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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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어머. 그런 일이 있었어요?"

"네! 사모님."

"그렇게 착한 일을 한 학생인데 상을 주지는 못할 망정 경찰서에 갇혀 있다니......"

"이만 끊겠습니다. 사모님."

"네, 알겠어요."

온화한 얼굴의 중년 여성의 얼굴에 가득 안타까움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남편에게 말을 할까 생각했지만 벌써 출근한 뒤여서 이런 것은 딸에게 말을 하는 게 나을 듯 싶었다.

2층으로 올라가 딸의 방을 벌컥 열어 제쳤다. 어제부터 연차인 관계로 집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 과년한 딸내미 나검사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아무리 혼자 잔다고 하지만 팬티차림에 올라간 하얀 면티로 인해 풍만한 젖가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누가 데려갈 지 걱정이 앞서는 김여사였다. 침대에 걸터 앉아 딸을 깨웠다.

"애, 일어나봐! 어서!"

"아응...왜? 엄마, 나 더 잘거란 말이야."

"지난 번에 그 도둑을 잡았던 학생있잖아."

"으응....유영철을 잡았던 학생이 있었지."

눈을 감은 채 나검사는 엄마 무릎에 얼굴을 묻고 되뇌였다.

"그 학생이 어제 주점에서 여자를 희롱하던 녀석들하고 시비가 붙어 경찰서에 있다는구나. 네가 일어나서 그 학생을 꺼내줘."

"아잉. 더 자고."

"빨리 일어나. 우리를 도와 준 학생인데. 그리고 여학생을 희롱한 놈들은 풀려났다는 거야. 가서 네가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고 와라."

그 말에 나검사는 벌떡 일어났다.

"정말?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지?"

"이것아. 네가 검사인 줄은 알지만 아직까지 우리 나라 법이 귀에 걸면 귀고리고 코에 걸면 코걸이야. 빨리 일어나서 씻고 나갈 준비해."

"어디에 있다는데?"

"혜화지구대에 있데. 빨리 씻어. 엄마가 그때 놀란 것을 생각하면 그 학생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알았어. 엄마. 근데 밥은?"

"밥 한끼 굶는다고 죽는 사람 못 봤다. 그 학생도 어제 종일 있었다고 하니 네가 꺼내주고 밥 사주면서 같이 먹으면 되잖니."

"아, 알았어. 엄마."

혜화지구대에 도착한 나검사는 검은 색 구두에 검은 색 스커트와 하얀 블라우스에 스카프를 맨 세련된 차림이었다. 설렁탕을 먹으며 깍두기를 먹던 지구대 안의 사람들은 세련된 여자의 출연에 화들짝 놀랐다. 성기와 김태원도 놀랐지만 아는 사람이 아니어서 고개를 쳐박고 설렁탕을 먹었다.

"여기 파출소장님이 누구죠?"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그 질문에 나검사는 조용히 신분증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검사란 글에 놀란 신순경과 신참 박순경은 자세를 바짝 곧추 세웠다.

"여기 천성기란 학생 있나요?"

"누구요?"

신순경은 입 안에 남아 있는 밥을 꿀꺽 삼키는 중이어서 되물었다. 이런 조그만 지구대에 검사가 나타나는 경우는 낙타가 바늘을 통과하는 것만큼 드문 경우였다.

"천성기요."

한쪽 책상에 빙 둘러앉아 먹던 성기가 일어났다. 입 안에 씹고 있던 깍두기를 아작아자 씹으며 말했다.

"전데요."

얼굴에 약간의 핏자국이 묻어 있고 옷도 너저분한 것이 싸우고 이곳에서 밤을 새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더우기 머리는 한쪽이 눌려 있었고 세수는 하지 못했는지 지저분했다.

나검사는 성기의 지저분함에 얼굴을 찌푸렸다. 성기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한 순경에게 화가 난 것이었다. 게다가 같은 폭행 사건으로 들어왔던 녀석들은 풀려난 것이 그녀를 분노의 중심으로 밀어 넣었다.

"마저 식사하고 애기는 그 후에 해요."

다시 나검사는 신순경에게 날카롭게 말했다.

"아니 이 사람들을 왜 여기에 가두었죠? 그리고 어제 사건 일지 갖고 와 봐요."

"네, 저는 오늘 아침에 교대를 해서 잘 모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조서와 사건 일지가 여기 있습니다."

"그래요?"

사건 일지와 조서를 보던 나검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부분 술집에서 일어난 폭행 사건은 쌍방 폭행이었다. 하지만 여기 서류를 보면 성기쪽 일행이 일방적으로 폭행을 휘두른 것으로 적혀 있었다. 더군다나 성기쪽 진술은 아예 기재되어 있지도 않았다.

"지금 바로 연락해서 어제 조서를 작성했던 순경 불러들이세요. 빨리요. 그리고 여기 파출소장도 불러 들이고. 국민의 지팡이가 해야 할 일은 안하고 엉뚱한 사람들을 피해자로 몰다니. 참 내....."

