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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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도나까와가 나서서 설명을 해주어 어머니의 화는 풀리셨다. 하지만 여전히 의혹의 눈초리를 하고 있어 성기는 좌불안석이었다. 여자들이 어머니를 재촉하며 안으로 들어가 더는 애기가 이어지지 않았다.

1층에도 방이 20개였고 2층은 방이 15개,  3층은 7개, 4층은 5개, 5층은 3개였는데 그 방들 가운데 5층의 방 한 개가 제일 크고 넓었다. 각 층의 전망도 훌륭했는데 그 중에 으뜸은 역시 5층이 제일 나았다.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자락과 인왕산자락이 정말이지 그림에서 보던 풍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성기의 어머니 역시 꿈도 꾸지 못할 저택의 규모에 놀라시며 입을 벌리시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가재도구도 도나까와가 알아서 준비를 해두어서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차라리 성기네가 쓰던 가재도구는 고물상에 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가전업체가 선전하고 있는 최신품들이 즐비하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짐 정리를 마쳤는데 어머니는 무릎이 아프시니 1층 큰방에서 주무신다고 하셨고 50명의 메이드 역시 1층에서 거주한다고 했다. 성기와 여자들은 2층 제일 큰방에서 살기로 하고 1층의 남은 방들은 그냥 놓아두기로 했다. 3층 이상은 당분간 쓰지 않기로 했다. 

보이네는 하얏트 호텔에서 짐을 정리해서 오겠다고 어머니께 인사를 했다. 이어 성기에게 안겨 진한 키스를 하고는 등을 돌려 나갔다. 두 여자 경호원도 수줍어하며 성기의 볼에 뽀뽀를 하고는 서둘러 보이네를 따라갔다.

이 소령과 김중위도 집에 가야한다며 성기의 어머니께 인사를 하는데 씩씩한 그녀들이 마음에 드셨는지 자주 오라고 말했다. 그녀들도 나가면서 성기의 입에 키스를 하고는 떠났다. 

성기는 이미선과 김순경, 차수연에게 집에 안가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핀잔만 들었다. 이미선은 이미 사직계를 제출해서 출근에 대한 부담감이 없는 상태인데다가 홀로 계신 자기 어머니한테는 남편 데리고 오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에 성기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렇다. 여기는 한국이기에, 한국 여자들 부모를 찾아뵙고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소말리아에 있을 때는 그런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에 성기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김순경과 양순경도 살인마를 잡은 노고를 인정해 원하는 지역으로 전출시켜준다는 보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두 여자는 당차게 휴직계를 제출하고 성기가 귀국하면 그 때 지역을 말해서 그 곳으로 복직한다는 계획이 있었다는 것이다.

차수연은 아직 기억을 다 회복하지 못해서 3여자가 돌아가면서 데리고 있다가 성기의 어머님이 불쌍하다고 하시며 여태 같이 지냈으니 무리가 없다고 하셨다.

일본 여자 둘과 러시아 여자 둘은 어머니가 탐탁지 않게 여기셨지만 성기와 헤어지면 한강에 빠져죽겠다는 여자들의 당찬 말에 어머니 역시 같은 여자로서 왜 성기를 만나서 고생을 하냐고 우시며 외국 여자들을 다독이셨다.

네 여자들 모두 울먹이며 눈 뜨고 눈 감을 때까지 성기 생각 밖에 안 난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그 애절한 모습에 성기의 어머니도 마음을 여시며 같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네 여자의 등을 쓸어주시며 같이 살자고 말했다. 

어머니가 울자 한국 여자 네 명도 덩달아서 울며 어머니 울지 마시라고 말렸다. 이 한편의 신파극 같은 모습에 성기는 뒷골이 무섭게 당기기 시작했다. 아직 이것은 시초에 불과한데 남은 여자들이 귀국하면 그때는 눈물로 한강을 범람시키겠구나! 여겨졌다. 

성기가 보니 도나까와가 경호원들과 같이 문 앞에 있었다. 모습을 보아하니 밖으로 외출을 나갈 것 같은데 밤이 늦었는데 어디를 가나 싶은 성기가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짓자 도나까와가 미소 지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손짓을 하고는 나가버렸다. 경호원들도 황급히 따라 나갔다.

거실도 운동장만해서 어머니 방에서 울고 있는 여자들 울음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꼬나물었는데 라이터가 없어 여기저기를 더듬는데 메이드 복장의 일본 여자가 다가와 불을 붙여주었다.

가슴과 얼굴을 보니 외국 도색잡지에 나올 만한 외모라 성기는 가슴이 설레었다. 성기는 고맙다고 미소를 지었는데 귓가로 한국말이 들렸다. 

