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 164 회: 5 -- > (164/230)

< -- 164 회: 5 -- >

마이클 상병과 브루클린 병장 , 존슨 병장, 아놀드 하사는 기분이 엿 같았다. 이태원 나이트에서 만난 한국 계집애들이 더는 못 놀겠다며 집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계집애들 세 명이 쏜살같이 사라지는 바람에 술값만 덤탱이를 맞으니 기분만 더욱 더러워졌다. 카운터에서 계산하고 나가니 여자들은 벌써 택시를 타고 막 출발하고 있었다.

"지혜야! 핸드백 챙겼지?"

"응! 아저씨, 빨리 가요."

기사가 짧은 치마를 입은 세 여자의 쭉 뻗은 다리를 힐끔거리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조수석에 앉은 세련된 외모의 선혜가 급히 대답했다. 

"신림동 고시촌으로요. 빨리요."

그러자 뒷좌석에 앉은 지혜와 다혜가 의아해했다.

"야, 너 집에 안가?"

"응, 요즘 남편이 징계 먹어서 집에 있거든."

"그러면 집에 들어가야지. 왜 우리 집에 온다는 거야? 너 잘난 검사남편을 두고 말이야."

"검사면 뭐하니, 죄수 심문하다 성추행했다던데. 선혜야, 너희 부모님은 알고 계시니?"

"몰라, 내가 아직 이야기 하지 않았거든. 이혼 도장 안찍어주면 그때 가서 말 하려고."

"하검사 보기와는 달리 여자를 밝히나 보다. 너한테 좀 그러지."

택시 기사가 있는데도 세 여자들은 거리낌 없이 이야기했다. 기사는 무엇이 좋은지 미소를 지으며 간간히 백미러를 곁눈질하며 보고 있었다. 지혜와 다혜의  허벅지 안쪽 하얀 팬티가 적나라하게 보였지만 대화에 신경 쓰느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바람에 기사만 신나게 훔쳐봤다.

"흥, 됐거든."

"저것이. 검사랑 결혼하게 되었다고 좋아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딴소리야."

"그러게 말이야. 우리한테 막 자랑했으면서."

안선혜는 올해 나이 27살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현재 남편과 이혼 준비 중에 있었다. 선혜는 동화은행장의 외동딸로서 남편인 하검사의 조건을 보고 결혼을 했다. 하지만 남편이 신혼여행 중에 폭력을 휘두르며 겁탈하려고 해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녀였던 선혜는 겁을 집어먹고 남편을 피해 혼자 귀국길에 올랐던 것이다.

이 사실은 친구들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이야기였다. 다만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남편은 다른 남자가 생긴 거냐며 손찌검을 했다. 툭하면 돈 많은 집에서 그렇게 가르쳤냐며 물건을 집어 던지는 남편이었다.

어제도 전화기에 어깨를 얻어맞아 멍이 들었지만 친구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잘난 검사와 결혼했다고 얼마나 친구들이 부러워했던가. 심지어는 결혼하기 싫으면 자기에게 양보하라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만큼 결혼 전에는 잘생기고 키도 큰데다가 직업이 검사였으니 친구들의 시샘은 장난이 아니었다.

선혜의 두 친구는 대학교 동기들이었다. 지혜와 다혜는 현재 고시촌에서 미술학원을 운영 중에 있었다. 원래는 홍대 쪽에 내려고 했지만 임대료가 비싸 상대적으로 싼 고시촌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셋은 함께 대학 다닐 때는 '미대 혜자매'로 불리며 그 미모를 한껏 뽐냈었다.

선혜와 달리 지혜와 다혜는 지방에서 농사일을 하는 부모님과 강원도에서 축산업을 하시는 부모님을 둔 평범한 가정집의 딸들이었다. 선혜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껴 남편은 더 잘난 사람을 만나려 하다 보니 아직까지 시집을 가지 않게 되었다.

기사가 사이드 미러를 힐끔 쳐다보며 선혜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잘못한 일 있어요?"

뜬금없는 기사의 말에 선혜는 황당했다. 

"왜요? 우리가 뭐 나쁜 사람으로 보여요?"

