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부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윤아의 말은 비수가 되어 동우의 마음을 이리저리 찢어놓았고
윤아가 사라진 후에도 동우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아직도 병실 가득히 남겨져 있는 윤아의 눈물과
아픔의 흔적들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얼마나 아팠으며...얼마나 서러웠으며..내 앞에서 그런 말을..
말은 그렇게 해도 난 알 수 있단 말이야..
너의 눈물이 모든 걸 말해주잖아...
바보.. 멍청이...'
그렇게 동우는 희미해져가는 윤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한동안 시간이 정지해 버린 듯 그 자리에 서 있던 동우는 갑자기 어디론가 갈 곳이 떠올랐는지 옷장 앞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옷장 문이 열리자 빠르게 움직이던 동우의 움직임은 또 다시 멈춰버렸다.
그 안에는 한 번도 입지 않은 듯이 보이는 새 옷이 걸러져 있었고 그 옷들을 보는 동우의 눈가는 다시금 촉촉이 젖어 들고 있었다.
며칠 전 그 옷을 사가지고 오며 해맑게 웃던 윤아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퇴원을 하게 되면 꼭 자기가 사온 새 옷을 입으라며 정성스레 옷걸이에 걸며 행복한 미소를 짓던 윤아의 얼굴과
조금 전 눈물로 얼룩져버린 윤아의 얼굴이 교차되면서 동우의 마음은 더욱더 아파왔다.
그런 사랑스러운 윤아의 모습을 짓밟기라도 하듯이
이수만이 윤아에게 한 짓은 동우에게 있어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고
동우의 마음속은 이미 타오르는 분노로 인해 이성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오직 눈앞에는 슬퍼하는 윤아의 모습과 그에 비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 만족해하는 이수만의 모습만이 떠올랐다.
다시금 꽉 움켜진 동우의 두 주먹은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고
동우는 윤아가 사준 새 옷을 환자복 안에 몰래 숨긴 채 병실을 빠져나갔다.
동우에게 그렇게 모진 말을 하고서는 병실을 뛰쳐나간 윤아는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앞으로 뛰어갔다.
그저 동우에게서 멀리 아주 멀리 달아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뛰어가던 윤아는 창문들 사이로 세어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 햇살들은 동우대신 윤아를 위로하듯 윤아 주위를 맴돌면 포근하게 감싸주었고
윤아는 그 햇살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이미 옥상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계단을 쉼 없이 오르고 올라 도착한 그곳에는 살랑살랑 윤아의 얼굴을 스쳐지나가는 신선한 바람과
조금 전 자신을 감싸던 따스한 햇살들이 사방으로 흩뿌려져 있는 것을 윤아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확 트인 시야는 답답해하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 주는 거 같았다.
윤아는 잠시나마 슬픔을 잊고 마음을 진정 시킬 수 있었고
이제는 아예 한 모퉁이에 삐져나온 네모난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머리위에 떠다니는 구름과 멀리서나마 희미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나지막한 산봉우리들...
그리고 자신의 바로 앞에 일제히 각자의 높이를 자랑하듯 높게 치솟은 건물들을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면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래 윤아야..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어.. 오빠를 위해서야
...그래 잘한 거야,, 잘한 거였어...'
윤아는 그렇게 해어질 대로 해어진 자기 자신을 위로하면 마음을 다 잡았다.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윤아는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슬렀는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옥상을 빠져나간 윤아는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얼마 되지 않아 아무도 타지 않은 빈 엘리베이터는 올라왔고
젤 마지막 층이라서 그런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은 윤아 혼자뿐이었다.
문이 닫히고 층수를 누르기 위해 윤아는 천천히 손을 올렸다.
하지만 윤아의 손은 1층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윤아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머문 곳은 동우가 입원해있는 바로 7층이었다.
윤아는 7이라는 숫자에 눈을 떼지 못하고 머뭇거렸지만 결국 7층을 누르지 못하고 힘없이 1층을 누른 후 윤아의 손은 아래로 내려왔다.
