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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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는 맛깔스런 김치 한 조각을 들어 입 속에 넣으려다 옆에서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고는 젖가락을 내려놓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성숙하고 예쁘장한 아줌마가 자기를 빤히 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기는 수많은 여성들과 결혼한 몸이지만 이렇게 모르는 여자가 쳐다보는 경우는 흔치않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나검사와 함께 있는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처음보는 여자가 저리 쳐다보다니, 민망함을 느끼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자신은 리처드기어처럼 잘 생긴 얼굴이 아니지 않은가. 한창 최고의 인기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는 최수종보다도 떨어지는 외모인데 라고 생각하며 성기는 입을 열었다.

"저어,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성기의 물음에 아줌마는 당황한 기색도 없이 되물었다.

"혹시 몇달 전에 군복을 입고 안양역에서 내리지 않았었나요? 출근시간대에?"

아줌마의 눈빛은 어서 맞다고 대답하라는 듯 재촉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성기는 이 아줌마가 말로만 듣던 신내린 무당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어디선가 본 듯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이런 예쁘장한 아줌마를 만난 적이 없었다. 

"네, 안양으로 가끔 가지만 기억이 전혀 없는데요."

채미연은 아쉬웠지만 더는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나검사는 신기한 듯 바라볼 뿐이었지만 뒤에서 익숙한 오빠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연아, 손님들 식사하는데 방해하지 말고 어서 일 봐야지."

"아, 알았어. 오빠. 손님들, 식사하세요."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채미연의 목소리에 성기는 저도 모르게 미안함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도 전혀 머리에 떠오르는 일들이 없었다. 좀 전까지 성기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일은 어제 폭행을 당해 응급실에 입원했던 여자애와 술집에서 싸웠던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부활과의 만남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네,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미안할 일은......( 이 나쁜 놈. 왜 날 건드려 가지고 잊지 못하게 만드는 거야.)"

채미연은 미련을 떨치려는 듯 몸을 휙 돌려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나검사는 혹시 모르는 사람이냐는 듯 눈으로 물었고 성기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부정했다. 그제야 두 사람은 상 위에 가득 올려진 만찬을 즐겼다. 식사 내내 나검사는 성기를 친동생처럼 여기며 허물없이 이야기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난 후 나오는데 구석에 숨어 성기를 훔쳐보는 채미연이 눈에 띄였지만 아는 체를 할 수가 없었다. 성기는 모른 척하며 문을 나섰다. 나검사의 차에 탑승해 청량리로 가는 도중 나검사가 요즘 애들은 정의감이 없다는 둥, 용기가 없다는 둥, 남자답지가 않다는 둥 주절거렸다.

자신 역시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검사가 된 것이었지만 틀에 박힌 조직 문화와 학연과 지연에 얽힌 선후배 구조가 그녀를 답답하게 만들곤 했다. 검사가 되기 전에는 자신의 신념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눈 앞의 현실은 꿈꾸었던 이상과 너무나도 달랐다. 외압에 의해 어렵게 잡은 피의자를 쉽게 풀어줘야 했고 가끔씩 대기업 법률팀에서 나와 법인 카드로 자신들을 접대할 때마다 괴리감을 느껴야 했다. 

검사 조직에서는 자신은 너무나도 힘이 없는 햇병아리일 뿐이었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들은 검사라고 하면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줄 알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시궁창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자신과 달리 세상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있는 성기의 모습이 마치 자신의 20대 초반을 보는 것 같아 나검사는 흐뭇했다. 비록 세상에 찌들릴지라도 20대에는 정의와 이성이 바로 서야하는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검사님. 다 왔어요. 이쪽 골목으로 들어가시면 되요."

어느덧 차는 청량리 588 골목에 진입하고 있었다. 우회전을 하자 유리창문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가게가 빼곡히 양쪽으로 들어서 있었다. 이런 가게 형태는 처음 접하는 나검사였다. 

"여기가 어디야? 왜 다들 유리로 되어있지?"

"나검사님, 여기가 그 유명한 청량리 588이에요. 창녀촌이요."

