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10 회: 5 -- >
"악!"
나경원이 휘두르는 손바닥에 뺨을 맞은 이맹박의 머리는 휙하며 왼쪽으로 돌아갔다. 그의 뺨은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부지불식간에 맞아서 이맹박은 정신이 없었다.
"어딜 만져? 지금 내 손을 만지고 싶었던 거야? 뭐야?"
나경원이 버럭 화를 냈고 같이 있던 전여옥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이봐요. 내 친구하고 나는 함부로 남자들한테 대접받을 여자가 아니거든요. 우리가 어떤 여자들인지 알고....."
뺨을 맞은 이맹박은 한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왜라는 눈빛을 띠고 있었다. 그녀 말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홀쭉이처럼 마른 오백원이 물었다.
"어떤 여자 분들이신데요?"
그의 물음에 전여옥이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우린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여자들이고요."
그 소리를 들은 이맹박과 오백원은 귀를 막고 싶었다. '야! 너희는 그냥 잡초거든. 뽑고 싶은 잡초!'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그녀들은 진상을 피워도 손님의 신분이었다.
최상의 친절로 여성 고객들을 끌어야 꽃에 모이는 벌들처럼 남자 손님들을 모실 수 있는 곳이 나이트였다. 그런 곳에서 아무리 여성 고객이 잘못을 저질렀어도 종업원들은 참아야만 했다.
"아, 네! 잘 알겠습니다."
"빨리 가요. 친구들 있는 곳으로요."
"빨리 가지 않고 뭐해요?"
진상을 피울 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또 다시 제지하려고 하면 난동을 피울 기세여서 더는 막지를 못하고 이맹박은 그녀들을 친구들이 있는 룸으로 안내했다.
이맹박을 따라가면서 나경원과 전여옥은 귓속 말을 주고 받았다.
"호호호, 우리도 드디어 미팅을 하는구나."
"어머, 좋아라. 역시 친구들을 잘 둬야해."
"어떡해, 어떡해, 나 화장하고 올걸 그랬어."
"그냥 가. 지금 한창 미팅하고 있을 텐데. 그나저나 우리 짝은 누가 될까?"
"미팅 처음인데 남자한테 애프터받았으면 좋겠다."
"나두."
둘은 따라가면서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말을 엿들은 이맹박의 얼굴은 똥씹은 얼굴이었다.
'미친 년들! 미치려면 곱게 미치지. 미팅하고 부킹을 헷갈리다니. 저런 년들 때문에 나라가 발전을 못해요. 발전을.'
어두운 복도를 따라 한쪽 옆으로 길게 늘어선 방 앞에서 들어섰다. 이맹박이 성큼 성큼 걸어가 두번째 방에 심호흡을 하고는 문을 열었다. 안에서는 벌써 일이 한창 진하게 진행되었는지 키스를 하는 커플도 있었고 서로의 몸을 밀착시키며 체온을 확인하는 커플도 있었다.
그 와중에 문이 열리자 한상득이 세희의 가슴을 만지던 손을 급히 뺐다. 눈을 들어 확인해보니 웨이터 이맹박이었다. 그는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뭐야?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형님들! 한창 분위기 달아오르는데 깨서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여자분들 일행이 계시던데 꼭 여기를 들어 와야겠다고 하셔서 말입니다."
이맹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에서 그를 밀치고 나경원과 전여옥이 나타났다. 그녀들의 얼굴을 보니 한상득은 술이 깨는 것 같았다. 못생겨도 저렇게 못생긴 여자들이 있을까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전 애네들.....뭐에요? 지금?"
"이게 미팅이야? 미팅이냐구?"
