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79 회: 5 -- >
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여는 시점인데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멈추어서 동물원 구경하듯 쳐다보고 있었다. 창피한 성기는 여자를 뿌리치고 나가려는데 같은 가게에서 일하는 아가씨 두 명이 달라붙었다. 난감한 성기는 길거리에서 마냥 실랑이를 벌일 수 없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별 수 없이 성기는 여자들이 이끄는 대로 가게로 들어갔다. 경호원도 여자들의 야한 차림에 망설였지만 성기가 가게 안으로 끌려 들어가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안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아이, 참. 진작 들어왔으면 좋잖아."
"친구도 같이 하게?"
"친구 아닙니다."
"그래? 아니면 어때. 같은 남잔데. 둘이 하면 더 싸게 해줄게."
"나 참, 안한다고 몇 번이나 애기해요."
"일단 방으로 들어가서 맥주 먹으면서 애기해봐."
"맥주도 먹어요?"
"그냥 바로 하려고? 운치 없게 왜 그래?"
"처음이라 그렇죠."
"뭐든 첫 경험이 중요한 법이야. 내가 우리 집에서 끝내주는 애로 붙여줄게. 보통은 손님이 고르지만 내가 추천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
"안한다고 몇 번이나 애기합니까? 그냥 술만 먹고 갈게요."
"일단 봐봐."
그러더니 아줌마는 성기와 경호원을 안쪽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세 번째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기다리라고 말해 놓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휙 사라졌다. 성기는 아줌마가 사라지자 다시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다른 아줌마가 나타나 성기를 붙잡았다.
"왜 벌써 가게? 맥주도 먹고 연애도 하고 가야지."
"놔요. 알았어요. 맥주 먹을게요. 그러니 놔 줘요. “
"방에서 얌전히 기다려. 학생!"
성기는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경호원 박정희도 성기를 따라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은 딱히 대화할 것도 없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키 크고 가슴이 풍만한 아가씨 둘이 들어왔는데 두 여자는 좀 전의 아줌마와는 달리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왔다. 뒤따라온 아줌마가 색기어린 눈을 띠며 말했다.
"욕심 같아서는 내가 학생하고 싶은데 말이야. 내가 많이 참았어. 오늘 우리 가게 첫 손님이고, 학생도 이런 데 처음이라고 하니깐 말이야. 여기 애들도 오늘 처음 나왔어. 앞으로 우리 가게에서 일할 애들이니깐 잘 봐두라고. 단골 고객이 될 수도 있잖아. 학생! 어때? 보니깐 마구 꼴리지?"
여자 입에서 그것도 10살 넘게 많아 보이는 아줌마의 입에서 꼴린다는 말을 듣자 성기는 난감했다. 남자들도 아주 친한 친구들 아니면 그런 말을 쓰기가 상당히 어려웠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화류계 생활을 겪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아줌마의 어투는 상당히 저속했다.
"나 참, 아줌마. 맥주만 먹고 간다니까요."
"왜 또 그래? 내가 학생한테 이렇게 A급 아가씨들도 보여줬는데 말이야. 애들아!"
성기 앞에 가만히 있던 아가씨들이 고개를 들어 아줌마를 쳐다보았다.
"맨송맨송 있지 말고 잘 모셔. 알았지? 학생 물건이 여간 실한 것이 아니야."
"네?"
두 아가씨가 실하다는 의미를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줌마는 답답한지 버럭 화를 냈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지 말고 상을 펴서 맥주를 내놔야지. 돈을 선불로 받았으면 돈 값을 해야지."
"네? 네, 알겠어요."
두 아가씨의 옷차림은 상당히 짧은 치마여서 두 허벅지 사이 은밀한 부위가 고스란히 보일 정도였다. 눈을 어디다 둬야할 지 난감한 성기는 고개를 돌려 벽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아줌마의 짜증에 바삐 움직이며 상을 펴고 맥주 다섯 병을 위에 올려놓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색기어린 아줌마가 입을 열었다. 눈은 성기의 가운데를 응시하면서 말이다.
"학생! 부족하면 애기해. 내가 잘 해줄게. 그리고 여기 아가씨들로 만족을 못하면 언제든지 불러. 알았지?"
