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9 회: 5 -- >
오백원이 맥주 세병과 안주를 갖고 오더니 테이블에 내려 놓고는 실실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성기는 기분이 나빴지만 참기로 했다. 저 웃음의 의미는 꼴에 괜찮은 아가씨들을 데리고 논다고 비웃는 것일 수도 있고 룸을 잡지 못할 것들이 최고로 비싼 나이트 클럽와서 논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자들도 있고 기분 풀으러 온 곳에서 주먹질을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대학 1학년 때 한돌이랑 나이트에서 낯선 놈들과 시비가 붙은 적도 있어서 씨익 웃으며 잊었다.
"미희야! 수진아! 한잔 마실래?"
"오빠! 우리 술 잘 마시잖아요. 오빠가 약하면서."
"맞아!"
"야! 그건 마담이 섞어서 그런거잖아."
"피이~, 그래도 오빠는 남자잖아."
"남자는 뭐! 술먹고 뻗으면 안되는 거야!"
"오빠 삐졌어요? 빨리 줘요. 맥주!"
"내가 이런 걸로 삐질 것 같냐. 자자 받으라고. 잠깐, 정희씨도 할거야?"
성기 맞은 편에 홀로 앉아 있던 정희는 정색했다.
"전 먹지 않습니다. 안주만 먹을게요."
미희와 수진이는 성기 좌우에 앉아서 정희만 혼자 덩그라니 앉아 있었다. 미희와 수진이는 그동안 정희의 태도를 보고서 속으로 생각을 했었다. 성기가 생각 외로 대단한 사람일 것이라고 말이다.
성기와 둘은 건배를 하며 시원하게 들이켰다. 차가운 맥주가 들어가자 기분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오빠, 여기 원래 이렇게 시끄러워요?"
"아니야, 룸 잡아서 먹으면 시끄럽지는 않지. 다만 홀이라 그렇잖아. 시끄런 음악이 바로 들리고."
성기와 미희와 수진이가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하는 중에도 홀에서는 사이키 조명과 몸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드는 빠른 템포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는 남자 둘이 있었는데 즉석 만남을 가지는 중이었다. 성기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자신도 한돌이랑 나이트를 다닐 때 저렇게 했는데 라고 기억을 떠올렸다.
눈을 들어 홀을 보니 날씬한 여성들이 몸을 흐느적 거리고 있었고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수 많은 남자들이 그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몸을 흔들거렸다.
미희와 수진이는 맥주를 마시면서도 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둘의 눈에서는 이미 춤추고 흔들어대는 자신들을 예상하는 것처럼 보였다. 몸은 벌써 음악에 맞춰 살짝 살짝 흔들거리는 폼이 잘 출 것 같았다. 다만 나이트가 처음이라 망설이고 있는 폼이 과거 처음 왔을 때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성기가 맥주 잔을 내려 놓고 말했다.
"나갈까?"
"네, 근데 오빠! 우리 처음이라 춤은 잘 모르는데....."
"수진아, 괜찮아. 그냥 음악에 몸을 맡기는 거야. 알았지?"
"네, 오빠!"
그렇게 성기와 둘은 스테이지로 나갔고 정희는 말없이 성기의 뒷모습을 보며 자리를 지켰다.
한편, 맞은편 두번째 방에 들어가 있던 한상을 포함한 세명은 아가씨들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세희라고 하는 이쁜 애는 혀가 꼬이는지 발음이 새고 있었다. 좀만 더 작업하면 남은 두 아가씨도 취할 수 있으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것이 생각처럼 굴러가지는 않는 법인가 보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같은 과 친구 나경원과 전여옥은 고등학교 동창생인 세희와 설희와 영희가 사라져서 깜짝 놀라는 중이었다.
원래 다섯 명이었던 이들 멤버는 세희를 포함한 세 명이 따로 자리를 잡았고 두 명은 그 옆 테이블을 잡았던 것이다. 나이트를 가고 싶다는 세희의 말에 오랜만에 만난 여고 동창생들은 군말없이 따랐던 것이다.
나경원과 전여옥은 첫 눈에 보아도 공부를 해야 하는 얼굴이어서 나이트는 오늘 처음이었다. 살아 생전 이런 곳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도 가본 적도 없던 둘은 빠른 음악에 맞추어 스테이지에서 비지땀을 흘리다 목이 말라 자리로 돌아와 보니 친구들이 없자 화들짝 놀랐다.
"저기요. 웨이터 아저씨!"
"네? 무슨 일로 그러신가요?"
웨이터 오백원은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속으로는 오늘 힐탑 물 흐리게 뭔 이런 년들이 왔나할 정도로 욕을 해대고 있었다.
"여기 테이블에 있던 여자들 어디 갔나요? 제 친구들인데요."
"글쎄요. 춤추러 스테이지에 나가지 않았을까요?"
"여태 거기 있다 왔거든요. 그래서 물어본건데 모르면 어떡해요?"
나경원의 말에 못 생긴 전여옥이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혹시 납치?"
"어머, 어머, 진짜?"
"내가 들은 건데 이런 데서 여자들이 납치 당해서......봉고차에......"
듣고 있던 오백원은 너무 황당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어이가 없었다. '너희는 걱정 안해도 되니 얼마나 좋겠니. 그리고 이것들아! 여기 국내 최고로 물 좋은 곳이거든. 너희 때문에 가게 이미지가 진짜.'
오백원은 생각을 멈추고 급히 말했다.
"하하, 생각이 지나칩니다. 저희 업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알아볼게요."
여기 두 여자를 방치했다가는 경찰서에 친구들 없어졌다고 난리를 피울 기세였다. 오백원은 잰 걸음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에 오백원이 웨이터 이맹박과 함께 나경원과 전여옥의 테이블로 뛰어왔다.
"친구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좋은 손님들에게 부킹했으니 말이죠."
"그래요? 그런데 부킹이 뭐에요?"
그녀들의 말에 이맹박은 기가찼다. 이런 용어도 모르면서 나이트를 오다니 정말이지 아까 세 명의 여자들만 아니었으면 내쫓고 싶은 얼굴을 가진 나경원과 전여옥을 바라보았다. 서둘러 투철한 직업정신을 발휘했다. 친절과 미소를 말이다.
"쉽게 말하면 즉석 만남입니다. 다들 아시죠? 미팅말입니다. 미팅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머, 그래요? 우리도 친군데 그럼 같이 가야죠."
"네? 뭐라고요?"
이맹박은 너무나도 무식하게 나오는 그녀들의 반응에 또 다시 당황했다. 이런 경우 대다수의 손님들은 자신의 친구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 이 두 여자의 반응은 나이트 업계에 종사한 지 10년이 넘었건만 절대로 있을 수 없는 반응이었다.
"왜요? 미팅이라면서요."
나경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녀의 말에 전여옥도 덩달아 외쳤다.
"친구니깐 우리도 가야죠. 우리가 빠지면 되겠어?"
"맞아! 미팅은 우리도 해야지."
"손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뭐가요? 웃겨! 그럼, 우리 친구 세희를 불러서 물어보세요. 당연히 된다고 할텐데요."
"네? 지금은 곤란한데요. 말씀들 나누시는 중이시라......"
"됐어요. 우리가 갈 거에요."
"손님, 왜 그러세요."
이맹박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는 나경원과 전여옥의 팔을 잡았다.
"어딜 잡아요."
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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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동명이인들 많죠. 동명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