그녀들은 인사를 하려다 말고 안의 낯뜨거운 장면에 소리쳤다. 친구들 셋은 이미 인사불성으로 취했는지 고개를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헤롱거리는 중이었다. 취한 그녀들의 몸을 박흥식과 배일도, 한상득은 열심히 주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때 오늘 조사를 받아서 기분이 꿀꿀했던 배일도가 그녀들의 소리에 잠깐 정신이 돌아왔다. 그도 이미 양주를 먹어서 혀가 약간 꼬이고 있었다.
"뭐야? 아이, 시팔! 웨이터, 우리 지금 부킹했느데 또 해? 글구 재네들 얼굴 봐라. 야아, 상득아! 재네들 네가 불렀냐? 아우...."
배일도의 말에 나경원과 전여옥은 분노가 치밀었다. 친구들한테 하는 행동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폭언에 가까운 언사를 하다니 말이다.
"일도야, 넌 가만히 있어. 왜 술을 먹고 그래."
그러더니 한상득이 조용히 품에 안겨있던 세희를 의자에 기대게 해놓고는 일어섰다. 문 간에 있는 두 여자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친구이신가 본데, 지금 저희 세명하고 애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한상득의 차분한 말이 그녀들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했다.
"뭐라고요? 지금 이게 애기 나누는 중이라고요?"
"이 제비같이 생겨가지고. 애기 나누는 중인데 왜 몸을 만져요? 왜?"
전여옥이 나경원에게 말했다.
"안되겠다. 경찰한테 신고하자. 이놈들 분명히 우리 몸을 노리고 있는 제비같거든."
"어, 그러는게 나을 것 같아."
일이 엉뚱하게 흘러가자 다급하게 한상득이 말했다.
"여보세요. 지금 두 분이 오해하고 있는 겁니다. 부킹하는 중이잖아요. 부킹!"
답답한 듯 한상득이 말했고 만취한 배일도의 귀에는 그녀들의 목소리가 오늘 검사를 받을 때 심문하던 나검사의 목소리로 들렸다. 자신같은 상류층의 자제가 더군다나 곧 의사가 될 고귀한 신분이 검찰에 불려갔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분노케했다.
"뭐라고. 이 못생긴 년아. 그만 가 봐! 옛다! 차비다. 우리 지금 이 여자들을 만나고 있는 거 안 보여!"
"이이익.....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좀전에 배일도가 했던 말이었다. 나경원과 전여옥은 한 몸인 것처럼 배일도를 덮쳤다. 만취한 배일도는 그녀들의 몸에 깔리며 의자 위로 쓰러졌다. 쓰러진 배일도의 몸 위에 올라 탄 그녀들은 배일도를 화가 풀릴 정도로 때리고 할퀴었다.
"야, 너 뭐라고 그랬어? 너같은 놈은 맞아야 돼!"
"이 개뼈다귀같은 놈이 누구보고.....에이....."
신고 있던 하이힐을 꺼내 나경원은 손에 쥐고 만취한 배일도의 얼굴을 내리찍었다. 전여옥은 테이블 위에 있던 쟁반으로 복부와 허벅지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악! 뭐야!"
소란이 나자 복도를 지나가던 손님들이 동물원 구경하듯 열린 방을 구경하고 있었고 때마침 그 방 앞을 지나가던 여자들 가운데 잘 나지 못한 여자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어머, 별꼴이야. 정말!"
"뭐, 그런 녀석이 다 있어."
문을 닫고 일을 해결하려해도 일은 이미 커질대로 커졌는지 주변에 있던 여자 손님들 대부분이 방 앞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한상득은 취한 박흥식을 부축하고는 이맹박에게 부탁했다.
"야, 빨리 말려. 깨어나면 먼저 갔다고 해. 에이!"
"죄송합니다. 형님."
한상득은 맞고 있는 배일도를 내버려둔 채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박흥식을 데리고 나갔다. 같이 있던 세 여자는 이미 고개를 쳐박고 의자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그 바람에 짧은 치마를 입은 세희의 하얀 허벅지와 엉덩이가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보고있던 여자들과는 달리 이 소란을 보며 눈요기를 하는 남자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저 골뱅이년들을 먹고싶다는 마음이 대부분이었다.
