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72 회: 5 -- >
부두목 강동은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금발의 여자를 쳐다보다 그 옆의 여자들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얼굴은 무척이나 앳되보였지만 신장이나 가슴의 발육 상태로 보면 20세 전후로 보였다. 꿈속에서 찾던 이상형의 여자가 저 애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동은의 가슴은 설레였다.
문섭과 다른 두 명도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여자들을 노골적으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크리스티나는 허름한 봉고차에서 내린 사내들이 자신과 두 아이를 쳐다보는 알아차리고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볼 때 두가지의 시선으로 나뉜다. 전자는 선망의 눈빛을 후자는 여자를 능욕하고 범하려는 마음을 품는다고 한다.
지금 담배를 피우는 험상굿은 녀석들은 후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무섭도록 적중이 높은 여자의 직감이 위험하다고 크리스티나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옷도 건설현장에서 막노동하는 사람들처럼 먼지와 흙이 여기저기 묻어 있어 직감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불길한 기분에 휩싸인 크리스티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아이들이 좀더 구경하고 싶다고 떼를 써 여의치가 않았다. 그 때 병원문이 열리며 성기와 김현철이 나왔다. 크리스티나는 김현철이 나와 다행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크리스티나의 염원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김현철은 전혀 그녀들을 안중에도 두지않는 듯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환자복을 입은 남자에게 매달려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꼴이 신파극에 흔히 등장하는 헤어지는 연인에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기는 김현철을 데리고 정문 옆 구석으로 데려갔다. 낡은 봉고차가 보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다행이도 여자들이 아니라 낯선 사내 네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성기는 김현철에게 말했다.
"왜 그러는 겁니까? 나이도 있으신 분이."
"모르겠어요.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제 사랑을 받아주세요."
"미치겠네. 진짜!"
부두목 강동은이 담배를 비벼끄고 턱끝으로 여자들을 가리켰다. 이미 눈빛으로 의견을 나눈 지존파 일당 셋이 크리스티나에게 다가갔다. 막내 문섭만 봉고차 근처에 남아 담배를 피웠다. 형들이 가고 난 뒤 문섭의 주의력은 일순 흩어졌다. 그런 문섭의 눈에 정장 입은 사내가 환자복을 입은 사내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애원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이거 놔요. 바지 내려가요. 빨리요!"
"제 사랑을 받아줄 때까지 놓지 않을 거에요."
성기는 움직이고 싶어도 바지가 잡혀 있어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이 상황은 예전 소말리아의 셰룸 소령과 흑인 사내들이 했던 모습과 동일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성기를 당황시켰다.
자신의 분비물이 언제 이 사람에게 닿았는지 기억이 전혀 나질 않았다. 기억이 나질 않으니 미치고 황당할 뿐이었다. 그런 성기의 귀에 비아냥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좋구만. 한창 좋을 때야. 남자가 눈물로 호소하면 받아줘야지. 하하하."
성기는 나이도 어린 녀석이 비꼬는 투로 말하자 기분이 더러워졌다. 가뜩이나 김현철로 인해 잡친 기분에 휘발유를 끼얹은 판국이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말지."
"좆만한 놈이 내가 누군지 알고 주둥아리를 놀려?"
막내 문섭은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상황이었다. 성기를 노려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죽고 싶어? 존만한 놈아!"
성기는 나이도 어린 녀석이 막말을 내뱉자 화가 치솟았다. 매달리는 김현철은 상관하지 않고 녀석을 쳐다보았다. 가까이 다가오는 녀석의 눈을 보니 눈에서 사람을 죽인 살인자의 기색이 엿보였다. 그것은 살인을 경험한 자들만이 갖는 기세와 눈빛이 있어 성기가 알아본 것이다. 성기 역시 소말리아에서 본의 아니게 살인을 경험한 터였다.
살기! 흔히들 살인을 경험한 사람은 갖고 싶지 않아도 갖게 되는 섬뜩한 기운이 있다. 험한 일을 하고 막일을 한다해도 생기지 않는 것이 살기다. 살인자의 눈빛은 살기가 비치며 충혈되고 모골을 송연케한다. 지금 그 살기가 문섭의 몸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성기를 향해 다가오는 문섭의 눈빛을 본 김현철은 그 살기에 놀라 오줌을 지렸다. 정장 바지 밑으로 뜨겁고 축축한 물이 흘러내리며 바지를 적시기 시작했다. 성기는 이전까지 부드러운 눈빛을 지우고 강렬한 눈빛으로 마주 보았다. 사람을 죽여도 문섭보다 더 죽인 성기의 살기에 문섭의 기운은 사그라들었다.
이제보니 몇달 전에 버스에서 행패를 부렸던 양아치들이었다. 성기의 얼굴에 미소가 서렸다. 그것을 본 문섭은 그제야 성기를 알아차렸다.
"어어, 너는......"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성기가 발을 들어 문섭의 가운데를 걷어찼기 때문이었다.
"이제 알아보니 반갑네. 양아치 새끼!"
