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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의 궁극의 의도는 자신의 비자금을 합법화하려는 목적과 야당의 정치자금을 감시하려는 의도가 깔린 고도의 정치적 술수였다. 김대중을 비롯한 야당 인사들은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금융실명제에 속수무책이었다.
속보로 이 사실을 접한 야권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환호속에 반대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90%를 육박하는 김영삼 대통령의 인기는 무엇을 하든 박수를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반대를 하는 것은 불난 집에 기름을 들고 뛰어드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마치 길거리 퍽치기한테 뒤통수를 후려맞은 상황은 야권 인사들 말고도 민자당의 지지세력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일보 사장 방씨 일가도 강하게 편집장을 불러서 기사 논고를 반대하는 방향으로 잡으라는 훈계를 들어야했다.
"누구 때문에 대통령이 됐는데, 이런 식으로 배신을 해?"
"야권에서 굴러먹던 사람을 살려주니 말이야."
"내가 뭐라고 했나. 조심하라고 했잖아."
조선일보 방사장과 정치권의 모 인사는 금융실명제 발표를 듣자 마자 전화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성기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뒤져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이 놈의 술이 원수라고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쫓겨난 상황에서 속상해서 먹었던 술이 이런 사태를 불러 일으킨 것이다.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하자고 하면 미희와 수진이가 무척이나 실망할 것이다.
300명이 넘는 여자가 있는데 거기에 2명 추가한다고 달라질 것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무슨 의자왕도 아니고서야 이렇게 여자들이 죽기살기로 매달리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솔직히 부담스럽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이 아니면 죽겠다는데 어느 남자가 매몰차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자신으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그 상황에서 도저희 성기는 없던 일로 하자고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담배 연기를 비가 내리는 창밖으로 내뿜었다. 하얀 연기가 빗물 속에서 가라앉으며 퍼져나갔다.
미희와 수진은 가게 여자들이 공동으로 쓰는 욕실로 들어갔다. 미희와 수진은 비누를 집어 수건에 꼼꼼히 문질러서 거품을 내고는 온몸 구석구석을 닦아냈다. 여고 배구선수 출신이어서 그런지 둘은 어지간한 남자들보다 키가 컸다. 둘은 186cm로 똑같았고 젖가슴도 운동선수들 답지않게 풍만했다.
그런 연유로 둘이 시합에 나갈 때마다 관중석에 앉은 남자들은 환호를 질렀다. 그것은 방송국 관계자들과 신문사 기자들도 다를 바가 없었다. 둘은 그것으로 인해 위축되었고 선배들은 은근히 질투를 했다. 실력으로 겨뤄야지 외모와 몸매로 인기를 끌려고 하면 되겠냐며 선배들에게 둘은 무수히 혼이 났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둘은 아마 계속 배구를 했다면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에 한국대표로도 뽑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을 해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꿈이 되어버렸다. 운동 선수가 그것도 구기종목 선수가 2년 이상을 쉰다는 것은 은퇴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성기의 입이 닿았던 젖가슴과 꼭지를 중점적으로 닦았다. 성기가 애무한 것이 왜 이리도 흥분이 되는지 둘은 그 이유를 몰랐다. 다만 자신들의 경험 부족을 탓하며 비누 거품을 냈다. 마치 비누 거품으로 성기의 입술을 대신하려는 듯 새하얀 피부가 발갛게 변할 때까지 박박 문질렀다.
그리고는 서로의 등에 비누 거품을 내며 닦았다. 목욕을 하고 나니 목이 말랐다. 수분이 모잘라 생기는 갈증이 아닌 성기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심한 갈증에 둘은 당황했다. 어제 처음 본 남자인데 왜 이리 기대는 것일까.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같이 느껴졌고 헤어졌던 연인을 다시 만난 기분이 들었다.
그런 생소한 기분에 둘은 당혹스러워하며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거울에 비친 둘의 몸에 물기는 하나도 없었고 성기의 잇자국이 선명히 남은 꼭지가 젖가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검은 수풀은 무성하게 우거져 건강한 여성임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둘은 밖에서 다른 여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서둘러 옷을 챙겨입었다. 그리고는 가게 주인인 아줌마를 만나 말을 들어야 했다. 오늘부터 그 학생과 같이 지내고 일주일간 머물 숙소로 제공하겠다고 했으니 그곳에서 당분간 같이 살다 나가라고 말이다.
둘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아줌마에게 연신 고맙다고 했다. 아줌마는 자신보다는 그 학생한테 고마워하라고 손을 내저었다. 학생이 거금 6000만원을 해준다고 했으니 자신은 그것을 받기로 했을 뿐이라고 말이다.
미희와 수진은 서둘러 성기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성기가 옷을 챙겨 입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뒤로 정장 입은 사내가 보였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둘의 눈에는 성기만 보일 뿐이었다. 성기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있는 것이 둘의 마음을 짓눌렀다.
혹시 자신들로 인해 저렇게 걱정하는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미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오빠! 어제 일이 후회되세요?"
"아니야!"
"오빠 얼굴이 당장 죽을 사람같은 표정이에요."
"아니야. 배가 고파서 그래. 오빠는 배고픈 것을 참지 못하거든."
성기는 그렇다고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디서 그런 둘러대는 말솜씨가 늘었는지 말하는 성기 자신도 놀랐다. 저렇게 예쁘고 참한 애가 병원비 때문에 창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수중에 돈이 없었다. 도나까와가 있었지만 그에게 더는 신세 지고 싶지 않은 것이 성기의 마음이었다.