"편히 말해도 되요. 도나까와님이 이제는 성기님을 주인이자 남자로서 한평생 모셔야 한다고 했거든요."

"네? 뭐요?"

일본인으로 생각했는데 능숙하게 나오는 한국어에 당황한 성기였다.

"말 그대로예요. 우리들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머님께 말할 거에요."

"뭘 말한다는 겁니까?"

"성기씨가 우리를 덮쳐놓고 책임지지 않는다고요."

"네에?"

이런 날벼락이 있나. 무슨 생각으로 도나까와가 일을 벌였는지 모르지만 이건 절대 아니었다. 가뜩이나 어머니 마음도 풀려서 이제야 일이 풀리려고 하는데 예상 못한 복병으로 좌초될 위기에 처한 배와 똑같은 상황에 놓인 것이라 더욱 기겁하는 성기였다.

조만간 수백 명의 외국 여자들이 귀국해 어머니를 뵙고 어머니, 저 며느리에요. 하면 어머니가 퍽이나 좋아하실 것인가! 그것은 절대 아니었다. 슬슬 말해야 하는 시점을 고르고 있는 이때에, 뭐! 덮쳤으니 책임지라고. 

"우리 모두는 평생 성기님만을 모시고 살 테니 알아서 하세요."

여자는 말을 하고는 등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이런, 도나까와의 음모였단 말인가! 성기는 피던 담배를 거칠게 끄고는 머리카락을 뒤척였다. 한참을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가 않아 그는 자신의 방으로 정했던 2층으로 올라가 쉬기로 했다.

이사 첫날은 어머니와 여자들이 같이 자기로 했는지 성기 옆에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마음 편히 자는데 침대가 넓어도 너무 넓어서 한 10명이 뒹굴어도 끄떡없을 것 같았다. 아마도 특수 제작했을 것이라 여기며 성기는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가볍게 운동을 하고는 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했다. 어머니도 당분간은 일을 나가지 않고 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친구들을 사귀겠다고 말했다. 성기는 잘 생각하셨다고 말하며 곁눈질하며 메이드 복장의 여자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눈빛을 오해한 이미선이 식탁 밑으로 성기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어머니가 계시고, 아름다운 우리들도 있잖아. 이 호색한! 그새를 못 참고 누굴 넘보려고!"

"아니야! 악! 아프다고. 그만 꼬집어."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만나고는 다른 남자가 들어오지도 않는데."

"한눈 판거 아니야. 그러니 밥이나 먹자고."

"알았어. 지켜 볼 거야."

성기는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소말리아의 일본 의료지원단에서 만난 여자들은 고분고분한데 왜 여기 여자들은 성질이 개떡 같지. 질투도 보이고 말이야.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성기의 어머니가 숟가락으로 머리를 후려쳤기 때문이었다.

"악!"

"밥상머리에서 염불하는 거 아니라고 말했지. 어서 밥 먹어."

"엄마는, 여기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다른 사람? 우리가 다른 사람이에요."

"우리가 부인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면 진짜 부인은 누구에요?"

"미안해. 미안해요. 말 잘못 나와서 그런 거예요."

"흥!"

아침도 한바탕하며 지나가고 성기는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전화로 친구네 집으로 연락를 했더니 아직 휴학을 하고 입대할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 한돌이가 받았다.

"나야, 성기!"

"그래, 짜식아! 뭐하고 지냈는데 연락이 없었냐?"

"미안, 바빴어. 오늘 술 한 잔 어때?"

"바쁘긴. 방위가 바쁘면 현역은 바빠서 죽겠다."

"미안해!"

"알았어. 어디서 만날까?"

"신림사거리 마부 어때?"

"그 주점?"

"마부 싫으면 솟대는 어떠냐?"

"솟대는 좀 그렇잖아. 마주로 갈게. 몇 시에 볼까?"

"다섯 시에 보자고."

"오케이. 아, 참. 남순이 새끼 휴가 나왔어."

"그래? 연락해서 같이 나와. 그리고 우리 집 이사해서 전화번호 바뀌었거든. 부를게 적어."

"빨리 불러. 그리고 새끼야. 이사 가면 이사 간다고 말해야 짐을 나를 거 아니야."

"괜찮아. 이따 내가 쏠 테니 용서해! 알았지?"

"알았어."

전화기를 내려놓으면 한돌이한테 미안했다. 대한이는 성기와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기에 속속들이 사정을 알고 있었는데 최근에 연락을 하지 못해 서운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사 간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으니 오죽 서운했겠는가.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까지 거의 매일 만났다. 어릴 적에는 오락실과 분식집에서 고교 졸업 후에는 술집에서 우정을 쌓았다. 서로의 고민과 미래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도 했다.