성기가 창피해서 고개를 숙인 것을 아줌마는 숫총각 특유의 부끄러움으로 지레 짐작하고는 깔깔 웃으며 사라졌다. 아줌마가 사라지고 나서야 성기는 고개를 들었다.
여자들의 얼굴을 보니 평균 이상의 미모를 갖춰 도저히 얼굴만 봐서는 이런 곳에 일할 여자로 보이지 않았다. 오른 쪽에 있던 아가씨가 맥주를 잔에 따라 성기에게 건넸다. 성기는 입이 말랐는지 벌컥벌컥 잘도 속으로 넘겼다. 경호원은 자신은 잘 마시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이런 곳에 일하실 분들이 아니신데, 어떻게 일하시게 된 거에요?"
성기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붙였다. 그러자 두 아가씨가 말하려다 말고 머뭇거리는 것 같았다. 성기는 병을 들고 잔에 맥주를 따라 여자들에게 권했다.
"자, 드세요. 하고 싶지가 않거든요. 그냥 애기하고 싶어서 왔어요."
성기의 말에 여자들은 잔을 들어 시원하게 들이키더니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왼쪽의 아가씨가 입을 열었다.
"전 김미희라고 해요. 고등학교 배구부 2학년 때 여동생이 죽었어요. 그 여파로 부모님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병원비로 논도 팔고 집도 팔았는데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학교도 그만두고 병간호를 했는데 어머니마저 위독하셔서 병원비 마련하려고 여기까지 오게 된 거에요. 돈을 많이 준다고 했거든요."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지만 참으로 기구한 사연 같았다. 여자의 눈을 보니 맑은 눈동자에 투명한 물이 고이고 있었다. 애써 눈물을 참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성기는 되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 잔에 맥주를 따르고 자신의 잔에도 따라 건배를 제안했다.
"자, 어머님의 건강을 위하여."
여자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맥주를 건배했다. 맥주잔을 들어 마시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볼을 타고 투명하고 영롱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흐흑. 미안해요. 내가 눈물을 여간해서는 보이지 않는데. 맥주를 먹어서 그런가봐요."
"그래, 너 많이 마시지 마."
오른 쪽에 있던 여자가 친구인 듯 말을 편하게 했다. 그리고는 성기에게 잔을 권하며 맥주를 따랐다.
"애가 원래 성실했던 친구였는데 여동생이 죽으면서 집안이 그렇게 되는 바람에 눈물이 많아졌어요."
"두 분이 원래 친구였어요?"
"네, 같은 배구부였어요. 저보다는 지금 옆에 있는 친구가 더 재능이 있다고 했는데. 동생이 죽는 바람에."
"교통사고로 죽었나 보죠? 아, 미안해요. 내가 너무 미안한 질문을 한 것 같네요."
"아니에요. 친구 여동생은 화성연쇄살인마한테 죽었어요. 신문에도 나왔는데. 아시죠?"
"네? 정말이요?"
"네! 그때 친구네 집 주변으로 경찰들이 엄청 깔렸었어요. 미안하다, 미희야. 내가 너무 주제넘게 애기한 것 같은데."
성기가 두 손으로 휘저으며 나섰다.
"제가 미안하죠. 괜히 물어봐서."
"괜찮아요. 죽은 여동생보다는 살아 있는 엄마가 더 걱정이거든요."
"그래요. 살아있는 사람들이 더 고통스러운 겁니다."
성기의 말이 끝나자마자 돌연 김미희가 눈을 반짝이며 굳은 어투로 말했다.
"만약 어머님이 죽으면 저는 끝까지 그 살인마를 추적할 거예요."
김미희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맥주를 마셨고 친구인 배수진이 나서서 여동생 사건을 말해주었다. 여덟 번째 살인은 7차 안희순 씨 사건이 일어난 지 24개월 만에 다시 일어났다고 한다. 살인마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화성경찰서를 비롯해서 경기도경은 또 한 번 발칵 뒤집혔졌고 언론에서도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1990년 11월 16일 아침 10시경 화성에서 어린 여학생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피해자 김미영 양은 당시 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으며,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살해되었다. 사건 발생일인 11월 15일 오후 6시 30분경, 김미영 양은 학교를 끝마친 뒤 같은 반 친구 이 모 양과 함께 집으로 가고 있었다. 친구와는 당시 병점초등학교 앞 지하도에서 헤어졌으며, 이후 실종되었다.
