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부 만약 사랑에 온도가 존재한다면...
김형사는 자신이 발견한 지갑을 채형사에게 내밀었다.
그 지갑 안에서 나온 민증에는 채형사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피해자의 얼굴이 그대로 박혀있었고 그 옆에는 김 경민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채형사가 알아낸 진실을 더욱 선명하게 밝혀주는 등불과 같은 것이었다.
채형사는 점점 죽은 경민이 진짜 경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근데 넌 그건 알고 있냐?"
"뭘요?"
채형사는 김형사에게 경민에 대해 자세히 조회 해 보라고 지시하였다.
김형사는 피해자가 경민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에 대해 너무 흥분한 나머지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채형사에게 달려왔던 것이었다.
"엥~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왜 사람이 다르지"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분명한 것은 두 사람 중 한 명은 가짜라는 것이고
그 가짜를 만들어 낸 사람이 이번 살인 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지”
계속해서 경민의 지갑을 살피던 채형사는 천원짜리 돈들 사이에서
고이 접힌 메모지 한 장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건 뭐지?’
혹시라도 찢어지라 조심스럽게 메모지를 핀 채형사의 눈에는
삐뚤어진 글씨로 쓰여진 한 사람의 연락처가 적혀있는 것이 보였다.
‘sm 대표이사 이수만 이라..
경민과 이수만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
경민은 오래 전 이수만의 명령을 받아 소녀들의 사진을 찍을 때
이수만에게 직접 보고를 하기 위해 적어놓은 연락처를 아직도 지갑 속에 넣어두었던 것이었다.
채형사는 밑바닥 인생을 살았던 경민이 이수만이라는 거물과 알고 지낸다는 게
왠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채형사는 멍하니 자신의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던 김형사에게 메모지를 건네며
메모지에 적힌 연락처가 진짜 이수만의 연락처인지 알아보고 만약 그 연락처가 정말 맞는다면
경민과의 통화내역을 한번 조사해보라고 김형사에게 지시를 하였다.
이수만이라는 이름에 적지 않게 놀란 김형사는 채형사의 말대로 조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중요한 이야기를 빼먹었는지 황급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참! 선배님, 피해자의 차가 발견된 공사장에서
피해자의 혈흔으로 보이는 사건 현장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걸 왜 이제서야 이야기해! 그럼 먼저 그 곳부터 가보자고”
채형사는 김형사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서둘려 자리에서 일어나 경찰서를 빠져나갔다.
한참을 달려서 겨우 도착한 공사장 안에는 모든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는 듯이
사건현장에 있는 것들은 모두 제자리에 고스란히 놓여져 있었고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아주고 있었다.
채형사는 아주 값진 보물이라도 찾는 듯이 세밀하게 사건현장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기서 뭐 발견 된 것은 없나?”
“네, 폐자재들 속에서 피가 묻은 칼이 발견 되었는데 그것이 이상한 게
칼의 손잡이에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지문이 찍혀있었습니다.”
“그래? 그리고 또 이상한 점은?”
“아뇨. 그것 말고는 없었습니다.”
김형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참 동안 조사를 하던 채형사는
갑자기 쪼그려 앉더니 무엇인가를 집어 올렸다. 그것은 바로 금발의 머리카락이었다.
“자네 말이지 외국인이 아닌 한국 여성이 부분염색이 아니라
머리 전체를 금발로 염색을 한 여자를 자주 보았나?”
“아뇨. 흔치 않은 모습이죠”
“그렇지.. 흔치 않지..
음..금발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라
과연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채형사는 그 금발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투명한 봉투에 담고서는
이번에는 혈흔 자국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 혈흔 자국을 보라고 2군데로 나누어져 있는 모습을 보아서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도 출혈이 심각할 정도라고
이정도 출혈이면 분명 가해자도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거야
아마 응급실에 실려갔거나 이 금발의 여성이 가해자를 치료 하기 위해
병원으로 데려다 줬겠지.
상황이 위급하기 때문에 멀리 있는 병원은 못 갔을 거고...
서울 일대에 이정도 중상을 치료할 수 있는 큰 병원들을 돌아다니면서
칼에 찔린 사람이 있었는지 조사하면 무엇인가가 나오겠군”
김형사는 그저 채형사에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채형사는 김형사와 함께 사건 현장을 빠져 나오면서 이야기를 꺼내었다.
“난 인근 병원을 돌아다니며 조사해볼 테니까 넌 아까 내가 지시한 통화내역이랑
Sm에 찾아가서 경민이라는 사람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조사해 보라고 알았지?”
김형사는 두 주목을 불끈 쥐고서는 채형사를 향해서
자신감이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네 선배님, 저만 믿어 주십시요!!
제가 깡그리 밝히고 오겠습니다.”
