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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는 철문을 열고 나가자 좁은 길에 예감이 좋지를 않았다. 그렇기에 서둘러 나가자 앞서 가던 정희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발밑을 두리번거렸다. 손에 쥐더니 그것을 성기에게 내밀었다. 검게 타버린 숯이었는데 마스크도 없는 둘에게는 딱 필요한 물건이었다.
그것을 받아 든 성기는 열심히 발랐다. 정희도 성기를 따라서 숯가루를 얼굴에 여자가 분을 찍듯이 발랐다. 어두운 곳에서 하는 거라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그래서 더욱 안심이 되었다. 대충해도 눈과 입만 보일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목소리를 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정희를 보며 입을 여는 성기였다.
"정희씨! 말할 때 일본 말로 해요."
"네? 아, 알겠습니다."
정체가 노출되는 것을 염려한 성기의 염려를 파악한 정희였기에 더는 묻지 않았다. 숯가루를 묻힌 성기와 정희는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원래 이 화장실은 밖에 있던 폐쇄하려고 했으나 가장 구석에 있는 방을 확장하면서 화장실이 없어져 부득이 유지하고 있었다. 이 철문은 단속 나왔을 때 빠져나가는 비상구 역활을 하기도 했다.
오른쪽으로 꺽어지자 화장실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 갈수록 여자화장실의 백열등 불빛에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불투명 유리여서 흐릿한 모습이었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아픈 듯한 신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만약 서로 좋아서 하는 것이라면 난감한 상황이었다. 여자까지는 차마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성기는 배일도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따끔한 맛만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차에 배일도의 목소리가 때마침 들려왔다.
"죽이는데......."
목소리에 취기가 함께 묻어나는 듯 들렸다. 같이 있는 여성은 신음 소리만 짧게 내뱉고 있었는데 입에 재갈이 물린 듯 짧고 불분명했다. 여자가 내뱉는 소리를 듣고 배일도가 강제로 범하는 것으로 판단이 들었다.
만약 서로 합의하에 즐기는 것이라면 저런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여성과 잠자리를 한 성기가 그냥 들어도 알 정도였다.
"으음.....웁....우웁...."
성기는 강제로 당하는 여자를 생각하자 지난 사건이 떠올랐다. 강제로 차수연과 양순경과 김순경을 안았던 사건이 머리를 스쳤다. 미친 노인에 의해 자신도 생명을 장담할 수 없었던 그 때를 말이다.
죽지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질렀다고는 하지만 결코 떳떳한 일은 아니었다. 다행이도 그 일로 그 여자들이 자신을 따라 살려고 한다지만 좋아서 한 행위가 아니었기에 늘 그녀들을 볼 때마다 미안한 감이 들었던 성기였다.
"우웁....웁....."
소리에 성기는 정신을 차렸다. 옆에 있던 정희는 어서 들어가서 처리하자는 눈치를 보냈다. 이미 정희도 여자가 강제로 당하고 있음을 직감했기에 망설일 시간이 없다고 느꼈다.
문을 열려고 하자 안에서 잠겼는지 덜컥 걸리고 말았다. 문고리를 보니 구부러진 못이 고리에 걸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못이 녹슨 것이 힘껏 당기면 빠질 것 같았다. 덜컹 소리에 놀랄만도 하건만 배일도는 이미 성욕에 미쳐 그것을 들을 정신이 없었다.
마치 고장난 브레이크로 과속으로 달리는 자동차마냥 그는 멈추지 않고 지영을 희롱했다. 엉덩이에 물건을 비비며 농락했다. 물건에 닿는 탄력적이고 나긋나긋한 살결에 배일도는 미칠 것 같았다.
그녀의 엉덩이에서 미끄러져 그 울창한 밀림을 물건으로 툭툭 건들였다. 까실까실한 감촉이 물건의 예민한 분홍빛 살결에 닿자 그는 환장했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정희와 성기가 배일도를 잡고 밖으로 끄집어냈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배일도는 깜짝 놀라며 지영을 안고 밖으로 끌려 나가지 않으려 힘껏 잡았다.
