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20 회: 5 -- >
차 안으로 가는 도중 아까 구해 준 여자 가운데 예나가 홀에서 부딪쳤을 때가 떠올랐다. 한번 줄까라고 말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욱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번 줘봐라고 말할 뻔했다. 그렇기에 아까 구해줬을 때 술에서 깨어난 그녀는 정신이 없어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성기는 알아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애기를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여자의 자존심을 깎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힐탑에 거의 다 왔는지 뒷골목으로 몰았다. 그곳에 차를 대고 성기가 갔다 올 작정이었다.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이라 골목은 어두웠고 인적도 거의 없었다. 차를 대고 성기는 조수석 문을 열었다. 힐탑으로 가는 도중에 전신주 밑에서 신음 소리가 나는 것이 들렸다.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비추어 보았다. 바닥에 유니폼을 입은 한 사내가 끙끙거리고 있었다. 정희도 내려서 살펴보았다. 누군가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는지 옷 여기저기에 발자국이 나 있었다.
"여보세요. 정신 차리세요."
"으윽! 네, 고맙습니다."
"이럴게 아니라 차에 모시고 병원에 가자구요."
"아흑! 병원은 됐습니다. 염치없지만 택시를 잡아주시면 집까지......우욱!"
신물이 넘어오는지 그는 구역질을 했지만 토사물은 넘어 오지 않았다. 하도 맞아서인지 속까지 불편한 모양이었다. 그의 어깨를 부축하고 일으켜 세웠다. 그는 그것마저도 힘이 드는지 갖은 인상을 쓰며 신음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써 참는 듯 했다.
"정희씨, 차문 좀 열어줘!"
"네!"
그를 안전하게 조수석에 태운 후에 정희와 함께 그를 뒷좌석에 편히 눕혔다. 그리고는 성기는 힐탑으로 들어가 아까 전의 담당자를 불렀다. 오백원이 반갑다는 듯 나타나서 말했다.
"손님! 지갑을 놓고 가시면 어떡해요?"
"아, 고마워요. 그렇지 않아도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이도 지갑에는 큰 돈을 넣지 않았다. 열어보니 돈은 싸그리 없어진 상태로 신분증만 들어 있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오십 만원만 챙기고 지갑을 버린 듯 보였다.
"그럼, 갈게요."
"다음에 또 오세요."
인사를 하고 나온 후 성기는 차로 향했다. 사라지는 성기의 뒷모습을 보며 오백원과 이맹박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바로 그 둘이 성기의 지갑 속에 있는 현금을 꿀꺽하고는 빈 지갑만 내준 것이었다. 물어보면 화장실에서 찾았다고 말하면 아무 문제가 없기에 말이다.
가는 동안 그는 상태가 나아졌는지 힐탑의 웨이터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누군지 아냐고 성기가 묻자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창밖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그는 입을 열어 같은 웨이터 일당이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고를 하는 순간 그곳 세계에서 발을 들여 놓지 못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웨이터 세계가 좁아서 그 인맥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맞고 가만히 있으면 잠잠해질 일이 신고를 하면 어떤 가게에서도 그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성기는 세상 살이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음을 깨달았다. 이런 웨이터의 세계도 이럴진대 말이다. 앞으로 직장 생활도 해야하고 부인들을 먹여 살릴 생각을 하니 한숨만 푹푹 나올 뿐이었다. 하지만 아픈 사람 앞에서 내색을 할 수 없어서 참고 또 참았다.
"집이 어디세요?"
"면목동입니다."
"가는 길하고 가깝네요. 멀면 난처했는데. 저희는 청량리로 가거든요. 이렇게 된 거 집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어휴, 고맙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괜찮아요. 그나저나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겠어요?"
"네, 빨리 가서 아들 녀석을 살펴야 되서요."
"아드님을 왜요? 아주머니가 계시잖아요."
"휴우, 집사람은 4년전에 암으로 죽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빨리 가서 봐야죠."
"죄송해요. 괜한 이야기 해서요."
"괜찮아요. 이제는 그 사람 얼굴도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얼굴에 주름을 만들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내 생각에 침울해진 듯 보였다. 성기는 괜시리 이야기를 꺼낸 게 미안했다.
가는 길을 몰라서 그가 설명하는 대로 정희는 몰았다. 건대 입구를 지나 위로 계속 올라갔다. 면목동에 도착해 허름한 집들이 늘어선 단독 주택에 차는 들어섰다. 희미한 가로등이 켜져 있는 전신주를 지나자 마자 자신의 집이라며 도착했다고 말하는 그였다.
차를 세우고 다시 부축하고 그를 집까지 데려갔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억지로 참는 것이 보여 성기가 그를 엎었다. 그는 한사코 업히지 않으려 했지만 성기가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거라며 그를 업고는 집으로 걸어갔다.
