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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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변호사는 김영삼 정부 시절 린다 김이 정치권 인맥을 구축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린다 김과 김영삼 대통령의 연결고리는  김윤도 변호사였다. 린다 김에게 김 변호사를 소개해준 사람은 5, 6공과 김영삼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정종택씨로, 정 전 장관과 김 변호사는 사돈간이었다.

린다 김은 김 전 대통령을 야당 시절부터 알고 지내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친분을 쌓은 것은 김윤도 변호사를 통해서였다. 김 변호사와 함께 몇 차례 만났으며 그를 통해 자신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오해’를 풀었다. 법무법인 새한양 소속이던 김 변호사는 7년 후 2000년에 사망한다.

노태우 정부 시절 박철언 장관이 김영삼과 대권을 놓고 싸웠었다. 노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는 박장관 편들고, 노 대통령과 금진호 장관은 김영삼 편들고. 금 장관은 나중에 뒤통수를 맞았다. 김영삼이 대통령 되고 나서 금 장관을 낙동강 오리알로 만들어버렸다.

박철언 장관이 김영삼 때문에 외유(外遊)에 나섰을 때 린다 김이 도와준 적이 있었다. LA에 왔을 때 린다 김이 운영하는 회사의 사장직을 맡겨 경영 수업을 쌓게 한 것이다. 그것을 김영삼이 알았고 린다 김은 미운털이 박혀 사업에 난항을 겪었다. 곤경에 처한 린다 김의 상황을 풀어준 사람이 김 변호사였다.

주로 김변사 자택에서 만남을 가졌으며 만날 때마다 김영삼은 발렌타인 30년산을 즐겨 마셨다. 반병 정도 마시면 이런 저런 소소한 애기에서부터 정치판의 뒷 애기까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김영삼은 불알친구를 만난 것처럼 술술 털어놓았다. 

그들이 논현동에 있는 김 변호사 자택에서 만난 이유는  김 변호사 부인이 아이들과 함께 하와이에 가 있었다. 그래서 김 변호사는 혼자 지낼 때가 많았다. 그런 김 변호사 집이 취임 후 안가를 없앤 김영삼의 안가 구실을 했다. 오늘도 김영삼의 호출로 린다 김은 방문해 음식 준비를 했다. 평소 알고 지내는 해림 한정식 사장한테 애기해서 서빙할 여자들까지 들여보냈다.

이야기가 다끝나가 곧 파장될 분위기였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아이들이 도착하지 않아 린다 김은 평온한 얼굴과는 달리 마음은 좌불안석이었다. 두 딸은 누구보다 소중했다. 사랑했던 유일한 남자의 분신들이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들이었으니 말이다.

이날 김 변호사 집 주변에 경호원들이 좍 깔렸고 골목골목을 다 차단했다. 다행이도 김영삼은 자리에서 일어나 린다 김의 손을 잡고 한참을 쓰다듬더니 방을 나섰다. 민망한 린다 김은 쫓아가 공손히 인사했다. 김영삼은 손을 흔들고는 경호원이 안내하는 차에 올라탔다.

부릉 소리와 함께 차는 골목길을 나섰고 앞 뒤로 여러 대의 차가 경호하며 서서히 나아갔다. 휴우 하며 한숨을 내쉰 린다 김은 김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수고 많았소."

"제가 뭘요. 음식을 제가 직접 만든 것도 아닌데."

"그래도 당신같은 미인이 있어야 음식이 빛을 발하는 거야."

"됐네요. 유부남의 칭찬은 받고 싶지 않아요. 그나저나 아이들을 인사시켜드릴려고 했는데 못 보시고 가셔서 어떡해요?"

"그러게 말이야. 대통령도 자네 딸들 얼굴 보고 싶다고 했거든. 나중에 손자 며느리 삼아야겠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흥, 내 딸을 보지도 않고 김칫국부터 마시면 어떡해요."

"자네를 닮아서 예쁘겠지."

"알았어요. 다음에 인사시켜드릴게요."

그러는 와중에 대문이 열리며 아이들이 뛰어와 린다 김에게 안겼다.

"엄마!"

린다 김역시 자신의 두 딸을 부여잡고 깊이 포옹했다. 그런 옆 모습을 지켜보는 김 변호사의 눈에 아이들을 따라 나타난 금발 여성이 들어왔다. 모델 뺨칠 정도로 이쁘고 훤칠한 키에 기러기 아빠인 김 변호사의 마음도 약간 떨려왔다.

'십년만 젊었어도."

