 겨우 제시카는 저 멀리 주차되어 있는 동우의 차를 발견하였다.
혹시나 동우가 있을까 기대감에 차있던 제시카는 동우의 차를 발견한 순간 입가에는 미소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제시카는 금세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동우의 차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천천히 다가가던 제시카는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제시카의 시선이 머문 곳에서는 동우와 민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무슨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지 둘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무슨 이야기를 저렇게 심각하게 하는 거지?’
제시카는 두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게 허리를 숙인 채 뒤로 돌아갔다.
동우와 민호는 차 옆 그늘진 나무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제시카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지를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 진심이야? 정말 그렇게 할거야?”
“어쩔 수 없잖아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뿐이 없는 거 같아요”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제시카가 모를 줄 알아?”
동우는 무언인가 결심한 듯 보였고 그런 동우를 민호는 말리는 모습이었다.
동우의 차 뒤에 숨은 제시카는 두 사람의 대화 중에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더욱더 귀를 쫑긋 세웠다.
‘내가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일까?’
제시카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뭔지 모를 긴장감에 제시카의 신경은 두 사람의 대화 속으로 모두 쏠려 있었다.
동우와 민호는 여전히 대화를 이어갔고 오히려 가까이 다가온 제시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점점 더 대화에 몰입하고 있었다.
“부탁이에요 형. 제가 하자는 데로 해주세요.”
동우는 제시카가 절대 그 사실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제시카에게는 항상 좋은 일들만 항상 웃을 수만 있는 그런 일들만 생기기 바랬었다.
만약 제시카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평생을 죄책감에 아파할 것이고
그런 제시카의 모습을 동우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동우는 지난 며칠 동안 계속 생각해 봤지만 결국 어떠한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하였다.
동우는 최대한 제시카가 모르도록 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제시카가 알든 모르든 동우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이젠 제시카가 알게 되더라도 제시카에게 피해가 안 가게 하는 것이 최종목적이었다.
“제시카를 위해서라면 저도 용준이처럼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어요.”
”용준이나 너나 똑같구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야?
그걸 믿어줄 거 같아? 우리나라 경찰들이 그렇게 바보냐고! 그래 정말 운 좋게 너의 말을 믿는다고 치자
그렇다 해서 현장에 있었던 제시카에게 아무 일도 없을 거 같아?
최소한 참고인 자격으로도 경찰에 소환 될 것이고 제시카가 그 사실을 알면 가만히 있을 거 같아?"
“알고 있어요 형. 하지만 그때 알게 된다면 이미 늦어버렸기에 제시카도 어떻게 할 수 없을 거예요. 안 그래요?
민호형, 안 도와 주실 거면 다른 방법을 말해보세요? 없죠?
그러면 제가 부탁하는 데로 해주세요. 알았죠? 형!!”
동우는 이미 마음을 먹었는지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였고 민호 역시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지 답답해 하였다.
“하여튼 그 일은 안돼. 아직 시간이 남아 있을 줄 모르잖아 좀더 생각해보자”
두 사람의 대화는 이제 거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듯 보였다.
철퍼덕...
순간 민호와 동우 뒤에서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우와 민호는 그 소리에 듣고서는 주위를 둘려보던 중 동우의 차 뒤에서 쓰러져 있는 제시카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동우와 민호는 사색이 되어 제시카에게로 달려갔다.
몇 시간 후 동우를 비롯해 소녀들은 모두 병실 안에 모여 있었다.
제시카가 그렇게 쓰러진 후 소녀들의 스케줄은 모두 취소가 되었고 언론에서는 더위에
지친 제시카가 과로로 쓰러졌다고 알려졌다.
병실 안에서는 침대에 누워있는 제시카를 모두들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제시카에 대한 걱정으로 할말을 잃은 소녀들 사이에는 잠시나마 정적이 흘렸고
그 정적을 깨며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던 유리가 동우에게로 다가갔다.
“갑자기 시카가 왜 저런지 오빠는 알고 있죠?
윤아나 태연이나 요즘 이상하고 우리한테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면 다 말해줘요 오빠”
소녀들의 시선은 모두 동우에게 집중되었다.