신순경은 나검사의 지시에 당황했지만 침착하려고 애를 썼다. 파출소장은 짜증이 묻어난 소리로 대꾸하고 있었다. 쉬고 있는데 왜 전화하냐는 반응이었고 이순경은 자고 있는데 왜 호출이냐며 따지고 들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그제야 끽 소리도 하지 않은 채 바로 오겠다는 말을 했다. 나검사에게 신순경은 둘은 곧 도착할 것이라는 보고를 했다. 나검사가 안경 테를 올리며 붉은 입술을 나불거렸다.

"어제 그 술집에 연락해서 배일도 일행에게 성추행을 당한 여학생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배일도 일행들 다시 불러들이세요. 사고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고 말이죠."

"이곳으로 말입니까?"

"아니요. 중부지검으로 내일 오전 10시까지 나오라고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검사는 성기가 다 먹자 지체없이 불렀다. 그렇게 잘 생기지도 않았고 힘도 세게 보이지 않은데 의협심이 남다르다니 자신보다 어렸지만 성기가 예사 남자들과 다르게 느껴졌다.

"조서는 바로 작성할 겁니다. 신순경님."

"네, 검사님."

"이분들 조서 빨리 작성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네 명의 조서를 꾸미는데 4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작성이 끝나자 마자 공교롭게도 파출소장과 이순경이 도착했다. 성기와 김태원 일행을 벤치에 앉아 있으라고 말한 뒤에 나검사는 파출소장과 이순경을 면담했다.

여자 특유의 고성이 오가며 마치 자신의 신념을 위협하는 적들에게 퍼붓는 정의의 기사마냥 나검사는 신나게 꾸짖었다. 파출소장과 이순경은 고개를 푹 숙이고 신랄한 말을 듣기만 했다.

나검사는 끝으로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형평성을 무시한다면 어느 누가 경찰을 신뢰하냐며 따끔하게 쏘아붙였다. 나검사는 성기와 김태원 일행을 이끌고 파출소 문을 나섰다. 

"검사님이 이렇게 멋지시다니."

"아닙니다. 저도 부활을 좋아한 팬인데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나검사가 공손히 말을 하자 김태원은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팬이라니 제가 더 고맙죠. 그나저나 일단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진단서도 발급받아야 하고요."

"진단서까지요?"

"네. 그래야 저쪽에서 진단서를 끊어 고소했을 경우 당하지 않는 거에요."

"아.......음악만 해서 몰랐던 것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검사님."

"가까운데 가서 치료받고 나오시죠. 여기 서울대병원 가죠."

그렇게 해서 일행 모두는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향했다. 기다리는 동안 성기는 청량리로 전화를 걸어 미희와 수진이와 통화를 했다.

"오빠. 어디에요?"

"오빠. 우리가 갈게요."

"아니야. 이따 갈테니깐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네. 근데 오빠! 진짜 아무일 없는 거죠?"

"없어. 기다리고 있어."

"네. 오빠."

통화를 마치고 수화기를 내려 놓은 성기는 좁은 복도를 지나가다 구부러진 복도에서 갑자기 나타난 카트와 부딪치며 넘어졌다. 간호사는 황급히 카트를 한켠으로 세우고 쓰러진 성기를 일으켜 세웠다.

"아아!"

"미안해요."

성기는 아픔을 애써 참았다. 정강이에 부딪치는 바람에 엄청 아팠지만 미안하다는 간호사에게 인상을 쓸 수는 없었다. 얼굴을 보니 웬지 낯이 익었다.

"아, 그때 입원했던 환자분 맞죠?"

"아, 그 간호사님."

퇴원 무렵에 성기에게 주사를 놔주던 간호사가 바로 눈 앞의 간호사였다. 그때 성기의 몽둥이가 발기하는 바람에 엉큼하다고 살짝 꼬집고 얼굴을 붉히기까지 했었다.

"더 예뻐졌는데요. 간호사님. 몰라 보겠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았네요. 놀리실 거에요?"

순간 성기의 코에서 붉은 피가 똑똑 떨어졌다. 눈 앞에서 보고 있던 간호사가 자기도 모르게 손을 갖다대며 말했다.

"어머, 어머. 피가 나와요."

"어? 정말요?"

코에서 나온 피가 간호사의 손가락에 묻어있었다. 

"빨리 고개를 뒤로 젖혀요."

그러더니 카트에서 솜을 꺼내 돌돌 말더니 성기의 콧구멍에 쑤셔넣었다. 

"어젯밤에 뭘 했길래 코피를 쏟아요?"

"뭘 했겠어요? 젊은 남자가."

그 말에 순진한 간호사는 또 다시 얼굴을 붉혔다. 젊은 남자가 밤새 코피를 쏟는다는 것은 대부분 여자와 밤새 운동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던 시대였다.

============================ 작품 후기 ============================

***** 다음 편은 상당히 강도가 세게 나갑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올리는 므훗한 씬이라 색다르게 표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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