성기는 이틀을 더 병원에서 지냈다. 친구들과 여자들이 번갈아가며 병문안을 왔었고, 어제 저녁에는 크리스티나 혼자 방에 쳐들어와 성기의 침대 옆에 잠을 잤다. 원래는 아이들도 와야했지만 린다 김이 밤에 어디를 가냐며 떼를 쓰는 아이들을 나가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가야한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지만 린다 김은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지리도 제대로 모르고 더군다나 십대의 아이들이 밤에 나돌아다니는 것이 말이 되는가. 세상 어느 부모가 초등학생 딸들이 늦은 밤에 나가겠다고 하면 오냐하고 허락할 것인가. 딸들의 이사함을 느낀 린다 김은 자신의 말에 처음으로 반항하는 딸들을 향해 처음으로 빗자루를 들었다.

어제 크리스티나와 뜨겁게 밤을 보낸 성기는 아침이 되어 그녀를 보냈다. 크리스티나는 헤어지지 않겠다고 떼를 썼지만 주소를 알려주고 그리로 오라고 타일러 돌려보냈다. 아침 식사를 마쳤을 무렵 혜자매 트리오가 나타나 내일 성기 집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기겁을 한 성기는 다음 주에 오라고 설득했다. 그녀들은 이미 모든 일을 정리했고 선혜는 남편의 장례식조차 가지 않았다. 이미 남편이라기보다는 남남이었던 사이여서 장례식에서 시댁 식구들에게 한바탕 혼이 났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이제는 누가 뭐라해도 사랑하는 성기를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한 선혜였다.

하물며 친부모 조차도 그런 선혜의 결정에 노발대발하시며 만약 성기란 놈의 집에 들어가 살면 호적을 파버리겠다고 선언하셨다. 하지만 이조차도 선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물론 마음이 아팠지만 성기 곁에 있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죽기보다는 살기를 택한 선혜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기의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것이다.

한 중령도 내일부터 들어가겠다고 했고, 정지연도 퇴원하는 대로 성기의 집으로 가 살겠다고 선포했다. 미치고 팔짝 뛸 성기였다. 한번 자기만 하면 왜 이리 자신에게 매달리는지 모르겠다며 성기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성기는 부랴부랴 퇴원 수속을 밟았다. 어찌된 일인지는 몰라도 칼에 찔린 상처는 몰라보게 나아있었다. 담당 의사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한 일이라고 중얼거렸지만 딱히 퇴원을 막을 방법이 없어 퇴원에 동의했다. 오히려 병원측은 고마워했다. 가뜩이나 환자는 넘치고 병실은 부족한 상황이라 퇴원을 원하는 환자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집에 도착해 대문 옆의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마침 어머님이 정원을 손보는 중이었다. 인사드리고 며칠 들어오지 못한 것을 설명하려는 성기보다 어머니의 몽둥이가 더 빨랐다.

마당을 청소하는 큰 빗자루를 황비홍처럼 휘두르며 성기의 온몸을 난타했다. 성기는 빗자루를 피해 폴짝폴짝 뛰었다. 여자들은 성기의 비명소리가 들리자 방을 열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엄마, 왜 그래?"

"이놈아. 말도 없이 어딜 갔다 온 거야? 그리고 집에 네 딸들이라고 하는 년이 있던데. 이 엄마가 모르는 손녀가 있었다니? 이 불효막심한 놈아!"

"친구들과 술먹다 아파서 한돌이네서 자고 왔어. 뭐? 뭐라고? 엄마, 내 딸이라니. 내 나이 이제 21살인데 딸이 어딨어?"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되겠지. 이 놈아! 일단 맞고 보자."

"엄마, 왜 그래? 빗자루 좀 놓고 애기해!"

"헉헉,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저 놈 때리기도 벅차네."

"엄마, 그러다 허리 다쳐. 빗자루 내려놓고 애기하자고."

빗자루보다 더 빠른 여자 둘이 있었다. 

"아빠!"

"아빠!"

성기는 대경실색하며 자세히 들여다보니 몇달 전 유격장에서 발견한 여자 둘이었다. 그때도 병원에서 아빠라고 불렀는데, 자신이 없는 틈에 집으로 온 것 같았다.

풍만한 젖가슴과 성기와 같은 키로 봐서는 절대 딸일 수 없었다. 그런데도 아름다운 입술에서는 성기를 부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빠!"

"이 쳐죽일 놈아! 이래도 딸이 아니야. 너란 놈때문에 동네 창피해서 살 수가 없다."

"엄마, 아니야. 내가 들어가서 설명해줄게."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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