한참을 내려가던 엘리베이터는 우연찮게도 7층에서 멈추어 섰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꽤 많은 사람들이 탄 후 엘리베이터 문은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한 소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요."
윤아는 결국 그렇게 동우가 있는 7층에서 내려버렸다.
아무래도 동우가 걱정이 되었고 멀리서나마 동우의 얼굴을 한번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윤아는 입원실로 다가갔다.가까이 다가서자 병실문은 열려져 있는 것이 보였고 윤아는 조심스럽게 입원실 안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동우는 보이지 않았다. 윤아는 불안한 마음에 병원 안을 샅샅이 둘려보지만 어떤 곳에서도 동우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 소득 없이 병실로 돌아온 윤아는 침대에 걸터앉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 순간 아차 하는 느낌이 들었고 윤아는 옷장 문을 열어 보았다.
역시나 자신이 생각한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자신이 사준 새 옷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윤아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안 돼..오빠'
옥상에서 겨우 마음을 추슬렀던 윤아지만 동우가 사라진 것을 알자 또다시 원점을 돌아가고 말았다.
윤아는 곧장 택시를 타고서는 SM사무실로 달려갔다.
제발 늦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두 사람은 목적은 다르지만 같은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한편 동우보다 먼저 SM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수만을 만나기 위해 채형사와 김형사는 이번에도 없는 시간을 쪼개어 SM을 찾아왔지만
역시나 예전처럼 허탕만 치고서는 SM을 나오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날씨도 더운 오늘,
괜한 헛걸음을 했다고 생각되는지 두 사람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 담겨있었다.
"도대체 무슨 출장을 왜 그렇게 자주 가는 건지.
선배님, 왠지 이수만이라는 그 자식이 우리를 자꾸 피하는 거 같은데요?"
채형사 역시 약이 바짝 올랐지만 억지로 감정을 억제하는 것 같았다.
"알고 있어.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피할 수 있을지 두고 보라고
확실한 물증이 나오는 날에는 얄짤없을 줄 알아!
그건 그렇고 내가 저번에 지시한 건 어떻게 됐어?"
김형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주머니 속에서 두꺼운 수첩을 꺼내더니
자신의 수첩에 적어온 수사 결과를 채형사에게 보고하였다.
김형사가 이제껏 조사한 바로는 경민에 대한 자료가 갱신된 곳은 행자부 한곳에서 모두 이루어졌고
담당공무원의 말로는 국장급이상의 고위직에서 직접 지시가 내려왔다는 것이었다.
그걸 토대로 몇 명을 추려내어 조사를 해봤더니 경민의 자료가 갱신된 시점으로부터 일주일 뒤에 한
고위직공무원이 수십억대의 아파트를 아들명의로 구입을 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았던 채형사는 뜻밖에 수확을 얻자 조금 전의 불쾌했던 기분은 좀 수그러진 느낌이었다.
"그래? 그럼 일단 검찰에 계좌 조회할 수 있도록 협조공문 보내고
이번에 신입으로 들어온 얘들 있지? 걔들 보내서 24시간 잠복근무 시켜서 누구를 만나고 누구랑 친한지 다 조사하라고 그래.
그리고 아참 그 용준이라는 의사는 어떻게 됐어? "
"그게 말입니다. 그 용준이라는 의사랑 경민이라는 피해자랑은 그 어떠한 연관성도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일단 경민은 서울토박이었고 그 의사는 대구에서 쭉 지내다가 미국으로 바로 건너간 걸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줄곧 병원 안에서만 생활했고요.
근데 한 가지 이상한 소문은 있더라고요.
그 용준이라는 의사랑 효연이 연인관계라는 소문이 나돌던데요"
"설마 소녀시대의 그 효연?"
김형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자신조차도 믿기 힘들었지만 여러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걸로 봐서는
허투루 넘어 갈 소리는 아닌 것 같았기에 채형사에게 이야기 한 것이었다.
