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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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타는 것을 본 성기는 정희에게 신호를 보냈다. 정희는 재빠르게 르망에 탑승해 성기 앞으로 몰았다. 조수석 문을 열고 탄 성기는 빨리 쫓아가라고 말했다.

"네, 성기님."

배일도가 탄 택시를 쫓아가던 중에 정희가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저 분이 혹시 성기님의 얼굴을 알아보지 않을까요?"

"어? 그것은 생각 못했네. 알아보면 큰일인데....."

"비닐이나 마스크를 사서 해결하면 될 텐데요. 제가 일본에 있을 때도 마스크로 많이 했습니다."

그 말에 성기는 곤란한 듯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한국인데, 게다가 지금은 8월이니 마스크가 있을 리 없을 텐데."

그러다 공사장 인부들이 먼지가 많이 날린다고 마스크를 쓴 것을 본 기억이 났다. 가다가 철물점에서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성기였다. 한참 신사동을 지나서 가던 택시는 갑자기 유턴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뒤따르던 성기는 의아했지만 묵묵히 따라했다.

택시 안에 있던 배일도는 잠깐 눈을 붙이다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한상득과 박흥식이 보이지 않자 배일도는 혹시 나를 빼돌리고 지난 번 강남 나이트로 가지 않았을까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술때문에 오락가락했지만 동기들과 어울려 진탕 놀고 싶은 배일도였다. 게슴츠레한 눈을 뜨고 그는 말했다.

"기사님, 강남역 뉴욕제과 뒷골목으로 가요. 빨리요."

"손님, 아까는 집이라고 했잖아요."

기사의 말에 배일도는 짜증을 부렸다.

"그냥 가세요. 제가 가자는 대로 가시면 되죠. 뭔 말이 그렇게 많아요. 이게 버스에요? 택시지. 돈은 넉넉히 줄테니....."

"네! 알겠습니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기사는 아들 뻘과도 같은 젊은 취객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느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말없이 운전대를 잡으며 행선지를 강남역으로 틀었다.

오딧세이 앞에서 내린 배일도는 휘청거리는 발걸음을 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 일행이 있다고 한 뒤 오딧세이에서 담당을 맡았던 웨이터를 떠올렸다.

"저기 조용필좀 불러줘!"

"손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웨이터 조용필! 손님 계십니다."

90년대 모든 나이트 클럽에 공통적으로 존재했던 웨이터 이름이 조용필이었다. 그만큼 가수 조용필의 인기는 누구와도 견줄 수가 없었다. 실제 조용필과는 다른 키가 훤칠한 웨이터 조용필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지난 번에 왔었는데 기억나? 그때 세명이서 룸잡고 놀았는데 말이야."

조용필은 배일도를 유심히 쳐다보고는 기억이 난 듯 반가워했다.

"아, 그때 그 손님들이시군요. 기억납니다. 팁도 두둑히 주셔서 더 기억이 나는데요."

"오늘 내 친구들 여기 왔어?"

"모르겠는데요. 오늘은 제가 늦게 출근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웨이터들한테 물어볼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렇게 말하고 조용필은 알아보러 자리를 떠났다. 배일도는 아직도 술기운이 남아 있는지 벽에 등을 기대며 섰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성기는 천천히 배일도에게 다가갔다.

하필 그 순간에 웨이터 조용필이 나타났다.

"지금 알아보니 룸에 계신다는데요. 제가 오늘 늦게 나와서 다른 웨이터가 맡고 있답니다. 가장 안쪽에 있는 방에 계십니다."

"고마워! 여기 수고비야!"

"고맙습니다."

십만원권 수표 한장을 건넨 배일도는 동기들이 있다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룸으로 가는 것을 지켜본 성기는 정희와 함께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라이터 겸용 웨이터 표시등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이미 스테이지에서는 광란의 춤 파티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밝고 경쾌한 리듬의 ace of base의 댄스 음악이 드넓은 어둡고 탁한 공간을 메웠다. 

한 사내가 나와서 무대 위로 올라가더니 디제이석에 섰다. 음악을 줄이고 인사말을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와 주신 많은 여자 분들께 감사드리며,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라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띄웁니다. 여자의 마음을 안다니, 서태지씨 대단한 가수가 될 겁니다. 20년 결혼하신 우리 아버지도 여자 마음을 모르는데 말이죠. 자아! 음악들으면서 남자분들이 여자들의 마음을 훔치시길 바랍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거대한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맞춰 스테이지에 있던 사람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회오리 춤을 춰나갔다.

춤을 몇몇은 음악을 따라 부르며 몸을 흔들었다. 성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웨이터를 불러 룸으로 바꾸어 달라고 말했다.