선혜가 가슴을 쭉 펴며 말하자 짧은 반팔 티에 가려진 풍만한 젖가슴이 도드라져 보였다. 기사는 젖가슴의 라인을 상상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기사가 사이드 미러를 다시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요. 다만 아까 전부터 뒤의 택시가 헤드라이트를 켜며 쫓아와서 물어본 겁니다."

"네에?"

"정말이요?"

지혜가 몸을 돌려 뒤 유리창으로 확인했다. 바로 뒤의 택시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의 파트너 마이클 상병이었다. 잔뜩 화가 난 표정이 무언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안감을 들게 했다. 춤을 추다 자꾸만 자신의 엉덩이와 젖가슴을 만지려고 해서 친구들과 몰래 나온 것이 문제가 된 것 같았다.

"어떡해? 아까 그 미군들이야."

"정말? 큰일인데. 아저씨 빨리 가세요. 저차 좀 따돌릴 수 없나요?"

택시는 쌩쌩 소리를 내며 한강대교를 달리고 있었다. 그 뒤를 헤드라이트를 상향으로 한 채 택시 한대가 무섭게 질주했다.

"힘들겠는데요. 저렇게 바짝 따라와서. 게다가 차들도 별로 없는 시간대라."

"그러게. 왜 미군 앉혀가지고 그러냐?"

"야, 다혜! 너도 좋아했잖아. 키 크고 잘 생겼다고."

오늘 기분도 풀겸 다혜가 나이트가자고 해서 가까운 호텔 나이트가 아닌 이태원으로 간 것이 화근이 된 셈이었다. 아니, 그것까지만 했으면 괜찮았는데 잘 생긴 미군들을 보고 다혜가 합석하는 바람에 일이 꼬인 것이다.

"야, 집 앞까지 도착해서 내리자. 그리고 열라 뛰는 거야."

"그러다 잡히면?"

"어떡하지?"

"경찰서 앞에 내려드릴까요? 설마 저놈들도 경찰 앞에서 손님들한테 해코지 하겠어요!"

"네? 그럴까요?"

"아, 고시촌에 파출소 있어. 거기에 내리면 되겠다."

"재들 안가고 쭉 기다리면 어떡하지?"

"우리도 그냥 파출소 안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야지. 별 수 있니."

"벌써 새벽 1시야. 아저씨, 더 밟아요."

"네, 아가씨!"

성기는 선배와 친구들과 함께 택시를 잡으려고 했지만 많은 술꾼들이 도로에 나와 손을 흔들고 있어 쉽지 않았다. 20분을 넘게 도로에서 기다렸다가 겨우 한대를 잡았다.

전국에서 가장 큰 동은 신림동이다. 본동에서 13동까지 총 14개의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고시촌이라고 하면 신림 9동과 신림 2동을 지칭해서 부르는 말이었다. 서울대가 혜화동에서 관악산자락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고시생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현재는 2만 명 정도의 고시생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신림3, 7, 11, 12동 지역은 난곡이라 불리는 곳으로서 조선시대 강홍립(姜弘立) 장군이 유배되어 은거할 때 난초를 많이 길렀다는 데서 유래하며, 낙골, 난골 등으로도 불렸다. 성기 역시 평창동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 난곡에서 살았다.

한돌이가 안내해 택시를 고시촌 인근에서 세웠다. 성기의 눈에 간판이 꺼진 가게와 대비되게 파출소 불빛이 환하게 들어왔다. 파출소 앞에서 미군 여러 명이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 세 명을 붙잡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거 놔! 경찰 아저씨! 말려주세요."

"악! 어딜 만져! Shut the fuck up!"

지혜의 입에서 거친 욕이 튀어나왔다. 가뜩이나 열 받은 브루클린 병장이 지혜의 뺨을 후려쳤다. 짝! 소리와 함께 지혜가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다혜는 존슨 병장의 팔에 붙잡혀 지혜가 맞는 것을 보지 못했다. 선혜도 마이클 병장에게 머리채를 잡혀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다.

세 여자 모두 짧은 치마를 입어 팬티가 고스란히 보이고 있었고 아놀드 하사는 쓰러진 지헤를 발로 걷어찼다.

"악!""