"어머? 정말이야?"

나검사는 깜짝 놀랐지만 성기앞에서 더는 내색할 수 없었다. 말을 하면 할 수록 민망한 사안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성기에게 이런 곳으로 왜 왔냐고 따질 수도 없는 것이 자신이 나서서 데려다 준다고 했기에 말이다.

"여자들은 이곳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더라고요. 나검사님도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여자들 덕분에 성범죄가 많이 줄어든다고 봐요. 졸업한 선배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돈 있는 사람들은 룸살롱이나 안마를 가지마 돈이 없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은 어디 가서 그 욕구를 해결하겠어요."

성기의 말에 나검사는 한편으로는 세상을 넓게 보는 성기의 시선이 고맙기도 하면서도 여자의 본능이 사창가를 정당화하는 말에 반감을 갖게 만들기도 했다. 

"네 말은 맞는 것 같기도 하면서 또 틀리기도 해. 그것은 남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문제지. 그리고 나이도 어린 녀석이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말해. 맞을래?"

"미안해요. 나검사님. 저기 앞에서 저는 내릴게요."

차는 계속 직진해 골목 끄트머리에 닿았다. 그곳에서 양갈래로 길이 나뉘는데 왼쪽 골목이 청량리역과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최일도 목사가 부인과 나와서 큰 솥에 밥과 라면을 꾾이고 있었다.

노숙자들은 빈 그릇을 들고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그 모습에 흥미를 느낀 나검사의 질문에 성기는 공손히 대답했다. 아무리 친해졌다고 오늘 처음 본 검사에게 누나라고 할 수 없었다. 인간 관계는 나름의 룰이 있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깨닫는 성기였다.

성기의 말에 나검사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검사에게도 최일도 목사처럼 행하는 목회자는 극히 드문 모습이라고 여겼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따라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갔다가 그 규모와 신도수에 입을 떠억 벌린 적이 있는 나검사였다. 예수님과 하느님이 교회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중요한 것이라 설파했지만 유독 한국의 땅덩어리는 미국의 한 주만도 못한 크기에 교회의 대형화해 앞장 서고 있으니 모순이라 생각했었다.

그런 대형 교회들이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위해 실천한 일이 극히 드물었다. 도리어 자신의 밥그릇 챙기기에 앞장 서고 있으니 일반 국민들에게 목회자란 사람들은 그렇게 좋은 이미지로 비추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툭하면 사람 많은 곳이 아니라 지하철이나 버스에 올라타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쳐대니 더 짜증이 묻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최일도 목사의 행동을 보게 된 나검사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마치 최일도 목사의 그 모습은 진흙 속에서 핀 연꽃같기도 했다. 생각에 잠긴 그녀의 어깨를 성기가 잠시 툭툭 건들며 말했다.

"검사님! 검사님! 저는 여기서 내릴게요."

"어, 그래? 내가 잠시 생각하느라. 폭행사건 처리하다 문제 있으면 연락할게."

"네, 알겠습니다."

"그래, 다음에 봐."

"조심히 가세요."

차는 부릉 소리와 함께 골목을 빠져나갔고 성기는 미희와 수진이 있는 사창가 가게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쪽으로 들어서니 미희와 수진이 기다렸다는 듯이 뛰쳐나와 성기의 품에 안겼다.

"오빠, 왜 이제와요? 걱정했어요."

"미안. 미안. 일이 생겨서."

"오빠 다른 일은 없는거죠?"

"없었어."

"근데 오빠 없는 동안에 서울대병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어제 입원시킨 그 환자가 깨어났다고 하던데."

"그래? 빨리 가봐야지."

뒤에서 편한 사복으로 입은 박정희가 성기를 보고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이제 오세요."

"빨리 서울대병원으로 가보자고. 어제 길에서 발견했던 그 여자애가 깨어났데."

============================ 작품 후기 ============================

***** 연재가 늦어진 점 (__) 머리 조아려 사죄합니다.

노트북 고장으로 올리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급히 USB로 피시방에서 올렸습니다.

3인방 폭행범들을 혼내주겠습니다. 잔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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