"뭐라고요? 잘 들리지 않아서 그럽니다. 크게 말씀해 주세요. 손님."

성기는 웨이터 이만기의 귀에 입을 대고 말했다.

"룸으로 바꾸겠다고. 여기 너무 시끄러워서 말이야."

그 말에 웨이터는 입이 벌어지며 반가운 소식을 들은 듯 함박 웃음을 지었다.

"그래요? 당장 안내하겠습니다. 여기 테이블에 있는 것은 빠짐없이 옮겨드릴게요."

"천천히 하고. 먼저 룸으로 가자고."

성기는 웨이터를 앞세워 룸으로 향했다. 그런 성기를 정희는 말없이 뒤따랐다. 배일도는 동기들이 있다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는 벌써 두 명의 여자가 동기들 곁에 앉아 있었다.

"어, 일도야!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냐?"

"혹시나 해서 와 봤어. 오늘은 예감이 잘 들어맞는데."

갑작스런 배일도의 등장에 한상득은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반가운 듯 말했다.

"잘 왔다. 거기 앉아."

"그래, 너가 없으니 뭔가 허전하더라."

"나도 너희들 없으니 재미가 없었어."

그들의 대화에 곁에 있던 여자들이 끼어들었다.

"오빠! 이분도 친구세요?"

"응! 친구지."

"그럼 저 오빠도 의사에요?"

"그럼. 의사인데 왜?"

"실은 내 친구도 한 명 더 오기로 했거든요. 지금 홀에 와 있다는데. 그 애도 예뻐요."

예쁘다는 말에 한상득이 황급히 승낙했다.

"알았어. 데려와!"

그 시각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던 이예나는 온갖 짜증이 밀려왔다. 여기서 분명히 전에 같은 룸살롱에서 일하던 여자애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택시를 늦게 타는 바람에 15분 지나서 나타난 이예나였다. 

시간을 지키지 않아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몇번 부킹이 들어왔는데 40대 이상의 아저씨들이 눈치없이 달려들어서 예나의 화가 더욱 치밀었다.

'꼴에 남자라고. 대머리에 배가 나왔으면 돈이라도 많던가. 예쁜 것은 알아가지고.'

다행이도 남자 손님들을 끌기 위해서 11시 전까지 입장한 여자 손님들은 기본이 무료 제공이었다. 맥주 다섯 병에 안주하나가 꼴랑이었지만 그것도 남자들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으니 사회에서 하지도 않는 여성 우대를 나이트 업계는 일찍부터 시행하고 선구자 역활을 담당하는 중이었다.

가뜩이나 오늘 가는 여름의 마지막 이라 생각하고 한껏 야시시한 차림으로 나타난 이예나였다. 나시 차림에 짧은 미니스커트여서 남자들은 그녀의 드러난 가슴골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어떤 놈팽이는 그녀의 허벅지를 대놓고 바라봤다. 하얀 살결의 쭉 뻗은 곧은 다리에 남자들의 눈동자는 휘둥그레졌다. 병 뚜껑을 따서 벌컥 벌컥 마셨다. 그런 예나에게 웨이터 이만기가 다가왔다.

"저 손님! 여기서 만나기로 한 친구분들이 룸으로 오시라는데요."

"네? 룸이요?"

"네, 지금 일행분들은 남자 분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어서 말입니다."

"아하. 그래요."

나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남자들과 룸이라니, 요것들이 상당히 응큼하다고 생각한 예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일어나 룸으로 향하자 훔쳐보던 많은 사내들이 아쉬워했다.

오늘따라 룸에 손님이 꽉 차서 지배인은 입을 귀까지 벌리고 흡족한 마음에 기분이 좋았다. 성기는 룸에 들어가던 중에 뒤에서 급하게 다가오던 예나와 부딪쳤다. 넘어지려는 예나를 웨이터가 붙잡아줬다.

"이봐요. 젊은 사람이 똑바로 걸어야죠."

"네? 그쪽이 급하게 다가왔잖아요."

성기는 여자의 막무가내에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이예나는 얼굴을 보니 나이도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나이트 출입이니 싹수가 노랗구나라고 생각했다.

"뭐라고요? 지금 잘못했다고 해도 내가 용서할까 말까 정도였는데. 너 민증까봐! 자꾸 반말할래?"

"뭐라고? 민증? 웃기시네. 나도 먹을만큼 먹었거든."

============================ 작품 후기 ============================

*****90년대 초반 나이트 문화가 급속도로 퍼지죠. 서태지의 음악과 더불어서 말이죠. 락카페도........

제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피비님을 모르시는 분이 계시더군요.

피비님이 울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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