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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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탑 나이트에 도착해 차를 주차하고 한상득과  두 동기는 입구로 걸어갔다. 입구 주변에서 서성이며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던 웨이터는 부티나게 차려입은 세 남자에게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어서 오십쇼. 아시는 웨이터 있으신가요?"

"이맹박 불러줘!"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웨이터는 손에 든 무전기에 입을 대고 말했다.

"이맹박 웨이터님! 손님 오셨습니다."

문을 열고 정복을 입은 이맹박이 황급히 다가와 반갑게 맞이했다.

"형님들! 오늘 물 죽입니다."

"그래? 네 말대로 좋으면 팁 챙겨줄게."

"아이, 믿어보시라니깐요. 오늘 대학생들과 유학생들이 많이 왔습니다. 영계들이 깔렸습니다."

"좋아! 좋아!"

"안으로 들어가셔서 늘 가시던 룸으로 들어가 계시면 제가 아가씨들 모시고 들어가겠습니다."

"알았다. 믿고 들어간다."

"네, 형님!"

친형님이 아니어도 이맹박은 자신의 친형한테 말하는 것처럼 살갑게 대했다. 다른 손님과 달리 한상득의 씀씀이가 컸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여자가 마음에 들면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팁을 10만원권 수표로 수시로 준 적이 있었다.

한상득과 두 친구들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곳임에도 여러번 와서 그런지 한상득은 늘 가던 방으로 찾아 들어갔다. 이미 홀은 휘황 찬란한 조명과 댄스 음악이 신나게 울리고 있었다.

그 안에서 수많은 남녀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숨긴 채 각자의 몸을 음악에 맞춰 흔들어 대고 있었다. 세 명은 방에 들어가 널찍한 의자에 따로 앉았다. 테이블에는 이미 양주와 안주가 세팅이 되어 있어 바로 뚜껑을 따서 마시고 찍어먹기만 하면 되게끔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금이 어느 땐데 아직도 시바스리갈이야? 역시 우리나라는 구려!"

외국에 수시로 나갔던 세명이라 너무 차이나는 양주에 기가찼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애써 참으며 마개를 돌렸다. 오늘의 주 목적은 술을 마시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골뱅이 년 하나를 아주 짖이겨 놓으려고 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따 마실까?"

"아냐! 여자 애들이 오고 나서 마시면 좀 그러니깐 한두잔 먹자."

잔에 양주를 따르고 입에 대고 마시려고 하는 순간 문이 열렸다. 웨이터 이맹박의 오른손에 이끌린 아가씨 세 명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들어서고 있었다.

"형님들, 아가씨들 왔습니다. 나이트 처음이라니깐. 잘 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 이맹박은 아가씨들에게 말했다.

"여기 형님들은 의과 대학 다니시는 분들입니다. 공부도 잘하시고 집안도 좋으신 분들이니깐 마음에 들겁니다."

말을 하는 내내 이맹박은 한상득을 쳐다보았다. 한상득은 잔을 내려 놓으며 들어 온 아가씨들의 얼굴과 몸매를 재빠르게 훑었다. 날씬하게 빠진 데다가 얼굴도 예쁘장해 만족스러웠다. 그는 엉덩이를 들고 지갑을 열어 수표를 이맹박에게 건넸다.

"알았어. 수고했다."

"고맙습니다. 형님!"

이맹박은 수표를 챙겨들고 입안 가득 만족스런 웃음을 지어보이며 방을 닫고 나갔다. 아가씨들보다 한상득이 먼저 말했다.

"여기 처음오니깐. 우리가 알려줄게요. 편하게 놀다 가면 됩니다."

"네, 잘 부탁할게요."

"세분이 마음에 드는 남자 곁으로 가서 앉으면 되는데 2명이 한꺼번에 가시면 안됩니다. 우리 눈물나게 싸울지도 모릅니다."

"호호호, 알겠어요."

"세희야! 나 먼저 앉을게. 여기 이 오빠 옆에 있고 싶거든."

다른 아가씨들과 달리 한 아가씨가 낼름 한상득의 곁에 앉아 버렸다. 다른 두 친구도 생글 생글 웃으며 각자 배일도와 박흥식의 곁에 앉았다.

"오빠는 어느 대학이세요?"

"오빠라고 하니깐 말을 놓을게. 내가 불편해서 말이야."

"편하게 하세요."