"아악! 도와줘요."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덩치에 눌려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고 힐끔힐끔 쳐다볼 뿐이었다.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온다고 했던가. 파출소는 경찰들이 순찰하러 나갔는지 나이 많고 연약해 보이는 순경 한명 밖에 없었다. 그 순경조차 겁을 먹었는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채 입만 벙긋거렸다.

"그, 그만해! 우리나라 여자들한테 뭐하는 짓이야!"

"아저씨, 빨리 나가서 말려봐요."

주변에 있던 아줌마, 아저씨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순경의 등을 떠밀었다. 그것이 성기와 친구들이 택시에서 내려서 보았던 첫 장면이었다. 성기와 친구들 그리고 선배의 가슴 속에 불길이 확 치솟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성기와 친구들은 미군에게 달려들었다. 성기는 돌멩이를 잡고서 쓰러진 지혜를 걷어차고 있는 아놀드에게 주먹을 날렸다. 아놀드는 놀라며 피했다. 하지만 성기의 발이 더 빠르게 움직이며 아놀드의 물건을 정확히 가격했다.

"아악! 악!"

물건을 움켜잡고 쓰러지는 아놀드였다. 쿵 소리와 함께 넘어진 아놀드의 얼굴과 다리를 사정없이 걷어차는 성기였다. 마이클과 남순이는 땅바닥을 구르며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었다. 한돌이는 팔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선배 역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소중한 사람들의 피를 보자 술이 확 깬 성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가게 앞 빈 상자에서 맥주 병 하나를 보았다. 허겁지겁 달려가 맥주병을 잡고 존슨에게 달려들었다. 존슨 병장이 허리를 숙여 피했지만 한 바퀴 돌면서 또 다시 휘두르는 맥주병에 머리를 가격당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악!"

깨진 맥주병으로 존슨의 팔과 다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피가 튀고 살점이 튀었다. 다급한 브루클린이 달려들어 성기를 떼어내려 했지만 성기는 맥주병을 버리고 존슨의 팔을 세차게 깨물었다. 고기를 씹는다는 생각으로 씹자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성기의 입에 흥건했다.

"으아악!"

살점이 떨어져 나간 존슨이 남은 팔로 성기를 때렸지만 성기는 입을 떼지 않았다. 브루클린 역시 팔과 다리로 성기를 무섭게 내리쳤지만 성기는 끝내 입을 떼지 않았다.

물린 팔에서 또 살점이 떨어져 나가자 존슨은 지독한 고통에 끝내 정신을 놓고야 말았다. 성기의 입과 얼굴은 아귀처럼 피로 물들어졌고 그 모습에 놀란 사람들은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야했다.

브루클린은 존슨이 기절하자 죽은 줄 알고 성기가 무서워졌다. 성기는 존슨을 내버려두고 브루클린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미 이지를 상실한 성기의 눈에서 피의 광기를 목격한 브루클린은 냅다 주먹을 휘둘렀다. 흡혈귀처럼 피로 얼굴을 도배한 성기는 주먹을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배로 받았다.

가슴과 배가 찢어질 듯 아팠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빠져나가려는 브루클린의 팔을 두 손으로 잡고 이로 깨물었다. 남은 팔로 성기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지만 성기는 끝끝내 입을 떼지 않았다.

브루클린조차 살점이 무수히 뜯겨져 나간 후에야 혼절하고 말았다. 성기의 주변으로 온통 피투성이였다. 다행이도 한돌이와 선배가 성기에게 다가왔다. 친구의 무사함을 확인한 성기는 눈동자에 힘이 풀리며 바닥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성기야!"

"아줌마, 빨리 구급차 불러요."

"경찰 아저씨! 뭐해요? 빨리 연락해야죠."

지혜와 다혜, 선혜 역시 면티가 찢어져 브래지어가 훤히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혼절한 성기에게 다가왔다. 얼굴에 피가 홍건하고 가슴까지 피로 물들인 모습은 지옥의 나찰 같았다. 여기저기 맞아서 부은 얼굴하며 찢어진 티와 바지는 성기가 얼마나 격렬하게 맞섰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흑흑흑! 죽지 말아요."

"우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죽으면 안돼요."

"흑흑흑. 정말 고마워요."

세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성기의 안부를 걱정했다. 멀리서 순찰차가 연락을 받았는지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