그 순간 크리스티나와 두 여자애들을 납치하려고 다가갔던 세 명은 비명소리를 듣고 망설였다. 강동은이 여자들은 납치해서 차에 싣고 그 다음에 성기를 손 보기로 했다. 상대는 한명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강동은이 여자애들을 껴안고 들어올렸다. 그러자 남은 두 명은 크리스티나의 팔을 양쪽에서 움켜잡고 봉고차로 끌고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운전석에 있던 기사가 알아차릴 새가 없었다.
"캬아악! 뭐야 당신들!"
"조용히 해! 죽고 싶어!"
"아악! 이거 놔 줘요."
"Please! Help me!"
"썅년! 조용히 안해!"
그 시각 바닥에 쓰러진 문섭은 물건을 움켜잡고 새우처럼 몸을 움츠렸다. 성기는 다가가서 밟으려고 했는데 바지를 붙잡고 있는 김현철때문에 어쩔 수없이 바지를 벗고 팬티바람으로 문섭에게 달려들었다. 맨발로 사정없이 짓밟던 성기의 귀에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주차장 아저씨도 나왔지만 역시 사내들이 무서워 벌벌떨기만 할 뿐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몇명 있었지만 사내들의 인상에 눌려 나서지 못하고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성기는 환자복 상의에 팬티차림이어서 창피했지만 그것에 연연할 수가 없었다.
녀석들은 일전에 버스에서 난동을 부린 양아치들이었다. 그때도 여자에게 손을 대더니 오늘도 역시 여자들을 납치하려고 하는 것을 보니 성기의 눈에 찌질한 양아치로 보일 뿐이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녀석에게 달려들었지만 성기의 바람과는 달리 크리스티나를 들쳐 없었던 강동은이 버둥거리는 그녀를 성기에게 던져버렸다. 달려가던 성기에게 다 큰 여자의 몸이 덮쳤다. 성기는 놀라며 황급히 여자의 몸을 받아들었다. 여자의 몸에 가속도가 더해져 성기는 휘청이며 뒤로 넘어졌다.
홀가분해진 강동은은 아이들을 납치하던 일당을 도왔다. 크리스티나는 성기의 품에 안기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닥에 그냥 팽개쳐버려졌다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티나의 엉덩이에 딱딱한 살덩이리가 밀착되며 헐떡였다. 성기의 몽둥이가 그새를 못참고 폭발할 듯 용트림을 쳐 안긴 크리스티나의 엉덩이를 건드리고 있었다.
민망해진 성기는 크리스티나를 옆으로 밀치고 일어났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큰 손에 막혀 발만 버둥거리고 있었다. 성기는 황급히 다가가 녀석들에게 달려들었다. 강동은이 주먹을 휘둘러 성기의 얼굴을 가격하려했다. 바로 허리를 숙여 피하고는 무릎으로 강동은의 가운데를 올려쳤다.
"아악!"
비명을 터뜨리며 강동은이 쓰러졌다. 문섭과 마찬가지로 강동은이 물건을 움켜잡고 쓰러졌다. 그것에 놀란 남은 김현양과 문상록이 발버둥치는 두 여자아이들을 땅바닥에 팽개치고 성기에게 달려들었다. 한 명이 럭비하는 공격수처럼 뛰어들었고 다른 한 명은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성기는 공중으로 번쩍 뛰어오르며 뒤 돌려차기를 했다. 공격수처럼 달려들던 김현양이 얼굴을 맞고 쓰러지며 칼을 들고 뛰어들던 문상록의 다리를 잡았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잡았던 손이 같은 일당의 다리를 잡는 결과로 이어져 두 사람은 결국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 모습에 성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쓰러진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크리스티나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쓰러진 여자 아이들도 무엇에 놀란 것인지 소리를 질렀다.
"조심해요!"
"캬아악! Watch your back!"
성기는 크리스티나와 아이들의 비명 소리에 등을 돌아보기도 전에 날카로운 쇠에 등이 찔리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쇠를 타고 피가 홍건히 흘러내렸다.
"개새끼! 감히 내 동생들을 패! 너같은 녀석을 죽어야 해!"
김기환은 스산한 목소리로 말하며 성기의 등에서 칼을 뽑아 재차 찌르려고 했다. 하지만 김기환은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누가 신고했는지 가까이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까와는 달리 시민 여러 사람이 성기의 모습에 자극을 받았는지 나서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였기에 여기서 더 망설였다가는 꼼짝없이 잡힐 판이었다.
"빨리 타! 어서!"
"네, 형님!"
그들은 바닥에 쓰러진 강동은과 문섭을 부축하고 재빠르게 봉고차에 올라탔다. 문상록이 시동을 걸자마자 타이어가 바닥과 마찰을 일으키며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쏜살같이 봉고차는 병원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성기는 피를 흘리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순간 크리스티낙 달려들어 성기를 안아들었다. 성기의 핏물이 크리스티나의 아랫배를 타고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어머, 피좀 봐!"
아이들도 다가와 자신들을 구하려다 다친 성기를 안타까워하며 지켜보았다. 지선과 지혜는 자신들의 치마를 찢어 피가 흐르는 부위를 막기 위해 애를 썼다. 아이들의 손에 성기의 피가 진득히 묻어났지만 아이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요."
"응!"
크리스티나는 고통에 비몽사몽하는 성기를 부축하고 바로 앞에 있는 응급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