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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희의 은밀한 곳을 입술과 혀로 음미하던 한상득의 귀에 땅을 울리는 진동음이 잡혔다. 한상득의 미간이 좁혀졌다. 꽃잎을 핥던 입술을 떼고 귀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급히 박흥식과 배일도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러자 둘도 하던 행위를 멈추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리더니 전종등 불빛이 보였다. 한상득은 둘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박흥식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미희의 입에 다시 재갈을 물리고 테이프로 칭칭 감았다.
배일도와 박흥식은 미희를 잡고 일으켰다. 그리고는 비탈진 경사로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둡고 경사진데다 비까지 오는 바람에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아우디에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그래야 도망을 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미희는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경사진 곳에서 버둥거리자 뒤에 따르던 한상득이 미희의 발에 걸리며 뒤로 미끄러졌다. 팔을 잡고 있던 박흥식이 그것을 보자 마자 미희의 엉덩이와 옆구리를 마구 가격했다. 남자의 억센 힘에 눌려 반항하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얻어 맞은 미희는 축 늘어졌다.
마치 한창 뛰어놀던 아이가 길바닥에 철퍼덕 엎어져 일어날 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박흥식은 분이 풀리지 않는지 고통이 가득한 미희의 얼굴에 사정없이 주먹질을 했다.
"으으.......읍......."
재갈이 물려 있어 비명조차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는 연약한 미희에게 박흥식은 자비를 모르는 사람처럼 대했다. 눈은 찢어지고 코뼈는 부러졌는지 퉁퉁 부어 올랐다. 입술도 터져 핏물이 턱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배일도가 말렸으면 더는 폭력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배일도 역시 머리칼을 잡아채고 젖가슴을 꼬집고 비틀었다. 미희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에 끝내 정신을 놓아버렸다. 이대로 통증을 견디느니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만! 미쳤어?"
한상득이 다가와 나직히 말했다. 그 순간 도로에서 차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났다. 곧바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없어요?"
한상득은 축 늘어진 미희를 뒤에서 받쳐들었다. 두 명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위까지 끌고 가서 저 놈들에게 이년을 던져주고 도망가자."
"그 방법이 통할까?"
"잡히지만 않으면 돼! 나중에 저 놈들에게 덮어 씌우면 되지."
"괜찮겠지. 하긴 이년도 우리 얼굴을 정확히 보지는 못했겠지."
"좋아. 빨리 실행하자."
둘은 미희를 끌고 한 명은 뒤에서 받쳐주었다. 그렇게 해서 도로 가장자리에 올라 선 그들 눈에 랜턴을 들고 이리저리 비추는 사내 두 명이 보였다. 자전거 주위에 선 두 명은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허리를 낮추고 있었다. 이어 두 명의 사내에게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학생?"
"학생?"
"학생 어딨어?"
한상득을 비롯한 세 명은 두 명의 사내에게 소리없이 다가갔다. 전조등 불빛은 앞만 비추고 있어서 아우디 뒷면을 환하게 만들고 있었다. 만약 아우디 바로 서지 않았다면 뒷 좌석에 타고 있던 미희와 수진이가 세 괴한을 발견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들에게 다가선 세 남자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어둠 속에 서 있는 두 남자에게 미희를 던져버렸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덮쳐드는 물건에 깜짝 놀란 성기와 정희는 뒤로 물러났다. 정희는 무사한 반면 성기는 그렇지 못했다. 자건거 바퀴에 걸리며 성기는 넘어졌고 그 위로 길다랗고 하얀 뭉치가 달려들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성기는 뒤로 벗어나려 했지만 품안에 안긴 것이 사람인 것을 깨닫는 순간 조용히 안아들었다. 정희의 귀에 남자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랜턴을 들고 그들을 비추었더니 이미 아우디에 올라탔는지 벌써 시동이 걸리는 중이었다. 정희는 전력질주로 따라가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이미 아우디 차량은 전속력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성기가 걱정되어 급히 되돌아온 정희도 눈 앞의 장면에 화들짝 놀랐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가 성기 위에 엎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기는 두 팔로 안긴 그녀를 조용히 더듬어 보니 몸에 아무것도 없는 맨 살이었다. 정희가 다가와 얼굴을 비추어보니 심하게 망가져 있었다. 곳곳에 찢어진 상처와 맞아서 부어오른 코와 광대뼈, 입가도 심하게 찢어져 부어있었다.
성기의 손에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 감지되지 않았다면 까딱없이 죽어있는 시체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 성기는 그녀를 껴안고 조용히 가슴에 귀를 귀울였다. 심장 박동 소리가 성기의 귀에 들려왔다. 나는 살고싶다라는 소리를 박동 소리가 대신 하는 것 같았다.
좀전에 아우디를 타고 있던 놈들이 품에 안긴 여자를 범하다 마구 폭행한 듯 싶었다. 개새끼들! 여자를 그리 폭행하다니, 성기는 속으로 마구 욕해주었다.
성기는 그녀를 안고 부드럽게 일어섰다. 안긴 그녀는 생각보다 커서 성기도 부담스러웠다. 박정희에게 어서 운전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알았어요. 빨리 타세요."
르망 레이서는 뒷문이 없어 앞좌석에 성기가 안고 타야했다. 뒷 좌석에 있던 미희와 수진이는 성기의 품에 안긴 여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영화에서나 보던 괴기스런 피해자의 한 장면이었다고나 할까. 미희 여동생도 화성 연쇄 살인범에 당했지만 직접 보지는 않았다.
아버지와 삼촌들이 죽은 여동생의 시신이 너무나도 끔찍했기에 가족들에게 공개하지를 않았다. 후에 경찰 조사를 통해서 알게 되었지만 미희는 무척이나 분개하고 소스라쳤던 사실이 있었다.
여동생의 음부에 도시락을 먹을 때 쓰던 숟가락과 반찬들이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생명의 신비를 품고 있는 여성의 생식기를 그렇게 하고 싶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미희였다.
그런 미희에게 지금 끔찍한 폭행을 당해서 정신을 놓고 있는 여자가 남일 같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죽은 자신의 여동생 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정희는 생명이 경각에 달했음을 알고 마구 엑셀을 밟았다. 성기는 자리가 비좁은 것을 애써 참았다. 자신보다는 혼절한 여자의 안위가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진아가 알려준대로 가다가 내부순환로를 타고 청량리로 향했다. 그리고는 도로에 잠시 차을 세워 둔 다음 사람들에게 물었다. 서울대병원 방향을 친절히 알려주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혜화동에 진입한 차는 막히는 차안에서 성기는 무지 조바심을 느꼈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도로 체증으로 인해 죽게 방치하는 것은 정말이지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말리아에서의 경험은 삶은 무척이나 소중하다는 것이었다.
신분의 차이를 넘어, 남녀의 차이를 떠나 생명은 가치를 논할 수 없는 존재이자 절대적인 것이란 사실을 깨달은 성기였다.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아프고 총맞아 죽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뒤에 있던 수진이가 자신의 쇼핑백에서 새옷을 건넸다.
"오빠, 이걸로 가리고 병원에 들어가요."
"알았어. 고마워."
"아냐, 오빠. 제발 살아 있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