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부 사랑, 참 어렵다...
동우가 깨어나지 못하는 시간이 오래 지속 될수록 소녀들은 점점 지쳐갔다.
특히 태연은 다른 소녀들에 비해 스케줄도 많은 편이어서 더욱 힘들어했다.
그래도 동우를 생각하며 오늘도 꿋꿋이 모든 일정을 소화했고 마지막으로 라디오 진행을
마친 후 지친 몸을 이끌고서는 민호의 차에 올랐다.
태연은 차에 타자마자 바로 옆으로 쓰러지며
“민호오빠, 잠깐 눈 좀 부칠게요. 바로 병원으로 가주세요”
“왜 숙소부터 안 가고? 오늘은 내가 동우 옆에 있을 테니까 숙소로 가자”
오늘따라 무척 피곤해 보이는 태연이었기에 민호는 숙소로 가서 쉬기를 설득했지만
꼼짝하지 않은 태연이었다.
“몸은 피곤해도 오빠 옆에서 쉬는 게 마음이 편해요. 도착하면 깨워줘요”
그리고는 바로 잠이 들어버리는 태연이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있는 민호는 그런 태연이 가엾고 애처로워 보였다.
밀려드는 차들 속을 헤쳐나가며 겨우 병원 앞에 도착한 민호는
주차할 공간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병원 근처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한 것 같았다.
민호는 주위를 꼼꼼히 살피며 병원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고
민호 말고도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몰려드는 차들로 좁은 골목길은 얽히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경적소리가 사람들의 답답함을 말해주는 듯 보였다.
태연은 주위에서 들여오는 경적소리에 잠에서 깨었고
곧 주차공간을 찾기 위해 애를 먹고 있는 민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태연은 흐트러져있는 자신의 옷매무새를 바로잡으며 민호에게 이야기를 꺼내었다.
"민호오빠, 저 혼자 올라갈 테니까 그냥 병원 입구에 세워주세요."
민호는 태연에게 미안했지만
딱히 차를 세울 때도 없었기에 민호도 태연의 말에 따랐다.
그렇게 태연은 모자만 깊게 눌려 쓰고서는 혼자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병원 안에 들어서자 태연을 맞이하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하지만 태연은 이제 그런 시선에 익숙질 대로 익숙해져 있었다.
태연은 힘이 들더라도 사람들을 향해 가볍게 인사를 건네며 동우가 있는
입원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간호사실 앞에 서 있는 용준이의 모습이 보였다.
태연은 동우의 상태도 물어볼 겸 용준에게 뛰어가며 용준을 불렀다.
하지만 용준은 깊은 생각에 잠겼는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용준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
오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어.. 태연이 왔어..무슨 일이 생기기는 동우야 항상 그대로지
그대로라서 문제지만.. “
용준은 요즘 들어 생각에 잠겨 있는 시간이 많았다.
용준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동우가 깨어나지 않은 것도 한몫하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바로 경민의 일이었다.
용준은 요즘 들어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항상 불안하고 초조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이름을 부르면 덜컥 겁부터 났다.
죄를 짓고는 못산다는 말을 용준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결심이 약해진 것은 절대 아니었다.
저렇게 누워있는 동우를 보면 그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태연아, 윤아 기다리겠다. 어서 들어가 봐”
태연과 용준은 그렇게 간단한 대화를 마치고는 멀어졌다.
용준과 헤어진 후 태연은 동우가 깨어나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병실로 향했다.
태연은 항상 병실로 들어갈 때마다 동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반겨주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도 그 상상은 정말 상상으로 끝나버렸다.
동우는 항상 누워있는 그 침대에 누워 있었고
그 앞에는 윤아가 동우를 애절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태연과 윤아는 병실 안에서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다.
둘의 대화라고는 동우에 관한 이야기뿐이었지만
그렇게나마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둘은 슬픔을 이겨내고 있었다.
윤아가 떠나가고 또다시 동우와 태연 단둘만이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태연은 혹시나 동우가 자신이 목소리를 듣고서는 깨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동우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동우의 이름을 애타게 불려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돌아오지 않은 메아리였다.