동우는 더 이상 숨길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가족과 다름 없는 소녀들에게 더 이상 진실을 숨긴다는 것은 어쩌면 소녀들간의 믿음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혹시나 몰랐다 다른 소녀들도 윤아처럼 똑같이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말을 못하고 혼자서 아파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우는 우선 태연과 윤아에게 눈짓을 보냈고 두 소녀 역시 동우의 마음을 읽었는지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동우는 윤아와 태연이를 제외하고 나머지 소녀들을 가까이 불러모았다.
그리고 나서 동우는 차분한 목소리로 윤아의 일과 경민의 대한 일까지 모두 것을 소녀들에게 말해주었다.
하지만 마지막 마지노선이라 해야 할까 제시카의 일만은 진실을 이야기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마지막에 경민을 죽인 사람은 자신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소녀들은 할말을 잃은 채 모두 경직되어버렸다.
하지만 지금 동우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던 제시카는 정신을 차렸지만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주위에서는 자신을 걱정하는 멤버들과 동우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아까 전 충격으로 눈을 뜰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동우의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제시카는 더욱 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동우의 이야기가 끝이 나자 제시카는 기절하기 전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들을 되뇌어 보았다.
분명 제시카는 자신이 경민을 죽였다 란 소리를 들었는데 지금 동우는 또 다시 소녀들 앞에서 진실을 이야기 하고 있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서 애를 쓰는 동우의 얼굴이 눈앞에 그려지자
제시카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 속에서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제시카는 눈을 감은 채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까지도 자신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동우를 생각하면 제시카는 동우가 그렇게까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고 이제까지 사소한 일에 삐져 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난 동우에게 이렇게나 사랑 받고 있는 행복한 여자였던 거야...’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 소녀들은 서로에 대해서 더욱 더 잘 알게 되었다.
다른 소녀들은 진심으로 윤아와 제시카를 걱정해주었고 이제 정말 소녀들은 그냥 같은 그룹의 멤버가 아닌
서로의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진짜 가족이 된 거 같았다.
동우는 그런 소녀들의 모습을 보고서는 다짐하였다.
이제까지 자신은 소녀들에게서 과분한 사랑을 받기만 했지 저 소녀들을 위해서 제대로 해 준 것이 과연 무엇이지
이제는 자신이 저 소녀들을 위해 나서야만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예전과 반대로 이제는 동우가 제시카를 위해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아왔다.
병실로 향하는 동안 동우는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
자신을 위해 매일 병실을 찾아준 소녀들의 따뜻한 사랑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동우는 만약 모든 일들이 잘 해결된다면 정말 소녀들만을 위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문 앞에 도착한 동우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
하지만 누워 있어야 할 제시카는 온데간데 없고 텅 빈 병실만이 동우를 반겨주었다.
순간 제시카가 사라진 모습을 본 동우는 걱정이 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별 탈없이 제시카가 깨어 난 것을 뜻하는 것이니 어느정도 마음이 놓였다.
‘어디 바람 쐬러 갔나?”
동우는 이불자리를 정리하기 위해서 침대로 걸어갔다.
그러자 침대 위에 놓여진 한 장의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쪽지를 열어보니 하얀 쪽지 위에는 심란한 제시카의 심정을 반영하듯 갈겨 쓰여진 글자들이 눈에 띄었다.
동우는 천천히 글을 따라 읽어 나갔다.
그 쪽지 안에는‘내가 저지른 일 내가 마무리 지을게.’라는 글을 시작하여 빼곡하게 무엇인가가 쓰여져 있었다.
동우가 제시카를 사랑하는 만큼 제시카 역시 동우를 사랑하기에 동우가 그런 행동을 하게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결국 제시카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자신이 매듭 짓기로 마음먹었던 것이었다.
동우는 글을 끝까지 읽지도 않고 병원을 빠져나갔다. 아니 읽어볼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1분 1초가 아까운 시간이었다. 동우의 가슴 속은 타들어갔다.
만약 제시카보다 늦게 도착 하면 어떻게 하나 조마조마 했고 진짜 그렇게 된다면 그 이후에 일어날 일들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허겁지겁 경찰서에 도착한 동우는 주위를 둘려보았다.
다행히 제시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제시카가 안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기에 동우 역시 망설이지 않고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다급한 동우의 심정과는 반대로 경찰서 안은 너무나 조용했다.
