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부 힘든 결정..
똑..똑
병실 안에는 누군가의 방문을 알리듯 노크 소리가 또렷하게 울려 펴지고 있었고
어느 때보다 더 또렷한 그 소리에 동우와 용준은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자연스레
시선이 문 쪽으로 옮겨갔다. 동우와 이야기를 나누던 용준은 소리의 근원지인
닫혀진 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조금씩 문이 열리며 밝은 빛이 스며듦과 함께 두 사람의 인영이 병실 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채형사는 병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주위를 살피며 동우와 용준에게 살며시 목례를 하였고
생소한 두 사람의 모습에 동우는 멀뚱히 형사들을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와 반대로 용준은 채형사의 얼굴을 보는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네 사람의 만남은 이루어졌고 네 사람들 사이에는 순간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용준은 살이 에일듯한 그 적막함에 온 몸의 털이 모두 주뼛주뼛 서는 것 같았다.
째각 째각..
병실 안 조금만 시계의 초침소리까지 용준의 귀에 생생히 들려 올 정도였다.
그 규칙적인 소리는 용준에게 최면을 걸듯이 용준의 시간을 멈춰버리게 만들었고
용준은 멍하니 채형사의 얼굴만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지난번 채형사를 만나고 난 뒤 용준은 그 일이 그럭저럭 잘 넘어 갔다고 안심하고 있었기에
채형사의 이번 등장은 예상을 뛰어넘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여기에 왜 찾아왔을까? 무엇인가 증거를 찾은 것인가?
아님 벌써 나를 체포 하려고 왔는 것 일까?
그 짧은 시간에도 용준의 머리 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고
그런 생각들이 그려질 때마다 두려움과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에 자연스레 몸은 경직되어갔다.
“누구신지?”
용준이 아무 말 없이 채형사에게 시선이 고정되어있는 모습을
멀뚱히 쳐다보던 동우는 자신의 눈 앞에 서있는 형사들에게 누구인지 질문을 하였다.
정적을 깨는 동우의 한 마디는 용준을 혼란에서부터 꺼집어 내어주었고
멈춰져 있던 용준의 시간은 동우의 목소리에 의해 다시 흘려갔다.
동우의 질문에 채형사는 자신의 신분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순간
정신을 차린 용준은 채형사의 말을 끊으며 두 사람을 밖으로 끌어내려고 하였다.
“안정이 필요한 환자이니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죠”
다급한 듯한 용준의 행동은 채형사는 물론 동우에게도 이상하게 보여졌고
채형사는 무엇인가를 감추려고 노력하는 용준의 모습과 침대에 앉아있는 동우의 모습을 번갈아 쳐다보며
용준에게 병실 밖으로 쫓겨나오다시피 끌려나갔다.
용준은 두 사람을 병실 밖으로 완전히 데리고 나간 뒤 병실 문을 꽉 닫아버렸다.
동우에게 채형사의 시선이 닿지 않게 하기 위해
동우가 눈치 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어떠한 소리도 자그마한 불빛조차도 세어 들어가지
않기를 바라듯이 용준은 병실 문을 닫아버렸다.
병실 앞 채형사와 마주 선 용준의 마음속은 이미 두려움으로 요동치고 있었지만
밖으로는 안 그런 척 최대한 의사의 위엄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어떻게 다시 오셨죠? 지난번에 이야기가 다 끝난 것이 아니었던가요?
지난번에 찾아오셨을 때 충분히 도움을 드렸다고 생각하는데요.”
“네. 그때는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칼에 찔린 환자를 찾아 온 거였지만 이번에는 다른 용무가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한가지만 물어보죠.
혹시 김경민씨라는 이름을 들어 보신적은 있나요?”
아직까지는 조심스러운 접근이었다.
그러나 용준이에게 있어서는 채형사와의 만남자체가 불편한 자리였고
그런 상황에서 경민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용준은 자신도 모르게 움츠려 들었다.
용준의 눈동자는 이미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채형사는 그런 용준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김경민이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혹시 제 환자였나요?
그리고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시는 거죠?”
“아네. 그 경민이라는 사람이 SM에서 일했다고 해서 말입니다.
