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5 수술 =========================================================================
이 복잡한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란 어려웠다.
멀쩡한 정관을 묶어야 되는 심정이라니. 마치 남자의 인생이 끝나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윤민호와 같이 나는 병원에 들어섰다.
병원으로 걸어 들어가는 동안. 다리가 이렇게 무거운 건지 처음 알았다.
마치 이 기분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돼지는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드는 생각이 사형 집행장으로 향하는 사형수가 생각났다.
살고 싶지만 살 수 없는 운명.
내 기분이 그랬다.
묶고 싶지 않지만. 묶어야 되는 심정.
비뇨기과에 들어서자. 원무과에 접수를 받는 간호사는 곧바로 우리를 통과 시켜 주었다.
아마도 윤민호의 얼굴을 그녀는 아는 것 같았다.
그러자 곧바로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윤민호군. 왔는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예약을 잡아 놓았다네.”
“역시. 이 박사님은 일처리가 빠르셔서 좋습니다.”
윤민호와 이 박사라 불리는 사람은 기분 좋게 얘기하고 있었다. 나의 심정과는 반대로 말이다.
책상 위에 올려준 팻말을 보니 박사의 이름은 이창원이었다.
“이번에 계약하게 된 아이입니다.”
“지현우라고 합니다.”
나는 이 박사에게 인사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그는 나의 수술을 집도할 의사였다.
“한번에 AV 남우 자격을 획득했다고 하지? 이거 참. 부럽구만. 허허.”
이 박사는 확실히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매력을 지니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황폐해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진료실로 들어서자 간신히 붙들고 있는 정신마저 박살나는 기분이었다.
“그럼. 진료 얘기를 시작해볼까?”
나는 난생 처음으로 신을 찾았다.
제발 이것이 거짓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신은 나의 요청을 거절하는 듯 했다.
“정관 수술에 대해서 알고 있나?”
“묶는 거입니다.”
“잘 알고 있구만.”
윤민호와 이 박사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가지 않았다.
윤민호의 입장에서는 재밌난 구경거리였다. 사실 누구라도 나의 얼굴을 본다면 재미있어 할 것임에 분명했다. 이 박사의 입장에서는 편안한 수술이였다. 부부 관계로 인한 수술이 아닌. 상업 목적을 위한 수술. 그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않아도 되는 수술이었기에 이 박사의 입장에서도 편한 것 같았다.
“그럼. 수술에 대해 말하겠네. 정관 수술. 다른 말로는 정관 절제술이라고 하는데. 전 세계 기혼 남성의 약 5%가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으니깐. 너무 그렇게 상심하지는 말게.”
“예. 알겠습니다.”
이 박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정관 절제술의 수술은 국소마취로 음낭피부를 절개 후 정관을 노출시키고, 박리하여 절개한 후 정관 양쪽 끝을 묶고 자르게 된다네. 자세히 설명하자면 음낭에 작은 절개 부위를 만들고 이 부위를 통해 정관을 꺼내 정관을 묶은 후 정관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면 시술이 종료되는 거지. 수술에는 무도 정관 수술법을 사용할 거고. 이때 피부 절개창이 거의 남지 않으므로 시술 후 따로 피부를 봉합하거나 수술 자국이 남을 일이 없을 거라네.”
이 박사는 나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지만 나는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내 귀에는 야인시대의 명대사만이 나올 뿐이었다.
[날 보고 성불구자가 된다구. 고자가 됐다. 그 말인가. 고자라니. 아니 내가 고자리니. 이게 무슨 소리야. 고자라니. 내가. 내가. 고자라니!!!]
2030년 대에도 여전히 유명한 그 짤.
그 짤이 머릿 속에 떠오르며 애타게 소리지르던 장면 만이 맴돌았다.
“여기 그 밖에 궁금한 점은 리스트로 정리 해놓았으니깐. 한 번 보시면 될 거야.”
나는 이 박사가 건네주는 종이를 받았다.
1. 정관절제술을 받으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가까운 비뇨기과 의원 또는 병원으로 가시면 됩니다.
2. 정관절제술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국소마취로 음낭피부를 절개 후 정관을 노출시키고, 박리하여 절개한 후 정관 양쪽 끝을 묶고 자르게 됩니다.
3. 정관절제술을 받은 후에 바로 움직일 수 있습니까?