만약 제시카가 왔다면 이렇게 평화로울 수는 없기 때문에 동우는 제시카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한번 더 경찰서 밖을 둘려보고서는 제시카가 없는 것을 확인 한 동우는 마음을 굳혔다.
이제 더 이상 늦춰 질 경우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몰랐다.
제시카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으니 더 이상 시간을 끌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동우는 채형사를 찾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무엇인가를 주섬주섬 챙기고 있는 채형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동우는 채형사에게로 걸어갔다.
“채형사님…”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든 채형사는 동우를 보자마자 멱살을 잡더니 동우를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미 무엇인가에 잔뜩 화가 난 것 같았다.
“자네 지금 날 놀리려고 왔나?
내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구경하러 왔냐고!"
동우는 채형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2시간 전...
채형사는 평상시와 다름 없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있었다.
“선배님, 서장님이 찾으시는데요”
이른 아침부터 자신을 찾는다는 김형사의 말에 채형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서장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 왔는가”
채형사는 서장에게 가벼운 목례를 한 후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뒷짐을 진 채 서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었다.
채형사가 왔는데도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뜸을 들이던 서장은 얼굴에 난색을 표하며 겨우 입을 열었다.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작년에 그 총기 우발 사고 있지 않은가”
“네?”
난데없이 작년이라니 채형사는 기억을 천천히 더듬어 보았다.
작년 이 맘 때쯤인가 채형사가 어떤 살인사건의 용의자에게 총기를 사용하여 다리에 상처를 입힌 것으로
과잉진압이라는 논란이 있었지만 그 당시 정당방위로 대충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서장의 입에서 그 사건의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이었다.
“그때 그 사건에 대한 문책이 내려왔네. 감사가 떴는데 그게 문제가 된 모양이야
인사청문회가 있을 때까지 대기발령이라더군.
언제 다시 자넬 부르지 모르겠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휴식이나 취하고 오게나”
채형사는 기가 막혔다.
길면 길다고 할 수 있는 1년이란 시간이 흘렸는데 이제 와서 다시 그 사건을 들추어 내어 징계가 내려왔으니
채형사의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 할 만 하였다.
그리고 그 상황은 정말 위급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총기사용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이미 그 건은 그냥 없던 일로 넘어 갔지 않습니까
이제 와서 다시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서장님 말씀해 주세요.”
채형사는 흥분하여 자신도 모르게 서장에게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서장 역시 이번 징계가 이해가 되지 않는지 불만이 가득했고 그런 채형사의 말에 뭐라 할 이야기가 없었다.
“나란들 그 이유를 알겠나,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혹시 자네 높은 분들한테 밉보인 거 있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던가 뭐 그런 거 말일세.”
그 순간 채형사는 경민에 대한 사건이 떠올랐다
“아주 더러운 냄새가 팍팍 풍기는 한 사건을 맡은 게 있는데 아마 그것 때문인 거 같군요.”
“그게 혹시 김경민 살인사건인가?”
채형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서장님이 어떻게 그것까지…”
“그 사건에 대해서 따로 공문이 내려왔네.
자네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그 사건에서 손을 떼라더군.
그 사건은 뭐 검찰 쪽으로 넘기겠다나 사건처리가 누구더라
강철중검사인가 하여튼 그 쪽으로 전부 넘어간다더군.
그러더니 또 하는 말이 우리더러는 동네 치안이나 잘 담당하라고 이야기하더군
나도 열 받아서 그 자리에서 그냥 다 엎고 나오려다가 참았다네
뭐 우리 같은 일선경찰들이 힘이 있나
더러운 똥을 밝았다고 생각해야지 에이~퇫~”
서장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채형사는 너무나 기가 막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형사가 되었다는 것에 회의감을 느낄 정도였다.
“자네에 대해선 나도 진정서를 다시 한번 넣어볼 테니까
한동안 쉬고 있게나 에휴~”
서장도 미안한지 고개를 가로저으면 채형사만 남겨놓은 채 자리를 피하였다.
채형사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가만히 잘 서 있다가 날벼락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채형사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정신이 나간 것처럼 걸어가고 있었다.
이게 바로 권력의 힘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새삼스레 이 사회가 무섭게까지 느껴졌다.