최선생님이 소녀시대 효연과 연인관계라는 이야기가 있길래
혹시나 싶어서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정말 김경민이라는 남자를 본적도 없고 근래에 만나 보신적도 없으십니까?”
채형사는 용준에게 추궁을 하듯이 재차 물어보았고
용준은 채형사의 입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효연의 이름이 나오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혹시나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효연이 어떤 피해라도 입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조심스럽게 말을 가려가면 하던 용준은 효연이의 이름까지 나오자 당황하기 시작했고
목소리는 점점 높아져갔다.
“제가 죽은 사람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리고 자꾸 모른다는데...”
채형사는 용준의 말에 이상한 점을 발견 한 듯 용준을 말을 끊어버렸다.
“잠시만요. 최선생님.
제가 언제 김경민이라는 사람이 죽은 사람이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나요?
어떻게 죽은 사람인 걸 알게 된 거죠?”
용준은 순간 아차 싶었다.
자신이 너무나도 큰 실수를 한 것을 직감했다.
효연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에 순간 당황하여 위기를 벗어나고자 성급하게 말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용준은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자신을 쳐다보는 채형사의 눈빛에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이 벌겨 벗겨진 거 같았다.
용준은 어떻게 이 위기를 빠져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 순간 길다랗게 늘어진 복도 안으로 요란하게 울리고 있는 한 안내원의 목소리는
용준을 벼랑 끝에서 구해주는 듯 보였다.
“병원 내에 계시는 최용준선생님은 지금 즉시 5층 수술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오!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한 줄기 광명과 같은 그 목소리에 채형사와 용준 모두 스피커로 시선이 옮겨갔고
다시 한번 더 용준을 급하게 찾는 방송이 울려 퍼지자
용준은 채형사에게 급한 볼일이 생겼다며 그 자리를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죄송합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하죠. 전 급한 환자 때문에..”
채형사는 이 기회에 확실히 용준에 대한 물증을 잡으려고 했지만
위급한 환자가 발생했다는데 더 이상 용준을 붙잡을 수 없었다.
용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채형사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런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병원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채형사는 조금 전 동우의 모습이 눈에 밝혔다.
채형사는 다시 발길을 돌려 그 층을 담당하는 간호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혹시 저기 안에 있는 환자가 최선생님 친구분이신가 보죠?”
“네”
그 간호사는 무슨 일이 있느냐는 듯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해주었다.
”근데 말이죠. 가슴과 배에 붕대를 감고 있던데 어디 많이 다친 건가요?”
“아~ 그거말이죠. 칼에 찔렸다고 이야기하더라구요.
위기에 처한 어떤 여자분을 구하려다가 동네깡패들한테 당하셨다고 그러더라고요.
연약한 여자를 구해줄려고 그렇게 다쳤다는데 너무 멋있지 않나요? ”
그 간호사는 동우에게 호감이 있는지 동우의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에 화색이 돌며 숨 쉴 틈도 없이 채형사에게 동우의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동우가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소녀시대의 매니저라는 이야기와
소녀시대와 친분이 두터운지 거의 매일 소녀시대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간호를 한다는 이야기까지
채형사가 질문하지 않았던 이야기까지 모두 채형사 앞에 풀어놓는 것이었다.
“칼에 찔렸다고요?”
채형사는 다시 한번 확인을 하고 싶었고 간호사는 채형사의 질문에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네. 최선생님이 직접 수술을 하셨고 여기 입원한지 한 달이 조금 넘었어요”
간호사의 그 말은 채형사가 이제까지 그려왔었던
이번 사건의 퍼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중요한 정보였다.
채형사는 간호사의 이야기가 끝나자 속으로 쾌재를 불렸다.
“네. 감사합니다.”
채형사는 간호사에게 고맙다는 가벼운 인사를 주고 받은 후 바로 병원을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김형사는 그런 채형사의 졸졸 따라다니면 의아해하였다.
“선배님, 저 환자가 칼에 찔린 시기와 경민이 죽은 시점이 거의 일치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이제껏 조사를 해온 용의자중에서 가장 유력한데요
왜 그냥 가시는 겁니까?”
채형사는 그런 김형사의 이야기를 무시하듯 병원을 빠져나갔고 채형사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이봐, 일개 매니저 따위가 그런 고위직 인사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해?