“오빠.. 언제 또 다시 내 눈을 쳐다보며 날 사랑한다고 말해줄 거야...
미치도록 듣고 싶어.. 오빠의 그 목소리가..."
태연은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직 동우를 기다려주는 것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태연은 흐르는 눈물을 닦고서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단단히 먹은 뒤
동우 곁을 끝까지 지킬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갔고 병실 안은 고요한 잠에 빠진 듯 했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태연은 동우와 함께한 추억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추억에 젖어 태연은 행복한 단꿈에 빠져들었는지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잠에 빠진 태연은 무슨 행복한 꿈을 꾸는지 얼굴에서는 미소가 퍼지기 시작했다.
넓디넓은 하얀 백사장 위는 마치 작은 보석이라도 숨겨 놓은 듯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짙은 에메랄드 빛을 띠는 바다는 수줍게 자신의 속을 드려내 보이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은 작렬하는 태양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바로 그곳에서 동우와 태연, 그 둘만이 아무도 없는 백사장을 팔짱을 낀 채 거닐고 있었다.
하얀 모래 위에 새겨진 동우와 태연의 발자국들은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을 말해주는 듯했고
동우는 한참을 태연과 거닐다 갑자기 태연 앞에 멈추어 서더니 사랑스럽게 태연을 바라다보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모래도.. 에메랄드 빛을 띠는 바다도.. 때 묻지 않은 파란 하늘조차도
태연의 아름다운 미소를 숨길 수가 없는 듯했다.
동우는 태연의 머리를 넘겨주며 이마에 조심스럽게 입맞춤을 하였고
태연도 그에 맞춰 수줍은 미소를 띠며 눈을 살며시 감았다.
하지만 태연은 느낄 수 있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선명한 그 따뜻한 손길..
태연은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이상한 기분에 눈을 떴다.
그러자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반겨주는 동우의 얼굴이 보였고
마치 자신을 위해 고생한 태연에게 미안한 듯 태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는
동우의 모습이 태연의 눈 안에 가득 찼다.
태연은 복받쳐 오는 기쁨에 소리쳤다.
“오빠!!!!”
“태..연..아..”
동우는 오랫동안 누워만 있었는지 그 짧은 말을 하는데도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태연의 이름을 부르는 그 짧은 한마디에도 모든 감정들이 섞여 있는 듯했다.
태연은 동우의 목소리에 이끌려 곧바로 동우에게 달려들었다.
태연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지금만큼은 마음껏 울고 싶었다.
한참을 동우의 품 안에 안긴 태연에게 동우의 따뜻한 체온과
심장 뛰는 소리가 전해지고 있었다. 태연은 설령 이게 꿈이라 해도 좋았다.
이 생생한 느낌,,,
태연은 오랫동안 이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고 꿈이라면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태연은 더욱더 동우를 세차게 끌어안았다.
그러자 동우에게서는 고통을 꾹 참고 있는 듯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신음을 앓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태연이 동우를 너무 세게 끌어안는 바람에 다친 상처들이 태연의 몸에 의해 눌린 것이었다.
하지만 동우도 태연을 보고 싶었기에 너무나 안고 싶었기에 그 고통을 참고 있었던 것이었다.
"오빠 미안해, 괜찮아? 많이 아픈 거야?"
동우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여줬다.
태연은 걱정이 되어 밖으로 뛰쳐나가서 간호사에게 동우가 깨어났다는 소식과 함께 용준을 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허겁지겁 문을 열며 용준이가 뛰어들어왔고
동우의 모습을 보자 아직 믿기지 않은 듯 멍하니 동우만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동우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용준은
우선 동우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오랜 기간을 누워 있었지만 다행히도 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용준은 이제서야 무거운 짐을 벗어나는 듯했다.
"동우 이 자식아!! 너 죽다 살아났다는 거는 알고 있는 거야!!!"