아무렇지 않게 한 사람을 낭떠러지로 떨어뜨릴 수 있는 그 힘이 섬뜩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짐을 싸는 순간 동우가 채형사를 찾아왔고
동우의 얼굴을 보는 순간 채형사는 화가 났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그 사건의 강력한 용의자인 동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범인이라고 생각했었던 용의자가 자수를 하겠다면 자신을 찾아왔고 머리 속은 엉망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채형사는 진실을 알고 싶었다.
세 사람은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이어갔다.
동우는 어떤 것부터 시작 해야 할 지 난감했다.
자신이 소녀들을 납치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써니가 경민에게 험한 일을 당했다는 일까지 모든 것을 이야기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동우는 써니와 제시카의 이름은 말하지 않고 자신의 여자친구라고 대충 둘려 되고
자신이 경민의 차를 따라간 시점부터 상세히 이야기 하였다.
이야기를 듣던 채형사는 동우의 말을 끊었다.
“흠... 결과만 있고 원인은 없군.
무엇 때문에 경민과 만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왜 자세히 말하지 않는 거지?”
“더 이상은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설사 그 일로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더라도 동우는 딱 잘라 거절하였다.
그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소녀들도 연관이 되어있기에 함부로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었다.
“자수를 하러 왔다면서 숨기는 일이 많군.
혹시 그 여자친구의 관한 일이 이것 때문인가?”
채형사는 어디론가 가더니 굳게 잠긴 책상 서랍 안 아주 깊숙한 곳에서 노랑봉투 하나를 꺼내었다.
그리고 다시 동우에게 다가와 그 노랑봉투를 건네 주었다.
동우는 그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고서는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그것은 바로 경민이 찍어두었던 소녀들의 사진이었다.
“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나 그게 원본이니까
얼마 전 죽은 경민의 집에서 발견한 거야
안심하게 난 따로 빼돌린다거나 복사본을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그런 추잡한 놈은 아니니까”
채형사의 눈빛에는 진실이 보였다.
그리고 설사 다른 마음을 먹었다면 이걸 자신에게 보여 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동우는 채형사의 그런 진실된 행동에 어느 정도 안심이 놓였다.
항상 이것 때문에 불안했었는데 이제 자신의 손에 들어왔으니 아주 큰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았다.
“자네의 표정을 보니 이제서야 모든 게 맞아 떨어지는 거 같군.
아마 자네가 경민을 만난 이유와 살인까지 저지른 이유가 다 그것 때문이겠지. 안 그런가?“
동우는 대답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걸 보고 이상한 마음에 경민에 대해서 세밀히 조사를 좀 해봤다네
아주 몹쓸 놈이더만 수사를 하면서도 정말 잘 죽었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했어.
하지만 그래도 피해자니까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사를 계속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네
하지만 조금 전 서장실을 나오면서 마음이 변하였다네.
그게 말이지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법대로만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야 하나.”
채형사는 한숨을 쉬면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웃기지 않나? 내가 경찰이 된 이유가 바로 그런 나쁜 놈들을 잡아들이는 거였는데
오늘 그런 놈들에게 한방 제대로 먹었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난 더 이상 경찰도 아니고 나한테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 할 필요 없다네.
그러니 자네가 이곳에 와서 자수를 한다던 둥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자네가 오늘 나에게 와서 한 이야기는 전부 못 들은 걸로 하지”
그리고는 곧바로 김형사를 바라보며 김형사의 의중을 떠보았다.
“근데 말이지 난 형사가 아닌데 저 친구는 형사라서
어때 김형사, 자네는 어떤가?”
김형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능청스럽게 대답하였다.
“지금 무슨 일 있었습니까? ”
김형사 역시 예전에 국과수에서 나온 결과를 숨김으로써 제시카를 도와 준거나 마찬가지였다.
형사의 신분으로서 왠지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었는데 이렇게 상황이 흘려가니 김형사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동우는 채형사와 김형사에게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하였다.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나에게 한방 먹인 놈들에 대한 분풀이랄까
그러니 내 맘이 바뀌기 전에 어서 가보라고”
동우는 다시 한번 채형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였고
자리에서 일어나 경찰서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채형사는 동우를 다시 한번 불려 세웠다.
