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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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득은 지영의 입 속에 들이 부은 세번째 양주 병을 널따란 테이블에 내려 놓았다. 지영은 혼미한 정신에 남자가 좀 전에 자신을 구해 준 성기로 보였다. 그라면 자신의 처녀를 주어도 아깝지 않았다. 아니 자신이 그의 품에 밤새도록 시달리고 싶었다.

성기에게 떳떳이 말하고도 싶었다. 자신이 험난한 술집 생활을 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지켜낸 것이라고 말이다. 한상득이 성기로 보이기 시작한 순간 지영은 의식을 잃었다. 가짜 양주를 그것도 연속으로 먹였으니 정신을 잃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고개를 떨군 지영의 모습에 한상득은 흡족한 지 그녀의 동굴을 쓰다듬었다.

"역시 털은 많아야 해!"

여태 그가 겪었던 여자들 가운데 지금 눈 앞의 지영만큼 그곳이 수북한 여성은 결단코 없었다. 동굴 안쪽을 살펴 보니 선명한 분홍빛이었다. 그것은 처녀이거나 경험이 극히 미비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 시식을 하면 된다는 생각에 목이 말랐다. 한켠에 놓인 맥주가 보여 그곳으로 갔다. 맥주를 들이키고는 한 명씩 자신의 물건 맛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평생 잊지 못할 그 뜨거운 맛을 말이다.

성기는 룸으로 들어가던 중에 배일도가 있었다던 방이 궁금해졌다. 안에는 여자들이 배일도 친구 한명과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남은 한 녀석이 희롱하고 있거나 돈으로 농락하고 있으리라 여겨졌다.

게다가 좀 전에 구한 지영이도 들어갔으니 더욱 궁금해졌다. 바삐 지나가던 웨이터가 보여 그를 불러 세웠다.

"아, 좀 전의 그 방 손님. 여자 분들 계속 기다리고 계십니다."

웨이터의 말에 성기는 화제를 돌렸다.

"알았어요. 그나저나 그 룸이 여자들하고 있기에는 좀 작은데 다른 룸 없어요?"

"있기는 있지만 지금 다른 방은 꽉 찼거든요. 죄송합니다."

성기는  손가락으로 배일도 일행의 방을 가리켰다.

"저 룸에도 있나요? 없으면 내가 하고 싶은데."

"정말요? 확인해 보고 말씀 드릴게요."

배일도 일행의 담당 웨이터가 아니어서 무턱대고 이야기 할 수는 없었다. 큰 룸으로 들어 간다는 말은 술을 더 먹겠다는 말이고 그것은 곧 웨이터의 수입과 직결되는 것이기에 딱 잘라서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 날따라 배일도를 맡았던 웨이터는 이리저리 불려다니기에 바빴다. 그래서 그런지 웨이터 이만기는 확인해보지 못한 채 자신이 직접 들어가서 손님들이 금방 나갈 것인지 확인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좀 전에 복도에서 만난 성기가 아직도 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들어가서 여자 분들과 술이나 드시고 기다리세요. 제가 편히 알아 보겠습니다."

"들어가면 나오지 못 할까봐 그래요. 알아 봤습니까?"

"아, 그게 담당 웨이터가 보이지 않아서 제가 룸에 들어가서 알아보겠습니다."

"아, 빨리 알아봐요."

그러던 중 이만기를 호출하는 신호가 울렸다. 갖고 다니는 무전기를 켠 이만기는 대답했다.

"웨이터 이만기입니다."

"현관에 손님 10명이 대기중입니다. 빨리 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무전을 마친 이만기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잠시만 기다리시면 안 될까요? 제가 급히 호출로 가봐야 되서요."

"알겠어요. 빨리 오세요."

이만기가 사라지자 성기는 정희와 함께 배일도 일행의 방을 두드렸다. 주머니에서 까만 숯을 꺼내 황급히 발랐다. 대충 발랐지만 가장 안쪽에 있는 룸이기에 지나는 사람들에게 들킬 위험은 없었다. 가장 안쪽에 있었기에 화장실도 철문으로 가는 것 뿐이었다. 다른 룸은 모두 카운터 옆 쪽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강제로 당겼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성기가 자신이 하겠다면 정희에게 비키라고 했다. 그러더니 어깨와 몸으로 문을 여러 번 밀었다. 굳건히 버티던 문은 성기의 힘에 버티지 못하고 덜컹 소리와 함께 열렸다.