섣불리 피라미를 건드렸다가는 그 뒤에 숨어있는 진짜배기가 우리가 찾을 수 없는
그런 깊은 물속으로 숨어버린다고 알겠어 내 말 뜻을?
이제 모든 초점은 그 동우란 환자에게 집중시키자고
그 뒤를 캐다 보면 대박이 걸릴 꺼 같아”
채형사는 이 정도까지 밝혀낸 것만으로 만족한 듯이 보였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점점 동우를 조여갈 생각이었다.
장시간의 수술이 끝난 후 용준은 쉴 만도 하지만 불안감에 도저히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용준은 수술이 끝난 후 곧장 동우가 입원해 있는 7층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채형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용준은 잠시나마 무거운 굴레에서 벗어난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김간호사, 아까 그 분들 다시 병실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죠?”
“네. 선생님, 그냥 친구분에 대해 이것저것 묻길래 이야기해줬고
이야기를 다 듣고서는 바로 가셨어요.”
용준은 간호사가 동우의 이야기를 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자신도 모르게 간호사에게 화를 내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 거에요!!!”
“왜 그러세요 선생님?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건가요?”
간호사는 용준의 화난 모습에 적잖게 당황해 하는 표정이었다.
순간 화를 참지 못해 간호사에게 언성을 높였지만 간호사에게 먼 죄가 있으랴
용준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다.
“김간호사 미안해요.
근데 그 분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한 거죠?”
간호사는 자신이 이야기한 모든 것들을 용준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칼에 찔렸다는 이야기와 소녀시대 매니저라는 이야기
그리고 동우의 입원기록들까지 모든 자료들을 보여줬다는 이야기까지..
간호사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용준은 자신도 모르게 작은 탄식이 흘려 나왔다.
‘아!! 이런 제길...이렇게 끝난 건가...’
용준은 이제까지 쌓아온 모래성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단 한번의 큰 파도에 쉽게 쓸려나갈 그런 모래성이었지만
자신의 제일 친한 동우와 자신이 사랑하는 효연을 위해서라도
용준은 끝까지 그 모래성을 지키고 싶었다.
만약 모든 진실이 밝혀진다면 동우는 물론 살인사건에 연루된 소녀시대까지도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고
팀의 해체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소녀들은 개개인으로 활동이 가능할지 몰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효연은 다른 소녀들과 달랐다. 소녀시대의 해체는 곧 효연이의 모든 것을 잃는 것이었다.
용준은 자신의 하나뿐인 친구인 동우와 자신이 사랑하는 효연의 꿈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은 영원히 비밀로 지켜지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그건 용준만의 바람이었다.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준아~
근데 아까 그 분들 누구야? 널 찾아온 거 같던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동우였다.
조금 전 형사들이 찾아왔을 때 용준의 행동에 이상한 느낌을 받은 동우는 이제까지 용준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용준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동우를 반겨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내 환자의 가족 분들이야.”
“흠.. 그래..근데 너 좀 이상한데
너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지?
“야~ 너한테 숨길게 뭐가 있냐
그리고 내가 숨긴다고 해서 네가 넘어 갈 인간이냐 히히”
진실을 밝힐 수 없기에 용준은 괜히 밝은 척 동우를 대해주었다.
하지만 그 웃는 얼굴 뒤에는 검은 먹구름이 잔뜩 끼여있었다.
화려한 네온사인들 사이에서 젊은 남녀들간의 열기로 한낮의 뜨거운 태양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장소에서
주위 사람들과는 다르게 외롭게 혼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이미 술에 푹 젖어 들었는지 자기 자신 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남자에게 한 앳된 소녀가 다가오고 있었다. 얼굴의 반을 덮는 검은색 선글라스와 모자를 한껏 눌려 쓴
그 소녀는 반가운 얼굴로 용준에게 인사를 건냈다.
“용준오빠~”
“어 왔어. 태연아.”
이미 술을 마시는지 물을 마시는지 모를 정도인 용준은 태연이 왔어도 여전히 술잔에 술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술잔을 누가 뺏어 갈까 용준은 술잔에 술이 채워지자 마자 입 속으로 빠르게 집어넣었다.