“잠깐만, 근데 한가지 의문점이 남아있어서 말이지
난 처음에 자네가 백을 써서 이 사건을 덮으려고 했는지 알았거든 그래서 아까 자네를 보자마자 화가 나서 그렇게 행동했었는데
자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그것도 아니고 근데 이상하지 않은가
자네가 아니면 누가 그럼 이 사건을 덮으려고 한 거지.
분명 누군가가 위선에 손을 썼는데 잘 생각해 보라고 잘하면 자네에게 기회가 될 수 있으니 말이야”
동우는 마지막 채형사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분명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이라면...’
동우는 한 사람만이 떠올랐다. 바로 김의원이었다.
하지만 김의원이 자신을 위해 그런 일을 할 일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결국 이수만이 부탁을 했다는 소린데 동우는 왜 이수만이 그런 부탁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순간 동우는 경민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날 공사장에서 자신을 찌르며 했던 그 말.
이수만에 의해 다섯 번이나 칼에 찔렸는데도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경민의 모습이 생각났다.
‘옮거니, 이수만은 자신이 경민을 죽인 걸로 알고 있는 거군’
동우는 왠지 느낌이 좋았다.
어둡고 길었던 터널의 입구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채형사의 일도 그렇고 행운의 여신이 자신에게로 손길을 보내주는 거 같았다.
경찰서를 빠져 나오는 동우의 눈에 경찰서 앞에서 서성거리는 제시카의 모습이 띄었다.
동우는 제시카에게로 뛰어갔다.
“야~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도대체 어디 있다 온 거야!”
제시카는 동우를 보자 도망치려고 하는지 동우가 서 있던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 동우 역시 뛰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제시카는 금세 동우에게 따라 잡혔고 동우는 제시카의 손목을 낚아챘다.
“이거 놔~”
제시카는 동우의 손을 뿌리쳤다.
동우가 제시카를 돌려세우자 제시카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동우는 제시카의 눈물을 보자 무엇인가에 이끌린 듯 제시카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제시카는 동우의 품에 안기자 더욱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흑흑흑 동우야 나 이제 어떡해야 하지
나 솔직히 너무나 겁나. 막상 여기까지 왔는데 너무 두려워...”
동우는 제시카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동우 역시 제시카의 애잔한 떨림이 전해졌는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려 나왔다.
“너무 걱정하지마. 시카야. 모든 게 잘 해결 될 거야”
동우는 제시카에게 방금 자신이 경찰서에 들어왔다 나왔는데 일이 잘 마무리 되었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제시카는 울고 있었다.
지금 아무리 이야기해도 제시카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이었다.
표면적으로는 해결이 되었는지 몰라도 제시카의 마음속에 충격은 아마 쉽게 낫지 않을 것이었다.
결국 시간이라는 만병통치약이 제시카의 상처를 아물게 해 줄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동우는 알고 있었다.
동우는 제시카를 더욱더 세게 끌어 안아 주었다.
‘모든 것이 잘 해결 될 거야 윤아의 일도 너의 일도...
아니 이젠 너희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마무리 짓겠어’
다음 날...
강실장은 창 밖을 바라다 보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이번엔 절대 실수하지마 알겠지?
그리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고 특히 요즘 형사들이 낌새를 챈 거 같으니까 특별히 조심하고
지난번처럼 생초짜같이 행동하지 말고 마무리 잘 지어라고”
강실장은 전화를 끊고서는 썩 기분이 내키지 않는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까지도 이번 이수만의 명령에 대해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까지도 위험에 빠질 수도 있기에 너무 위험부담이 컸다. 하지만 또 안 할 수는 없었다.
강실장이 이것 저것 생각에 잠긴 순간 인터폰 스피커에서는 낯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실장님, 김동우란 분이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방금 전까지 동우를 죽이라고 지시를 했던 강실장은 동우가 제 발로 자신을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듣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들여보네”
강실장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동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서로를 쳐다보는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고 정적을 깨면 먼저 입을 연 건 강실장이었다.
“오랜만에 보는군. 자 이리로 앉게나.”
강실장은 먼저 자리에 앉고서는 빈 소파의 한쪽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동우에게 말하였다.
동우는 강실장에게 가벼운 목례를 한 후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강실장은 주머니 속에서 담배를 꺼내 들더니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그래, 회사를 그만뒀다더니 잘 지냈나?”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 회사 직원도 아니니 편하게 이야기 해도 되겠죠?”
풋...