집에서는 밤늦도록 김미영 양이 귀가하지 않자 평소에도 늘 함께 다녔던 이 모 양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딸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김미영 양의 아버지는 급기야 인천에 사는 자신의 동생들에게 이 사실을 알린 뒤 서둘러 와줄 것을 부탁했다. 동생들이 오는 대로 마을 주변을 샅샅이 조사해 볼 생각이었다.
평소에는 아무런 연락 없이 그렇게 늦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가족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해 있었다. 아버지 김 씨의 동생들도 마찬가지로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평소에도 조카인 김미영 양에게 늘 일찍 귀가하라고 당부하곤 하던 터였다. 그들 모두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잡히기 전까지는 한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런 연락도 없이 김미영 양이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이었다. 그로 인해 가족들 모두는 혹시 김미영 양이 연쇄살인사건의 패하자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연락을 받은 김미영 양의 삼촌 김명섭씨 등은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에 도착했다. 김미영 양의 아버지로부터 연락을 받은 뒤 부랴부랴 인천 등지에서부터 화성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튿날 날이 밝는 대로 마을 주변을 수색해 보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김미영 양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에 좀처럼 그들은 전화기 주위를 떠나지 못했다. 날이 밝을 때까지 가족들 모두에게는 그처럼 불안감과 희망이 교차하고 있었다.
김미영 양이 학교에 가거나 귀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이 있었다. 길 양쪽에 20년에서 50년쯤 된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400여 미터의 오솔길이었다. 이 길은 대낮에도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어 성인 남자의 경우에도 주위를 한번쯤 돌아볼 만큼 으슥한 길이었다. 게다가 폭이 좁고 구불구불해서 오싹한 기운이 한층 더 감도는 그런 길이었다.
김미영 양의 가족들은 우선 이 오솔길을 수색해 보기로 했다. 친구 이 모 양의 말대로라면 학교가 끝나고 곧장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으므로 만일 사고 났다면 이 오솔길일 가능성이 제일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들은 각자 양쪽으로 나뉘어 길옆을 수색했다. 하지만 오솔길 주위를 살피는 중에도 제발 사체를 발견하지 못한 채 이 길이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럼에도 가조들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솔길을 약 절반 정도 지났을 즈음이었다. 김미영 양의 삼촌인 김명섭 씨 눈에 약 7년생 된 낮은 소나무 밑으로 이상한 물체 하나가 들어왔다. 소나무 가지 밑으로 무언가 하얀 물체가 희미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멀리서 어렴풋이 보기에 그 물체가 사람의 형상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초조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만큼 그 물체는 작고 둥그스름했다. 주위에 있던 가족들 역시 김명섭 씨의 행동에 크게 신경을 곤두세우지는 않았다. 그만큼 김명섭 씨의 행동은 침착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소나무 근처로 점점 다가갈수록 김명섭 씨는 침착함을 잃어갔다. 그러고는 급기야 낮은 비명 소리와 함께 가족들이 김명섭 씨 주위로 달려왔다. 그러나 손발이 뒤로 묶여 활처럼 휜 사체가 소나무 가지 밑으로 분명하게 보였다. 몸이 활처럼 휘어 있었기 때문에 사체가 작고 둥그스름해 보였던 것이다.
김미영 양의 아버지는 손을 부들부들 떨어가며 힘겹게 소나무가지를 들췄다. 거기에는 처참하게 죽은 자신의 딸 미영이가 누워 있었다. 그 순간 김미희와 가족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90년 마지막 살인 사건인 김미영 양이 죽을 당시 성기는 고2여서 친구들과 한창 공부하고 뛰어놀 때였다. 자신의 무관심을 미안해하며 성기는 잔을 들어 맥주를 마셨다.
============================ 작품 후기 ============================
살인 사건을 참고하면서 쓰려니 읽다가 저도 겁이 나더군요.
이런 쳐 죽일 놈들.
왜 살인을 하는 것일까요?
요즘은 특히 우리 한국에서는 우발적인 살인이 1위라고 합니다.
그만큼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는 사회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