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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 사거리 공영 주차장에 주차한 후 운전석에 있던 여자가 제일 먼저 내렸다. 그녀는 다름 아닌 장 마담이었다. 그녀는 오늘 모이는 여자들 가운데 제일 연장자였다. 그런 이유로 모임의 리더 역을 맡고 있었지만 솔직히 달갑지는 않은 눈치였다.
성기에 대해 알고 나니 그가 혹 자신의 나이를 부담스러워 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들었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걱정이 그의 어머님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신을 받아주지 않을까 노심초사였다. 그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은 그 다음 문제라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여태 살아오면서 누구 눈치를 보며 살아오지 않았다. 젊은 시절 남자들과 데이트 할 때도 데이트의 주도권은 항상 그녀가 쥐고 있었다. 그 후 돈이 필요해 술집에서 일하다 언니들에게 잘 보여 새끼 마담이 되었고 그 후로는 손님들을 직접 상대하기 보다는 아가씨들을 관리하는 일들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책임감과 함께 주인 의식이 자리를 잡았다. 그런 그녀가 남자를 사랑해서 그의 집에 방문한다는 사실은 일찍이 그녀를 알고 지낸 사람들이라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만큼 오늘 그녀의 모습은 놀라웠다. 평소의 커리어 우먼 스타일과는 백퍼센트 달라진 차림이었다. 하얀색 블라우스에 검정 미니스커트를 입은 것이었다. 스커트가 엉덩이만을 가린 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짧아 다리가 완전히 드러났다. 날씬하고 쭉 뻗은 곧은 다리, 허벅지에서 종아리로 이어지는 그 라인이 뽀얀 살결과 함께 육감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오늘의 차림을 위해서 그녀는 새벽같이 일어나 화장을 하고 옷을 뭘 입을까 고민했다. 어머니 마음에 들게 평소의 옷차림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성기의 눈을 어지럽힐 정도로 입고 나갈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녀의 결정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은 다름 아닌 오늘 같이 가기로 한 여자들이었다.
말을 들어보니 모두 다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자기 혼자 나이 많은 티를 내서야 되겠는가 싶어 부랴부랴 어제 저녁에 백화점에 들러 미니스커트 여러 벌을 샀다. 그것에 어울리게 하이힐과 스타킹 그리고 속옷까지 실로 오랜만에 카드를 북북 긁었다.
쇼핑을 해서 그런지 평소와는 다르게 스트레스가 다 해소되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성기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오늘 그를 만난다는 사실에 그녀의 풍만한 가슴은 더 부풀어 올랐다. 나이는 들었지만 커다란 눈, 오뚝한 코, 짙은 쌍꺼풀, 크고 도톰한 입술, 작은 계란형의 얼굴, 윤기 나는 머리칼,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 잘록한 허리를 지닌 여성이 바로 장 마담이었다.
뒤를 이어 내린 여자는 육덕진이었다. 그녀 역시 미니스커트와 반팔 블라우스를 입고 있어 몸매가 확연히 드러났다. 쭉 뻗은 다리와 탱탱한 고무공 같은 엉덩이와 풍만한 젖가슴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장 마담과는 달리 그녀는 화장을 진하게 하지는 않았다. 바로 젊음이란 무기를 앞세워 성기와 어머니를 녹일 작정인 것 같았다.
다른 여자들도 모두 미니스커트에 몸의 굴곡을 심하게 드러내는 옷차림이었다. 그녀들은 퇴원하고 나서는 신부 수업에 열중이었다. 평생 하지 않던 요리에 열을 올렸다. 평소 요리에 관심 없던 그녀들로서는 놀라운 변화였다.
장마담은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만나기로 한 장밋빛 인생 카페로 향했다. 다른 여자들은 수다를 떨며 장 마담을 따라갔다.
“오늘 우리 그이를 만나는 거지? 그치? 아씨, 빨리 보고 싶다.”
듣고 있던 박아서가 한마디 했다.
“야, 어떻게 너만의 그이야! 우리 그이라고 하지 마. 듣는 나 아주 기분 나쁘니깐. 그리고 이것아, 오늘 병원에서 알게 된 다른 언니들도 오는데 상스러운 말 하지 마. 우리를 뭐로 보겠니?”
“야아, 내 입 갖고 내가 말하는데 안 되는 거야! 우이쒸, 열 받네.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면 우리 그이지 그럼 뭐라고 부르냐? 서방이라고 부를까?”
“넌 어떻게 말 귀를 못 알아듣니. 신기하다 신기해. 증말이지 신기해! 너 같은 머리에서 어찌 그런 몸매가 나왔는지.”
“야, 말이면 다 인줄 알아. 너 맞을래?”
“흥, 내가 저번처럼 맞을 줄 알고. 메롱이다. 메롱!”
박아서가 혀를 길게 내밀고 육덕진의 약을 올렸다. 그러자 육덕진이 팔목을 붙잡아 비틀었다.
“아악! 안 놔!”
“야, 그 손 안 놔!”
그녀들이 소란을 피우자 같이 걷던 장민혜가 인상을 썼다.
“이것들이. 언니는 지금 긴장돼서 죽겠는데 어디서 쌈질이야! 당장 그만두지 못해!”
“네, 언니.”
그 소란스런 소리가 장 마담의 귀에까지 들렸는지 그녀가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너희들 오늘 그이 집에 가서도 다툴 거니? 그러면 오늘 우리들 완전히 쫓겨나는 거야. 그리고 그이 어머님한테도 영원히 찍히는 거고. 알았니? 무슨 말인지?”
“네, 언니.”
다툼을 벌였던 그녀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들이었다. 그녀들과는 달리 인턴인 박시연과 이효성은 지하철을 타고 오는 중이었다.
시폰 원피스 차림의 샌들을 신은 젊고 얌전한 차림이었다. 하지만 둘의 미모와 몸매를 감추지는 못했다. 지하철 안의 남학생들이 힐끔힐끔 그녀들의 얼굴과 몸매를 훔쳐보고 있었다.
“시연아! 너는 집에 뭐라고 했어?”
“응,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일 년 휴학한다고 했어.”
박시연의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 대답하는 것에 이효성은 놀란 표정이었다.
“정말? 아무 일 없었어?”
“없었긴. 부모님이 노발대발 하셨지. 하지만 내 뜻을 굽힐 수 없다고 하고 말했어.”
“야아, 너 보기와는 달리 깡다구가 있네.”
효성이 부럽다는 듯 말하자 이번에는 박시연이 되물었다.
“넌? 어떻게 했어? 궁금한데. 빨리 말해줘.”
“나, 그냥 임신했다고 했어.”
“야, 그럼 거짓말한 거잖아.”
“그럼 어떡해. 집안에 정해놓은 혼처가 있다는데. 내가 과정 다 마치면 결혼시키려고 여태 말하지 않은 거라는데. 너라면 어떡할 거야? 나도 부모님에게 이런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어.”
효성이 슬픈 듯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박시연은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래, 하긴 나도 너네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다면 거짓말밖에 떠오르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 그렇게 슬픈 표정 하지 마. 지금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만나러 가는 길인데. 알았지? 빨리 웃어. 그래야 너 소박 안 당해."
"킥, 지금이 조선 시대냐!"
효성이 버럭 화를 냈지만 표정은 웃음으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