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부 (52/54)

51부 

동우의 품 안에 안긴 윤아는 그렇게 동우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그 심장소리를 듣고 있으면 자신도 덩달아 살아 숨쉬는 강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밤을 지새웠고 홀로 밤하늘을 지키던 저 달도 두 사람의 사랑행위를 내려다보며 부끄러운지 

두 사람의 눈을 피해 점점 기울어져가 결국 산 속으로 숨어버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한 쪽에서는 새 생명이 피어 오르듯 

아기처럼 풋풋한 열기를 지닌 태양이 기지개를 피며 두 사람을 맞아주었다.

동우는 자신의 어깨에 기댄 채 달콤한 잠에 빠져버린 윤아를 바라다 보았다.

거친 풍랑을 피해 이제서야 겨우 평온한 바다에 도착한 것처럼 얼굴에는 피곤함과 평안함이 동시에 묻어나 있었다. 

여전히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들이 송글송글 맺혀있었고 아기처럼 뽀얀 볼에 남아있는 분홍빛색채는 어젯밤 황홀하고 격렬했던 

두 사람의 사랑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런 윤아의 얼굴을 보면 동우 자신도 어젯밤 윤아와 나누었던 불타던 사랑이 떠오르는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면 괜히 부끄러워했다. 

동우는 자연스레 예전 윤아와의 첫경험이 떠올랐다. 윤아와의 첫 사랑을 나누었던 그 떨림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졌고 여전히 

시간이 흘렸지만 지금 역시도 그 떨림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강렬해지고 있었고 윤아와의 사랑행위는 동우의 오감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윤아와의 옛추억을 음미하던 동우는 순간 한가지 일이 떠올랐다.

예전 윤아와의 사랑을 나눌 때 윤아가 마지막에 자신에게 한 그 말...

‘자신을 지켜달라’는 윤아의 그 말이 동우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동우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때부터 윤아는 이미 자신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내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동우는 그걸 눈치채지 못한 채 끝내 벼랑 끝까지 와 버렸고 동우는 윤아를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정작 윤아의 조금한 변화조차 알지 못한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그랬던 거였어..난 왜 그렇게 바보였을까...

윤아야 미안해...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널 지켜줄게...꼭’

동우는 윤아를 바라다보며 다짐을 하였다.

동우는 윤아의 머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어주며 주었고

그런 동우의 움직임에 잠에서 깼는지 윤아는 눈을 감은 채 말을 꺼내었다.

“오빠. 나 눈 뜨기가 싫어. 이대로 그냥 모든 것이 멈춰버렸으면 좋겠어”

윤아는 동우와 단둘이 있는 이 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눈을 뜨며 새로운 아침이 자신을 맞이해 줄 것이고 또 다시 지옥 같은 현실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당장 이수만이 어떻게 나올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괴로웠다. 

이미 아침이 와버렸지만 윤아는 현실을 회피하고 싶었고 눈을 감음으로써 윤아는 아침이 오는 것을 막고 싶었다. 

아직 어둠이 자신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을 원했고 눈을 뜨면 정말 현실이 되어버릴까 봐 두려웠던 것이었다. 

윤아는 그렇게 또 다시 행복이라는 단어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오빠, 그냥 우리 아무도 없는 섬 같은 그런 곳으로 떠나버릴까?”

“그럴까...”

두 사람은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면 현실에서의 이탈을 꿈꾸었다. 

저 넓은 바다에 몸을 던져 지금 이 상황에서부터 도망쳐 물결을 따라 어디든지 멀리 떠내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그건 손에 잡히지 않은 꿈 같은 이야기 일뿐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너무나 잘 알기에 윤아는 단념할 수 밖에 없었다. 

윤아는 긴 한숨을 쉬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빠.. 일어나자 이제”

동우는 뒤돌아서 가는 윤아의 손목을 붙잡으며 나지막하게 윤아의 이름을 불렸다.

“윤아야..”

동우는 가느다란 윤아의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동우는 우울해 있는 윤아의 두 눈동자를 바라다 보면 자신에게 조차 그 슬픔이 밀려오는 것 같이 느껴졌다. 

동우는 어떻게 해서든 윤아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고 싶었다. 동우는 윤아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그리고 윤아의 등을 살며시 두드려 주었다.

“나만 믿어 윤아야. 지난번에 이야기 했었지, 너의 슈퍼맨이 되어주겠다고"

“치...”