믿어달라는 김형사의 말이지만 언제 들어도 믿음이 안가는 소리였다.
채형사는 한번 더 속는 셈치고 김형사를 보내주었다.
어느새 해는 저물어져 가고 있었고 또 다시 병원 주차장 안에서 자동차의 시동을 걸면
한숨을 짓는 채형사였다. 이번에도 역시 아무 소득 없이 허탕만 치고서는 병원을
빠져 나온 채형사는 이제 마지막으로 용준이 일하는 병원으로 차를 돌렸다.
“이제 마지막 병원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왜 아무것도 나오지가 않지”
언제나 자신의 직감에 확신이 차 있던 채형사는 무엇인가 잘 풀리지 않은지
연신 한숨을 짓고 있었다.
그 순간 멀리서 채형사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김형사였다.
“선배님. 저 다녀왔습니다.”
“그래 좀 건진 건 있어?”
김형사는 자신이 조사한 바를 채형사에게 낱낱이 이야기해주었다.
그것은 바로 메모지에 적힌 전화번호는 일반적인 명함에 적힌 휴대폰의 번호가 아니라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알려주는 번호라는 것이었고 그 만큼 경민과 이수만이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연락을 한적이 없지만
몇 달 전에는 하루에 몇 번이나 통화를 한 흔적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채형사도 만족을 하는 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 잘했어. 그건 그렇고 sm에 간 것은 어떻게 되었어?”
“그게..”
조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풀어놓던 김형사였지만
sm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조용해 지면서 자동적으로 고개가 숙여지고 있었다.
“설마 너 혹시 예쁜 여자 아이돌 구경 한다고
수사는 하지도 않고 정신 줄 놓고 있었던 건 아니지?”
“선배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근데 말입니다. 진짜 그렇게 예쁜 여자들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니까요
정말 선배님도 한번 보시면 아무 생각이 안 난다니까요”
김형사는 다시 한번 소녀들의 얼굴이 떠오르는지
김형사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널 믿은 내가 바보지 어~휴
빨리 따라오기나 해”
채형사는 아직 소녀들의 영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김형사를 데리고서는
용준이 일하고 있는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채형사는 먼저 병원 원무과로 들어가서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고서는
수사협조를 요청하였다. 채형사의 이야기가 계속 되는 동안 사무실 안에서는
유독 한 사람만이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바로 그 사람은 용준이었다. 때 마침 용준도 원무과에 볼일이 있어 내려왔던 것이었고
채형사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던 것이었다.
용준은 식은 땀이 흐리기 시작했다.
채형사는 여직원에게 지난 한달 동안의 응급실 환자와 입원 환자의 자료들을 볼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고 그 여직원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흔쾌히 수사에 협조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용준은 다급한 마음에 그 여직원에게 다가갔다.
“영미씨, 제가 부탁 좀 할게요
보다시피 제가 몸이 좀 불편하잖아요 제가 이분들을 도와 줄 테니까
이것 좀 5층에 올려주면 안돼요?”
그러면서 용준은 여직원에게 서류뭉치를 건네주었다.
여직원은 채형사와 용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 분이 도와줄 거라는 말과 함께 채형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서는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용준은 뒤에서 채형사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지만 모른 척 하면
다시 한번 채형사에게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질문을 하였고
채형사는 다시 한번 용준에게 협조를 요청한다는 부탁을 하였다.
“그거라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용준은 최대한 당황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 자신에게 용기를 복 돋아 주고 있었고
침착하게 대응을 하려고 노력하였다.
용준은 자료를 찾는 척하며 동우에 대한 자료를 숨기기 시작했다.
“이게 어디 있더라?
제가 이 담당이 아니라서 시간이 좀 걸리네요. 죄송합니다.”
채형사는 그런 용준의 모습을 아무 말없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고
동우에 대한 자료들을 모두 숨기고서야 용준은 파일뭉치를
채형사 앞으로 꺼내 주었다.
“아~ 여기 있네요”
그리고서는 채형사가 모르는 의학용어들을 일일이 가르쳐주며
최대한 협조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랜 시간 동안 채형사는 용준의 도움을 받아 모든 자료들을 훑어 보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용준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채형사에게 이야기 하였다.
“어떡하죠 도움이 되지 못해서.”
용준의 행동에 채형사도 최대한 격식을 차리며 정중하게 이야기 하였다.
“아닙니다. 충분히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이제 그만 가 보겠습니다.”
병원 밖으로 나간 채형사는 무언인가 느낌이 이상한지 김형사에게 물어보았다.
“너 저 용준인가 하는 의사를 보면서 뭐 이상한 거 못 느꼈어?”
“선배님도 그걸 느끼셨나요?