"난 이름이 한상득이고 학교는 고대야. 과는 아까 웨이터가 말했으니 알거야."

"어머, 울 학교랑 가깝네요. 전 성신여대 다니거든요. 이름은 강세희에요. 무용 전공해요. 오빠는 잘 생긴데다가 공부도 잘했나봐요. 그니깐 의대갔죠? 그죠?"

"참 내, 남들 다하는 공분데 뭘."

한상득은 여자애의 띄워주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상황을 봐서 다른 애들 볼 필요 없이 애로 정해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빈잔을 들어 세희에게 주며 말했다.

"자 건배하자고. 우리의 만남을 위하여!"

"위하여!"

그냥 마시려고 하자 한상득이 말했다.

"이런 곳에서는 러브 샷이지."

그러면서 세희를 가까이 안고 러브 샷을 하는 한상득이었고 처음 온 세희는 그런가보다라고 하며 거부감을 갖지 않고 밀착했다. 다른 일행들도 저마다 이야기를 하며 친근하게 말을 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에서 다들 양주를 목젖으로 넘기기 시작했다.

독한 양주를 그리 자주 먹어보지 못한 아가씨들도 남자들의 외모와 의대생이란 말에 혹해서 입을 열고 양주를 들이부었다. 

청바지에 캐주얼한 차림으로 나타난 성기 일행을 웨이터는 친절하게 대했다.

"처음 오시죠?"

"네, 여기 힐탑은 처음인데요."

"저희는 담당 웨이터가 모든 서비스를 책임지는 곳이라, 혹시 아는 웨이터나 이름 있으십니까?"

"없는데요."

성기의 말에 웨이터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촌놈의 새끼가! 여기가 국내에서 제일 물좋은 것은 알아가지고. 어이구 깔따구들은 죽이게 예쁘장하네. 야, 이새끼야! 나이트에 여친이랑 오는 놈팽이가 어딨냐! 이런 호구 새끼!'

웨이터는 마지못해 알려주었다.

"제가 이곳에서 제일 잘 나가는 웨이터를 소개해 줄게요. 괜찮은가요?"

"네, 좋아요."

"웨이터 오백원! 손님 와 계십니다."

"손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오백원 웨이터 형님이 올 겁니다. 그 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무전기에다 소리 친 웨이터는 새로 들어오는 손님들을 향해 벌써 돌아서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홀쭉한 차림의 웨이터가 나타났다. 성기의 눈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저게 사람이야, 성냥이야 할 정도로 말라깽이 웨이터가 성기 앞에 섰다.

"제가 오백원입니다. 절 따라 오십쇼. 오늘 분위기 좋으니 최선을 다해서 모시겠습니다."

"호호호!"

"호호호! 아저씨! 웃기게 생겼네요."

성기 옆에 있는 키 큰 미희와 수진이가 같은 일행인 줄 모르고 성기와 정희만을 생각했던 오백원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마른 그의 체격은 어찌보면 정말이지 아프리카 난민이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아가씨들. 잠시만 기다려요. 여기 이 두 분 오빠들 먼저 안에 데려갈 테니까!"

"엥? 왜요? 우리 같은 일행인데요."

미희의 말에 오백원은 당황했다.

"같은 일행이세요?"

"네!"

"미안합니다. 이렇게 멋지고 예쁘신 분들이 여친인 줄 몰랐습니다."

성기가 급히 말했다.

"모를 수도 있죠. 빨리 들어가죠."

"네, 저를 따라 오세요."

오백원은 순진한 녀석들을 룸으로 데려가려다 여자애들이 있다는 말에 급 실망했다. 게다가 그곳에서 이쁜 여자들을 부킹해주고 나서 팁을 요구해도 순둥이들은 당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는데 말이다.

"룸으로 갈까요?"

"여기 춤추러 왔거든요. 그러니깐 홀으로 하죠."

한돌이랑 대학 1학년 때 강남역 주변의 나이트를 여러 번 다닌 학습 효과가 있었는지 성기는 단호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 오세요."

오백원은 자리가 예약되어 있다는 핑계로 룸으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 테이블을 잡아줬다. 성기가 앉은 테이블 자리는 룸 가운데 제일 크고 방음 시설이 잘 되어 있는 두번째 룸과 바로 맞닿아 있었다.

그 두번재 룸에 한상득과 배일도, 박흥식이 여대생들을 끼고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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