윤아는 동우의 그 말에 아무 말 없이 가벼운 미소로 답례해주었다.

두 사람을 비쳐주는 아침햇살은 솜이불처럼 따뜻했고 두 사람을 마치 보호해주는 듯 보였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꼭 껴안은 두 사람의 모습은 어떤 어려움도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이 보였다.

두 사람은 잠시나마 함께했던 시간들을 뒤로한 채 저 바다를 등지고서는 다시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한참을 달려 숙소 앞에 도착한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차 안에 앉아있었다. 

헤어지는 게 아쉬운 지 멀뚱히 앞 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정적이 흘렸고 먼저 윤아가 말을 꺼내었다.

“오빠, 피곤 할 텐데 이제 그만 돌아가봐”

“아니야, 내가 문 앞까지 데려다 줄게”

두 사람은 손을 맞잡은 채 다정하게 올라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주위의 시선에 묶여 사랑을 외면해야 하는 안타까운 연인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두 사람은 다시금 연예인과 매니저라는 관계로 돌아 가야만 했고 동우는 윤아의 뒤를 어색하게 뒤따르고 있었고 

윤아는 힐끔힐끔 동우의 모습을 바라다 보는 것 만으로 만족해야 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의 눈에는 낯익은 한 소녀가 보였다. 

그 소녀는 바로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제시카였다. 

하지만 동우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한기가 서려있었다. 

제시카는 문 밖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가 두 사람이 올라오는 모습을 본 뒤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동우는 윤아와 함께 제시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먼저 제시카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동우의 인사를 못 들은 척 제시카는 동우를 한번 쳐다보더니 바로 윤아에게로 다가갔다.

“윤아! 너 어디 갔다 온 거야?”

윤아는 제시카와 동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동우와 제시카 사이에 흐르는 냉랭한 분위기에 윤아는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연락 안 해서 미안해 언니, 근데 오빠도 같이 왔는데...둘 사이에 무슨 일 있어?

이렇게 아침 일찍 밖에 나온 거는 오빠가 걱정되어서 그런 거 아니었어?”

정곡을 찔렸는지 제시카는 당황하며 괜히 윤아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저 딴 놈을 내가 왜 걱정해! 빨리 뒤지던지 말던 내가 뭔 상관이라고 

그리고 너 자꾸 궁시렁 될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시카 역시 동우와 윤아가 아무 탈 없이 돌아온 것을 보자 안심이 놓였다. 

하지만 여전히 지난번 일로 동우에게 삐져 있던 제시카이기에 일부러 동우를 외면하고 있었고 동우를 투명인간 취급을 하였다.

그런 제시카의 모습에 서운하기도 했지만 동우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지금 자신 주위에 언제 어디서 경찰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지 몰랐고 그 경찰들의 시선으로부터 제시카를 지키고 싶었다. 

혹시라도 제시카가 경민의 사건에 연루 될까 봐 걱정이었는데 잠시나마 이렇게 관계가 서운해져 자신과 떨어져 지낸다면 

그것만이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우는 채형사가 이미 제시카에게까지 수사망을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래..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몰라..’

때마침 밖에서 들려오는 제시카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얼마 있지 않아 태연과 서현이도 뒤늦게 뛰쳐나왔다. 

모두들 걱정스런 눈빛으로 동우와 윤아를 바라보고 있었고 동우는 그런 소녀들을 모두 안심시킨 후에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앞...

절정으로 가는 여름의 한 중턱인지라 아침이라 해도 푹푹 찌는 열기에 짜증이 날만하겠지만 

이런 날씨는 전혀 개의치 않은 듯 김형사는 콧노래를 부르며 국과수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김형사는 이번에야말로 채형사의 콧대를 꺾어주겠다며 벼르고 있었다. 

‘이번 일로 적어도 몇 달 동안은 놀려먹을 수 있겠다. 크크크 

어떻게 제시카가 범인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는 거지 선배도 참

선배의 그 직감도 약발이 다 떨어졌다니까 키키’

조금 전 국과수에서 검사결과가 나왔다면 김형사에게 연락이 왔고 김형사는 신이 나서 곧바로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김형사는 채형사의 얼굴을 떠올리며 국과수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천천히 국과수를 빠져 나오는 김형사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전에 들어갔었던 똑 같은 문으로 나오고 있었지만 그 외 다른 모든 것들은 들어갈 때와 달라 보였다. 

