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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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희는 좋았던 기분이 망쳐지는 것 같아서 불쾌해졌다.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만난 성기라 호감만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더군다나 제일 친한 진아가 소개해서 그 호감이란 것이 여느 남자와는 달랐다.

하지만 성기가 일부러 그랬을 것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특히 거의가 여자들이 있는 곳에서 고의로 했다고는 믿어지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실수라고 치고 넘어가는 것이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 것 같지가 않았다. 승희는 성기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살짝 팔을 꼬집었다. 

"아악! 아파!"

"너무 세게 안아서 꼬집은 거야."

"미안! 고마워서 안았어. 미안해."

성기의 사과하는 소리와는 달리 미희와 수진이는 성기의 아랫부분이 승희의 허벅지를 건드리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기에 성기에게 질책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자신들도 모르게 질투가 솟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진아는 예상지를 손에 쥐며 소리쳤다.

"야! 그만해! 다음 경주 시작하려고 하잖아."

승희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진아! 너 벌써 빠져든거야? 공부밖에 모르던 애가 경마에 빠지면 되겠어!"

"흥이다! 네가 데리고 왔잖아. 아까 보니 말들이 달리는 것을 보니 정말 내 가슴이 마구 뛰더라."

"그래? 그럼 너도 승마배워볼래?"

"정말?"

"친구인 내가 가르쳐줄게."

"좋아! 근데 내가 의대생이라 주말밖에 시간이 없는데, 괜찮아?"

"응, 별수 없지. 토요일마다 가르쳐줄게. 이야기는 나중에 더하고 경주에 집중하자."

"알았어. 그나저나 성기야! 축하해!"

진아는 시선을 돌려 미희와 수진이에게 둘러싸인 성기에게 말했다.

"성기야! 축하해!"

"뭐가! 내가 오늘 팍팍 쏠게. 그리고 이거 운이 좋아서 그런거지. 매번 맞히겠냐!"

"그래도!"

다음 경주의 마권 발매 마감 7분전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벌써 그렇게 된 것이었다. 성기는 집중해서 경주로에 들어서고 있는 말들을 살폈다. 이미 성기의 손에 들려있는 예상지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경주에는 전 경주처럼 말의 눈에 정기가 흐르는 놈이 없었다. 그저 그런 녀석들만 있었는지 모두가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나마 나아보이는 말을 찾아보려고 눈에 힘을 팍주고 살폈다.

9번마였는데 예상지에는 다크호스로 나와 있었다. 성기는 손을 빨리 놀려 9번을 축으로 여러 곳을 칠했다. 이번에도 전판과 마찬가지로 베팅 금액을 걸었다.

마권을 사서 나가려는데 승희와 진아가 같이 가려는지 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셋은 마권을 사러 함께 같이 갔다. 마권 창구의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 성기를 눈여겨 보았다. 

아가씨들 대부분이 집안 좋고 돈 많은 집안의 아들로 성기를 생각했다. 성기와 같이 있는 진아와 승희는 친척쯤으로 생각했다. 격의없이 애기하고 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더군다나 안에 미희와 수진이가 있으니 더더욱 여자친구가 있는 남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마사회 젊고 예쁜 직원들 가운데 엄선해서 마주들과 VIP 층으로 온 여직원들이었다. 그만큼 그녀들은 외모에는 자신이 있었다. 성기를 눈여겨 보는 것은 돈 많은 아들이 매너도 좋고 호감가게 편하게 생긴 탓에 성기와 사귀고 싶은 마음을 모두 갖고 있었다.

대부분 마주들의 나이가 40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성기에게 쏟아지는 여직원들의 관심은 어찌보면 당연할 수도 있었다. 창구에 있던 여직원이 성기가 내민 마권을 보며 말했다.

"여기, 복승인지 쌍승인지 체크가 되어 있지 않네요."

"아, 그래요? 미안합니다."

여직원은 마권을 주려다가 자신이 해주려는 듯 컴퓨터용 싸인펜을 들고 칠해주었다.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곳이라면 해주고 싶어도 사람들이 워낙 많다보니 그렇게 해주지를 못하는 형편이지만, 여기는 마주들의 공간이라 그런지 시장통이 아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결 서비스나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제가 칠해드릴게요. 쌍승인가요?"

"위에는 복승, 아랫쪽은 쌍승입니다. 고맙습니다."

"여기요."

"네, 고맙습니다. 제가 맞추면 맛있는 것 사드릴게요."

"정말이요? 약속 지켜야 되요."

"그럼요. 남자가 한입으로 두말하면 안되죠."

성기가 편히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은 승희와 진아는 이미 방으로 들어가버렸기 때문이었다. 특히 오늘 처음인데 이곳 아가씨들은 너무나 친절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등을 돌리려는 성기를 여직원은 불러 세웠다.

창구 직원 세희는 성기의 눈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이곳에 올 정도면 집이 얼마나 부자란 말인가. 말 한마리가 억대를 호가하기도 하고 웬만한 자동차보다도 비싼 것이 말이란 동물이었다.

"그러면 지금 이거 따시면 꼭 사주셔야 해요."

"네, 약속 지킬게요."

그 말에 세희 곁에 있던 여직원들이 세희곁으로 다가왔다. 이미 마감을 해서 그런지 창구의 유리문은 모두 내려 있었지만 성기가 있는 창구는 유리문이 내려가 있었지만 말은 할 수가 있었다. 

"저희도요."

"네?"

"저희도 사줘요. 세희만 사주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사주는 것이 어렵겠어요."

"고마워요. 약속 지켜요."

"네!"

성기는 여직원들을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번 경주도 곡선주로에 접어들면서 후미에 처져있던 9번말이 번개처럼 앞으로 튀어나오며 추입에 성공하며 선두를 내달렸다.

"뭐야? 이번에도 또 그러네."

"시팔! 오늘 왜 그래? 기수 새끼들이 짰나보네."

"이번에는 돈 많이 갔는데."

"또 터지는 거야? 좆같네."

"제발, 3번 들어와라."

9번이 앞으로 치나가는 순간 관람석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소리를 내지렀다. 그것은 성기가 있는 방도 마찬가지였다.

"또야? 3번과 5번이 오늘 상태 좋아보이던데."

"성기야! 너 이번에도 9번 저 말에 건거야?"

"응!"

"어떻게?"

"느낌이 왔거든."

그렇게 말하는 순간 예상을 깨고 9번이 들어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마권을 찢어버리는 사람, 피던 담배를 바닥에 던지며 발로 비벼 꺼뜨리는 사람, 음료수를 땅바닥에 버리는 사람, 하늘에 대고 욕하는 사람 등등 여러 사람이 자기가 희망하는 말이 들어오지 않자 화풀이를 했다.

그와는 반대로 성기는 또다시 기쁨에 사로잡혔다. 잠시 후 아나운서의 결과 방송이 나왔다. 대형 모니터에 결과가 나왔는데 전 경주보다는 배당이 약했지만 그래도 400배가 넘는 배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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