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부 (44/54)

43부 사랑앓이

미안하다는 동우의 그 한마디는 태연의 마음 속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왔고

그 말은 태연의 마음 속을 격렬하게 요동치며 이제까지 꾹 참아왔었던 태연의

감정들을 일깨웠다.

곧이어 촉촉이 젖어가는 눈망울 속에서 봇물 터지듯 눈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태연은 지금까지 동우 때문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동우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듯이

울면서 소리쳤다.

“난 정말 오빠가 죽으며 어떻게 하나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오빠가 그 마음을 아냐고!!

오빠가 그렇게 누워만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난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말이야 

그런 오빠를 놔두고서 스케줄을 가야 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알아? 

그때 내가 어떤 마음을 가졌었는지 오빠가 아냐고!!

그땐 정말 내가 연예인이라는 사실을 얼마나 후회했는데..흑흑흑

또 다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면 오빠고 뭐고 그땐 정말 끝인 줄 알아!!!”

동우도 역시 자신을 향해 소리치고 있는 태연을 보며 마음이 찢어졌다.

동우는 그저 말없이 태연을 꼭 안아 줄 뿐이었다.

“마음껏 울어 태연아.. 내가 다 받아 줄 테니까..”

태연은 동우의 품 안에서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십 여분이 지나는 동안..

마치 눈물샘이 말라 바닥이 보일 때까지 눈물을 흘리던 태연은 

그제야 진정이 되는지 병실 안을 가득 메웠던 그 처량한 울음소리는 

점점 잦아지고 있었다.

동우는 태연의 등 뒤를 토닥거려주는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는 

태연의 눈 밑으로 아직 흘려 내리고 있는 눈물들을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태연아, 이제 좀 속이 후련해?”

태연은 여전히 코를 훌쩍이면서 동우를 쳐다보며 말을 꺼내었다.

“미안해 오빠, 오빠가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것도 아닌데 

내가 너무 소리 질러서 놀랐지?”

동우는 퉁퉁 부은 태연의 눈을 마주 보며 말을 해 주었다.

“내가 더 미안하지.. 이렇게 날 생각해주는 널 위해서라도 

조금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해”

태연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동우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고

동우를 바라볼수록 영원히 동우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갔다.

“오빠... 이제 정말 내 곁을 떠나면 안돼. 알았지?”

“그래, 알았어. 언제나 니 옆에 있을게”

그제서야 태연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빠, 그런 의미로 키스해줘~”

이제까지 실컷 울더니 갑자기 키스를 해달라고 매달리는 태연이 귀여운지

동우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동우는 천천히 태연에게 다가갔고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자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마치 자기 것인 냥 격렬하게 서로의 입술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병실 안은 금세 뜨거운 사랑의 열기로 가득 찼고 서로를 갈망하는 눈빛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못내 아쉬움만 남긴 채 두 사람은 떨어져야 했다.

태연은 서운한지 입맛을 다시는 동우에게 다가가 은밀하고 사랑스럽게 속삭여 주었다.

“오~빠~, 숙소로 돌아가면 알지? 내가 먼저 오빠를 덮칠 거야”  

제시카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있었고 태연은 자신이 동우 곁에 있을 때 

동우가 깨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행복해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꿀맛같이 단 시간을 함께 보내었고 그제서야

태연은 다른 소녀들에게 동우가 깨어났다는 연락을 하였다.

다른 소녀들에게 연락을 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 

마치 태연의 전화를 기다렸다는 듯이 두 사람은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곧 숨을 헐떡이며 황급히 문을 열고 들어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고

그 모습만 보더라도 두 사람이 얼마나 동우가 깨어난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한지 말해주는 듯했다.

그런 두 사람을 맞아주는 것은 동우의 따뜻한 눈망울이었고

두 사람 눈에는 태연이 보이지도 않은지 곧바로 동우에게 달려가 안겼다.

“야~ 아직 오빠는 환자라구! 너무 세게 끌어안지 마!!”

그 모습을 본 태연은 동우의 상처가 걱정되는지 윤아와 서현이에게 소리쳤고

윤아는 태연에 말에 바로 동우에게서 떨어져 동우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면 

괜찮은지 물어보고 있었지만 서현은 동우와 태연 단둘만이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는 데에

질투가 나는지 태연을 말을 못 들은 척 동우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서현은 동우의 품을 방패 삼아 

태연에게 대들듯이 얼굴만 빼꼼히 들고서 태연에게 이야기 하였다.