"경민과 이수만, 그리고 그 소속가수인 소녀시대와 용준...
일단 연결고리는 맞아 들어가긴 하는데...흠"
채형사 역시도 믿기질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아무리 잘나가는 의사라지만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진실이었다.
그런 인물이 효연과 연인사이라는 소문을 쉽사리 믿어지지 않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네. 정말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번 사건의 키는 역시나 SM인거 같습니다."
"흠. 일단 그 용준이라는 의사를 다시 한 번 만나봐야겠군."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이수만은 자신의 사무실 안에서 두 사람이 SM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점이 되어 시야에서 사라지자 굳은 표정을 짓던 이수만은 미연을 불렸다.
"지금 당장 강실장 내 사무실로 오라 그래!!"
"네, 이사님"
호출을 한지 몇 분 지나지 않아 강실장이 이사실로 들어왔지만
이수만은 여전히 창문 밖을 쳐다보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찾으셨습니까? 이사님"
"지금 방금 누가 날 찾아왔는지 알고는 있겠지."
"면목 없습니다."
강실장에 대답에 이수만은 코웃음을 치며 그제야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면목이 없다라?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따구로 밖에 일처리 못하는 거야?
그깟 시체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해서 내가 이렇게 쥐새끼처럼 꽁무니를 빼야하냐고!!"
강실장은 고개를 숙인 채 그저 이수만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이사님"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강실장은 말끔하게 처리했다던 조폭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에
경민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는 사실을 생각지도 못했다.
그만큼 강실장은 자신이 돈을 주고 일을 맡긴 사람들을 믿었고
그 사람들 역시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인 만큼 뒤처리는 깔끔했었다.
하지만 딱히 누구의 잘못이라면 조폭들이 경민을 너무 쉽게 봤다는 것이었고
누가 처음이 아니랄까봐 용준이 경민의 시체를 숨기다 보니
너무나 쉽게 사람들에게 발견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런 시기에 그 가짜 경민이 허튼 소리라도 지껄인다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지?
그 가짜 놈부터 형사들이 눈치 못 채게 잘 숨겨놓아라 말이야!"
"그건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마침 부모님이 생신이라서 지금 중국 자기 고향에 가있습니다."
"그래 그건 천만다행이군. 되도록이면 영원히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란 말이야
강실장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이번에도 실수하면 그땐 각오 하는 게 좋을 거야"
"네. 이사님 확실히 마무리 짓겠습니다."
강실장이 다시 한 번 이수만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난 후
10분도 되지 않아 또 누군가가 이사실문을 열고 들어왔다.
"또 무슨 일인가?"
이수만은 강실장이 다시 들어온지 알고 쳐다보지도 않고 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수만의 생각과는 달리 강실장이 아니라 동우가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이었다.
동우의 뒤에는 미연이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미연은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가는 동우를 말렸지만 역부족이었다.
동우는 이수만이 얼굴을 보자 여기까지 올 동안 꾹꾹 참아왔던 분노가 한 번에 분출하는 것 같았다.
이미 동우의 눈앞에 있는 앉아 있는 저 사람은
소녀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막강한 힘을 가진 sm의 대표이사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크나큰 상처를 준 그런 개만도 못한 인간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동우는 거칠 것이 없었다.
지금 동우의 머릿속에는 윤아의 눈물만이 눈앞에 아른 거일뿐이었다.
뜨거운 여름날 한 마리 미친개를 잡듯이 동우는 달려들었다.
"이 개새끼야!!"
동우는 곧장 달려가 책상을 넘어 탄 다음 바로 수만을 덮쳤다.
이수만이 앉아있던 의자는 동우의 몸무게를 버티지 못해 이수만과 함께 뒤로 넘어갔고
동우는 앞뒤 젤 것도 없이 이수만을 진짜 죽일 기세로 목을 꽉 부여잡고서는 조르고 있었다.