저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전 처음에 휠체어를 타고 있길래 환자인지 알았는데
의사라니 그것도 요즘 잘나가는 의사라던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저런 몸으로 공부하는 것조차 힘들 텐데
그걸 다 이겨내고 의사가 되었다니 그 모습을 보며
제 자신도 한번 되돌아 볼 수 있었고 하여튼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
김형사는 용준의 모습을 보고 정말 많은 것을 느꼈는지
숨도 쉬지 않고 용준에 대한 칭찬을 끝도 없이 늘어놓았다.
그런 김형사의 말에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쭉 듣고 있던 채형사는
김형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형사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 멍청한 놈아!! 그것 말고”
“그럼 또 다른 게 있습니까?”
채형사는 이번에는 얼마나 답답했으면 자신의 머리를 쥐어짜며
깊은 한숨을 지었다.
“어 휴~ 이런 놈과 함께 팀을 꾸려나간다는 자체가
신이 나에게 준 시련이라니까”
말은 그렇게 해도 채형사는 김형사에게 아끼는 고향 후배로서 그리고 친한 동료로서
깊은 애정이 있었고 그런 김형사에게 아기에게 걷는 법을 가르쳐 주듯이
용준의 행동에 이상한 점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세세히 가르쳐주었다.
“선배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해
저 용준이라는 의사도 이수만과 더불어 용의선상에 올려야겠어”
병원 안..
자신들은 이미 동우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여유랄까
세 명의 소녀들은 그 일이 있은 후에도 계속해서 제시카를 도와주기 위해서
제시카에게 계속 동우를 양보해주었다.
동우는 침대에 누워 몸을 뒤척이면서 제시카에게 이야기를 꺼내었다.
“오늘도 다들 바쁜 거야? 아무도 안 오네”
“그런가 봐. 근데 그 뉘앙스가 좀 그렇다.
왜 내가 있어서 귀찮아?”
“아니, 하하하”
하루만 있더라도 병원 안을 가득 채우는 약 냄새와
사람들이 고통스러워 하는 표정을 보면 가만히 있어도
괜히 몸이 아픈 것 같고 피곤이 몰려온다는 것을 아마 한번이라도 간병을 해본 사람을 알 것이다
정말 아픈 사람에 대해 애정이 없다면 하루만 있더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것이지만 제시카는 벌써 3일째 동우의 곁을 계속 지키고 있었다.
몸은 좀 피곤 할지라도 마음만은 어느 때보다 풍성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둘은 더욱 가까워지고 있었고
이제는 정말 동갑내기 친구 같은 애인이랄까 그런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야~ 우리 군것질이나 하러 가자”
동우는 제시카의 손목을 낚아채고서는 병실 안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제 손목을 잡히는 것에는 단련이 되어있는지 제시카도
순순히 동우가 이끄는 대로 따라 나섰다.
동우가 제시카를 데리고 간 곳은 병원 근처에 편의점이었고
두 사람은 편의점에 도착하자 마자 또 다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야~ 이거 먹자”
“아니야! 이게 더 맛있다니까 이거 먹자니까”
두 사람은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데에도 티격태격 말다툼을 하는 것이었다.
서로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은 다시 옛날로 돌아갔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각자 고르면 간단하게 해결될 것을
동우와 제시카는 자신이 알고 있는 달콤한 그 맛을 상대방에게도 가르쳐 주고 싶었기에
그렇게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동우와 제시카의 손에는 각자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2개씩 들려있었고
사람들이 제시카를 알아보고 모이기 시작하자 동우는 제시카가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 2개를 뺏고서는 제시카를 설득하였다.
“그럼 그냥 4개 다 사자”
“안돼!! 넌 아직 환자잖아 많이 먹으면 큰일난다고
그러니까 좋은 말 할 때 내가 골라준 거 이거 먹자 알았지?”
동우에 대한 걱정이 듬뿍 담긴 제시카의 협박이었고
동우는 제시카의 말에 괜히 기분이 좋아지며 못 이기는 척 제시카의 말에 따랐다.
“그래 좋아, 다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거 먹는 거다. 알았지?”
“웅”
그렇게 제시카는 승자의 미소를 띠며 편의점을 빠져 나왔고
두 사람은 병원 앞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벤치에 양 끝에 앉은 두 사람 눈에는 도심생활에 찌든 사람들의 모습이 비추어졌고
자신들 앞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무슨 그리 급한 일이 있는지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와는 반대로 두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은
상대방의 행동 하나하나 눈길 하나하나마다 신경이 쓰이는지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매우 느리게 느껴졌다. 마치 두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동우는 멀찌감치 떨어져있는 제시카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면
“근데 시카야, 넌 이상형이 어떤 타입이야?”
제시카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모든 여자들의 로망인 참 모범적인 답안을 제시하였다
“나? 음... 나한테 잘해주고 날 아껴주고 나만 봐라 보는 남자... 그 정도?”