“태연언니 정말 나빠~ 그건 월권 행위라구요!! 혼자서만 예쁨 받고”

이미 병원 안으로 들어오면서 용준이를 만난 서현과 윤아는 동우가 오늘 깨어난 것이 아니라 

어젯밤에 깨어났다는 것을 듣게 되었던 것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샘이 나는지 

앵두 같은 서현의 입술은 더 뽀로통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동우는 태연에게 눈짓을 보내주고나서 서현의 편을 들어주며 서현이를 달래주었다.

“우리 막냉이는 옮은 말만 한다니까~ 내가 널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나쁜 태연이는 이제서야 연락하고” 

서현은 동우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자 신이 나는지 그제서야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그지 오빠~”

태연도 동우의 의도를 알아 차리고 보조를 맞추어 주었다.

“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서현 동생님~”

병실 안은 금세 웃음꽃으로 활짝 피어 났고 네 사람은 시간 가는지 모른 채

그들만의 또 다른 추억거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소녀들과 못다 한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동우는 왠지 무엇인가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동우는 넌지시 소녀들에게 말을 꺼내었다.

"근데 시카는 안 보이네?"

동우는 자신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간간이 들려오던 목소리들 중에서

제시카의 목소리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 목소리들이 

자신을 어둠 속에서 나올 수 있도록 자신의 손을 잡아 주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다치는 모습을 바로 눈 앞에서 본 제시카가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그냥 제시카가 보고 싶었다. 

"시카언니 여기 안 왔어요? 아침 일찍 병원에 간다고 나갔는데"

윤아는 아침 일찍 병원을 가기 위해 숙소를 빠져나가는 제시카를 본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제시카의 행동을 보아 동우가 깨어났다는 연락을 받고서도 안 올 제시카가 아니었기에

태연은 제시카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동우는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

그 순간 동우와 눈이 마주친 태연도 역시 동우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걱정하는 것은 바로 경민이었다.

물론 용준이 자신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보아 온 경민의 모습으로는 그렇게 쉽게 뉘우쳤다는 게 마음에 걸렸었다.

때마침 아침에 나갔다던 제시카는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고 

병원에 왔어야 할 사람이 오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더욱 불안했다. 

태연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실을 뛰쳐나갔다.

경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윤아와 서현은 동우와 태연의 행동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병실을 빠져나간 태연은 계속해서 제시카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반대편에서 울리는 통화연결음만이 태연을 맞아 줄 뿐이었다.

태연은 다급해졌다. 태연은 다른 소녀들에게도 전화를 걸기 시작했고

다행히 유리가 스케줄을 마친 후 숙소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태연은 유리에게 숙소로 돌아가면 제시카가 있는지 확인 한 후에 자신에게 

꼭 다시 전화를 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 다음 태연은 간호사실로 뛰어가 간호사들에게 혹시 오늘 아침에 제시카가 

병원에 온 것을 본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고 그 중 한 간호사가 기억을 더듬으며 

병실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숙인 채 침울한 표정으로 

병원을 빠져나가는 제시카의 모습을 보았다고 태연에게 이야기해주었다.

  

그 순간 유리에게서도 전화가 왔고 다행히 제시카는 숙소에 있지만

평상시 제시카와는 다르게 힘이 없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만 있다는 것이었다.

간호사와 유리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태연은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순간 자신 혼자서 동우를 독차지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괜히 제시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태연도 역시 제시카가 동우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혼자서만 그렇게 앓고 있는 제시카를 도와주고 싶었다.

태연은 다시 병실로 들어가 윤아와 서현을 밖으로 불러내었다.

  

숙소로 돌아온 제시카는 자신의 침대로 올라가 한동안 그저 천정만 바라보면 시간을 보내었다.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나 이것저것 해보았지만 기운이 나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재미있는 쇼프로를 보기도 했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마음 한 칸이 비었기에 어떤 것을 채우더라도 부족한 느낌이었다.

제시카는 그렇게 멀뚱히 거실에 앉아 있다가 동우가 생일 선물로 준 화분을 보게 되었고

자신도 모르게 이미 그 화분 앞으로 가있었다.