"동우씨, 왜 그래요!!"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미연은 동우를 붙잡고 말리기 시작했고
이사실 안이 시끄러워지자 경호원들이 이사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경호원들 역시 너무나 뜻밖인 이 상황에 당황한 나머지 둘다 어영부영하고 있었다.
"이 새끼... 켁..켁.. 빨리... 안 끌어내..켁...!"
"아...네 이사님"
그제야 두 명의 건장한 사내들은 동우를 양쪽으로 잡고서는 끌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동우는 격도로 흥분해있는 상태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동우는 뒤로 끌려 나가면서도 이수만을 향해 주먹과 발길질을 마구 날렸다.
그제야 완전히 동우에게서 벗어난 수만은 자신의 목을 어루만지면 동우에게로 다가갔다.
이수만이 자기 곁으로 다가오자 동우는 또다시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고 또다시 동우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치자
이수만은 잔뜩 움츠러들면 뒷걸음치면서 경호원들에게 소리쳤다.
"꽉 잡지 못해!! 이 미련한 것들아"
두 명의 사내들은 동우의 복부에 주먹을 날리면 동우를 제압했고
두 명의 사내들이 동우를 완전히 제압하자 이제야 안심이 되는지 이수만은 동우에게로 다시 다가갔다.
이수만은 동우를 고개를 들어올리면 말을 이어갔다.
"난 말이지 장사꾼이라고
네가 당한 거는 무조건 그 배로 갚아줘야지 수지타산이 맞는다는 거지 크크"
그러면서 자신이 당한 것을 그대로 동우에게 돌려주고 있었다.
이수만의 주먹이 센 것은 아니었지만 동우에게는 육체적 아픔보다는
심적 데미지가 훨씬 더 컸다. 비록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린 것이었지만 확실한 응징이었다.
헉..헉..헉
동우의 숨소리는 조금씩 거칠어져갔고 이제야 수만은 분이 다 풀렸는지
자신의 옷매무새를 바로 잡으면 동우에게 훈계라도 하듯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너무 억울해 하지 말라고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지배하는 그런 세상..
난 그래서 이 세상을 너무 좋아한다고 크크크"
그에 비에 동우는 악에 받친 목소리였다.
"헉...허...너 같은 놈은 이 사회에서 매장되어야 해!!
만약 그렇지 되지 않으면 언젠간 내가 널 직접 심판하고 말겠어!"
동우의 말이 터무니없다고 느끼는지 이수만의 얼굴에는 얇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이 사회가 날 어찌 할 수 있을까 크크
법? 사회정의? 그딴 게 다 무슨 필요 있지?
이 세상은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은 신 따위가 날 어떻게 할 수도 없지
그리고 설사 신이 정말로 존재하더라도 너같이 약해빠진 인간을 좋아할까
아님 나같이 모든 것을 갖춘 강한 인간을 좋아할까
내가 만약 신이라면 자신이 만든 창조물이 강해야 좋아하지 않을까
그러니 쓸데없는 곳에 힘 빼지 말라고"
하지만 동우의 얼굴에는 비장함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그 말 꼭 기억하지!!
언젠가는 그 말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크크크"
이수만은 재미난 장난감이 생긴 듯이 큰 소리를 웃기 시작했다.
이수만과 동우의 대화가 오고가는 사이 멀리서 뛰어오는 두 사람이 모습이 이수만의 눈에 들어왔다.
윤아가 오는 동안 민호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회사로 들어온 것이었다.
민호와 윤아는 이사실에 들어오자마자 동우의 모습을 보고서는
기겁을 한 채 동우에게 달려갔다.
"동우야!!!" "오빠!!"
동우의 새하얀 치아는 이미 붉게 물들어있었고 피가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었다.
윤아는 그런 동우의 모습을 보면 바르르 떨고 있었다.
"제가 예전에 경고했었죠. 오빠한테 손끝하나 건드린다면 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저한테 동우오빠는 전부라고요.