소말리아에서 자바리가 남긴 돈이 있었지만 그것은 .CIA의 여자들이 들어올 때 수중에 지닐 수 있는 돈이었다.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아니었기에 성기는 더욱 속이 타들어갔다. 일주일 안으로 6000만원을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순간 성기의 머릿 속에 소말리아 파병 월급이 떠올랐다. 동료들이 찾아서 도박으로 날릴 때도 성기는 고스란히 묵혀두어 돈이 꽤 되었다. 밥을 먹고 은행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성기는 둘에게 물었다.
"밥이나 먹으러 나가자."
"나 할 줄 아는데."
"여기서 가능해?"
"그럼요. 오빠. 다른 아가씨들도 여기서 밥해먹고 그래요."
"반찬은 있냐?"
"김치만 있는데, 우리가 곧 만들어 줄게요. 오빠, 우리가 합숙하면서 우리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거든요. 게다가 가족들 돌보는 바람에 음식을 만들어봐서 곧잘 해요."
"오호, 그래? 맛 없으면 나 화낸다."
"음식 솜씨로 따지면 우리 아빠가 나보고 일등 신부감이랬어. 오빠는.....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말하면서 미희와 수진은 아버지 생각이 났는지 눈가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곧 이어 맑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성기는 둘에게 다가가 껴안고 등을 쓰다듬었다.
"알았어. 나도 너희가 만들어 준 음식 먹고 싶어. 울지 마! 뚝!"
"알았어요. 오빠!"
눈물을 손등으로 닦고는 둘은 방을 나갔다. 나가는 뒷 모습에서 성기의 강한 욕망이 일깨워졌다. 탱탱한 엉덩이와 짧은 치마를 입어 뽀얀 허벅지가 적나라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성기는 급히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계란 말이와 계란 찜, 계란 국에 김치가 놓인 상을 들고 미희와 수진이가 들어왔다. 일단은 보기가 좋게 만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먹음직했다. 하지만 둘이 짧은 치마를 입어선지 안쪽의 팬티가 언뜻언뜻 비쳐 건강한 성기의 욕구를 자극했다.
"반찬이 없어서 그런대로 만들었어요. 드세요. 오빠!"
"알았어. 그런데 너희들 말이야. 다른 옷 없니?"
"없어요. 다른 옷을 집에서 가져오지 못했어요."
"그래, 밥 먹고 옷이나 사러가자. 이제 이런 일 안할 건데 그렇게 속살을 드러내놓고 살 수는 없지."
"고마워요. 오빠!"
식사는 미희와 수진의 말대로 진짜 맛있었다. 오죽하면 경호원인 박정희도 엄지 손가락을 들었을까. 식사를 마치고 넷은 우산을 챙겨들고 동대문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그곳에서 둘에게 어울릴만한 청바지와 면티를 여러 벌을 샀다. 그리고 신발도 사주는데 사이즈가 여자치고는 커서 한참을 돌아다녀야 했다.
처음 이곳에 온 박정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신없이 구경했다. 성기를 따라다니면서도 신기한 것을 처음 보는 애들마냥 신나했다. 같이 다니면서 수 많은 남자들이 미희와 수진을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훤칠한 키에 한국 여자치고는 보기힘든 풍만한 젖가슴이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성기를 향해 수군거렸다. 남자 새끼가 돈이 많다느니, 키가 작아서 물건도 작을 거라는 둥 질투와 시기어린 말이 솟구쳤다.
승희는 여고 동창생인 이진아를 오랜만에 만났다. 승희는 어제 귀국하자마자 아주대 의대생인 이진아와 통화를 했다. 원래는 청량리 미도파점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승희가 극구 우겨 동대문시장에서 보기로 한 것이다. 백화점은 하도 많이 다녀서 이제는 식상하다는 말에 이진아는 그러자고 했다.
졸업한 후 처음 만나는 날에 비가 이렇게 주륵주륵 내리다니 웬지 모를 칙칙한 기분에 이진아는 외출하는 것이 내키지가 않았다. 가끔 이런 날이면 버스에서 구해준 그 까까머리 방위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지만 대학교에서 부딪친 음산한 아저씨때문에 관심이 생겼다.
만약 자신을 추종하는 남자들 가운데 이진아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서줄 사람이 있는가라고 혼자 있을 때마다 가끔 반문해보았다. 그때마다 고개가 절로 좌우로 흔들어졌다. 그렇게 생각이 들 때마다 버스에서 깡패들과 맞선 그 까까머리가 떠오르곤 했다.
이진아는 3층 자신의 방에서 내려와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검은색 벤츠의 문이 열리고 이진아는 뒷자리에 엉덩이를 실었다. 기사가 방향을 물었다.
"동대문 시장이요."
"네, 아가씨!"
이진아가 탄 차가 저택을 빠져나가자 골목에서 숨어 지켜보던 사내가 몸을 일으키며 급히 따라갔다. 전신주옆에 세워둔 오토바이에 급히 올라타서는 벤츠를 쫓아갔다.
승희는 오늘 설레였다. 한국으로 이년만에 귀국한데다가 이곳에서 대학을 다닐 생각이었기에 더는 외국으로 떠돌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풍만한 젖가슴과 훤칠한 키에 외국 남자들이 많이 접근했지만 자신의 첫사랑 허재를 생각하며 외국에서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