그 화분을 보자 예전 동우와 티격태격 다투는 생각들이 새록새록 피어 오르며 

제시카를 미소 짓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제시카를 미소 짓게 하는 것은 동우뿐이었다.

그러던 중 태연에게서 문자가 왔고 제시카는 그 문자를 보자마자 숙소를 뛰쳐나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동우의 얼굴을 떠올리던 제시카에게 있어 동우의 얼굴은 점점 허물어지고

밀려오는 걱정과 불안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한 제시카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고 

그런 제시카가 병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병원 안 한쪽 구석에서 세 명의 소녀들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윤아는 제시카의 모습을 보며 괜히 걱정이 되었다.

“언니, 우리가 너무 심한 장난을 친 거 아니에요?”

“아니야. 저 정도의 충격요법을 줘야지 자기 발로 찾아오지

이제 시카도 왔고 오빠도 깨어났으니 

오랜만에 맘 편하게 두 다리 쭉 뻗고 잠이나 자러 가자 얘들아”

태연은 그렇게 윤아와 서현을 데리고 병원을 빠져나갔다.

다급한 마음에 부서질 정도로 문을 세차게 열고 들어온 제시카에게 있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침대 위에 누워있는 동우의 모습이었다.

비록 자신 앞은 아니었지만 아침까지만 해도 태연과 사랑스럽게 대화를 나누던 동우가

다시 쓰려졌다고 생각하자 제시카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제시카는 동우에게 다가가 침대 앞에 쪼그려 앉아서는 동우의 팔을 부여잡고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그런 거야 흑흑흑

다 나은 거였잖아... 분명히 다 나아섰잖아

근데 왜..왜 다시 돌아간 거야....흑흑흑"

제시카는 동우가 이렇게 된 것이 모두 자신 때문인 것 같았다.

자신이 사랑에 욕심을 부려서 동우가 대신 벌을 받는 것 같았다.

“친구의 남자를 좋아한 게 그렇게 잘못된 일이야...”

난 그저 가슴이 시키는 데로 했단 말이야...

그게 잘못된 일이냐구...흑흑흑”

제시카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낸 신이 원망스러웠다.

“내 의지대로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라는 소리야...

동우를 사랑한 게 죄냐고..흑흑흑”

제시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흐느껴 울기만 하였다.

그 순간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동우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시카야 무슨 일 있어? 왜 그리 울고 있어?”

제시카는 동우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동우를 올려다보았다.

동우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멍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제시카는 무엇인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다시 쓰려졌다는 동우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는 것도 이상했고

동우가 쓰려졌다는데 태연을 비롯해서 아무도 동우 곁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도 이상했다.

제시카는 그제서야 태연의 문자가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랬다. 세 명의 소녀들은 동우에게 곧 제시카가 온다는 이야기를 하고서는 병실을 나갔고

제시카에게는 동우가 다시 쓰러졌으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문자를 보냈던 것이었다.

그리고 동우는 태연과 함께 밤을 지새우느라 하루 종일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에 

소녀들이 병실을 빠져나가자 마자 잠이 든 것이었다.

때마침 그때 제시카가 들어온 것이었고 제시카는 태연의 문자처럼 

정말 동우가 다시 쓰러졌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모두 하고 만 것이었다.

제시카는 조금 전에 자신이 동우 앞에서 한 말들이 떠오르자 너무나 창피했다.

제시카는 동우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야기하였다.

"....너 다 들었지?"

"뭘?"

"조금 전에 내가 한 말..."

"무슨 말 했는데?"

“몰라.. 됐어”

능글맞게 웃고 있는 동우의 얼굴을 보면 

제시카는 정말 쥐구멍이 있다면 그곳으로 숨고 싶었다. 

마치 한 여학생이 짝사랑하는 선생님에게 수줍게 사랑고백을 하려다가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제시카는 너무나 창피했다. 제시카는 뒤도 안 돌아보며 도망치듯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런 제시카의 뒷모습을 보며 동우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시카는 병실 밖 벽에 기대어 서서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자꾸만 조금 전 일들이 떠올랐다. 

제시카는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어떡해...’

계속해서 자신을 질책해보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이제는 아예 동우가 듣지 못했을 거라고 단정 짓고 싶었다.   

‘분명히 못 들었을 거야... 못 들었어.’

제시카는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너무나 창피한 나머지 더 이상 동우의 얼굴을 못 볼 거 같았다.