"니가 .. 있는데.. 내가 왜 ..죽어... 난 널 .. 믿었어..."
동우는 든든한 친구가 있다는 게 자랑스러운지 용준을 보며 미소를 띠웠고
그 모습을 본 용준은 참아보려고 그렇게 노력했었던 눈물들이 기어이 쏟아져 나왔다.
동우는 그런 용준을 향해 팔을 벌렸고 용준도 동우에게 다가가
남자들끼리 통하는 찐한 포옹을 하였다.
태연도 그 광경을 보고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 난 일 때문에 나가봐야 돼. 동우야 나중에 다시 보자"
용준은 동우와 태연, 이 두 사람이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 자리를 피해주었다.
태연은 지금 이 순간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듯이 기뻤다.
"맞다!! 나 전화하고 올게, 오빠 "
태연은 동우가 깨어났다는 기쁜 소식을 다른 소녀들에게도 빨리 전해주고 싶었다
병실을 빠져나간 태연은 우선 윤아에게 연락하기 위해서 휴대폰을 열었다.
하지만 휴대폰을 연 태연은 멀뚱히 윤아의 번호만 쳐다보고만 있었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술을 한번 질끈 깨물고서는 휴대폰를 꺼버리는 것이었다.
태연은 생각했다.
그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이겨내며 얼마 만에 동우와 단둘이 함께하는 시간인가!!
태연은 오늘 하루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동우를 양보하기 싫었고 혼자서 독차지하고 싶었다.
태연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밖에 모르는 그런 여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 하루만이라도..아니 아침까지만이라도 오빠랑 단둘이 있고 싶어..
미안해 얘들아..'
사랑에 빠진 한 여자로서 소박한 바람이었다.
태연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 동우에게로 돌아갔다.
병실 안으로 들어서자 피곤한지 동우의 눈꺼풀이 슬슬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 동안 누워 있다가 갑자기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피곤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태연은 동우의 볼을 꼬집으며
“오빠! 그렇게 잠만 자 놓고서는 또 자려고 하는 거야!! 안 일어날 거야!!
나 안 보고 싶었어?”
태연은 동우를 일으켜 세웠다.
태연은 또다시 동우가 잠에 빠지면 영원히 눈을 뜨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렇기에 동우가 잠들지 못하도록 태연은 그동안 있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요즘 들어 많이 부드러워진 제시카에 대한 이야기도 빼먹지 않았다.
동우는 그저 아무 말 없이 태연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뿐이었지만
태연은 동우와 눈을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태연은 마치 2주 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지금 이 순간 모두 쏟아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피곤함도 잊은 채 밤을 지세며 단둘만의 시간을 보내었다.
병실 안은 웃음꽃으로 피어나고 있었고 상쾌한 아침이 두 사람을 맞아주었다.
아침이 되자 밖은 분주해 졌고 오고 가는 사람들로 시끄러워져 갔다.
그 시끄러운 소리들 사이에 끼여 향기로운 냄새가 병실로 새어 들어왔고
동우와 태연을 유혹했다.
"울 오빠 배고프지 잠시만 기다려봐!"
태연은 병실에서 나가더니 몇 분 지나지 않아 네모난 식판을 들고 들어왔다.
태연은 동우 앞에 식판을 올려놓고서는 뚜껑을 하나씩 열며
“우와 맛있겠다 오빠 꼭 다 먹어야 돼~”
태연은 마치 동우를 아기 다루듯 대하였다.
“태연아.. 너도 같이 먹자”
어젯밤보다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말투였다.
태연은 동우의 목소리를 듣고서는 이제 정말 다 나은 것 같아 하늘로 날아 갈듯이 기분이 좋았다.