콧노래를 부르면 흥겨워 하던 얼굴은 창백하게 변하였고 무엇인가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 듯 두 눈은 풀려있었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김형사는 안에서 들은 한 연구원의 말이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혹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다.

“이 두 샘플은 100프로 일치하는 것으로 이 머리카락들의 주인공은 명백하게 동일인입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아직도 그 말이 머리 속을 떠나지를 않았다.

김형사는 자신의 차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가 감히 그런 상상이라도 했을까 

당대 최고의 여자 아이돌의 멤버가 살인사건에 연루되었다니 더욱이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그룹이 아니었던가 

김형사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일들이 지금 이 시간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경찰서에 도착할 동안 김형사는 자신이 어떻게 해서 이곳까지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시동을 켜고 잠깐 생각에 잠긴 것 같았는데 벌써 경찰서 앞에 도착해 있는 것이었다.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자 채형사가 김형사를 맞이해 주었다.

“아침에 국과수에 갔다면서 그래 결과는 어떻게 되었어?”

채형사의 물음에 김형사는 잠시 동안 얼음이 된 듯 아무런 대답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김형사는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진 서류를 살펴 보는 척하면서 딴청을 피우다 대충 얼버무렸다.

“아뇨.. 아직 결과가 안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하”

그리고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 채형사의 눈을 피해 자리를 벗어났다.

‘내가 미쳤지 범죄자들을 돕다니...

휴...선배 말대로 난 경찰이 될 자격이 없는가 봐.’

그 시간 또 다른 두 명의 사내가 굳게 닫혀진 방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 사내는 마치 죽을 죄를 지었는지 다른 사내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고 

고급스러운 의자에 앉아있는 다른 사내는 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도대체 얘들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이수만은 자신의 책상 앞에 놓여진 서류뭉치를 강실장의 얼굴을 향해 집어 던지며 호통을 치고 있었다. 

어제 윤아가 사라진 일로 김의원이 화가 잔뜩 나 이수만에게 강한 불만을 토로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생명 줄과 같은 김의원이 자신에게서 돌아선다면 이수만에게는 치명적이기 때문에 절대 밉보여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런 김의원이 자신에게 실망한 듯 인사도 받아주지 않고 자리를 떴으니 지금 이수만은 애간장이 타 들어가고 있었다.

“어리고 처녀가 아니면 거들떠도 안보는 그 변태 같은 노친네한테 이제까지 내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었는지 알아!! 

근데 그게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고!!” 

“죄송합니다. 이사님”

“강실장!! 자네 요새 들어 부쩍 죄송하다는 말이 입에 붙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나!!”

“면목없습니다.”

“하여튼 근본도 모르는 놈한테 일이 맡기는 게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또 어떤 년으로 만족 시켜야 넘어갈지 미치겠군”

이수만은 강실장을 경멸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강실장은 고개를 숙인 채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뒷짐을 진 두 손은 부르르 떨며 화를 삭이고 있었다.

“그 새끼 죽여버려”

강실장은 갑작스러운 이수만의 말에 당황을 하였고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네?”

“김동우라는 그 새끼 죽여버리라고!!”

“하지만 이사님...”

“지금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강실장은 생각했다. 지금 단순히 화가 난다고 해서 지금까지 쌓아온 공든 탑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그런 모험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강실장은 일을 그르치기 전에 차분한 목소리로 이수만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사님 지금 경찰들이 저희를 예의주시하는 사항인지라 

섣불리 행동하다가는 저희까지 위험에 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수만은 강실장에 말에 더욱더 화를 냈다.

이수만은 책상을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네 놈이 여기까지 올라온 게 누구 때문인데 너 같은 근본도 모르는 고아를 여기까지 키워준게 누군데!!

네깟놈이 뭔데 지금 내 말에 토를 다는 거야!!

마지막 기회야! 다시 그 놈이 내 눈에 띄면 네가 죽을 줄 알아!!!

그 새끼 다시는 내 앞에서 깝죽거리지 못하도록 말끔히 죽여버리란 말이야

알았어!! 몰랐어!!”

저렇게 강경하게 나오는 이수만을 모습을 보고서는 강실장은 더 이상 이수만을 설득할 수가 없다고 깨달았다. 

그리고 이미 자신은 이수만의 개가 된지 오래되었지 않았는가 

강실장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이사님. 제가 기회를 봐서 처리하겠습니다.”

이미 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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