제시카는 마음을 가다듬고서는 문 가까이에 다가섰다. 

그리고는 흘려 내리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서는 

조심스럽게 머리를 살며시 문 사이로 집어넣어 병실 안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동우와 눈이 마주쳤고 동우는 제시카를 보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제시카는 무슨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재빠르게 고개를 빼내어 다시 문 뒤로 몸을 숨겼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렸지만 아직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참 사랑이란게 뭔지 그렇게 당당했었던 제시카를 이렇게 바꿔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창피하다고 해서 동우를 혼자 놔두고서는 숙소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결국 제시카는 동우가 잠들 때까지 병실 밖에서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제시카가 밖에서 애태우는 것을 아는지 동우는 금세 잠이 들었고

제시카는 간호사에게 부탁을 하여 동우가 잠이 들었는지 확인을 한 후에야 겨우

병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제시카는 동우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며 간이침대에 누웠다.

바로 옆에 동우가 누워 있다는 생각이 들자 또 다시 심장이 요동쳤다.

이제까지 수없이 많은 날을 동우 옆에서 잠이 들었지만 지금만큼이나 떨리는 날이 없었다.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언제라도 동우가 일어날 수 있기에 제시카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잠을 청하였지만 잠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제시카는 한참을 뒤척이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시간이 흘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아침이 제시카를 반겨주었고

눈을 뜬 제시카는 어제의 일이 모두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제시카는 자신의 몸 위에 덮인 또 한 장의 담요를 볼 수 있었다.

바로 동우가 제시카가 잠든 새벽에 혹시나 제시카가 감기라도 걸릴까 봐

담요를 구해와 덮어주었던 것이었다. 제시카는 마음이 찡했다. 

그것도 한순간 동우가 일어나자 또 다시 어색한 분위기가 병실을 가득 채웠다.

때마침 그런 분위기를 깨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기에도 넉넉해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고 

제시카에게 아침을 건네주었다.

제시카는 식판을 동우 앞에 내려놓으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하였다. 

“밥 먹어”

말은 그렇게 해도 제시카 역시 태연처럼 애교를 부리면서 동우에게 떠먹여 주고 싶었다.

하지만 사랑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제시카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말을 하고서는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동우는 제시카의 손목을 낚아채었다.

"야~ 어디가 같이 먹어"

동우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제시카에 비해 

동우는 예전과는 다르게 제시카에게 적극적이었다.

제시카는 동우에게 손목이 잡히자 온몸에 힘이 빠지는 듯하더니 

자신도 모르게 동우 앞에 앉게 되었다.

동우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제시카였지만

이렇게 가까이 마주앉아 단둘이 밥을 먹은 적은 처음이었다.

누구에게나 무슨 일이든지 처음이라는 이 단어는 가슴 떨리고 설레는 일이 것이다.

제시카는 밥을 넘기는데 그게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동우가 자신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여자가 칠칠 맞지 못하게 밥풀을 묻히고 다니냐"

바로 자신 눈 앞에 동우의 얼굴이 보였고 동우의 손이 입술에 맞닿자

제시카는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몸이 떨렸다.

쿵쾅 쿵쾅..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고 제시카를 놀리듯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점점 더 소리는 커져갔고 이제는 뛰다 못해 심장이 터질 것 같으면서 숨이 막혀왔다.

'어떡하지... 동우도 이 소리를 듣는 거 아니야...'

제시카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동우가 눈치 챌까 조마조마했다.

그런 제시카를 구원해 주는 손길이 있었으니 바로 태연,윤아,서현을 제외한 5명의 소녀들이 

동우를 보기 위해 병실을 찾아온 것이었다.

제시카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녀들 사이에 들어가 숨듯이 동우에게서 도망쳤다.

소녀들과 동우가 안부 인사를 할 동안 제시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마음을 진정시켰다.

동우는 이렇게 아침 일찍 자신을 찾아와 걱정을 해주는 소녀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제 애들한테는 정말 행복한 일들만 생겨야 할텐데...'

동우는 그런 소녀들의 모습을 보고서는 써니의 일을 완전히 마무리 짓기 위해서

퇴원을 하면 경민을 한번 찾아가 보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소녀들과 동우의 대화는 계속되었고 써니는 아쉬운 듯 동우에게 말을 꺼내었다

"조금 있다 서현이 올 거예요. 그럼 오빠 몸조심하세요.