지영은 자신도 모르게 끌려나가려는 순간 이대로 끌려나가면 큰일이 난다고 여겼는지 자신도 모르게 힘을 발휘해 화장실 벽에 세워 둔 파이프를 움켜 잡았다. 그 다음에야 화장실 문이 열려서 누군가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을 덮친 녀석과 같은 일행이면 더욱 큰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구원해 줄 사람이 나타났길 바라고 또 바랬다.
성기가 밖으로 내팽개쳐지 않으려 여자를 잡고 애쓰는 배일도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퍽 소리와 함께 코에서 피가 주르를 흘러내렸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고통에 손을 놓을 수도 있건만 배일도는 끝내 여자를 놓지 않았다.
정희가 잡아 끌다가 다리를 힘껏 발로 밟았다.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듯 아파오자 배일도는 고통의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아악!.....사람 살.....우웁......웁....."
성기는 휴지통에서 피가 잔뜩 묻은 생리대를 배일도의 입에 재빨리 물렸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발로 밟았다. 녀석은 고통을 줄이기 위해 새우등처럼 몸을 구부렸다.
손을 이용해 입에서 생리대를 빼내려고 했지만 그것은 성기가 허락치 않았다. 배일도의 손을 사정없이 발로 밟아버린 것이다. 팔을 구성하는 피와 살, 뼈가 분리되는 듯한 고통이 배일도를 엄습했다.
"우윽.....웁....."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배일도는 어서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자신의 친구들이 오지 않는 자신을 찾으러 오기만 소원했다.
자신을 패는 녀석들은 두 명같은데 성기보다도 정희가 발과 주먹으로 가격할 때마다 무지막지한 고통에 몸을 비트는 배일도였다. 성기는 그저 남들이 보기에도 그냥 막싸움식으로 팼다. 선머슴이 장작을 패듯 말이다.
여자는 살짝 눈을 떠서 보았는데 눈을 다시 감을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쓰러진 배일도의 얼굴에 온통 피범벅인데다가 코와 입에도 빨간 피가 잔뜩이었다. 게다가 두 남자가 이유를 불문하고 어떤 말도 내뱉지 않고 후려패고 있으니 지영은 자신도 저렇게 될까 봐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지를 수 없었다. 두 남자가 당장이라도 허리 춤에서 칼을 꺼내 죽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여태 살아 오면서 막연히 갖고 있던 죽음에 대한 공포가 구체적으로 자신 앞에 다가왔을 때 그 누가 초연할 수가 있을까. 더군다나 그녀는 연약한 여자였기에 그 공포감은 남들보다 더했다.
입술을 꼭 깨물고 눈을 감은 채 여태 믿지 않았던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말이다. 살려만 주신다면 이제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니겠다고 소리없이 애원했다.
한참을 패던 성기는 정희에게 그만하라고 손짓했다. 정희가 뒤로 물러서며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우루사이! 고노야로! (시끄러워! 이자식아)"
정신없는 배일도였지만 자신을 팬 녀석들 가운데 일본 놈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성기는 화장실 구석진 곳에서 청소도구 옆에 노끈을 발견했다. 그것을 꺼내 녀석의 손과 발을 꽁꽁 묶었다. 귀에도 물 묻힌 휴지를 꽁꽁 넣어 둬 소리를 듣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벌거벗은 여자를 쳐다보았다. 정희는 이미 철문쪽에서 누군가가 오지 않나 망을 보고 있었다. 정희는 이런 역활은 자신보다는 성기가 어울린다고 판단했기에 물러난 것이었다.
"이봐요! 해치지 않을테니 눈을 떠 봐요."
지영은 눈을 뜨면서 움찔했다. 조금 말라보이는 체구의 젊은 남자가 서 있었는데 얼굴에 온통 검은색이라 깜짝 놀란 것이었다. 그녀는 경계심을 갖고 성기를 바라보았다.