“그래 알았어 그럼 오빠 한입 나 한입~”
정말 누군가가 옆에서 보고 있었다면
너무나 유치해 밥상을 엎어버릴 정도로 닭살이 돋는 태연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동우는 그런 태연이가 예쁜지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오빠 아~ 우리 애기 잘하네”
태연은 반찬들을 정성껏 밥 위에 올려놓고 동우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아침 회진을 도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실 앞을 지나가며
힐끔힐끔 쳐다보았고 동우는 괜히 자신 때문에 이상한 소문이 돌까 봐 걱정되었다
“태연아 다른 사람들이 보잖아 내가 먹을게”
태연은 숟가락을 움켜쥐는 동우의 손을 때리며
"뭐 어때 내 남자 내가 챙긴다는데
난 이제 그런 거 신경 안 쓸 거야! 이제 다른 생각 안하고 우리 사랑만 생각 할거야”
태연은 동우의 쓰러져있는 동안 사랑의 간절함과 동우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었다.
동우는 그런 태연의 눈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태연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
“이제 보니 울 태연이가 나 때문에 얼굴이 반쪽이 되었네"
태연도 역시 자신이 홀쭉해진 뺨을 만지며
“그걸 이제 알았어? "
동우는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는 태연의 이마에 입맞춤을 해주며
“고마워 태연아 내 옆에 있어줘서 ....그리고 미안해 널 걱정시켜서...”
동우에 말에 태연은 괜히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제까지 태연은 아침밥을 먹여주는 모습을 보듯이 아픈 동우를 위해 애써 밝게 웃으며 행동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동우의 말이
가슴 깊숙이 파고들어오면서 이제까지 억누르고 있었던 감정들이 폭발했다.
그리고 곧 꾹 참아왔던 눈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태연은 지금까지 동우때문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동우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듯이 울면서 소리쳤다.
“흑흑흑...난 정말 오빠가 죽으며 어떻게 하나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오빠가 그 마음을 아냐고!!!!”
동우도 역시 그런 태연을 보면 마음이 찢어졌다.
“오빠가 그렇게 누워만 있는 모습을 보며서 난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말이야!!
그리고 그런 오빠를 놔두고서 스케줄을 가야 하는 내 자신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알아?
정말 내가 연예인이라는 사실을 얼마나 후회했는데..흑흑흑
또 다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면 그땐 정말 끝인 줄 알아!!!”
동우는 말없이 태연을 꼭 안아 주었다.
하지만 태연은 여전히 동우의 품 안에서 못다 한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마음껏 울어 태연아.. 내가 다 받아 줄 테니까..”
태연은 동우의 넓은 품 속에서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문 밖에서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누군가가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제시카였다. 제시카는 오늘도 동우가 빨리 보고 싶어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아 온 것이었다.
제시카는 동우가 깨어난 것을 보자 곧장 달려가 동우에게 안기고 싶었다.
하지만 꼭 껴안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철옹성과 같은 모습이었고
자신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에는 너무나 단단해 보였고 조금한 틈도 없는 듯 보였다.
태연의 등 뒤를 보듬어 주는 저 따스한 손길과
태연을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있는 저 눈빛..
제시카는 동우 앞에 있는 사람이 태연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제시카의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다.
제시카는 가냘픈 손가락으로 동우의 얼굴 선을 따라 그림을 그리듯 손을 움직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하기에 더욱 마음이 아파왔다.
제시카는 그렇게 자신이 그린 동우의 얼굴을
고이 접어 마음속 깊은 곳에 보관해 두고서는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제시카는 동우가 깨어났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것이었다.
제시카는 숙소로 돌아가면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까지는 동우가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었고 또한 동우는 그저 누워 있었기에
제시카의 일방적인 사랑통행이 가능했지만 이제 동우가 깨어난 모습을 본 제시카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동우는 날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그렇게 못살게 굴었는데 날 싫어하겠지...’
제시카는 그렇게 사랑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갔다.
어릴 적 친구 지영이의 일로 남자들에게 싸늘하게 대하면서
진정한 사랑을 해보지 못했던 제시카에게 있어 사랑이라는 감정은 너무나 낯설고 어려웠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알 것 같았다.
바로 그저 그 사람을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 가슴 떨리고 행복하다는 것..
제시카는 그렇게 사랑이라는 것을 하나.. 하나.. 알아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