수술 후 바로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으나 수술 후 1~2일 정도는 통증이 있으므로 무리한 운동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4. 정관절제술의 합병증은 무엇인가요?
대개 합병증이 없으나 간혹 혈종, 감염이 발생하며 드물게 정관이 재개통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수술 후 6주간 피임을 하시고 이후 정액검사를 하여 정자가 없음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5. 정관절제술 후에 성기능이 감퇴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정자는 고환에서 생성되어 정관의 말단 팽대부에 저장되어 있다가 사정 시 체외로 배설됩니다. 그러나 남성의 성기능에 관여하는 남성호르몬은 정자와 마찬가지로 고환에서 생산되지만 바로 혈액 내로 흡수되어 체내에서 전신을 순환하게 됩니다. 즉, 정자와 남성호르몬은 고환에서 생산되지만 정자는 체외로 배설되는 반면 남성호르몬은 체내를 순환하므로 배출경로가 전혀 다릅니다. 그러므로 정관수술을 받았다고 남성호르몬의 생산이나 혈액으로의 흡수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기 때문에 정관수술 후에 정력이 약해졌다거나 성기능장애가 왔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심리적 원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6. 정관절제술 후 정액량이 감소하나요?
한국인의 평균 정액량은 2.5ml이며 이 중 정자가 차지하는 양은 0.02ml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정관수술 후의 정액량 감소는 아주 미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7. 사정할 때 나오는 사정액에 남성호르몬이 있나요?
정액은 대부분이 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성호르몬은 거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액을 호르몬이라고 얘기하며 남성호르몬과 혼동하고 있으나 남성호르몬은 위에서 설명한 대로 체내를 순환하는 것이지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습니다.
8. ... ]
종이를 다 읽었다고 말하자. 이 박사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4번을 보면 간혹 가다 정관이 재개통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수술 후 6주간 피임, 이후 정액검사를 하여 정자가 없음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네. 지현우군 같은 경우는 우리 병원에서 1주 간격으로 정액 양을 검사해줄 거니깐. 수술하고 나서 정해준 날짜에 찾아오면 된다네. 또, 6번을 보면 한국인의 평균 정액량은 2.5ml이며, 이 중 정자가 차지하는 양은 0.02ml에 불과하다고 나와 있지? 그러니 정관수술 후의 정액량 감소는 아주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니 그러니 AV 활동에는 지장이 없을 거야.”
AV 활동에는 지장이 없다.
이 박사님의 말을 들으니 AV 활동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았다.
사실 의외이기는 했다.
정관 수술을 하면 정액이 안 나올 것 같았는데. 정액 양의 감소가 전부라서 말이다.
“곧바로 수술 가능하죠?”
“네? 오늘 바로 하는 겁니까?”
뒤에서 들려오는 윤민호의 말에 나는 놀라서 껑충 뛰었다.
사실 병원에 왔지만. 아직까지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그의 말은 더욱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간절히 바랬다. 이 박사가 나의 간절한 마음을 알고 수술을 하지 않기를 말이다. 하지만 이 박사는 나의 간절함 바람을 뭉개 버렸다.
“바로 수술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놓았습니다.”
“헉...”
수술이 당일 날 이루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정말이지. 오늘은 상상하지 못한 날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눈에 띄도록 당황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온 것은 윤민호였다.
그는 조용히 나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왜? 싫어? 그런데 어쩔 수 없어. 오늘 수술해야만 해. 왜냐면. 회사에서 사인했던 계약서. 3항에 이렇게 나와 있잖아. 갑(러브미 기획사)은 을(지현우)의 안전을 위해 취하는 행동에 있어서는 을은 전적으로 갑의 의견을 따라야만 한다.”
그러고 보니. 계약 항목에 있는 조약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조항에서 발목이 잡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적으로 의견을 따른다.’
이것의 함정을 이번 기회에 뼈저리게 느꼈다.
더군다나 법적인 조항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허어억.”
나는 숨을 거하게 들이마셨다.
그가 말하는 의미를 뒤늦게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위약금 물어내기 싫으면. 수술하는 게 좋을 거야. 동생아.”
끄덕. 끄덕.
“아이구. 착하다.”
쓰담. 쓰담.
윤민호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결국 나는. 서울에 도착한 당일 날 수술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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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험인 관계로...
소설은 여기서 이만...
새해에 뵙겠습니다.
마무리 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