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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도라는 말에 30대의 사내가 움찔거렸다. 그러더니 성기와 마찬가지로 노인이 준 밥은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둘은 얼마되지 않은 밥을 반찬없이 맛있게 먹은 후 노인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노인은 어서 가라며 짜증을 내셨다. 30대의 사내는 연신고맙다고 인사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성기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만원짜리를 몽땅 밥그릇에 담아놓고 사내를 쫓아 아래로 내려갔다
용마산 아래로 내려와서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두 사람은 또 다시 만나게 되었다. 30대의 사내는 예의 포근한 인상으로 미소를 보냈다. 어색한 성기 역시 그에게 웃음으로 화답했다. 두 사람은 이내 도착한 버스에 올라탔는데 청량리행 버스였다.
경호원도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성기와 포근한 인상의 사내는 따로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모습과 버스들이 이리저리 다니는 모습이 활기에 넘쳐 보였다. 어느덧 사내는 목적지에 왔는지 내리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성기 역시 뚜렷한 목적지가 없어서 그를 따라 내리기로 했다.
사내는 예전 선배들을 따라 한번 가보았던 청량리 사창가로 향하는 것이었다. 순간 성기는 놀라며 저 포근한 인상을 가진 사내가 설마 대낮부터 하러가나 싶어 호기심이 들었다.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질 여력은 없었지만 이날따라 유달리 저 사내에게 끌리는 성기였다.
사내를 뒤따라가면서 혹시 저 사내가 용마산에서 울었던 사내는 아니었을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아까 밥을 먹을 때 눈이 퉁퉁 불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내가 울었다는 것에서 성기는 피식 웃었다. 자신도 산에서 지구가 떠나가도록 울었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따라 가보니 속칭 588을 지나자 마자 다일교일라는 간판이 있는 허름한 건물로 사내는 들어갔다. 한참을 멍하니 따라가다 일찍 문 연 가게의 아가씨들이 나와서 성기와 경호원을 불러세웠다.
"학생, 놀다 가! 싸게 해줄게."
성기의 머리가 짧은데다 동안이라 종종 모르는 사람들은 외모만 보고 학생이라 단정지었다. 창녀들도 예외는 아니었는지 성기에게 학생이란 단어를 썼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창녀들이 부르자 성기는 색다른 감을 느꼈다. 성기가 머뭇거리자 창녀들은 그가 하고는 싶은데 돈이 없는 줄 알고 재차 말했다.
"싸게 해준다고. 잘만 해주면 공짜로도 해줄 수 있어."
그 말에 성기가 얼굴을 붉히자 이웃 가게의 가슴 큰 아가씨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슴을 앞으로 쭉 내밀며 말했다.
"이 가슴 봤지. 나도 싸게 해줄 수 있어. 어때? 학생, 지금 막 꼴리지?"
그러자 맞은 편 가게의 아가씨가 소리쳤다.
"애는 순진한 학생한테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흥, 모르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요즘은 학생들이 더 발랑 까졌어."
"네가 봤니? 발랑 까진 거."
"그럼, 봤지. 꼭 소시지 같던데. 학생 좆은 소세지야."
"호호호."
"깔깔깔."
"그만 해요. 아가씨도 아닌 아줌마들이 그런 말을 하고 있으면 어떡해요."
"왜? 우리가 말해서 학생이 꼴렸나?"
"꼴리면 들어와! 싸게 해준다고."
"학생, 얼굴이 맘에 든다. 꼭 내동생 같애. 난 만원만 받을게. 염가 봉사야."
"학생! 매일 밤마다 딸딸이 치지 말고 누나의 품으로 와!"
가슴이 풍만한 아줌마가 색기를 풍기며 성기의 손을 잡아 끌었다. 성기는 짜증이 났지만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여자들의 생계 방식을 알고 부드럽게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그런 성기의 마음과는 달리 맞은 편 창녀도 뛰어나와 성기의 허리를 붙잡았다. 두 여자가 잡아 끌며 서로 자기의 가게로 가려했다.