어머니와 여자들은 살 것이 있어 시장에 같이 가기로 했는데 성기 너도 따라 올 거면 따라 오라고 했다. 성기는 오늘 저녁 친구들과 약속 있다고 쉬었다가 나갈 거라며 거절했다.

늦게 들어오지 말라고 말하고는 어머니는 도나까와가 준비해 준 차를 타고 나가셨다. 당연히 운전은 이미선이 했으니 안심은 되었다. 

그날 오후 성기는 대문 옆의 작은 문을 열고 나서는데 낯선 감이 팍팍 다가오는 것 같았다. 자신이 이런 집에 살아도 되는 것인지. 분수에 맞게 살아야 되는데 라고 생각하며 걸음을 떼었다.

도로가에 있는 가게에서 담배를 사며 물어보니 자하문 터널을 지나 경복궁역에서 교대까지 가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고맙다고 말한 뒤에 버스를 기다리는데 인적이 드문 동네여서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담배를 피며 기다리는데 골목에 누군가가 고급 승용차 문에서 서성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성기는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살폈다. 낯선 사내가 긴 플라스틱 자로 승용차 문을 열기 위해 유리창을 쑤시고 있었다. 사내는 무엇이 두려운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대부분 저런 행동은 무언가를 훔칠 때 범죄자가 저지르는 행동임을 직감한 성기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인적 없는 동네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고급스런 동네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정말이지 개미 한마리 지나가지 않았다. 

성기는 별 수 없이 자신이 나서서 처리하기로 했다. 바닥을 보니 돌멩이가 보였다. 손에 쥐고 그 남자의 눈에 띄지 않게 접근했다. 사내의 뒤로 3미터 가까이 접근한 성기는 바로 날아오르며 무릎으로 사내의 등을 내리 찍었다. 동시에 사내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악!"

사내는 등을 어루만지며 쓰러졌다. 성기는 사내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발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걷어찼다.  소리를 듣고 주차된 차의 집에서 대문이 열리며 아주머니가 나왔는데 두 사람이 쓰러진 것을 보고 기겁을 하며 놀라셨다.

"아주머니, 경찰에 신고하세요. 빨리요. 이 사람이 차를 훔치려고 했어요."

"어어! 학생 괜찮아?"

성기의 짧은 머리를 보고 학생으로 생각하시는 아주머니는 성기를 걱정했다.

"전 괜찮아요. 빨리 연락하세요."

"아고, 내 정신 좀 봐. 알았어. 고마워!"

그러더니 후다닥 안으로 들어가 경찰에 신고하는 아주머니였다. 사내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성기를 노려보았다. 성기 역시 지지 않고 발길질했다. 겉모습을 보아하니 자신이랑 비슷한 또래인 것 같았다. 개자식, 할 짓이 없어서 도둑질이냐.

잠시 후 경찰이 사이렌을 울리며 도착했다. 아주머니가 무서워하며 잔뜩 움츠린 채 나타났다. 쓰러져서 고통스러워하는 도둑을 힐끔 쳐다보는데 치를 떠는 것 같았다. 경찰이 다가와 도둑에게 수갑을 채우고 차로 데려갔다. 경찰은 조서를 작성하는데 도움을 부탁한다며 성기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성기는 흔쾌히 응하며 차에 올라탔다. 증거품으로 도둑이 사용했던 긴 자와 훔치려 했던 볼보 승용차의 유리창을 확인하고는 경찰은 아주머니에게 별다른 피해가 없는지 확인했다.

아주머니는 피해는 일절 없으며 저 학생 때문에 도둑을 잡았다고 대답했다. 경찰은 아주머니에게 문단속 잘하시라고 말한 후 현장을 떠났다.

"학생, 고마워!"

"저 지금은 학생이 아니라, 방위라니깐요."

"그래도 내년에 복학할 거잖아."

"해야죠. 그럼 가볼게요."

"오늘 고마웠어."

"뭘요. 시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학생이 붙잡은 유영철이란 놈, 소년원과 가택침입, 절도, 강도 등을 수차례 저지른 흉악범이야. 오늘 학생 덕분에 큰 사고를 미리 막았던 거야."

"나이도 나랑 비슷한 것 같은데요? 벌써 그렇게 많은 죄를 지었나요?"

"아, 그럼. 별이 무수히 달린 놈이야. 그러니 학생한테 고마워하는 거야."

"수고하세요. 전 약속이 있어서 가 볼게요."

그렇게 시작되었다. 성기와 범죄자들과의 악연은.

============================ 작품 후기 ============================

연쇄살인마 유영철! 93년에 실제로 차량절도 사건을 일으켜서 잡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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