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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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발작 증상을 보이는 미희 때문에 급히 간호사와 의사를 호출했다. 가운이 휘날이도록 뛴 주치의는 병실 문을 열자마자 미희의 침대로 다가갔다. 

"언제부터 이렇죠?"

"몇분 안됐어요. 좀 전까지 괜찮았는데....."

"제가 사건에 대해서 물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주치의는 미안함 가득한 얼굴의 나검사를 째려보며 말했다.

"폭행 충격에 따른 일시적 기억회피 증상입니다. 진정제를 놔 드릴테니 당분간 충분히 잘 겁니다. 그리고 깨어난 후 바로 폭행에 대해서 묻지 마세요."

주치의는 진정제를 투여하고는 가버렸다. 성기와 나검사는 괜히 미안해졌다. 사건을 해결하려 했던 것이 오히려 피해자의 건강을 해치는 결과만을 가져온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미희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두 사람은 병실을 나섰다.

월요일에 연락하기로 하고 나검사와 성기는 병원 정문에서 헤어졌다. 성기는 청량리로 돌아왔더니 미희와 수진이가 근처 시장에서 장을 봐왔는지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성기는 가볍게 씻고 있는데 다른 방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 나오는 것으로 보아 가게에 손님이 들어온 것 같았다. 남자들이 기를 쓰고 여자들의 구멍을 메우려는 노력은 보는 곳이든 보이지 않는 곳이든 눈물겨운 것 같았다. 물론 돈을 주고 하는 것이라 찜찜할 수는 있어도 매춘의 역사를 알기 전까지는 함부로 논하고 싶지 않은 성기였다.

고등학교 시절 역사 선생님이 매춘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고 했다. 그런 것을 제도로 막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닌 이상 흐르는 물처럼 가만히 놔두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렇지 않고 단속을 한다면 점점 더 아래로 들어가 음성적으로 변형된다고 했다.

학생이라 깨닫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말씀이 일견 맞는 것 같기도 했다. 미희와 수진이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 방으로 들어갔다. 괜히 신음 소리 듣게해서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야아, 맛있다. 너희 둘이 했어?"

"네! 오빠!"

"우리 가게해도 될 것 같은데?"

"음식점이요? 오빠가 하고 싶음 하세요. 우린 열심히 만들게요."

"농담이야. 난 아직 학교도 다녀야 하고 더군다나 군대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거든."

"천천히 해요. 오빠 덕분에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와서 좋거든요."

"그래, 다행이다. 너희 둘이 그렇게 좋아하니 나야말로 고맙지."

"오빠가 아니었음 우린 아마 창녀가 되어 인생을 포기하고 살았을 거에요."

"이젠 인생을 포기하지 말고 너희가 원하는 삶을 살아. 알았지? 천천히 생각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네, 오빠. 그런데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오빠거든요."

"뭐어?"

숟가락으로 국을 뜨다 말고 내려놓으며 성기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미희와 수진이는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말했다. 

"오빠랑 행복하게 영원히 사는 거요."

"지금도 같이 살잖아."

"그거 말고 부부처럼요!"

"뭐? 알았어. 일단 밥부터 먹자. 그리고 내일은 일요일인데 뭐 할거니?"

"없어요. 오빠가 하자는 대로 할게요."

"그래? 그럼 우리 내일 과천 가자. 말 달리는 것 보면 기분이 풀린다더라."

"누가 그래요?"

"아까 집에 들어올 때 노숙자 아저씨들이 하는 이야기 들었어."

"알았어요."

일요일 아침 정희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 탄 성기는 미희와 수진이를 뒷 좌석에 태우고 과천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경마장 마주 입장권을 주신 남승현의 딸 남승희와 만나기로 했다. 우연히도 어제 저녁에 전화가 온 것이었다.

입장권을 사고 들어가는 성기의 눈에 동물원 만큼이나 경마장도 신기했다. 처음 와 보는 곳이라 설레기도 했다. 말들이 달리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경마장을 도박으로 보는 한국민들의 탓인지 가까이 살았던 성기조차도 쉽사리 방문하지 않았었다. 과천 미술관과 동물원, 대공원은 가본 적이 있었지만 이곳은 발걸음을 옮기는 중에도 도박하지 말라던 부모님의 말씀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 성기였다.

사실 그동안 경마장은 도박이나 노름을 즐기는 이들이 찾는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만난 남승현과 남승희 부녀의 모습에서 다른 모습을 본 것이라고나 할까. 