대문을 열고 아랫쪽 반지하 문으로 들어가라고 그가 말했다.
"저기 두번째 반지하 방입니다. 고맙습니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보다 나이도 많으신 분 같은데요."
"에구, 그러면 안되죠. 이렇게 신세까지 져 놓고. 여기부터 걸어 갈게요."
"됐어요. 아저씨! 다 왔어요."
그에게 열쇠를 받아 든 정희가 재빠르게 문을 열었다. 어두운 공간으로 발을 조심스럽게 내딛었다. 성기는 그가 이끄는 대로 벽에 손을 대 방 안의 불을 켰다.
조그만 집이었지만 방이 두개나 되었고 화장실까지 따로 있었다. 반지하라 그런지 케케묵은 냄새가 솔솔 풍겼지만 성기는 내색하지 않았다. 당사자들도 좀 더 나은 집에서 살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형편때문에 참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가 주무시는데가 어디에요? 그곳에 눕혀드리고 갈게요."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빨리요. 저도 가야 되서요."
"저깁니다."
방문을 열자 침대가 보였다. 아내랑 같이 썼던 침대라 버리지 않았다고 했다. 하긴 성기 자신도 아버지의 물건 가운데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는 물품이 있었다. 가끔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 때 그 물건을 보면 떠오르곤 했다.
아이는 이미 자고 있는지 전혀 인기척이 없었다. 그것에 대해 묻자 아저씨는 말했다.
"딴 방에서 자고 있을 겁니다."
성기는 업힌 그를 침대에 눕혔다. 그 순간 아저씨의 등에 무언가 바스러지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침대와 등에 물기가 스며들었다. 성기 역시 아저씨가 잘못된 줄 알고 급히 다시 안아들었다.
이불을 들춰보니 그곳에 찌그러진 컵라면이 들어있었다. 컵라면의 빨간 국물은 이미 이불 속으로 스며든 상태였고 면발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저씨는 화가 나서인지 몰라도 초인적으로 힘을 발휘해 성기의 품에서 내려왔다. 성기는 화가 난 그를 말릴 수가 없어 가만히 지켜볼 따름이었다.
발을 절뚝거리면서도 아이의 방을 연 그는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웠다. 10살도 안되어 보이는 아이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아, 아빠!"
그는 아이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아이의 엉덩이를 마구 후려쳤다. 퍽퍽퍽 소리가 들렸고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우앙!"
장단지며 엉덩이를 마구 때리던 아저씨는 말했다.
"왜 아빠를 속상하게 해?"
그리고는 계속 때렸다. 하지만 그것은 계속되지 못했다. 아이의 울음 섞인 대답이 그의 손을 멈추게 했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가스렌지 불을 함부로 켜서는 안된다고 했잖아. 보일러 온도를 높여서 데워진 물을 컵라면에 부어서 하나는 내가 먹고 하나는 아빠 줄려고 식을까봐 이불 속에 넣어뒀어."
그는 아들의 말에 가슴이 메어왔다. 그리고 뒤에서 이 소리를 들은 성기도 가슴이 울먹거렸다. 그는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 싫어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을 틀어놓고 한참을 울었다.
화장실에 들어간 그를 대신해 성기가 울먹이는 아이를 안고서 토닥거렸다. 아이는 울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아이를 안고서 바닥에 천천히 눕혔다. 목을 감은 아이의 손을 천천히 떼며 눈가에 맺은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도 아빠가 없어. 넌 행복한거야. 아빠가 있으니깐."
성기는 눈물을 흘리며 아이의 맑은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는 이불을 덮어주었다. 방안의 불을 끄고 나오는데 화장실에 물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이다. 살짝 문을 열고 보니 아저씨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놀란 성기는 아저씨의 상태를 보니 위험한 상태는 아니었고 다만 피곤함과 함께 감정이 폭발해 깜빡 잠이 든 것 뿐이었다. 정희와 함께 그를 안방에 눕히고 이불을 거둬 화장실에 쑤셔 넣었다.
내일 아침 빨기로 하고 전화기를 들어 미희와 수진이가 있는 청량리로 전화했다. 다행이도 미희가 받았다. 아줌마가 받았으면 바꾸어 달라는 번거로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빠! 왜 안와요? 빨리 와요."
"아, 그럴 일이 생겼어. 지금 내가 정희씨를 보낼테니까 너희가 여기로 와!"
"지금요? 알았어요. 준비하고 있을게요."
"고마워. 기다리고 있을게."
"정희씨, 미안한데 가서 미희하고 수진이좀 태워서 여기로 와줘."
"네! 알겠습니다."
============================ 작품 후기 ============================
***** 이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죠.
그리고 그 세명에 대한 처절한 복수는 두달 이내로 시행됩니다.(작품안에서 두달)
우선은 가볍게 처리했고, 소송 과정과 그 후 지갑을 열어보고 알게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