강실장은 동우의 대답이 같잖은지 헛웃음이 새어 나왔고 강실장은 동우를 쳐다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주머니 속에서 은색 지퍼라이터를 꺼내고서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을 이어 갔다.
“근데 말이지. 우리가 이렇게 마주보면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한 사이였던가?”
“뭐 이제까지는 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모르죠. 내일부터는 아주 친한 동료가 될지. “
동우 역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맞대응 하고 있었고 동우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뼈가 들어가 있는 거 같았다.
강실장은 불을 붙인 후 지퍼라이터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서는
몸을 최대한 소파에 기댄 채 동우를 깔보듯이 내려보는 시선으로 쳐다보며 말을 꺼내었다.
“뭐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
그건 그렇고 이 밤에 여기까지 찾아왔단 말은 뭔가 중요한 말이 있을 거 같은데
그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도대체 뭔가?”
강실장의 물음에 동우는 당당하게 답변해 주었다. 그런 동우의 얼굴에는 뭔가 모를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강실장님은 지금 그 자리에 만족 하시는지요?”
"크흐흐흐"
강실장은 동우의 질문이 가소로운지 다시 한번 기분 나쁜 눈빛으로 동우를 쳐다보며 웃기 시작했다.
“그래, 자네가 보기에는 내가 이 자리에 만족하는 걸로 보이나?”
“아뇨. 제가 그래도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한 편이죠.
실장님은 절대 이 자리로 만족할 분이 아니시죠. 안 그런가요?
소파에 기댄 몸을 일으킨 강실장은 두 팔을 자신의 무릎에 기댄 채 최대한 동우를 향해 몸을 기울었다.
“틀렸어. 난 이 자리에 만족 한다고
이 나이에 이 정도까지 성공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안 그런가?
그건 그렇고 내가 왜 자네하고 이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지 모르겠군
난 자네하고 그런 농담 따먹기를 할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네”
강실장은 인터폰을 통해 귀찮은지 짜증 섞인 말투로 비서에게 말하였다.
“김 비서, 손님 나가신다니 마실 것은 가져 올 필요 없겠군.”
밖에 있는 비서에게 한 말이었지만 그건 동우에게 하는 말과 같은 것이었다.
빨리 나가라는 무언의 압력과 같았다.
“아~ 참 그리고 한가지 재미난 사실을 알려줄까?
누군가 자네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 있더군.
그래서 말인데 이 방을 나가는 순간부터 항상 뒤를 조심하라고
언제 어디서 누군가가 자네의 목을 노릴지 모르니까 크흐흐흐”
동우는 강실장의 말을 다 듣고서는 자신의 목을 어루만지며 동우 역시 크게 따라 웃었다.
“하하하~ 이거 무서워서 어디 돌아다니지도 못하겠군요.
그럼 우린 이야기는 이걸로 끝인가 보군요.
참 아쉽군요. 강실장님
전 강실장님에게 기회를 드리고 싶었는데 말이죠
당신이 몸 담고 있는 이 회사 바로 SM을 가질 기회 말이죠”
동우는 그 말과 함께 가벼운 목례를 하고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 커피를 마시던 강실장의 손은 그대로 멈추었다.
천천히 커피잔을 내려놓던 강실장은 동우를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방 안에서는 조롱 섞인 웃음만이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자넨 이 회사가 무슨 구멍가게인지 아나?
내가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자네는 말 한마디로 이 회사를 나에게 덥석 주겠다라
그걸 지금 믿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이제 보니 정말 재미있는 친구군
죽이기 정말 아까워 하하하”
동우는 강실장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오히려 동우는 태연하게 자신의 옷 매무새를 바로 잡으면 천천히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다가선 동우는 강실장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문을 바라다 보면 들릴 듯 말 듯 애를 태우듯이 말을 꺼내었다.
“뭐 SM을 갖기 싫으시다면야 전 그럼 가보겠습니다.”
동우의 그 한마디는 동우의 당당한 행동과 맞불려 묘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고
정말 이루어 질 거 같은 어떤 알 수 없는 힘마저 느낄 수 있었다.
동우가 문을 열고 방을 빠져 나가려는 순간 강실장은 동우를 불려 세웠다.
“잠깐!
좋아,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한번 들어나 볼까나”
피~식
동우는 뒤돌아 선 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