문이 열리자 성기가 그대로 어깨로 밀고 들어가 안쪽 소파에 고꾸라졌다. 이어 정희가 룸으로 쏜살같이 들어갔다. 워낙 창졸간에 일어난 일이라 한상득은 바지를 벗다 말고 그대로 서 있었다. 

소파에서 일어난 성기는 그 모습을 보았고 길따란 테이블에 나체로 누워 있는 지영의 몸도 보게 되었다. 그것을 본 성기는 눈이 뒤집혀졌다. 여자가 벗은 몸으로 누워있고 남자가 바지를 벗으려 한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지 알기에 성기는 거침없이 뛰쳐 나갔다. 

성기의 발길질을 피하려 했지만 벗다 만 바지가 무릎에 걸려 피하지 못한 채 맞아야만 했다. 헐거워진 문을 다시 닫고 정희가 끼어들었다. 성기에게 자신이 알아서 처리하겠다며 여자들을 살피라고 했다. 

맞는 소리와 함께 기술적으로 어디를 구타하는지 비명 소리도 내지르지 못한 채 한상득은 바닥에 고꾸라졌다. 개거품을 물고 쓰러진 한상득은 고통이 워낙 커서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혼절하고 말았다.

성기와 정희는 그의 옷을 벗겨 지영에게 입혔다. 지영의 옷은 모두 누더기로 변해 있어 그것을 입기는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찬물을 끼얹고 얼음으로 얼굴을 문질러 겨우 정신을 차린 여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영은 혼절하는 동안 성기가 자신의 처녀를 가진 줄 알고 성기를 보자마자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어찌된 일이죠?"

"어떻게 된거에요?"

"아까 그 분이네요."

깨어난 여자들이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성기는 그녀들이 정신을 잃은 동안의 일을 차분하게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녀들은 분개한 듯 쓰러진 한상득에게 달려가 손톱으로 핥퀴고 물어뜯었다.

미처 말릴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한상득의 얼굴은 만신창이로 변해버렸다. 다행이도 자신들에게 아무 일도 없었음을 깨달은 세희와 예나, 그리고 지영은 성기와 정희에게 고마워했다.

"지금 이럴 시간 없어요. 혹시라도 웨이터가 돌아오면 일이 알려지니 빨리들 나가죠."

"흥! 천벌을 받을 놈들!"

"나가기 전에 이녀석들 지갑을 뒤져 나온 돈인데 이걸 갖고 가세요."

"싫어요. 이런 녀석들 돈이라면."

"저도요."

세희와 예나의 태도가 돌변했다. 마치 아무리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다 하더라도 이런 녀석들 돈이라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표정과도 같았다.

"알겠습니다. 어서 나가죠."

"잠깐만요. 여기 우리 일하는 가게거든요. 언제 한번 찾아 오세요. 꼭이요."

그녀들의 표정이 너무나도 간절해 보여 성기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이미 수많은 여자들을 부인으로 두고 있는 유부남인데 선뜻 승낙하기는 곤란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자의 청을 거절하는 남자는 큰 일을 할 수 없다는 꿈 속의 시바의 계시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럼, 먼저 나갈게요."

나가기 전에 그녀들은 성기와 정희의 뺨에 뽀뽀를 하고는 나갔다. 다만 지영이만은 성기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것이 다른 여자들을 자극했는지 성기에게 다시 달려들어 키스를 퍼부었다.

성기는 그녀들의 몸을 거부해 더는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자칫 큰일날 뻔한 순간이었다. 성기는 자신의 침이 어떤 위력을 갖고 있는지 대충은 파악하고 있었다.

여자들이 사라지고 난 뒤 바닥에 쓰러진 한상득의 몸을 뒤져 지갑을 꺼냈다. 그 순간 복도에서 소리가 들렸다. 어쩔 수 없이 한상득의 지갑을 품에 넣은 뒤 룸을 빠져나왔다.

천만다행으로 조금만 늦었어도 일이 들킬 뻔했다. 그 룸의 웨이터가 얼음과 물을 챙겨서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만기는 손님 10명을 이끌고 다른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룸으로 들어가자 그 때까지도 여자들은 가지도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이 없는 자리를 손님이 지키고 앉아 양주를 마시고 있어 성기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꽤나 아름다운 여성이 성기를 보자마자 술잔을 내려 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녀가 화났음을 직감한 성기는 미안한 듯 표정을 지어보였다.

