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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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일도에게 있어서 공중화장실 문같은 출입구와 퀴퀴한 막걸리 냄새 그리고 100촉짜리 백열등이 바람에 흔들리며 출입구 앞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을 뿐인 이곳은 낯설었다. 경상도에서 말만하면 다 아는 큰 병원을 소유한 집안의 아들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화려하고 세련된 분위기에서 술을 마셨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퀴퀴한 막걸리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확 트인 시야로 60∼70명의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배일도는 동기들에게 말했다.

"말만으로도 고맙다. 내가 바빠서 공부할 시간이 없었는데 너희들이 이렇게 도와주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

"일도야! 우린 동기잖니."

의대 본과 4학년이 되면 내년 2월에 치뤄질 국가고시에 대비해 자료나 기출문제를 공부했다. 배일도는 한상득과 박흥식을 대신해 다른 친구들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여름 방학 내내 놀았으니 슬슬 국시 준비를 해야했다. 

의대 본과 3, 4 학년생들도 의사국시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학원에 다녔다. 의사국시 시험과 의대 학점이 인턴 선발의 60%를 차지하기 때문에 점점 사교육이 성행하는 추세였다. 

오늘 만난 과 친구들 가운데 몇몇은 사립학원에 다녀 그 자료를 배일도가 부탁한 것이다. 자료를 구해줬으니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해주어야 하는데 그 댓가란 것이 술을 쏘는 것이었다. 그것도 여자가 있는 술집으로 가기로 했는데 주점에 있으니 배일도는 어리둥절했다.

"그래, 좋은 곳으로 정하지, 주점이 뭐냐?"

"어때서? 우리같은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학생일 때는 학생답게 먹어야지."

한 친구의 말에 빈정 상한 배일도는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넌 이따가 룸살롱 안갈거야?"

"아니. 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새끼는 쪼잔하게. 자자, 막걸리 한잔 받아."

"나 양주나 맥주 아니면 안 먹는 거 알면서."

그러자 막걸리 잔을 든 안경 쓴 남학생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먹어. 사과하는 의미로다 내가 따랐잖아."

곁에 있던 동기들도 거들었다.

"야야, 영관이가 미안하다고 주잖아. 받아라!"

"그래, 좀 받아."

배일도는 마지못해 막걸리 사발을 받아들었다.

"새끼들이 막걸리를 왜 먹는지 모르겠다."

"자, 다 같이 건배하자."

"국시를 위하여!"

"국시를 위하여!"

그때 긴머리를 휘날이며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들어섰다. 뒤를 이어 꽁지머리를 한 남자 네명이 들어섰다. 빈자리를 찾던 그들 앞에 여종업원이 나타났다.

"어서 오세요."

"자리 있어요?"

"자리가 중앙 밖에 없어요.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아요."

"저기 중앙 옆에 빈테이블 입니다."

성기가 앉은 테이블 옆 테이블에 긴머리를 한 남자와 그 일행이 빙 둘러앉았다. 그들의 얼굴은 좀 전과는 달리 매우 침통한 표정이었다.

"재기가 그렇게 갈 줄은 몰랐어."

"형 잘못이 아니잖아."

"내가 그때 자고 가라고 했었어도......."

그 순간 여종업원이 낡고 때가 덕지덕지 묻은 메뉴판을 들고 다가왔다. 이쁘장한 얼굴에 직업적으로 띤 미소인지 구분을 하지 못할 정도로 그 미소가 날씬한 몸매와 어울렸다.

"주문은 어떤 것으로 하실 건가요?"

"막걸리하고 소주 그리고 파전 두개 줘요."

"네, 알겠습니다."

"술 먼저 줘요."

"네!"

그들과 성기가 앉은 테이블은 무척이나 가까웠다. 정확히 말해서 배일도가 앉은 테이블과 성기가 앉은 테이블 중간이 그들 자리였다. 꽁지머리를 한 남자가 여종업원이 놓고 간 술을 잔에 따르고 돌렸다.