마주는 단순한 경주마의 소유자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외국의 경우 사회적 지위가 높고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 일수록 자신이 사랑하는 말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소유의 경주마가 유명한 경주에서 우승하는 것을 명예로 여긴다는 것이다.

부쩍 많아진 사람들은 지하철 역에서 경마장 입구까지 꾸역꾸역 걸어갔다. 지나가는 도중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과 아줌마들이 예상지를 팔고 있었다. 목이 터져라 부르는 소리에 사람들은 모여들며 예상지를 사갔다.

"정석 경마 육백원! 정석 경마 육백원!"

"에이스 경마 육백원!"

경마장을 찾는 이용객들은 한탕주의에 빠져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고 했다. 경마가 시작되기 전인 11시 30분 임에도 사람들은 좋은 자리를 잡고자 일찍부터 몰려들기 시작했다.

성기는 미희와 수진이를 데리고 경마장 건물로 들어섰다. 뒤를 따라 정희가 오고 있었다. 들어가서 안내원에게 마주가 관람하는 자리를 물으니 오른쪽 구석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서 내리라는 설명을 해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내리니 항공사 승무원처럼 차려입은 젊은 아가씨들이 인사를 했다. 

"어서오세요."

성기가 나서서 남승현씨가 준 카드를 내밀었다. 그것을 본 아가씨들이 다시 한번 90도 각도로 허리를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이곳에 잘 오셨습니다. 마주님들의 편안한 관람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곳에 이름을 기재하시고 저를 따라오세요."

"네."

기입 용지에 성기는 이름을 적고 안내원이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갔다. 일행들은 성기를 따라갔다. 일반 마주들은 편안하고 널찍한 의자에 앉아 편안한 표정으로 투명한 유리로 된 곳을 응시했다. 일부는 대형 모니터를 바라보기도 했다.

마주들이 앉아 있는 곳을 지나 유리로 된 방으로 안내했다. 불투명 유리로 되어 있어 안에 누가 있는지 무얼 하는지 전혀 모를 것 같았다.

"여깁니다. 편안한 관람되세요."

"네, 고맙습니다."

안내원은 자리를 떠났고 성기와 일행은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보니 경마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앉아서 마냥 보려니 입이 심심해서 성기가 미희와 수진이에게 음료수 먹겠냐고 물었다.

"네, 전 커피요."

"저도요. 오빠."

"정희씨는?"

"제가 갖고 올게요. 여기서 기다리세요."

"아니야. 정희씨가 우릴 위해서 수고하는데, 내가 이정도는 해야지. 여기서 기다려요."

"네, 알겠습니다."

성기는 나가서 안내원에게 물어서 음료수 파는 곳이 있냐고 물었더니 건물 중앙을 가리키며 그곳에서 주문하시면 된다고 했다. 더군다나 모든 것이 무료라고 했다.

이렇게 서비스가 좋은 것이 성기는 마음에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했다. 이런 카드를 받아도 되는 것인지 머릿 속을 떠나지 않고 성기를 괴롭혔다. 그러나 그런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음료와 커피를 들고 방에서 먹는 동안 남승희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일행 한명을 데려왔는데 진아도 데려온 것이었다.

"어? 안녕! 어떻게 왔어....요?"

"내가 못 올때 온 건가? 그리고 우리 말 놓기로 했잖아. 나이도 같으면서 말이야."

성기는 머리를 끄적이며 말했다.

"여자하고 말 놓기는 처음이라서. 빨리 앉아. 반가워."

"됐네. 그때 보았던 사람들이 그대로네."

"응."

"경마장은 처음이지?"

처음이라는 말에 성기는 문득 여자의 첫경험이 떠올랐다. 생각이 점점 음탕해지는 것 같아서 성기는 내심 뜨끔했다. 자신의 생각을 들키지 않기 위해 황급히 대답했다.

"그럼. 첫경험이야."

"뭐? 첫경험?"

"너 웃긴다. 그런 표현을 쓰다니."

"엥? 미안. 미안. 나도 모르게 나온거야."

남승희가 대범하게 용서한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 그나저나 경마 베팅을 할 줄 알아?"

"뭐? 베팅? 뭔 말이야?"

"경마장에 왔으면 베팅읋 해야지."

============================ 작품 후기 ============================

노트북 고장과 월말 수금으로 바빠서 연재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매달 25일 30일 사이는 앞으로도 연재가 없습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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