"저를 무서워하지 마세요. 해치지 않을 것을 약속드릴테니 먼저 옷부터 입는게 나을 것 같은데요."
"어머!"
자신이 나체인 줄 잊고 있었던 지영은 황급히 몸을 돌리며 부랴부랴 팬티와 브래지어를 했다. 그러면서 성기에게 부탁했다.
"죄송하지만 고개를 돌려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미 그녀의 몸을 다 본 성기였지만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의 부인들보다 못한 몸매였지만 그럭저럭 매력적인 구석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밀림은 빽빽해서 그녀의 몸을 떠올리면 아마존의 밀림이 생각날 듯 했다.
"다 입었어요."
"부탁인데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주세요. 이 녀석은 제가 알고 있는 녀석인데 여자들에게 함부로 손을 대는 녀석이라 걱정되서 말입니다. 곤란하다면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상하게 지영은 백마 탄 기사처럼 자신을 구해 준 성기에게 믿음이 갔다. 그래서 좀 전의 일을 설명했다. 나이트에 와서 룸에서 이상한 녀석들에게 옷을 벗으면 돈을 준다는 이야기까지 한치의 거짓도 없이 성기에게 털어 놓았다.
그말을 듣자 잠잠해지던 성기의 마음에 다시 화가 치밀었다. 여자를 그것도 룸살롱이 아닌 곳에서 옷을 벗으면 돈을 주겠다는 이런 녀석들이 있다니. 쓰러져서 고통에 신음하는 배일도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읍.......아읍....."
다시 녀석의 입에서 짤막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엉덩이 부분에 딱딱한 것이 성기의 발에 걸려 세게 차지 못한 것이 분한 성기는 앉아서 배일도의 엉덩이를 살폈다. 불룩한 것이 지갑같아서 그것을 꺼내 살폈다.
안에는 만원권 지폐와 100만원권 수표가 열 장이 넘게 들어있었다. 그것을 보고 순간 격분한 성기는 두 차례나 다시 걷어찼다. 돈이 많은 것을 이용해 여자를 살 수 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흥업소에나 가능한 것이고 여기는 나이트클럽이었다.
이런 곳까지 와서 돈자랑을 해대는 녀석이면 다른 것을 살피지 않아도 알만한 것 같았다. 녀석은 한마디로 인간 쓰레기라고 말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여자 애기를 들어보면 의사 나부랑이하는데 도저히 믿기지가 않은 성기였다.
저런 녀석이 의사라면 자신은 판검사였기 때문이었다. 여자들에게 잘 보이려 거짓말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성기였다. 가짜 대학생도 많은 편이니 말이다. 돈은 개발 붐을 타고 돈벼락을 맞은 졸부 집안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다닐 수가 없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였기에 성기는 더욱 자신의 예상의 확신했다. 녀석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 여자에게 쥐어주었다.
"이걸로 피해 보상이 되지는 않겠지만 가지세요. 녀석의 돈이니."
"아? 싫어요. 절대 갖고 싶지 않아요."
"왜요?"
"그 돈을 받으면 내가 마치 몸을 주고.....음, 이런 말하기 곤란하지만.....암튼 그래요."
"알겠습니다. 먼저 나가세요. 일행들이 물으면 모른다고 하세요. 먼저 나와서 모른다고 말만 하시면 될 겁니다."
지영은 가면서도 성기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의 검은 얼굴이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구해줬기에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들어간 지영이었다.
이대로 가면 영원히 성기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지영은 몸을 돌렸다. 다시 성기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성기의 얼굴을 잡고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당한 성기는 꼼짝없이 응할 수밖에 없었다.
성기의 침이 그녀의 입으로 순식간에 건너갔다. 그녀는 그것을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지 달콤하게 너무나도 달콤하게 받아먹었다.
잠시 후 입술을 뗀 그녀는 성기의 귀에 대고 말했다.
"고마워요. 평생 잊지 않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