"태원이 형! 마셔. 마시자고."

"그래, 형! 마시조 잊자."

"어떻게 잊냐. 이번 음반이 잘 되서 같이 떠야했는데..... 그래야 같이 공연도 할 것 아니니."

베이스를 맡고 있는 꽁지머리 정준교가 침통한 표정의 김태원의 손에 잔을 쥐어주었다. 드럼의 김성태는 속상한 지 이미 술을 들이키는 중이었다.

"카아, 죽이네. 역시 술밖에 없어. 형도 빨리 마셔."

그렇게 해서 그들은 소주 한병을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비워버렸다. 대부분 주점에서 먹으면 옆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어쩔 수 없이 들렸다. 본의 아니게 듣게된 성기의 귀에 태원이 형이란 단어가 걸렸다. 

고등학교 시절 한창 라디오와 시름하며 부활의 희야와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좋아했던 성기였다. 특히 이승철이 부르는 그 애절하면서도 남자가 부르기 힘든 고음이 미치도록 따라부르고 싶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성기였다. 

성기는 술잔을 내려놓고 그들을 주시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미희와 수진이가 파전을 찢어 입에 넣어주며 재잘거렸다.

"오빠 왜? 아는 사람들이야?"

"오빠 아 해봐! 술만 마시지 말고 안주도 좀 먹어. 그러다 속 버려."

"아, 알았어. 모르는 사람들인데 혹시 부활의 김태원씨가 아닌가 해서......."

"정말? 나 부활 좋아했었는데. 이승철 오빠가 떠나면서 나도 관심껐어."

"나도 오빠."

"들리게 애기 하지마. 쉿! 조용히 해."

"알았어요. 오빠."

미희와 수진은 성기의 말에 입을 다물고 조용히 옆에 앉은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운동을 한 그녀들도 그들의 외모를 보고는 단박에 음악을 하는 사람들임을 직감했다. 

꽁지머리 정준교는 김태원의 슬퍼하는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일부러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래야 김재기를 떠나 보낸 슬픔에서 김태원이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김성태도 정준교와 같은 마음이었다. 

"형! 마시자고. 대한 민국의 모든 술을 우리가 마시자고."

"그래요. 형! 그리고 이따 김재기 동생이 온다고 했어."

"그래? 왜?"

"왜긴. 동생도 음악한다고 하던데. 형이 들어보고 판단해."

"알았어. 여기서 만나기로 했니?"

김태원은 눈을 반짝였다. 김재기의 재능은 젊은 나이에 죽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다행이 동생도 음악을 한다니 그 음색이 비슷할 거라고 여겨졌다. 

"응, 형. 이 근처 라이브카페에서 아르바이트 한다고 하던데."

배일도는 조용히 술만 마시다 가려다 여자처럼 머리 기른 놈들이 들어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대한 민국에 저런 놈들이 생기니 자꾸 사회에 불만을 늘어놓는 놈들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병원을 운영하는 아버지도 가끔 사회에 소외된 자들은 사회 적응에 실패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시곤 했다. 그런 자들이 꼭 노숙자가 되고 범죄자가 된다는 것이 아버지의 지론이었다.

지금 옆에 앉은 놈들을 보니 완전 사회 부적응자였다. 오만가지 인상을 쓰며 바라보는 배일도였다. 그 순간 여종업원이 양 손에 안주를 들고 다가왔다. 안주를 놓기 위해서는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 작은 공간에 들어가야했다.

파전을 내려놓기 위해 허리를 숙인 여종업원의 터질듯한 엉덩이가 배일도의 눈을 자극했다. 곡선이 완만하게 휜 엉덩이가 마치 청바지가 없는 듯 나체로 보이기 시작했다. 술이 올라온 배일도의 눈에 여종업원의 엉덩이는 어서 만져달라고 시위하는 것 같았다.

배일도의 손이 스르륵 움직이며 여종업원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위 아래로 꽉꽉 세차게 문질렀다.

"캬아악! 뭐하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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