동우는 다른 소녀들을 떠 올리며 제시카의 말에 서운한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럼 난 아니네..”
“니가 왜? 니가 나한테 얼마나 잘해주...
..치...알긴 아네, 니가 나한테 잘해준 게 뭐가 있냐!”
제시카는 풀이 죽어 있는 동우를 보며 바로 너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었지만
마음에 있는 말과 다른 말을 하고 말았다.
“이제 그만 들어가자..”
그렇게 말을 하고 서는 병원 안으로 들어가는 동우의 뒷모습을 보며
제시카는 동우를 향해 외치고 싶었다.
‘김.동.우.. 넌 예외란...말이야’
병실로 돌아온 동우는 아직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제시카는 그런 동우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침대에 누운 동우는 심술이 났는지 괜히 제시카를 놀리고 싶었다.
“야~ 불편하면 올라와서 같이 자”
제시카는 동우의 갑작스러운 말에 얼굴이 빨개지며 떨리는 목소리로
“너.. 미쳤어?”
“왜 그래 정색을 하면서 오바를 해
난 너 이상형 아니잖아? 왜 나한테 좋아하는 감정이라도 있어?”
시간이 흘렸지만 조금 전에 제시카가 했던 이상형에 관한 말이 신경이 쓰였는지
아직 마음에 두고 있던 동우였고 그러고 보면 은근히 뒤끝이 있는 동우였다.
속마음이 들킨 듯 말까지 더듬으며 괜히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시카는 동우를 올려다 보면 이야기 하였다.
“내..내가 뭘? 너 참 웃기다
너 나한테 관심 있어? 왜 자꾸 옆에서 자라고 그래?
동우 또한 제시카의 직접적인 질문에 쑥스러운지 일부러 짜증 섞인
말투로 대꾸해 주었다.
“그냥 좁은 데서 쪼그려 자는 게 불쌍해서 그런 거거든
나도 너 같은 타입 싫어한다고 난 태연이나 윤아처럼 천사 같은 스타일이 좋거든”
“참.. 기가 막혀서 나도 너 같은 바람둥이는 질색이거든”
마치 오랜 된 여인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듯이 또 다시 서로에게 시비를 걸면
티격태격 싸우고 있었고 동우도 제시카와 함께 있으며 머랄까 태연이나 다른 소녀들과 함께
있는 것과는 다르게 제시카와 정신연령이 같아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럴 때 보면 참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이었다.
“그럼 3분 안에 안 올라오면 너 나 좋아하는 걸로 생각한다”
“별꼴이야...”
제시카는 못 이기는 척 조심스럽게 일어나 살며시 침대에 올라가서는
침대 옆 한쪽을 차지하고서는 누웠다.
그렇게 동우와 제시카는 서로에게 등을 보이며 침대에 누웠고
오랜 시간 동안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 침묵은 곧 평화로운 꿈나라로 이어졌고 아침이 되자
잠에서 깬 제시카는 자신의 몸 위로 무엇인가가 올려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이 바로 동우의 팔이라는 것을 알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이 들 때는 양 끝으로 등을 돌리고 잠을 자던 두 사람의 모습은
아침이 되자 조금한 틈도 보이지 않게 꼭 껴안고 자고 있는 모습을 변한 것이었다.
물론 동우가 제시카에 대한 사심이 듬뿍 담겨 있는 행동이었지만
또 다른 이유는 제시카가 혹시라도 침대에서 떨어질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이었고
그래서 제시카를 밤새도록 꼭 껴안고 잔 것이었다.
제시카는 자신의 눈 앞에 느껴지는 것이 동우의 심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잠에서 깨어났지만 제시카는 일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아..행복해..정말..정말 행복해.. 이런 게 사랑이란 걸까..’
오히려 제시카는 잠든 척을 하면서 더욱더 동우의 품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마치 엄마의 품 안처럼 마음이 포근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저절로 기분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제시카는 비록 눈은 감고 있었지만 자신을 안고 있는 동우의 모습이 눈 앞에 선명하게 그려졌고
오히려 동우가 지금보다 더 세게 자신을 끌어 안아 주기를 바라는 상상을 하기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입 꼬리가 살며시 올라갔고 제시카의 얼굴은 부끄러운지 점점 홍조를 띠기 시작했다.
제시카와 마찬가지로 동우 역시 잠에서 깨어났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제시카를 더욱더 오랫동안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잠든 척을 하며
서로를 애타게 원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동우의 따뜻한 온기는 점점 얼음 같은 제시카의 마음은 녹여주고 있었고
한동안 동우의 품 안에서 행복한 표정을 짓던 제시카는 생각했다.
자신은 비록 사랑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만약에 사랑에 온도가 존재한다면 그건 바로...
지금 자신에게로 전해져 오고 있는 동우의 따뜻한 체온인 36.5도 라고 제시카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