다시 한 번 오빠를 건드리면 전 모든 걸 포기해 버릴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 지는 이사님이 더 잘 아실 텐데요? "
이수만은 그런 윤아와 동우를 비웃기라도 한 듯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봐 이봐 왜 그래 윤아양
난 그저 방어를 했을 뿐이라고 저놈이 먼저 날 건드렸다고 크크"
그리고는 경호원들에게 눈짓을 보내자 두 명의 건장한 사내는 동우를 민호에게 넘겨주었다.
그러자 윤아 역시 동우의 한쪽을 붙잡고서는 이사실을 빠져나왔다.
어느 정도 벗어나자 동우는 두 사람을 팔을 뿌리쳤다.
"형, 윤아야 난 괜찮아. 이제 됐어.."
예전에 칼에 찔린 상처들도 아직 완전히 여물지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충격을 받아
아직까지 강한 통증이 있었지만 윤아에게는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한테도 용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척이나 화가 났다.
동우는 두 사람을 뿌리치며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윤아는 배를 움켜잡으면 앞으로 힘들게 걸어가는 동우의 뒷모습을 보자
이사실에서부터 쭉 참아온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윤아는 앞으로 뛰어가 동우의 손을 붙잡았다.
두 사람은 마주서게 되었고 윤아는 가까이서 동우의 상처를 보자
막힌 둑이 터지듯 눈물들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약속해 빨리! 다시는 이런 무모한 짓 안한다고!!
빨리 약속하란 말이야...흑흑흑"
윤아는 동우의 가슴을 마구 두들기면 소리쳤다.
"빨리 약속하란 말이야!!!"
자신의 가슴에 안긴 채 울고 있는 이 연약한 소녀를 보면 동우는 가슴이 아파왔고
이 소녀의 눈물을 보면 동우 역시도 가슴이 저려왔다.
'윤아야..'
동우가 아무 말이 없자 윤아는 더욱더 큰 소리로 울먹이며 동우에게 소리쳤다.
"흑흑흑.. 빨리 약속하란 말이야 다신 내 마음 아프게 안하겠다고!!"
"알았어.. 그러니까 울지 마 윤아야..
네가 울면 내 가슴은 찢어진다 말이야"
"그러니까 약속하란 말이야!! 다시는 여기 안 올 거라고"
"그래..알았어 다시는 여기 안 올게"
윤아는 그렇게라도 해서 동우의 다짐을 받고 싶었다.
동우가 잘못되는 것보다 자신이 아픈 것이
윤아에게는 훨씬 덜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병원으로 돌아온 동우일행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병실 안에서는 동우가 혹시라도 또 사라질까봐 윤아가 동우의 손을 꼭 부여잡고서는 잠들어있었고
이미 너무 울어 눈이 부어 있는 윤아의 얼굴을 보면 동우는 윤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이제야 겨우 안정을 찾았는지 윤아의 얼굴은 평안해져 보였고 동우는 답답한 마음에 병실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병실밖에는 민호와 미연이 걱정이 되는지 집에 가지 않고 병실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 동우야, 윤아는 좀 어때?"
"이제까지 울다가 방금 잠들었어요."
동우의 힘없는 대답에 미연은 눈물을 흘리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너무 불쌍해, 우리 윤아 어떡해..흑흑흑"
민호와 미연역시 동우를 기다리면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듯 보였다.
"아참.. 아까 팀장님한테 전화 왔어..너 이제 회사 안 나와도 된다더라.
동우야, 이왕 이렇게 된 거 몸도 안 좋은데 푹 쉬어라
시발, 나도 더러워서 때려 치던지 해야지"
미연역시 그 말에 동감을 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만 둬야겠어요. 그 정도로 나쁜 인간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치가 떨려요"
그런 민호와 미연에게 동우는 다가가 두 사람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리고 진심어린 목소리로 두 사람에게 부탁을 하였다.