"저, 기다리게 해서.....아악!"

쫘악!

길고 가는 아름다운 그녀의 손이 성기의 뺨에 작렬했다.

"흥! 나를 기다리게 한 벌이야. 화장실 갔다 온다며? 나참, 어이가 없어서. 나같은 미인을 볼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 잘해야지."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섰다. 빨간 가죽의 미니 스커트 아가씨는 언제 일어났는지 냉큼 그녀를 따라서 나가 버렸다.

어이가 없는 성기는 너무나도 화가 났지만 한편으로는 그녀들의 심정도 이해가 되었다. 화장실 간다고 해놓고 수십분을 기다리게 했으니 말이다.

기분도 더러워서 더는 있지 못하고 나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자 성기는 문을 열고 웨이터를 불렀다. 득달같이 달려 온 웨이터를 보자마자 고맙다고 말하고 그만 가겠다고 하자 성기에게 다른 여자들 부킹할테니 이 밤이 지날 때까지 놀고가라며 매달렸다.

하지만 성기는 단호히 잘라 말했다. 

"빨리 가야죠. 많이 늦었는데."

"지금이 피크인데 벌써 가시다니? 좀만 더 있다 가세요."

오늘따라 이만기의 손님이 없었는지 매달렸다. 성기가 굳건히 나오자 다음에 오실 때 또 자기를 찾아 달라며 라이터를 건넸다. 알겠다고 말했다.

카운터로 간 성기는 계산서를 보자마자 지갑을 꺼내려 했지만 뒷 주머니에 있어야 할 자신의 지갑이 보이지가 않았다. 아무리 뒤져봐도 상의 안쪽 주머니에는 배일도 일행들에게서 뺏은 현금 다발과 수표, 그리고 한상득의 지갑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현금을 꺼내들고 계산을 마쳤다. 그리고는 나이트클럽을 나섰다. 청량리로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아까 들렀던 힐탑으로 향해야만 했다. 그곳에 지갑을 떨어뜨리고 온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빨리 가야 지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서둘러 출발했다.

"야, 그렇게 나가버리면 어떡해?"

"흥, 왜? 아쉽냐?"

"아니, 난 술을 더 마시고 싶어서 그렇지."

"자존심도 없니. 넌!  고 나이 어린 녀석이 우릴 바람 맞히다니. 열받아서 그래."

"그래서 따귀 때렸냐?"

"그래. 그 녀석 생긴 것이 아주 밥맛없게 생긴 나혜리랑 닮았어. 어휴, 열받아. 좀 더 때려주고 올 걸."

"선영아! 너 왜 그렇게 혜리를 미워해? 혜리는 공부잘해서 검사까지 된 아이잖아. 성격도 시원하고 말이야."

"흥! 일등인 나는 지금 교수님 밑에서 연구나 하고 있어서 그래. 그 기집애가 검사가 되다니. 학교 다닐 때는 내가 더 공부 잘했잖아."

"그것이 언제적 일인데 아직도 고등학교 애기를 하니? 어머, 저기 길 고양이 있다. 무지 귀엽다."

"빨리 택시타자. 아이, 기분나빠!"

그렇게 택시 승강장으로 향하는 두 여자를 발견한 성기는 승용차의 창문을 내렸다.

"어디까지 가세요?"

"어머, 아까 그 분들이네."

"야! 넌 애들한테 존대하니, 흥! 신경끄셔!"

아름다운 여자는 냉기를 폴폴 날렸다. 하지만 성기는 걱정이 되서 다시 말했다.

"괜찮다면 같은 방향이면 태워 주고 싶어서 그래요. 누나들! 아참, 나이 많다고 그랬죠. 아줌마! 태워 줄게요. 말만 하세요."

"뭐? 아줌마!"

"성질 더러운 이 아줌마야! 메롱이다!"

"저, 저게! 너 더 맞아야 정신 차릴래?"

"많이 맞았잖아요. 아줌마한테! 아줌마! 나이 많은 아줌마! 남편이 걱정하겠어요. 이런데 다니면."

그렇게 말을 내뱉은 성기는 정희에게 말해 차를 빨리 몰라고 했다. 차는 순식간에 그녀들 앞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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