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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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스톡홀름 궁전의 국왕 집무실에서 국왕인 구스타프 16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뭐라고? 너는 스웨덴의 공주란 사실을 잊었느냐?”

“아버지. 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요. 하지만 사랑을 찾아 가겠다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 거죠? 아버지가 허락해주신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반대를 하지 않을 거예요.

국왕은 콧수염은 살짝 어루만졌다. 딸의 말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부모의 말을 들으라는 봉건적 시대는 지나갔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웠다. 결혼을 정략적으로 이용할 목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문화와 환경이 같은 사람이었기를 바란 것이 큰 욕심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그 자신의 예상을 깨고 아직도 분단국가인 남한 출신의 젊은 남자를 사랑한다고 하니 어찌 눈이 돌아가지 않겠는가.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빅토리아의 어머니이자 현 국왕의 부인이 입을 열었다. 

“여보, 당신 너무 왕위만 생각하는 것 아니에요? 빅토리아가 왕위 계승에는 관심 없다고 했잖아요. 그렇다면 둘째나 셋째에게 계승하게 해도 문제 될 것은 없지 않겠어요? 그리고 주변 시선들을 왜 의식해요? 우리가 과거처럼 권력을 가진 것도 아닌데. 혹시 빅토리아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시아인이라서 그런 거라면 난 당신에게 실망했어요. 

난 우리 딸이 흑인과 결혼한다고 해도 반대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어떻죠? 지금 당신 태도를 보니 지독한 인종주의자에 다 루키즘에 빠진 고약한 중년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요. 우리와 외모가 다르다고 해서 딸의 사랑을 반대하는 것을 보니 정말 정말 실망스러워요.“

그녀의 말에 정곡이 찔린 국왕 구스타프 16세는 애원조로 말했다.

“아니, 여보. 당신이 실망스럽다니 미안하긴 하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오. 왕실 친척들은 또 어떻게 생각할 것이오. 내가 딸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가정이 엉망이라고 하지 않겠소. 게다가 내 가정이 어디 보통 가정이오. 일국의 국왕이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있는 가정이오. 뒤에서 얼마나 흉을 보겠소. 

물론 세간의 입방아들도 시끄럽게 떠들 것은 자명한 일이고.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딸의 연애문제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있지는 않겠지. 호감이 반이라 할지라도 나는 반대하오. 설령 당신이 반대한다고 할지라도 말이오.

그러니 당신은 가만히 있었으면 하오. 당신까지 나서면 나는 지금 미쳐버릴 것 같단 말이오.“

그러자 여태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의 부인인 실비아가 찻잔을 탁하니 소리 날 정도로 내려놓았다. 남편의 발언으로 그녀의 화가 치민 탓이었다.

“뭐라고요? 나보고 가만히 있으라니요. 내가 가마니로 보여요. 가마니냐고요. 당신 딸이기도 하지만 내 딸이에요. 내 딸이라고요. 흥! 당신 어머님이 내가 딸만 낳으니깐 얼마나 눈치를 주던지 내가 몸매를 생각하지도 않고 둘째와 셋째를 낳은 것이 누구 때문인데.”

“아니, 그 애기를 여기서 왜 들추는 것이오. 그 이야기는 묻어둡시다. 이미 고인이 되신 어머니를 거들먹거리지 말았으면 하오.”

“흥! 흥!”

“어디서 여자가 흥흥거린단 말이오? 당신 어디 잘못 먹었소?”

“흥! 흥!”

“당신이 자꾸 흥흥거리면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키겠소.”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빅토리아가 아버지를 말렸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왜 그러세요. 전 제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겠어요. 아버지 그러니 허락해주세요. 안 그럼 전 죽을 수밖에 없어요. 이미 그 사람의 아기도 제 뱃속에 있어요.”

아기라는 말에 구스타프 16세는 크게 흥분했다. 

“아니, 어떻게 네가.......어헉!”

구스타프가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그러자 빅토리아와 부인인 실비아가 달려들었다. 쓰러지려는 그를 잡아 바닥과 충돌하는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여보!”

“아버지!”

하지만 그의 체중을 이기지는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바닥으로 구스타프 16세를 눕혀야 했다. 그리고는 빅토리아가 집무실 밖에 있는 경호원들을 불렀다.

경호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한 명은 구급차를 불렀고 다른 한 명은 병원에 미리 연락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쓰러져 호흡 곤란을 겪고 있는 국왕의 가슴을 누르며 심폐술을 하고 있었다.

여태 어른들의 대화를 듣기만 하던 빅토리아의 두 동생들도 걱정스런 얼굴로 아버지의 안부를 걱정했다. 다행이도 수행원들이 신속히 움직여 불행한 일은 막을 수 있었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같은 차에 탄 빅토리아의 엄마인 실비아가 그녀에게 물었다. 동생들은 원망과 함께 호기심 섞인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너 진짜야?”

“응, 그런 거 같아요. 지난 달 생리를 하지 않았으니깐.”

“일단 그 문제는 애기하지 말자. 아버지 건강이 우선이니깐. 알았지?”

“네, 어머니.”

“그리고 너희들도 이 애기를 누구한테도 하지 마. 알았지?”

“네, 엄마.”

그녀의 고운 두 눈에 세월의 흔적을 읽을 수 있는 주름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남편의 건강이 요즘 좋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쓰러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걱정되는 그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급차에 실린 구스타프의 표정은 편안하기만 했다. 마치 요람에 누운 아기마냥 세상만사의 시름을 잊고 있는 것 같았다.

삼성제일병원에 입원해 있던 효성을 비롯한 여자들이 퇴원을 했다. 그녀들은 현직에 바로 복직하지 않았다. 당분간 쉬면서 통원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를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장마담을 비롯한 그녀들은 입원해 있으면서 서로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그녀들 모두 성기와 자고 나서 그렇게 된 것임을 알고 서로를 질투했다. 심지어는 머리채를 잡고 병실에서 싸운 적도 있었다. 그런 것들이 시간이 지나자 분노가 가라앉히자 성기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것을 그녀들은 깨달았다.

서로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들 모두 그와 떨어져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와 헤어져 산다는 것은 나에게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다고 말하던 그녀들이었다. 그녀들 모두는 서로의 마음이 일치함을 알고 서로를 용서했다. 

용서하기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것은 용서를 해 준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들은 성기의 신원 파악에 주력했다. 그 결과로 신림동 거주지를 알게 되어 그녀들 모두 그의 집으로 가기로 했다.

정식으로 인사를 하고 그와 맨 정신으로 만난다는 사실에 그녀들 각자는 설레는 밤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 효성은 자신을 이렇게 아프게 했던 남자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했다.

설령 자신의 존재를 모른다고 해도 가슴 아파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만큼 그를 더 사랑해서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리라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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