"민호형,미연씨, 정말 무리한 부탁인거 알겠지만 부탁해요
나도 없는데 형과 미연씨마저 없으면 우리 얘들을 누가 가까이서 지켜주겠어요
그런 인간 밑에서 일을 한다는 게 정말 싫겠지만 조금만 참아주세요
형하고 미연씨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얘들한테 큰 힘이 될 거에요"
민호와 미연은 한숨을 크게 쉬면 동우의 이야기에 대해 신중히 생각하였다.
"그래, 알았어. 우리라도 얘들 곁에 있을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우리만 믿어.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막가파라고.
얘들한테 또 이상한 짓하면 내가 어떻게든 막아볼게"
미연 역시 두 주먹을 불끈 쥐면 동우에게 힘을 북돋아주고 있었다.
"저도요. 제가 그 인간 옆에서 일하면서 또 다시 이상한 짓거리를 한다는
낌새가 느껴지면 바로 동우씨에게 연락드릴게요."
동우는 눈물이 날 정도로 두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정말 고마워요.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을게요.
그리고 제가 최대한 빨리 다른 방법을 찾아볼게요."
"에이 기분도 잡쳤는데. 미연아,
우리 염소 고기나 먹으러가자
염소같이 생긴 그 새끼를 생각하면서 잘근잘근 씹어 먹어주자고"
그렇게 두 사람은 동우와 윤아만을 남기고서는 병원을 빠져나갔다.
동우는 두 사람이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확인하고서는
윤아가 잠들어있는 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윤아는 그렇게 잠이 든 채로 아침이 밝을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고
아침이 되자 오늘도 역시 용준이 동우의 입원실로 찾아왔다.
"동우야, 몸은 좀 괜찮은 거야? 근데 윤아는 벌써 간 거야?"
"응.. 아침 일찍 나갔어.."
"나도 민호형한테 대충 이야기 들었어.. 아직 그런 인간들이 있다니
에휴~ 항상 웃는 얼굴의 윤아이기에..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더니"
"휴...용준아 그래도 윤아에게는 너무 티내지마
지금 윤아도 엄청 괴로울 거야...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자신의 상처를 들어낸 거니까
그리고 효연이나 다른 얘들한테는 절대 이야기하지 말고"
용준은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윤아에게는 그렇게라도 해서 안심을 시켰지만
난 도저히 그 인간을 용서할 수가 없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죗값을 치르게 할 거야"
다시는 윤아에게 그런 아픔을 주지 않겠다고
동우는 용준이 보는 앞에서 또다시 다짐을 하였다
그 시간...
낯익은 두 명의 사내가 병원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채형사는 혹시나 진료에 방해가 될까봐 아침 일찍 병원으로 용준을 찾아온 것이었다.
채형사와 김형사는 우선 용준이 일하는 진료과로 갔지만 용준이 그곳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는
담당간호사에게 용준이 있을 만한 곳을 물어보았다.
"아~ 지금 선생님은 친구 분 입원실에 계실거에요
항상 진료시작하기 전에 그곳부터 들리시거든요"
"그곳이 어디죠?"
채형사와 김형사는 간호사가 적어준 호실을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한참을 돌아다니던 채형사는 어느 병실 문 앞에 멈추어 서더니
쪽지에 적혀진 숫자와 문에 새겨진 숫자들을 확인한 다음 고개를 끄떡였다.
"여긴가 보군. 김형사, 들어가 보자고"
똑..똑
병실 안에는 누군가의 방문을 알리듯 노크 소리가 또렷하게 울려 펴지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 더 또렷한 소리에 동우와 용준은 하던 이야기를 멈추게 되었고 자연스레 시선이 문 쪽으로 옮겨갔다.
"누구지? 이 시간에"
동우와 이야기를 나누던 용준은 노크소리를 듣고서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렇게 닫힌 문과 벽을 사이로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네 사람..
윤아의 일로 힘들어하던 동우와 용준에게 또 다른 그림자가 점점 드리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