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6 회: 5 -- >
"어떻게 된거야?"
"몰라! 나도. 부모님께 물어보니 검사가 끼어들었다고만 하던데. 자세한 것은 사무실 들어가서 알아보신다고 하셨어. 주말에 그쪽에서 검사가 움직였나봐."
"에이, 시팔!"
"졸업이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 이게 뭐냐!"
"중앙지검 앞에서 보자."
"알았어."
배일도는 그날 술집에 있던 동기들과 연락을 취했다. 일요일 저녁에 연락을 받은 것이다. 쌍방 폭행에 성추행 혐의까지 더해져 사건이 심각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전화를 받을 때만해도 변호사와 이야기하면 잘 해결될 것 같았는데 출석을 하지 않으면 연행을 한다는 말에 부득이 출석을 하기로 했다. 중앙지검 건물 앞에서 동기들을 만난 배일도는 말을 맞추고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가 3층 세번째 방에서 그들은 심호흡을 했다. 나검사의 방이었다. 배일도가 나서서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배일도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동기들도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 경직된 표정들이었다.
"바쁜데 오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전 중앙지검 나혜리 검사라고 합니다. 거기 서 있지 마시고 그쪽 탁자에 앉으세요."
"네, 그런데 검사님, 굳이 이곳에 오라고 한 이유가 뭔지 궁금한데요. 저희도 양아치같은 사람들과 폭행에 연루되어 심히 불쾌한데 말입니다."
"양아치요?"
"네! 우리는 곧 의사가 되기 위한 시험을 준비해야 합니다. 졸업도 멀지 않아서 말이죠."
"배일도씨가 누구죠?"
여태 떠벌리던 배일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접니다."
"다른 분은 단순한 폭행사건일지 모르겠지만 배일도씨는 성추행 혐의까지 있습니다. 좀만 기다리세요. 피해 아르바이트 여학생이 온다고 했으니 말이죠."
"네? 그것은 오해입니다. 저는 그 여학생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건 배일도씨 주장이고, 당시 있었던 여학생의 의견도 들어봐야죠."
"저는 그 사건에 대해서는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성추행의 여부는 그 여학생이 오면 알 수 있으니 그렇게 하세요."
나검사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애기를 나누는 동안 성기는 정희가 데려다 주는 차로 정문에서 내렸다. 미희와 수진이도 따라와서 차안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검사의 방으로 가는 도중에 술집에서 배일도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울먹거렸던 그 여학생이 보였다. 그 여학생도 성기를 발견했는지 쪼르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저 기억나시죠?"
"그럼요. 기억나죠. 오늘 괜찮겠어요?"
성기의 질문이 무얼 뜻하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때 고마웠어요. 고맙다는 인사도 못해 정말 미안했어요. 저때문에 싸움이 벌어진건데....."
"뭘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요. 나쁜 짓을 한 놈들은 혼이 나야죠."
"제 이름은 강예나에요. 그쪽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전 20살인데요."
"그래요. 제가 오빠네요. 22살입니다. 이름은 천성기구요."
"아, 그래요. 말 놓으세요. 오빠라고 할게요. 오빠가 없어서 있었으면 했는데......"
20살 처녀 특유의 상큼한 냄새에 성기는 오싹할 정도의 자극을 받았다.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샴푸 냄새가 너무나 싱그러웠고 하얗게 웃고 있는 치아가 너무나 가지런했다.
"그래도 될까?"
"그럼요. 오빠!"
"빨리 들어가자. 예나야!"
"네! 오빠!"
말을 끝내고 황급히 둘은 나검사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나검사에게 인사를 하고 둘은 나검사의 지시에 자리에 앉았다. 모두 출석을 했는지 나검사가 일일히 확인을 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나온 것을 확인한 후 인터폰으로 누군가를 불렀다. 험상굿게 생긴 직원 세 명이 들어왔는데 알고보니 형사들이었다. 먼저 폭행이 벌어졌을 때의 상황과 가담 인원 수를 확인했고 이어서 예나를 불러 술집에서 배일도가 성추행을 했는지의 여부를 물었다.
예나와 달리 배일도는 줄기차게 성추행을 부인했다. 점심을 먹고 계속된 질문에 앵무새처럼 배일도는 같은 말만을 반복했다. 이에 더는 어렵다고 판단한 나검사는 모두를 돌려보내기로 했다.
추후 다시 연락할 것이라는 말만을 남기고 불려온 사람들을 귀가조치했다. 성기에게 살짝 윙크를 날리고는 나검사는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점심을 먹었는데 부실하게 먹어서인지 배가 고팠다. 게다가 여태 기다리고 있던 미희와 수진이, 정희는 먹지도 않았다고 했다. 예나에게 같이 점심먹으러 가자고 하자 예나는 흔쾌히 응했다.
차 뒷좌석에 태우고는 성기는 과천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경마장 사무실에 들러 돈을 찾기로 했다. 미희와 수진이는 승희와 진아에게 보내던 경계의 눈을 예나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성추행범의 피해자라 그런지 되려 감싸주려는 빛을 나타냈다. 음식점에서 점심을 배가 터지도록 먹고는 예나를 지하철역에 내려주고는 경마장으로 향했다.
만원권으로 챙겼다고 하면서 주는데 성기는 그것을 준비해간 박스에 담았다. 차 트렁크에 넣는데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미희와 수진이는 싱글벙글했고 정희는 돈에 초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사무실 직원에게 고맙다고 나오는데 여직원들이 성기를 빤히 쳐다보았다. 성기는 정희에게 서울대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야! 일도야! 사진 나왔다."
"뭔 사진? 나 좀 전에 검사에게 불려갔다 왔는데 말이야."
"그니깐, 술먹고 왜 싸우고 그래! 나이가 몇갠데."
"시팔, 그 일만 생각하면 열 받거든."
"너의 기분을 풀어줄 사진이야. 그날 비오는 날 해치우진 못했지만 벗겼던 여자애 있잖아! 그 애 사진이 나왔어."
"정말이야? 너 그거 밖에 유출되면 큰일난다."
"흥식이도 온다고 했거든. 우리 집으로 와!"
"알았어. 곧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