한참을 맞던 배일도는 이마를 맞고 정신이 들었는지 힘을 발휘해 가슴에 올라타 있던 나경원을 밀쳐냈다. 그덕에 나경원은 전여옥과 머리를 부딪쳤다.
"아야!"
"악!"
"이년들이! 죽고 싶냐!"
"형님! 그만하시죠."
"뭐야! 가만 있게 생겼냐? 저년들이 먼저 때렸는데."
말리는 이맹박의 말에 배일도는 흥분한 목소리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씩씩거리며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나경원과 전여옥에게 발길질을 하려했다. 어쩔 수 없이 이맹박이 끼어들었다.
"아이, 형님! 왜 그러세요. 아무리 화가 나도 여자들을 때리면 되겠습니까!"
그의 말에 구경하던 여자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우와! 멋지다."
"웨이터 이맹박 화이팅!"
하지만 술에 취한 배일도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지금 배일도는 무엇보다도 가슴을 뚫고 나오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
"저리 비켜! 새끼야! 저년들이 감히 날 때려!"
"에이, 왜 그러세요. 형님, 참으세요."
허리를 부여잡고 이맹박은 말렸다. 하지만 배일도의 발까지 막지 못했다. 허공을 가르고 그의 오른 발에 나경원의 옆구리가 걷어차였다.
"아악!"
"어머, 경원아!"
전여옥은 소리를 치며 아픔에 쓰러지는 경원이를 부여잡았다. 다행이도 일은 커지지 않으려는지 지배인이 인파를 헤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뭐해 짜식들아. 빨리 여자 손님들을 밖으로 모시지 않고. 빨리 해!"
지배인 말에 뒤에 있던 웨이터들이 달려들어 아파하고 있는 나경원과 전여옥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
"이것 놔요. 저 놈이 내 친구를 때렸다구요."
"이거 놔! 너희들 경찰에 신고할거야."
그녀의 말에 배일도는 코웃음을 쳤다.
"해라, 해! 이 미친 년들아!"
"형님, 그만하세요."
밖에서는 이미 그녀들이 고성을 지르고 있어 이미 영업에 상당한 손실을 입고 있었다. 이런 일을 신속히 처리하지 않으면 일파만파로 커질 수 있었다. 아직 한창 때는 아니니 빨리 마무리하고 오늘 피크 타임을 준비해야 했다.
지배인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맹박! 지금 그 남자분도 취한 것 같으니깐, 네가 책임지고 택시 태워서 보내."
"네! 지배인님!"
"그리고 너희들 여기 이 세분들도 택시 태워서 집으로 보내드리고. 아까 그 소란 피웠던 여성들과 같은 일행이라니깐 그 여자들도 태워서 보내."
일은 마무리되려는 듯 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방을 나서던 배일도의 눈에 미희와 수진이가 눈에 띄였다. 술김에도 그녀들의 얼굴이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은 배일도였다.
'아, 그 주점에서 보았던 녀석의 친구들이었지.'
"형님, 제가 모실게요."
"잠깐만, 기다려 봐."
그렇게 말한 후 배일도는 신고 있던 신발을 벗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이맹박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취한 사람이니 신발을 벗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형님, 여기는 집이 아니니 신발을 벗지......"
이맹박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배일도는 바로 옆에 있던 테이블로 신발을 냅다 던졌다. 그 신발은 정확히 미희와 수진이의 머리를 때린 것이 아니라 성기의 이마에 맞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악!"
============================ 작품 후기 ============================
여기 나이트서 중요한 단서와 함께 살인 사건에 연루된 또 다른 여성이 등장합니다.
혹여 길게 끌고 간다고 느끼신다면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므훗한 부분이 오히려 추천이 적네요.
좋아하는 분들과 싫어하는 분들의 호불호가 갈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