"아 놔! 미치겠네. 지금 그런 거 아니라니깐요."
"지금 아니면 이따 꼴려?"
"내가 입으로 잘 해줄게. 금방 꼴리게 말이야."
그 때였다. 교회 건물로 들어갔던 사내가 내려와서 두 여자를 말렸다. 난데없이 나타난 사내가 성기는 무척이나 고마웠다.
"아직 어린 학생인데 왜 그러십니까?"
"어머, 목사님!"
"어머, 죄송해요."
두 여자는 성기에게 손을 떼고는 고개를 숙여 후다닥 가게로 들어가 버렸다. 성기의 어깨를 잡고 사내는 물었다.
"괜찮아요?"
"네, 그런데 목사님이세요?"
"네, 맞습니다."
"그런 분이 왜 산에 올라가서 밥을 얻어 먹었습니까?"
"하하하, 민망합니다. 그러는 학생은 왜 얻어먹었습니까?"
"그야, 듣고 보니 저도 딱히 할 말이 없네요. 말씀 낮추세요. 저보다 어른이신 것 같은데."
"그럴까. 나 참 정신보게. 점심 준비하는 아내 보러 가야하는데."
그러면서 목사란 사내는 성기의 어깨를 토닥이고 자리를 떠났다. 급하게 뛰어가는 모양이 다급한 일이 생긴 것 같았다. 딱히 할 일도 없고 창녀들에게 또 다시 잡힐 것 같아서 목사를 따라갔다. 성기의 뒤를 경호원이 쫓았다.
그곳에 가보니 얼굴이 곱상하게 생기신 부인이 큰 솥단지에 라면을 끓이고 있었고 허름한 차림의 노숙자들이 빈 그릇을 들고 쭉 늘어서 있었다. 목사는 그 부인에게 다가가 일을 거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허름한 노숙자들이 쭉 늘어서 있어 불쾌한 기색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자아, 순번대로 떠 드릴테니 줄을 서세요."
"네, 목사님."
"새치기 하지 말고. 줄을 서."
성기는 배가 고파서 노숙자들이 늘어선 맨 끝에 가서 섰다. 경호원도 민망했지만 성기의 곁을 떠날 수 없어 뒤에 섰다. 그러자 노숙자들이 성기와 경호원을 힐끔 쳐다보며 저마다 수군거렸다.
"젊은 놈이 벌써부터 비럭질이야."
"생긴 것은 곱상하게 생긴 놈이. 쯧쯧."
"저 양복 입은 놈은 멀쩡하게 생겨서는."
"놔 뒤. 사연이 있겠지."
"그려, 다들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거야. 우리도 빌어먹는 주제인데."
"맞아. 에휴."
드디어 성기 차례가 되었다. 목사가 껄껄 웃으며 라면 면발을 성기가 내민 그릇에 담아 주었다.
"내가 누군지 아나?"
"혹시 최일도 목사님 아니세요? 기다리면서 생각해 보았더니 목사님 같던데."
"맞네. 용마산 일은 당분간 비밀로 해주게."
"하, 알았습니다."
============================ 작품 후기 ============================
***** 최일도 목사가 걸식노인과의 만남 이후 서울 청량리, 속칭 588일대에 다일교회와 다일공동체를 세운 건 89년이었다.
당시 인근 쌍굴다리에서 200여명에게 매일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주었다. 다일정신은 물질주의 이기주의의 홍수 속에서 성 프란치스코가 우리에게 남겨준 사랑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그동안 ‘화해와 일치’를 위해 ‘섬김과 나눔’을 실천했는데, ‘다일’은 ‘다양성의 일치·일치 속의 다양성’을 뜻하는 만큼 다일교회, 다일공동체, 천사병원, 다일평화인권연구소 등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섬기길 원하고 있다.
그런 최일도 목사가 34살 되던 해 95년에 용문산으로 가서 울었다고 한다. 작품 속에서는 93년으로 변경한 것은 성기와 인연을 만들기 위해 앞당긴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혼동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