태연은 이제까지 이런 용준을 모습을 본적이 없어 상당히 당황스런 얼굴이었다.
자리에 앉은 태연은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수많은 소주병을 치우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용준을 바라다보았다.
“오빠 무슨 걱정 있으세요?”
“걱정? 풋~ 걱정이 있으면 네가 해결해 줄 수 있어?”
용준은 마음속에는 무엇인가 단단히 엉켜져 있는 듯 보였고
그런 용준의 모습을 보며 태연은 조용히 술잔을 채워줄 뿐이었다.
계속해서 술을 마시던 용준은 태연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내었다.
“...태연아... 너 동우 사랑하지?”
“당연하죠. 근데 오빠, 오늘따라 정말 이상한 거 알아요”
“휴...그래...오늘따라 술이 너무 다네..
태연아..나 얼마 있지 않아 유학 갈 거 같아. 그게 몇 년이 걸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동우 잘 부탁해.
내가 떠난 후에 혹시나 동우가 이상한 짓 하지 못하도록 네가 꼭 옆에서 붙잡고 있어 알았지
그리고 효연이도 잘 부탁해...“
“그게 무슨 소리에요?”
용준은 태연의 질문에 아무 말 없이 또다시 술잔을 비울 뿐이었다.
용준은 형사들이 다녀간 후부터 많은 생각들을 하였다.
자신이 이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자신이 한 맹세를 지킬 수가 있을지...
용준은 술잔을 비울수록 그 고민들이 하나씩 알코올과 함께 사라져갔고
결국 단 한가지 방법만이 머리 속에 남아있었다.
그렇게 태연과 헤어진 후 용준은 집에 돌아오자 마자 침대에 쓰러졌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아침이 찾아왔고 용준은 누가 깨우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곧장 욕실로 가 면도를 하기 시작했고 무슨 경건한 의식이라도 치르듯이 꼼꼼히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옷을 간단하게 차려 입은 후 다부진 얼굴로 집을 빠져 나왔다.
집을 빠져나 온 용준이 가는 곳은 병원이 아니었다.
수많은 차들을 지나쳐 도착한 그곳은 바로 경찰서 앞이었다.
용준은 천천히 차에서 내린 후 하얀 건물을 바라다 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용준이 지난밤 술을 마시면 도달한 결론은 바로 이것이었다.
더 이상 수사가 진행되기 전에...
더 이상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오직하나..
자신이 자수를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사고가 생긴 그 날..
자신과 동우는 같이 술을 마셨고
경민이라는 남자가 자신을 병신이라고 놀리자 그에 화난 동우와 경민은 시비가 붙었고
자신의 친구인 동우가 칼에 찔리자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경민을 죽였다라는
자신이 짠 스토리를 머리 속에서 계속해서 되뇌었다.
용준은 경찰서 앞에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 잡은 후 들어가려는 순간
용준을 붙잡듯이 요란하게 벨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용준은 가만히 휴대폰을 바라다 보았고
휴대폰액정에 뜬 이름은 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효연의 이름이었다.
자신이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을 가르쳐준 여인..
하지만 이제 그 여인에게 상처를 주어야 할지도 몰랐다.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이별이라는 짐을 그 여인에게 지우게 된 것이었다.
계속하여 울리는 벨소리..
용준은 한참을 망설인 후 전화를 받았다.
용준의 기분과는 달리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효연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있었다.
이번 주 주말 정말 오랜만에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소중한 시간을 용준과 같이 보내고 싶다는 사랑스러운 여자의 작은 소망을 용준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용준의 눈에는 한 방울의 투명한 액체가 뺨을 타고 흘려 내리고 있었다.
“어. 그래 효연아 주말에 같이 여행이나 가자.. 그리고 ...효연아...정말 사랑해..”
용준은 그렇게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효연에게 해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휴대폰을 닫았다.
효연이의 목소리가 사라짐과 동시에 용준의 눈망울은 또다시 촉촉히 젖어 들고 있었다.
전화를 끊은 용준은 효연에 대한 미안함을 마음속 한 구석에 꼭꼭 구겨놓고서는
천천히 경찰서 안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