저희는 스케줄때문에 가 볼게요. 시카야 가자"

"어..그래"

제시카는 병실을 빠져나가면서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동우의 얼굴이 보고 싶은지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돌려졌다.

제시카와 눈이 마주친 동우는 제시카를 향해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내었다. 

"보고 싶은데 다음에 또 올 거지, 시카야"

다른 소녀들이 모두 있는데 오직 제시카에게 보고 싶다고 말하는 동우였고 

제시카는 왠지 자신이 동우에게 중요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응 알았어.."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제시카는 동우의 보고 싶다는 그 한마디가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제시카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지어 주는 것 같았다.

병원 밖으로 나가자마자 제시카는 기지개를 피며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야!~ 날씨 좋다~"

다른 소녀들은 제시카의 얼굴과 하늘을 번갈아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날씨는 아침이라 하기에 무색할 정도로 더운 날씨에 차라리 비라도 쏟아지면 시원이라도 할 테지만

이건 뭐 비가 오다가 말다가 하면서 습도만 높아져 눅눅하고 가만히 있었도 짜증이 올라오는 그런 아침이었다.

그 시간 경찰서 안에서는 채형사가 자리에 앉아 무언인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은지 

귀찮은 듯 키보드를 두드리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날씨 참 좆 같네! 

야, 우리 쉽게~ 쉽게 가자 알았지

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고"

채형사 앞에 앉아 있는 남자는 짧은 스포츠머리에 부리부리한 눈 

그리고 깎은 듯이 내려오는 네모난 턱 선은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고 

그리고 눈 밑에 난 조그만 상처 자국은 강렬한 눈빛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그 남자를 처음 보았을 때는 한번쯤은 움츠러들 정도로 험악해 보였다.  

더욱이 나 운동 좀 했으니 건드리지 말라는 포스가 느껴지는 등빨과 팔뚝은 

그 남자의 인상을 더욱 험상궂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바로 그 남자는 나혁재라고 불리는 남자였다.

혁재는 다시 한번 채형사에게 그때 그 일을 차분하게 말해 주었다. 

혁재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채형사는 다시 한번 혁재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넌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그 여자가 무서워서 소리를 쳤겠냐

너 똑바로 말 안 해"   

혁재는 정말 답답한지 자신의 가슴을 연신 두드리고 있었고

얼굴은 뻘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정말입니다 채형사님, 정말 우연하게 버스에서 같이 내려서 제 갈 길을 가고 있는데

계속 그 여자랑 같은 길이더라구요

근데 그 미친 여자가 제 얼굴을 보고서는 앞으로 막 뛰어가더니 도와달라고 소리치더라니까요

전 정말 억울합니다. 전 그 여자 근처도 안 갔다니까요

채형사님도 알다시피 저 요즘은 맘 잡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믿어주세요”

혁재는 채형사를 향해 진심 어린 표정으로 침까지 튀어가면 열변을 토해내고 있었다

채형사는 일부러 혁재를 계속 몰아붙여 봤지만 계속해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혁재의 모습을 보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 같이 보이지는 않았고 가만히 듣고 보니 채형사도 혁재를 몇 번이나 봐 왔지만 

언제 보더라도 참 답이 안 나오는 얼굴이었다.

보통 평범한 여성이라면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신고한 여자에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채형사는 그냥 훈방조치로 끝을 내려고 하였다. 

“알았으니까 다음부터는 그런 일 안 생기도록 조심하고 가 봐”

혁재는 이런 일이 당한 게 자신도 어이가 없는지 한숨을 내쉬며 한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서야 어렵사리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혁재에게 

채형사가 보고 있는 한 장의 사진이 혁재의 시선을 묶어놓았다.

“근데 채형사님, 아까부터 뭘 그렇게 열심히 보시는 겁니까?”

혁재는 고개를 쭉 빼내어 책상 위에 올려진 경민의 사진을 쳐다보았다.

“니가 보면 뭘 아냐”

혁재는 채형사의 말을 무시한 채 사진을 들고서는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고

무엇인가가 떠오를 듯 말 듯 하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경민에 대한 수사에 진척이 없자 답답해하던 채형사는 혁재에 말에 정신이 바짝 드는지

혁재에게 몸을 바짝 다가가더니 기억이 나도록 재촉했다.

“그래!! 경민이었던가 하여튼 특이한 놈이었습니다.

교도소 운동장 안에서 풀을 뽑다가 어떤 놈과 부딪쳤는데 제가 또 한 인상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머냐고 하면서 딱 올려봤는데 순간 시급했지 않습니까

그 새끼 눈빛이 한 10일은 굶은 사자의 눈빛이었다니까요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혁재는 경민과의 첫 만남 이후 자신이 보아왔던 경민에 대한 이야기를 

채형사에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 교도소 안에서 꽤나 유명한 놈이었다는 이야기와 특이한 성격 때문에 누구라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포함해서 미친개,사이코,인간말종 등 여러 가지 별명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경민에 대해 자신이 느꼈던 생각을 채형사에게 세세히 이야기해주었다.

혁재가 경찰서를 빠져나간 직후 채형사는 경민에 대해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오는 건 다른 인물이었다.

"뭐야 혁재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건가"

한참을 경민에 대해 조사해보아도 똑 같은 결과였다.

이미 다른 경민이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헛수고에 불과한 것이었다.

채형사는 마지막으로 교도소 입소자들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경민은 대한 자료는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었다.

채형사는 끝내 혁재가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것으로 생각하고 포기하려는 순간

모니터 화면 안에 한 장의 사진에 필이 꼽혔다.

무심결에 지나칠 뻔도 한 그 사진은 바로 입소자들의 단체 사진이었다.

그 왼쪽 끝에는 그렇게 자신이 사진으로 보아왔던 경민의 얼굴이 떡 하니 나와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선명하게 김경민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채형사는 그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듯이 흥분감에 휩싸였다.

아무리 김의원 측에서 도와주었다고 해도 단체사진까지는 바꿔치기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채형사는 수년간의 형사경험으로 말미암아 느낌이 왔다.

"경민이 두 사람이라...."

그 순간 채형사를 향해 달려오는 김형사의 모습이 보였다.

"선배님~~~"

김형사의 얼굴에는 들뜬 모습이 역력했다

"선배님~ 제가 한 건 했습니다. 키키

지난번 산속에서 발견된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아냈습니다. 바로 "

채형사는 김형사의 말을 끊으며 이야기하였다.

"김 경민이지"

김형사의 눈은 커질 대로 커져 있었고 적지 않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선배님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가 니 머리 위에 앉아있다고~ 넌 아직 한참 멀었어!”

채형사는 거만한 자세를 취하며 김형사를 향해 코웃음 쳤다.

김형사는 자신이 그 사실을 발견했다는 자부심에 급하게 달려왔지만

이미 채형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자 어리둥절하였다.

그리고 곧 김형사는 채형사를 존경의 눈빛으로 쳐다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선배님"

“근데 넌 어떻게 알게 된 거야?”

멀뚱히 채형사만 쳐다보고 있던 김형사는 그제서야 자신이 발견해낸 사실을 

채형사에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바로 며칠 전 어느 공사장 안에서 장기간 주차되어 있는 차가 있다고 신고가 들어왔고 

김형사는 그 차를 조사하던 중 중요한 증거를 발견했던 것이었다.

김형사는 자신이 발견한 증거를 채형사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바로 차 안에 놔두었던 경민의 지갑이었다.

채형사는 지갑을 받아 들고서는 안을 샅샅이 들여다 보았고

그 안에서 주민등록증과 면허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민증 사진에는 자신이 그토록 궁금해하던 피해자의 얼굴이 그대로 박혀있었고

그 옆에는 김 경민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자신이 알아낸 진실을 더욱 선명하게 밝혀주는 등불과 같은 것이었다.

채형사는 점점 죽은 경민이 진짜 경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근데 넌 그건 알고 있냐?"

"뭘요?"

채형사는 김형사에게 경민에 대해 자세히 조회 해 보라고 지시하였다.

김형사는 피해자가 경민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에 대해 너무 흥분한 나머지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채형사에게 달려왔던 것이었다.

"엥~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왜 사람이 다르지"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분명한 것은 두 사람 중 한 명은 가짜라는 것이고

그 가짜를 만들어 낸 사람이 이번 살인 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지”

채형사는 이제서야 이번 사건의 길이 보이기 시작하는지 자신감에 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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